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6 쿠바

카리브해의 열기와 음악 속으로, 쿠바여행 2(아바나)

코렐리 2016. 9. 29. 16:05

2016.9.10.(토)

아침 아홉시에 아침을 준비해 주기로 한 아주머니는 시간이 되자 나지막하게 노크했다. 일어니기 싫었지만 밥은 먹어야 하니 일단 졸린 눈 비비며 일어나 손만 씻고 부스스한 얼굴로 식탁이 있는 응접실로 나가봤다. 20쿡에 포함된 아침식사 치고는 아주 훌륭한 편이었다. 수박은 우리네 먹는 것보다는 당도가 상당히 낮은 편이고, 파인애플은 눈꺼풀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시다. 구아바인지 뭔지 약간은 구린 냄새에 씨앗은 잘고 많은데 몹시 딱딱해 먹기조차 싫은 과일도 있었는데 다른 숙소에서도 꼬박꼬박 나오는 애물단지였다.

 

 

아침식사 후 또 잤다. 배신광군은 아침식사 후 구경 나갔다. 난 어차피 현지에서 일행이 생겨도 혼자 다니길 좋아한다. 한참 구경에 재미들려 있는데 일행 어딨나 찾는 것도 싫고 서로 맞추는 것도 싫어서다. 오후 한시가 다 되어서야 샤워 후 밖으로 기어 나왔다. 서두르지 않고 잠도 충분히 자고 슬슬 여유를 갖기로 작심한 여행이지만 잠만 잘 수는 없는일. 밖에 나오니 혹독한 더위 속에 이국적인 골목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점심을 어디에서 먹을까 어슬렁거리며 다니다 보니 나오는 분주한 거리. 나중에 알았지만 이 곳은 여행자 거리로 유명한 오삐스뽀 거리.

 

 

기념품 가게가 몰린 작은 시장부터 눈에 들어온다. 자그마한 백팩 하나만 메고 다니는 나로선 기념품은 항상 마지막 날에 산다. 구경만 다녔다.

 

 

음악이 지천에 깔린 나라답게 음악에 관련된 상품이 많다. 전시된 인형들은 정말 탐이 나도록 예쁘다.

 

 

치렁치렁 장식물.

 

 

꺽다리 목각인형들. 아프리카에서 많이 보던 스타일이다.

 

 

늦은 점심을 먹어야 할텐데... 걷다 보니 한 레스토랑에서 음악소리가 마구 흘러 나온다. 음악 소리에 행인들의 발걸음에 정체가 생기고 문 앞에서 몰린 인파가 레스토랑 안의 뮤지션들에게 눈길들을 보낸다. 네 명의 여성뮤지션이 쿠바 전통의 강렬한 리듬과 비트를 띤 연주와 노래가 대단히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래 사진은 연주가 끝나고 열기가 다 식어 아무일도 없었던듯 시치미를 떼는 레스토랑의 모습. 

 

 

어쨌든 길에서 이들의 음악을 허접하게 즐길 생각은 없었고 일단 안으로 들어가 바에 자리잡고 맥주부터 주문했다. 이 곳에서 마신 맥주는 크리스탈. 이름 만큼이나 밍밍한 맥주다. 여성들로 구성된 뮤지션들이었지만 음악적 카리스마는 간과되기 어려울 만큼 훌륭했다.  

 

 

이들의 연주 동영상. 막상 동영상으로 찍어와 포스팅 해놓고 나면 음질의 문제로 이들의 음악이 외곡되고 설득력 없게 들리는게 문제다. 여기에 올린 동영상을 보고 이곳 쿠바인들의 음악적 역량을 오해하는 일이 없길 바람.

 

바에 앉아 메뉴판을 요구하니 10쿡짜리 세트메뉴를 직원이 추천했다. 칵테일, 랍스터, 디저트 케익에 커피까지 풀서비스인데 비하면 가성비 꽤나 높은 편이었다. 

 

 

 

 

소스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나라여서 가재는 그릴에 그냥 구워서 나오고 샐러드에도 소스는 없다. 닭이나 토끼한테 주면 감격할 진수성찬이지만 인간이 먹기엔 빈약함이 느껴지는 시추에이션.

