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9.11(일)
아침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 시간은 08:40 정도. 씻고 난 뒤 책을 보며 더 뭉개고 싶었지만 그러자니 배가 고파 왔다. 옷을 입고 나선 시간은 09:40쯤. 길을 나서다 보니 어느 집인가 지붕을 수리하는지 기와가 쌓여져 있다. 칭다오 시내를 붉게 물들인 바로 그 서양식 지붕 기와다. 음. 일케 생겼군.
이 곳의 천주교회는 이 곳 칭다오에서는 중요한 볼거리 중 하나다. 1934년에 세워진 이 성당은 고딕양식의 성당이라고 하는데 건축양식으로 굳이 따지자면 고딕양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흉내낸데 불과하다. 파사드나 탑을 보아도 그렇고 스테인드 글라스를 놓고 보아도 빈약한(?)하게나마 고딕의 냄새가 나지만 내부장식은 더더욱 고딕양식과는 거리가 멀고도 멀다. 유럽의 대성당을 보고 나서 이런 자그마한 성당이 볼거리로 합당할지는 의문이었지만 이 성당에 간 이유는 일요일인 만큼 그저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서였다.
이 곳도 관광명소로서 뿐 아니라 칭다오 사람들에겐 특별한 장소인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성당을 배경으로 웨딩촬영에 열중이다. 누가 누군지 모르지만 어제 팔대관경구에서 본 커플들 중 여기에서 또 본 커플도 있지 않을까 싶다. 입구에서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10시에 미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왔는데 출입구는 중국인 아줌마가 통제하고 있었다. 관광객 차림의 내가 들어가려 하자 제지했다.
"미사 참례하러 왔는데요."
"안돼요."
"천주교도가 못들어가면 누가 들어가요?"
들은척도 안한다.
"천주교도예요. 미사 보러 왔고요."
"어디서 왔어요?"
"한국요. 지금 한인 미사 있지 않나요?"
그제서야 입장을 허용했다. 내가 들어가기 전에 이미 거절 당한 사람인지
"우리도 한국인인데..."
하는 말이 뒤에서 들려왔다. 미사 집전 중에는 관광객들의 당내 방황과 촬영 플레시 때문에 입장을 허용하지 앟는 모양이었다. 관광객 차림의 내가 들어가니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실내는 바로크도 아니고 딱히 지정할만한 양식도 없었다. 나야 카톨릭 교도니까 그렇다지만 볼거리로는 영 좀 아닌듯하다. 누군가 합창단의 합창이 예술이라고 했는데 사실 이 정도 높은 천장이고 보면 소리가 공명하고 울려 간섭현상을 일으키면 어설픈 합창도 아름다운 화음으로 들리게 마련이다. 높은 천장의 성당 안에서 마이크를 대고 하는 신부의 말은 울리고 울려 뭐가 뭔지 하나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미사가 종료되고 나는 점심을 먹기 위해 그 곳에서 가까운 춘허로우로 또 갔다. 이 곳에서 주문한 것 중 하나가 해삼 요리다. 이 곳의 해삼 요리가 유명한데다 다른 곳보다는 저렴한 편이라고 해서였다. 요리 접시의 크기를 알아야 양을 조절할게 아닌가.
"한 접시에 양이 얼마나 되죠?"
"많지 않아요."
"점심식사로 너무 많거나 적으면 곤란하죠. 많지 않으면 다른걸 더 주문할겁니다."
"두마리면 되지 않아요?"
"좋아요. 큰걸로 주시고..."
나는 한 접시에 두마리인 줄 알았다. 해삼 큰 놈으로 두마리에 62위엔이면 비싸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나온 것은 두접시였다. 그러면 124위엔. 차라리 다른걸 하나 더 시키는게 나았을텐데. ㅡ,.ㅡ;
이 집은 특히 만두가 유명해 돼지고기와 대하를 소로 넣은 것으로 하나 골랐다.
곧 만두가 나왔다. 만두는 여섯개가 나오고 값은 30위엔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만두피는 밀가류 냄새가 거의 나지 않고 쫄깃쫄깃하다. 약간의 국물을 머금은 소는 짭짤하면서도 씹는 식감이 무척 좋다. 쫄깃한 만두, 단단한 육질의 새우, 풍부함을 더해주는 두야지 고기와 약간의 양념, 약간의 야채, 약간의 육수가 환상적인 맛을 냈다. 다만 만두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 때 나무찜통 바닥이나 좌우 만두피끼리 만나 살짝 붙어버린 통에 조심하지 안으면 만두피를 찢어먹는 사고가 나지만, 그 사고를 안내기도 쉽지는 않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한참 먹다 보니 해삼요리가 나왔다. 두 접시나 나와 어리둥절했지만 각 각 한마리씩 담겨 있어 어제 전복을 먹으며 두 접시에 나누어 나왔던 것을 기억해 내고는 한 접시에 원래 한마리만 담겨져 나온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 수있었다. 해삼 특유의 물컹함과 쫄깃함이 어유러져 씹을때마다 흩어지는 식감으로 인해 다른 음식 보다는 목구멍으로 넘어가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운 생각이 든다. 검은 소스는 달작지근하고 소스에는 난도질한 돼지고기가 섞여 있어 풍부함을 더했다. 해삼부터 한조각 입에 넣고 눈을 감은채 씹다 보니 옆 테이블에 앉은 두 명의 한국인 처자들의 이야기가 계속 들려왔다.
