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여행/공연전시후기

정경화 무반주 바흐 전곡 연주회 후기(2012.5.15/5.22)

코렐리 2012. 5. 23. 10:19

표를 구해놓고 오랜시간 기다렸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Sonatas and Partitas) 전곡 연주는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데다,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니 그 기다림은 열망 그 자체라 해도 좋다.

모친 별세 1주기 되는 바로 이 시기에 카톨릭 신자인 그녀가 명동성당에서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이 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성당의 궁륭 아래 현의 아름다운 울림도 이유가 강하게 있었겠지만 작고하신 모친을 위한 그녀의 레퀴엠임을 읽어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 구입한 브로슈어와 티켓.

 

5월 15일(화) 칼퇴근 후 바로 명동성당으로 갔다.

인터넷 예매 후 티켓 현장수령이 원칙이어서 예매확인증을 들고 티켓 창구에 18:05에 도착했지만 입장권은 아직 배부하지 않고 있었다. 19:00부터 표를 배부한다는 안내를 받고 나는 단골 음반가게인 리빙사로 가봤다. 주인은 어디가고 다른 사람들만 있어 노닥거릴 분위기가 아니어서 다시 슬슬 성당으로 돌아왔다. 06:55에 다시 명동성당 창구로 돌아와 보니 이미 줄을 길게 늘어 서 있었고, 표 배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데나 서면 되는 줄 알았다. 3개의 창구에 ㄱ~ㄹ, ㅁ~o, ㅈ~ㅎ 와 같은 희한한 표기가 A4용지에 쓰여져 붙어 있었다. 이게 뭔지 앞사람에게 물어보니 예약자 성명이란다. ㅡ,.ㅡ; 내 이름 맨 앞자에 따라 ㅁ~o에 가서 섰다 이 줄을 선 사람들의 수만 유독 다른 두 줄의 두 배를 상회했다. 앞자리에 앉으려던 나는 비지정석으로 입장권이 판매된 이 상황이 무척 당혹스러웠다. 대성전 R석 입구에는 표도 아직 받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입구에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일행이 표를 받으러 가고 나머지는 입구에 줄서는 모양이었다. 혼자 온 나만 바보로군. 젠장 ㅡ,.ㅡ;

더 짜증나게 만든 것은 유독 사람 많은 우리 줄에 표를 배부하던 사람의 일처리가 늦어 양 옆 줄은 이미 표를 다 받아 입구에 줄을 섰고 내가 선 줄만 길게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줄 섰던 사람들이 모두 이미 표를 받아 간 양 옆 줄에는 사람들이 바로 와서 바로 표를 받아 간다. 꼭지가 돈다. 그들보다 일찍 온 우리 줄 사람들은 아직도 표를 받기 위해 기웃거려야 했다. 모두가 화가 났을테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내가 나섰다.

‘우린 진작 와서 줄을 섰지만 같은 R석을 예약하고도 나중 온 사람들이 먼저 표를 받아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이 상황이 정상적이라 생각합니까. 지금이라도 개선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고 물어봤다.

티켓창구 직원들이 내 말에 당황해 했지만 디지털 티켓 출력이 아니고 이미 출력한 티켓을 이름순으로 찾아 주던 그들이 방법을 찾지 못해 당황해 하고 있었다. 기획한 놈이 잘못이지 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보아하니 항의한다고 신속하게 달라질 상황도 아니었다. ㅡ,.ㅡ;

화를 눌러 참고 다시 열로 돌아가 기다렸다. 표를 받아 R석 입구에 길게 늘어선 줄 꽁무니에 가서 섰다. 또 다시 화가 났다. 공연장 어지간히 많이 쫓아다닌 나다. 로얄시트 표를 사고도 일찍부터 줄을 서는 이런 싸구려 짓거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한심스러워서였다. 07:30부터 입장이 시작되었다. 내부를 보니 S석보다 R석이 더 많아 보인다. ㅡ,.ㅡ;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앉게 되니 중간쯤에 앉게 된 것 같다.(아래 사진은 명동성당 홈페이지에서 퍼 온 전경 사진)

 

20:05경이 되자 제단 왼 쪽 제의실에서 현을 조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연주자가 나왔다. 왠지 거동이 불편해 보였다. 65세 된 나이때문이었을까. 난간, 교탁 등 주변 기물을 손으로 잡아 의지하며 제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관객의 환호는 대단했다. 여기에 답례하고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Sonata 1번이었다. 굵고 시원한 연주 여전하지만 Sound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왠지 운궁에 힘이 덜 실린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높다란 명동성당의 천장 아래의 공명과 현의 울림은 기대했던 만큼의 감동을 가져다 주진 못했다. 왜였을까. 소나타 1번이 끝나고 박수 소리는 장내가 떠내려갈 정도였다.

