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1 스페인·포르투갈

하이 이베리아1-1(인천→마드리드→바르셀로나)

코렐리 2011. 2. 3. 10:17

2011.1.16(일)

7월에 항공권을 구입해 놓았으니 여행지를 선정해 놓고도 어지간히 많은 시간을 기다렸다. 다른 때 같으면 여행일정에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벌기 위해 금요일에 퇴근함과 동시에 공항으로 가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일정을 잡았을 테지만, 이 번 항공권은 원하는대로 항공권이 나와주질 않은 탓에 금요일도 버리고 토요일도 어쩔 수 없이 버렸다. 금요일 퇴근 후 직장동료와 마신 술 탓에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 10시 반에 잠자리를 털었다. 주말이면 늘상 있는 일이다. 일어나자마자 한 일은 배낭꾸리기였다. 항상 20리터 들이 배낭에 짐을 싸던 나였지만 네팔 트래킹을 위해 일부러 배낭 용량을 5리터 늘인 이후 계속 25리터 들이 배낭으로 짐을 꾸렸다. 배낭은 작은 것을 써야 작게 꾸리게 되고 조금이라도 큰 것을 사게 되면 그 만큼 짐이 더 많아진다는 나의 지론으로부터 그걸 알고 있는 나조차도 자유롭지 못했다. 짐을 싸고 나서 밀린 빨래를 구겨 넣고 세탁기를 돌림과 동시에 집안을 치웠다. 1주일에 단 한 번 집 안을 청소하지만, 일단 하면 물건 하나하나를 원위치에 놓고 구석구석의 먼지를 다 털어내고 쓸어낸 뒤 걸레질까지 마치는데 자그마한 이 집에 들이는 시간은 그리 작지도 않다. 빨래가 다 끝나면 내의와 양말을 널고 셔츠와 남방 바지까지 죄 다 다려 놓아야 마음이 편하다. 여행을 다녀와 피곤한데 할 일이 남아 있으면 떠날때도 찝찝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마음만 심란한 탓에 홀아비 히스테리만 늘어난다. 이걸 다 끝내고 나서 2주동안 굶주릴 고사리 화분에 물을 흠뻑 먹였다. 조카들이 생일선물로 준 행운목 물도 갈아주었지만 얼마나 버틸지는 미지수. 2주 동안 집 비울 것을 감안해 냉장고를 비우기 위해 그동안 장을 보지 않으니 그 속이 당연히 초라했다. 두유와 사과 같은 대용식으로 대충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 나는 짐을 들고 짐을 나섰다. 항공기 출발은 그 다음날인 오전 12시 40분발 모스크바행 인천발 항공편. 이 날은 공항이 가까운 개화동 부모님 댁에서 하루 빈대 낄 생각이었다. 집을 나설 때의 추위는 수십년만의 위세여서 매섭다 못해 위협적이었다. 빵모자까지 뒤집어 썼다. 유일하게 노출된 뺨과 코는 보통 매운게 아니었다. 개화동 집에 벗어둘 테지만 오리털 퍼커점퍼를 입고 현지에서 입을 방풍점퍼는 배낭에 옭아맸다. 부모님 댁에서 하루를 빈대끼고 담날 아침에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아침밥을 얻어 먹고 집을 09:30쯤 나섰다. 가까운 9호선 까지 걸어서 10분 거리에 불과하지만 티셔츠 위에 달랑 방풍점퍼 하나 입으니 그 거리가 부담스러웠다. 옆에서 보고 있던 동생이 안되었던지 개화역까지 태워다 주었다. 개화역에서 9호선 타고 공항역에서 인천공항행 지하철로 갈아탔다. 10시 30분쯤 인천공항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아에로플로트 부스를 찾아 티케팅을 마쳤다. 두 시간 전에 도착했지만 비교적 줄이 길어 티케팅에 적이 않은 시간이 걸렸고 출국수속을 마치고 공항셔틀열차를 타고 정해진 탑승구역인 112 탑승구로 갔다. 1년에 두 번을 떠나다 보니 모든 것이 이제는 본 듯 낮익은 풍경이다. 출국 절차도 셔틀열차도 그렇고, 구색을 갖춰 놓은 면세점도 그렇고 엄청나게 큰 인천공항의 탑승구 배열도 모두 낯익고 정겹다. 누군가 나보고 떠나지 말라고 한다면 죽으란 소리보다 심하게 들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짱돌뱅이 근성인가보다.