 

 

입에 넣는 족족 흔적이 없어질만큼 혀끝을 희롱하는 부드럽고 달콤한 디저트 케익의 맛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이 케익은 알고 보니 다른 레스토랑에 갔을때 후식으로 제공된 같은 모양의 케익이 똑같은 맛을 낸걸 보면 같은 곳에서 납품 받은 모양. 그렇다고 개무시하면 큰일날 맛이다.

 

 

잊고 있었는지 칵테일 줄 생각을 안한다. 옆구리 찔러 받은 모히토. 맛은 누구나 알테니 괜한 미사여구와 묘사는 생략.

 

 

그러잖아도 전 날 도착한 공항에서의 비싼 수수료를 피하기 위해 전 날 환전한 금액이 많지 않아 아바나 시내에서 더 하려던 참이었다. 레스토랑에서 1차 공연이 종료된 뒤 바로 옆에 앉아있던 덩치 큰 독일인 친구가 먹던 음식과 가방을 내게 봐달란다. 어딜 가냐고 물으니 환전하러 간단다. 이제 막 말문이 트인 난데 음식을 대신 먹어 치우거나(우웩!) 가방을 들고 날면(나란 사람 그럴 리 없지만도) 어쩌려고. 하긴 나도 음식을 주문하는걸 옆에서 다 봤으니 그럴 염려는 없고 귀중품은 다 지니고 있었겠지. 없어지면 골아프지만 치명적이지도 않을 것들만 잔뜩 들었을테고. 환전소는 레스토랑 바로 문 앞 빤히 보이는 곳에 있었다. 어쨌든 그가 환전한다고 했을때 나도 따라서 했어야 했다. 뭐하러 밥먹다 말고 서두르나 했지만 이유가 있었다. 가는 도시마다 느낀거지만 환전소는 곳곳에 있는 것이 아니어서 굳이 찾아가야 하고 어렵게 환전소를 찾아내면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에어컨 바람이 부는 실내에서 기다리는 게 아니고 바깥에 줄을 서서 여러 창구 중 한 개에서 한 고객이 환전을 마치고 환선소 문을 나가면 그 다음 사람이 입장하도록 도어맨도 지키고 있어 그 끔찍한 뙤약볕에 장시간 서 있어야 했다. 독일인 친구가 서둘러 나갔을 때는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1시가 이미 훌쩍 넘어 있었고 그때 닫았던 문을 다시 열었는지 줄 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길롬. 그렇다면 나한테도 얘기 좀 해주지. 환전 후 돌아온 그 녀석과 잠깐 대화를 나누었지만 여행에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즐기는 나로서도 뭔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도 안날만큼 만남의 감동은 없었다. 어쨌든 그 녀석은 다시 돌아와 먹다 만 새우 요리를 마저 맛있게 비우고 나갔다. 아래 사진은 혹독한 더위에 시달리며 환전 순서를 기다리는 여행객들.

 

 

환전을 하려다 사람이 많아 포기하고 길을 가다 보니 그림을 운반하는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입은 옷과 그림, 그리고 사내의 생김새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사진 좀 찍자고 했더니 가던 길을 멈추고 그림을 바닥에 내려 놓는다. 그냥 계속 길가는게 좋은데... 어쨌든 호의에 힘입어 한컷 득.

 

 

행자들의 피사체가 되어 준 뒤 팁을 받는 행위예술가도 보인다. 동상인줄 알았다가 갑자기 움직이면 깜놀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더위에 저 안에서 얼마나 혹독한 더위에 시달리고 있을까. 땀띠나면 잠잘때 완전 죽음이다.

 

 

50~60미터 오삐스뽀 길을 따라 걸으니 아르마스 광장이 나온다.

 

 

이 곳엔 노점 책방이 눈에 띠는데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관련 책들 일색이다. 특히 체 게바라가 많고 기념품들도 체 게바라 일색이다.

 

 

오래되어 골동품 같은 하드커버의 책들도 많이 눈에 띤다.

 

 

 

 

 

 

광장에서 만난 꼬마신사들. 게임 삼매경에 빠진 진지한 모습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아주 순간의 눈길만 주었을 뿐 이내 다시 몰입한다. ㅋㅋ 구여운 녀석덜.

