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3(일) 계속
세비야에서 그라나다까지 가자면 버스로 3시간 걸린다. 20:00시차를 탔다면 23:00시에는 도착했을 테지만 그걸 놓치고 지겹도록 기다려 이미 그라나다에 도착했어야 할 시간에 떠나니 허탈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23:00시에 떠나면 잘해야 새벽 두시에 도착하게 되고 그 때부터 잠깐 눈을 붙일 호텔을 찾자면 이 것도 역시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어쨌든 세비야에서 떠나기 전 머물던 Living Roof의 프론트에서 추천할만한 그라나다의 숙소를 물어봤다. 그가 추천해 준 곳은 Makuto Hostel이었다. 프론트의 직원은 친절하게도 직접 그리로 전화를 걸어 나를 바꿔 주었다. 전화를 받아 20:00시 버스로 떠날 예정임을 미리 말하고 당일 1박을 예약했다. 그는 오후 11시에 문을 닫으니 참고하란다. 주소(Cl Tina 18: Cl은 Street를 의미한다)는 물론 찾아가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알려 주니(버스 3 또는 33번 타고 그란비아에서 하차하여 스페인 국기가 크게 걸려 있는 곳을 찾으라던가. 친절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것이 까칠한 멘트였음은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그라나다에 도착한 시간은 비몽사몽이라 기억 못하지만 새벽 두시가 조금 넘어서였을게다. 시내버스가 다니는 시간도 이미 지났고 게다가 이른 새벽이라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는 내가 들이 민 주소는 잘 모르겠고 이 곳이 그란비아 거리라며 내려 주었다. 이른 새벽이었지만 늘어선 구름 모양의 특이한 가로등이 운치를 내는 그런 거리였다. 이른 새벽이었지만 인기있는 관광지라 그런지 여기저기 새벽까지 맥주를 찾아 다니는 젊은 여행객들이 많이 눈에 띤다. 물어물어 문제의 호텔 주소를 들고 찾아 다녀 보았지만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태반은 모른다고 하고 이 사람은 이리로 가라고 하고 저 사람은 저리로 가라고 하니 똥개 훈련이 따로 없었다. 페르시아계로 보이는 주인장의 빵가게가 아직 문을 닫지 않아 물어 보았다. 이 곳 거주자면 정확히 알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도 아예 알지 못했다. 마쿠토 호스텔의 직원이 이야기해 준 내용으로 미루어 만일 일찍 도착해 그가 일러준 대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위치에 내려 줬을 테지만 내가 탔던 택시 기사가 내려 준 곳으로 부터 마쿠토 호스텔은 생각보다 좀 엉뚱한 곳에 있었다. 어쨌든 골목을 헤매다 만난 두 청년이 정확하게 아는 것 같았다.
"골목을 계속 올라 가다가 보면 어떤 집 대문 앞에 두 마리의 검고 큰 고양이가 나오면 그 곳에서 다시 어찌어찌 가서 자그마한 광장 같은 것이 나오는데 그 곳에 차들이 잔뜩 주차되어 있고 그 곳에서 어찌어찌 가면..."
내가 말을 막았다.
"엥? 고양이? 무슨 고양이?"
설명하다 말고 청년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고양이 소리에 별별 상상을 다해봤다.
'고양이 동상이 있나?'
'고양이 모양의 도자기를 대문 앞에에 두어 장식한 집이 있나?'
'혹시 어느 집 대문이나 담벼락을 계속 왔다갔다 하며 떠나지 않고 자릴 지키는 싸이코 고양이라도 있는건가?'
뜬금없는 소리에 같이 있던 청년이 말을 가로 막으며
"뭐? 고양이? 무슨소릴 하는거야?"
하며 핀잔을 주자 내게 가는 길을 설명하던 청년이 민망해 하며 웃는다. 이 사람들 장난하나 생각도 들었지만 이 친구들도 재밌는 친구들이었다.
