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1 중국 the 3rd

칭다오로 땡땡이 3

코렐리 2011. 10. 27. 18:31

2011.9.10(토)

아침 8시 40분 정도가 되어서야 눈이 떠졌다. 이 날은 나만 여유를 부린 게 아니어서 다이 보어는 침대 위에서 책을 보고 있었고 독일 처자도, 스페인 처자도 그 때까지 이부자리를 뭉개다가 그 즈음에서야 일어나 부시시한 눈을 비비고 있었다. 밤새 가냘픈 신음 소릴 내며 자는동안 밤새 룸메이트들을 심심하지 않게 만든 덩치녀는 원피스를 입고 막 나갈 준비를 마친 참이었다. 이 중국인 덩치녀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는지 누구와도 잘 이야기를 나누질 않았다. 사실 그녀를 보고 덩치녀 덩치녀 하지만 스페인 처자와 독일 처자와 비교해도 그리 뚱뚱한 것도 아니었다. 막 일어나 침대에서 나오는 독일처자의 모습을 보니 잠옷 삼아 입은 짧은 스커트와 배꼽티 사이로 남쳐나는 살을 보고 나서야 독일 처자와 비교하면 중국 처자 역시 그리 살찐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페인 처자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짐을 뒤지느라 허리를 굽히면 그녀 역시 바지 골반선과 티셔츠 사이가 벌어져 등쪽부터 시작해 좌우로 푸짐한 살집을 과시했다. 그런데 왜 유독 중국인 처자만 덩치녀라고 생각했을까. 동양인들은 대개 살이 별로 찌지 않아 조금만 살찌고도 뚱뚱하다는 오해를 받는다. 반면 서양인들은 대부분 큰덩치에 살들이 많이 쪄서 그 정도면 살찐걸로 인식되지 않으니 비슷한 덩치에도 달라 보이니 희한한 일이었다. 다이보어도, 덩치녀도, 독일처자도, 스페인 처자도 모두 그 날의 일정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 조금 뒤 조용하던 방 문이 열리며 큰 키에 말라깽이 중국인 처자 한 명이 백인청년이 사용하고 나가 비어 있던 독일 처자의 윗침대로 배정받아 들어왔다. 북경에서 대학을 다니는 양원잉이라는 이름의 이 처자는 명랑한 성격에 목소리도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화통이었다. 그녀도 그날의 일정을 위해 짐을 풀고 곧 나갔다.

 

짐을 뒤져 이 날 입고 나갈 옷과 물건들을 챙기던 과정에서 비닐봉지를 비비적거리며 접던 소리에 "쉬잇!" 하며 불만의 표시를 하던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어 있는 줄 알았던 다이보어의 윗침대에는 언제부터 자리를 틀었는지 모르지만 40대의 백인 아줌마가 자리를 잡고 책을 누운채 보고 있었다. 일행과도 방을 따로 쓸 정도로 까칠한 이 아줌마는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작고 똥똥한 여인네인데다 말 한 마디 없으니 있는지도 몰랐다.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조용한 것을 원한다면 독방을 쓰던지 할일이지 도미토리 룸엔 도대체 왜 들어왔는지 이해가 안가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책을 상대로 레슬링을 하며 이부자릴 더 뭉개다가 씻고 밖으로 나선 시간은 10시 10분.

 

아점을 먹기 위해 전날 위치를 확인해 두었던 춘허로우로 가 봤다. 이제 막 문을 열고 바닥청소를 하고 있었다. 아침식사(?)가  가능한지를 물었더니 옆칸으로 가란다. 다른 식당으로 가란 소린 줄알았지만 아침식사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별도의 공간을 두고 있었다. 메뉴도 다르고 대부분 간단한 음식들 뿐이었다.

 

그래서 해삼닭고기 만두탕을 시켜봤다.

 

맹탕 국물에 흩어질 정도로 얇은 만두피 속에 약간의 만두속을 머금은 음식. 밍밍하고 맛도 별로였다. 역시 아침부터 맥주 땡기게 만드네 이것이. ㅡ,.ㅡ;

 

불만족스러우나마 대충 아점을 때우고는 팔대관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11:00)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갔을까. 내려서 15분 정도는 더 걸어야 했다.