 

탑승구에 도착하고 보니 소형인 아에로플로트 항공기가 보인다. 소형은 아니고 중형인 것 같다. 카타르항공이나 에미레이트항공 등 기름밥 먹은 아랍계 항공이 제공하는 최고의 시설과 서비스를 몇 년간 접하다가 러시아 항공기를 보니 살짝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78만원 주고 산 항공권인데 싼게 최고지... 탑승하고 보니 생각과 달리 비좁은 배치는 아니었다. 항공기 모델 같은건 모르겠고 좌우 창가 2개씩의 좌석과 중앙에 3개의 좌석으로 배치되어 있고 앞뒤 좌석간 간격은 대형 항공기에 비해 결코 좁지 않았다. 내가 너무 심한걸 바랬는지 몰라도 개별 모니터는 없었다. 시설을 이용해 심심하지 않을 방법은 없는 셈이었다. 그 덕에 가이드 책자를 열심히 들여다 보아 이 곳 정보들이 전에 비해 익숙해졌다. 이륙 전 넘겨다 보이는 비지니스 클래스에서는 마실 음료수와 개별모니터가 하나씩 지급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항공기는 정해진 시간으로부터 거의 정확한 시간에 탑승구를 밀어내고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항속고도에 올랐으면 바로 밥줄 줄 알았다. 한참을 뜸을 들이고 한국시간 오후 한시쯤이 되어서야 음료수가 제공되고 뒤이어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아에로플로트의 스튜어디스들은 영어를 못하기로 유명하다고 해서 살짝 긴장했지만 기본적인 서비스 제공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당신들이 승객들을 위해 마련한 이 좌석 커버가 왜 섬유로 되어 있지 않고 레저 재질로 되어 있는지, 그리고 왜 하고 많은 색깔 놔두고 눈에 드는 느낌이 우중충하고 촌스럽기까지 한 청색으로 했는지 나는 도대체가 맘에 들지 않아 설득력있는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나의 이 불만스러운 느낌은 해소될 가망이 없소. 지금 당장 알아듣기 쉽게 설명 좀 해보시오." 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지 않고서는 언어소통에 문제될 일은 절대 없어 보였다. 하긴 나라면 그렇게 대답했겠지. "당신이 사장 하시오." 또는 "내리는게 어때!" 

항공기가 작은데서 오는 장점도 있었다. 기내식이 내차례까지 오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내식을 받아드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밥아, 너 본지 오래다." 생선을 선택했다. 기내식은 질로 보아 어디에 내 놓아도 절대 탓할만한 구석은 없었다. 식신들린 나는 맛있게 먹었다. 문제는 주메뉴 용기가 매우 작았다. 내용물도 덩달아 적었다. 처음 나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먹어대는 양과 시간에 놀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내가 먹기에는 간에 기별만 간신히 갔다. "어이! 간뎅이! 나 밥 먹었어 어서 일해!" 하지만 20% 부족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두 번째 기내식이 나왔다. 이 번엔 치킨을 선택했다. 기내식 맛도 제법 좋고 내용물도 훌륭한데 양은 왜 그리도 적은지... 다른 항공사에서 먹었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남김없이 바닥을 깨끗이 드러내는 승객은 나 하나뿐이었다. 대식하는 습관은 나뿐인 모양이니 아에로플로트 기내식의 양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그 순간만큼은 먹다가 남기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옆사람이 샐러드는 먹지도 않고 그 나머지만 먹고 플래스틱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 놓고 냅킨을 입에 댄 뒤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이거 도대체 언제부터 생긴 그지 근성이던가... "식사 다 마치셨으면 이거 제가 먹을까요?" 라고 물어볼까 말까 여러 번 망설였다. "아뇨, 마저 먹을건데요." 하고 대답하거나 그녀의 일행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나는 완전 쪽팔리게 되어 있는 시추에이션이다. 젠장 평소 어디가서도 대범하다고 스스로 착각해온 내가 이렇게 쫀쫀해져 있으니 살짝 비참함 마저 느껴진다. 아줌마들이 설거지통(?)을 가져와 그녀의 손도 대지 않은 샐러드 마저 쳐박아 넣는 걸 보고 느끼던 그 쓰라림과 좌절감은 지금도 추억이 살짝 아프다. 에이 씨, 매점 좀 다녀오게 잠깐 비행기 세워달라고 할 수 도없고... 먹지 말란 소린 나보고 죽으란 소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소린 결코 아니었다. ㅡ,.ㅡ;

 

