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8(화)
새벽이 4시가 조금 넘자 휴대폰에 벨이 울렸다. 사무실에서 온 전화였다. 종결짓고 왔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재론된 모양이었다. ㅡ,.ㅡ; 사실 화도 났지만 이 날 오전은 그 업무를 처리하고 사무실에 전달하느라 오전을 모두 버려야만 했다. 늦은 아침이 되자 이 곳에 숙박하던 사람들이 하나 하나 졸린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와 응접실 컴퓨터 앞에 붙어 앉은 내게 인사를 건네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모두 모여 늦은 아침식사를 했다. 투숙자는 나를 포함해 모두 6명이었는데 나를 제외한 5명 모두 서로가 하도 친근하기에 함께 온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이 곳에서 만나 친해진 사람들이었으니 젊은 사람들의 친화력도 대단하다. 아침 식사 메뉴는 김치찌개, 김치, 계란말이, 소세지 등이었는데 주인장의 솜씨가 워낙 좋아 한국에서 먹던 그 맛 그대로였다. 사실 외국에서 한식을 먹자면 재료의 특성이 달라 이런 맛을 내기는 극히 어려울텐데도 먹는 이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 넣기에 충분했다. 아래의 사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여행부터 오겠다고 무작정 떠난 두 남자와 방학을 이용해 배낭여행을 떠난 두 남매, 그리고 이 곳 바르셀로나 민박의 사장이신 윤형로씨의 사진이다. 대학원을 다니며 파트타임 약사로 근무중인 아가씨가 있었지만 부지런한 그녀는 일찍 이 곳을 떠나 구엘공원을 향해 갔다. 전날 소매치기를 당한 뒤 혹시 구엘공원 기념품 가게에서 혹시 습득된 지갑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가와 부딫힌 적도 없었고 내게 수상한 수작을 붙여온 이도 없이 지갑만 달랑 없어지니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질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탁해 본 것이었다. 저녁에 만난 그녀의 답변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이틀 뒤 리스본으로 가는 비행기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더니 자매 중 언니가 인터넷을 뒤지며
"지금은 비수기니까 틀림없이 있을거예요." 하며 알아봐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표가 있었다. easyjet항공이었는데 이틀 전이라 조금 비싼 71유로에 구했다. 하지만 고속철 AVE보다는 훨씬 저렴한데다 시간도 절약할 수 있는 매리트가 있어 얼른 구입했다. 이 친구가 아니었으면 하루를 꼬박 잡아먹어 가며 육로로 이동했을지 모른다. 그러면 앞으로의 일정도 계속 복잡해진다. 나는 업무처리 때문에 오전을 홀랑 날렸고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숙소 응접실 컴퓨터 앞에 뭉게고 앉아 있었다. 나 말고도 아래 사진의 네 사람이 모두 있으니 사람 좋은 주인장은 예정에도 없던 점심까지 투숙객에게 제공했고 나는 염치없이 이 곳에서 주인장이 해주는 점심까지 얻어 먹고 나왔다. 나오려는 나를 은근히 붙잡으며 낮술이나 마시며 하루를 루즈하게 함께 보내자고 했다. 약사 아가씨만 빼고는 모두가 그렇게 이 곳에서 오전과 오후 시간을 보낼 모양이었다. 나도 이들과 여기 섞여 대낮부터 맥주로 흥건하게 하루를 적셔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겐 시간이 별로 없어 저녁에 일찍 들어오겠다는 약속을 한 뒤 혼자 숙소를 빠져 나왔다. 이 때 시간이 오후 1시를 넘겨 2시가 거의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아래의 사진은 식사 직후였던 것 같다.
막상 자신있게 밖으로 나오고 보니 간밤에 택시 타고 이 곳에 온 탓에 주변 지리는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잠깐새 친숙해진 숙소 분위기를 접하고는 이 곳이 익숙하다는 착각을 한 탓이었다. 숙소를 나오자 지하철이 어느 방향인지도 몰라 사람들에게 물어 그리로 향해 가던 중 건널목 신호가 바뀌길 기다릴 때였다. 길을 건너려는데 30대 중반정도로 보이는 한 여인네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썪소를 쉬지 않고 날렸다. 이 아가씨가 날 좋아하나? 왜 그러지? 마주 길건너며 그녀가 내게 물었다.