 

 

광장에서 벗어나 해협 쪽으로 나가자 멋진 구식 자동차가 반겨준다. 놀랍다. 40~50년대에나 나왔을 이 멋진 자동차가 아직도 건재하다니. 가능 하다면 한 대 들여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동차 수집광이었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 돌아온다면 그도 군침을 흘렸을게다. 얼마 정도면 살 수 있을까.

 

 

차량이 적잖이 다니는 곳이라 구식 자동차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바닷가 도로로 나와 봤다.

 

 

적지 않은 스피드로 달리는 차량을 향해 좋은 배경과 순간을 포착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너무 빠르거나 늦거나... 막카메라 잡이가 오죽하랴.

 

 

 

 

근육질의 육체와 해부학의 정확한 비율을 가진 포세이돈 대리석 동상이 바닷가에 배치되어 멋지게 자리잡았다.

 

 

 

 

구식 자동차들은 봐도 봐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깨끗하게 보존된 근육질의(?) 자동차만 보면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산 프란시스코 성당. 안가볼 수 없지.

 

 

성 프란체스코 동상.

 

 

성당입구. 식민지풍의 교회 치고는 무척 아름답다.

 

 

기둥과 천장을 보면 고딕양식이 많이 차용됐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자면 고딕양식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게 다양한 방식이 차용되었다.

 

 

회당 안쪽으로 들어가면 중정이 있고 중정의 계단을 통해 상층으로 올라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아름다운 아바나 시내를 내다 보며 촬영에 여념이 없는 관광객들.

 

 

난 계속 올라간다.

 

 

 

 

올라가다 보면 종이 여러개 설치되어 있다. 나름의 용도가 있었던걸까.

 

 

올라갈 수 있는 마지막 층까지 올라가 내려다 보면 탁트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중국인 커플과 교환 촬영함.

 

 

3D 촬영한 시내 일부.

 

 

교회광장.

 

 

바닷가를 내다 보는 고전적인 건물을이 고풍스럽게 배치되어 보는 이를 사로 잡는다.

 

 

행위예술가인 줄 알았다. 이 번엔 진짜 동상이다. 뜬금 없이 이게 왜 여기 서서 사람들의 지레짐작을 속이는지 모르겠다. 아닌줄 알았더니 진짜고, 진짠 줄 알았더니 아니고... ㅡ,.ㅡ; 돈 안줘도 되니 그건 좋다.

 

 

 

 

럼박물관에도 발도장을 찍어봤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아치형의 기둥과 사각 중정부터 보인다.

 

 

아바나 럼의 대명사 아바나 클럽의 로고.

 

 

바로 왼쪽에는 매장이 있다. 매장에 들어가면 당연히 럼주만 잔뜩 진열되어 있다.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유심히 살펴본다. 물론 영업이다. 이 곳을 나와 2층으로 올라가려니 표를 사고 안내를 받아 단체로 올라가야 한단다. 표값을 물어봤다. 7쿡이나 한다. 맥주박물관이라면 모를까 난 럼에 그 돈 내고 둘러볼 만큼 관심있진 않다. 포기하고 나오려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이 시기는 비가 자주 온다 해서 미리 우산은 준비했지만 빗속을 다니기 보단 일단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려 봤다. 입구 계단턱에 앉아 있다 보니 여러대의 관광버스가 와 많은 관광객들을 뱉어내고 다시 삼켜 어디론가 가버린다. 그럴만한 곳은 아닌듯한데...

 

 

비가 어느정도 잦아들면서 우산을 펴들고 다시 나섰다. 이번엔 비에하 광장으로 가봤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나는 한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잡았다. 목이 타서 콜라부터 주문했더니 없단다. 이 더운 나라에서 콜라를 안팔면 뭘파냐. 호빵?