그나마 책을 보니 덜하던 무료함 속에 어느덧 항공기가 모스크바에 다다랐는지 기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러시아어로 한 번,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로 한 번 말했지만 밸트를 매야 한다는 사실은 그저 감에서 오는 것이었다. 맨 마지막엔 시원치않은 한국어가 얼핏 들렸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역시 알아듣기 어려운 한국말이라 흘려들었다면 한국말은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발음은 형편없었다. 착륙에 성공한 항공기의 탑승구로 이동하는 속도가 완만해지기 시작하자 승객들이 밸트를 풀고 벌떡 일어나 컨솔박스를 열고 자기 짐을 꺼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러시아 사람들이 그러자 한국인 승객들 중에도 따라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렇게 황당한 시추에이션은 비행기란 것을 생전 처음 타보던 젊은 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당연히 스튜어디스가 높아진 언성으로 이들을 제지하고 상황을 정리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걸 소 닭보듯 하는 스튜어디스들의 표정에 당혹감이나 황당함 같은 고급스러운 표정은 없었다. 이거 보통 재미 있는게 아니었다. 어쨌든 10시간 동안의 장시간 비행 끝에 도착(현지시간 16:30분경)한 나는 도착 후 갈아탈 항공기 탑승구부터 찾아봤다. 모니터를 들여다 아무리 봐도 마드리드로 가는 아에로플로트 항공기 탑승구 안내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터미널임에 틀림없었다. 제복 입고 지나가는 늘씬한 러시아 미녀를 붙잡고 표를 내밀고 물었다. "이거 어디서 타죠?" 그녀는 E 터미널로 가라고 일러 주었다. 내렸던 터미널이 B 터미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모스크바의 Sheremet 공항이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커서 E 터미널까지 가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처음 도착해서 환승수속을 밟고 약간 헤맨 시간을 보내고 나니 환승시간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E 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출출한 느낌이 들어 면세점에 들어가 보았다. 멍청하게 생긴 악어 모양의 샘소나이트 유아 배낭을 보니 어찌나 귀엽고 예쁘던지 조카 준상이 생각부터 났다. 하나 사려다 짐이 벌써부터 늘면 안된다는 생각에 접었다. 면세점 두 군데를 쓸데 없이 어슬렁거리다 보니 한 동양인 여자가 내게 도움을 청했다.

"중국인이져?"

"한국인인데요."

그녀는 약간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중국인인가 해서 물었더니 한국인이었고 대답이 중국어로 돌아오니 순간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 두 담배들 중에서 하나를 사려고 하는데 뭐가 어떻게 다른거져?"

그녀는 선물로 사려던 12갑 들이 담배가 같은 값에 각기 다른 포장을 한 동일 회사의 물건을 두고 뭐가 어떻게 다른건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같은 색상에 같은 바탕 디자인이었지만 로고 크기와 위치 그리고 "이 담배가 당신의 생명에 진상 노릇을 할겁니다" 라는 경고문구도 같은 내용이지만 역시 크기와 위치가 달라서 무엇을 사야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잠깐 기다려 보세요. 저도 담배를 안피워서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애요."

요모조모 뜯어 봐도 타르 함량이나 이런 저런 표기들을 봐도 차이점은 없었다.

"같은 상품인데 포장만 다르군요."

의심이 걷히질 않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같은건데 왜 다르지?"

"둘 중 하나가 먼저 나오거나 늦게 나오면 그럴 수도 있지요." 라고 답하자 그녀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이 밝아져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두 포장을 집었다. 공부를 해두니 써먹을 일이 아주 없진 않군. ㅎㅎ 

 

목이 말라 페트병 콜라를 하나 집어들고 10유로 지폐를 내밀었다. 판매원 아가씨는 자그마한 키에 금발인지 은발인지 분간 안가는 밝은 색의 머리칼을 가졌고 백옥같이 하얀 피부를 가진데다 얼굴에서 다른건 안보일 정도로 눈이 컸는데 파란 눈동자는 그 눈만 보이는 상황을 더욱 극대화할 만큼 청명한 파랑색이었다. 한동안 넋놓고 그녀의 눈만 봤다. 그녀는 유로화 잔돈이 부족해 난감해 하며 내게 2유로 잔돈은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콜라를 냉장고에 도로 집어 넣고 다시 하이네켄 맥주를 들고오자 그제서야 7유로를 잔돈으로 내주었다. 거스름돈 챙기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그제서야 얼굴에 숭숭한 털이 눈에 들어왔다. 만일 금발이 아닌 흑발에 얼굴에 난 털까지 같은 색이었다면 끔찍한 얼굴이 되겠군 하는 생각부터 떠울랐다. 대단한 미인이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볼에 키스하면 아마도 피부보다는 털의 느낌이 먼저 와 닿을거라는 생각이 들자 순간 피식 하는 웃음이 나왔다. 내 여자도 아닌데 별걸 다 참견하고 자빠졌다. 대기석에 앉아 이거 한 캔 천천히 마시고 나자 곧 탑승시간이 왔다.

 

탑승 후 기다림 끝에 제공된 기내식의 먹기전 감정과 먹고난 후의 감정은 전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과 똑같았다. 양 많은 놈은 이거 어디 시장스러워서 타겠나. 사실 공항에서 뭔가 좀 먹거릴 좀 주워섬겨 볼까 했지만 다음 배행기 타면 곧 밥 줄 시간이라 참았다. 그게 새삼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19:30 쯤 떠난 비행기는 5시간 30분 정도의 비행시간을 마치고 마드리드 시간 23:00가 다 되어 착륙했다. 10시간과 5시간 반의 비행, 그리고 환승대기시간 3시간이 지났어도 7시간의 시차로 인해 한국에서 떠난 날과 도착한 날짜는 같았다. 착륙시 승객들의 행태는 전과동. 마드리드로 오는 비행기는 좌우 창가 3개씩이고 가운데는 통로가 하나뿐이었다. 소형항공기의 장점은 전술한 것 외에도 내리는 시간이 아주 짧다는 점이 있었다. 공항을 빠져 나오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비자 면제협정이 되어 있는 곳이라 입국 심사도 간단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관광객인데요."

