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8.(일)
런던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핑크 플로이드 전시회였다. 전시회 기간에 이 곳까지 와서 전시회를 보지 못하고 간다면 이건 두고두고 후회가 될 터였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빅토리아 앨버트홀부터 방문했다.
입구에 도착하니 가로로 길게 설치한 환상적인 전시회 포스트부터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다 설렐 정도로 흥분되었다.
중앙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인포메이션 센터 라운드 카운터에 어떤 전시회인지 줄을 지어 티킷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근무중인 여러명의 직원 중 한 명에게 핑크 플로이드 전시회 티킷을 문의했다. 직원은 전시장에서 직접 문의하라고 한다. ??? 의아했지만 이 직원은 뭘 알지도 못하고 한 소리였다.(어찌 자기 업무도 모르냐 ㅡ,.ㅡ;) 전시장으로 찾아갔다. 그 곳에서 관객 입장을 관리하는 직원에게 문의해 보았다. 이 전시회의 티킷을 구입하자면 멤버쉽을 갖고 있어야 하고 멤버십 보유자만 이 티킷을 구입할 수가 있다고 했다. 멤버십 가입 방법과 경비를 물으니 통로 반대편 끝에가서 문의하라는 말과 함께 알려준 경비는 60파운드. 헐.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이 직원 역시 뭘 알지도 못하고 한 소리였다.(이 곳 직원이 오히려 자기 업무가 아니면 모를 수 있지만 모르면 가만히나 있지... 이 때의 황당함과 망연자실을 생각하면 구타유발에 대한 보답을 해주고 싶었다.) 통로 반대편으로 가봤다. 사무실이 있었다. 들어 갈까말까 그 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전시회 하나만 보자고 멤버십을 가입한다... 그것도 60파운드나 소요된다. 고민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남들은 23파운드에 이 전시회를 관람하는데 나만 83파운드에 관람하는 셈이었다. 아무래도 망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돌아가자니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다른 방법이 있나 알아보고 없다면 멤버십 가입을 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다시 전시장 입구로 가봤다. 나 중에 알았지만 입장권에 표기된 입장시간이 시간대별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30여명의 관람객들이 줄지어 있었다. 60~70대 노인들이 특히 많았다. 나는 40대 정도의 사람 좋아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가 티켓을 어떻게 구입했는지를 물었다. 인터넷에서 예약했단다.
"멤버십이 있어야 하나요?"
"멤버십? 무슨 멤버십?"
엥? 그럼 멤버십이 필요 없단 얘기 아닌가? 처음 문의했더 중앙현관의 라운드 카운터로 다시 가봤다. 이 번엔 다른 여직원에게 문의했다.
"핑크 플로이드 전시회 티킷 구할 수 있습니까?"
"글쎄요... 오늘은 완매가 된 것 같은데..."
'허걱,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 번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쨌든 멤버십이 필요없다는 것은 대충 확인된 셈이었다. 같은 카운터 안 반대편에 있는 직원은 이 곳에서 티킷을 발권하면 되는데 그 것도 몰랐던 모양이다. 어떻게 자기 업무가 뭔지도 모르는 직원이 다 있는지 어이가 없었다. 멤버십 가입을 했다면 다시 한 번 망연자실 할 터였다. 전시관 입장객 관리를 하는 직원은 자기 업무가 아니었으니 몰랐을 수도 있었겠지만 알지도 못하면 가만히나 있지 멤버십 얘기는 왜 꺼내 사람 절망하게 만드냐. 어쨌든 두 직원을 원망할 필요도 없었다. 중요한 건 표를 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내일 표가 있는지 좀 봐주세요."
"잠깐만요..."
그녀가 다시 컴퓨터를 들여다 보며 키보드를 만지작거렸다. 시간이 걸린다. 한국 같으면 금방 확인이 될테지만 느려 터진 시스템과 인터넷 인프라는 단 몇 초도 기다리기 힘들게 만들었다. 만일 표가 진짜로 없거나 내가 돌아가는 날 이후에나 표가 나온다면 그야말로 망연자실이었다. 나는 잠깐이었지만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표가 없으면 어쩐다. 한국에서는 비상용 표를 따로 두게 마련이다. 이들도 그럴려나? 만일 그런 짓을 이들도 한다면 이 여직원을 구워삶으면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가운데 여직원은 아직도 검색중이었다.
"표를 꼭 있어야 합니다. 이걸 보고 싶어서 한국에서 휴가까지 얻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는 이 전시회 하나 때문에 이 곳에 온 것인양 약간의 사기까지 치자 그녀는 웃었다. 잠시 후 그냐가 밝은 얼굴로 말했다.
"아, 내일 표가 있습니다."
"와우!!!!!! 감사합니다. 입장권을 구하지 못할까봐 엄청 걱정했습니다."
엄청나게 기뻐하는 나를 보고 그녀도 흐믓해 했다.
