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0 모로코

모로코 여행8(마라케쉬→아이트 벤 하두→와르자자트→멕구아나)

코렐리 2010. 3. 1. 22:08

 

2010.1.24(일)

아침 7시까지 사막여행 출발을 위해 집결할 장소는 호텔에서 5분 거리의 가까운 곳이었다. 5시 40분에 일어나 고양이 세수하듯 대충 씻고 짐을 싸니 6시 20분이었다. 밖으로 나왔다. 추적추적 비가 오고 있었지만 큰 비는 아니었다. 내가 갔던 바로 이 시기가 우기였지만 비는 이 날 만난 것이 처음이었다. 30분 일찍 도착한 집결 장소에는 아무도 없었고 일찌감치도 문을 연 카페 차양 아래에는 백인 청년 한 명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 일행이 아닐까 하는 짐작이 갔다. 카페 바깥 차양 아래 고인물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일으키는 파장을 바라보며 우아한 체 차를 마시며 시간을 죽였다. 7시가 지나자 백인 처자 여행객 세 명이 거의 자신의 체구만한 배낭을 멘 채 나타났다. 조금 후 동양인 청년도 한명 나타났다. 얼굴을 보니 한국인인 것 같아 무척 반가웠다. 같은 카페에 있던 백인 청년까지 모두 6명이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며 인사를 시작하자 그때까지만 해도 전부 같은 팀인줄 알고 있던 6명은 어지럽게 인사를 나눴다. 젠장. 알고보니 네덜란드 처자들은 1박 2일짜리 다른 팀이었다. 인사는 왜 한거야? 내민 손과 나불거린 입이 쑥스럽다. ㅡ,.ㅡ; 2박 3일 코스에 뒤이어 합류한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여자는 없고 전부 시꺼먼 남자들만(남자들만 모이면 내가 흔히 쓰는 표현이고 피부색을 말하는 건 아님) 모였다. 무미건조하도다. 줸좡. 다행인 건 나와 같은 한국인이 한 명 더 있어 자유자재로 수다를 떨 대상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Neal, 멕시코에서 온 Demian, 불가리아에서 온 Pavlin, 한국에서 온 항민과 나. 일케 다섯 명이다. 운전수 겸 가이드인 이브라힘은 아랍인도, 베르베르인도 아닌 남부 출신의 무슬림이었다. 닐은 대학생으로 스페인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유학중이었고, 데미안과 파블린은 스페인에서 계약직으로 함께 일하다 알게 된 친구들로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각기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함께 하는 여행이었다. 항민은 영국에서 1년간 어학연수중이었고 이제 돌아가 복학하기 전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항민은 이 곳에 올 때 앉았던 좌석 앞쪽에 데미안과 파블린이 타고 있어 구면이었다고 한다. 비행 전부터 둘 다 술이 목구멍까지 그들먹하도록 마셨는지 서로 퍼큐! 퍼큐! 하며 헤롱거리며 떠드는데 두 사람의 친한 정도와 시끄러운 정도가 장난이 아니었단다.

 

가다 들른 휴게소. 항민과 함께 차 한 잔 마시려다 20디람이나 하는 어이없는 차값에 생각을 바꿨다. 이 곳에서 잠시 쉬고 떠났다. 이 곳에서부터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고지대에 올라가니 손이 시려울 정도로 날이 차고 바람도 강했다.

 

조금 더 올라 가니 급기야 눈이 오기 시작했는데 가만 보니 이미 쌓여 있던 눈 위에 지금 오는 눈이 더 덮이고 있었다. 이미 깔린 눈은 이 날 내린 눈은 아닌모양. 이 곳은 겨울에 시도 때도 없이 눈이 오는 모양이다. 이 산은 해발 2600미터 고도의 디진시까라는 산이라고 한다.--->이브라힘의 말(09:50)

 

산을 넘고 나니 거짓말같이 햇살이 강렬하다. 뭐야 이거???

 

가다 보니 작은 그랜드캐년 같은 모습들이 펼쳐졌다.

 

어느 한 곳에 내려 주며 한 시간 정도 구경을 하란다. 아이트 벤하두(Ait Benhadou: 11:20)였다.

  

바로 눈 앞에 야산이 펼쳐졌는데 그 자체가 띠고 있는 색깔이 환상적이다.

 

그 바로 옆으로 그렇게도 기대하던 아이트 벤하두의 모습이 드러났다.

 

론니에 따르면 이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아틀라스 주변에서는 가장 보존이 잘 된 카스바이다. 스타워즈, 글레디에이터, 아라비아의 로렌스, 나사렛 예수, 등 수많은 명작 영화들이 촬영을 해갔단다. 영화들 모두 이런 모습은 기억에 없다. 아마도 글레디에이터를 제외하곤 이 근처 어디 다른 곳에서 찍었을 것 같다. 이 영화들 다시 함 봐야겠다. 안으로 들어가 보자면 냇물을 건너야 했다. 그 냇물은 제법 폭이 넓었다. 주민들이 당나귀를 이용해 물을 건너게 주고 돈을 받고 있었다. 당나귀를 데리고 멍청이들을 기다리는 주민들은 10명 남짓이었다. 나는 징검다리를 찾아 보았다. 징검다리가 몇 군데 보였지만 중간중간 이빨 한개씩을 치워 놓았다. 발목이 젖지 않고는 못건너도록 만든 것이다. 그 의도가 괘씸하고 밉살맞게 보였다. 안건너면 말지. 신발과 양말을 벗은 나는 이 것들을 양 손에 들고 물을 건너 돌 위에 올라선 뒤 손수건으로 발의 물기를 닦은 뒤 다시 신었다. 항민도 맨발로 건넜다. 그들이 우릴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니 저런 우라질 넘덜!

