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6 쿠바

카리브해의 열기와 음악 속으로, 쿠바여행 0 (전체요약)

코렐리 2016. 9. 22. 10:03

한 두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이 가능한 나라는 물론 없겠지만, 이 곳 쿠바만큼 어려운 나라도 다시 없으리란 생각은 내게 있어 거의 확신에 가깝다.

현지에서 묵으며 음악을 찾아다닌 날은 9일간이었고 방문한 도시는 3개 도시에 불과했지만 이 곳에서 받은 인상은 강렬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하다. 가는 곳마다 넘쳐나는 음악. 강렬한 비트와 리듬 속에 멜로디 마져 파묻이는 독특한 음악이 쿠바의 아이콘이라 하면 심한 비약이 될까.

심지어 공원이나 길거리의 악사들, 구걸을 위해 철사로 양동이를 두드리며 노래하는 걸인의 노래도 예술적 가치는 간과되기 어려운 놀라운 땅이바로 쿠바다. 식민지풍의 건물과 거리, 정열적인 사람들, 그리고 뜨겁고도 환상적인 카리브해도 좋지만 이 번 쿠바를 찾은 나의 첫번째 목적은 쿠바의 음악인 손과 아프로쿠반 재즈.

꼼빠이 세군도의 카리스마가 작렬하던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음악이 록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에 의해 소개되어 국제적인 갈채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에겐 콴타나메라 정도의 나라로 기억할 뿐이었다. 하지만 쿠바의 음악을 전부터 알던 사람들에겐 이제서야 알려진 그들의 그 카리스마 마저도 새삼스럽다.

 

밤늦게 아바나에 도착해 숙소에 들어 잠이나 자기 빠쁘던 밤이 지나고 아침 먹고 또 자고 다시 일어난 게으른 오후.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연주하는 네 명의 여성뮤지션들의 음악이 나의 발길을 잡았다. 나 뿐 아니라 식당 입구에 모여드는 인파는 발을 떼지 못했다. 갑자기 손님도 많아진다. 마법처럼 끌려 들어가 자리를 잡은 내가 즉석에서 랍스터로 점심을 해결하도록 결정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이들이었다.

 

공연도 끝나고 곱창이 거만해진 나른한 오후. 가는 곳마다 눈에 띠는 50~60년대의 자동차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쿠바를 차지하기 위한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긴 미국이 유흥지와 경제침탈지 정도로 여기던 시절 들여온 차들이 세계적인 단종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놀라운 관리 덕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어찌 눈을 대지 않으리.

 

쿠바 럼(Rum)의 명가 아바나 클럽의 박물관. 

 

비에하 광장 야외 카페에 앉아 있다 보니 누군가 허락 없이 그려 내민 캐리커처. 나하고 닮았나? 헐. 닮은거라곤 쓰고 있던 모자 뿐. 그래 기분이다. 1달러 줌.

 

쿠바에는 환상적인 낙서(?)가 많다.

 

리마에서 페루의 식민지 시절 건축과 미술에 실망했던 나는 이 곳 쿠바의 식민지 건축과 미술이 차원을 달리하는 독창성과 예술성을 겸비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불행이도 국립미술관은 내부 시스템 보수로 마침 문을 열지 않아 깊숙히 들여다 볼 기회는 얻지 못했다. 아바나의 카테드랄(대성당)

 

아바나 비에하 지역의 흔한 형태의 한 공원에 설치된 작품. 돈키호테가 아닌 산초인 것 같다.

 

밤에 찾아간 곳은 아바나의 재즈 명소 라 조라 이 엘 퀘르보(발음 맞나?). 1부에서 멜로디 보다는 리듬에 촛점을 둔 아프로 쿠반 재즈의 진수를 맛보며 흥분한 나는 반 미치는 줄 알았다. 키보드 겸 여성보컬의 즉흥연주와 물흐르는듯 자연스러운 스캣(아무리 들와봐도 계산된 스켓은 아니고 즉흥이었다), 베이스와 퍼쿠션을 오가며 미친듯이 연주하는 가운데 남자는 물론이고 지저귀는듯한 드러밍으로 맥스로치를 연상시키는가 하면 막힘없이 밀어 붙일때는 아트 블레이키를 연상시키는 이 드러머는 미친 연주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멜로디를 맡은 섹소폰 주자는 웬지 이들의 뒤를 받쳐주는 느낌이다. 섹소폰이 넘 약해 보인다. 새벽에 시작된 2부공연은 왜이래? 퓨전냄새나 폴폴 풍기고. 에잉~

