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6 쿠바

카리브해의 열기와 음악 속으로, 쿠바여행 3(아바나-->산티아고 데 쿠바)

코렐리 2016. 9. 30. 16:12

2016.9.11(일)

전 날 잠자리에 들기 전 미리 짐을 싸 둔 덕에 새벽 세시에 일어나 세시반에 숙소를 나설 수 있었다. 잠자는 룸메이트 신광군의 곤한 잠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나가면 그가 숙소의 문을 모두 잠가야 했다. 방문을 나가면 응접실이 나오는데 이 숙소에는 이 응접실에 면한 방이 하나 더 있었다. 어쨌든 방문을 열고 나가면 응접실에 면한 현관문이 마주보인다.  이 숙소의 문은 현관 출입문만 해도 2중으로 되어 있고 이걸 나가면 두 집이 함께 쓰는 또 하나의 현관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아파트 복도로 나가자면 또 하나의 현관문이 가로막고 있다. 이 현관문 모두 다 안에서 열든 잠그든 밖에서 열든 잠그든 열쇄를 꽂아서 열고 잠가야 했다. 한국에선 현관이 이중 삼중으로 된 경우도 물론 없거니와 안쪽에선 배꼽단추를 누르거나 꼭지를 돌려 간단히 잠그는데 이건 도대체 뭐냐. 아 불편해. 모두 4개의 열쇄를 사용하는데 한 번 나가자고 잠긴 문을 여는 과정에서 3번, 나간 뒤 다시 그 문을 잠그는데 네 번 열쇄를 사용해야 했다. 어느 열쇄가 어느 열쇄인지는 적응이 될 때 까지 한 번씩 다 찔러봐야 했다. ㅡ,.ㅡ; 밖에서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쳐야 했다.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불편한 시스템이다.  전 날 오달리스 아줌니가 신신당부한 대로 내가 사용했던 열쇄를 주인아주머니에게 반납하기 위해 신광군에게 맡겼고, 그는 내가 나간 문을 다시 잠가야 했으니 그는 잠을 잠깐이지만 잠을 포기해야 했다. 신광군에게 작별인사를 마치고 까뻬돌리오 근처로 나가 바로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가 영어를 잘 하지 못했다. 

"산티아고 데 쿠바로 가야합니다. 국내선 공항으로 갑시다. 내 알기로 국내선 청사는 제 2 청사인걸로 압니다만...."

그는 염려 붙들어 매라는 시늉을 했다. 새벽 네시가 되어 도착하고 보니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첫날 내가 아바나 도착했을 때의 그 청사였다.

"이게 2청사 맞아요?"

그는 알아들은건지 못알아 들은건지 연신 고개만 끄덕였지만 왠지 미덥지는 않았다. 25쿡을 주고 짐을 챙겨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국제선에 국내선 공항청사가 붙어있는 공항을 본 적이 있어 나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국내선 부스는 보이지 않았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으니 내가 있는 곳은 1청사이고 2청사는 여기서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단다. 으째 그 택시기사 미덥지가 않더라니... 헐. 까짓 걸어가면 되지 않을까 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그는 걸어서는 못간다고 했다.

청사 2층에서 다시 1층으로 내려가 그 택시기사가 손님을 태우기 위해 아직도 있을까 싶어 나가봤지만 그는 이미 없었다. 택시를 타려고 다른 택시에 요금을 물으니 10쿡이나 내란다. 헐. 나는 5쿡을 제시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이제 막 도착하는 택시도 10쿡. 5쿡에 협상을 제시하니 타란다. 헐. 왜 이리도 먼거냐. 걷겠다고 했다간 엄청 늦었을게 틀림없었다. 택시타고 가며 감으로 느낀건 직선거리로 따지자면 서로 멀리 떨어진건 아니지만 1청사와 2청사 사이에는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어 이를 빙 돌아서 간 것 같았다. 젠장 택시비로 25달러에 5달러나 더 쓴 셈이다.

