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6 쿠바

카리브해의 열기와 음악 속으로, 쿠바여행 4(트리니다드)

코렐리 2016. 10. 12. 16:05

2016.9.12.(월)

아침이 되어 식사를 하면서 주인장에게 방이 너무 큰데다 에어컨이 시원치 않아 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는 말과 함께 다른 방으로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내 방에 들어가 에어컨을 켜고 바람에 손을 대 본 주인장은 이 정도면 됐는데 왜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무조건 다른 방을 요구해 작은 방으로 옮겼다. 그 곳은 에어컨이 낡고 덜그덕 거리긴 했어도 시원하긴 했다. 아침식사가 해결되고 밤새 지친 몸에 에어컨 바람을 쐬고 샤워를 하니 살만해졌다. 교통편은 미리 확보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이 곳에서 이틀 구경한 뒤 삼일째 아침에 떠날 작심이어서 여행사를 찾아 항공권 예매부터 할 참이었다. 이상하게도 쿠바나항공 국영항공사 홈페이지에는 트리니다드행 항공권이 검색되지 않아 이 곳에선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ㅆ지만 트리니다드는 공항이 들어설 만큼 큰 도시가 아니었다. 주인장인 후안 할아버지는 지도를 꺼내 여행사 위치를 표시해 주고 내가 묵고 있던 숙소 위치, 즉 자신의 집도 알려 주었다. 이 곳에서 트리니다드까지 버스를 이용하자면 12시간은 족히 걸리는터라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달라 그저 생각 뿐이었다.

 

숙소를 나오자마자 특이한 곳이 눈에 띤다. 시장 같은 분위기의 이 곳은 먹거리만 파는 야시장 같은 곳이지만 밤에는 하지 않고 대낮에만 운영한다. 

 

구식 자동차 중에서도 흔치 않은 웨곤 차량.

 

아침부터 날은 혹독하게 더웠다. 습관적으로 걸음이 빠른 나지만 이 곳에선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통에 나처럼 열이 많은 사람들은 쉬지 않고 땀을 흘리게 된다.

 

여행사 가는 길은 관광지와는 약간 동떨어져 있어 산티아고 주민들의 살아가는 진솔한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운치있는 레스토랑.

 

이들의 주택가에는 대부분 낡은 집들이 오밀조밀하다. 낡았지만 단정하고 깨끗하다. 그들은 주어진 여건 한도 내에서 집을 께끗이 관리하는 현명한 사람들이다. 거리에는 있을법도 한 휴지조각 하나 없다.

 

대로변에 나오자마자 눈에 띠는 주유소와 트럭. 트럭이지만 이 곳에선 버스로 운행된다. 짐칸에 탑승객들이 보인다.

 

왠지 모르게 처량해 보이는 강아지.

 

가다 보니 현지인들만 있는 야외 펍이 눈에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칠 것 같은 곳이다. 현지인들과 섞이기에 이 곳보다 좋은 곳은 없을 것 같았다. 여기 오기 전에 친구 부터 한 사람 멩글어야 하는데. 이 곳에선 희한하게도 만난 사람들 중 친해진 사람이 거의 없다.

 

숙소 주인장인 후안 할아버지가 알려준 대로 여행사는 기차역과 그 바로 옆 버스터미널 주변에 있는 것만 알고 왔다. 오자마자 별다르게 하는 일 없어 보이는 청년들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를 찾으세요."

"여행사를 찾는데요."

"여행사는 왜요?"

"트리니다드로 가는 항공권 구입하려고요."

"합승택시 어때요?"

그들의 제안은 버스를 타는 것보다는 훌씬 편할 것 같지만 난 항공편으로 편하게 가고 싶었다. 아바나에서 이 곳 산티아고로 오는 항공권 예매 당시 편도 120달러였다. 인천에서 떠나기 이틀전쯤 요금이 올랐을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들어가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요금은 그대로였다. 내가 이 곳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잊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틀전이지만 항공권은 요금도 오르니 않았을게고 그렇다면 100불이 면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곳에서 만난 청년들이 알려준 허접한 양철판으로 대충 만들어진 여행사가 보인다. 간판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이 곳이 여행사란다. 헐. 아무리 사회주의 국가이고 자본주의적 사고가 없어 광고도 안하고 주의를 끌지도 않는다지만 이 곳이 문닫은 구내 매점인지, 창고인지 여행사인지 무슨 재주로 안다냐.

