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9(수)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새벽에 삼실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내 기준에는 절대 목숨 걸만큼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하지만 꿈지럭은 최소한 해야 할 상황이었고 새벽부터 잠을 설치기는 이 날도 마찬가지였다. 오전시간 태반은 그 일에 쏟아 부었다. 전에는 없던 일이다. ㅡ,.ㅡ; 이 번 여행 내내 그래야 하나 하는 예감에 떨었지만 다행이 여기까지였다. 내가 묵었던 집을 떠나며 뒤돌아 보았다. 아래 사진 가장 윗층의 반이 민박집이다. 사진에서 보자면 5층인 것 같지만 스페인에선 우리 기준에 2층을 1층으로 간주한다. 1층을 지하로 간주하기 때문에 이 민박집 주소는 5층이 아닌 4층으로 표기된다. 왜그럴까. 나도 모른다.
이 날 첫 코스로 잡은 곳이 산 마리아 델 마르 성당이었다. 4호선 자우메 1세역에서 내린 뒤 걸서서 갔다. 피카소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전날 갔던 길을 되짚었다. 아래의 무척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은 전날에도 피카소 박물관을 찾다가 이미 본 적 있는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지금도 무슨 용도엔가 사용되고 있었다. 스페인에선 흔한 일이니 갈 길 바쁜 나는 그냥 마음 속에 물음표만 찍은채 그냥 지나갔다. 길가다가 물어봐야 스페인어로 말해줄 게 뻔하고 말해줘 봐야 이해도 못할텐데 뭐. ㅡ,.ㅡ;
이 곳이 산 마리아 델 마르 성당(Iglesia de santa Maria del Mar)이다. 카테드랄에서 본 장식적인 모습은 별로 없고 왠지 뭉툭하고 평범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외관이다. 물론 한국에 이런 성당이 있다면 눈에 번쩍 뜨였을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카탈루냐 고딕 양식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이다.
입구의 파사드도 장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지만 양식은 분명 고딕양식이다. 육중한 문은 아랍권에서 이미 많이 보던 문양을 새겨 넣었다.
일반적인 고딕양식에서 보이는 그 높고 삐죽한 탑은 보이지 않고 팔각형의 첨탑이 그를 대신한다. 하지만 둥글고 커다란 스테인드 글라스는 역시 고딕 양식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역시 고딕 양식이라는 느낌은 확연하게 든다.
성당 건물 곳곳에 채광 역할을 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섬세하고 아름답기 짝이없다. 아래의 창에 새겨진 스테인드 글라스는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예수의 모습인 것 같다. 그 위로는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지상을 향한다. 이 것은 여러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두 인물의 머리 뒤에는 오오라가 비춰지고 있고 예수의 오오라는 좀 더 특별하게 새겨 넣어 차별성을 강조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15~17세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하는데 그 작품성과 섬세함에 있어 눈요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둥은 스페인 여행 내내 보았던 다른 고딕 양식의 건축물과 달리 8각진 기둥으로 되어 있다.
이 성당의 건축시기는 1329년 착공하여 55년동안 지어지 것으로 당시 이 일대에 살던 선원들이 모은 기금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한 쪽에 눈에 띠는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부조 작품에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축 쳐진 예수 그리스도와 이를 들여다보는 슬프고도 안타까운 표정의... (요한인듯하다). 주변의 여인들은 슬픔과 심적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손으로 감싼 모습들이 새겨져 있다.
이승에서의 생을 마감한 예수의 축 쳐진 모습은 무력감 그 자체가 보는 이로 하여금 실제 그모습으로 착각하게 만들 뿐 아니라 죽은 그를 들여다 보는 요한의 얼굴에 새겨진 표정에는 슬픔, 근심, 안타까움, 측은함, 절망적인 상황을 믿지 못하고 확인하려는 그 모든 느낌이 다 들어 있다는데 나는 놀라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놀랄 일은 그뿐이 아니었다.
요한의 표정에 비하자면 그 오묘함은 훨씬 덜하지만(사실 이 부조의 주인공은 예수와 요한인만큼 그 두 인물에는 작가로서도 지극한 공을 들이지 않을수 없었을테지만 말이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얼굴들과
얼굴을 감싸쥐기까지 한 그들의 육체와 실루엣, 그리고 섬세한 옷주름을 보자면 살냄새가 물씬 풍겨오는데다 이 차가운 소재 안에 새겨진 성상들로부터는 그 뜨거운 격정과 영혼의 파장마저 느껴져 오니 이는 나의 과장도 아니요 착각도 아니리라는 확신이 나의 뇌리를 사로잡는다. 이들로부터 간신히 눈을 뗀 채 뒤돌아 보니
내가 들어왔던 파사드 위로는 커다랗고 둥근 스테인드 글라스가 여느 고딕 양식의 건축물 못지 않은 위풍당당함을 과시함과 동시에 그 아룸다움을 한껏 뽐내며 수백여년 세월의 무게를 감당해 왔음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성당을 나와(12:00) 자리를 이동하며 골목을 뒤돌아 찍은 성당의 외관. 이 곳도 골목에 둘러싸여 있어 전체적인 모습은 둘러볼 수 없었다.