 

차에서 내려 걷다 보니 팔대관경구 입구에 새끼 길고양이 한마리가 앉아 졸고 있어 다가가 봤다. 꼼짝도 않는다. 손을 내밀어 턱을 쓰다듬으니 눈을 감은채 목을 길게 늘여 나의 손의 이녀석이 자신의 몸을 맡겼다. 먹을게 있었다면 주었을테지만 없었다. 길을 떠나려 이녀석의 턱에서 손을 뗐는데 이 녀석은 길게 목을 늘여 내민 그 턱을 다시 당길 힘도 없어 늘어진 채 턱을 바닥에 힘없이 내렸다. 죽어가는 모양이었다. 가엾다. ㅜ,.ㅜ; 데려간들 한국에 데려 올 수 도 없고 호텔로 데려가면 그 담엔 어찌할꼬. 매정하지만 발길을 돌리는 수 밖에 없었다. 너 짐도 살아 있니?

 

팔대관경구는 정양관로, 영무관로 등 "관"자가 붙은 8개의 도로가 있어 8대관이라 칭하게 되었고 이 곳에 서양식 건물들이 즐비하다.

 

1949년 이전에는 관료와 자본가들의 별장이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일본식, 스페인식, 덴마크식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나는 이 곳 사방으로 트인 길에 심어진 가로수와 길이 예뻐 어느 건물이 어느 곳에 박혀 있는지 이 게 그 건물인지 저 건물인지 따지지 않고 슬슬 돌아다녔다.

 

여기 저기 예비 신랑신부드들이 사진을 찍으러 올 만큼 이 곳은 현지인들에게도 명소인 모양이다.

 

한 초등학교 담벼락 바깥에 내걸린 수상 기록들이 눈에 띤다. 방구 깨나 끼는 사람들의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인지 깨나 명문학교인가보다.

 

몇 개 건물들의 사진을 찍어봤다.

 

열심히 다 돌아 다니며 다 봤다고 생각했지만 뭐라더라... 그 가장 중요하다는 그 건물. 장개석 총통이 사용했다던 "화석루" 건물은 보지 못했다.

 

까짓거 못보면 어떻고 안보면 어떠리. 어차피 볼거리가 하도 없어서 볼거리라고 내민 건물들인데 걍 대충 둘러보면 그만이었다.

 

 

화석루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은 바닷가로 막 나와 팔대관경구로부터는 15분 이상 벗어난 거리에서야 알게 되었다. 미련? 없어.

 

저 멀리 방송탑인지 뭔지 하는 것이 보인다. 저 곳에 올라가면 칭다오 시내가 다 보인다지 아마? 저 멀리까지 언제 가노? 글구 소어산 공원 가니까 그정도 높이에서도 죄 다 내려다 보이드만. 역시 미련 읎스!

 

팔대관경구 남쪽에는 제2 해수욕장이 자리잡고 있다. 제2해수욕장을 중심으로 뚫린 해변길을 따라 쭐레쭐레 걸어봤다. 느긋하게 걷다 보니 어느새 전날 들르려다 말았던 루쉰공원이 나온다. 이 곳에는 해먹을 들고 나와 나무 사이에 설치하고 그 위에 편안하게 늘어진 시민들도 종종 눈에 띤다. 이 곳에 토끼도 아닌 고양이도 아닌 이상한 동물의 가면과 옷을 뒤집어 쓴 사람이 행인들에게 일일이 손짓을 하고 있었다.미소지으며 벌린 입 안으로 들여다 보이는 얼굴은 여자의 것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을터. 카메라의 번재물이 되어 주는 대신에 돈을 받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고객이 생기는지 어쩐지 유심히 봤다.