"어쨌든 그 곳에서 멀지 않아요."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길을 잃기 딱 좋은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과연 누군가의 집 대문 양 옆으로 검은 고양이가 페인트로 그려져 있었다. 아항 그 고양이가 바로 이거였군. 그 곳에서 또 헤맸지만 역시 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광장에 자동차들이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머지 않아 이집 저집 벽면에 Cl Tina 거리가 나왔다. 이제 다 찾았다고 좋아했지만 번지 수가 길게 순서대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18번지를 찾기는 그다지 쉽지 않았고 그 근처에서 어지간히도 골목을 뺑뺑 돌았다. 간신히 찾아낸 마쿠토 호스텔은 입구가 평범한 가정집처럼 출입문이 작아 혈안이 되어 찾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우여곡절 끝에 문제의 호텔을 찾고 보니 반가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초인종을 눌렀다. 반응이 없다. 또 눌렀다. 또 반응이 없다. 한 번 더 눌렀다. 역시 반응이 없다. 다른 집같으면 쥔넘이 자다말고 개기름 낀 얼굴로 버선발 아니 슬리퍼 바람으로 튀어 나오는데 이건 막대사탕 빨아라 하고 있으니... 아마도 이때 시간이 새벽 세 시 전후였을거다. 그 때 세비야에서 이 집 직원(주인장인지 직원인지 모르겠지만 직원일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집은 이름으로 봐서 일본인이 주인일게고 영어를 그렇게 유창하고 발음 좋게 말하는 일본인은 본 적이 없으니 그가 고용한 직원일거라는 나름의 지레 짐작이다. 아님 말구) 언중에 11시면 문닫는다고 했는데 이 때부터 모든 영업이 종료됨은 물론 직원과 투숙객의 강제 두문불출을 의미하는 모양이었다. 지금 기억에 출입문에 영업시간 07:00~23:00 라고 표기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억울해서 두 어 번 더 눌러 봤다. 안에서 배개 밑으로 머리를 싸 쥔 채 누워 버티고 있었을 그 직원은 보나마나 그랬을게 틀림없다.
'아, 그 개느무 시키 낮에 오네마네 하던 Yoon인가 뭔가 하던 그 시킨가 본데 문 안열어주면 그냥 가지 개기고 자빠졌어. 이걸 그냥 쫓아가 확 죽여버릴라...'
생각해 보니 누군가 나와도 도망쳐야 할 시추에이션인 것 같았다.
'가자 가. 누가 나온대도 흠좀무'
늦은 시간이어서 그 곳에서 멀리 벗어나기도 싫고 이 골목의 느낌이 무척 좋아 멀지 않은 곳에서 투숙하기로 했다. 고급스럽진 않지만 분위기 좋아 보이는 골목길 한 호텔을 잡았다. 인상좋은 직원의 입에서 나오는 숙박료가 잘 맛을 가시게 만들었다. 79유로라던가... 샤워하고 나서 기껏해야 서너시간 잘건데 79유로를 내라면 아무리 비몽사몽이라도 이건 사양이다. 나와서 보니 그래도 3성급이넹? 밖에서 보면 여관같이 생겼더구만...
나는 언덕진 이 골목을 아예 내려와 처음 도착했던 장소로 가 근처 값싼 호텔을 잡기로 했다. 경사진 골목을 완전히 벗어나 처음 도착했던 곳으로 나올 줄 알았던 나는 엉뚱한 곳에 도달해 약간은 당황했다. 여기가 어딘진 모르지만 왠지 고급스러운 호텔은 없어 보이니 이 근처에서 자기로 했다. 두 군데를 들러 보았다. 뭣이? 방이 없어야? 나도 여행깨나 다녀 봤지만 여행지에 방이 없어? 나 이런 자다말고 일어나 생각해도 어이없는 시추에이션. 세 번째 호텔로 갔더니 귀엽게 생기신 50대 아줌마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개기름 없고 말끔한 얼굴에 잠잘 때라면 절대 입을 수 없는 스웨터를 입고 계신 걸로 보아 주무시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도미토리 있어요?"
"아유 그러믄요."
"얼마예요?"
"18유로예요 호호홍."