"한국인이져?"
날 보자마자 썪소를 날린 이유도 궁금했지만 내가 한국인인지 금방 알아본 것도 희한하게 느껴졌다.
"걸 어떻게 알았어요?"
"우리 아저씨하구 똑같이 생겼어요."
거의 정확한 발음으로 "아저씨"만 한국어로 말했다.
"댁의 uncle과 닮았단 소린가요?"
"아뇨 남편요. 울 남편이 한국 사람이걸랑요."
나도 반가운 나머지 악수를 청해 한참을 흔들었다. 그녀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가던 길을 갔다. 근데 외국인들이 보기에 한국 사람들은 죄 다 똑같이 생겼나보다. ㅡ,.ㅡ;
숙소에서 가까운 5호선 Camp del'Arpa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Verdaguer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러 이동하던 중 음악소리가 들렸다. 통로 중간쯤에 아코디언을 든 남자가 소형 오디오를 통해 반주를 흘리며 연주를 하고 있었다. 저마다 갈 길을 갈 뿐 관심 갖는 이가 없어 안됐지만 나 역시 갈길이 바쁘다.
우르키나오나(Urquinaona)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지 주변엔 고전미 넘치는 건물들로 가득했다.
이 날 첫 코스로 찾아 간 곳은 카탈루냐 음악당.
역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약간은 후미진 골목 안에 있었다. 가던 길에 벽돌로 쌓아 올렸지만 감각적으로 변화를 준 아래의 건물이 아름다워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알고 보니 이 곳은 내가 가고자 했던 카탈루냐 음악당의 일부였다.
이 곳에서 표를 사서 안으로 들어간다. 15:00에 정해진 영어 가이드 투어가 있었고 표(12유로)를 구입한 시간은 14시 16분이니만큼 시간을 이곳에서 때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 곳 광장 한켠에 앉아 이 날의 코스를 점검하고 가이드 책자에 나온 내용들을 곱씹으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에 맞춰 입구로 가보았다. 몇 몇 대기자들이 입구에 들어가 기다렸다.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내부 장식의 화려함과 그 아름다움을 담을 수 없음에 너무나도 큰 아쉬움이 남는다.
아래의 사진들은 몰래 찍었다는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퍼왔다. 나도 그 분한테서 허락 안받았는뎅. 나는 아래의 건물 모서리 부분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볼 생각을 안했으니 나도 참 어지간히 띠엄띠엄 봤나보다. ㅡ,.ㅡ; 이곳의 가이드투어 코스중 첫번째는 입구 진입 직후 왼쪽에 자그마한 영상실이 있고 이 곳에서 이 음악당과 건설당시의 사회배경 등을 담은 필름을 상영했다.
장식 기둥이 있는 아치형 창 안의 공간이다.
배경이 둥근 무대 좌우 벽면으로는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여신들이 새겨져 있다. 상반신은 조각으로 악기를 든채 튀어 나왔고 하반신은 벽에 그려져 있는 특이한 모양새다. 상체는 입체 하반신은 납작. 깔렸나...