 

 

다음날 지나가다 말고 역시 점심을 먹게 만든 또 다른 레스토랑에 출연한 뮤지션들. 이 레스토랑에 이 날 출연한 뮤지션들의 실력은 전날 나를 유혹했던 그 레스토랑의 여성 뮤지션들보다 더 멋지고 실력도 훨씬 뛰어나다. 이들은 이 곳의 고정 출연자들인지 6일간 아바나를 떠나 산티아고와 트리니다드를 돌고 다시 와보니 역시 출연하고 있었음. 어쨌든 여기서 또 랍스터 먹었다. 돌아가면 못먹는 음식이니 지겨울 때까지 먹어볼 심산이었나.

 

산티아고 데 쿠바의 흔한 변두리 주택가. 집도 도로도 낡았지만 깨끗하게 관리하느라 노력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낡았지만 집들은 정돈되어 있고 거리엔 휴지조각 하나 안보인다. 가진 것을 가꾸고 사랑할 줄 아는 이들이다.

 

산티아고 데 쿠바의 아르마스 광장에 면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집. 궁정화가로 명성을 날리던 만큼 방귀깨나 뀌었던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외관은 당시로선 고급건축기법이었던 무어식 건축으로 내부에 들어가 보면 당시의 영화를 들여다 볼 수 있다.

 

국내선 항공편으로 이동한 산티아고 데 쿠바의 첫날 저녁 들른 음악의 명소 카사 델 라 트로바. 이 곳은 찬찬으로 유명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꼼빠이 세군도도 살아 생전에 활동하던 무대였다. 명성만큼이나 출연 뮤지션의 정열적이면서도 카리스마를 내뿜는 음악은 듣는 이들을 사로잡는다. 살사를 조금이라도 배운 이들은 여기저기서 짝을 지어 춤사위를 벌인다. 이 때는 나이도, 인종도 없다. 스텝만 맞출 줄 알면 처음 보는 이와도 서슴없이 손을 잡는다. 나도 배울걸 그랬나벼. 1,2차 공연 다 보고 나옴.

 

산티아고에서 택시타고 찾아간 모로성. 코렐리 병사! 대포 한알 장전! 저 포병출신 아닌디요. 셀카 한 컷.

 

모로성 입구 바로 근처 음료수 한 잔 하려고 들른 레스토랑에는 웬 접시와 포크나이프가 벽에 걸려 있다. 헐. 이 곳에서 폴 매카트니의 흔적을 보게 되다니. 접시가 레코드판으로 보이고 포크가 암으로 보이면 나 이거 중증인거냐?

 

아프리카 박물관에서 벌어진 공연. 쿠바음악은 아프리카로부터 잡혀온 노예들의 음악적 영향을 심대하게 받았으니 그 원류의 일부를 보고 있다고 보아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

 

산티아고 둘쨋날 들렀던 재즈클럽 아이리스. 이들의 연주는 아프로쿠반과는 거리가 먼 비밥 재즈였다. 웨스트코스트 재즈의 영향도 적잖게 보이는 이들의 음악 역시 듣는 이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가기에 충분했다. 놀라운 것은 이 뛰어난 공연의 관람자는 나를 포함해 겨우 일곱명 뿐이었다는 사실. 감동하기 보다는 훌륭한 뮤지션들의 음악이 이렇게까지 대접을 못받아서야... 하는 안타까움이 앉은 자리를 불편하게 한다. ㅠㅠ 제발 이 사람들 밥먹게 해주세요. 메인스트림 재즈가 이 곳에서나마 살아 남을 수 있도록...

 

변두리 주택가에 주차된 구형차량. 이걸 어디서나 탈 수 있다는 사실도 이 곳 쿠바에서 누릴 수 있는 감동 중 하나다.

 

산티아고에서 12시간 걸려 버스로 이동한 트리니다드. 그 곳에서 묵었던 민박 숙소. 스페인계 주인 아주머니의 친절은 거의 끝판왕 수준.

이 곳 트리니다드에서 만나 친해진 알렉스군(스위스), 그리고 하코보와 요르단카 부부(현지인).

 

카사 델 라 뮤지카(야외 음악당)의 뮤지션들의 음악. 웬지 아바나의 뮤지션들 보다는 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저녁 식사 후 알렉스군이 사 온 시가로 체험 한 번 해봤다. 실수로 목구멍 안에까지 흡입해 죽는 줄 알았다. 빨 때마다 입 안으로 쉬지 않고 파편이 들어온다. 이런건 왜 피우는거지?