"도장 쾅" 끝!

 

나는 기내에서 잠깐 스페인의 역사를 참고해 봤다.

스페인인의 선조는 기원전 900년경 유럽에서 침입해 온 켈트족과 아프리카에서 올라와 정착해 있던 아프리카인들이 섞여 탄생한 켈트이베리아인(CelthicIbero)이었다. 그 후 키아인과 그리스인이 이 반도에 들어와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도시를 세웠고 기원전 6세기에는 카르타고의 침략을 받아 400년간 식민지를 겪었다. 신흥세력 로마가 기원전 2168년부터 17년간 이 지역을 놓고 카르타고인들과 제 2차 포에니 전쟁을 벌인 끝에 이 지역을 지배하였지만 서기 400년경에 이르러 로마도 쇠락을 거듭했고 게르만의 여러 민족이 침입해 결국 서기 507년에 서고트족이 이 땅에 정착했다. 서기 579년 톨레도를 수도로 하는 왕국을 세웠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날로 융성하던 이슬람인들이 침략해 이후 700년간 이 곳을 지배한다. 756년 시리아로부터 도피해 온 후기 우마이야 왕조는 수도를 코르도바로 삼아 문화와 경제적인 풍요와 영화를 누리게 되는데 지금도 남아 있는 이슬람 사원 메스키타도 이 때 세워졌다. 그 후 북부의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중심으로 국토회복운동인 레콘키스타 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져 안달루시아 지방 이남까지 이슬람 세력들 몰아냈다. 1468년 카스티아의 이사벨 왕녀와 아라곤의 국왕 페르난도가 결혼해 연합 왕국이 탄생하고 그라나다 왕국이 1492년에 함락됨으로써 레콘키스타가 완결됐다. 그 해 컬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여 스페인은 막대한 부를 쥐게 되었다. 카를로스 1세가 1519년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되었고 스페인의 영토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지를 병합해 세력은 더욱 흥성했다. 이후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해군에 대패하였고 신대륙으로부터 오던 재정의 감소, 지배하에 있던 네덜란드의 반란과 잦은 출병 등으로 인해 쇠락의 길로 들어서던 중 1700년 카를로스 2세가 후사없이 죽어 12년간 왕위 계승 전쟁을 겪게 된다. 1808년에는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자 영국의 지원으로 이를 격퇴하지만 국가경제와 정치상황은 몰락에 가까웠다. 제1차세계대전에는 중립을 지켰고 1936년 총선에서 좌파인 인민전선이 승리하자 프랑코 장군의 우파에 의한 쿠데타와 1939년 4월까지 내전을 겪는다. 제2차 세계대전에도 중립을 지켜 국제적으로 고립된 가운데 1975년 프랑코가 죽자 망명했던 후안 카를로스 1세가 돌아와 즉위해 신헌법을 제정하고 1977년 총선을 치루어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했다. 2002년에는 유럽연합에 가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항에서 나온 나는 지하철역부터 갔다. 이 때 시간이 23시 30분 전후였던 것 같다. 첫 날은 마음 편하게 쉴 겸, 아침이면 정보도 좀 얻을 겸 한인 민박에서 쉬고 싶은 생각에 두 곳의 후보 숙소 중 한 군데를 선택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자판기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에스파뇰로 메뉴에 나오는 것으로 봐선 1구역 2구역... 뭐 이런 식으로 터치스크린을 누르는 모양이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이 몇 개 구역에 해당하는지 알 수가 있나. 가이드 책자를 펴 보았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2유로라고 나와 있었다.  일단 무조건 2구간을 선택하고 2유로를 넣었다. 찍찍거리며 티켓 출구에 불이 들어오며 표가 툭 떨어졌다. 우리나라에서 교통카드가 일반화되기 전 전철표와 같은 형태와 크기였다. 표를 넣고 들어가니 뭔가 찌릭찌릭 표에 인자하는 소리가 들렸고 뒤이어 표가 앞쪽으로 기어 나왔다. 이걸 뽑아 든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항공기에서 내린 승객들이 시내로 가기 위해 속속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이 곳 스페인의 지하철도 스프레이 낙서 같은 것 없이 우리 한국의 지하철 못지 않게 깔끔했다. 하지만 매달린 열차량수는 너댓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두 번의 환승 후 아토차 역에서 내렸다. 내가 얻은 정보에는 가고자 했던 민박집이 아토차역 7~8분 거리로 나와 있어 일단 이곳에서 내려 공중전화부터 찾아 다녔다. 가져온 전화번호를 눌러 보았다. 뭐라고 말하는데 서비스가 불가능한 번호라는 말이 나왔다. 로밍해 온 폰으로 전화를 해보았지만 역시 연결은 되지 않았다. 로밍해 온 휴대폰으로 전화를 시도해 보았다. 내가 누른 번호에 자동으로 국제번호와 한국번호(82)가 붙어 작동했다. 현지발신 기능 버튼을 찾아야 했지만 이미 찾아오기 시작한 노안때문에 무엇을 눌렀을 때 현지발신으로 변환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것 저것 눌러 보았지만 반갑지 않은 기능만 작동했다. 내가 가진 폰이 스페인에서 자동로밍이 안되는 통에 빌려온 기기였는데 회사가 달라 기능 파악도 아직 되지 않은데다 현지발신으로 설사 바뀌었어도 눈으로 확인할 정도의 시력은 내게 없었다. 배낭 깊숙히 들어 있는 돋보기를 꺼내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보기로 했다. 어쨌든 전화번호가 바뀐 것이 아닌가 싶어 택시를 타고 적어 온 주소를 기사에게 내밀었다. 고개를 갸웃거린 그는 네비게이터로 주소를 찍어 보았지만 그런 주소는 나오지 않았다. 이 사람 저사람한테 물어 보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때 시간은 이미 12시가 훨씬 넘어 있는 시간이었다.

