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7.5(월)
원래 생각했던 대로라면 오늘은 이미 베이징에서 아침을 맞아 8시 수업을 들어가야 했다. 금요일 오후에 수업 끝나고 떠난 뒤 구경 실컷 하고 나서 일요일 저녁에 베이징으로 돌아가면 가장 좋다. 하지만 청더를 오가는 열차시각은 내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금욜 오후 청더행 차편이 없으니 토욜 아침에 떠나 오후에 청더에 도착하고 다음날 오후까지 24시간만 머물고 일요일에 돌아오면 청더의 볼거리 태반을 놓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하루를 더 얻기 위해 월요일 수업을 까먹는 방법밖엔 없었던 탓이다. 어쨋든 청더에서 마지막 날인 이 날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기차표는 오후 1시 29분차였다. 이 곳을 떠나기 전 세 곳을 다 돌아보기 위해 7시에 일어나 서둘렀다. 아침식사 장소로 같은 곳을 또 가는 것도 식상했다. 그래서 이 번엔 다른 곳으로 가본다는 의미에서 근처를 다녀 보았다. 항주 소룡포라는 서민적인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항주가 소룡포로 유명한가? 자그마한 가게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리를 거의 다 차지하고 앉아 식사들을 하고 있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입구 한켠에는 만두를 찌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랐고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우측에는 두 남자가 허옇게 밀가루를 뒤집어 써가며 만두를 빚고 있었다.
하나 남은 자리를 꿰차고 앉아 보았다. 앉자마자 메뉴와 가격을 세로로 표기해 빼곡하게 벽에 걸어 놓은 아크릴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가격이 보통 착한게 아니었다. 이거 고마운 일이지 허허...
만두를 시켜 보았다. 두 입이면 없어질 크기의 만두 10개가 들어 있었다. 맛도 훌륭한 편이고 만두 값은 15위엔.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서 오후에 베이징으로 돌아가기 전 나머지 볼거리를 마저 본 뒤 떠나기 위해 움직였다. 그 볼거리란 푸르어쓰(普樂寺: 보락사) 안위엔미아오(安遠廟: 안원묘) 그리고 칭추이펑(磬錐峰: 경추봉) 세군데였다. 버스를 타고 가다 내려야 할 곳을 지나버렸다. 이런 젠장. 지도와 버스를 타고 가다 보이는 이정표를 보고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어라? 저게 안위엔미아오 같은데? 그게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한 개 정류소였지만 적지 않은 거리를 이동했다. 일단 내렸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걸어서 가도 된다. 하지만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이 날의 목표는 세 개인데 잘 다녀 봐야 두 개였다. 그러니 버스를 타는 것이 낫겠다 싶었는데 버스를 타려고 보니 잔돈이 없었다. 이런 젠장 곱배기를 봤나. 공짜로 버스를 탈 수도 없고 근처 가게방에서 음료수나 물을 한 병 살 참이었다.
어딜 가나 마을에는 가게방이 하나쯤은 반드시 있게 마련인데 으쩜 이렇게 가게방이 하나도 눈에 안띠냐. 이런 젠장 트리플. 10분 이상을 헤맨 끝에 옆동네 가서 가게방 하나를 간신히 찾았다. 보통의 평범한 집 한켠에 조그맣게 차려진 가게방이었다. 가게는 열려 있었지만 사람이 없었다. 가만 보니 가게방이 주업도 아니고 동네사람들을 대상으로 부업하는 집이었던 듯하다. 지레짐작으론 아마도 이용시간이 동네사람들과 정해두고 있는 것 같았고 나같은 뜨네기 아무때나 와봐야 소용도 없는 가게였다. 이런 젠장 멀티플을 봤나. 이러고 헤매느니 차라리 걷는게 빨랐다.
걸어서 가다 보니 저 멀리에 비슈샨좡의 주요 볼거리 중 하나인 탑이 보였다. 전날 이 것까지는 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풍경구 어디에 박혀있는지 찾아가자면 거리도 거리지만 찾아 내기도 그다지 쉽지 않을 것 같아 포기했던 그 탑이다. 멀리서 봤으니 이걸로 만족하기로 하고 카메라를 들어 끌어당겨 찍어 봤다. 당근 선명치는 않다.