"어머 저건 뭐지? 생긴건 맛있게 생겼는데 왠걸 두 개씩이나 주문했을까."
"누가 또 있겠지."
"아냐, 혼자 왔어."
"글쎄 얼핏 보면 고기 같기도 한데 가운데 뭐가 시커먼게 있어."
"왜 먹어보고 싶어?"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작지 않은 소리로 자기네끼리 하는 이야기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 궁금하면 맛 한 번 보세요. 한 접시 드리지요."
했더니 두 사람 모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 한국분이셨어요?"
민망해 하는 것도 잠시. 내가 주는 해삼을 맛보더니 두 사람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젊은 사람들이 먹기엔 적응이 안돼는 맛이었던 모양이다.
"왜요? 맛이 별로예요?"
"물컹한게 좀 이상해요."
"그래요? 난 아주 맛있는데"
했더니 좀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먹게 할걸 괜스리 받았다는 눈치였다.
"그럼 다시 주세요. 제가 마저 먹지요." 했더니 먹던걸 다시 내놓기가 미안한 눈치였다.
"괜찮아요." 하고는 남은 해삼을 마저 돌려 받아 먹어 치웠다.
그들은 각기 만두 1인분에 새우요리 큰접시 하나를 주문해 놓고 많이도 남았던지 내게 새우 요리를 덜어줬지만 나도 배불러서 더 먹을 수가 없었다. 이들은 중국에서 유학중인데 명절 연휴라 여행을 다니는 중이었다. 맥주까지 거나하게 한 병 마시고 나니 166위엔 나온다. 그들도 식사 후엔 칭다오 맥주공장엘 갈 참이라고 했다.
"행선지가 같군요. 혹시 그곳에서 다시 만나면 맥주라도 한잔 하지요." 하고는 나 먼저 나왔다. 물론 만나지 못했다.
종샨루(中山路)에서 타이동일루(台東一路)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생각했던 것보다 적지 앟은 거리를 갔다. 칭다오라는 도시를 내가 너무 작게 본 모양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가던 방향으로 조금 더 가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걸어 들어가면 칭다오피지우지에(靑道啤酒街) 즉 칭다오 맥주거리가 나온다. 아래 사진으 아치로 들어서면 바로 백주거리가 나온다.
주변엔 맥주거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즐비하다.
거리의 이름을 알리는 조형물이 눈에 띠고
바닥의 맨홀에도 칭다오 맥주거리의 특색을 가진 뚜껑을 덮어 두었다. 개같이 마시자는 의미일까 아님 술을 마셔도 개가 되지 말자는 의미일까.
닭도 마신다.
칭다오맥주 공장 겸 박물관이다. 전술한 바 있듯이 공장은 이거 하나뿐이 아니고 내가 본 것만도 세 군데였지만 칭다오맥주의 역사를 들여다 볼 수있는 박물관은 ㅇ리 곳에만 있다. 쓰임새가 있는 거대 관을 맥주캔 형상으로 형상화 한 것인지 아님 그냥 광고를 위한 설치물인지 모르겠지만(후자는 이닌 것 같은데) 어쨌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대로 찾아 왔다는 확신을 갖게 만든다.
도로변에 면한 칭다오맥주 전문매장이 공장의 울타리 역할을 했다.
칭다오피지우보우관(靑道啤酒博物館: 칭다오맥주박물관) 입구가 바로 이 곳이다. 입장료는 50위엔.
표를 사서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는 설치물이다. 칭다오맥주 공장이 2003년으로 100주년을 맞이한 것을 기념해 세운 설치물인 모양이다. 칭다오 맥주는 영국과 독일의 합자기업으로 설립되었으며 1945년 중국에 이양된 이 맥주공장이 박물관으로 공개되고 있다고 한다.
왼쪽으로 돌아들면 맥주병과 잔을 돌로 형상화한 분수가 철철거리며 맥주(?)를 쏟아내고 있다.
칭다오맥주의 100년역사를 기록한 대리석인 모양이다. 내가 전에 얼핏 주워들은 역사인지 야사인지 모를 이야기로는 이러하다.