한 노신사에게 다시 물으니 주소를 들여다 보며 말했다.

"택시를 타지 그래요?"

"이 곳은 택시 기사도 모르던걸요."

그는 내가 가진 주소를 택시기사에게 들이밀며 뭐라고 뭐라고 물었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더니 내가 가진 주소를 들고 돌아와 말했다.

"당신의 주소중 Telez 거리란 건 없고 Tellez 가 맞는 것 같은데 그 곳은 여기서 멀지 않으니 차라리 걸어가라고 하네요. 저쪽 방향이라는데요."

노신사는 내게 이 말을 전하며 권했다.

"그 곳에 가기 전에 전화부터 해보지 그래요?"

"전화가 잘 안되던데요"

그가 나한테서 전화번호를 받아 자신의 폰으로 연결을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연결되지 않았다. 노신사에게 치하를 한 뒤 다른 숙소를 찾을까 잠시 고민한 뒤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길을 건너 아토차역을 지나서 문제의 주소를 들고 찾아다녀 보았다. 이 때 시간이 거의 새벽 한 시였다.

 

2011.1.17(월)

새벽에도 간간히 길을 물어볼 만한 사람들이 있었다. 때로는 맞는 방향으로 가르쳐 주어 가다가 알지도 못하면서 반대 방향으로 가게 만드는 사람도 있었고 그래서 다시 되돌아 오는 등의 방황 끝에 간신히 찾은 Tellez가 10번지에는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중 해당 호실의 벨을 눌렀다. 드디어 찾았나 했더니 한국인이 아닌 스페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엇, 여기 한국인 운영 민박집 아닌가요?"

"아닌데요. ㅡ,.ㅡ;"

"대단히 죄송합니다."

나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이 곳에서 이 사람을 괴롭혔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 집은 포기하고 나머지 다른 민박집을 찾아가 볼까 하다가 이내 생각을 접었다. 시간이 이미 새벽 두 시를 넘고 있었고 단 서너시간만 자고 나면 곧 바르셀로나행 AVE를 타고 넘어갈 참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다시 길을 되짚어 나온 이유는 혹시 못찾으면 여기서 자야겠다며 봐 둔 호텔이 몇 군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래의 야식집에서 출출한 김에

 

에스르프레소 한 잔과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이른 새벽이라 그런가 이걸 시켜 놓고 7유로나 냈다. 어이가 없다. 게다가 먹다 보니 범벅을 한 케첩 덕에 케첩을 먹는건지 감자튀김을 먹는건지...

 

먹고 나서 길건너 보이는 자그마한 호텔로 가봤다. 깨끗하고 좋긴 한데 하루밤에 91유로? 그것도 서너 시간 잔 뒤에 나갈건데? 그냥 나왔다. 나는 아침에 바르셀로나로 바로 직행할 생각에 역 근처로 가봤다. 

  

바로 역전에서 자기로 했다. 바로 근처에 아르헨티나 호스텔이란 곳의 벨을 눌렀다. 문이 열리자 들어가 체크인했다. 30유로면 값도 비교적 괜찮았다.

 

방은 작지만 편안한 느낌이었다. 화장실과 욕실은 공용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 시간은 새벽 세시경이었다.

 

잠은 일부러 많이 자지 않았다. 낮시간을 최대한 아끼자면 아침 일찍 기차를 타는 것이 낫겠단 판단이 섰다. 여섯시 반쯤 일어나 기차역으로 가봤다. 1층 매표소로 찾아가 7시 30분발 바르셀로나행 AVE열차표를 샀다. 자그마치 118.5유로다. 저렴한 버스와 기차도 있었지만 내게 있어 돈보다 더 귀한 것이 바로 시간이었다. 다시 출입문이 잠겨진 호텔 안으로 들어가느라 프론트 직원(이 호텔의 주인인 것 같던데)을 한 번 더 괴롭힌 뒤 짐을 챙겨 나왔다.