안위엔미아오, 푸르어쓰, 칭치우펑 모두가 이 곳을 통해야 갈 수 있었지만 세 군데 모두 각자 지랄스럽게 흩어져 있었다. 매표소 앞에서 고민이 되었다. 어디부터 갈 것인가. 선택을 잘못하면 하나 보고 끝이다. 고민끝에 선택한 것은 칭치우펑이었다. 가장 중요한 사찰 세 군데는 이미 보았고 다른 사찰 두군데를 보느니 경추봉을 보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게다가 칭치우펑을 가자면 등반을 하든지 아님 로프웨이를 타야만 했다. 등반 코스 입구도 저 멀리에 있고 등반할 시간은 죽었다 깨나도 없었다. 게다가 날도 지독하게 더워 시간이 있다 해도 그럴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운이 좋으면 로프웨이를 타고 지나가며 푸르어쓰와 안위엔미아오를 모두 내려다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50위엔을 주고 칭치우펑으로의 왕복표를 샀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이 곳에서 이것 타고 시시덕거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산을 타고 다니는 로프웨이인만큼 어디에서는 발아래 높고 낮은 산들이 발에 닿을 듯하기도 하고 저아래 까마득하게 산아래가 내려다 보이곤 했다. 지레짐작대로 안위엔미아오가 눈에 들어왔다. 살짝 끌어당겨 찍어 가장 가깝고 자세히 볼 수있었던 위치에서 찍은 것이 아래의 사진이다.
조금 더 가보니 푸르어쓰가 바로 옆 아래를 지나간다. 이 절은 티엔탄 공원에 있는 유명한 건물처럼 원형 건물이 있었다. 두 사찰 모두 규모가 크지 않아 모두 둘러보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일 걸리지는 않을 것 같지만 두 사찰간의 거리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서로 왕복하는 전기차가 있기는했지만 나는 칭추이펑에 가장 끌렸다. 그래서 바로 이 곳 로프웨이에 메달린채 유유히 도시 경치와 산경치를 내려다 보며 두 사찰을 덤으로 구경하며 지날 수 있었다. 자세히 뜯어본 것은 아니지만 전체 윤곽을 볼 수 있었고 어디 가서 보고 왔노라고 사기를 칠 수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물론 이 블로그를 본 사람들에게는 사기치지 못할테지만 많지 않으니 상관없다. 으하하!
아쭈그리 30분가까이 타고 가다 보니 칭추이펑이 눈에 들어왔다. 뭐가 저렇게 생겼냐. 공중목욕탕에서 많이 보던 물건도 같고... 벼랑에 간신히 매달린 듯 위태위태해 보이니 툭 건드리면 와그장창 무너져 내릴것도 같았다. 로프웨이의 종점이 다가오고 경추봉 입구가 까까이 옴에 따라 퍼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 때까지 남은 돈을 생각해 보고 대충 계산을 해봤다. 이 곳에서 되돌아가면 호텔로 돌아갈 버스비 1위엔, 근처에서 마지막 점심식사를 하려면 40위엔 안팎, 다시 기차정거장으로 가자면 버스 요금 1위엔, 기차표는 이미 갖고 있으니 되었고 베이징역에 도착하면 지하철 요금 2위엔, 숙소에 도착하면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에 쓸 돈 최소 15위엔은 있어야 했고 당장 마실물 3위엔과 밤새 마실 물을 사자면 3위엔이 더 있어야 했다. 내일 돈을 찾으면 된다지만 베이징에 도착해 오늘 당장 필요한 돈은 도합 65위엔. 수중에는 100위엔에서 조금 모자라는 돈이 남아 있었다. 이렇게 되면 칭추이펑에서 만일 입장료를 따로 받는다면 30위엔이 넘으면 칭치우펑 아래서 사진을 찍고 내려가는건 포기해야 했다. 만일 못들어가는 일이 생기면 이런 궁상은 또 어디있으며 여행 다녔단 소리도 쪽팔려서 못할 판이었다. 이런저런 잔대가리를 굴리고 있다 보니 어느새 종점에 도달했다. 입구로 걸어올라 가면서도 '입장료 30위엔이 넘으면 안되는데... 설마 50위엔이 넘는다면 혹시라도 생각지 못한 돈이 들어간다면...' 이건 그야말로 낭패였다. 막상 입구에 도달하고 보니 매표소가 또 있었다. 그럼 그렇지 로프웨이를 타고 온 사람들에게 공짜로 들여 보낼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다행이도 입장료는 20위엔이라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글을 쓰면서도 왜 이렇게 쪽팔리냐...
안으로 들어가 칭치우펑을 향해 가다 보니 아주 자그마한 사찰 하나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칭치우펑이다.
곳추선 바위 옆에 서서 청더 시내를 내려다 보니 저 멀리에 자그마하게 보인다.