 

밤에 다시 와보니 수준이 훨씬 나은 뮤지션들이 출연했다.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거리던 나를 보더니 웃으며 이것저것 말을 시키며 묻던 제이콥군과 산드라군 커플(스페인). 도둑놈 같은 인상의 제이콥군과 미녀는 아니지만 서글서글한 인상의 산드라군 참 잘어울린다. 

 

이들의 제의로 이 곳의 명소 중 하나인 동굴 나이트 클럽에 와

 

오래간만에 발바닥 때를 벗겨봤다. 얼마만이냐 구석기시대 대학 시절 이후 이러고 노는게. 새벽이 되도록 피곤한 줄 모르고 노는 날 보고 알렉스가 어이없어 묻는다.

"아까는 뭐 12시 넘으면 집에 가서 잔다메? 뭐하는겨 여기서? 미친거 맞지(crazy)?"

"넹~ ㅡ,.ㅡ;"

 

다음날 아침 알렉스와 하코보 부부와 함께 찾은 찾은 양꼰해변. 카리브해의 낭만이 담긴 유명한 휴양지다.

 

저녁이 되어 하코보네 동네 레스토랑에서 식사. 이때의 뮤지션은 부부인것 같다. 별 감동은 없다. 그저 잔잔한 콴타나메라 풍의 노래들. 그렇다고 실력을 폄하할 엉성한 실력은 절대 아님.

 

이 곳의 랍스터는 10달러 수준. 한국에선 죽어도 먹을 수 없는 가격이니 틈만 나면 먹는다지만 5번 밖에 못먹었다. ㅋ 맛이 강렬해 한 번 먹고 나면 다시 먹고싶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이 날 저녁에 들른 뮤지카 델 라 트로바. 트리니다드는 쿠바에서 가장 중요한 3대 도시 중 하나지만 내가 느끼는 감으로는 이 곳이 음악적으로 가장 약한 것 같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 음악을 즐긴 알렉스군과 무대의 뮤지션들.

 

지금은 혁명박물관으로 바뀐 성 프란체스코 성당의 종탑에서 내려다 본 트리니다드 시내.

 

트리니다드에 오면 반드시 마셔줘야 하는 칵테일 깐찬차라. 꿀을 잔뜩 넣어 달달하다. 옆에 앉은 흑인풍의 머리를 한 스페인 처자가 엄청 예뻤었는데 내가 칵테일을 주문해 받아들자 처음 마셔본다는걸 눈치챘는지 묻지도 않았건만 마시는 법을 허락없이(?) 설명했다. 알면서도 모르는척 다 듣고 감탄하며 고맙다며 오버해 봤다. 이유가 있다. 넘 예뻐서 말 좀 섞었다가 친해지면 사진 좀 찍을려고 했는데 이내 제 두 친구들과 함께 일어서는데 일행이 있으니 잡을 수가 있나. 그래 잘가라. ㅡ,.ㅡ;

 

그녀가 가고 난 뒤 혼자 셀카. 젠장~

 

이 집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칵테일 깐찬차라는 이 카페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 벌어진 뮤지션들의 공연은 이제껏 트리니다드에서 본 공연 중 최고였다. 페인트칠 하다 말고 온 것같은 허름한 복장에도 뭔가모를 포스가 느껴지는 이 보컬리스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4차원적 카리스마는 거의 신비에 가깝다. 노래를 못할 것 같았던 그의 목과 입을 통해 나오는 노래는 공간을 뒤흔들며 찢는다. 우와~

 

하바나로 돌아와 묵은 민박 숙소. 쿠바의 숙소는 호텔이거나 민박이다. 민박은 집을 뜻하는 카사(Casa)로 불린다.

 

같은 숙소에 묵은 카사메이트(?)들. 이들은 이 미칠듯이 더운 이 나라에서 며칠동안 자전거여행을 했다. 비냘레스와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또 하나의 도시를 이들은 자전거로 돌았다니. 나로선 납득 불가. 나도 물었다.

"이거 미치지 않고는 못하는 짓이잖아."

