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0 중국어학연수

중국어학연수10-2(청더)

코렐리 2010. 9. 15. 16:53

 2010.7.4(일)계속

보타종승에서 나와 수미복수를 향해 걸으니 대략 15분 정도 소요된다. 이 단거리를 오가는 차량이 있지만 걷는걸 즐기는 나로선 관심이 없었다. 도착하고 보니 아무리 찾아봐도 매표소가 보이질 않았다. 하긴 보타종승에서도 입구와 매표소는 거리가 짧지 않았지만 이 곳에선 아예 보이질 않았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가리키는 방향은 내가 온 반대방향이었다. 가봤다. 매표소는 역시 없었다. 알고 보니 이 곳 수미복수 표를 사려면 보타종승까지 가야한다는 거였다. 엥? 그럴리가... 혹시나 해서 표를 다시 들여다 보니 이 표는 두 개 사찰을 동시에 둘러보는 표였다. 만일 여기서도 표를 판다면 이중으로 돈을 들일뻔했다. 에그 이 한심한 백성같으니... 가방 속에 넣었던 표를 다시 꺼내 검표원 앞에서 펄럭거리며 개폼잡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비석정이 보이고

 

비석에는 수미복수지묘의 건립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지붕이 장식된 문이 나오는 것은 보타종승과 같았다.

 

문을 지나면 다홍타이가 있는 것도 같다. 들어가며 보이는 벽화에 감동할 뻔했다. 외벽에 그려진 벽화가 이렇게 온전하게 보전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대형 스티커를 갖다 붙이고 벽화인척 하는 사기극이었다. ㅡ,.ㅡ;

 

구조는 다르지만 내부 양식도 보타종승과 흡사하다. 

 

안을 못찍게 하니 그나마 몰래 안에서 찍은게 이거다. ㅡ,.ㅡ;

 

이 것도 슬쩍. 이 사찰은 판첸 라마가 건륭제  6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청더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건륭제가 이를 영접하기 위해 건립했다고 하는데 이 때가 건륭제 45년인 1780년이다.

 

묘고장엄전(妙高莊嚴殿)이라 불리는 사찰의 본전인 이 곳의 1층 중앙에는 부처상이 놓여져 있고 동쪽에는 판첸라마가 사용한 보좌가 있다. 이 곳에 판첸 라마가 머물며 독경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내부는 엄격히 촬영금지다. 사진 당근 하나도 못찍었다.

 

본전의 비스듬한 뒤쪽에는 판첸 라마의 침전으로 지어진 길상법희전(吉祥法喜殿)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다홍다이의 지붕은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고 그 위 4개의 용마루에는 각기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고 꿈틀거린다. 드물게 아름다운 지붕이다.

 

그 많은 볼거리를 눈으로만 확인하고 나오자니 적잖이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다홍타이 2층이었던가 사람이 없길래 그냥 나오기 억울해 슬쩍 찍은 보살상. 먼지는 있는대로 뒤집어 쓰고 계셨지만 누구 하나 먼지를 털어내는 사람은 없는듯했다. 먼지가 고익와의 접촉을 통한 부식을 막기 위해 방치해 둔 것이 아닌가싶다.

 

두 개의 주요 사찰을 모두 보고 정문을 나선 시간이 12시 20분.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오늘 오전의 일정을 마쳤으니 이제 점심을 먹고 비슈샨좡(避暑山莊)을 볼 차례다. 식당은 다시 죽 전문점인 조우지로 갔다. 근처에 어디서 많이 봤음직한 개가 한마리 앉아 졸고 있었다. 고개를 들긴 했는데 눈을 뜬건지 감은건지 떴으면 어딜 보고 있는건지 도대체 분간이 안가는 특이한 애다. 집지키는 개였던가? 투견인가? 무거워 보일만큼 큼직한 두통에 주름은 있는대로 졌고 생긴건 불쌍하게 생겼으니 측은지심 절로 난다. 쓰다듬어 볼까 하다가 왠지 생김새와 달리 으르렁거릴 것 같아 말았다. 