국내선에 도착한 나는 산티아고 데 쿠바로 가는 항공권 부스가 열리길 기다렸지만 여섯시에 출발예정인 항공편의 발권부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열리지 않았다. 새벽 5시가 넘어서야 Information Center로 가 어떻게 된거냐고 물으니 항공편이 지연됐다는데 저녁 7시나 돼야 출발하는 것 같다고 했다. 어지간한 나도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헉. 망연자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는 한 사무실을 가리키며 그리로 가서 자세한 걸 알아보라고 알려줬다. 가서 보니 국영항공사 직원들인것 같은데 그 작은 사무실에 여섯명 정도나 되는 사람들이 하는 일도 없이 앉아 있었다. 저녁 7시로 변경되었으니 5시 반쯤 오란다. 미안한 기색도 전혀 없다. 사회주의 국가의 국영항공사에 뭘 더 따지리. 자본주의식으로 따져봐야 사회주의적 대답만 나올텐데 ㅡ,.ㅡ;

 

그야말로 황당했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택시비 30달러나 썼는데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25달러를 써야 하고 저녁이 되면 다시 돌아오기 위해 25달러를 또 써야 했다. 이 날 택시비로 날리는 돈만 80달러에 이른다. 이게 뭐냐. ㅠㅠ 그런데 그보다 더 황당한 시추에이션이 발생했다. 이 시간에 이 외진 국내선 청사에 들어오는 택시는 없었다. 이따금 배웅 나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의 차량에 염치없이 붙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엔 내 낯짝이 너무 얇았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택시 콜이 가능한지 물었더니 친절하게도 한 여직원이 여러차례 콜택시 호출을 시도해 봤다. 그녀가 가진 서너개의 전화번호는 신호만 갔지 받지를 않았다. 모두가 자는 모양이었다. 헐. 나를 위한 과외(?)의 봉사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한 뒤 다시 공항청사 밖으로 나와 한참의 기다림 끝에 간신히 잡은 택시를 타고 잠도 자지 못한 피곤한 몸으로 다시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황당한 문제는 또 한 번 발생했다. 숙소로 돌아와 배신광군을 깨워야 하는데 쉬지 않고 덜그덕거리며 바람을 내 뿜는 낡은 에어컨을 켜고 자는 그를 깨울 방법은 없었다. 현관이 2중으로 되어 있어 바깥쪽 현관문은 두드려 봐야 잠자는 배신광군을 깨운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초인종도 없다. 밖에서 불러 깨우기 위해 다시 나가봤다. 아파트 2층인 숙소는 무척 높았다. 새벽 6시 10분이었다. 불켜진 집이 거의 없는 새벽이어서 너무 크게 소리지르지는 못하고 소심하게 몇 번 불러봤지만 반응은 없었다. 작은 돌을 주워다 발코니 문을 향해 한참동안 던져봤다. 반응이 여전히 없다. 아마도 작은 돌이 창에 부딪혀 내는 미약한 소리는 낡을대로 낡은 에어컨디션의 잡음에 묻히는 모양이었다. ㅠㅠ 이 시간에 어디 다른 곳에 가서 숙소를 구해볼까도 싶었지만 이른 새벽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신광군이 전 날 신청해 둔 비냘레스 왕복 패키지에 참가하기 위해 일찌감치 일어나야 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혹독한 더위 속에 졸리운 이 상황이 너무도 힘들었다.  

 

일단 돌아다녀 보자. 가진 것은 25리터 들이 백팩 하나와 카메라가 전부였지만 피곤한 이 상황에선 엄청 큰 짐이었다. 공원으로 나가 하릴없이 걷다가

 

까뻬돌리오 뒤쪽으로도 넘어가 봤다. 처음 가고자 했던 호아키나 할머니란 분이 운영한다는 카사를 찾아 들어갈까도 생각했었다. 그러기 보단 조금 더 기다리는게 나을 것 같았다.

 

다시 돌아와 봤다. 불이 켜져 있었다. 내가 돌아다니다 온 사이 이미 나간것일까 아니면 희망의 전조인가 궁금해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바깥에서도 불러봤고 현관으로 가 문을 두드려도 보았지만 역시 반응이 없었다. 땀이 철철 흐르는 이 더위를 더 이상 견딜수가 없어 가방에서 반바지를 꺼내 갈아입으면서도 누군가 나오면 나는 낮선 변태 외국인이 될 판이었다. 옷을 갈아입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지만 누군가 나를 변태로 오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 시간이 엄청 길게 느껴지도록 나의 뇌를 향해 열심히 사기치고 있었다.