트리니다드로 가는 항공권을 문의했다. 없단다. 사실은 어느정도 예상했던 대답이다. 한국에서 사전 예매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산티아고에서 트리니다드로 가는 항공편은 없었다. 방법이라면 트리니다드에서 3시간여 거리인 산타 클라라로 가는 방법인데 산타 클라라는 관심이 없다. 게바라 열팬들은 가지만 난 아니다.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 갔는데 그 곳이 가고자 하는 곳도 아니고 다시 버스로 3시간여 다시 더 가야 한다면 차라리 12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버스가 나았다. 하지만 그 장시간 버스를 타자니 아무래도 끔찍했다.

 

다시 그 청년들이 있는 곳으로 가봤다.

"합승택시는 얼마요?"

"50쿡요. 언제 가실겁니까?"

머리에 선글라스를 얹은 친구가 유일하게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모레 오후 5시."

"오전에는 어떠세요?"

"너무 이릅니다. 이 도시에 더 머물러야 해서."

"가능합니다."

나는 그에게 명함을 주고 전화번호를 적어왔다. 나중 이야기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이틀 뒤 다시 왔을 때는 판이하게 다른데다 성의가 너무 없었다. 어쨌든 트리니다드행 교통편은 확보되었으니 즐길 일만 남았다고 착각하고선 그 자리를 떠나 

 

세스뻬데스 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갈 때나 돌아올 때나 같은 길로 오니 같은 풍경이지만 갈 때와 올 때의 느낌은 같은 풍경 다른 느낌이 된다. 방향고 각도가 달라지기 때문.

 

마차 달려가는 모습을 찍으려고 했더니 감자기 멈추고 포즈를 취한다. 이럴 것까진 없는데? 어쨌든 사진 찍고 나니 손을 내민다. 못먹는감 찔러보기 식이라는 느낌이 든다. 손사래를 치니 미련없이 가버린다.  

완만한 경사의 고갯길이 나오자 앞에 한 노파가 굽어진 허리를 한 채 비닐 봉지에 무언가를 담아 들고 어렵게 걸어간다. 갑자기 어릴적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고 있네... 딱 그 장면이다.

안쓰러워 다가가 대신 들어 드리겠다고 하니 극구 사양하신다. 할머니 건강하시오.

 

 

이 곳엔 성당도 있지만 폐쇄된 채 방치된지 오래인 것 같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중교는 아편이라고 했던가. 아바나 카테드랄에선 미사도 집전되고 있던데. 관광지 서비스 차원이었을까.

 

숙소를 지나 다시 올라온 세스뻬데스 공원의 카테드랄.

 

 

시청

 

카테드랄. 이 곳은 개방하지 않아 처음엔 카테드랄인지도 몰랐다.

 

 

공원에는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기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운치 있는 피자 가게. 운치가 있어 보여 한 번쯤 가볼 생각이었는데 값이 랍스터와 맞먹는다. 싸가지읍씨...

 

이건 왜 찍었냐. 뭔가 명소의 하나일 것 같아 들어가진 않았지만 사진 찍어 놓고 가이드북을 나중에 봤다. 아무것도 아니다. 걍 건물이다. ㅡ,,ㅡ;

 

돌로레스 광장. 밤에 처음 와 봤던 곳이다. 낮에 보니 분위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이 곳에서 만난 처자들.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모델이 되어 주겠다며 포즈를 취한다.

 

그 옆에 앉은 권투선수들. 외국인에 대한 호감인지 자신들을 직업 권투선수로 소개한 이들은 자신들이 수련하는 체육관에 가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지만 물어보니 이 곳에서 그리 가깝지도 않았다. 이들과 잠깐 이야기 나누고 자리를 떴다.

 

자기마한 시장에서 과일 무게를 다는 상인들.

 

길을 따라 완만한 경사를 계속 오르면 마르떼 광장이 나온다.

