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3(일) 계속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필라토의 집(Casa de Pilato). 필라토는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이스라엘의 로마인 총독 빌라도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소된 예수로부터 아무런 혐의점도 찾아내지 못한 그가 성난 군중의 폭동 움직임을 두려워 결국 자신의 소신과 달리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게 한 장본인이다. 그러면 이름 그대로 이 집이 빌라도의 집인가? 그건 아니라고 한다. 이스라엘 총독으로 있던 빌라도의 성관을 모델로 하여 지은 집이라 그렇게 부른다고 하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오리무중. 아래의 사진이 그 외관이다. 기둥과 아치는 이슬람식이고 윤곽과 창은 서양식이다. 바로 무하데르 양식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회랑이 둘러싼 정방형의 뜰이 나오는데 그 뜰을 중심으로 회랑이 있고 네 개의 각에는 조각상을 배치하고 가운데는 대리석 분수대를 두었다.
회랑의 안쪽 벽면은 전형적인 이슬람 양식으로 화려한 타일과 섬세한 문양으로 장식했지만 우상숭배를 철저히 금기시 하는 이슬람인들은 인간이나 동물의 형상을 절대 건물 장식에 도입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층부에 둥근 틀을 넣고 그 안에 로마의 신 또는 황제로 보이는 상들을 배치했다.
안 쪽으로 들어가 보면 벽면과 출입구는 이슬람식이지만
천장에는 유럽식 문장이 자리하고 있다. 역시 섞어찌개다.
전시된 이 장식은 어디에서 떨어져 나온 것인지 모르니까 원위치에 있질 않은거겠지?
이 곳을 보면 영락없는 로마네스크 양식인 것 같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아담한 정원이 있다. 2층으로는 올라갈 수 가 없었다. 2층 실내 개방은 시간이 정해져 있고, 투어를 따라 가야 하는데 그 시간이 15:00로 예정되어 있었다.
정원의 한켠에는 안으로 움푹 파들어가 쫄쫄이 물을 뿜는 작은 연못이 있다. 그 위에 섹시한 척 하고 벌렁 자빠져 계신 댁은 뉘신지? 비너스? 아프로디테? 에로스? 암 것두 아님서 괜히 그런척 하시는거지? 암튼 이상혀 이런데는 어쩌자구 동전이 좌악 깔렸는지... 관리인의 짭짤한 부수입 되겠다.
나는 근처에서 적당한 식당을 찾아 보았다. 주변엔 피자집과 패스트푸드점이 많았다. 그 중 고른 곳이 이집이었다. 우리말로 하면 디에고의 집 되겠다.
오징어 구이가 맛있어 보였다. 나는 늦어도 오후 2시 50분에는 식사를 마치고 이 곳을 나가야 하는데 그 만큼 빨리 오징어 구이 요리를 내 줄 수 있는지부터 물었다. 당시 시간은 2시 20분이었다. 그는 금방 나온다며 나의 답변을 기다리느라 내 눈을 빤히 쳐다 보며 무언으로 어찌하오리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무언의 주문을 했다. 한치처럼 자그마한 오징어 7마리를 다리 없이 그릴에 구워 갓튀긴 감자튀김과 양상추 샐러드를 함께 내놓았다. 그 위에 묽은 녹색 소스를 흥건하게 골고루 뿌려 주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맥주를 찔끔거리던 나는 음식이 나오자 입맛을 다시며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오징어를 잘라 입에 넣었다. 숫불에 구워 향긋하고 담백한 오징어는 신선했고 그 위에 뿌려진 상큼한 소스가 어우러져 기막힌 맛을 냈다. 오우, 이거 정말 죽이는데...
서둘러 곱창을 채우고 나가겠단 생각이 갑자기 없어졌다. 이런 음식은 천천히 즐겨야지 어찌 순대 채우는 일에만 몰두할쏘냐. 눈까지 감아가며 씹는 이 맛은 그야말로 이제까지 먹어 본 그 어떤 오징어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맛이었고 그 맛이 지금도 그리울 정도다. 그런데 은근히 마음이 급한 가운데 누리던 여유있는 즐김이 댓가가 되어 되돌아 왔다. 시계를 보니 정각 3시였다. 서둘러 계산을 마치고 발바닥이 안보이게 뛰었다. 이미 늦었다. 투어가 이미 시작되었다. 지금이라도 놓으니 입장시켜 달라고 간청해 봤다. 짤이 없다. 방법은 두가지 17:00에 한 번 더 투어가 있으니 그 때 참여하든지 아님 나머지 금액을 환불받던지. 아직 안 가본 곳들이 적지 않은데 총알 맞았냐. 이거 하나에 매달리게. 푼돈을 환불받은 나는 미련을 버리고 세비야 대학과 마리아 루이사 공원 방향으로 틀었다.
