2008. 7. 6(일)
에피메니데스가 말했다. "크레타인은 모두가 거짓말장이다."
에피메니데스가 한 이 말은 참인가?
참이라면
크레타인은 모두가 거짓말장이다.
에피메니데스는 크레타인이다.
고로 에피메니데스도 거짓말장이다.
거짓말장이인 에피메니데스가 말했으니 이 말은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크레타인은 거짓말장이가 아니다.
이 말은 참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에피메니데스의 이 말은 거짓인가?
거짓이라면
크레타인은 거짓말장이가 아니다.
에피메니데스는 크레타인이다.
고로, 에피메니데스는 거짓말장이가 아니다.
그러면 에피메니데스는 참을 말했다.
에피메니데스가 참을 말했다면 크레타인은 모두 거짓말장이가 된다.
결국 에피메니데스의 이말은 참이 된다.
이 말은 거짓도 될 수 없다.
수학자들은 참도 될 수 없고 거짓도 될 수 없는 희안한 이 명제의 모순을 발견하고 수세기동안 골머리를 앓아왔지만 단순한 나는 이걸 읽고 배를 잡고 한바탕 웃었을 뿐 곧 잊었다. 단순한 내가 답을 줄까? 거짓말장이는 항상 거짓말만 하는건 아니고 정직한 사람도 선의의 거짓말정도는 할 줄 안다는 것. 저마다 다른데다 변덕이 심한 인간이란 동물을 주제로 한 명제는 변수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거라고 생각하는데? 누구나 자기 가 속한 조직이나 집단을 비방하면서도 자신은 아닌 것처럼 생각하면서 말한다는 고약한 습성 마저도 있다. 아님 말구. 내가 주절거린 말이지만 해놓고 보니 한심한 말장난이군. 좌우당간 이 명제가 생긴 것도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모양이다. 뜀도령의 말로는 이 곳 크레타 섬의 고대인들은 외지인을 속이고 사취하는 고약한 사람들로 악명이 높았고, 크레타인을 상대로 사기치는데 성공하면 진정한 의미의 사기꾼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바로 그 크레타 섬에 도착했다. 미노아문명의 발상지이며 그리스 문화의 기원이라 볼 수 있는 크레타 섬. 에피메니데스가 실존인물이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이 섬 어디에서 그가 살았을까 하는 쓸 데 없는 고민도 해 보았다.
우리는 새벽에 도착했고 현대 크레타 항구의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지도상으로 보자면 이 곳 유스호스텔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지도를 봐가며 걸어서 찾아갔다. 이른 새벽에 간간히 보이는 자동차들은 고속도로를 방불케하는 속도로 달렸고 어느 두 대의 차량은 영화에서 보듯 과격한 타이어 마찰음을 내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난리부르스다. 길건너려는데 저멀리서 돌진해 오는 차량이 뒤숭숭해 건널목에서 뒤로 물러 섰다. 얘네들 도대체 왜이러능겨?
사진에 보이는 이 돌로 지은 구조물도 유적의 일부인 것 같은데 개념없는 이들의 낙서도 이 곳에 선명하게 되어 있었다. 역시 공들인 낙서였다. 지도에 의거 이 구조물 왼쪽으로 뚫린 골목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유스호스텔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지는 않았지만 아침 8시부터 오픈한단다. 우리는 아침을 먹기 위해 밖으로 다시 나왔다. 아침 먹고 노닥거리다 보면 금방 시간이 가겠지. 아주 괜찮아보이는 카페가 있었지만 아직 오픈을 하지 않았다.
뜀도령과 나는 핑계김에 샌드위치와 콜라를 사서 바로 옆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노천카페 테이블을 슬쩍 빌려 그 곳에서 먹었다.
리유군은 취향이 달라 유스호스텔 가까운 스타벅스에서 센드위치와 커피를 마시겠다며 혼자 그리로 갔다. 아침을 대충 해결한 나와 뜀도령은 슬슬 걸어가 스타벅스의 야외테이블에서 리유군과 함께 남은 시간을 때웠다.
