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금) 계속
무어인의 성에 도착하자 약간은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무어인의 성(Casteio dos Mouros)과 페나성 (Palacio Nacional de Pena)입장권(12유로)을 구입해 무어인의 성부터 들어가 보았다.
이 성은 8세기에 무어인들에 의해 축조된 성이며 1147년 아폰수 엔히스케(Afonso Henriques)에게 공략당한 후 성벽만 남았다고 한다.
이 곳에 올라 서면 신트라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좀 더 위쪽으로 올려다 보면 페나 성이 보인다.
성은 바위가 많은 지형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축조되었다.
이 곳에서 페나성까지 역시 도보로 이동했다. 평소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이고 시간 여유가 좀 있는 날이라 걸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걸어 오르는 것은 비추다.
페나성은 약간은 동화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슬람 양식, 고딕양식, 마누엘양식과 르네상스양식이 혼합된 이 성은 1840년 페르난두 2세가 수도원이었던 자리에 재건축해 왕궁으로 만들었다고한다.
어려서 보던 에니매이션의 모델로 활용된 곳이 아닐까 싶은 생각은 들면서도 실제로 본 적은 거의 없는 묘한 양식이다.
직선과 곡선이 적절히 사용된 가운데서도 눈에 띠는 굵은 장식적 측면은 통일성을 부여한 것 같다.
아래 사진과 같은 성문을 보면 슈렉이나 사파이어 왕자 등과 같은 에니메이션에 서 한 번쯤 봤을 듯 싶다.
또 아래의 성문 같이 이슬람 문양의 아줄레주를 보면 이슬람 문화의 차입이 확연하게 보이면서도 창틀 장식은 마누엘 양식에 가깝다.
페나성 방문을 마지막으로 리스본 시내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밖으로 나와 내려가는 길에는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오를 때 버스를 타고 내려갈 때 걷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거꾸로 내려갈 버스를 기다리며 지친 다리를 쉴 때서야 들었다. 참으로 영리도 하슈. ㅡ,.ㅡ;
기차역을 나오자 마자 눈에 띠는 시위대의 모습. 포르투갈의 극심한 경기불황과 국가 채무 과다로 인한 문제가 심심찮게 언론에 거론되는 상황때문이 아닌가 싶다. 근방에서 리스본을 상징하는 메탈 닭 인형과 마리사의 데뷔음반 한 장을 샀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도 그 흔한 마리사의 음반을 사느니 남자 파두 가수의 음반을 살 걸 잘못했다는 생각은 지금도 든다.
리스본으로 돌아와 기념품까지 구입한 28번 트램을 타고 숙소에서 가까운 관계로 방문을 미루었던 상 비센트 수도원으로 갔다.(17:00, 4유로)
무어인을 상대로 싸우다가 전사한 북유럽의 십자군들을 위해 지은 건물이라곤 한다. 1755년의 대지진때 건물 위의 돔(쿠폴라)이 무너져 100년 뒤인 1855년이 되어서 야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건물의 정면에는 10개의 파스드로 이루어져 있고 내가 들어온 파사드는 4번째의 것이었던 것 같다. 그중 한 방은 천장에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고 정면에는 성화가 걸려 있으며 벽 하단부는 아줄레주로 장식되어 있다. 아줄레주에 그려진 그림들은 그다지 세련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이 방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방의 일정 구역을 경계선으로 하는 난간이다. 난간 기둥 중 세라믹으로 된 화려하고 섬세한 것들이 눈에 특히 띤다. 여기에는 포르투갈의 국장이 새겨져 있는데 방패 안에 그려진 5개의 작은 방패는 십자가 위 그리스도의 수난을, 외곽에 그려진 7개의 성은 무어인과 싸웠던 7개의 성을 의미하는데 이 것은 포르투갈의 국기에서도 핵심적인 의미를 갖는다.