 

 

다른 카페로 가기로 작정했다. 이 광장에 면한 카페는 많다. 카메라와 가방, 그리고 삼각대를 챙기려는데

 

 

한 남자가 내게 말도 안되는 캐리커처를 내밀었다. 나하고 닮기는 커녕 억지로 갖다 뭍이자면 나의 룸메이트였던 배신광군이 오히려 닮은 것 같다. 모자가 닮았다면 할 말 없다. 돌려줄까 하다가 기껏 그려 내밀었는데 안받는 것도 도리는 아닌것 같아 1쿡을 팁으로 줬다. 더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무척 고마워 한다. 이름을 묻길래 스펠링(Yoon)까지 알려 줬는데 Woon은 또 뭐냐? ㅠㅠ 내가 운씨냐?

 

 

광장 한켠에는 세련된 닭탄녀 동상이 있다. 닭 위에 앉는 그녀가 포크를 들고 있는건 무슨 의미냐. 아쉬우면 타고 다니고 배고프면 잡아먹냐?  뭔가 깊은 뜻은 있겠지. 이 곳에서 느낀 거지만 이곳의 예술 작품들은 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임을 알 수있다. 그녀의 몸에선 살냄새가 나고 닭은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 같이 살아있다. 바닷가에서 본 포세이돈을 봐도 그렇고 이 동상을 봐도 그렇고

 

 

그 광장 반대편에 세워진 이 전위적인 작품도 우아함을 지니고 있어 눈을 대는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다.

 

 

어쨌든 타는듯한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카페로 옮겨 앉았다. 광장 모서리에 면한 카페로 야외에 앉자면 골목인데 바로 그 모서리 부분에 앉아 콜라를 주문했다. 앉고 보니 그 곳은 사람이 많이 오고가는 통에 좀 어수선했다. 약간 한적한 곳으로 자릴 옮겼다. 기다려도 목은 타는데 콜라가 올 조짐이 안보인다.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몇 명의 직원 중 근처를 지나는 직원 하나를 불러 콜라를 달라고 다시 주문했다. 그가 이상한 질문읗 했다.

"어디 있다 오신겁니까?"

뜬금없는 질문이라 되물었다

"뭐라고요?"

"어디에 있다가 오신거냐고요."

처음 온 손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질문이어서 또 되물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네요."

딴에는 어이가 없었는지 동료 직원과 마주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주고 받았다. 

"영어 할 줄 아세요?"

허얼~ 영어 실력도 변변치 않은 친구가 별 희한한 질문을 내게 한다.

"영어 할 줄 알지만 당신이 이야기하는 의미를 알지 못하겠군요. 어디 있다가 왔느냐뇨? 방금 조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이리로 옮겼는데 그걸 묻는겁니까?"

그는 손사래를 치며

"아뇨 됐습니다. "

'뭐임? ㅡ,.ㅡ;'

 어쨌든 목이 몹시 타던 차여서 순식간에 2/3는 비웠다. 그래도 앉아서 계속 휴식 좀 취하려면 음료는 좀 남겨 놔야...

 

 

길 오가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어 이 곳에서 한동안 쉬다 그래도 더위에 지쳐 숙소로 발길을 잡았다. 혹독하게 더운 날씨에 더 돌아다닐 전의를 상실하고 나니 샤워부터 하고 에어컨 바람 맞으며 타잔놀이 하는것이 이 때 현재로선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었다.

 

 

다른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곳 아바나에서는 가는 곳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은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 골목 안 한 카페테리아 입구 좌우로 남녀가 앉은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양해를 구하기 보단 카메라부터 들이댔다.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우측에 앉아 있던 남자가 무례한 나의 행동에 어이없어 하는 모습이 잡혔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당신들이 앉아있는 모습과 배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허락없이 사진 찍어 죄송합니다. 불쾌하셨다면 지우겠지만 사진이 마음에 들어 갖고 싶습니다."

말을 들은 두 남녀는 이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캄솨.

 

 

쿠바의 거리는 쓰레기 한 점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집들은 낡았으되 정리되어 있고 거리는 깨끗하고 사람들은 좋은 옷은 아니어도 깨끗한 옷차림이었으며 아름답게 꾸미도록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역력히 보여지고 느껴진다.