아래 사진은 스타벅스 야외테이블에서 바닷가를 향해 찍은 거리사진. 아직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반대편으로는 모로시니 분수와 광장이 있는 완만한 오르막길
여덟시가 되어 다시 체크인을 하기 위해 코앞 유스호스텔로 갔다. 여덟시가 막 지났는데 아직도 사람이 없다. 사람을 불렀더니 바로 오른편 식당 쪽에서 뭔가 대답소리가 들렸다. 그리로 들어가 보니 주인으로 보이는 할매가 커피를 여유있게 마시고 있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커피가 아니라 아침식사 중이었어도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왔을테지만 커피를 마시고 있던 그 할매는 짐 커피를 마시는 중이라며 기다리란다. 어이가 없었다. 손님은 졸이고 쥔넘은 왕이라던 이야기 여기서 다시 실감한다. 여유를 혼자서 실컷 즐긴 할매는 뭉기적거리며 나와서는 커피와 함께 먹다 입 속에 남은 음식물을 호물거리며 어떤 방을 원하느냔다.
도미토리를 말했더니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방하나 내주며 셋이서 홀라당 다쓰란다. 물론 도미토리 값으로 말이다.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지만 시설은 열라 꾸지다.
문 밖으로 나서면
꾸지지만 응접세트도 있고
천정에는 샹들리에 대신 알량하게 전구 하나 달랑 매달아 놓았다. 화장실과 욕실은 거의 �었지만 그런대로 찝찝하게나마 쓸만은 했다. 사실 시설에 대한 기대는 어차피 안했다. 물가와 숙박비가 비싼 이 곳에서 럭셔리한 생활은 어차피 기대도 안했다. 그렇지만 리유군과 혼숙을 하는통에 오리지널 타잔놀이는 포기했다. 8시에 당장 체크인을 하면서도 담날 아침 11시까지만 체크아웃을 하면 된단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새벽에 배타고 떠난다니까 보관하기 위해 요구했던 여권을 도로 돌려 주며 아침에 잠깨우지 말란다. "예이~~~, 여왕 나으리"
일단 짐놓고 숙소를 나섰다. 우선 모로시니 분수와 광장이 있는 방향으로 올라갔다. 가다 보니 고전적인 건물이 나오는데 시청 건물이 아닐까싶다.
말로만 듣던 모로시니 분수 그러자나도 물도 안나오는 이 분수는 오래 되었다는 이유 외에는 볼 품도 별로 없다. 그래도 크레타에 왔으면 중요한 볼거리 중 하나이니 보고는 간다. 공사중이라 천막을 둘러쳤다. 천막 너머로 한 컷 찍어 보았다. 시멘트 봉지도 보인다.
이 곳을 벗어나 크놋소스 궁전으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공사중이라 뭔가 둘러 쳐 놓은 곳에 금속판을 두르고 그림을 그려 놓았는데 이 것 역시 섬�하고 비정서적이지만 재미는 있다.
원폭 버섯구름을 보고 있는 충혈된 눈, 눈 아래오는 죽음을 예감한 눈물. 위로는 공포에 질린 인간들의 군상.
괴조의 출현과 일그러지는 얼굴의 의미는 뭐였을까.
원폭 희생자일까. 기괴한 인간 둘이서 술병 하나씩 들고 섰다. 앗 오른쪽 넘은 술병이 아니고 화염병을 들고 이까지 갈고 있는디?
어쨋든 우리는 버스를 탔다. 크놋소스로 간다는말에 일단 탔다. 얼마냐고 물으니 표는 구입해서 타야 한다며 다음 정거장에 내려 표를 사란다. 다음 정거장에서 눈썹을 휘날리며 표파는 가게방으로 들어가 크놋소스행 3명의 표를 달라고 했다. 잔존과 함께 뭔가 주길래 일단 받아 발바닥이 안보이게 뛰었다. 표를 보니 두 장이었다. 이런 젠장.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치기 싫어 확인도 안하고 주는대로 받아 달렸더니 우이씨다. 다시 뛰어 한 사람의 표를 더 사고는 뛰어 돌아왔다. 동승자들에게 엄청 미안하고 눈치가 보였다. 미안하단 사과를 공개적으로 했더니 몇 몇 사람들은 웃음을 짓는다. 이해해 주니 고맙군.
도착하자마자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표를 사서 일단 들어갔다. 표를 사서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이 흉상의 주인공은 이 궁전터를 발굴한 주인공인 아서 에반스. 그리스 신화에 크레타섬 미노스 왕이 미로의 궁전을 건설해 미노타우르스라는 괴물을 가두었다고 하는데, 영국의 고고학자였던 그가 1900년에 이 궁전의 발굴을 함으로써 사실로 밝혀졌다고 한다. 방의 수는 1200개나 되었고 약 3,700년이나 된 유적이라고.
서쪽은 주로 신전, 동쪽은 주로 왕궁이었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폐허만 남아 있을 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짐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곳은 곡물을 보관하던 저장고라고 하는데 여기에 이러한 구덩이가 3개가 있다.