궁상맞은 겨울비가 부슬부슬 오락가락했다. 한기가 느껴져 기념품점에 들어가 티셔츠를 하나 골라봤다.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 나왔다. 검정 셔츠에 세비야라고 가슴에 쓰여져 있는 단순한 디자인인데 군용 얼룩무니로 오려낸 글자를 오버록으로 고정한 것이었다. 적혀 있는 가격을 보니 10유로. 10유로짜리 지폐 하나 내놓았더니 세일기간이라나 2유로를 돌려 준다. 이제까지 스페인에서 본 티셔츠는 정열적인 그들의 분위기가 반영되어서인지 시뻘건 바탕에 시커먼 소가 그려진 경우가 많고 울긋불긋한게 많았다. 달고 있는 머리만큼이나 단순한걸 좋아하는 내가 보기엔 가장 예쁘구만 값도 아주 저렴해 좋다. 한기를 밀봉하기 위해 산 것이니만큼 화장실로 가 입고 있던 웃옷을 홀랑 벗고 안에 받쳐 입은 뒤 다시 입으니 한기가 사라졌다. 런닝 셔츠의 보온력을 티셔츠로 대신한 셈이다. 몸이 포근해지자 다니기가 한결 좋아졌다. 이번엔 새로운 문제거리가 생겼다. 뱃속에서 개구리 합창이 울려 오고 부글거리는 뱃속은 뭔가 아래로 집중되는 느낌이었다.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이런 때는 화장실부터 찾는게 상책이었다. 장도 좋지 않은 주제에 매끼 식사때마다 맥주를 찾아대니 이놈의 장이 참다 못했는지 보복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아까 옷을 샀던 그 기념품 가게로 가자니 이미 너무 많은 길을 걸어 왔다. 마침 같은 숙소에 묵는 한국인 처자들 중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묵고 있던 30대 중반의 왕언니와 그 일행 1명을 만났다. 속은 끓고 후장은 잔뜩 긴장한 상태였지만 나는 그들을 만나자마자 반가운체부터 했다.
"어으으..., 안녕하...세요. 어늘 그경 마니 했어여?"
"그냥 여기저기 걸어 다녔어요. 오늘 어디 다니셨나여?"
아무것도 이 때는 생각나지 않았다. 태연한 척 했지만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헉시.. 으읍... 어어엄... 오다가다 후아장실 모..옷 보션나여...?"
지금 기억에 나는 있는대로 몸을 꼬았지만 안꼬는척 얼굴에는 미소까지 지어 보았다.
"저 쪽으로 가시면 무슨 관공서 같은 곳이 있던데요."
"그렇군요. 즐겁게 보내시고 저녁 때 부엡....지요."
꼴에 아닌척 하느라 그들이 나를 먼 저 등질때까지 손까지 흔들어 보였다. 그들이 가던 길을 가자 나는 최대한 뒷꼭지에 힘을 주고 보폭으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며 총총걸음으로 가봤다. 쬐금만 참자 쬐금만.... 어...! 가다 말고 비상시를 생각해 어디로 들어가면 으슥해서 누가 들어가 무슨짓을 해도 남들은 알 수 없는 곳은 없을까 잔머리를 굴려봤다. 그런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드디어 문제의 관공선지 뭔지 하는 곳에 도착했다. 보나마다 상체는 위축되고 엉덩이는 뒤로뺀 어정쩡한 폼이었을게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 아는척 하느라 나를 툭 치거나 나로 하여금 웃게 만들면 그 인간은 영원한 죽일놈이 될 판이었다.
"후아장...실 좀 쓸 수 있나여..."
하지만 그 곳을 혼자 지키고 있던 여직원은 절망적인 소리를 했다.
"여긴 화장실이 없어요."
"어걱...! 그럼 가까운 곳에 화장실이 좀 있나요?"