청나라 말기 서구 열강들이 야욕을 드러내고 중국천하를 할거하던 당시 칭다오를 점령했던 나라가 바로 독일이었다. 모든 음식이 그렇겠지만 특히 물맛이 좋아야 맛있는 맥주를 빚을 수 있게 마련. 물이 맛없는 나라일수록 차문화가 발달했다. 물을 그나마 맛있게 먹자는 노력의 결과일 게다. 그렇게 따지자면 중국도 예외는 아니지만 칭다오 라오샨(崂山: 노산)의 물이 맛이 아주 좋더란다. 그래서 독일인들이 맥주를 빚어서 먹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칭다오 맥주의 유래라던가 뭐가 어쨌다던가. 중국의 뻘건혁명 이후 발이 묶이자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칭다오 맥주 경영자였던 독일인들이 남김없이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다는 이야기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가실인지 나는 모른다. 주워들은 이야기가 재미 있으니까 떠들기는 한다만 독일인들이 중국에 공장을 넘겨준 것이 1943년인데 뭔가 아구가 조금 안맞는 것은 중국에서 장선생과 모선생이 천하쟁패를 다투던 시절과 중복된다. 그럴 여력과 정신이 있었던건가? 모선생이 장선생한테 한참 밀리고 쫓겨 다니던 시절 아닌가?
박물관에도 코스가 있다. 이 곳이 첫번째 코스다. 과거의 사진과 오늘날의 사진을 겹쳐 보여준다. 한 안내인이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지시봉 끝에 생선은 왜 데롱데롱 매달았는지 모르겠지만 시각을 분산시키고 어지럽게 만들여고 한 짓이라면 그도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 셈이다.
당시의 공장을 미치어처로 만들어 디오라마를 구성했다.
여기엔 초창기의 맥주 레일블을 전시했다. 레이블 가운데를 들여다 보면 나치의 상징인 스바스티카까지 그려져 있다. 당시 사장님이 나치스당의 일원이라도 되었던건가?
옛날 냄새 물씬 나는 맥주병도 전시되어 있고
근거없는 추억을 자극하는 포스터도 전시되어 있다. 치파오를 입고 20세기 초 서양풍의 유행 헤어스타일을 한 모델이 칭다오 맥주를 한 잔 부어 들고 미소짓고 있다. 맥주잔을 약간 삐따닥한 각도로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리잔 안의 맥주는 중력의 법칙도 무시하고 기울지 않으니 그녀는 참 재주도 좋다.
유관장이 도원에서 형제의 의를 맺을 때도 칭다오 맥주를 썼는가?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유비의 모친은 이 귀한걸 어디에서 구하셨을꼬. 2차대전 당시 일본에 접수되었던 적도 있는지 하단에는 적색으로 "대일본맥주회사"라고 써 놓았다. 참 이놈의 맥주회사는 우여곡절도 많았군 그래.
당시 맥주 생산에 쓰였던 장비들도 선보인다.
엉성하긴 하지만 마네킹을 세워 놓고 당시의 맥주제조 장면을 재현해 좋았다.
거품이뽀글뽀글 올라오는 맥주를 한 마네킹이 들여다 보고 있다. 거품은 아작낸 스티로폼 쪼가리들로 채웠다.
10사람이 안에 들어가 목용을 해도 좋을 탱크와
거대 오크통도 전시해 놓았다.
세계의 맥주들을 쫘르르 전시해 놓은 공간도 있다. 세계의 맥주를 현지에서 사다 모으는 뜀도령이 이 사진 보면 뜀도령 꼭지 돌게 틀림 없다. 지독하게 맛없지만 한국에서만 희한하게 씨가 먹히는 호가든도 보이고 얼핏 카스도 보이는데 디자인이 으째 이리 불쌍해 보이는고...?
칭다오 맥주의 레이블들이 보인다. 시안에서 마셔보고 맛 좋다고 했던 그 한스맥주도 칭다오의 자회사나 뭐 그쯤 되었던 모양이군.
이 곳을 지나면 중간 쉼터가 나온다. 이 곳에서 표를 보여주면 자그마한 컵에 갖 생산된 칭다오 생맥주와 안주 한 봉지를 준다.
나도 표를 내보이자 스템프로 찍어 재활용 못하게 만든 뒤 아래와 가팅 맥주와 안주를 준다. 여기서 마시는 갓나온 시원한 칭다오 생맥주의 맛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약은 것들. 이거 이렇게 코스 중간에 감질나게 만들어 놓고 코스의 마지막 통로에는 직영 카페를 운영한다.
마지막으로 들러보는 생산시설들.