바지를 벗고 반바지를 들고 펼쳐 앞뒤를 구분한 뒤 털어 입기 위해 허리를 굽힌다. 한 소녀가 문을 열고 나온다. 갑지기 비명을 지르며 다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꺄악~ 엄마~! 어떤 미친 사람이 옷벗고 날 쳐다봤어." 놀란 아빠가 자다말고 뛰어나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나는 당황해서 서둘러 반바리를 입으려고 하지만 발이 바지 입구에 자꾸 걸리더니 발이 자리를 찾이 못하고 엊갈린 구멍으로 들어가 버린다. 반바지를 다시 벗으려 하는데 서두르기만 할 뿐 바지가 뒤집어진다. 안에서 소녀가 잠도 덜 깬 아빠에게 호들갑을 떨며 뭐라고뭐라고 경악을 하며 설명한다. 몽둥이를 든 아빠가 밖으로 나온다. 엄마도 따라 나온다. 몽둥이를 치켜들고 나가라고 소리친다. 나는 바지를 벗은채로 바쁘게 사연을 설명한다. 그는 영어를 모른다. 그는 나를 이 곳에서 쫓아내고 두 번 다시 자신의 딸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싶어 한다. 말은 안통한다. 소란을 들은 이웃집 사람들이 뭔일인가 하나 둘 나와본다. 모두가 짐승 보듯이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 가운데 반바지를 입는다. 개망신의 시추에이션이지만 여기서 쫓겨나가면 나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한다. 아 끔찍해. 서둘러 반바지로 갈아입으며 했던 생각이다.

서둘러 갈아입는 동안 머릿곳에 스쳐간 걱정이었다. 현관 밖으로 나온 사람은 다행이도 없었다. 갈아입고 나니 좀 살만했다. 현관 앞에 쪼그려 앉아 기다려 보기로 했다. 드디어 안쪽 현관문을 열고 닫는 소리가 들렸다. 이 때 시간이 7시 30분. 이 때 밖에서의 1시간20분은 다섯 시간과도 같았다. 드디어 신광군이 바깥쪽 현관문을 열자마자 발견한 나를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 이렇게 까지 반가워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웬일로 돌아오셨어요?"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있었던 일을 주워 섬기다 보니 그는 시간이 촉박해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없다며 문을 다시 열어주고 내가 맡겼던 열쇄를 돌려 준 뒤 숙소를 나갔다. 에어컨 켜고 뜨거운 물이었지만(이 때 까지도 몰랐다. 이 날 아침에 오달리스 아주머니에게 물어 보고서야 보일러가 켜져 있다는 사실을...) 샤워를 하고 나오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주머니에게 전화해 신광군은 나갔고 나는 공항에 다녀온 사연을 이야기하고 아침 9시에 아침식사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잠깐 잤다. 조금 후 일어나니 반가운 아침식사가 준비되었다. 아침식사 후 아주머니에게 샤워 물이 너무 뜨거운데 물을 혹시 덥히는지를 그제서야 물었다. 아주머니는 방으로 날 데려가더니 스위치가 있다며 그제서야 보일러를 껐다. ㅡ,.ㅡ; 그제서야 말을 하지 않으면 온수로 샤워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이한 것은 어느 꼭지를 열어도 똑같이 온수가 나왔다. 쿠바 사람들은 그 더운 날씨에도 샤워는 더운물로 하는 모양이었다. 아 젠장 샤워 하면서 물 온도가 높다고 궁시렁거린 나나 신광군이나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 뒤로는 가는 곳마다 보일러 스위치를 찾아내 꺼야 했다. 생각해 보니 이 날이 일요일. 가까운 곳에 카테드랄이 있으니 혹시나 아실까 몰라 미사 시간에 대한 정보가 있는지 물었지만 아주머닌 카톨릭 교도가 아니었던 모양.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갈 준비를 하던 중 2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이 집의 아들이 여행짐을 들고 들어온다. 옆방에 한국인 처자 투숙객이 뒤이어 들어와 잠깐 인사를 나누었다. 이 집 아들과는 대화할 기회가 없다가 나중에 트리니다드에서 아바나로 돌아올 때 방 예약 다시 하느라 전화했을때야 깨달았는데 나름대로 구사하는 영어가 과연 영어인지 읫김이 들 정도로 알아듣기 어려웠다. 어쨌든 그건 나중 얘기고.