 

소미죽 한 그릇(3위엔)과 요리(25위엔) 하나를 주문했다. 사진을 보고 주문한 음식인데 마늘줄기와 돼지고기를 간장양념으로 볶았다. 돌아다니느라 지쳤으니 보양식으로 칭다오도 한 병(8위엔) 주문해 주시고... 음식 맛도 칭다오도 완전 굿이다. 에어컨 바람을 쐬가며 여기서 음식을 먹느라 버틴 시간은 1시간 10분.

 

오후 두 시가 되어 피서산장으로 가 봤다. 표값이 120위엔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이 입장료라면 고궁보다 훨씬 비싼 값이다. 단기유학생 할인은 역시나 없었다. 아래의 사진은 정문인 여정문(麗正門)이다.

 

기념촬영을 하는 여인네. 남자들은 기념촬영을 하면 황제 복장인데 여자들은 왜 하필 궁녀 복장을 선호하는지 모르겠다. 하긴 가는 곳마다 기념촬영용으로 내 놓은 옷들이 하나가이 궁녀 복장이니 그럴 밖에 없다. 사자 코와 발톱은 사람들이 얼마나 만져댔던지 그 부분만 황금빛이 찬란하다. 행운이라도 가져다 주나?  ㅍ

피서산장은 총면적 564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서태후의 별장이었던 이허위엔(頤和園)의 2배 고궁(古宮)의 8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청조때인 1703년  강희제의 지시로 착공되었고 건륭제 때인 1792년에 완공되어 건축에 90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당시에는 부지 내에 120 남짓의 건축물이 지어졌고 베이징에 비해 비교적 기후가 좋은 이 곳에서는 황제의 여름 정무가 이루어졌다. 18~19세기에는 중국 정치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고 한다. 산장 전체로 보자면 궁전구(宮殿區)와 풍경구(風景區)로 나뉜다. 풍경구는 다시 호경구(湖景區), 평원구(平原區), 산경구(山景區)로 나뉜다. 1994년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정문인 여정문(麗正門)을 지나면 피서산장 현판이 걸려 있는 내오문(內午門)이 자리잡고 있다. 군ㄱ사 조련을 이 곳에서 시찰하곤 했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열사문(

閱射門)으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뒤이은 담박경성전(澹泊敬誠殿)이다. 무게감이 있고 화려함이 없는 고상하고도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는 건물이다. 538 제곱미터의 면적을 가진 이 건물은 각국 대사와의 접견이나 외국 사절을 위한 연회와 주요 정무가 이 곳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담박경성전의 유래는 제갈량이 "마음이 담백하고 욕심이 없으며 뜻이 확실치 않으면 먼 곳까지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고 한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안을 들여다 보면 중후한 검은 색의 어좌와 황금빛 장식물들이 이 곳 분위기의 위엄을 더해주고 있는듯하다.

 

 

 

이 곳이 사지서옥(四知書屋)이다. 이 곳은 사각의 뜰을 발코니로 연결하고 있다. 이름은 서옥이지만 황제가 담박경성전으로 오가면서 휴식을 취하거나 옷을 갈아입던 장소였다고 한다. 또, 황제나 고위 관리가 사절을 접견할 때 친근감의 표시로 이 곳에서 만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건륭제가 이 곳에서 판첸라마 6세나 몽골 왕족을 이 곳에서 만나곤 했다고 한다.

 

사지서옥의 현판.

 

사지서옥앞 뜰과 이를 연결하는 발코니

 

  

여기서 오른쪽 뜰로 빠져 모았다. 섬세한 황제 밀랍인형이 유리벽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왠지 모르게 잔뜩 기가 죽어 보이는 어린 황제 뒤쪽으로는 이를 섭정하던 태후들인지 인상도 무섭다. 찔끔.