아침 식사는 바로 옆 바르(Bar)에서 했다. 추로스 한 접시와 커피 한 잔 그리고 오렌지 주스 한잔 세트메뉴가 3유로.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흔히 즐기는 아침식사다. 이걸 먹고 시간 맞춰 역 안으로 들아갔다.

 

아침 먹으며 거울을 통해 셀카 한 컷.

 

손님을 맞아 새벽부터 분주한 바르 사람들.

 

역 안으로 들어가니

 

고속열차인 AVE가 이미 대기중이었다. 왼쪽의 열차가 바로 바로셀로나행 열차다. 버스를 탄다면 8~9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걸 탄다면 오늘 하루를 죄 다 길바닥에 쏟아 부어야 했다.

 

바르셀로나가 소재한 카탈루냐 지방과 레반테는 바르셀로나 백작령, 아라곤 왕국, 발렌시아 왕국으로 각각 독립헤 있었다고 한다. 프랑코 장군의 독재 시대에는 카탈루냐어가 탄압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카탈류냐어가 카스티아어와 함께 독자적인 언어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카탈루냐 지방에는 미로, 달리, 카잘스 같은 예술가들을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며 특히 바르셀로나는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과는 문화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며 사람들도 무척 근면하고 소박하다고 한다. 바르셀로나는 수도인 마드리드에 이어 제 2의 도시이며 가우디의 많은 작품들이 밀집해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열차 안은 쾌적하고 안락했다. 사실 Easyjet 항공을 이용한다면 훨씬 저렴했을테지만 예약을 싫어하는 나의 특성상 예약은 하지 않았다. 당시의 계획으로는

바르셀로나 → 리스본 → 세비야 → 그라나다 → 코르도바 → 마드리드 → 인천의 코스가 최선인듯 했다. 각각 이틀 안팎의 일정으로 감안하고 있었다. 상기의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자면 지금 당장 바르셀로나로 떠나야 했다. 바르셀로나행 표로 살걸 잘못했다는 생각은 처음 계획을 세울 때무터 이 때까지 내내 했다.

굳이 이 날 마드리드를 떠나려 용을 쓴 이유는 여행일정 마지막 날 인천으로의 회항이 마드리드에서 있기 때문에 마드리드는 나의 일정상 마지막 날이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날 하루를 마드리드에서 보내고 야간 버스나 열차를 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건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다. 마드리드가 모든 행선지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이후에도 마드리드에서 다시 출발할 개연성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바르셀로나에서는 포르투갈로 넘어갈 참인데 항공권 구입이 가능하다면 바로 갈테지만 그게 안된다면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가 하루밤을 보내고 하루 일정을 마친 뒤 다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가야했다. 만일 열차표나 버스표가 여의치 않으면 다음과 같은 일정으로 바꿔 결정해야 했다.

바르셀로나 → 마드리드 → 리스본 → 세비야 → 그라나다 → 코르도바 → 마드리드

물론 다른 방법도 있다. 안달루시아지방인 코르도바, 그라나다, 세비야를 먼저 돌고 나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간 뒤 마드리드로 가는 방법.

그러면 마지막날 마드리드가 아닌 다른 먼도시(리스본이나 코르도바)에서 마드리드의 공항으로 가야 하거나 도시 하나의 일정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곧바로 바르셀로나로 넘어간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어떠한 교통편이든 겨울에는 표를 구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열차 안은 한산했던 덕에 편안하게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은 10시 30분정도였다. 노땅의 한계가 여기서 다시 나의 발목을 잡았다. 로밍해 온 휴대폰에 통신사로부터 온 문자에 '00 사용으로 추가요금 요인이 발생했으니 원치 않으시면 기종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메뉴 → 뭐 어쩌고 저쩌고에서 해지하시기 바랍니다.' 지시대로 따라가 봤지만 제시한 방법과 다른 기종이어서 해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휴대폰 메뉴를 이리저리 뒤져 봤지만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게 뭔지 알아보기 위해 뜀도령에게도 문자를 보내 봤지만 뜀도령의 답변은 "나도 모르오"였다. "에이 씨 지가 요금이 추가로 나오면 얼마나 더 나올까"하고 배짱을 튀겨 보기로 했다. 그래서 역에서 허비한 시간이 자그마치 1시간이었다. 에고 시간 아까워라. 나중에 알고 보니 이건 스마트폰에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가진건 대여폰이고 스마트폰도 아니었구만 젠장 ㅡ,.ㅡ; 어쨌든 나는 바르셀로나에서 볼거리들 중 가장 먼 곳부터 보기 위해 가우디의 작품 중 하나인 구엘공원부터 가보기로 했다. 3호선 발카르카 역에서 내려 사람들에게 물어 어렵지 않게 구엘공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찾아냈다. 이런 골목에도 언덕 꼭데기에 이르는 에스칼레이터가 끝도 없이 설치되어 있었다. 옥외에 설치된 에스칼레이터도 그렇지만 이런 민간인들이 사는 골목에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었다.