무대 좌우에는 거대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우측으로는 역동적인 말과 기수가 있고 왼쪽으로는 나무가 드리워진 형태다. 음악가 얼굴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베토벤이었는지 누구였는지,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진을 찍을수 없어 내부에 대한 감상의 느낌을 기록해 놓았던 수첩을 잃어버렸으니 더욱 답답하다. 객석은 매우 작고 불편하게 만들어졌다. 공연중에 고개를 끄덕이면 조는 몰골 사나운 관객을 자지 못하게 만들기 위한 배려(?)다. 이 것은 바그너가 세웠던 바이로이트 축제극장도 마찬가지다. 바이로이트축제극장은 좌석이 나무 벤치의 형태인데다 엉덩이만 걸쳐야할 만큼 작은고 앉으면 무릎이 앞좌석 뒷딱지에 닿을 정도로 불편한데 이러한 객석은 바그너가 관객을 졸지 몫하도록 한 장치이고 지금까지 그 형태를 변형시키지 않고 유지해 오고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한국의 공연장 객석은 이런 장치가 없으니 관객에 대하여 얼마나 배려심이 없는건가. 몇 년 전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보로딘 사중주단의 공연을 보던 중 나의 바로 앞자리를 꿰찬 아주머니가 두통을 좌석 등받이에 기댄채 좌우로 쉬지않고 끄덕거리며 어찌나 열심히 조시던지... 아마도 어디선가 공짜표를 얻으신 분이 아닌가 싶다. 곡이 끝나면 귀신같이 알고 정신을 가다듬은채 박수를 열렬히 보내고 다음 곡이 시작되면 이내 다시 자던 그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여기서였다면 졸기도 쉽지 않았을테지만 그래도 조셨다면 자신의 두통으로 좌우 관객의 어깨와 앞사람의 뒤통수를 어지간히 건드렸을게 틀림없다. 젠장 또 삼천포로군. ㅡ,.ㅡ;
2층에서 올려다 본 천장이다. 채광을 위해 장식한 스테인드 글라스는 블랙홀처럼 입체적으로 장식해 놓았다. 엄청난 공을 들인 공간 하나하나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동양의 여백을 가진 아름다움과는 비교 자체가 어렵겠지만 화려함이 눈을 압도하고 빈틈 자체가 없는 이 곳 역시 감상하기에 황홀하다. 여기까지가 퍼온 사진이다. 사실 허락을 받고 싶었지만 내겐 회원가입이 되어 있지 않은 사이트여서 글 자체를 남길수 없기 때문이었다. 재성함다. ㅡ,.ㅡ;
50분에 걸친 음악당 투어가 끝나면 이 곳으로 나오게 된다. 아라베스크식 아치와 기둥, 그 곳에 장식된 화려한 문양, 유리로 만든 특이한 난간, 그림이 그려진 아줄레주가 아름다운 곳이지만 전체적으로 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떨어져서 전체를 보자면 뒷 건물이 막아서기 때문이었다. 이런 음악당 앞은 건물전체를 볼 수 있는 광장이 있게 마련이지만 골목 안에 있으니 묘한 일이다. 중요 문화재들이 골목 한가운데 있어 전체를 조망하기 어려운 모로코와 서로간의 영향을 미친 도시건설 방식 때문일거라는 짐작을 해봤지만 사실 이 곳 스페인 북부는 북아프리카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걸로 아는데 어쨌든 흔치 않은 모양새다.
카탈루냐 음악당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건축가 도메닉 이 몬타네르의 대표작이라고 한다. 이 건축은 무하데르 양식이라고 하는데 무하데르 양식은 기독교 지배 아래서 이슬람 양식이 도입된 서양건축을 말한다. 물론 스페인만의 독특한 건축양식이다. 화려한 장식으로 보자면 유럽식이지만 아치의 형태는 이슬람 형태다. 무하데르 양식은 벽돌이나 석고를 섬세하게 쌓은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 이 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된 곳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 카테드랄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골목길을 잠시 걷다 보면 길건너 골목 저 끝에 한창 보수공사중인 카테드랄이 보인다.
길을 건너
카테드랄 앞에 서니 보수공사를 위한 철재 골조가 흉물스럽다. 워낙 오래된 곳이니 그럴 수 밖에 없는 일이지만 오래된 건물들은 가는 곳마다 이렇다. 이런 너저분한 것들을 빼고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스페인을 돌아다니는동안 수시로 하게 된다. 표를 샀다(16:00, 6유로) 바르셀로나의 카테드랄은 1298~1448년에 건축되었다.
올려다 본 정면 입구의 파사드. 이 곳도 고딕 양식이다. 바로 이 정면의 파사드는 19~20세기에 개축되었다고 한다. 건축양식은 카탈루냐 특유의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신랑. 거의 모든 카테드랄이 그렇듯이 신랑의 중앙 앞쪽에는 메인 채플과 성가대석이 있다. 끝이 뾰족하게 모아진 아치와 줄을 타고 올라가는 높은 기둥이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오른쪽 측랑. 측랑의 오른쪽에는 작은 채플들이 일렬로 배열되어 있고
좌측랑의 왼쪽에도 역시 채플들이 늘여세워져 있다. 고딕양식에서 신랑이 측랑보다 높게 지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곳은 신랑과 측랑의 높이가 거의 같은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성가대석의 테두리에는 화려한 부조 장식이 되어 있는데 이 카테드랄의 수호성녀인 산타 에우랄리아가 순교되는 처형 장면이라고 한다. 이 부조는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 바르톨로메 오르도네스(Bartolome Ordones)의 걸작품이다.
