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5 미얀마

불교의 나라 미얀마 6(양곤/인천)

코렐리 2015. 10. 13. 14:17

2015.7.23(목)

양곤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이다. 미얀마 최대의 볼거리인 쉐다곤 퍼야는 이 날을 위해 일부러 남겨둔 곳이다. 길거리에 테이블을 깔아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이따금 택시도 지나가고, 오토바이크도 지나가고 개도 지나간다.

 

이게 뭐냐. 이상한 국수 준다. 맛도 이상하다. 니맛도 내맛도 아닌.

짯화가 다 떨어져. 은행부터 들렀다. 하는 일에 비해 유난히 직원이 많기는 이 곳도 다르지 않다. 울 삼실도 이랬으면... ㅡ,.ㅡ; 전날 시장에서 돌아오며 육교를 건너다 방치된 굵디 굵은 각목에 부딪혀 다친 엄지발가락에 붙은 밴드가 처량하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쉐다곤 퍼야로 향했다.

 

식민지풍의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의 분위기가 재미있다.

 

근데 유럽 식민지를 겪은 나라들은 건물 색깔들이 왜 다 이러냐? 재밌긴 하지만 묘하다. 유럽엔 이런 분위기 별로 안보이던데.

 

이 곳에 내려 주길래 여기가 쉐다곤인가 했다. 알고보니 여긴 거리가 좀 있는 다른 곳이다. 이런 쓰글롬.

 

어차피 시간도 남겠다 쉐지곤 퍼야 하나 보면 남는게 시간이다. 내려준 곳에 면한 사원도 보고 가기로 했다.

 

들어 갔다. 입구는 멋지다.

 

안에는 볼게 없었다. 오죽하면 안에서 찍은 사진이 없겠냐.

 

개떼같이 모여든 비둘기만 지겹게 봤다. 파리떼도 이렇게 많은건 못봤다.

 

이 곳이 쉐다곤 퍼야의 남문.

 

입구로부터 안쪽으로 통하는 아케이드 길 양 옆에는 기념품범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이 곳에서 재미있는 것은 군부가 민심을 얻기 위해 불교에 많은 투자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그린 것으로 보이는 벽화. 국민의 절대다수가 불교도인만큼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다면 씨가 먹힐듯도 하다.

 

진짜 입구에 도착하면 계단에 오른다.

 

사원 보호를 위한 조치인지 방명록에 서명하고 개인정보까지 털려야 한다. 허 젠장. 그러고 나면 공항을 방불케 하는 검색이 기다린다. 헐.

 

안으로 들어갔다.

 

남문을 통해 들어오면 첫번째로 눈에 들어오는 불당.

 

많은 불자들이 이 곳에서 불공을 드린다.

 

이 곳은 다른 사원들과 비교해 규모나 화려함에 있어서는 비교 자체를 불허한다.

 

 

 

미얀마 최대의 불교사원에 온만큼 이상하게도 나의 관심사는 스님들에게로 쏠렸다.

 

이 곳에서 찍는 모든 사진에는 스님들을 넣고 찍기 위해 때만 되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름 노력했다.

 

그러나 마음처럼 좋은 포즈에 좋은 위치에 서서 기다려 주지 않는 스님들을 넣고 좋은 사진을 찍기는 보통 어려운게 아니었다.

 

 

 

날은 화창하고 뙤약볕은 강했지만 이 곳 바닥은 대리석이어서 다른 사원처럼 뜨거운 바닥에 발바닥을 데일 염려는 없었다.

 

중앙의 황금탑이 압권이다.

 

 

황금탑을 배경으로 한 컷. 모자는 전날 비에 뭉그러지고 빨래 하기 귀찮아 잘 때 입던 티셔츠를 입고 나오니 꼬질꼬질.

 

포스있어 보이는 노스님의 모습에서 엄청난 포스가 뿜어져 나온다. 양해를 구하니 흔쾌히 촬영을 허락해 주신다.

 

감사합니다 스님. 입적 전까지 수도하시는 동안 내내 건강하십시오.

 

 

이 곳은 어딜 봐도 아름답다.

 

 

 

 

나가의 수호 아래 도를 닦는 부처님의 모습.

 

아름다운 거대 징. 한 번 갈겨보면 안될까나.

 

 

 

 

단체로 몰려와 촬영하는 처자들을 또 촬영. 외국인에게 거부감 갖지 않고 흔쾌히 포즈를 취해 준다. 한참 좋을 나이다.

 

청소년 스님들.

 

 

이 곳 미얀마에선 모든 연령대의 스님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동자승, 청소년승, 청년승, 노승....

 

 

 

 

 

이 곳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도 이 곳에서 어지간히도 많은 사진을 찍었다.

 

 

이 곳에서 또 한컷. 배꼽에는 입장권을 구입했음을 알리는 스티커를 붙이고 포즈.

 

또 스님들.

 

또 처자들.

 

또 뜀군.

 

스승님과 함께한 것으로 보이는 동자승들.  

 

쉐지곤 퍼야를 나와도 시간은 적잖이 남는다. 우리는 이 곳을 나와 택시를 타고

 

깐도지 호수에 면한 고급 레스토랑으로 가 멋진 마지막 식사로 여행의 마무리를 할 작정이었다. 아래의 레스토랑으로 가자면 공원에서 택시를 내려 공원을 걸어서 지나쳐야 했다.

