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1 스페인·포르투갈

하이 이베리아6-2(세비야)

코렐리 2011. 3. 9. 13:41

2011.1.22(토) 계속

아래의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이 카테드랄(대성당)은 십자 형태로 지어져 있고 가장 높은 십자 형태는 신랑이며 그 좌우 낮은 지붕은 측랑과 소미사실 및 성구실인 셈이다. 종탑을 제외하면 이 상층부는 보는 사람이 없을터인데도 이렇게 까지 섬세하게 장식된 것을 보면 유럽인들의 근성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종교의 힘으로 봐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지만 헐벗던 중세 민중의 생활고를 생각하면 과연 그 엄청난 재원이 소요되는 이 카테드랄을 짓는 것이 그 종교적 의미에 얼마나 부합할지는 의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탑에 올라서서 내려다 보면 멋진 세비야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아래의 사진은 십자가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인 것 같다.

 

지붕위의 난간장식만도 상당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종들 한꺼번에 울리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놀라 자빠지겠지...

 

카테드랄 내부는 아직 다 둘러보지 못한 상태였기에 다시 내려와 마저 둘러 보았다. 이 곳은 제단 뒷부분으로 십자가 형태의 중앙과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다. 섬세하고 화려하게 조각되고 세워졌지만 워낙에 어마어마한 규모와 높이에 있기에 뜯어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나머지 소미사실들도 둘러 보았다. 사진들은 그 중 몇 개 골라서 찍어 본 일부 사진들에 불과하다. 이 것을 모두 다 보고 나오는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내 경우 2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성구실에 전시된 성물들은 화려함과 섬세함에 놀라움을 감추기 어렵다. 금과 보석으로 만들어진 성구들을 모아들임으로써 고위 성직자들이 재산에 대한 명분을 쌓는데 악용되었을거라는 생각은 나의 지나친 비약인가...

 

아래 사진의 방은 원형으로 지어졌으며 Sala Capitula라고 명명되어 있다. 무슨 뜻이냐면... 당시에 챙겨온 자료에는 온통 에스파뇰이라... ㅡ,.ㅡ; 당시에 집어 온 팸플릿이 이 것 뿐이었는지 아님 영어로 된 것이 있는데 그걸 모르고 아무거나 집어 온 것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ㅡ,.ㅡ;

 

 

지붕은 돔형태이고 화려하고 장식적인 이 방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았다.  걸려 있는 성화는 아마도 성 마리아의 승천을 묘사한 것 같다.

 

아래 사진의 방이 Sacritia Mayor이라 불리는 방이다.

 

벽과 천장은 온갖 부조들로 가득 메워져 있고 가하학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벽에 걸린 성화들만도 무척이나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아래의 사진은 Sepulcro de Cristobal Colon이라 불리는 설치물로 콜룸부스의 유골분이 안치되어 있는 묘이다.

 

관을 떠받드는 4명의 거인은 당시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 왕국인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규모로 보아 이들이 콜롬부스에 대한 경외심을 읽을 수 있다.

 

 

여러개의 채플 중 이 곳만이 마침 열려 있어 잠시 들어가 앉아 보았다. 이방인으로서 또는 방관자로서가 아닌 카톨릭 신자로서 경건한 마음을 갖고 앉아 보았다. 한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주일이면 그저 머리와 가슴은 딴데 가 있고 발바닥만 왔다갔다 하는 나로선 이야기하기 뭐하지만 경건함에 고개는 절로 숙여지는 곳이다.

 

 

아래의 사진은 예수의 탄생을 묘사한 스테인드글라스.

 

안쪽을 향해 앉은 이 성직자는 교황인지 추기경인지 모르겠지만 고위 성직자를 묘사한 것은 틀림없는데 의상에 박힌 문양으로 봐선 추기경이나 주교이리라 지레짐작해 본다. 교황의 문장이 아니기 때문에 해 보는 짐작이다. 문장과 문양 그리고 옷주름등 섬세한 표현에는 혀가 내둘릴 지경이다. 대충 기억엔 이 채플이 Capilla del Nacimiento였던 것 같다. 아님 말구.

 

채식이 화려한 양피지 책자. 값비싼 양피지와 채식에 들어간 여러가지 색의 잉크, 그리고 채식사의 섬세한 손길과 공이 들여진 이 책자에는 그저 몇 글자만 적혀 있으니 당시의 책 한권 해봐야 그 내용이 되면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중세시대 학문 해봐야 과학은 전혀 없고 신학이 전부였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를 못할 일도 아니지만도...