 

미국으로 추방되기 전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던 카페 라 보데기따 데 메데오. 벽에는 방문자들의 낙서가 빼곡하다. 이 곳에선 명사들도 낙서질을 하는 타락의 명소. 여기서 마신 모히토는 다른 곳보다 2.5배나 비싸지만 맛은 다른 곳보다 2.5배나 형편없다. 감동? 그냥 함 가봤어 이거 왜이래. 나라고 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음료를 마시거나 식사를 할 돈이 없는 동네의 할머니. 이 레스토랑의 뮤지션 연주만 나오면 열정을 굳이 억제하지 않는 이 할머니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살사 춤을 춘다. 산티아고로 떠나기 전에도 봤던 그 할머니다. 당신도 세상에서 행복한 분이오. 아름답소.

 

음악을 들으며 마셨던 모히토. 쿠바에 머무는 동안 몇잔을 마셨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수시로 마시고 다녔다.

 

파도가 둑을 넘어 행인과 차량을 덮치는 이 곳 말레콘의 영상을 봤다면 그 모습을 기대했을게다. 바람 한 점 없으니 파도도 없고 평온하기만 하다. 여기서 뭐했냐고? 쉴몽~

 

양코가 아닌 외국인을 보는게 마냥 신기한 아바나의 어린이들. 기꺼이 모델이 되어 준다. 형편없는 나의 카메라와 촬영기술에도 불구하고 예쁘게 나와주는 것은 이들의 마음이 예쁘기 때문이었을게다.

 

투어버스 2층에서 내려다 본 오픈카. 구형차는 대부분 택시로 운행된다.

 

죽어서까지 관광상품이 되어 쿠바시민을 먹여 살리는 체 게바라. 무명의 사진작가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서방세계에 풀리면서 졸지에 죽은채로 스타가 된 체 게바라는 혁명의 아이콘이 되어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만 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남의 나라 혁명에 목숨 걸고 뛰어든 전사이자 이상주의자. 이게 최첨단 오지랖이 아니면 뭐다냐. 쿠바 혁명으로는 실현되어야 할 이상이 멀었던지 볼리비아의 혁명에까지 뛰어들었다가 체포되어 처형까지 당했으니 더이상은 불가능한 경지가 아니더냐. 그의 물론 그의 이상주의와 순수함을 모욕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전세계적 열풍에는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다. 

 

현지인들이 다니는 한 작은 카페 안에서.

 

아바나의 마지막 밤, 아니 쿠바의 마지막 밤은 다시 재즈클럽으로 나를 몰아 넣었다. 두 시간만 자고 공항에 갈 각오까지 한 채로. 이 곳에서 만나 합석한 스페인 커플과(왼쪽)과 스페인에 거주하는 이탈리아인 커플(오른쪽). 두 여자의 영어가 놀랄 정도로 유창하다. 영어로 이야기하면 이들 두 남자는 멀뚱해진다. 에스파뇰로 대화가 바뀌면 내가 멀뚱해진다. 얘네들은 같이 멀뚱해지니 덜하지만 나 혼자 멀뚱해지면 난 뭐냐. 이 때 처음으로 여자 없이 혼자 다니면 외로울 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ㅡ,.ㅡ;

 

공연 전 입장 순서를 놓고 실갱이하던 이들. 안친해질 줄 알았는데 터키인들이라는 사실을 알고서야 서로 마음을 열고 급친해짐. 터키는 가본 중 가장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다. 돌궐 멸망 전에 이들이 고구려와 맺었던 혈명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 건설 이후에도 그 혈맹을 잊지 않고 6.25 전쟁에서 세계 3번째로 많은 병사를 파병해 준 고마운 형제의 나라. 한국인들 대부분은 이를 잊고 있으나 이들은 아직도 한국을 형제의 국가로 기억하고 있으니 우리가 너무하는거 아닌가.

 

이 날 공연도 입장료를 낸 이들에게 최고의 수준급 연주를 선사했다. 전형적인 아프로쿠반 재즈다. 눈앞에 아삼삼하다. 쿠바인들이 가진 음악적 열정 만큼이나 엄청난 음악적 역량을 가진 사람들. 그들의 연주. 음악, 7~8년 뒤에 이 곳 쿠바를 다시 찾기로 결심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쿠바를 이야기 하기 전 대충의 이미지만 추려 보았다. 여기에 실은 동영상을 올려 보고서야 카메라로 담아온 동영상이 이들의 카리스마 넘치는 음악을 대변하기엔 소리가 너무 조악하고 허접하다는 사실을. 여기에 올린 동영상이 이들 음악의 실체라고 생각하는 천부당 만부당한 오해는 말아주길 간절히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