 

  

 

 

 

이 곳은 연파치상(煙波致爽)이다. 황제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일상생활을 역시 이 곳에서 했다고 한다. 동서 양쪽에 있는 건물은 황후의 거실이었다고 한다.

 

 

연파치상의 내부. 폼잡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자리가 그다지 편하게 앉아 있을만한 공간은 아닌 듯 보인다. 피곤하면 훌렁훌렁 자빠져 잠깐이라도 코를 고는 시스템이 없으니 영 거시기했을 것 같다.

 

 

 

 

후문이 있는 곳까지 가 보니 한 소황제가 사진을 찍고 있다. 하나만 낳고 황제 모시듯 키우는 중국의 풍조를 한 눈에 보는 듯한 생각에 얼핏 웃음이 나왔다.

 

아저씨! 지금 뭘 엿보는거여요?

 

유리를 통해 들어가는 빛을 양손으로 가려 차단해 가며 궁금해서 나도 들여다 봤지. 황제의 침실이다. 아무리 위엄을 갖추고 껄떡대 봐야 침실은 다 고만고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하다 못해 어지러운 차반. 화려하고 섬세한 차반에 그려진 용은 얼핏 보면 살아 움직이는 미꾸라지로 착각이 들 정도로 눈을 현란하게 홀린다. 황제 체면에 먹다말고 어지러워서 쓰러지겠다 원!

 

 

궁전구 후문을 나오면 이 곳에서부터 풍경구가 시작된다(15:00) 천천히 보며 다녔지만 궁전구를 모두 돌아 보는데 정확하게 1시간이 걸렸다. 이 곳이 바로 호경구의 시작이다. 베이의 고궁의 8배라고 하지만 바로 이 어마어마한 호경구, 평원구와 산경구를 모두 합친 것이라 궁전구만 따지면 피서산장인만큼 그다지 큰 규모는 아니라 할 수있다.

 

호경구는 모두 돌아다닐만큼의 체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주변에만 한가롭게 돌아다니며 보는데만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정문을 향해 되돌아 나오며 발코니 난간에 앉아 조시는 노인들을 보니 평화로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여름에 기후가 좋기로 소문난 바로 이 곳 청더 역시 덥기는 매한가지였다. 돌아오던 날 알게 되었지만 이 날은 38도였다고 한다. 베이징보다 조금 덜 더운 정도다. 이 곳 기후가 그렇게 좋다면 밤마다 열대야에 잠 못이루는 한국의 여름이야말로 최고의 기후가 아닌가. 돌아가변 덥단 소리 하지 말고 입다물고 살거야... 하지만 막상 한국으로 돌아오자 그런 생각은 싹 잊어먹었다. ㅡ,.ㅡ;

 