한쪽에선 맥주를 담을 빈병들이, 저 쪽에선 맥주가 병입되고 뚜껑이 덮여진 맥주병이 자동 시스템에 밀려 서로 부딫히는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개떼같이 몰려다닌다다.
여긴 또 뭘까 방 하나를 15도정도 기울여 놓고 그 안을 어지럽세 그려 놓았다. 아닌게 아니라 들어가 보니 어지럽다. 맥주 많이 마시고 들어가 보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벽면에는 음악성도 없으면서 분장만 기괴한 락그룹 키스와 레게뮤직의 대부 밥 말리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드디어 직영카페다. 구내식당보다 분위기는 더 꾸리다.
여기서 맥주 한 잔 안할 수 없지. 낮이라 딱 한 잔만 했다. 음 맛있어 맛있어. 이 곳에서 작은 병맥주 3병들이 박스세트를 5개 샀다. 나 하나 갖고 나머진 선물로 돌리느라고. 흑맥주가 있다는 사실은 이 날 알았고 무색의 투명 병포장도 이 날 처음 봤다. 이거 만만한 줄 알았다가 들고 숙소까지 돌아 오는데 죽는줄 알았다.
숙소로 돌아 오는 동안 3병 들이 맥주박스 5개를 들고 오는 동안 어지간히도 중노동에 시달렸다. 숙소 방향으로 가는 버스에도 사람들이 만만치 않았지만 짐은 바닥에 내려 놓고 곧 빈 자리를 얻어 앉았다. 하지만 공장에서 버스를 타러 가는 길과 버스에서 내려 숙소까지 부담스러운 짐을 들고 가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았던 탓에 이것 사고는 은근히 후회까지 했다. 짐을 내려놓고 잠깐 쉬고 다시 식사를 하러 나갔다. 비교적 깨끗하고 비교적 맛이 괜찮은 집으로 가자니 선택권이 별로 많지 않았다. 도착 첫 날 들렀던 그 집으로 갔다. 니우파이샤궈(牛排砂锅: 쇠갈비뚝배기)를 주문했다.
푸른야채를 볶아 놓은 요리의 이름이 뭔지 궁금했다. 중국의 야채볶음은 정말 맛있지만 뭐가 뭔지 알아야 주문을 하지. 근처에서 누군가 그걸 먹고 있었다. 직원에게 물어 보니 쏸롱통하오(蒜蓉茼蒿:마늘쑥갓) 마늘소를 넣은 쑥갓볶음 정도 되려나 보다. 통하오는 쑥갓을 의미하지만 우리네 먹는 쑥갓과는 생김새와 식감이 완전히 다르다. 씹다 보면 청량감이 느껴지는 그런 야채다. 이건 담에 혼자 이 것까지 주문해 먹기엔 너무 양이 많아 담에 먹기로 하고...
이게 쇠갈비 뚝배기다. 쇠고기와 오뎅 비스므리한 건더기를 넣고 끓였다. 맛은 갈비를 넣은 오뎅탕 맛이다. 여기에 공기밥 주문해 먹고 이 때만은 일체 음주를 하지 않았다. 그동안 넘 마니 마신 것 같아 살짝 피곤함도 느껴지고 내일은 라오샨(노산)으로 등산을 갈 참이기 때문이었다. 한국 음식과 비스므리한 이 음식을 김치 없이 먹으려니 이 것도 왠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
이 날은 일찍 쉬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대부분의 룸메이트들이 돌아와 있었다. 내 침대 윗부분에 설치된 에어컨을 틀어 놓고 있자니 워낙 낡은 고물이 되어서 달달거리고 덜그덕 거리며 어렵사리 찬기운을 뿜고 있었다. 그나마 이게 있으니 더위를 면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참인데 독일 처자가 다가와 모아쥔 두 손을 가슴에 포개고 조심스럽게 다가와 뭔가 물었다.
"어제 밤에 잘 때 에어컨 거기가 틀은거야?"
"맞어, 내가 틀었는데?"
"오늘 밤엔 아늘면 안될까?
간밤에 어지간히도 시끄러워 잠을 설쳤던 모양이다. 잘때 에어컨 틀어 놓은 것이 불편한지를 되물었더니 그녀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산 사람 소원 못들어 줄 이유는 또 뭔가. 알았다고 한 뒤 바로 에어컨을 꺼버리자 그녀는 더욱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당장 끄지 않아도 되는뎅..."
"아냐 괜찮아 지금은 별ㅇ로 덥지도 않은데 뭐."
차분하고 말꺼내기 조심스러워하던 그녀의 표정과 몸가짐이 지금 생각해도 인상적이다. 이 날도 에어컨을 켜지 않은채로 잤다. 그래서 그런지 그 소리도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흐응 흐으으으응~~ 흐허헝~~~! 덩치녀의 잠꼬대 신음이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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