 

화려함이 방문자를 압도했다. 이정도 레스토랑이라면 방귀를 뀌며 먹어도 좋을것 같았는데.... 문제는 밥때가 아니어서 문을 열지 않았다는 점. 아 젠장 여까지 모하로 온겨?

 

결국 공원으로 돌아와 간이 매점인지 간이식당인지 하는 곳으로 와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야체 볶음은 중국이든 동남아든 향긋하고 신선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다 일본식 덮밥을 먹었지 아마? 현지식을 고집하면서 왜 그런걸 먹었냐고? 아씨 따지지마 여긴 그런거 밖에 없더라니께. 나름(?) 일식만 깔아놓은 집이더라니께.

 

하릴없이 숙소로 돌아와 짐을 찾아 공항으로 갔다. 지겨운 더위와도 쫑이다.

하노이행 항공기는 시간이 남고도 남았다.

 

남는 시간 죽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 더운 곳에서 두 사람이 마신 맥주는 아무리 자제하려고 노력하며 천천히 마셔도 세 병으론 부족했다. 더 앉아 있다간 시뻘개져서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탑승해야할 만큼 마시게 되는 것이 두려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세컨드 안주까지...

 

항공기에 올랐다. 뭔 일이냐. 비가 와서인지 당체 항공기는 땅바닥에 붙어 떨어질 줄을 몷랐다. 조종사의 안내 멘트가 나오지만 도대체 뭔 소린지.

 

헐. 기내식이 이륙하지도 않은 채로 나온다. 아무리 뜨고 말고는 조종사의 판단이라지만 다른 항공기들은 떠나는데 왜 느덜만 안뜨냐고. 엔진에 물들어갔냐?

 

서너시간은 여기서 기냥 죽쓴 것 같다.

 

하노이에 도착하니 우리가 갈아탈 비행기는 당근 떠났다. 아래의 항공사 직원이 나와 호텔로 안내하겠단다. 휴가기간 내에는 돌아갈 수 있으니 문제는 없었다. 아니 진짜로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미얀마로 가면서 이 곳에서 환승전 잠깐 입국한 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입국을 이미 한 번 했으니 30일 내엔 무비자 입국이 불가능하단다. 비자 발급비는 50달러. 공항 직원은 무비자로는 입국 못하니 비자 발급 절차를 밟으란다. 우리는 항공사 직원에게 따졌다.

 

"항공기가 지연된 것은 우리의 잘못도 아니고,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입국도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잘못이 없는만큼 비자발급비는 우리가 낼 수 없다. 비자비는 항공사에서 지불해야 한다."

 

고 했더니 그는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어떻게든 우리를 한 번 더 무비자로 입국시키려고 했다. 말이 되는 시도를 해야지원. 공항 직원은 당연히 안된다고 했다. 나보고 어쩔 수 없단다. 비자를 스스로 받던지 아니면 공항에서 대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다른 승객들은 호텔로 쉬러 갔다. 나는 항공사 직원을 계속 다그쳤다. 그는 여전히 공항 직원을 설득하려고만 했다.

나중엔 도저히 방법이 없단다. 되려 그가 나도 돈이 없는데 어쩌란 말이냐며 항변했다. 나는

 

"당신 권한 밖이라면 지금 당장 당신 상사와 상의 해서라도 결론을 내라"며 다시 밀어붙였다.

 

그는 어딘가로 전화하는 시늉을 했다. 실제로 했을까. 그러더니 결국 방법이 없단다. 나는 그의 이름을 확인한 뒤 당신의 개념없는 서비스에 대해 항공사에 엄중히 항의하겠다고 하니 그렇게 하란다. 아 젠장. 시원치 않은 냉방으로도 공항에서 밤을 보내기엔 충분히 추워 떨며 시간을 보냈다. 이제까지 여행 가서 생긴 트러블에 내가 고집을 피워 손해를 보거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는 식당 주인으로부터 뭔가 주워먹은 이집트 현지 경찰하고도 실갱이를 해서 이겨먹은 나다. 이 번엔 실수했다. 이 곳이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만큼 서비스의 개념이 자본주의 국가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스튜어드 출신의 직장 동료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내가 항의해 봐야 얻을 거라곤 쓸데없는 나의 노력에 대한 무응답이 고작이라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만큼 자기네의 서비스가 미흡하면 평판이 나빠질 수 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까짓 50달러 쓰지 왜 그 고생을 했느냐는 동료의 말에 망연자실. 에이씨. 사람이 살다보면 판단을 잘 못 하는 수도 있는게지. ㅠㅠ

 

아침이 되어 그가 준 식원으로 밥을 먹는건 또 뭐냐고. 그렇게 도도하게 나갈거였으면 안먹었어야지. ㅠㅠ 

 

어쨌든 다음날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다시 떠날 수 있었다. 베트남은 단지 트랜짓이었지만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았다. 징징징

 

탑승하니

 

기내식 한 번 먹고 내리게 된다.

 

미얀마 여행에서 지금 돌이켜지는 것들은

 

혹독한 더위, 투박하지만 깊은 불심 뭐 이런 정도인 것 같다. 동남아 여행은 쉽지 않다. 혹독한 더위 때문에...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