 

드디어 한 연인이 그 앞에 멈춰서며 남친은 카메라를 꺼냈고 여친은 캐릭터 옆에 섰다. 캐릭터는 여친을 껴안고 손을 맞잡고 까불까불 있는 포즈 없는 포즈 다해 서비스했다. 촬영을 끝낸 그들이 눈치없이 손을 흔들어 보답하고 가려 하자 캐릭터는 따라 나서며 손가락으로 돈 표식을 해 보였다. 순간 이 커플은 황당 내지는 당황의 표정을 얼굴에 담으며 뭔가를 물었다. "돈받는거였어여?" --- 아마도. 여친과 함께 그제야 돈을 꺼내며 황당해 하던 남친의 얼굴표정이 지금 생각해도 귀엽고 한편으론 웃음나온다.  

 

돌아다니다 보니 허기가 오기 시작했다. 주변 식당들이 그저 고만고만해 보였다. 일반적인 식사시간이 한참 지난 탓에 식당마다 썰렁해 어느 집이 그나마 사람이 꼬이는 곳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중 깨끗해 보이는 집으로 들어가 봤다.

 

칭다오의 다른 많은 식당과 마찬가지로 이 집도 어항 안에 각종 신선한 해산물이 그득히 꼼지락거렸다. 그 중 게를 두 마리 주문했다. 그 유명하다는 칭다오 가을 게를 안먹고 가서야 말이 안돼지.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암게는 없고 전부 숫게였다. 암게로 골라서 달라고 했지만 주인은 그 말에 약간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숫게 뿐이었다. 사실 뭐든지 수컷 보다는 암컷이 맛있게 마련인데 없는걸 보니 역시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란 속설이 맞나보다. 이건 좀 아닌가? ㅡ,.ㅡ; 어쨌든 게는 마리당 18위엔이었다. 한국에선 애꾸라면 모를까 다리 하나라도 떨어져 있으면 상품가치가 없지만 이 곳 칭다오에선 그렇게 잘생기면 왕따라도 당하는지 최소 다리 한 개 이상씩은 떨어지고 없다. 나는 어떠한 양념도 하지 말고 그냥 쪄달라고 주문했다. 곧이어 벌겋게 쪄진 남자게 두 마리가 시장기로 눈이 충혈된 나의 식탁에 올려졌다. 칭다오 맥주부터 한 병 시켜놓고 무자비하게 등딱지부터 벗긴 뒤 몸통은 물론 다리까지도 조금의 살점과 체액 한방울 남기지 않고 모조리 흡입했다. 강장동물이 먹고 뱉어내도 이 이상은 못할 거란 확신이 들 정도였다. 풍부한 맛과 혀를 감싸는 감칠맛. 고소하면서도 달디달다. 글을 쓰다 보니 그리운 맛이다. 오늘 당장이라도 시장통으로 달려가 게를 사다가 찔까보다.

 

남은 찌꺼기가 별로 없을 정도로 먹고 나니 한 번 발동 걸린 식탐이 다음 요리로 이어갔다. 바지락 볶음이다. 여기저기서 현지인들이 여기저기서 흔히 먹던 이 조개 볶음의 맛이 어떤지 궁금했다. 맛을 보면 확실히 많은 기름을 썼음이 맛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이 맛 또한 물에 삶거나 구워서 먹는 우리네 방식과는 완전히 달라 새로운 맛이다. 맛은 아주 좋다. 어지간히 배가 차기 시작했지만 이걸로는 어림 반쪽도 없다.

 

허름한 집이고 손님이라곤 나 한 사람 밖에 없었지만 이 집 요리솜씨는 아주 좋은 편이었다. 이 곳에서 대낮부터 마신 맥주는 세 병이나 되었다. 말이 그렇지 용량 큰 칭다오 맥주 3병을 대낮에 그렇게 마시는 것은 결코 작은 양이라고 할 수 없었다. 뒤늦게 먹는 점저(?)를 먹는 내가 이미 식탐이 들기 시작했으니 싫증날 때까지 먹어 볼 심산이었다.