 

우리네와는 전혀 달라 특이하게 생긴 신호등.

 

광장 가운데 자리잡은 탑의 높이가 예사롭지 않고 한가운데 우뚝선 모습이 주변과 조화롭다.

 

어딜가나 볼 수 있는 식민지풍의 거리 분위기. 이 곳이 유독 아름답게 채색된 곳이다. 이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호세 아 사꼬 거리를 통해 다시 완만한 길을 내려가 봤다.

 

전날 늦은 저녁식사를 할 레스토랑을 찾아 헤매느라 거의 닫은 상점들과 희미한 조명에 우중충했던 거리가 낮에 보니 그렇게 밝고 예쁠 수가 없다.

 

이름없는 작은 공원도 있고

 

자그마한 상점 건물들마다 제 각기 다르게 채색된 모습이 특히나 이국적이다.

 

날이 우중충해지기 시작하더니 아주 희미하게 비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들어가 비를 피하며 맥주 한 잔 해볼까. 엉성한 이 건물은 카페테리아. 재미있는 건물이지만 안쪽은 타일로 덮여 있는 정감이 없는 실내가 비호감이다. 다른 곳으로.

 

 

야외에 큰 파라솔을 여기저기 펼쳐 놓은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아 보인다. 맥주를 한 캔 사서 앉을 자릴 찾아 보았지만 빈 테이블이 없었다. 실내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고...

 

레게 풍의 한 청년이 유럽에서 온 커플과 합석한 채로 날 불렀다. 합석하자는 거였다. 이 친구이 이름은 잊었지만 레게 음악을 하는 이 곳 현지 뮤지션이고 모자를 벗으면 밥 말리 풍의 머리를 하고 있어 재미있다.

 

동석한 이들은 벨기에에서 온 커플. 통성명했지만 이들 역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거리의 마술가 허락 없이 와서 공연(?)을 펼쳤다. 공연 내내 보지 않고 외면하려던 우리의 무관심과 다른 곳으로 향하는 시선도 그의 강력한 공연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공연 후 모자를 뒤집어 내미는 거리의 마술사와 외면자. 어차피 내게 던져진 시선이 아니어서 모른척 하려다 갖고 있던 0.25쿡 동전 두 개 줬다.

 

비가 그친 뒤 돌아온 세스뻬데스 공원에서 보이는 벨라스케스의 집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찾은 식당. 전 날의 그 식당이다.

 

밤에는 미약한 조명 때문에 우중충해 보이던 실내 분위기가 한층 밝아 보인다. 이 곳에 자리 잡고 앉자 또 비가 오는데 이 집은 창문에 유리가 없어 허당이고, 지붕도 건물을 밀폐하는 형태가 아니어서 비가 들이쳤다.  

 

자리를 옮겨 앉았다. 이 곳의 직원 처자가 참으로 친절했다. 주문한 식사가 오기도 전에 무언가 담긴 접시 하나를 선물이라며 내민다. 튀김옷을 입혀 튀긴 뒤 진짜 꿀을 뿌린 빵이다. 맛이 아주 훌륭하다. 빵 튀길 생각을 다 하다니 놀랍니다.

 

이 날 시켜 먹은 것은 두야지 고기. 4쿡이었던가? 무척 저렵하다. 두야기 고기는 이 집도 얇게 저며 구워 내놓았다. 더위에 식용이 없어 먹은 늦은 점심식사였지만 결국 저녁식사까지 겸한 셈이 되었다.

 

무척 친절한 직원. 전날 밤에 왔을 때는 없었던 처자다.

 

식사 후 카사 델 라 트로바 부터 찾아 보았다. 쎄스뻬데스 공원 오르막 골목에 바로 위치한 곳이어서 휴식을 위해 숙소로 돌아가기 전 가 보았다. 저녁에 공연을 즐기러 다시 올 곳이다. 숙소로 돌아온 시간은 저녁 7시.

 

숙소 옥상에 가두어진 채 길러지는 개군. 손을 내밀어 쓰다듬으면 개군은 사랑에 굶주렸는지 킁킁거리며 강한 콧김을 수시로 내뿜는다.