영어는 대충 알아들으시는 것 같고(다시 말하지만 대충이다) 장황한 설명은 죽었다 깨나도 못하시는 것 같다. 무슨 상관인가. 그저 방을 얻었으니 되었고 값싼 방을 잘 얻었으니 그걸로 되었지 않은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렇게만 생각했다. 카드로 계산하고 올라가 보았다. 지금 쯤이면 같은 방의 룸메이트들은 달콤한 잠을 자고 있을게 틀림 없었다. 나는 자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아예 짐을 통째로 들고 아무도 없는 욕실부터 가서 짐을 풀어 내의와 세면도구, 로션 등을 끄집어 내고 나서 그 짐을 젖지 않게 여기 저기 걸어놓은 채 샤워를 하느라 샤워 시간이 최소 배 이상은 걸렸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다시 주워 입고는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시 꾸역꾸역 짐을 쌌다. 열쇄로 배정된 방의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 어둠 속에서 방의 형태를 확인한 나는 까무러쳐 뒤로 자빠지는 줄 알았다. 이거 독방이잖아. ㅡ,.ㅡ; 애초부터 '우리 집은 도미토리는 없고 독방만 있어요.'라고 말해 주기만 했어도 불을 켠 채 방에다 시원하게 짐풀고 배낭을 마구마구 흐뜨러뜨린채 필요한 것만 챙겨 욕실로 갔을테고 쓸데 없이 이런 모노드라마는 안했을게 아닌가. 가뜨기나 잠 잘 시간 부족한데 남에게 폐 안끼친다고 별 쑈를 다했네 ㅜㅜ 못알아 듣고도 알아들은척 얼렁뚱땅 넘어가시는 이 아줌마 도미토리(dormitory)가 뭔지도 몰랐던 모양이다. 내가 도미토리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값이 싸다는 이유 외에도 혼자 다니는 여행에서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 바로 도미토리이기 때문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새벽이라 누군가와 인사를 나누고 면식을 틀 기회는 어차피 없는 시각이었으니 같은 값이라면 독방이 낫긴 하다. 그래도 덕분에 남은 시간 타잔놀이 했다.
여행지에서라면 적은 잠을 자고도 벌떡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제한된 시간 내에 좀 더 많은 것을 보겠다는 욕심때문이다. 만일 집에서 보내는 휴일이었다면 오전 11시 이전에 일어나면 이건 다시 없는 범죄요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도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새벽 4시가 다되어 잠자리에 들고도 07:30에 기분 좋게 벌떡 일어날 수 있는 이유다. 일어나 씻은 뒤 전날 입었던 그 옷 그대로 입고는(언젠 갈아입었나?) 아래층으로 내려가 그 싹싹하신 사장님을 다시 만났다.
'어제 도미토리 달라고 했는데 나한테 배정해 주신 방이 도미토리 룸이 아니고 독방이라고 왜 이야기 안해줬어요? 진작 알았으면 샤워하기도 편했을텐데 짐가진채로 샤워하느라고 불편한데다 잠 잘 시간만 엄청 뺐겼어요.' 라고 말하지 못한 이유가 멀까.
이 아줌만 보나마나 못알아 들었으면서 알아들은척 하고
'노 브렉퍼스트 밧 온리 커피' 같은 얼토당토 안한 소릴 하실게 뻔했다. 그래도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이 아줌마 나름 무척 귀엽다.
아침 식사 되요? 했더니 그건 알아들으셨는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바로 위의 멘트를 하셨다. 하긴 이 좁다란 공간에 식당 공간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18유로에 독방에서 자고 아침식사까지 기대하면 내가 더덩넘인가... 커피와 자그마한 크로와상으로 아침식사 아닌 아침식사를 마친 뒤 짐을 프론트에 맡기며 다시 아줌마에게 물었다.
"알함브라 궁전이 어딨어요?"
"안멀어요." 하더니 따라 나오란다. 이 호텔에서 나가자마자 경사진 길이 나오는데 그 길로 올라가라는 시늉으로 설명했다. 바로 아래 사진의 길이 호텔에서 나와 알함브라 궁전으로 가는 길이다. 이 시간에 궁전방향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나 외엔 일본인으로 보이는 한 배낭여행객 뿐이었다. 그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가는 동안 나는 은근히 저 친구가 길을 알겠지 하고 그를 의식하며 갔다. 그렇다고 서로 물어 보지도 않았고 아는 척은 더더욱 안했다. 나중에 가만 보니 이 친구도 나를 의식하는게 날 보고 저놈이 알겠지 하는 게 틀림 없었다.