 

밖으로 나가면 오렌지가 가지런히 심어져 오렌지 중정으로 유명한 곳이다. 오렌지나무와 열매 너머로 보이는 히랄다탑과 본당 건물이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낸다.

 

 

2시간 30분의 감상을 마치고 나온 시간은 15:30이었다.

 

이후 주변 골목을 다녀 보았다. 다채롭게 칠해진 건물들 1층에는 각종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했고 다채로운 기념품들이 관광객들의 호주머니를 유혹한다. 이 곳이 시에르페스 거리인 것 같다.

 

골목을 한동안 돌아다니던 나는 카테드랄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 본 뒤 숙소로 돌아갔다. 주방에서는 함께 왔던 처자들이 고기를 굽고 스프를 끓이고 있었다. 장을 봐온 그들은 간단하게 저녁 준비를 하고 이미 한차례 저녁을 먹고 난 뒤였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함께 먹자는 그들의 제안에 염치 좋게 껴서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플라멩코 공연을 보기 위해 호텔에서 제공하는 여러개의 타블라오 정보 중 하나를 골라냈다. 타블라오란 플라멩코 공연을 볼 수 있는 카페를 말한다. 가장 눈에 띠는 공연장 두 곳 중 한 곳은 값이 무척 비쌌는데 출연 무용수가 엄청 많았다. 내 생각에 정열적이고 무언가 쏟아내듯 발산하는 플라멩코 음악과 춤에 출연 무용수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산만할 것 같았다. 나머지 한 곳은 무용수 한 명, 기타 연주자 1명, 가수 1명으로 구성된 단체의 공연장이었다. 플라멩코 공연에서 내가 무엇보다 중시하는 것은 춤보다는 음악적인 부분이었다. 이 곳은 소규모였지만 카페가 아니라 전문 공연장이었다. 내가 제안한 공연장에 모두가 찬성했고 이 날 저녁에 보기로 했다. 공연을 보러 가기 전 내일을 위해 장을 더 본다는 이들의 말에 나도 따라가 보았다. 이마트를 능가하는 엄청난 규모의 수퍼에는 농산물 값이 놀랄 정도로 쌌다. 나는 이들과 함께 먹기 위해 산 미구엘 캔 한 박스와 안주로 먹을 올리브를 한 통 샀다. 이 때 먹었던 상품 올리브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맛이 훌륭했다. 사실 시간이 좀 애매앴다. 공연 시간은 21:00였고 장을 보고 나서 이걸 숙소에 두고 나오자면 시간이 너무나 빠듯했다. 내가 본 장은 워낙 간단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을 더 봐야 할 상황이었다. 장을 다 본 사람들은 숙소로 가 짐을 두고 나왔고 나머지 사람들은 장바구니를 든 채 직접 공연장으로 와 합류했다.

 

우리가 먼저 도착했다고 생각해 아무리 기다려도 장을 더 보겠다던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거의 임박해서야 이들은 장바구니를 든채 먼저 와서 좋은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음을 알았다. 우리도 표를 사서 안으로 들어갔다. 표값이 얼마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싸지는 않지만 공연 내용에 비하면 결코 비싼 수준은 아니었다.

 

표를 살때 안내하던 아가씨는 키가 170도 넘어 보였는데 쳐다보자면 거의 떡실신 직전까지 갈 정도로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사진을 슬쩍 찍을까 허락받고 찍을까 고민만 하다 얼결에 일행에 끌려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공연장은 자그마한 무대에 60~70석 정도의 규모였다. 공연장의 단 한가지 흠은 객석이 무대를 향해 내리막 경사가 이루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냥 평지라 앞사람의 메주를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래도 우리의 자리는 비교적 앞자리여서 나은 편이었다. 곧이어 장신의 매표원 아가씨가 들어와 공연은 1시간동안 이루어지며 공연단체는 뭐가 어쩌고 저쩌고 한 사람들이고 공연중에는 사진을 찍지 말고 마지막 10분 정도 촬영 시간을 주겠다고 안내 멘트를 했다. 곧이어 들어온 기타리스트와 잘생긴 싱어가 들어왔다.