좌측 측랑에서 본 성가대석과 입구 간 공간과 채플 동영상
성가대석 안에서 메인채플의 재단을 향해 찍은 사진
성가대석을 두른 테두리에는 위쪽으로 탑 형태의 십자가가 빙 둘러 세워져 있고
성가대원 개개인이 앉을 자리에는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고 무척 장식적이다.
성가대석 동영상
천장은 성가대의 합창을 공명하기 좋게 높으면서도 굴절에 용이하도록 위를 향해 불룩하다.
메인 채플의 제단에는 두 개의 기둥을 좌우로 십자고상이 달려 있고 그 주면을 천사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은은한 빛이 들어온다.
지하에도 작은 공간이 있는데 용도는 이 곳 카테드랄의 수호성녀 산타 에우랄리아의 유골 안치실이 아닌가 싶다.
메인 채플, 제단, 성가대석과 원형으로 배열된 소규모 채플 공간 동영상
소규모의 채플들은 저마다 성상과 성화를 두었고 미사나 기도가 없을 때는 잠가 두는 모양이다.
메인 채플을 둘러싸는 소규모의 채플들도 화려하고 금빛 찬란하기는 메인에 결코 못하지 않다.
이 번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 보았다. 역시 여기저기 보수공사중이라 아름다운 외관의 그대로를 보기는 어렵지만 성당의 형태를 알아보기 위하여는 꼭 한 번 올라가 볼만하다.
이 번에는 아래층으로 다시 나와 회랑 쪽으로 나가 봤다.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중앙의 공간에는 정원이 꾸며져 있어 편안한 느낌을 준다. 옛 성직자들은 이 곳을 거닐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회랑에도 소규모 채플이 설치되어 있다. 부속 미술관에는 바르톨로베 베르메호의 피에타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마침 이 시간은 미술관을 공개하지 않는 시간이어서 관람이 불가능했다. 기다리자니 시간의 낭비가 너무 많아 포기했다.
카테드랄을 나오자 자그마한 광장이 눈에 들어오는데 기마상이 중앙에 서 있다. 누군지 모르겠다. 어이! 뉘셈?
이 곳이 왕의 광장이다. 여길 찾느라고 어지간히 빨빨거리고 싸다녔다(17:20). 거기서 거긴데 이노므 골목이 살짝 사람 헷갈리게 멩글어 놔서... 막상 찾아와서 보니 별로 대단한건 없다. 창틀만 빼곤 전부다 건물도 광장도 모두 네모네모네모다. 네모는 넘 삭막해. 이 건물이 바로 바르셀로나 백작 겸 아라곤 왕의 왕궁이란다. 이게 왕궁? 왕 치곤 궁상이었군.
들어 갈려고 했더니 매표소는 반대방향에 있고 이 곳은 출구란다. 반대편으로 가볼려고 했지만 가로막힌 이 광장의 반대편으로 가자면 왔던 골목을 되돌아 가야 되는데 다니다 보면 헷갈린다. 한동안 헤매다 성질이 살짝 돗궈지자 속으로 외쳤다. 이게 왕의 광장인데 뭘 더볼려구. 왕궁이라고 생긴게 추장 처소와 별반 다를거 없는 수준구만. 그래 여긴 골목만도 재미있고 그냥 하릴없이 골목이나 쏘다니다 오늘을 종료하자...
사실 왕의 광장도 헤매다 찾아냈지만 광장은 굳이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이번 여행에서도 드러났다. 아무 생각없이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광장이 담날 찾으려고 했던 산 자우메 광장이었다. 어쨌든 이 애긴 담날 하기로 하고... 곧이어 마지막 코스로 들른 곳은 피카소 박물관(18:00 10유로). 이 곳은 피카소의 중요한 작품을 보기 위한 곳이 아니고 초기 습작으로부터 큐비즘을 확립하는 과정까지의 작품 흐름을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작품을 구경하는 재미는 약하지만 그의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한 사전 과정으로는 이만한 곳도 없어 보인다.