그가 확신을 갖고 가는 것 같으니 나도 확신을 갖고 계속 경사진 길을 올라갔다. 그도 역시 나의 확신에 찬 걸음을 보고 나를 의식하며 확신을 갖고 같은 길을 걸었던 모양이다. 가는 길이 복잡하지 않고 주구장창 올라만 가면 되니 찾기는 어렵지 않아 서로 알지도 못하면서 서로에게서 있지도 않은 정보를 얻어 가며 궁전 입구에 다다랐다. 이런 경우가 소 뒷걸음질에 개구리 잡았다는 표현을 쓰는건가? 아래의 사진이 알함브라 궁전의 초입이고 이 곳에서 더 올라 가야 매표소가 있었다. 녹색 배낭을 매고 꾸부정하게 걷는 사람이 그 일본인 청년이다.
아라베스크 양식의 아치 게이트도 나온다.
매표원이 표를 내주며(08:30, 12유로) 09:30까지는 입장을 하라고 안내했다. 표에도 09:30h라 표기되어 있었다. 나는 이걸 잘못 이해한 탓에 나중에 어지간히도 시간도 빼앗긴데다 관계 직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이건 어쨌든 나중 이야기고 안으로 들어 가면서 들어가는 초입에 정원수를 길게 심어 이를 깎고 다듬어 장식했는데 여왕의 병사들에 쫓겨 이리저리 숨바꼭질을 하던 요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어디선가 튀어나와 비명이라도 지를 것 같은 분위기가 은근히 사람 들뜨게 만든다.
정원수길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산타 마리아 교회(Church of Santa Maria de la Alhambra)가 나온다. 모양새가 네모네모네모 네모일색에 종탑 꼭데기만 삼각형을 차용했다. 그동안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보지 못한 교회 양식이지만 깔끔하고 아담한 모양새다.
아래의 사진은 카를로스 5세 궁전(Placio de Carlos V)이다. 사각으로 육중하게 지어진 건물에 둥근 창과 사각창을 함께 배열해 매우 특이하게 느껴진다. 이 건물은 16세기 전기 및 중기에 걸쳐 건축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이다.
안으로 들어가 봤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대리석 바닥의 원형 중정이 나오는 특이한 형태다. 1층의 기둥은 도리아식인데 반해
2층으로 올라가면 이오니아식 기둥을 배열해 변화를 주었다. 한 층 더 있었으면 코린트식까지 등장했겠군. 2층에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거대 방명록이 전시되어 있는데 예술같은 방문자의 글씨가 눈길을 특히나 끈다. 이슬람의 미술작품들이 화려함과 섬세함으로 눈길을 끄는데 후마이 왕자와 후마윤 공주의 첫만남이라는 작품과 쿠란을 새겨 넣은 예술같은 문자들도 눈에 띠고 아줄레주도 섬세하고 아름답다. 그 외에도 12세기에 사용된 도자기, 유리항아리, 램프등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사용된 이슬람 문화의 일면을 보여준다. 미술관에는 1903 ~ 1914년간 제작된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야수파 화가 마티스(Henry Matisse)의 붉은 팬츠를 입은 오달리스크(Odalisque) 같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눈요기에 섭섭하지 않다. 마티스의 작품들은 굵은 선 몇 개만 갖고도 표현할건 다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고 보는 내내 유쾌하고 즐겁다. 오달리스크를 모델로 한 그림이 유독 많다.
이 번엔 카를로스 5세의 궁전을 나와 바로 앞에 위치한 알카사바(성채: Alcazaba)로 가봤다. 모로코에서는 성벽을 카스바라고 부르는데 이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탓인듯하다(나의 지레짐작임). 이 성채는 9세기에 이미 설치되어 있던 성채를 나스르왕조 그라나다 왕국의 건국자인 무하마드 1세가 13세기에 확장하고 정비한 것이라고 한다.
아래의 사진은 Plaza de Armas라고 하는데 군사광장이라는 뜻이 아닐까. 아님 말구.
아래의 사진은 망루(Torre de la Vela)에 올라 서서 그라나다 시내를 내려다 본 모습이다. 한 가운데 오랜 세월의 위엄을 드러내며 카테드랄이 장중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주변에 몰린 건물들도 대부분은 고전미를 자랑하고 있어 조화를 이루면서도 역시 고전건축으로서의 카테드랄은 단연 눈에 띤다.