 

잠시 후 침 넘어 가는 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긴장 속에 Partita 1번 연주가 시작되었다. 기교적으로도 어렵고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이 곡을 듣기만 해봤지 연주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연주하다 보면 손가락이 꼬이기까지 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연주자의 운지는 쉬지 않고 몰아치는 물결과 파도를 연상시킬 정도로 정신 없게 돌아갔다.

 

Sonata 2번까지 연주가 끝나자 그녀도 무척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관객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도 처음엔 앙코르 연주를 마다하려 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열화와 같은 환호는 그녀를 다시 무대로 내몰았다. 6곡 27 악장 중 어느 하나를 금방 듣고 기억하기 쉽지 않은 가운데 그녀가 선사했던 두 곡의 앙코르 곡이 내 기억엔 이 날 연주되지 않았던 Partita 3번 중 가보트 엔 론도(Gavotte en Rondo)와 프렐류드(Prelude)였던 것 같다(아래 사진 성당 홈피에서 퍼온 사진임)

 

5월 22일(화) 퇴근 후 다시 명동성당으로 갔다. 나머지 곡을 마저 듣기 위한 두 번째 공연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티켓 배부 방식은 전과 같았지만 여전히 불공평한 가운데서도 그나마 이 날 배치한 스텝은 순발력이 있는지 그래도 빨리 처리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리더 김종진도 팬인지 표를 받아 일찌감치 앞줄을 꿰찼다.

 

그녀가 다시 제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왠지 전번 연주회 때보다는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복장은 그녀가 좋아하는 복장인지 검은 바지에 흰색 블라우스를 그대로 입었고 굽없는 구두를 신은 것도 같았다. 성당이 떠나갈 박수와 환호에 이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Partita 3번 프렐류드(Prelude)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이상하게도 불안정한 느낌이 곧 드는데, 급기야 음정까지도 불안정하게 들리는 것이 평소 듣던 이 곡이 좀 이상하게 들렸다. 첫 번째 악장을 간신히 끝내고 어쩔줄을 몰라하던 그녀는 무언가에 감당하지 못하는 듯 우왕좌왕하다가 제의실로 황급히 들어가 버렸다. 잠시 뒤 누군가 나와 백합 알러지 때문에 연주를 계속할 수 없었다는 말이 있은 뒤 몇 사람이 제대로 올라와 제단 위 양옆의 그 거창한 꽃을 연주자가 나왔던 제의실로 내갔다. 백합은 물론 다른 꽃도 모두 제대에서 내갔다. 지난 주가 예수승천대축일이었으니 그에 따라 제대에 헌화된 꽃이었던 모양이었다.

참으로 묘한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의 정경화가 소나타 2번과 파르티타 3번을 녹음한 데카 음반의 재킷에는 꽃에 둘러싸여 찍은 사진이 사용되었다. 지금은 그 꽃이 알러지로 인해 버거웠던 모양이었다. 잠시 뒤 그녀가 다시 나오자 박수소리는 더욱 커졌다. 방금 했던 연주는 스스로도 인정할 수 없었던지 프렐류드부터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전 주(5월15일)의 연주보다 훨씬 힘이 있고 생기가 넘치는 연주였다. 게다가 현의 울림은 환상적이었다. 뭐가 달라진 거지? 그녀의 연주는 나를 거의 흥분지경까지 몰고 갔다. 첫 곡 연주가 끝나고 그녀가 나왔던 제의실로는 들어가지 않고 제대 뒤쪽의 통로를 이용했다. 그리로 나간 꽃이 멀리 가지 못하고 바로 나간 문 안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뒤이어 Sonata 3번이 막힘없이 연주되었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던지 옷을 갈아입고 다시 시작한다는 안내가 있었다. 다시 나온 그녀의 옷은 갈아입기 전과 똑같은 복장이었다. 계속해서 Partita 2번이 계속 연주되었다. 이 날의 연주는 힘이 실린 굵직한 선이 압권이었다.(아래 사진 성당 홈피에서 퍼온 사진임)

 

처음 이 연주회에 오던 5월 15일.