 

언덕 꼭데기에 이르자 그 곳에서 바르셀로나 시내를 내려다 보는 사람들이 몇 있었고 그 곳에서 블루스 음악을 연주하는 사내가 있었다.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한 알바다. 실력은 카페같은 곳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웬만한 실력자들 보다 나았다.

 

언덕에서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구엘공원 광장이 나온다. 12:00 쯤 도착했다. 난간을 겸한 긴 벤치가 중앙광장을 휘두른다. 모자이크 같은 타일이 아름답다. 평일이라 그런지 그다지 많다고 할 수 없는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이 곳에서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한 번 앉아 봤다. TV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는 가우디 공원에 내가 앉아 있으니 살짝 감개무량함이 몰려 온다. 나는 지금 예술작품 안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 공원에 붙여진 이름의 주인은 가우디의 후원자이며 이 공원 설계를 의뢰한 에우세비 구엘(Eusebi Guel)이었다.

  

이 광장의 뒤쪽으로 돌아다 보면 아래의 사진과 같이 돌로 조성한 벽에 꽃과 나무로 장식했다. 약간은 기괴한 듯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풍긴다.

 

광장 아래로 내려가면 광장 자체를 떠받치는 기둥들이 있고 천장에는 이를 장식한 모자이크와

  

 

문양이 눈길을 한참동안 사로잡는다.

  

광장 바로앞 아래에는 이 공원에서 가장 인기있는 도마뱀 분수가 있다. 

 

분수라고는 하지만 입에서 자그마한 쇠파이프를 통해 나오는 물을 질질 흘려대는 수준이지만 이 도마뱀의 모자이크 장식을 통한 채색과 생김새를 보자면 미소가 나온다. 아래를 향해 쏠리는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쫙 벌린 네개의 다리는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다리와 배 아래에서는 화초가 자란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기념 촬영을 한다. 아래의 사진은 침흘리듯 물을 흘려내는 귀여운 도마뱀 분수. 도마뱀도 침을 흘리는가...?

  

 

도마뱀 분수 바로 위에 있는 이 장식물은 병따개 같이도 생겼는데 무엇을 상징하는건지...

 

성채처럼 도마뱀의 좌우를 둘러싸는 이 벽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 아름답다.

 

삼각대를 정문에 설치해 놓고 셀카질을 해봤다. 중앙 위쪽으로 중앙광장과 이를 떠받치는 기둥들이 보이고 좌우로는 성벽 같은 벽장식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셀카질 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한 백인 여인이 같은 배경을 두고 한 컷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때는 좀 부담스럽다. 내 사진이니까 마구 생각없이 대충 찍어대지만 남의 사진을 찍을 때는 만족스럽게 잘 찍어 줘야 한다는 생각에 신경이 쓰이는 탓이다.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지만...

 

이 번엔 공원의 우측으로 돌아 보았다. 돌조각만으로 세워진 조형물(조형물이라기 보다는 다리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돌 하나하나를 쌓아 곡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이런거 이 곳 말고는 볼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다. 이 곳에서는 기타도 아닌 것이 기타와는 다른 사운드를 내는 악기 연주자의 생음악이 운치를 더한다.

   

전체적인 모습이 아닌 부분적으로만 보자면 파충류의 거친 피부가 연상된다.

 

이 곳의 위로 올라가면 다리처럼 둥글고 길게 놓여져 있어 사람들이 거닐 수 있도록 되어 있고 한 쪽으로는 규칙적으로 화분대를 만들어 알로에처럼 생긴 선인장들을 심어 놓았지만 그 역시 같은 돌로 만들어져 있어 걸으며 둘러보는 재미가 적지 않다.

  

 

올려다 본 사진

 

내려다 본 사진.

 

얼핏 보면 돌로 얼기설기 엉성하게 갖다 붙인 듯한 느낌이 들지만 견고성이 없다면 건축가의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테지만 무엇보다도 유명세를 탈 이유는 더더욱 없었을터다. 잔돌로 거칠게 만들어진 여인의 형상은 머리에 뭔가를 이고 있지만 사실 이 건축물 자체를 떠받치고 있어 여신을 연상케 한다.

 

그 안쪽으로는 마치 거대한 파도를 타는 서핑이 연상되는 구간이다.

 

이 곳은 가우디가 살았던 집이다. 1층에서는 기념품을 팔고 있고 2층부터는 가우디가 살던 시절의 소품들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는데, 이 곳은 역시 가우디다라는 감탄사가 나올 만큼 그 내부도 범상치 않다. 입장료 5.5유로.

 

응접세트도 직선은 별로 없고 곡선 위주로 이 사용되어 있지만 그로 인해 공간을 낭비하는 요인은 거의 없는 모양새와 배치로 꾸며져 있다.

 

무엇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장식물도 마찬가지.

 

역시 가우디스러운 가구들과 공간이다.