오른쪽으로는 오랜된 집들과 골목 골목이 아름다운 알바이신 지구가 자리하고 있다. 간밤에 종횡무진 어지간히도 마쿠토 호스텔을 찾아 헤매던 바로 그 지역이다. 전체적으로 내려다 보이는 알바이신 지구의 모습은 늦은 밤(아니 새벽이군) 그 안에서 헤매며 보던 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내려다 보며 느끼는 행복감도 무척 크다.
이 곳은 오마주 타워다. 여러사람이 팔꿈치를 망루 난간에 기대고 엉덩이를 뒤로 뺀 똑같은 모습을 한 채 내려다 보는 관광객들의 모습도 재미가 있다. 쫓아가서 이들의 궁둥이만 찍으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소한 일에는 목숨 안거는게 나의 신조다.
알바이신 지구의 아름다운 모습이 이 곳에서 아주 가깝게 보이는데 마을의 모습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하얀 벽을 가진 집들 사이사이로 키가 큰 나무들이 불쑥불쑥 위를 향해 뻗어 있어 인간이 만든 마을로는 이만큼 아름다운 곳은 전에는 보지 못한 듯하다. 이 곳이 낯이 워낙 익어 뭔가 머릿속에 떠오를듯 말듯하던 나는 팔을 궤고 내려다 보며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나르시소 예페스가 기타를 연주하고 가르샤 나바로가 스페인 교향악단을 지휘해 녹음한 로드리고의 아랑페즈협주곡 도이치 그라모폰의 70년대 녹음 음반 표지에서 본 바로 그 풍경이었다. 이 때 이 곳에서 마을을 내려다 보던 순간은 이제 막 다녀온 지도 얼마되지 않았지만 추억이 아련하다.
오마주 타워의 반대편으로 가면 성벽산책로(Jadin de los Adarves)가 있는데 넓지 않은 공간을 길게 나무를 심어 정원으로 꾸몄다. 고즈넉하면서도 공간이 작아 안정감까지도 느껴져 지친 다리를 쉬기에도 그만인 곳이다.
이제 알카사바를 지나 11:00쯤 나스르 궁전(Placios Nasries)으로 들어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내가 가진 표는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매표소에서 9시 30분까지는 입장을 해야 한다는 말은 최초 입장 티켓을 확인하던 그 곳을 기준으로 하는 말이 아니고 이 곳 나스르궁전 입장 시간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스르궁전 입장이 어떻다고 분명히 말해 주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지만 어찌 보면 할말도 없는 것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그걸 알고 시간을 지켰던 모양이다. 사실 가이드 책자를 좀 더 유심히 봐 두었다면 주의사항에 그러한 안내가 있었음을 발견했겠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에 이것 역시 흘리고 말았다. 난 왜 이렇게 멍청한거냐고... ㅡ,.ㅡ; 이건 무슨 치매에 걸려가는 사람모냥 자괴감 마저 든다. 나스르 궁전은 좀 더 아껴 두었다가 지겹도록 뜯어볼 참이었던 나는 이 표를 구입한 시간으로부터 2시간 30분이나 지났고 입장 마감시간인 9시 30분으로부터는 1시간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그라나다 최대의 볼거리이며 성질 급한 사람들은 도착한 날로 이 곳 알함브라 궁전만 보고는 그 날로 그라나다를 떠난다는데... 그래서 더욱 천천히 여유를 부렸던 것이다. 나는 황당해졌다. 게다가 나스르궁전은 알함브라 궁전에서도 최고의 백미로 꼽히는 곳이었다. 방법을 물으니 영어를 잘 모르는 이 아저씨 이 곳 입구로는 입장이 불가능하니 뒤쪽으로 돌아 출구를 통해 들어 가라고 간신히 설명했다. 이 곳은 표를 사서 궁전 전체를 둘러싼 울타리의 안으로 들어가면 한참 안쪽에 나스르 궁전으로 통하는 별도의 입구가 있고 그리로 들어가 나스르 궁을 보고 나서 나스르궁전의 출구로 나오면 파르탈궁과 헤네랄리페로 연결된다. 한 번 나스르궁을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 내가 들어간 출구를 통해 들어가면 파르탈궁과 헤네랄리페만 개방되어 있고 나스르궁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입장을 제지한 그 직원이 말해 준 출구로 가서 표를 제시하고 사정을 설명하니 입장을 허용했지만 나스르궁은 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나는 출구로 들어서자 전부터 사진으로 봐왔던 낯익은 정원이 눈에 들어오면서 한 숨을 내쉬었다. 한 숨 돌린 김에 기념 셀카 한 컷.