천천히 둘러보고 나니 1시간만에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워낙 코스가 짧아 뭔가 덜보고 나온게 아닌가 미심쩍어 다시 확인해 봤지만 이미 볼 건 다 봤다. 저녁에 일찍 들어가겠다고 약속을 해 놓았으니 오늘 일정은 이만 접고 지하철을 탔다. 내가 이제까지 다녀본 여행중 최고로 짧은 일정이었다. 점심은 이미 숙소에서 나올 때 먹었고 저녁은 일찍 들어가 함께 먹는게 예의일거라 생각하고 살짝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그냥 돌아섰다. 전날 알지도 못하는 사이 소매치기를 당했지만 오늘은 겂날게 없었다. 전날엔 배낭을 매고 가이드 책자까지 들고 있었으니 이 도시에 처음 도착한 얼뜨기였다는 것이 한눈에 표가 났을테지만 난 이미 이 도시에서 하루를 굴러먹은 능구렁이가 다 되어 있었다. 중요한 짐은 죄 다 숙소에 있고 돈도 앞주머니에 100유로만 넣고 다녔다. 언 넘이 카메라를 낚아채 내지른다면 몰라도 뭔가 당해도 크게 억울할만한 물건은 없었다. 물론 카메라는 예외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메모리 칩. 숙소의 같은 투숙객 중 자매가 하는 얘기로는 카메라를 꼭 쥐고 있으니 어느새 렌즈만 뽑아가 버리더라나? 나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는 순간부터 카메라는 목에 건 채 렌즈만 손에 쥐고 다녔다. 누군가 이걸 낚아채려고 시도하는 놈이 있다면 전 날의 분풀이까지 포함해 3박4일동안 두들겨 패 줄 마음의 준비도 충분히 되어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보니 어랍쇼? '이미 오후로 접어들었는데 낮술이나 함께 하지 뭐했다고 지금 나가냐'며 붙잡던 주인장은 침대 위에 두통을 굴리며 낮술의 숙취와 사투를 벌이고 계시고, 젊은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내기를 걸어 진팀이 KFC 치킨을 사다 실컷 먹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마침 잘왔다며 함께 먹기를 권했다. 늙다리가 젊은 사람들한테 얻어만 먹기도 미안해 맥주를 사오겠노라고 일어서려니 냉장고 안에 먹다 남은 맥주가 몇 캔 있다면 나가려던 나를 말려 도로 앉혔다. 허... 이거야 원.
이집트에서 건너온 젊은 친구들이 말하기를 이집트에선 이 에스텔라 맥주가 지천에 깔렸다고 했다. 이상하다. 내가 갔을땐 못보던 물건인데? 노란색 상표의 스텔라 맥주는 많이 봤는데 그게 Estella로 바뀐건지도 모르겠다. 조금 있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 주인장 윤형로씨가 망문을 열고 응접실로 나왔다. 나가지 말라며 붙잡길래 그래도 약속을 지키느라 일찍 들어 왔더니 잠만 자냐며 핀잔하자 넉살 좋은 주인장
"그래서 일어 났잖아요. 지금부터 시작하시죠."
"뭐를요?"
"뭐냐뇨? 술 한 잔 해야져."
"허걱!"
내가 빌어야 할 상황이었다. ㅡ,.ㅡ; 이날 도 담날을 위해 일찍 잤다.
광고성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이 민박집 강추할만 하다. 혹시 바르셀로나에서 한인민박을 하고자 하신다면 추천할만하다.
바르셀로나민박[Paseo Maragall 59(4floor 2) 윤형로 692-475-683]
'배낭여행 > 11 스페인·포르투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이 이베리아3-2(바르셀로나→리스본) (0) | 2011.02.25 |
---|---|
하이 이베리아3-1(바르셀로나) (0) | 2011.02.25 |
하이 이베리아1-3(바르셀로나) (0) | 2011.02.04 |
하이 이베리아1-2(바르셀로나) (0) | 2011.02.03 |
하이 이베리아1-1(인천→마드리드→바르셀로나) (0) | 2011.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