만쉐이! 드디어 표를 구했다. 오전 10:30에 입장 가능한 티킷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입장시간을 통제하지 않으면 운집한 인파때문에 관람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밖에 없었다. 전시공간을 지나는 통로에 비해 지나치게 관람자가 많기 때문이었다.
이 날은 어차피 레코드샵 순례 보다는 핑크 플로이드 전시회를 즐기기로 한 날이다. 레코드 가게를 다니기 위한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지나치게 레코드 가게만 다니자니 사실 이 곳의 문화를 들여다 볼 필요를 너무 간과하는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스쳐갔다. 그렇다면 한 번 쯤 들러볼만도 하겠다고 생각했던 영국박물관을 이 날 들르기로 계획을 바꿨다. 한국에서는 대영박물관이라고 부른다. 영국에서 조차 대영박물관이라 부르지 않고 영국박물관이라고 부르는데 영국의 국뽕용 용어를 자국도 아니고 남인 우리가 갖다 붙이는 이유는 도대체 뭔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영국박물관은 아무 때고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니 스킵하는 것도 현명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기도 했다.
11:50쯤 영국박물관에 도착했다.
입장 전 기념촬영 한 컷. 이 곳 영국 박물관은 유물을 국가별 테마별로 구분해 전시했다. 약탈물들이란 얘기다.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가진 박물관의 건물 내부.
마침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한 켠 레스토랑에서 샌드위치와 콜라를 사서 테이블에 앉아 먹었다. 7파운드. 다른 곳에서라면 이렇게 먹는 끼니는 궁상일테지만 영국에선 이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다.
이집트부터 들러봤다. 느덜 장례 잘 치러봐야 약탈 대상이다.
관 내부.
애는 죽고 나서 영원한 삶을 위해 미이라로 만들어졌을 테지만 죽기전에 자신의 미이라가 구경거리가 될거라는 생상을 해 본 적이나 있었을까.
일본 테마의 전시 코너에는 갑옷은 물론
리얼한 춘화까지 전시되어 있다.
오잉? 너바나의 음반까지?
이란 페스세폴리스에서 본 것과 똑같다. 아마도 게서 일부를 약탈해 았을 것 같다. 사자가 황소를 잡아먹는 것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는 설명을 이란에서 만난 나즈메의 설명으로 들은바가 있다.
파르테논신전 조각상들이 전시된 코너이다.
그리스와 반환 문제로 갈등중인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들. 거 왠만하면 장물(?)은 이만 돌려 주셈~
모아이의 석상까지.
흠메 증말, 관장 아재요~ 규레이터 아재요~ 이런거 한국에 가믄 많아요. 뚜껑도 안맞는구만 알고 덮은겨 모르고 덮은겨? 울 노인네가 가진 것만도 100개는 넘는구만...
아침에 들어가 거의 저녁때가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을 만큼 유물이 어마어마했지만 거기에 대한 설명 표기는 한 자락도 볼 수 없었던 이집트 국립박물관에서의 관람 경험 때문에 시간이 모자랄 줄 알았던 영국 박물관에서의 관람은 예상보다 훨씬 짧은 시간인 4시간만에 밖으로 나오니 16:00쯤. 이 곳을 나와 기념품샵에 들렀다. 마그네틱을 적잖이 샀는데 아 젠장. 이 곳보다 훨씬 싼 곳을 나중에 발견했다.
생각보다 일찍 나왔으니 다른 곳 한 곳을 더 가보기로 했다. 가고자 했던 곳은 타워브릿지.
가는 길에 보이는 성채도 볼만하다.
다리 하나 보자고 가는건데 멀리서 봐도 거창하다.
많은 공이 들어간 다리인듯하다.
다리에 들어서면서 건너며 기하학적으로 보이는 강건너 건물들.
런던브릿지 도착 18:00
타워는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돈 내고 내부에 들어가는 프로그램도 있는 모양인데 건너 뛰었다.
다리를 건너 다리 자체를 감상하기에 좋은 위치로 이동했다.
기념 촬영.
곧 해가 질 시간이었다. 야경까지 보고 가기로 했다.
다리를 넣은 야경을 배경으로 한 컷.
어두워지자 맥주생각부터 간절해진다. 유서깊은 펍 디킨즈 인을 찾아가 맥주 마시는 일이 이 날의 마지막 코스였다. 가다 보니 다리 근처 외진 곳에 한 뮤지션이 촬영을 하고 있었다. 유명 뮤지션을 그냥 지나치는거 아닌지... 거리의 악사 치고는 높은 수준에 감탄할 만했다. 이 곳엔 특히 포크음악이 많이 발달한 것 같다. 포크 뮤지션 유독 많다. 런던 브릿지에서 멀지 않은 약간 외진 펍. 바로 디킨즈 인이다. 19:20. 3층 목재건물의 유서깊은 펍인 디킨즈 인을 찾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약간은 외진 곳이다. 어둠 속에 조명을 받아 환상적인 모습을 뽐낸다. 실내에는 묵직한 목재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져 있어 편안하고 조용환 분위기다. 약간은 어두운 조명이 아쉽긴 하지만 영국의 펍들은 조명이 대부분 우중충하다. 여섯 종류의 맥주 탭을 운영하고 있었다.