이 곳은 파르탈 궁(Placio del Partal)으로 사진으로나마 한 번 쯤은 누구나 봤을법한 유명한 곳이다.
이 곳은 정원이 특히 잘 꾸며져 있어 벤치에 앉아 쉬기에도 그만이지만 고즈넉한 이 분위기 속에서 주변을 둘러 보자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 정원은 심어 놓은 나무 하나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변화를 가미했다. 키가 큰 침엽수와 그 침엽수를 깎아 전혀 다른 형태로 다듬어 놓는가 하면 잘잘한 나무를 촘촘하게 심어 깎아 도형적 재미를 가미했다. 활엽수는 물론 야자수까지 심어져 있어 정원의 변화무쌍한 배치는 실증이 나지 않았다. 이 곳에서 또 한참을 쉬며 매표소에서 준 궁전지도를 보며 나스르궁전을 찾아 보았다. 지도상으로 보자면 나스르 궁전 출구는 아래 사진의 건물 왼쪽에 있었고 이 사진을 찍은 위치는 내가 들어온 출구로 통하는 길을 등지고 선 셈이다.
왼쪽으로 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통해 이 곳 파르탈 궁전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나스르궁전과 파르탈궁전을 연결하는 바로 이 길은 두 개의 간이 회전문으로 막아 놓았고 간이 회전문은 한쪽 방향으로만 돌고 반대방향으로는 돌지 않도록 설치되었다. 나스르궁전으로부터 파르탈 궁전으로 넘어올 수는 있어도 파르탈 궁전에서 나스르궁전으로는 들어올 수 없다는 의미였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역류 시도자들을 막기 위함인지 관리인도 한 명 배치되어 있었다. 결국 원래의 나스르궁전 입구로 들어 온 사람에게는 관람을 허용해도 출구로 들어온 사람에겐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차라리 표를 다시 사라면 기분은 좋지 않았을테지만 샀을게 틀림 없었다. 눈가리고 아웅도 아니고 이 곳까지 찾아 온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볼 수도 없는 이 곳으로 나를 보낸 검표원 노인에게 화가 치밀었다. 다시 되돌아가 말도 통하지 않는 노인하고 실갱이 하느니 차라리 매표소 바로 옆 사무실까지 되돌아가 알아보는 편이 빠르겠다고 판단하고 한참을 걸어 그리로 가 봤다. 여직원 한 사람을 붙잡고 상황설명을 한 뒤 나스르궁에 입장할 수 있도록 조치가 가능한지 물어 봤다. 그녀는 정해진 시간에 들어 갔어야 했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했다.
"표를 새로 사야 한다면 사지요. 표를 살까요 아님 조치를 기다릴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신속한 조치나 안내가 필요한 것이지 이렇듯 결론 없는 답변으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방법 없으면 표를 새로 산다니까요."
하며 내뱉는 말에 짜증을 살짝 섞었더니 그제서야 궁전 지도를 펼쳐들고
"산타 마리아 교회 못미쳐 있는 information center로 가서 문의해 보세요."
젠장 진작 이렇게 말을을 하든가... 다시 한참을 걸어야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왔다갔다 하기 싫어 표를 새로 사려고도 생각해 봤지만 표를 새로 사도 역시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어 또 기다리느니 조치를 해 주면 더 빠를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다시 쭐레쭐레 걸어 산타 마리아 교회 옆 안내사무소로 갔다. 사무실 한켠 고객 상담실에는 이미 한 부부가 상담중이었다. 상담이 끝나자 나는 표를 내밀며 지루한 상황설명을 다시 했다. 세 번째였다. 어이구 한심해서... ㅡ,.ㅡ;
"표를 살 때 09:30까지 입장하라고 하길래 최초 검표 장소로 09:30까지 들어가란 소린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나스르 궁전 입장 시간을 말하는 것이었고 입장이 제지되자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시간이 이미 지나버렸는데 조치가 가능하다면 해주시고 안된다면 표를 다시 사겠지만 더 이상 시간 낭비는 하고 싶지 않군요."