 

아침식사 후 슬슬 걸어서 카테드랄로 가봤다. 미사 시간은 10시 30분에 있단다.

 

 

카테드랄 앞의 광장이 아름답다. 광장이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는 그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이 모두 고풍스러운 건물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도 들어가 앉았다.

 

미사 참례객 보다는 구경 온 관광객이 더 많았다.

 

내부 장식물과 그림은 가장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페루 쿠스코의 카테드랄에서 실망했던 예술작품들 보다 몇 수는 위의 수준이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상도 볼 수 있다.

 

 

제단.

 

10시반이 되자 복사들을 앞세운 (아마도) 주교의 입장이 이어지고 곧 미사가 집전되었다.

 

미사 참례 후 12:00쯤 되어 환전하러 다시 갔다.

 

환전소 근처 공원의 작품. 주변 경관과 정말 잘어울리는 작품이다. 이 곳을 지나 환전소로 가 줄 끝에 섰더니 내가 선 자리가 끝이 아니고 그늘로 찾아가느라고 줄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진 곳을 바로 앞사람이 가리키며 알려줬다. 망연자실. 그 끝에 한국인 처자가 서 있었다. 아침에 잠깐 인사를 나눈 그 처자인 것 같았지만 아는척을 망설인 이유는 복장이 잔뜩 달라진데다 그 때와는 달리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확신이 없었다.

"오늘 아침 제 옆방에 오신 분 아니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맞군.

줄이 줄어들 때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처자의 제의로 점심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이름이 김슬기라는 이 처자는 병원의 약사였다. 한 레스토랑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10쿡짜리 바닷가제 코스가 인기가 있어서인지 이 집에도 그 메뉴가 있었다. 또 주문했다. 이 레스토랑의 뮤지션들은 전 날 점심때 갔었던 그 곳에서 출연했던 여성 뮤지션들보다 몇 수는 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재즈를 제외한 손 음악만 따지면 쿠바에서 본 중 최상의 실력을 갖춘 뮤지션들이기도 했다.

 

길 가던 꼬마 손님이 흥에 이기지 못하고 들어와 그 앞에서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어린 매니아의 모습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지만 그 아비로 보이는 남자는 당황한 채 아들의 돌발행동을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데리고 나갔다간 울상이 될 판이어서 그도 역시 어쩔줄을 몰라했다. ㅎㅎㅎ 식사를 마친 뒤 슬기군은 하루 일정을 시작했고 나는 식사후 슬기군과 함께 마지막에 나온 모히토를 마시며 음악을 즐긴 뒤 15:00쯤 헤어져 바로 숙소로 돌아와 또 잤다.

 

다시 일어나 짐을 챙겨 다시 숙소를 나섰다. 신광군에게 온수 급탕 스위치 위치를 알려주고 이제 찬 물로 샤워하라는 쪽지를 남겨두고 나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간 맞춰 공항 국내선 청사로 갔다. 물론 멋진 근육질 구형 자동차를 타고. 

 

티케팅 속도가 느려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17:50쯤 발급받은 항공권.

 

기다림의 시간이 지루하기만 하다.

 

19:25으로 예정된 항공기는 결국 또 지연되어 밤 21:00는 되어서야 이륙했다. ㅠㅠ 지겨워. 하루를 완전히 날려먹은 셈이다.

 

탑승이 시작되자 승객들이 줄을 섰다. 나는 줄서는게 싫어 의자에 앉아 있다가 끝물에 열 꽁무니에 붙었지만 항공기로 가는 버스 탑승도 계속 지연되었다. 줄 맨 뒤의 흑인 처자와 스페인계 남자 연인의 애정행각은 한국의 젊은 안하무인 커플들 못지 않았다. 나는 국내나 국외나 바퀴벌레 커플들의 애정행각은 하나도 안부럽다. 국내가 훨씬 더 더 심하다. 외국에서 이런 바퀴벌레 커플은 정말 처음 본다. 그래~ 좋아 죽거나 말거나... 그러는 인간들 치고 결혼하는 커플도 드물더라. 보고 싶지도 않고. 신고 있는 킬힐이 이색적이니 그거 하난 눈에 들어온다. 킬힐 아니랄까봐 굽에는 해골이 그려져 있다. 나는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다시 이 커플을 만났다. 다음날 저녁 찾아간 카사 델 라 뮤지카에 출연하기 위해 이들도 산티아고로 가는 중이었다.

