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5(토)
기후가 건조한 곳에서의 아침 맞이는 항상 기분이 좋다. 상쾌한 아침이다. 리유군이 감기 영향인지 아직까지 자고 있어 일찌감치 서둘러 델피유적지에 가겠다는 생각을 일단 접고 있었다. 가는데 3시간 반, 오는데 세시간 반이라 배를 탈 시간에 돌아오자면 아침 7시 30분 첫 차를 타야했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난 리유군이 생각외로 많이 호전되었다. 시간이 좀 애매한 상황이었다. 모두들 아침 세면은 이미 마친 상태고 옷만 입으면 되니 조금 서두르면 델피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탈 수도 있을 것 같아 리유군에게 '곧바로 나갈 수 있는지'를 물었다. 흔쾌히 된단다. 사람마다 같은 말을 놓고도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내가 물었을 때는 그시간 당장을 말하는거였지만 실제 리유군이 나갈 준비를 마쳤을 때는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래도 택시를 타면 가능할 것도 같아 서둘러 나가서 택시 잡기를 시도해 보았다. 이 곳 아테네에서 택시를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날 아침에 알았다. 빈 택시는 좀처럼 눈에 띠지 않고 눈에 띠어 잡으려 해도 무시하고 그냥 가버리기 일쑤였다. 결국 아침 나절의 한바탕 호들갑으로 생각하고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 돌아 오니 아침식사로 훈제연어를 활용한 회덮밥이 메뉴로 나왔다. �있는 아침식사를 하면서 식탁에 함께 앉아 대화가 시작된 3명의 여학생 배낭여행객들이 있었다. 며칠 후 이탈리아로 넘어갈 참이란다. 어쩌다 보니 이날 함께 다니게 되었다. 오늘은 오모니아 광장과 현대아고라, 케라미코스, 수니온곶 을 들렀다 크레타 섬으로 떠나는 페리를 타는 것을 일정으로 하였다. 사실 이보다 더 많은 행선지를 잡았지만 시간상 불가능했다.
6명이 일행이 된 우리는 일단 숙소를 나섰다.
버스를 타고 수니온곶행 버스를 타는 곳이 어딘지를 확인하러 갔다. 오후에 2시 30분발 수니온곶행 버스를 정확하게 타기 위해 한 잣이었다. 위치를 확인한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오모니아 광장으로 갔다.
오모니아 광장은 대략 지금 기억에 한 6거리정도 되는 곳이었다. 다니는 사람들과 차량들을 빼면 별로 볼 것도 없는 곳이었다. 다만 신문가판대에 버젓이 진열된 화려한 잡지가 눈길을 끌 뿐이다.
현대아고라, 즉, 시장을 향해 걸어 가던 중 시청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걸어가니 아고라 입구가 나온다. 양쪽으로 큰 건물 속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곳은 고기만을 파는 코너다.
가다 보니 두야지 한마리가 배를 열고 내장을 흘린채 거꾸로 매달려 있다. 여기까지는 흔히 보던 모습이었지만 인간들이 더러운건 안먹겠다는 의지의 표현인지 두야지군의 똥꼬를 있는대로 파내고 도려내 후장을 허전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약간은 섬�하다. 좀 너무한거 아닌가? 글구 그렇게 도려내서 버리면 낭비 아닌가?
이건 양고기인 것 같다. 두통을 달아 놓은 채 고스란히 깝질만 벗겨 놓았다. 왼쪽 놈은 아예 이를 악물고 있다. 역시 조금은 섬�.
닭이다.
이건 엔초비인가보다.
부서진 얼음 속에 얹어둔 생선이 싱싱해 보이는게 회를 떠도 맛있을 것 같다.
허락받고 찍는게 예의인데 슬쩍 찍었다. 고개를 돌리는 통에 들켰다. 별 신경 안쓴다.
이건 연어인가보다 먹음직해 보인다.
생선을 배경으로 한 컷.
우리는 케라미코스를 찾아가기 위해 다시 걸었다. 걸어간 거리는 그리 짧지는 않았다.