 

 

돌아가 보니 하루 일정을 마친 배신광군이 돌아와 있었다. 내가 혼자 다니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일행이 있으면 서로 맞춰야 하고 이동할 때마다 서로를 찾고 챙겨야 하는 일이 수시로 발생한다. 이 날 저녁 재즈공연에 대한 신광군과의 공통 관심사는 나로 하여금 룸메이트와 함께 나서도록 했다. 샤워를 하고 쉰 뒤 저녁식사와  재즈공연 관람을 위해 숙소를 나섰다. 공연장으로 가기 위해 저렴한 교통편에 관한 정보는 친절한 카사 주인 오달리스 아주머니한테서 얻었다. 중앙공원에 면해 있는 잉글레리아 호텔 옆길로 가면 택시가 승강장 앞에서 속도를 한껏 줄이면 승강장에서 택시를 합승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행선지를 부른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곳은 아바나에서 가장 유명한 재즈 카페가 두 군데나 있는 아바나 리브레 호텔 근처. 한 사내가 어딜 가느냐고 묻는다. 목적지를 말하니 자기와는 방향이 다르다며 어디서 왔냐는 둥 외국인에 호기심을 갖는 이들이 흔히 하는 뻔하고 상투적인 질문들을 몇 가지 해왔다. 그가 다시 자기 일에 충실하기 위해 택시를 잡던 중 우릴 불렀다. 어이! 친구들! 여기 아바나 리브레 간대!

우리는 본능처럼 달려가 택시에 타면서도 지나친 친절에 우리가 뭔가 속는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함께 탄 현지인 승객들을 보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탄 택시도 50년대의 멋진 근육질 세단이었다. 내릴때는 모두 1쿡에 해당하는 돈을 냈다.  

 

 

우리도 1쿡을 내고 호텔 아바나 리브레에서 하차해 식사할 곳부터 찾았다. 마침 눈에 띠는 레스토랑. 밖에서 보기만 해도 훌륭해 보이는 식당이었다.

 

 

 

 

안에 들어가니 어디선가 받은 상과 인증서 같은 것들이 잔뜩 벽에 걸려 자신들의 이력을 과시했다.

 

 

우리는 음식을 주문하고 맥주부터 마셨다.

 

 

전식으로 주문해 나온 것은 문어.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는데 바게뜨 빵에 얇게 저민 문어가 표면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서늘한 문어살과 바게뜨가 무척 잘어울리는 고급스러운 전식 요리였다.

 

 

본요리는 쇠고기였는데 나온 모양새를 보고 실망했다. 스테이크일 줄 알았던 이 고기는 우리네 불고기와 비슷한데 차이점이라면 요리에 육수는 덜 흥건하고 덜 달고 덜 짜고 간장의 맛과 향이 덜하기만 했지 불고기 맛에 흡사했던 이 쇠고기 요리에 나는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적이 실망할 수 밖에. 하지만 불고기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획기적인 요리였을테니 나에겐 복불복에 불운이 닥친 셈이다. ㅡ,.ㅡ;

 

 

디저트 케익은 90점을 줄만했다. 계산해 보니 팁 포함 24쿡(24달러 정도)가 들었다. 고급 레스토랑이긴 했지만 우리 기준엔 그닥 크게 비싼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곳 쿠바의 물가를 보자면 엄청 비싼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이 곳이 아바나에서 유명한 재즈클럽 라 조라 이 엘 퀘르보. 레스토랑에서 디저트가 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어 10시가 조금 넘어 달려왔다. 아래 사진의 전화 부스처럼 생긴 곳이 바로 이 재즈클럽이었다. 우린 전화부스처럼 생긴 이 것이 그냥 조형물일거라고 생각했다. 그 바로 뒷편에 사람들이 줄을 늘어서 있었다. 공연을 기다리느냐 물었더니 그렇단다. 10시에 문열지 않느냐고 물으니 잘 알아듣지 못했다. 20분을 넘게 기다려도 줄을 늘어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입구에 한 여자가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신광군이 근처 다른 재즈클럽이 어디에 있는지 함 보고 오겠다고 하고 가더니 돌아올 줄을 몰랐다. 입장시키면 기다릴 용의는 없었다. 이런 땐 각자 움직일 수 밖에. 신광군이 위치를 확인하고자 했던 다른 재즈클럽의 위치를 확인하고 늦게 돌아온 이유는 그 곳에서 가까운 말레콘을 보고 오기 위해서였다나.  