 

샤워 후 아침에 만났던 트리니다드로 가기 위해 택시 합승을 제안했던 친구에게서 받은 전화번호가 있어 전화를 걸었다. 수요일 오후 5시에 출발한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 남았다. 오전 11시로 앞당길 수 있는지 물었다. 가능하단다. 통화 후 옥상으로 올라갔다. 공연까지는 시간이 남았지만 더워서 나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아 숙소에 머무르기로 했다. 올라간 이 집 옥상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포도나무 차양 아래서 본 숙소의 지붕.

 

그 차양에서 내다 보는 바깥 풍경이 전망 좋다. .

 

이 집에서 키우는 앵무새. 비명같은 울음 소리를 수시로 낸다. 잠시도 가만있지를 않아 좋은 사진이 나오질 않는다. 셔터를 누르고 보면 목이 없어지고 꼬리가 없어진다. 아니면 한쪽에 치우치던가. 선명한 사진은 절대 안나온다. 여러번 찍어 간신히 얻은 사진.

 

이 집 가장 높은 곳 포도나무 차양. 일반적으로 먹는 포도가 아닌 와인용으로 재배되는 작은 알갱이와 작은 송이의 포도 나무다. 익은 놈으로 작은 송이 하나를 따서 맛보았다. 맛있다.

 

 

이 곳에서 잠깐 시간을 보낸 뒤 10시 공연을 보기 위해 9:30에 숙소를 나섰다.

 

카사 델 라 트로바에 도착해 모히토 한잔 시켜놓고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직 공연 시작 전이라 이 곳에는 공연을 기다리는 몇 몇 관광객들만 눈에 띠었지만 공연시간이 목전에 다가오자 자리가 다 찬다. 칵테일 한 잔 놓고 혼자 앉아 있으니 발코니쪽 벤치에 앉은 흑인 처자 하나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든다. 고개를 끄덕여 주니 테이블에 합석해도 되는지 손짓으로 시늉을 했다. 아무래도 몸을 파는 처자인 것 같아 사양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연주자들의 카리스마가 이곳을 가득 채웠다. 뮤지션들의 실력은 대단했다. 공연 시작 후 얼마되지 않자 이 곳 산티아고로 오던 비행기 않에서 만난 스페인계 남자와 흑언니 커플이 이 곳에서 무대의상을 입고 나와 살사 강렬한 춤을 추었다. 전문 댄서들이었다. 조금 지나니 두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가 합석을 청했다. 그 중 한 처자는 이 곳 현지인으로 보였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이탈리아인들. 알고 보니 그녀는 이탈리아로 이주한 살사 강사였고 이탈리아인들은 그녀의 학생들. 현지의 살사를 보기 위해 비행기 타고 건너온 것이었다. 처자는 손에 아무런 링이 없는 날 보고는결혼했는지를 물었다. 안했다니까. 결혼하잔다. 뜻밖의 황당한 청혼아닌 청혼에 내가 어지간히 당황해 했나보다. 한참 웃더니 농담이람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ㅡ,.ㅡ;

 

음악에 맞춰 많은 관객들이 살사를 여기 저기서 추었지만 이 곳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40분간 이어진 공연은 40분간의 휴식 후에 다시 이어졌다. 2부 공연에는 전문 댄서들은 없고 많은 관객들이 살사를 덩달아 추었다. 생면부지의 사람과도 춤을 출 줄만 알면 자기 연인이나 배우자를 테이블에 남겨두고 바람(?)을 피웠고 남겨진 연인이나 배우자는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아는 사람은 물론 아니고 인종도 나이도 없었다. 한 편 부러운 생각도 들었다. 이럴줄 알면 스텝만이라도 좀 배워 올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이 곳에 올 기회가 생긴다면 2~3개월만이라도 살사를 배우고 오길 권하고 싶다. 나도 그러고 싶고. 

 

공연관람을 마치고 돌아온 시간은 12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전 날 방을 바꿔 두길 잘했다. 새로 입주(?)한 방은 작은데다 에어컨도 비교적 냉기를 잘 뿜었다. 이 날 밤엔 샤워 후 편안하게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