케라미코스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어물어 이 곳 공원의 한 카페에서 가는 길을 물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헤매느라고 한바퀴 쓸데 없이 돌았다.
지나가다 부실하게 생긴 셰퍼트 한마리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다른 두 사람이 가르쳐 준 방향하고는 90도 각도 다르게 가르쳐 준다. 아무리 봐도 잡종인데 순종이라고 우기는걸 보고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척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르쳐 주 ㄴ방향으로 안가고 그 직전에 갤차준 사람의 길로 계속 갔다. 알고 보니 그아저씨 말을 들었으면 한바퀴 안들어도 되는거였다. 머냐고.... ㅡ,.ㅡ;
(사진제공 : 띔도령)
우리와 함께 한나절을 동행했던 여학생들. 가운데 있는 친구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유학온 학생이라고 했다. 한국과 베트남 교류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할 일을 하게다는 당찬 포부도 갖고 있었다. 우리와 비스므리한 외모에 한국말도 워낙에 유창해 외국인이라는 건 눈치를 못챘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밝히고 나서야 약간은 어눌한 한국어를 눈치챌 수 있었다. 나도 참 눈치 디따 없구만. ㅡㅡ; 세 사람은 모두 한 학과의 학생들이라고 했다. 인상도 귀엽지만 모두 예의 바르고 경우를 아는 친구들이었다.
케라미코스에 거의 도착해서 발견한 낙서 한마당. 그리스인들의 낙서는 마치 계획 하에 한 것처럼 형편없이 지저분해 보이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이 낙서도 그 중 하나다. 글씨를 써도 크기나 필체 등이 어느 정도 양식이나 규격 등을 의식해 공을 들였 뿐 아니라 그림도 제법 한다. 다니면서 봐왔던 공통적인 것 중 하나는 좀 섬�하다는 사실. 한 쪽은 누가 파갔는지 눈동자가 없고 피를 흘리고 입속에는 피를 머금고 있는게 비릿해 보인다. 독창적인 로봇도 그렇고... 내가 보기엔 형편없진 않지만 비정서적이라는게 문제다. 어쨋든 벽화로 보기엔 문제가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케라미코스라는 곳에 와서 보고는 실망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기엔 바깥에서도 다 보이고 건축물의 양식과 생김새를 추정해 보기도 어려운 폐허뿐이다. 게다가 앉아서 쉴 공간도 전혀 없어 보였다.그냥 기념으로 사진 한 장만 찍고 돌아섰다.
그래도 심어 놓은 꽃은 예쁘군.
유적지 바깥에 보이는 교회건물(짐작)이 오히려 볼만하다.
다시 오모니아 광장 근처로 돌아온 우리는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학생들의 기준에 맞춰야 했다. 돌아다니다가 맥주를 사서 들고 마시면서 사주겠다고 해도 극구 사양했다(이 곳에서는 가게방의 맥주 한 캔에도 2유로나 2.5유로 정도로 비싸다) 먹을 돈도 없지만 폐를 끼치는 것도 싫어하는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었지만 우리가 좀 부담스러웠다. 결국 점심은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빵집에서 빵을 사고
(사진제공 : 뜀도령)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때웠다. 처음으로 떨어보는 궁상이었다.
빵 한조각에 콜라 한캔으로 길거리에 앉아 하는 점심식사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다시 길을 찾아 나서다 발견한 투란도트 오페라 광고판. 연중 상시 공연이 있는지 크고 튼튼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것만은 분명한데 우리가 미리 확인해 두었던 수니온곶 방면 시외버스 터미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다. 하긴 서울 한복판에서 강화 가는 시외버스 어디서 타냐고 물어보면 몇 사람이나 대답해 줄 수 있을까. 우리는 결국 그 근처에 지하철역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겨우 한 정거장 타기 위해서... 우리가 오전에 일부러 찾아가서 위치를 확인했던 호들갑은 또 뭐여?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노출한 등에 재미있는 문신을 새겨 넣은 여인이 있어 내 눈은을 한동안 붙잡았다. 일부러 거울 두 개를 자신의 앞.뒤로 하나씩 놓지 않고서야 스스로는 볼 수 없는 문신을 새겼다는 것은 순전히 남을 위해서 한 배려란 얘기가 되고, 그렇다면 내가 좀 허락 없이 찍는다 해서 허물이 될 일도 없지 아마? ^^; 우중충한 조명하에서 그래도 들키면 미안할 것 같아 스슬쩍 찍고 시치미 뗀 결과로 나온 사진은 그리 선명치는 않지만 지금 봐도 재미가 있다.