의미하는 바는 모르겠지만 성화가 한 점 벽에 큼직하게 걸려 있고
성물전시실에는 과거에 사용되었던 고위 성직자들의 제의와 성구들이 진열되어 있다.
구석구석 한 올 한 올 엄청난 공을 들여 금실로 수놓은 제의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인데 반면 당시의 평신도들은 헐벗고 굶주렸을 것을 생각해 보면 고위 성직자들의 세속적 권력과 권세는 부당하게까지 느껴지곤 한다.
제의의 두께를 보더라도 보통 무겁고 보통 거북하지 않아 보이는데 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영화를 누렸던 것에는 도대체가 납득이 가질 않는다. 물론 내기준이지만...
수도원의 한가운데에는 중정이 있고
중정을 둘러싸는 회랑의 벽 하단에는 역시 아줄레주로 장식되어 있다. 각각의 칼럼 사이로 붙여진 아줄레주의 그림은 좌우 대칭형 배경틀 가운데 각종 귀족들의 풍속화가 그려져 있는데 배경틀은 좌우가 거의 대칭이면서도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그림도 배경틀도 결코 눈을 빼앗길만큼 세련된 작품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 곳은 2층의 어느 한 방이었던 것 같다. 천장의 프레스코화와 여백없이 방을 장식한 아줄레주는 이제껏 보아온 중 가장 화려하고 섬세하다.
정면 성화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의 주변에 성인들이 우러러 찬양하는 내용인듯하다. 문양 위주로 장식된 이 방의 아줄레주는 여기에 들인 공과 섬세함이 한참동안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다.
천장의 프레스코화 한가운데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린 양이 그려져 있는데 서양화로는 드물게도 많은 여백이 보이는 그림이다.
2층에서 바깥을 내다 보면 수도원 앞의 작은 광장과 내려다 보이는 집들이 세련된 분위기를 머금고 있고
거대한 태주강을 배경으로 둔 도시의 경관은 참으로 아름답다.
이제 수도원을 나와(17:00) 짐을 맡겨둔 숙소로 돌아와 호텔 직원과 작별인사를 했다. 이 호텔은 운치도 있고 서비스도 좋지만 이들의 친절도는 가 본 중 최고였다. 이 호텔은 누구에게도 강추할만하다. 숙소에서 나오니 트램 한 대가 내가 가려던 방향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지나간다. 나는 이상하리만치 아쉬운 느낌으로 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리스본에서도 특히 오랜 향기가 짙게 배어 있는 이 알파마 지구에서 눈 앞을 지나 골목으로 사라져 가는 트램의 옛스러운 모습은
떠나기를 못내 아쉬워 하는 내게 있어 미래의 향수처럼 저멀리 사라져만 간다.
이 곳 리스본에서는 마드리드로 가는 열차편은 있지만 세비야로 가는 기차편이 없어 야간버스를 타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오리엔테역에서 내려 시야에 들어 온 버스터미널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아래의 사진은 버스터미널 건너편의 쇼핑몰.
아래의 사진은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지닌 오리엔테 렌페역의 모습.
이 곳이 터미널이다. 세비야로 가는 버스표 구입처를 찾는 것만도 한참이 걸렸다. 여기저기 회사별로 흩어져 있는 티켓핀매소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야 했고 확실히 알고 알려 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간신히 찾아낸 티켓 오피스에서 구입한 표(35유로)는 21:00에 출발예정이었고 도착예정시간은 익일 04:30이었다. 도착하면 체크인 하기도 어정쩡한 시각이었다.
표를 사고 난 뒤 식사할 곳을 찾아 보았다. 그 어마어마한 터미널에서 벗어나자면 한참을 걸어 나가야 했고 그렇다고 터미널 내 식당에서 먹자니 음식이 별볼일 없어 보였다. 게다가 터미널 내에는 패스트푸드 일색이었다. 그나마 가장 깔끔하고 먹음직해 보이는 곳에 들어가 가장 먹음직해 보이는 메뉴를 골라 보았다. 약간의 샐러드, 삶은콩, 넙적하게 썰어 약간의 국물과 함께 조리한 고기와 밥을 담아 자리에 앉았다. 그나마 먹음직해 보였던 이 음식은 막상 먹어보니 밧은 별로였다. 음료수를 포함한 이 세트메뉴는 그래도 저렴했다. 8유로였던가..