이 곳을 지나 더 가면
묘하게 생긴 바위가 나온다. 그 아래에는 한 노인이 기념품을 팔고 계셨다. 궁금했다. 매일 저 로프웨이를 타고 오시는건지 아님 1시간 이상 걸리는 등반로를 따라 올라 오시는건지... 나같으면 못할 일이다. ㅡ,.ㅡ; 이 바위 반대편 그늘아래서 중국인 청년들이 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잠시 그 곳에 앉아 쉰 뒤 다시 내려가기 위해 엉텅이에 붙은 흙먼지를 털며 일어나 로프웨이 승강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중국에는 생전 처음 보는 희귀한 표지판이 많다. 아래의 표지판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 곳은 발을 잘못 디디면 벼랑 아래로 자칫 추락할 수도 있는 위험한 곳이었다. 물론 위험한 곳은 난간을 둘러 놓았지만 그래도 자칫 부주의로 인한 사고는 있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아래의 표지판은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그렸으니 "추락주의" 표지판이다. 떨어지는 사람을 자세히 보면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그득하다. 도대체 어느 짓궂은 관광객의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나로 하여금 미친놈 냥 혼자서 한참을 웃게 만들었다. 이 낙서도 잘못하면 발을 헛디뎌 미끄러질 수 있는데 장난도 목숨걸고 하니 어이가 없기까지 하다. "행복과 웃음의 낭떠러지"다.
다시 로프웨이를 타고 가는 길은 같은 코스지만 보는 방향이 달라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아까 보았던 푸르어쓰와 안위엔미아오도 다시 반대방향에서 볼 수 있으니 좋았다. 저 멀리에 보타종승과 수미복수도 눈에 들어온다.
승강장에서 나와 버스정거장으로 나가는 동안 또다시 눈에 보이는 탑을 나도 모르게 다시 카메라에 담았다. 주변에는 온통 무너진 건물의 잿더미와 새로 짓기 위한 건축자재가 쌓여져 있는데 이러한 풍경은 청더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재개발이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고 아울러 청더의 발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쓰고 있던 모자가 몇 번이고 날아갈 만큼 거센 바람이 불며 모래바람 역시 노출된 피부를 억세게 자극했다.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온 곳은 항저우 샤오롱바오였다. 이 곳에서 위샹로우쓰가이판(위샹로우쓰덮밥)과 슈에화라는 이름의 맥주를 주문했다. 덮밥 맛도 괜찮았고 새로 시도해 본 맥주 맛도 나쁘지 않았다.
식사 후 버스를 타고 청더역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일단 내가 탔던 버스가 청더 역으로 가는 것은 분명한데 낯익은 길로 가지 않았던 것인지 왠지 모르게 가던 길이 생소했다. 가면 갈수록 나오지 않을 것같은 풍경이 자꾸 눈앞에 펼쳐졌다. 버스 기사에게 물었다. "이 버스 청더역에 안가나요?" 대답이 약간 깬다. "안가긴 왜 안가요. 근데 지났지요. 당장 내려서 반대로 가는 버스를 타요." ㅡ,.ㅡ; 일단 버스에서 내리자 교통편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었다. 시 외곽으로 통하는 길목인 것 같았다. 멀지 않으면 시간도 여유가 있으니 걸어가면 어떨까 싶었다. 나는 남는 50여분을 믿고 반대 방향으로 걷다가 행인이 많아 보이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 남자를 붙잡고 물으니 택시를 타란다. 솔직히 주머니가 딸랑딸랑하니 택시를 타자면 불안했다. 버스를 타거나 그냥 걸어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거 도대체 왠 궁상이냐. 걸어서는 30분 소요되는 거리란다. 시계를 보니 50분정도 남아 있었다. 나는 걷기로 결정하고 혹시 몰라 총총걸음으로 찔러준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어찌 되었건 역에 도착한 시간은 출발시간 20분정도 남은 시간이었고 그럭저럭 여유있게 승차할 수 있었다.
승차하고 보니 단체여행객들이 객차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객실 내부는 약간 소란스러웠다. 알고 보니 남방계 사람들 마을 전체가 단체로 여행을 다니는 중이었고 이 칸은 완전 그들의 오리지널 아사리판이었다. 다만 내가 앉은 자리 맞은편에는 차림새와 몸가짐이 유난히 눈에 띠는 모녀가 앉았다. 엄마는 40대쯤, 딸은 중3 쯤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그들은 단체여행객의 일원이 아니었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었지만 할 말도 그다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딸이 약 먹을 시간이 되었는지 가방에서 약을 꺼낸 엄마는 개봉도구를 찾는지 가방 안을 한동안 뒤적거렸다. 마땅한 도구가 없었는지 내게 약병을 내밀며 열 수 있는지를 물었다. 건네받은 것은 작은 페니실린병의 형태였고 고무마개 위로 납테를 둘러 밀봉한 약이었다. 여행객 행색인 내게 만능칼이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물어본 것 같았다. 그런건 나도 없었다. 약병을 들고 이리저리 고민하던 나는 이빨로 대충 납 테두리에 흠집을 낸 뒤 손톱으로 흠집을 확대하고 나서 잡아 뜯었다. 약병을 받아드는 소녀의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묻어났고 엄마도 고마워했다.