그리 심하게 혼잡하지는 않았지만 지하철 안에는 사람이 적잖이 서 있었다. 우리 일행도 역시 서 있었는데 한 양코배기가 우리 일행 중 여학생 한 명의 바로 뒤에서 그에게 뭔가 불만을 말하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그 양코는 눈에 촛점이 없는 것 같았다. 지하철의 진동음과 철로의 마찰음 등으로 인해 여학생은 바로 뒤에 선 양코의 나름 위협적인 불만 제기를 듣지도 못하고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나섰다. "그녀는 내 친구인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여학생은 그제서야 뭔일이 있나 하며 뒤돌아 양코를 쳐다 보았다. 양코는 약을 먹었는지 촛점도 맺히지 않는 맛간 눈을 한 채 나름대로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려고 했지만 그는 헤롱헤롱 중심잡기에 버거워하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그녀가 내 발을 밟았단 말이야 쒸!" 속으로 나는 생각했다. '약먹고 헤롱거리는 이 와중에도 밴뎅이 소갈딱지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으니 한심하다고 안할 수 없다'고 중얼거리면서도 겉으론 "내 친구가 실수로 그랬고 그녀는 모르고 있는 것 같으니 내가 대신 사과하겠다"고 했다. 반응은 즉각적으로 왔다. "괜찮어."라는 대답과 함께 뒤틀린 심사를 푸는 그의 눈동자는 아직도 향할 바를 모르고 천정에 매달린 손잡이를 손목에 감은채 간신히 중심을 잡는 주제에 할건 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쨋든 늦지 않게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표는 버스 승차 후 구입했다.
해변도로를 타고 1시간 30분을 가는동안 깨끗하게 푸른 바다와
예쁘게 집들이 지어진 마을들을 계속해서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수도권에 가진 무공해 바다와 많은 녹지에 부러운 생각도 든다.
드디어 수니온에 도착해 저멀리 언덕에 포세이돈 신전이 눈에 들어 온다.
버스에서 내리니 신전을 제외하면 휴게소 하나 달랑 있고 적잖이 떨어진 곳에 마을이 보일 뿐 주면엔 아무것도 없지만 바다를 전망할 수 있는 이 신전은
이 곳까지 쫓아와서 볼 가치가 충분했다.
신전은 기둥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황량한 주변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솟은 신전의 위용은 기둥만 남은 폐허의 모습으로 보기엔 무척 당당하게 보인다.
이 곳의 낙조는 이름이 났지만 낙조가 시작되기 전에 막차가 이곳을 떠나기에 어차피 신전을 배경으로 한 해넘이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보다도 크레타 섬으로 향하는 9시발 페리를 타야 하니 5시 30분 차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이 신전의 기둥은 도리아식으로 단순함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이오니아식 기둥보다는 남성적인 멋이 있어서 좋다. 리유군, 뜀도령과의 한컷.
우리의 단체사진은 바로 베이징에서 온 바로 이 아가씨가 찍어 주었다. 혼자 혼 것이 의아해서 물었더니 친구들은 산토리니에 간다고 떠났고 자기는 그냥 아테네가 좋아서 남았단다.
나는 이 신전이 마음에 들어 요모조모 뜯어 보며 카메라에 담았다.
신전 바로 앞에 있는 이 나무가 유일한 그늘 딸린 쉼터였다. 마치 그림같다.
태양을 가리고 신전을 찍어보니 그런대로 멋진 사진이 나온다.