 

 

아무리 생각해도 40분이 다되도록 입장을 시키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주변을 둘러봤다. 아뿔싸. 전화부스처럼 생긴 조형물은 조형물이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입구이고 지하로 통하는 출입문이었다. 아! 젠장. 우리는 40분이나 밖에서 공연을 놓치고 아까운 시간을 엉뚱한 다른 곳의 입구에서 허비하고 있었다. 아직도 이들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관심도 없다. 다만 이들이 우리의 멍청한 짓에 한 몫 단단히 했다는 점 말고는. ㅡ,.ㅡ; 

 

 

공연 수준은 대단했다. 키보드 주자와 베이스 주자는 알고보니 부부였다. 신들지 않은 이가 없었다. 노래까지 부르며 건반악기를 즉흥으로 연주해 가며 스캣까지 즉흥으로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베이스 주자는 베이스를 치다 말고 수시로 자신의 앞에 놓인 퍼쿠션을 두드려 대는데 퍼쿠션은 베이스 주자의 알바가 아닌 제 2의 본업이었던 셈이다. 이 두사람에 놀라 자빠질 판국에 드럼 솔로 순서가 되자 드러머는 미친연주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니 나는 거의 미치기 직전까지의 흥분과 무아경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지저귀는듯한 드러밍으로 맥스 로치를 연상시키는가 하면 막힘없이 밀어 붙일때는 아트 블레이키를 연상시키는 이 드러머는 관객의 흥분과 갈채를 한순간에 독차지했다. 멜로디가 중심이 되는 미국의 재즈와 달리 아프로쿠반 재즈는 멜로디보다는 강렬한 비트와 리듬이 더욱 중시되는 경향이 있다. 멜로디 파트를 맡은 섹소폰 주자는 역량이 약해서가 아니라 건반(재즈에서 건반악기는 멜로디 파트가 아닌 리듬 파트로 간주된다), 베이스, 드럼의 리듬파트에 이미 주도권을 내놓은 것이 존재감을 약해 보이게 만들었지만 이것이 쿠바 재즈의 본모습이라고 보는 것이 옳으리라 본다. 11시30분이 되자 1차 공연이 종료되었다. 앞에서 놓친 40분간의 공연이 못내 억울하고 아쉬울 정도로 공연은 대단히 훌륭했다.

 

 

열악한 음질의 이 동영상을 보고 이들 음악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실수는 절대 하지 말아주길 간절히 부탁하는바임.

 

12시가 되어 다시 벌어진 이들의 2부 공연에서는 퓨전제즈의 냄새가 강하게 난 탓에 나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고 앞서 놓친 40분의 공연이 역시 간절하게 아쉬웠다. 신광군과 나는 다시 같이 할 기회는 없겠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자리를 일어났다. 아래 사진은 1부 공연 마지막 부분에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건반주자의 요리에 따라 주물려지는 관객들이 열광하는 모습.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 흥분고하 열광의 현장에 동참한다.

 

 

12시가 갓넘었지만 택시를 잡기는 적잖이 어려웠다. 우리네 주말 음주후 서울시내 풍경과 비슷했다.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20분 가까운 노력 끝에 간신히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운 시간은 새벽 1시 20분. 이제 잠깐 자고 새벽 4시까지 국내선 공항으로 가 산티아고 데 쿠바행 비행기를 탈 참이었다. 잠은 반 포기나 다름없었다. 

 

 

이상하게도 샤워할 때 물은 뜨겁기 짝이 없어 가뜨기나 더위에 지친 몸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면 몸의 물기를 말리고 나면 물온도에 한껏 올라간 체온이 스스로를 방어하느라 쏟아내는 땀을 쉬지 않고 쏟아내고 나는 닦아내기에 바빴다. 주방 위에 큼직한 물탱크 네 개를 보고 물부족을 대비해 미리 받아 둔 물이 낮동안 열기에 덥혀지나보다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보일러 때문이었다. 이들은 이 혹독한 더위 속에서 살면서도 샤워는 더운물로 하는지 가는 곳마다 미리 말을 하지 않으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온수버튼을 올려놓는 것이었다. 어쨌는 다음날 나는 어떤 혹독한 고생에 시달릴지도 모른 채 잠깐의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