덕분에 시작된 대화는 나로 하여금 청더로부터 기차로 돌아오는 세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해 주었다.
그녀는 청더에서 중학교 영어교사로 일을했고, 귀여운 인상의 딸은 큰 키와 성숙해 보이는 얼굴 때문에 중3이나 고1 정도는 되는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초등학교 졸업예정자로 베이징에서 중학교를 입학하기 위해 모레 시험을 치룬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중학교 입학시험도 치루는데 그중 명문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지원한 중학교는 베이징에 있다고 한다. 모녀의 베이징행은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가장은 베이징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한국 드라마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한국음식에 대하여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알고 있는 한국음식들은 대부분 매워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특히 '김치같이 맛없는 음식은 생전 처음 먹어보았는데 한국사람들은 이 맛없는 음식 없이는 식사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재미있더라고 말할만큼 솔직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중국음식이라고 할 만큼 자신의 문화에도 자부심이 강했다.
쓸데없이 남을 칭찬하고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해서 남을 기쁘게 해주는 것도 성격 좋은 사람들이 하는 행위지만 이렇게 솔직담백함에 나는 오히려 호감을 느낀다.
내 옆에 앉은 아저씨는 단체여행객의 일원이었다. 이 아저씨의 말은 방언이 무척 심해서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 앞의 모녀도 그의 말은 이해하지를 못했으니 나도 굳이 기죽을 이유도 없었다. 푸하핫!
그는 가족, 마을사람들과 단체여행을 다니며 청더 구경을 한 뒤 베이징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그가 하는 말을 거의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고 그녀도 잘 알아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저씨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두 번 세 번 되물어 간신히 이해하고 나면 그녀는 내게 보통화로 통역 아닌 통역을 해 주어 그럭저럭 4인의 대화는 가능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나누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우스운 일이네요. 외국인이 하는 이야기는 알아듣겠는데 내국인이 하는 말은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으니 얼마나 묘한 일인가요. 호호호..."
대화상대에 가림을 두지 않을 만큼 수더분한 그녀가 물었다.
"청더역 여행은 어떠셨어요?"
아저씨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하나도 않좋았어요."
나와 그녀가 동시에 물었다.
"왜요?"
"볼게 있어야지."
엥? 난 볼게 많았는데? 하긴 국내의 문화는 넘 자주 접해서 관심이 없을수도 있긴 하기도 하겠다.
이래저래 대화 속에 웃다 보니 잠깐새 베이징에 도착했다. 길게 느껴졌을 기차여행이 참으로 잠깐 사이에 종료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녀도 같은 이야기를했다.
베이징역에 내려 모녀와 나는 단체여행객의 일원으로 돌아가는 아저씨와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그녀들의 가방을 역사 바깥까지 들어다 준 뒤 딸의 이틀 뒤 시험에 합격을 기원하며 헤어졌다. 고상한 말솜씨의 엄마와 항상 미소를 띤 귀여운 딸의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지하철을 타고 치엔먼 역에서 버스를 탔다. 북경어언대학 근처 성도미식에서 10위엔짜리 쇠고기탕면을 먹고 나니 주머니엔 땡전한 푼없었다. 아 이런 비참함이... 물 한 통 사가야 하는데 이제 남은 돈이 없었다. ㅡ,.ㅡ;
그 때 갑자기 기념으로 가져가려고 교재 책갈피에 끼워 숙소에 둔 1위엔짜리 지폐 3장과 귀찮아서 방치해 둔 동전이 생각났다. 오늘만 넘어가면 내일은 돈 찾으면 되니까 단돈 몇 푼이면 충분했다. 숙소로 돌아와 뒤지니 4위엔이 넘었다. 물을 사고도 남을 돈이었다. 이 잔돈을 보고 이렇게 기뻐해 보긴 처음이었지만 그렇다고 비참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얼마나 기뻤는데? 우헤헤헤...
더욱 기쁜 일은 구입해서 주겠다던 냉장고가 이미 들어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방에는 모두 냉장고가 있었지만 오랬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이 방에 내가 투숙하게 되면서 모자랐던 냉장고를 추가로 구입해 주겠다던 그 약속이 이제서야 실현된 것이다. 그런데 기껏 사다 넣었다는 냉장고가 중고였는지 꿰제제하고 닦아 쓰라는건지 국물얼룩이 있다. 그래도 이젠 미지근한물 안먹어도 돼고 과일을 사도 저장할 수단이 없다는 열악한 환경에서 드디어 해방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이제 낼 모레면 이곳에서의 어학연수 과정이 모두 종료되고 이 곳을 떠난다는 사실이 다시 나로 하여금 허탈함을 느끼게 했다. 보름간의 생활동안 단 이틀만 냉장고의 혜택을 받으니 이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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