무너진 폐허속에 남아 있는 작은 벽과 기둥 속에 벽화가 채색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무너진 이 궁전의 폐허와 묵묵히 오랜세월을 감내해 온 투박한 항아리들.
단순하지만 견고해 보이는 궁전터. 가장 온전하게 남아있는 부분 중 하나였다.
전설에서처럼 이 안이 미로처럼 매우 복잡하였다고 하는데
뜀도령의 추론으로는 건축학도 그리 발달하지 않던 시절에 개념 없이 증개축을 계속하다 보니 그리 되었을거라는 짐작을 내놓았는데 그럴듯하게 들린다.
극히 부분적이지만 온전하게 남아있는 벽화와 공간.
돌진하는 소가 그려진 이 벽화는 부조의 형태로 빚어 채색을 했다.색조나 그림, 문양 등은 무척 단순하다.
단지 이 궁전터의 폐허를 통해 구조만을 추측할 뿐 어떠한 건축물이었는지는 무척 궁금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거대한 항아리.
왕비의 욕실이었다는 이 곳은 돌고래가 그려지 ㄴ벽화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어 가장 인기있는 장소였다.
궁전을 모두 둘러보고 나서 기념품점을 들어갔다 나오니 지붕에 공작이 고고한척하고 어슬러거리며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내곤 했다.
궁전터 입구의 기념품점 전시물들. 조잡하지만 비싸다.
버스를 타고 숙소 근방으로 돌아와 점심 먹을 곳을 찾았다. 이 날 아침 숙소를 찾기 위해 지나던 해변가 카페테리아로 찾아갔다.
이 집에서 가장 맛있는 하이네캔 맥주.
점심으로 시킨 스파게티와 오징어튀김
구항구에 위치한 성채 앞에서 한 컷.
구항구에 정박중인 보트들.
이 번에는 크레타 섬의 고고학 박물관을 들를 차례다. 박물관을 찾아 도보이동중 발견한 카페 출입구 위로 흐드러지게 꽃을 낸 등나무가 아름다워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이 등나무는 많은 그리스인들이 좋아하는지 집이나 카페같은 곳에 심어서 꾸민 곳이 이후에도 종종 보이곤 했다.
공원을 지나
발견한 박물관 입구.
이 곳 박물관에는 크놋소스궁전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이 곳으로 옮겨와 전시했다. 방패
천사들
조각상들
투구
상아로 만든 이 인물상은 그리 크지 않지만 해부학적으로도 완벽한 표현이며 역동적이고도 사실적이어서 사람들의 눈을 한참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불합리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항아리. 쳐다보기 심난하다.
수백개의 파편을 모아 재구성한 수정그릇이라던가. 보통 집념과 연구가 아니고선 거의 여려울 듯 보이는 대단한 작업이다.
석재로 된 머리 부분에 금속재 뿔을 단 황소. 석재부분도 섬세하지만 뿔이 가진 사실적이고도 우아한 곡선이 기막힌 작품이다.
박물관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가던 중 발견한 집인데 집 안에 각종 화분과 식물을 심어 꾸몄다. 정리되지 않은 듯화면서도 정감넘치는 모습이 좋아 카메라에 담아 보았지만 찍고 보니 별로일세.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바깥으로 나왔더니 오늘이 문슨 날이었을까.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매일밤 하는 불꽃놀이가 아니라고 한다. 이거 왜 하는지 그들도 모르는 것 같다.
바깥으로 나온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불꽃이 한동안 바다를 향한 크레타의 밤하늘을 작렬했다.
불꽃놀이가 끝나자 우리는 모로시니 분수와 광장이 있는 곳으로 일단 올라갔다.
이 곳은 시청 건물인듯한데 밤이 되니 구석구석의 조명을 밝혀 고전적인 모습을 뽑낸다.
음식은 짜고 맛도 없다. 단지 공원에 테이블을 내어 놓은 여름밤의 운치만 이 위안감을 줄 뿐이었다. 밥먹다 보니 나나 무스끄리 할머니의 공연 홍보물을 돌이고 있었다. 이 할머니 아직도 공연을 하다니 놀랍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더위를 피해 바닷가로 나가 보았다. 맥주를 사 들고 구항구 주변의 끈적한 바닷바람과 비릿한 바다내음 속에 퍼질러 앉아 마시는 시원한 맥주의 맛도 일품이다.
그리스에서의 세번째 밤이, 그리고 크레타에서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밤이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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