풀러스사 런던 프라이드. 전부터 한국에서 즐겨 마시던 맥주다. 맛이야 두 말 할거 없고.
한국에서 마시던 맥주는 병맥주여서 캐그에일은 물론 캐스크에일로도 맛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처음으로 캐스크 에일로 맛을 보자니 촌놈 티내느라 그러는지 가슴이 다 설렌다. 깨끗하게 투명한 짙은 호박색이 무척 아름답다. 거품 입자는 굵고 거친편이어서 딱히 목넘김이 부드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맥주다. 호프향과 몰트향이 서로를 삼키지 않는 환상의 조화가 일품이다. 캐러멜향과 사과향이 좋으나 피니시는 비교적 짧은 편이니 그게 약간의 흠이 된다. 탄산가스와 함께 병입된걸 먹었을 때는 가장 맛있게 먹은 맥주 중 하나였고, 캐스크 에일이 더 맛있어야 정상일 것 같은데 그만큼은 아닌듯하다.3층으로 올라가 피시앤 칩스 주문하려다 Mixed Stake 가 갑자기 급땡겨 생각을 바꾸어 주문했는데 이건 실수었다.
이 집은 피시 앤 칩스 상까지 받았다는 문구를 자랑스럽게 내걸었다. 맥주를 받아 든 채 3층으로 올라가 피시앤 칩스 주문하려다 메뉴판을 보고 눈에 띤 Mixed Stake 가 갑자기 급땡겨 생각을 바꾸어 주문했는데 이건 실수었다. 고기인지 생고무인지... ㅠㅠ
이 번엔 그린킹의 IPA를 주문했다. 3.6%로 비교적 낮은 도수의 맥주다. 거품 입자 굵다. 기네스 맥주 잘못 따르면 개구리 거품이 생기는데 그 정도는 아니어도 거품 방울이 매우 굵어 느낌부터가 영 별로다. 목넘김은 평범하다 감동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형편없지도 않다. 잔모양은 같았다. 몰트향이 강하지만 호프 향도 의외로 적어 밋밋함. 뭐야, 이게 IPA야? 에이~ 농담도 심하셔~~~ ㅠㅠ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음. 영국에서 IP는 안마시는게 상책일거 같다.
주문한 믹스드 스테이크가 나왔다. 고기가 썰리지도 않는다. 씹어보니 이가 고기틈을 만들지 못한다. 완전 질기고 건조하고... 별로임. 피시앤칩스가 이 집 강추메뉴였는데 완전 개실수. ㅠㅠ 돼지고기 퍽퍽하고, 쇠고기 질기고, 아무리 영국이니까 기대는 안했다지만 고기 소스도 없고. 걍 구웠다. 소시지가 그나마 먹을만 하다. 완전 영국스럽다. 이정돈 나도 굽는다. 후회와 절망의 눈물이... ㅠㅠ 옆테이블에서는 을쉰들이 풍부하게 제공되는 피시앤 칩스를 즐기는데 넘 맛있어 보임. 나는 고무덩어리에 칼질함서 뭐하는거임? 사실 그 문구를 보기는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겍이가 땡긴다고 배신한 죄 달게 받겠습니다.
"Try our ultimate Fish & Chips."
마지막에 씹던 겍이 쪼가리는 씹다씹다 지쳐 결국 뱉었다. 이걸 돈받고 파냐? 명성이 아깝다.
이 집에서 직접 브루잉 한 디킨즈 에일.
거품입자가 굵고 목넘김 역시 평범하다. 색깔은 아름다운 호박색이 쳐다보기만도 황홀할 정도로 환상적이다. 잔모양 위로 넓어지다 마지막에 좁아지는 전형적인 영국식 에일잔을 썼다. 몰트향만 강하고 호프향은 느끼기 쉽지 않다. 오늘 왜 이런거만 걸리냐. ㅠㅠ 그나마 길게 느껴지는 잔향이 약간의 위안을 준다. 토스트맛이 나고 과일향은 없지만 구수한 맛은 있다.(나 누룽지국물 먹으러 온거 아니다. ㅠㅠ) 상큼한 맛도 부족. 미세하게 시큼하지만 전반적으로 맛이 아주 나쁘지는 않다.
펍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가 21:00쯤 도착했다. 샤워 후 음반 정리. 내일은 PINK FLOYD EXHIBITION 관람이 예정되어 있다. 기대된다.
'배낭여행 > 17 영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런던 레코드숍/펍 순례기 8 (0) | 2017.10.27 |
---|---|
런던 레코드숍/펍 순례기 7 (0) | 2017.10.26 |
런던 레코드숍/펍 순례기 5 (0) | 2017.10.25 |
런던 레코드숍/펍 순례기 4 (0) | 2017.10.25 |
런던 레코드숍/펍 순례기 3 (0) | 2017.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