이 번에는 바닷가를 향해 나가 보았다. 바르셀로나까지 와서 바닷가를 가 보니 않는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바닷가를 향하는 공원이 눈에 들어오자 그 한켠으로는 앤디 워홀 따시기 갈기는 팝아트 작품 같은 뭔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작은 부두에는 수많은 요트가 정박하고 있어 유럽 바닷가의 낭만이 부분적으로나마 느껴진다.
이 곳을 잠깐 거닐다가 초저녁에 리스본으로 넘어가는 항공편에 탑승해야 한다는 생각에 여유도 잠시뿐 나머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다시 명승지 밀집지역으로 돌아왔다. 바닷가를 향헤 우뚝 선 고색창연한 이 건물은 가이드 책자에도 나오지 않을만큼 스페인에는 볼거리가 넘쳐난다. 입구 상단에 뭐라고 써있긴 한데...
어쨌든 나는 다시 거의 원점으로 돌아와 산 자우메 광장을 찾아봤다. 지도상으로 보자면 이 곳인 것 닽은데 이 곳은 이미 전날에도 왔다갔다 하며 본 곳 중 하나였고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전적인 건물 두 채가 마주 본다는 사실 외에는 특이할 것도 없는 이곳이 관광명소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탓이다. 하지만 내가 찾던 이 곳이 그 곳이라는 사실은
건물 한켠에 새겨진 광장의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였다. 고전적인 두 건물은 시청사와 자치정부 청사의 건물이라고 하는데 윗사진이 자치정부 청사로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의 기간중에 지어진 건물이고 아래 아래의 사진에 나온 건물이 14세기에 지어진 건물이니 유서깊은 곳이기는 하다.
여기에 뭐 대단한거 있나? 어쨌든 그렇다 치고 산 자우메(Sant Jaume)는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야콥(야고보)을 카탈루냐어로 읽은 것이라고 한다. 야콥과 자우메... 비슷한가? 8일동안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들어갈 희한한 소리다.
이 곳을 떠나 도보로 이동하던 중에 만난 람블라스 거리. 이 곳에는 큰 대로에 중앙 인도를 만늘어 놓은 형태로 길게 드리워져 있으며 그 가운데 널찍한 인도에는 야외 카페와 기념품 가게, 꽃가게 등이 줄지어 있다.
그 한켠을 차지하는 레이알 광장에는 가우디가 건축학교 졸업후 첫 작품으로 세웠다는 광장의 가로등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입구만 제외하곤 건물이 사방을 막은 사각형의 널찍한 광장에는 야자수를 심어 그 운치를 더했고
그 광장에는 관광객들이 보고싶어하는 문제의 그 가로등이 몇 개 서 있는데 대충 기억에 4개였던가?
광장에는 가우디가 만든 가로등 외에도 그 넓이를 감안해 몇 개가 더 세워졌지만 독특한 모양새는 다른 가로등을 의식하지 못할만큼 독특한 작품이었다.
보는바와 같이 가로등의 형상은 투구를 모티브로 했으며 붉은 받침대와 장식은 독특함을 더한다.
원래는 이 가로등이 바르셀로나 시내 전역에 설치될 예정이었으나 무슨 연유에서인지 팔라우 광장과 이 곳 레이알 광장에만 설치가 되었다고 한다.
이 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 가우디의 작품중 하나인 구엘저택이었다. 이 날의 마지막 코스였다.
머지 않아 골목 한켠에 자리잡은 구엘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이 곳이 구엘저택임을 가장 먼저 알아보게 한 것은 독수리 장식이었다. 중세시대의 귀족 가문 문양을 연상케 하는 이장식은 르네상스 양식에세 따 온 것이고
아치 틀 안에 쇠뭉치를 엿가락 모양으로 자유자재 휘어 만든 양식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혀가 절로 내둘려진다.
근데 문은 굳게 잠겨 있어 출입구가 어딘지 찾던 내 눈에 들어온 안내문이 좌절감을 안겨줬다. restoration을 위해 한동안 폐쇄한다는 내용이 4개국어로 표기되어 있었다. 할려면 진작 하든가 나중에 할일이지 하필 내가 올 때를 맞춰 공사를 하냐 이 고약한 눔의 인간들아. ㅠㅠ
방법이 없었다. 바깥에서만 충분히 보고 가는게 마지막 남은 방법이었다.
가우디가 지은 건물 치고는 직선과 사각형이 무척 많은 형태다. 눈에 보이는 이 건물은 당초 별관으로 지어졌지만 구엘은 이 건물을 좋아해 본관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지하 1층은 마굿간, 지상 1층은 마차고, 3층은 침실, 4층은 하인들의 방과 주방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내부는 네오 무아마르 양식이라고 하는데 무아마르 양식은 대충 알겠는데 네오 무아마르 양식은 뭔지 들어가 봐야 알 수 있건만 막아 놓았으니 확인할 방법은 없다. 없음 말구.
2층의 중앙 살롱은 가우디의 독창성이 돋보인다고 하는데 확인할 길은 없고 저 옥상위의 굴뚝만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굴뚝을 장식하길 좋아하는 가우디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고 장식된 그 모습은 절대 어디 가서도 볼 수 없는 귀여운 모양새다. 이거 사파이어 왕자네 궁전 건물의 일부가 아닐까 실없는 공상을 해본다.
정신없이 구경거리만 찾아다니던 나는 이미 14:30이 된 시간에야 시장기를 느끼고 적당한 레스톻랑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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