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3(일)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이 날 하루의 일정을 마친 후에는 그라나다로 떠날 참이다. 이 날 아침은 다른 날보다도 무척이나 차가웠다. 그라나다에서는 눈이 온다는 헛소문(?)도 들렸다. 혹시 모르지 소량의 눈이 온 뒤 내가 갔을 때는 쌓이기도 전에 녹아 없어졌는지도. 어쨌든 나는 폴라 티셔츠와 방풍점퍼를 입고도 한기가 느껴졌다. 런닝 셔츠의 탁월한 보온력을 포기하고 왔을 때는 이 곳의 겨울 날씨를 너무 과소평가한 데다 짐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면 티셔츠라도 하나 사입기 위해 기념품 가게마다 마음에 드는 티셔츠가 있는지 눈여겨 봤지만 하나같이 후져보였다. 나는 어제부터 찾기 시작한 자선병원부터 이 날도 다시 찾아 다녔다. 지도를 들여다 보면 분명 숙소에서도 멀지 않고 카테드랄로부터도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었다. 이는 돈 조반니 또는 돈 후안으로 알려진 희대의 바람둥이 미구엘 데 마냐라가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회개하고 수도승 같은 생활을 하며 지은 병원이라고 한다. 근처만 몇 바퀴를 돌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고자 물어 보면 모르거나 일러준 방향으로는 가봐야 같은 곳만 뱅뱅 돌게 만들었다. 헤매고 다니는 것도 거리를 충분히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상당한 즐거움을 주지만 같은 곳만 뱅뱅돌면 짜증나서 돌아 버린다. 나중엔 진짜로 화가 나서 지금 당장 눈 앞에 나타나도 더러워서 안들어간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방향을 틀었다. 고급 부티끄가 있는 한 건물에는 멋진 흑백 대형 사진들이 걸려 있어 이 것도 볼만했다.
이 곳은 카테드랄 바로 옆 왕궁(Real Alcazar)이다. 붉은 정문과 단정하게 각진 성곽이 인상적이다(11:20)
안에 들어가자 정원과 성벽 너머로 이슬람 양식의 궁전이 나온다.
건물은 이슬람의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로코의 양식과 기독교도들의 양식이 혼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처마와 창 그리고 벽 장식 모두가 이슬람 양식이다. 특히 모로코에서 많이 보아 온 양식이다.
이 곳의 터는 원래 12세기 후반 이슬람 세력이 세운 성채였으나 14세기에 페드로 1세가 건설한 궁전이다. 지금 남아 있는 건축물은 이슬람 성터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페드로 1세의 무하데르 양식의 궁전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었다. 페드로 1세는 잔혹왕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그라나다 왕국의 건축가들이 이 왕궁을 건설하는데 참여했다고도 한다. 후에 가 본 알함브라 궁전은 그런 설을 사실로 입증하려는듯 가둥과 처녀 장식등 이슬람적인 양식에는 매우 흡사... 아니 아주 닮았다. 공개된 공간 중 첫 번째로 들르게 되는 방이다. 그대한 그림 하나가 걸려 있는데 여기에 대한 설명이 어딜 봐도 없다. 뭐하는 장면인지...
이 방은 그 자체로도 화려함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천장이 금빛으로 빗나는데 그 장식이 화려하기 그지없고 역대 왕들의 문장으로 보이는 붉은색 휘장을 여러개 드리웠다.
곳곳의 벽장식이 아래의 사진처럼 화려하게 자리잡았고 모로코식 타일도 많이 사용되었다.
건물 내부 곳곳이 이슬람식 아치와 문양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
반면 이슬람 양식은 전혀 보이지 않는 서양식의 방도 종종 눈에 띤다.
무하데르 양식이라고는 하지만 이슬람 양식과 기독교의 양식이 뒤섞이기 보다는 이슬람 양식의 공간과 서양식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옳은 것 같다.
벽을 장식하는 텍스타일에는 대항해 시대의 개척 장면을 주제로 한 장식이 무척이나 세밀하게 수놓아져 있어 볼만하다.
정원에는 야자수와 분수 등이 설치되어 있어 청둥오리까지 노닌다.
단정하게 정리해 놓은 정원수와 길게 이어진 발코니를 통해 내려다 보는 정원은 편안한 휴식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참으로 극과 극인 것 같다. 서양식으로 만들어진 타일은 투박하고 보잘것 없다. 12세기와 13세기에는 모로코식 타일을 사용하다가 16세기에 이르러 나름 자기네 스타일을 구축했다고 하는데...
아주 조금 미안한 이야긴데 시골 이발소 물탱크에 박아 놓으면 딱일 것 같다. ㅡ,.ㅡ;
황금빛 찬란한 이슬람식 공간이 이와 무척 대비된다.
정원을 더 거닐어 본 뒤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왔다.(12:50)
이 카테드랄은 이 곳 세비야에 머무는 동안 수도 없이 본 것 같다. 그만큼 이 곳이 관광에 있어 중심적인 곳인 탓이다.
새삼스럽게 카테드랄을 배경으로 폼 한 번 잡아봤다.
바로 옆 자그마한 성당이 열려 있어 함 들어가 보았다. 아주 작고 작은 성당 안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아래 사진의 사람들이 넋을 놓고 보는 것은 바로
화려한 성모상 때문이었다. 소박하고 단정하지만 아름다운 성모상은 수도 없이 많이 봤다. 화려함의 정도가 극에 달한 성모상에 나는 고개가 오히려 갸웃거려진다. 종교의 힘이 위대한 문화를 만들어내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건 좀 오버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번엔 에스페란사 투우 경기장으로 가봤다. 스페인에 머무르는 동안 투우는 꼭 한 번 보겠다고 다짐하고 왔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이 곳 투우장은 1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스페인에서도 두 번째로 오래된 곳이라 한다. 안으로 들어가 혹시 이 날 경기가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경기는 없고 투어 프로그램이 운영중이었다. 표값도 비싼데다 특이할 것도 없는 이 곳에 투어 시작시간인 오후 세시까지 기다릴 시간을 투자하기도 아까웠다. 걍 외부에서만 생겨먹은 모양새를 보고 그냥 지나쳤다.
이번엔 필라토의 집으로 발길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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