 

산티아고 데 쿠바에 도착한 시간은 21:30. 캄보디아 이후 공항 활주로상에서 항공기로부터 내려 청사로 걸어가는 건 처음이다. 안전의식 완전 꽝이군.

 

택시를 잡았다. 15쿡이나 부른다. 공항에서 시내가 가까운걸로 아는데. 협상하기도 귀찮다. 그냥 탔다.

 

주소를 보여주고 찾아간 카사. 아래 사진은 찾아간 카사의 주방 겸 식당. 무뚝뚝한 듯 하지만 마음씨 좋은 주인장 노인이 여권을 받아 숙박 일지를 꼼꼼하게 적는다. 이 날 이 카사의 게스트는 나 한사람이 전부.

 

방이 무척 널찍하다. 이 방엔 3개의 침대가 놓여져 있다. 널찍한 방 혼자 쓰게 됐다고 어지간히 좋아했지만 좋아할 일이 아님은 나중에야 알게 됐으니 그걸 알게 된 뒤에는 괴로운 밤을 보내야 했다.

 

저녁을 먹지 못했으니 짐만 대충 풀고 나갔다. 일단 세스뻬데스공원부터 가봤다. 중심지이니 만큼 좋은 식당들이 면해 있을 것 같았지만 이 곳엔 카테드랄, 벨라스케스의 집, 시청 등의 공공시설 뿐이었다.

 

운치있어 보이는 골목이 있어 걸어봤다. 이 곳은 호세 아 사꼬 거리. 적당한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찾는게 목적이었지만 대부분 문을 닫았고 아직 안닫았으면 카페테리아나 커피숍이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할 곳들은 아니었다.

 

걷다 보니 호세 아 사꼬 거리도 끝나고 돌로레스 광장까지 거슬러 올라갔지만 태반이 문을 닫았고 열려 있는 곳은 커피숍이나 아이스크림 가게 등이고 나머진 그나마 맛없어 보이는 샌드위치 등 밖엔 눈에 띠지 않았다. 제대로 된 식사와 맥주. 그게 그렇게 큰 소망인지 의아해지기 시작했다.

 

돌로레스 광장 주변에도 먹을 만한 곳은 눈에 띠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다 보니 오히려 그 근방에 식당다워 보이는 곳이 눈에 띠었다.

 

이 곳에서 맥주와

 

새우요릴 시켜 먹었다. 정말이지 밥같은 밥이었다. 이 곳에서 밥을 먹고 있다 보니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레스토랑 내부 옆문 앞에 줄을 지어 섰다. 웬일인가 직원에게 물어보니 나이트클럽이란다. 이 식당은 나이트클럽과 함께 운영하는 부록이었던 셈이다. 공간에 비해 손님이 많아서인지 놀던 손님이 나가면 나간 만큼만 들여 보냈다. 헐. 돈내고 들어가는것도 이렇게 고단해서야 원. 어쨌든 이 레스토랑의 음식은 맛도 비교적 좋은데다 값도 저렴해서 이 곳에서 먹은 새우요리는 5쿡이었던가. 식사 후 카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에어컨부터 틀고 샤워하고 나왔지만 그 큰 방에 작아빠진 에어컨은 미적지근하기 짝이 없는데다 차가운 바람이 아닌 미지근한 바람만 나왔다. 자다 보면 시원해 지겠지 하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곤히 주무시는 카사 주인들을 깨울 수도 없고 더워서 잠은 오지 않고 미치기 직전이었다. 아 젠장 아침까지 어떻게 기다리냐. 이 날 밤은 너무나도 길었다. 쿠바에서 큰 방은 금물이란 것도 이 때에야 깨달았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