점심을 과하게 먹었던가 보다. 저녁식사시간이 다가오도록 배고픈 생각이 들질 않았다. 나는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면 다시 야시장을 찾아 즉성안주에 생맥주나 마실 요량으로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한 뒤 에어컨을 틀어 놓고 하루 종일 더위에 혹사당한 심신을 달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먹이를 찾아 나서는 두더지모냥 케메라, 여권과 지갑만 지닌채로 간단한 차림에 속소를 나섰다. 어제 갔던 바로 그 야시장에 가 보았다. 주인이 나를 알아보고 반가와했다. 바로 내 옆 테이블에 세 명의 남자가 상의를 벗어 던진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래 사진의 가운데 사람은 상의를 벗어던진 세 남자 중 가장 연장자였고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그 부인이었다. 왼쪽의 인격이 푸짐한 사내는 친한 동생이라고 한다. 뒤쪽 어슴푸레하게 어둠 속에 서 있는 사람은 세 사람 중 나머지 한 사람인데 나이로 따지자면 막내에 속한다. 인상과는 달리 무척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중국판 놈놈놈이다. 이들을 보니 새삼 담주에 올 찬바람과 뜀도령이 생각났다. 이들의 바로 옆자리로 안내받은 나는 전 날 먹어쑈던 양고기를 주문하고 싶었지만 같은 것을 먹기 보다는 골고루 먹어본다는 생각에 오징어와 양파를 불판에 얹어 익기를 기다렸다. 생맥주를 시켜놓고 익은 오징어를 먹어보니 ㅡ,.ㅡ; 걍 오징어 맛인데 특색이 없다. 어제와 같더라도 걍 양고기를 먹을걸 잘못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가운데 앉은 가장 나이 많다는 사람은 내가 왠지 외국스러워 보였던지 어디에서 왓는지를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는 내게 뭐라고 뭐라고 말하는데 내가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왼 쪽에 앉은 사람이 내게 알아들을 수 있는 보통화로 통역 아닌 통역을 했다. 예상했던대로 한국의 축구실력이 대단하다는 말을 했다. 중국의 축구는 죽었다 깨나도 한국처럼은 될 수 없다는 말을 하며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나는 한국축구가 어차피 세계 제일도 아닐 뿐더러 한국도 최근 들어서야 두각을 나타냈을 뿐 중국과 다를바 없었다는 말과 중국도 앞으로 한국 이상으로 잘하게 될거라는 말을 했지만 그들은 접대성인지 몰라도 그럴 일은 없을거라고 말한다. 축구 이야기가 끝나자 나보고 중국에서 몇 년 살았느냐는 둥 이 곳엔 뭐하러 왔는지 등을 물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이가 가장 많다는 가운데 남자는 겨우 37살에 불과했다. 뭔지 모르게 헹님처럼 처신하고 말하던 이친구 새까맣게 어리넹? 요런 싸가쥐 읎는... 한국에서 대학의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중이고 이 곳 청더에는 놀러 왔다고 대답하자 왼쪽에 앉은 복부남은 "친구가 피서산장에서 근무하는데 내게 진작 말했으면 공짜로 잊장할 수 있었을텐데 이미 봤으니 도와줄 일도 없겠다며 웃었다. 나는 볼만한 것을 봤으니 거기에 들어간 돈이 아깝지 않다고 대답해 놓고도 속으로는 '이런 젠장, 어제는 이 사람들 왜 안온거야?'하는 생각이 드는걸 보면 나도 도둑놈인가 보다. 120위엔... 어휴...

 

중국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상대편이 술을 잘 마시지 않을 때 종종 건배를 제의하면서 하는 말이 있다. 부꼬우펑이요우(不够朋友)가 그것. 친구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이들은 더위로 인해 술을 많이 마시고 힘들어지는 상황을 조심하려던 내게 건배하자면서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나름 쿨하다. 아래의 사진은 이 야시장 코너의 사장. 무척 싹싹한 사람이다. 위의 사진 속의 사람들과는 친구들인지라 거게는 아내에게 맡겨놓고 같이 한 잔 하고 있었고 나도 이 틈에 꼈다.

 

여기저기 상의를 벗은 사람들 투성이였다. 한국에서라면 결코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다. 여기는 중국땅이고 주변에 상의를 벗어던진 사람들 투성이이니 내가 벗는다고 이상하게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요거봐라? 나도 걍 벗어봤다. 어이구. 세상에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나.

 

맛있게(?) 익고 있는 오징어 철판. 내가 주문한 안주거리다.

 

놈놈놈 중 막내인 친구와 한 컷. 상의를 벗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다. 이 날은 나도 중국인인척 중국인들과 어울려 중국스럽게 마셨다. 어~~~! 좋다. 다시 볼 일 없을테지만 이들은 담에 다시 청더에 오거든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적어 주었다. 어쨌든 기억에 많이 남는 사람들이다. 10시 정도가 되자 이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적당히 달근하게 취한 나도 곧 일어나 익일의 일정을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밤새 틀어놓고 잔 에어컨 덕에 아침까지 시원하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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