 

이 번엔 전복요리로 바꿔봤다.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30위엔X2마리)나 주문했다. 한 접시에 나올 줄 알았더니 마리 단위로 나오는 요리인지 작은 종지 같은 접시에 간장과 기름이 흥건하게 담아 그 위에 요리된 전복이 파를 뒤집어 쓰고 나란히 나왔다. 간장소스는 결코 짜지는 않았고 조리된 전복은 먹기 좋게 잘라 내 온 것이 아니고 양념이 잘 배도록 칼집만 내놓았다. 맛을 보니 전복 자체의 맛을 살리기 위해 양념과 향신료는 최소화했다. 먹기 좋게 잘라 주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입으로 베어물어 가며 먹었는데 쫄깃한 식감과 살짝 스민 간장의 맛과 전복 자체의 향이 어우러져 입 안에 음식을 이리저리 씹으며 혀끝을 희롱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내장 부위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남은 것 없이 다 먹고 난 뒤에야 만족스럽게 불룩한 배를 두드리며 나왔다. 대낮에 얼굴이 시뻘개져 시내를 다니는 것도(그것도 외국인이) 그리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싶어 한 병 더 주문하려다 말았다.

 

먹고 나면 운동 삼아 걷는게 좋겠지만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어서 버스를 탔다.

 

종샨루에서 내려 갈어서 숙소를 향해 갔다.

 

가다 보니 전날 본 것보다 더 심한 장면 나온다. 각종 먼지와 분진이 나부끼고 각종 공해가 자욱한 도심 한복판 길바닥에 깔아 놓은 것도 없이 해산물을 말리니 이건 더 충격적이다. 고양이 오줌, 누군가 밟은 오물, 공장에서 나온 탄소분자, 빗물에 섞였던 소량의 방사능, 공장지대의 흙덩어리 모두모두 모여라 노올자....! ㅡ,.ㅡ; 

 

돌아 가면서 아쉬운 알콜을 채우기 위해 칭다오 두 캔과 양념 먹은 건어물을 간식거리로 샀다. 다이 보어에게 한 캔 권했지만 생각이 없단다. 혼자 마셨다. 포장 건어물을 뜯어 맛을 봤다. 이제 까지 먹어본 중 최악이었다. 먹자니 지겹도록 맛없고 음식을 함부로 버리자니 맘에 걸리고... 이것도 참 진상이다.

 

맥주 두 캔을 잠깐 사이에 다 들이켰다. 이거 갖고는 역시 부족했다. 잠깐 화장실 갔다가 방으로 들어설 때 양원잉군이 복도 반대편에서 오며 날 보더니 예의 그 큰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고 나 오늘 피곤해서 죽는줄 알았댕깐"

바깥이었지만 내가 방으로 들어가면서 이제 막 문을 열고 들어서던 참이어서 방 안으로 다 들리긴 했을터였다. 다이 보어의 윗침대에서 책을보던 똥똥한 서양아줌마가 있음을 이미 본지라 살짝 눈치를 줬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줌마 또 "쉬잇" 하며 불만의 표시를 했다. 이 때는 밥맛 더럽게 없는 이 아줌마에 대해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해도 떨어지지 않은 초저녁에 방안에서 어떤 소리도 용납 못하는 것은 오히려 룸메이트들에게 피해를 주는 괴벽이 아닌가. 어지간한 나였지만 한 마디 목구멍까지 나온 것을 도로 삼켰다. 오늘 저녁과 내일 저녁 지나면 안봐도 되는 얼굴인데 그 때까지 서로 얼굴 붉일 일은 또 뭔가. 어쨌든 나는 양원잉군과 다이보어군에게 한 잔 하자고 제안했지만 다이 보어 군은 원래 술을 하지 않고 양원잉군은 피곤해서 일찍 자겠단다. 그런다고 내가 안먹으랴. 1층 바(bar)로 내려갔다. 바텐더군과 노닥거리며 칭다오 맥주 한 병을 다 비워갈 때 쯤 생각이 바뀌었는지 양원잉군이 따라 내려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칭다오 맥주를 주문하기에 먹자고 했던 내가 값을 지불하니 그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스스로 계산했다. 아래 사진의 왼쪽은 양원잉군. 오른쪽은 날마다 나를 반갑게 맞아준 바텐더 직원. 덩치 좋게 잘생긴 남자였다. 

 

아래 사진은 세 명의 바 직원 중 약간은 중성적인 매력을 가진 한 명이다. 물론 여자다. 직원은 모두 세 명이었는데 모두 유창한 영어실력을 과시했다. 매일 저녁 가서 마시다 보니 이젠 그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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