확신은 전혀 없었지만 운 좋으면 정경화님의 사인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음반을 가져갔다. 성당 구조로 보아 제단에 인접해 있을 제의실(사제가 제의를 입는 방)로부터 연주자가 나올테고, 이 제의실이 바깥으로 통한다면 그 곳이 연주를 마치고 나올 길이 아니겠나. 마침 내 바로 옆에 앉은 이는 수녀님이었다. 나는 제대 좌우에 문이 각각 1개씩 있는데 어느 곳이 제의실인지를 물었다. 좌우 하나씩 제의실이 있단다. 제의실에서 바깥으로 통하는 문도 있단다. 제단 양 옆 어느 문으로 나가면 제의실로 각각 통하고 지하성당으로도 통한단다. 양쪽 어느 쪽으로도 나갈 수 있단 얘기다. 나는 연주자가 나오는 문 바깥쪽 출입구를 찾아보기로 했다.

 

5월 15일 공연에서 앙코르 곡 연주까지 다 끝나고 21:30경 성당 바깥으로 나가 그 위치로 가봤다. 제의실로 통하는 고해실이 있고 그 앞에는 에쿠스가 한 대 시동을 건 채 대기중이었다. 세 명의 노부인과 50대 부부 한쌍이 그 곳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같은 팬들이었다. 부부는 그녀를 기다리지 못하고 가버렸다. 기사 양반이 남아있던 3분의 노부인들에게 사진을 함께 찍자 청해 보라며 웃으며 귀띰한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작은 체구에 악기가방을 들고 나오는데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도 모르게 90도 꾸벅 인사했다. 이런 인사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 본 적 없는 인사였다. 고도의 집중력과 기교를 요하는 이 곡 자체도 힘들었겠지만 첫 날 컨디션도 그다지 좋지는 않은 모양. 하지만 그녀는 노부인들과 웃으며 사진을 찍어 주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내가 음반에 사인을 청하자 그 중 한 분이 사진을 찍어 줬다.(아래 사진) 정경화님을 돕기 위해 명화님도 함께 동행하고 있었지만 촛점은 역시 정경화님. 죄송...ㅡ,.ㅡ; 사인을 받고 사진까지 여유있게 함께 찍었으니 생각지도 못한 대박이었다.

 

사인을 받은 음반이다. R. Strauss/ O. Respighi VS DG(성음)

CD로 출반된 이 음반을 세계 유일 한국에서만 LP까지 출반했다. e-bay에서도 겨우 3번 경매가 이루어진 바 있을 뿐 쥐고 있는 사람들이 내놓지 않는 초희귀반이다.  나도 운 좋게 이 음반을 구했다. 이 음반을 냈을 때만 해도 그녀는 참 젊은 시절이었다.

 

사인을 받은 음반 뒷면. 휘갈겨 이름을 적고 하트 하나 그려 넣은 다음 서명년도 "2012"를 기록했다.

 

Prokofiev VC 1,2 Decca(Holland)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반 중 하나지만 이 음반은 아쉽게도 영국 오리지널반이 아니고 홀랜드반이다. 영국초반으로 다시 구하려고 벼르는 중인데 좀 늦었나? 그래도 사인을 받았으니 그게 어디냐.

 

 

사인 받은 뒷면

 

22일에도 공연이 종료된 뒤 혹시나 해서 또 가봤다. 어디에서 정보들을 얻었는지 이 번엔 30여명의 팬들이 이미 기다리고있었다. 그녀가 나오자 혼잡했다. 그녀의 제자로 보이는 한 여대생이 팬들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웃으며 사진 촬영과 사인에 응해 줬다. 이 날은 그녀를 괴롭히지 말고 그냥 갈까 하다 염치 좋게 한 장 더 내밀었다. 밝은 웃음과 함께 한 장 더 사인 받은 음반 Bruch Violin Concerto No.1 / Scottish Fantasy, Decca(영국 초반)

 

사인한 뒷면.

 

그녀의 건강과 연주활동이 오래 계속되길 빌어본다. I Lov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