 

기타 연주가 시작되고 찌그러지는 인상을 한 채 영혼으로부터 끄집어 내는 노래를 위해 자신의 몸을 쥐어 짜는 모습과 동시에 나온 그의 목소리에 나는 순간 얼이 빠졌다. 전부터 플라멩코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도 이렇게 정열적이고도 영혼의 파장을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음악이 또 있을까 생각해 왔지만 실제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그의 입에서 나온 노래를 들으며 받은 그 때의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나는 그의 노래를 듣는 순간 이렇게까지 강열한 정열과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끄집어내 듣는 이의 영혼에까지 그 파장을 미치는 이런 심오한 노래를 하자면 그 자신은 영혼을 갉아먹고 소진시켜야만 나오는 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이런 노래를 하는 사람들은 그 명이 결코 길지 못할거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어쨌든 충격 그 자체였다.

노래가 힘들긴 했나보다. 몇 곡 부른 뒤 기타 솔로 연주를 하는 동안 가수는 잠시 무대를 떠났다. 기타 연주자는 Asturias라는 곡을 연주했다. 모르는 곡이었다면 모를까 페페 로메로(Pepe Romero)의 연주로 들어오던 이 곡은 이미 눈높이가 높아져 있는 나로선 그의 연주에서 일부 매끄럽지 못한 부분들이 눈에 거슬렸다. 그렇다고 그의 연주를 낮게 평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가 즐기던 페페 로메로와 파코 데 루치아(Paco De Lucia)의 연주는 이미 플라멩코 기타의 최고봉으로 스페인에서는 이미 보배같은 존재들이니 그와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이어서 한 눈에도 집시로 보이는 여자 무용수가 나와 기타 연주, 가수의 노래 그리고 집시의 춤이 한데 어우러지는 공연으로 이어졌다. 아래의 동영상은 한 직원으로부터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사인이 떨어진 후 촬영한 동영상이다. 파일이 너무커서 크기를 줄이다 보니 화질이 떨어진다.

 

아래의 동영상에서는 전형적인 플라멩코 창법을 보여주는 정열적인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아래의 동영상은 가장 먼저 찍었지만 중간에 멈춘 관계로 파일 크기를 조절하지 않고 올린 것이어서 그런대로 화질이 좋은 편이다.

 

공연은 50분만에 종료했다. 이 때 받은 강열한 공연의 인상은 지금까지도 눈앞에 아삼삼하다. 세비야에 방문한다면 이 공연은 꼭 추천하고 싶다. 가실 분이 계시면 참고하셈(Auditorio Alvarez Quintero, 주소 Alvarez Quintero 48, Sevilla, 전화 954-293-949)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차피 지나던 카테드랄의 야경은 조명을 받아 환상적인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가던 길을 새삼스레 멈추게 만드는 히랄다 탑의 야경.

 

본당 건물 산 크리스토발의 문 부근.

 

카테드랄 측면 광장. 처자들도 열심히 카메라에 카테드랄의 야경을 담는 중이다.

 

돌아와서 그 날의 공연 감상, 이 곳까지 여정 중의 에피소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마시는 산 미구엘 맥주와 안주로 먹던 올리브 열매의 맛은 거짓말 조금 보태 예술의 경지였다. 올리브는 종이팩에 포장된 제품이었는데 짜지도 않고 살짝 단 맛이 있어 입 안에 넣고 씹자면 입 안에서 부서지는 질감과 풍미가 거의 환장수준이었다. 돌아올 때는 이걸 한 박스는 사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일정이 바빠 마트를 찾아 다닐 수 없었다. 그립다. 그 맛... 사진이나 찍어둘걸... 좌우당간 이 날 나온 이야기 중 산 미구엘 맥주에 관한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라 흥미가 있었다. 산 미구엘 맥주가 대부분 필리핀산이다 보니 우리는 필리핀이 본고장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스페인의 맥주라나. 스페인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알고 있다고 한다. 나의 지레짐작에 의하면 맞는 말인 것 같다. 전부터 산 미구엘이라면 세인트 미카엘의 라틴어 발음인데 도대체 필리핀에서 웬 맥주 이름이 산 미구엘인가 했다. 필리핀이 스페인의 식민지를 겪었던 것을 생각하면 한 편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식민지의 맥주가 너무 좋아 본토에서도 생산되었을 가능성? 에이~~~! 설마. 설마가 사람잡는 경우도 있겠지만 진실은 나도 모름. 함 알아볼까부다. 맥주에 관한 책까지 사다 볼만큼 맥주 매니아인 뜀도령이라면 알까? 어이! 알면 갤차 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