태양을 배경으로 두고 포세이돈 신전을 몇 컷이고 찍어댔더니 혼자 배회하던 방금 그 중국 아가씨가 호기심에 따라와서 찍어본다. 그러더니 좋은 배경이라며 흡족해했다.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나마 낙조를 보고싶어하는 세 명의 여학생을 남겨둔 우리는 5시 30분 버스였던가를 타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30분 이상 기다려서야 아테네로 돌아오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시간이 빠듯해서 걱정하던 우리는 차가 밀리는 도로교통상황에 더욱 당황했다. 논스톱으로 가도 은근히 걱정되는 이 상황에 길까지 밀리니 이런 식으로 나가면 배를 놓치는건 기정 사실이었다. 게다가 나는 점심으로 먹은게 시원치가 않았는지 뱃속에서 개구리 두 마리가 레슬링을 하고 있었다. 결과물이 세상을 보겠다고 까불고 있으니 나는 차가 막힌 도로 한 번 노려보고 부글거리는 배 한 번 노려보기 바빴다. 아뿔싸. 오늘은 토요일.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그 많은 비치에 놀던 인간들이 차를 끌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나는 차 안에서 별 생각을 다했다. 40유로짜리 배표 날리는건 둘째치고 섬들은 빨리 돌고 와야 아테네에서의 여유있는 일정을 가질 수 있다는 강박관념도 있었고... 부글거리는 배가 속�이면 중간에 내려야 할지도... 한참을 밀밀밀거리며 뭉기적거리던 차는 어느 순간부터는 길이 뚫려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다행이 시간이 지나면서 뱃속도 많이 편해졌다. 완전히 포기를 했던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8시가 거의 다 되어 터미널에 도착하자 서둘러 지하철을 탔고 메가로 무시키스 역에 도착하자 리유군을 지하철 역에 남겨 둔 뜀도령과 나는 발바닥이 안보이게 달려 숙소로 뛰어 들어가 숙소의 사장에게 대충 인사하고 미리 싸둔 세 사람의 짐을 들고 다시 역을 향해 똥빠지게 달렸다. 몇 분이 걸렸다더라? 돌아온 시간에 리유군이 놀랐다. 마라톤 주법을 익혀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고수인 뜀도령을 따라가기는 역시 힘들었다. 도착하자마자 황급히 동전을 투입하고 표를 끊고는 뛰어 들어갔다. 안내 전광판을 보니 열차 도착 7분전이란다. 우리 왜 그렇게 뛰었던거지? 하긴 느리적거림으로 방금 차 한대 보낸 것보단 낫지. 피레우스 역에 도착하니 8시 30분정도. 이젠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안심하면 안된다며 서두르자는 뜀도령의 말에 일리가 있어 일단 뛰었다. 역을 나와 도로을 건너 항구에 들어가니 부두는 엄청나게 커서 출발대기중인 페리가 최소 10척은 되는 것 같다. 가장 먼 배는 저멀리 까마득하다. 설마 저 배는 아니겠지... 부두 잡역부에게 표를 보여주며 물었더니 오른쪽 방향으로 가란다. 배가 배를 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배인지 물어보는 것이 무의미하니 일단 어느 밴지도 모른채 말해주는 방향으로 냅다 달렸다. 설마 저멀리 가장 먼 곳에 까마득히 보이는 페리는 아니겠지 하며 배 하나 하나에 도달할 때마다 물었다. 족족 손사래 친다. 모든 배가 다 보이는 위치에서 물었다. 아뿔싸, 오분도 채 안남았는데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우리는 똥을 흘리도록 뛰었다. 간신히 골인. 아.... 쓰러질거 같애....
한 숨을 돌이고 나서야 식다으로 가서 음식과 맥주를 사서 자리를 잡았다.
육지와 비교해 싸지도 않고 불행이도 디게 맛이 없었다. 그래도 벡스 맥주가 있어 약간의 위안은 된다만...
침대칸은 없었지만 네개씩 붙어있는 좌석이 남아돌았다. 우리는 아예 한칸씩을 꿰차고 팔걸이를 제껴올리고 누워 자니 침대 부럽지 않게 편안한 잠자리가 되었다. 굳이 침대칸 안사도 되니 돈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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