 

이렇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거울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듯하다.

 

둥근 거울과 세면대 그리고 변기가 인상적인 욕실. 벽과 바닥의 타일은 의외로 평범하다.

 

이 곳에서 기념품 몇 개 샀다. 구엘공원의 도마뱀과 중앙광장을 떠받치는 기둥 사이 천장문양, 그리고 그리고 역시 가우디의 작품인 카사밀라를 형상화한 자석(개당 3.6유로) 

 

도마뱀 분수 모형인형(11.4유로). 닭은 후에 포르투갈에서 산 기념품이다.

 

 

밖으로 나오면 공원울타리와 사무실, 경비실이 그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정문 왼쪽의 사무실 건물. 동화의 나라에서나 볼 수 있을 건물로 둥근 형태로 짓고 곡선 위주로 모든 것을 표현했다.

 

오른쪽은 경비실 건물인데 이 두 건물은 동화속의 나라 같은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양새때문에 과자의 집으로도 불리운다고 한다.

 

이 곳을 나와(13:15) 산 파우 병원(Hospital de la Santa Pau)으로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짚었다. 새로운 길을 걸어보기 위해 정문에서 나가 볼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지하철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길을 헤매 시간을 낭비할지 모른다는 약간의 두려움 때문에 후문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발카르카역에서 다시 지하철 3호선(1.45유로)을 타고 5호선으로 갈아탄 뒤 산 파우병원 방향으로 가던 중 왠지 왼 쪽 앞주머니가 허전해 손을 넣어봤다. 아뿔싸... 현금 150~200유로정도 있던 지갑이 없어졌다. 배낭 매고 지도와 가이드 책자를 번갈아 보던 중 누군가 채간 모양이었다.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아무리 행선지를 점검하느라 정줄놓 상황이라 하더라도 꽉끼는 블랙진 바지 앞주머니에서 이걸 나도 모르게 빼갔다면 보통 솜씨는 넘을 터였다. 그나마 돈은 세 군데로 분산해 보관중이었고 그 중 가장 돈이 적었던 지갑에서 빼갔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기념품을 사느라 55유로 정도를 이미 쓰고 난 뒤라 그나마 피해가 줄었다. 한국에서 공항을 오가며 쓰려고 두었던 비상금 6만원은 도대체 쓸 일도 없으면서 왜 지갑 안에 넣고 다녔는지 지금 생각해도 한심했다. 누군가 나와 부딫히거나 말을 걸며 접촉들 시도했다면 그를 기억했을테지만 그런 적은 없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오른쪽 앞주머니에 들어있던 여권은 무사했고 신용카드도 무사했다. 적은 금액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자리에서 곧 이를 잊기로 했다. 내가 지갑을 날치기 당했던 그 시기에 만일 범인이 봤다면 아마도 '저 인간 앞주머니에 지갑이 없어진 줄 알면서도 저리 태연한 이유는 뭐지?' 하며 의아해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나는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다. 곧 잊어버린 나는 조심성인지 소심성인지 몰라도 상당한 주변 경계심이 생겼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남부에서는 드문 일이고 북부, 특히 바르셀로나에서는 이런 일이 많다고 한다. 동구권에서 흘러 들어온 이들이 생계수단으로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고 한다. 어쨌든 이걸 뽀리쳐 사드신 음식은 뱃속에서 두고두고 탈을 내서 죽을때까지 설사나 하셈. 산 파우병원 역에서 내려 한 두 사람에게 물어 병원을 찾아갔다. 골목을 타고 비스듬한 오르막길을 가다 보니 누가 얘기해 주지 않아도 알아볼 만큼 아름다운 건물이 나왔다. 공사중이라 여기저기 막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이 병원 건물은 도메넥 몬타네르의 작품으로 파우 길(Pau Gil)이라는 은행가의 유언에 따라 지어졌는데 도메넥 몬타네르 사후에는 그 아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착공했던 1902년으로부터 28년만인 1930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총면적 14만 5천 제곱미터의 부지에 48개의 병동이 있고, 1997년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내부 공사중이었고 여기저기 들들 뜯어내는 소리가 내 몸까지 진동을 느끼게 했고  트럭 등이 안에서 오락가락 했던 관계로 내부 관람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저 밖에서 둘러쳐진 울타리를 통해 건물을 들여다 보는 방법밖엔 없었다. 이 건물은 아라베스크 양식이 가미된 무하데르 양식이라고 하며 모데르니스모(Modernismo:현대주의쯤 되겠다) 건축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아래의 사진은 정문 게이트를 구성하는 왼쪽 기둥이며

 

오른쪽 기중과 쪽문이 보인다. 무척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철책 조차도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병원을 밖에서만 둘러 본 뒤 이번에는 지하철 1개 역이 떨어져 있어 걸어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o de la Sagrada Familia)으로 갔다. 건물들 사이로 얼핏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설현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가 주변 건물이 가리면 시야에서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며 머잖아 아름다운 성당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