했더니 표를 받아 들고 바코드를 컴퓨터에 입력한 뒤 무언가 정보를 바꾸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내게서 여권을 받아 명부에 기록하고 내게서 서명을 받은 뒤
"조치 되었으니 다시 입장하셔도 됩니다."
하며 표를 다시 돌려 주었다. 진작에 이렇게 안내가 되었으면 시간 낭비도 없고 얼마나 좋았겠나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고맙다고 인사한 뒤 다시 나스르궁전 입구로 가 보았다.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일테니 내가 이해하는 편이 빠르지 않겠나 하는 마음의 여유도 가지며 다시 가 보았지만 이 노인은 역시 막무가내로 입장을 불허했다.
"이 표에 대해서 안내 사무소에서 상담을 했고 조치가 이루어졌으니 그들에게 전화해서 확인해 보라"고 했지만 역시 막무가내였다. 알아 듣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욕지기가 나왔다.
"무지렁뱅이 노인네 같으니." ㅡ,.ㅡ;
이 노인과의 실갱이 끝에 다시 사무실로 찾아 가기를 두 번. 결국 여직원은 카를로스 5세 궁전 앞에서 안내 업무를 보던 여직원을 불러 나를 인계했다. 나는 그제서야 개별 여행자 입구가 아닌 단체 야행자 입구에서 실갱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ㅡ,.ㅡ; 스페인 여행 최대의 백미를 눈앞에 두고 이게 도대체 뭐냐 ㅜ,.ㅜ;
이 곳이 개별여행자 입구다.
단체 여행자 입구와 개별여행자 입구를 구분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름 깊은 뜻이 있겠지...
나스르궁전 구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곳이 메수아르의 방(Sala del Mexuar)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곳이 가장 먼저 도착한 방이니 틀리지 않다면 그 방인 듯하다. 메수아르의 방은 왕이 집무를 보던 공간이라고 한다. 벽면 타일 장식과 기둥 장식은 이슬람, 문짝은 서양식이니 이 것도 재미가 있다.
모스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양과 장식을 한 석회 벽은 무척 섬세하고
개중에는 유럽식의 냄새가 나는 타일 장식도 보이는데 이는 그라나다 왕국의 몰락과 함께 기독교도들의 재탈환 이후 고쳐진 것이라 한다. 좀 서로 존중 좀 하고 상호 보존 좀 해줘라 이 웬수들아.
예배실에서 아라베스크식 창을 통해 내다 보는 알바이신 지구의 아름다운 집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이를 보는 감상은 거의 환장 수준이다.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은 이 궁전에도 꼬불꼬불해서 어떻게 다닌건지 헷갈리게 여러 공간이 겹쳐져 있었다. 가운데 자그마한 연꽃 모양의 분수가 있는 작은 중정이 나오는데 이 곳으로 연결하는 아치와 문 장식은 아랍식이며 벽장식도 역시 아랍식이어서 무척 섬세하다. 기독교 세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조각 예술 문화가 발달하여 인물상이 무척 섬세하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에서는 유일신 이외의 우상 숭배를 엄격히 금하는터라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화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그런 문화가 꽃과 같은 식물을 응용한 섬세한 문양의 발달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나름 지레짐작 해 본다. 아님 말구.
개폼 한 컷. 여길 못들어와 안달을 할 때는 또 언제고... ㅡ,.ㅡ;
창문과 처마도 전형적인 아라베스크식이다.
중정에서 하늘을 향해 열린 사각 하늘이 건축의 아름다움과 청명함이 어우러져 기막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 곳을 나가 연결된대로 따라가다 보면 더 큰 중정이 나오는데 이 곳이 바로 아라야네스 중정(Patio de los Arrayanes)이다.
역시 기독교 세계의 건축양식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온전한 아라베스크식의 건물과 형태다. 하지만 중정 안에 이렇게 큰 연못은 그리 흔하게 보는 형태는 아닌듯하다.
연못의 크기는 남 북 35미터, 동서로 7미터이며 직사각형의 연못 좌우로 심어진 식물이 바로 아라야네스(천국의 꽃)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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