아쉬우나마 저녁식사를 해결한 나는 커피까지 마시며 여유를 피우다가 8시가 조금 넘어 정해진 탑승장으로 가 보았다. 저녁때가 되자 날씨가 몹시 스산해졌다. 세비야행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 중 왠일인지 태반이 흑인들이었는데 그들은 무어인도 아니고 베르베르인도 아닌 중부아프리카 이남의 인종이었다. 리스본에서 세비야로 넘어 가는 이 버스에 단체 여행객도 아니고 서로 면식 조차도 없어 보이는 많은 수의 이들이 이 곳에 있는 이유가 의아스러웠지만 알 길은 없다. 버스를 기다리는 1시간은 지루하기 짝이 없어 몇 시간을 기다린 것 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자신들을 실어 나를 버스가 도착하자 저마다 짐을 싣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좌석은 비교적 앞뒤 간격이 넓고 안락한 시트로 되어 있었다. 버스 규모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 올라탔다. 나는 남아도는 좌석 중 사람이 가장 적은 중간 뒤쪽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잠을 자는동안 이상하게 한기가 느껴졌다. 밤공기가 그만큼 차가웠던 것이다. 이베리아 반도는 기온이 떨어져도 겨울의 평균기온은 10도 안팎인데 손까지 살짝 시려웠던 것을 보면 내가 느끼기엔 예상보다 훨씬 낮은 기온이었던 것 같았다. 기상이변으로 북극의 한파가 아래로 밀려 유럽에 한파가 온 해이고 그 영향으로 이 곳 이베리아 반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듯 하다.
버스 안에서 나는 정말 달콤한 잠을 자고 있었다. 늦은 밤이었는지 이른 새벽이었는지 자다 보니 바로 내 뒷칸에서 서너명이 대화를 나누느라 떠드는 소리가 들렸는데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자면서도 곧 조용해지겠지 하던 내 바램은 그냥 바램일 뿐이었다.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자던 중 어느 순간에 내 앞자리의 등받침이 내게로 확 제껴지는 통에 무릎이 확 눌려 놀라서 깼다. 깨자마자 나는 화부터 났다. 하고 많은 다른 좌석 다 놔두고 내 앞에서 시트 등받이를 뒤로 제끼는 이 시키는 도대체 생각이 있는 놈인지 없는 놈인지 내 옆자리엔 내 배낭만 있을 뿐이었으니 그 앞에서 이 짓을 해도 좋을텐데 굳이 내 앞자리에서 이 지롤을 하는 이유가 뭔지. 뒤에서 떠들던 시키들은 여전히 큰목소리 경연대회라도 하는지 제 세상이었다. 이런 개느무 시키들. 내 앞에서 시트 등받이를 제끼던 시키도 뒷좌석에서 큰 소리로 떠들던 시키들도 전부다 흑인들이었다. 이런 소린 안하려고 했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문화가 성숙된 곳의 인간들한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는 교만한 생각이 그나마 화를 잠재우는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앞쪽으로 가 중앙 출입문이 있는 좌석으로 옮겨 그들과 떨어진 뒤 다시 잠을 청했다. 다시한 번 말하지만 "이런 개느무 시키들."
'배낭여행 > 11 스페인·포르투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이 이베리아6-2(세비야) (0) | 2011.03.09 |
---|---|
하이 이베리아6-1(세비야) (0) | 2011.03.08 |
하이 이베리아5-1(신트라) (0) | 2011.03.06 |
하이 이베리아4-3(리스본) (0) | 2011.03.02 |
하이 이베리아4-2(리스본) (0) | 2011.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