"저 쪽 저 건물로 가 보세요."
그녀의 말투에는 도대체 확신이란 냄새가 묻어나질 않았다. 지금 기억에 늘씬한 키에 금발에 정장을 하고 있던 그녀가 마귀할멈 같이 보였다. 이런 젠장. 확신도 없이 그 곳까지 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곳이었지만 똥줄이 타는 아니 똥줄이 울먹울먹하는 놈에겐 비행기를 타고 가도 시원찮을 거리였다. 그 곳에 들어서자 마자 아무나 붙잡고 물어봤다.
"여기 화장실이 어딨나요?"
나가다 말고 나 때문에 걸음을 멈춘 그는 건물 내에서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가 주변을 돌아 보는데 복장 터지는 줄 알았다. 나도 둘러 볼 줄은 안다 이거지. 다만 그럴 여유가 없는거지 이 웬수야!
"없는거 같은데요..."
그의 친절에 나는 속으로 배신을 했다.
"잘라따 웬수야."
그 순간 처자들과 헤어진 곳에서 이 곳까지 오면서 왼쪽에 무슨 공원 같은게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리로 되돌아 공원내 건물 쪽으로 때로는 게걸음으로 때로는 팔자걸음으로 간신히 가 봤다. 이젠 인내력의 한계에 다다랐는지 똥꼬도 절규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내가 입고 간 바지는 짐을 줄이기 위해 여벌 없는 단벌이었음도 아울러 상기되었다. 이제는 사고가 났을 때는 어찌해야 하는지까지 머릴 굴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공원 관리인으로 보이는 이에게 물었지만 역시 이 공원엔 화장실이 없다는 절망적인 소리만 돌아왔다. 으아~~~! 주아저...ㄹ OTL
여행 가면 돈도 짐도 다 잃어버려도 괜찮지만 카메라나 사진을 찍은 칩을 잃어버리는 것은 여행 자체가 송두리째 무의미해지기에 그런 일은 악몽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때는 누군가 화장실을 눈앞에 내려놓고 카메라와 칩을 요구하면 서둘러 내줄 것 같은 간절함과 절박함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물론 화장실에서 나오면 카메라를 받아 가는 놈을 뒤에서 퍽치기 할거지만.
바로 그 때 전날 점심을 먹었던 식당에는 실내 화장실도 있지만 실외 화장실도 있었다는 사실이 어렵지 않게 상기 되었다. 이 곳에서 멀지 않다. 그러나 멀지 않다는 기준은 심신에 아무런 동요도 없는 사람한테나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남은 방법은 그리로 가면서 누가 이기나 겨뤄보는 것 뿐이었다. 물론 상대는 똥꼬. 지금 생각해 봐도 기적같은 일이었다. 거기까지 그놈을 제압해 가며 어떻게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무리 급하고 아무리 화장실이 깨끗해도 공중화장실의 좌변기에는 휴지를 길게 뜯어 시트(?)를 깔고 앉는 습관이 있는 나도 도착하자마자 기냥 주저 앉았다. 다행이 시트 깔개가 내려져 있었지만 전부다 세워져 있었어도 그냥 주저 앉았을게 틀림없었다. 어느 영화에서는 젊잖은 숙녀가 화장실로 급히 가 덮여져 있던 뚜껑을 황급히 열고 앉았지만 그놈의 뚜껑이 등뒤 물탱크에 부딫혀 반동으로 튕겨져 다시 덮인 뚜껑 위로 주저앉아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내는 장면도 그 순간에 떠올랐다. 참 짧은 시간에 별 생각도 다했다.
카타르시스, 카타르시스, 카타르시스... 뿌지지이이익.....! 후아아...오... 이 해방감을 어디에서 또 만끽하리. 만쉐이! 만쉐이!
나는 마음 속이었지만 비명에 가까운 환성을 질러 보았다. 행복이란 바로 이런게 아닌가. 프로이트는 배변의 카타르시스도 일종의 성욕의 해소와 같은 맥락에서 봤는데 그래서 그런지 절박함이 해소되고 이미 마음이 넉넉해진 나는 이후 누굴 만나더라도 예뻐 보일 것 같았다. 세상도 아름다워 보였다. 으하하... 지금 생각해 봐도 시원하기 그지없다.
풍만한 해방감을 가슴에 품은 나는 그 공원으로 다시 가봤다. 강원도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다. 아니 참 금강산이군. 이건 적절치 못하다 금강산도 배변후경일쎄.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이 있나. 허허허...
이 공원이 마리아 루이사 공원(Parque de Maria Luisa)이다. 화장실을 찾아 헤매던 곳 중 하나였다. 그 때는 몰랐다. 이 곳이 그렇게 멋진 곳이었는지. 역시 배변후경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똥싸고 나니 이제 이 공원의 아름다움이 나의 심미안을 자극했다.
보는 바와 같이 이 건물은 휘어져 있어 건물 끝에 서서 반대편 끝을 볼 수 있다. 반원형 건물이 공원의 반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아래 사진은 2층에서 폐쇄된 공간을 향해 찍은 사진이다.
건물은 특이하면서도 무척 아름다운 형태를 갖추고있다. 19세기에 지어진 산 텔모 궁전의 일부라고 한다. 건물의 건축양식은 무하데르 양식으로 보인다. 무언가 정열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준다.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바닥타일이 깔린 광장은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na)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의 전면으로는 물길이 지나고 있고 광장과 궁전 건물을 잇는 다리는 그다지 튼튼해 보이지 않는다.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계산이 깔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비상시에 다리를 파손하고 나면 물길은 최후의 보루로 해자 역할을 톡톡히 해 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반원형의 건물도 사실 독특하고 아름답지만 역시 이면에는 방어자의 공격에 용이하도록 적을 한 곳으로 집중 시키자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라구? 아님 말지.
건물에서 내려다 보면 반원형의 건물을 따라 타일로 스페인 각지의 지도를 타일로 깔아 장식했고 그 사이 사이에는 벤치를 놓고 역시 타일로 장식했다. 무척이나 눈길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장식이 아닐 수 있었다.
이 건물을 무하데르 양식으로 보는 이유는 이 타일 장식과 1층의 아치와 기둥이다. 비는 이 때까지도 오락가락하며 부슬거렸다. 잠시 셀카로 개폼 한 컷.
다리 역시 아름다운 타일로 섬세하게 장식되어 있고 난간은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다. 물론 다리를 직접 붕괴시켜 본 적은 없지만 왠지 이따만한 해머로 몇 번 치면 그냥 헐릴 것 같은... 하지만 이렇게 섬세하고 감각적인 다리도 흔치 않은듯 하다.
벽돌로 쌓아올린 건물 여기저기에 청색 타일 장식이 박혀 있는 것이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슬슬 걸으며 이 건물을 뜯어 보다 보니 반대편 끝에 도달했다. 이 때까지도 비는 부슬거렸지만 등산복 점퍼를 입은 탓에 옷은 젖지 않아 춥거나 눅눅한 불쾌감은 없었다. 다만 블랙진이 좀 눅눅한게 흠이긴 했지만...
마지막 다리를 건너 스페인 광장으로 옮기려다 물길 건너편에 연하군이 손을 흔들며 아는체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돌아 다니다 보니 같은 숙소의 웬만한 사람들은 죄 다 만나는군.
연하군이 찍어준 사진이다.
연하군과 서로 사진을 찍어 주고 헤어진 뒤 나는 이 곳을 떠나 세비야 대학으로 가 보았다.
이 건물 달랑 하나 있지만 이름은 세비야 대학이다. 문이 굳게 잠겨 있었으니 들어가 볼 방법은 없었다. 젠장. 이 대학의 학생들은 아무리 방학이라지만 공부도 안하나. 어쩌자구 죄 다 잠가 놓았는지. 함 들어가 보고 싶어 한 바퀴 돌아 보았지만 어디에도 개방된 곳은 없었다. 설마 내가 개방한 입구를 못찾은거겠지. 이 건물은 18세기 중기에 세워진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건물 자체의 장식이 볼만하다. 지금은 대학 건물로 사용되고 있지만 전에는 담배공장이었다. 공장 건물 자체를 이렇게 아름답게 세워 놓은 것 자체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돌로 지어진 건물의 중앙 현관 상단에는 이 건물이 담배공장이엇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Fabrica de Tabacos라는 표기가 지금도 깊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서 주인공인 카르멘이 동료 여공과 머리채를 끌어잡고 뒹굴며 드잡이 하다 돈 호세에게 체포되는 배경인 문제의 담배 공장이 바로 이 곳이다. 돈 호세가 여기서 부르는 유명한 아리아가 생각난다.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아, 이게 아니었군.
이제 초저녁이 되어 잠깐 머리를 굴려 보았다. 산타 파울라 수도원은 오후 1시까지만 개방하니 가 봐야 소용도 없고 마카레나 교회당은 지도상의 볼거리 중 가장 먼 곳이라 귀찮아졌다. 자선 병원은 어제 찾다 찾다 열받아서 포기 했으니 더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면... 다 본거넹?
나는 하릴 없이 주변을 좀 거닐다.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이미 체크 아웃을 마치고 짐은 프론트에 맡겨둔 상태였다. 그라나다로 떠나는 버스는 저녁 8시와 11시에 있으니 8시 차를 탄다 해도 시간이 무척 많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대충 기억에 5시가 갓 넘었거나 했던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 보니 호텔 프론트에 연하군이 이미 돌아와 혼자 앉아 있었다.
"뭐해요."
"암것두 안해요."
"심심하면 나 8시 차로 떠날 참이고 지금 저녁 먹고 터미널로 갈껀데 저녁이나 같이 먹읍시다."
"뭐 드실건데요?"
"연하씨 좋아하는거 사줄테니까 일단 나갑시다."
"정말요? 이야..."
여자들이란... ㅡ,.ㅡ;
마침 함께 나가려다 그날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우르르 몰려 들어오던 처자들과 만나자 순간 약간 당황했다. 한 두 사람은 사줄수도 있지만 일케 많으면 야그가... 나는 거기서 작별 인사를 했다. 연하군도 내 눈치를 읽었는지 나와는 길이 다른척 했다. ㅡ,.ㅡ;
전날 플라멩코 공연을 보기 위해 가다가 지나쳤던 레스토랑인데 그 때 눈여겨 보던 곳이다. 보통 저녁식사를 중시하는 나로선 이 때 가려고 봐두었던 곳이다.
안은 무척 운치가 있었다.
연하군은 스페인에서 장시간 머무는 중이라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밥을 사먹기 보다는 주로 취사를 택했고 외식을 해도 거의 샌드위치 수준이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다 그만 두고 다른 것을 해보겠다고 하던 중 스페인행을 결심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별다르게 하는 것 없이 3개월동안 에스파뇰을 공부했단다. 그래서 그런지 연하군은 현지인과의 대화를 가급적 에스파뇰로 했고 그런대로 잘했다. 오징어먹물 빠에야와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맥주를 주문했더니 어지간히 좋아한다. 이렇게 푸짐한 식사는 몇 개월만에 처음이라나. 음식 맛은 이 곳도 완전 굿이었다. 장거리 버스를 탈 것을 감안해 맥주는 두 잔만 마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7시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8시차 타려면 이제 가 보셔야 하지 않아요? 연하군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사실 이 곳에서 터미널까지는 10분이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40분에 나가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판단은 실수였다. 7시 40분에 연하군과 헤어져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7시 50분이었다. 그러잖아도 생각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매표소에는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아 이런 젠장 곱배기를 봤나. 지금 바로 표사서 승차장으로 가면 딱인데 ㅡ,.ㅡ;
줄서서 기다리는 동안 결국 20:00시가 넘어 버렸고 계산까지 끝내고 표를 손아귀에 쥔 시간을 확인해 보니 20:05시였다. 젠장 약간의 시간차 때문에 23:00시차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엄청난 후회가 몰려왔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터미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서 기다리는 시간은 엄청나게 지루했다. 밥은 이미 먹어 뱃속이 그들먹한데다 가게마다 죄 다 문닫을 시간이니 남은 시간 어디 가서 때우기도 막막했다. 밤 9시가 되어 구내 카페테리아에 들어가 에스프레소 한잔 주문해 앉았다. 좋다. 여기서 두시간 개긴다. 10시가 되자 자루 걸레를 밀고 다니기 시작했다. 좀 지나니 10:30에는 문닫아야 한다고 나가 달란다. 대합실로 다시 나온 나머지 시간은 어지간히도 안갔다. 현지에 도착하면 꼭두 새벽에 도착하게 생겼다. 시간이 되어(23:00) 버스에 올라탄(19.93유로) 나는 일단 잠부터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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