 

Neal이 공짜로 당나귀 타고 건넜다고 좋아했다. 주민들의 서비스로 생각한 모양이다. "널 건네준 사람은 틀림없이 널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돌아오면 또 건네 주겠다고 할텐데 그 땐 돈을 내야 할걸?" 했더니 내게 자랑하던 그의 행복한 얼굴이 살짝 당황기가 스쳤다. 결국 닐은 왕복 20디람을 돌아갈 때 그 놈에게 내야했다. 이거야 말로 눈뜨고 당하는게 아닌가. 순진하긴. 

 

파블린과 데미안은 아예 포기하고 당나귀에 올라타고 건넜다.

 

사진에서 보고 잔뜩 호기심을 갖던 그 곳을 실제로 보니 역시 감개무량.

 

성벽은 흙으로 쌓았지만 무척 견고해 보였다.

 

아래의 사진은 모로코에 먼저 다녀온 마사유끼가 보내 준 사진이다.

 

이 안으로 들어올 때 이 곳 주민들이 10 디람씩을 징수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그 안에 주민들이 생활터전을 유지하고 있고 관광객을 위해 빈집에 생활도구들을 갖추어 전시한 곳도 있었다.

 

마을에는 가정집도 가게도 있어 있어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수다쟁이 데미안(흰 점퍼)과 파블린(검은 점퍼). 그들의 입이 쉬는 순간은 거의 보지 못했다. 이 곳이 글레디에이터를 찍은 곳이라고 했더니 파블린이 묻는다. "어느 장면을 여기서 찍었는데?" 니가 모르는걸 내가 어떻게 아냐 임뫄. ㅡ,.ㅡ;

 

카스바 고지대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저 멀리에 설산이 보인다.

 

저 아래 당나귀 데리고 관광객들을 우롱하는 몰이꾼들. 하긴 그렇게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겠지. 이해하자.

 

이 곳 아이트 벤하두의 카스바는 구석구석 안 가본 곳 없이 다 돌아 다녔다.

 

그런데 뭐가 그리도 급할까. 나는 좀 더 여유 있게 천천히 보고 싶은데 벌써 모두들 투어 차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 마을 바로 건너편엔 자그마한 야산이 있었다. 그 곳에 가면 이 곳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일 것 같았다. 나는 그 곳에 꼭 가보고 싶었고 일행은 차량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항민이 가다 말고 뒤돌아 나를 향해 소리쳤다.

"어디 가세요?"

"저 야산에 함 올라가 보려구."

"좀 늦으신다고 이야기 해 놓을까요?"

"아냐 잠깐 올라가서 사진 한 장 찍고 내려와 달려가면 안기다려도 될거야."

하고는 냅다 달렸다.

 

아래 사진이 마을에서 나와 벌거숭이 야산을 오르기 직전 뒤돌아 찍은 사진.

 

이 곳에 막상 오르고 나니 바람은 나로 하여금 정신을 못차리게 만들었다. 중심 잡고 서있기도 거의 어려웠고 점퍼에 달린 후드는 바람을 받아 낙하산모냥 풍부하게 펼쳐져 가뜨기나 잡기 어려운 중심이 더욱 흐뜨러졌다. 후드가 점퍼에서 뜯겨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생전 처음 접하는 거센 바람이었다. 숨 조차도 쉬기 어려웠다. 이 곳에서는 버티기 조차 힘들어 사투 끝에 사진 두 컷 간신히 찍고 내려 왔다. 아래의 사진이 그 중 하나. 

 

베르베르인으로 보이는 주민 하나가 관광객들을 상대로 뭔가 장사를 하고 있었다. 가이드인지 아님 뭘 파는건지 모르겠지만 그의 옷이 패셔너블 하다.

 

 

이 곳을 건너 되돌아 오느라 또 한 번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마침 항민은 물을 건너 발의 물기를 닦아내고 있었다. 파블린과 데미안, 닐은 저만치 걸어가고 있어 금방 따라 잡을 것 같았다.

 

차량으로 돌아온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13:00경에 와르자자트에 도착했다. 와르자자트의 가장 높은지대(높은 지대라고 해야 저지대하고 별 차이도 없지만)에 카스바가 세워져 있다. 이 곳은 18세기에 축조된 것이다. 보존 상태로는 아이트 벤하두 못지 않아 보였다.

 

 

우리는 카스바 길건너 야외 전방이 좋은 카페에서 카스바를 건너다 보며 식사를 했다.

 

왼쪽부터 나(나만 잘렸다), 닐, 파블린, 데미안, 그리고 항민. 파블린과 데미안은 상당한 영어실력을 자랑했다. 그들의 수다는 에스파뇰이 아니고 영어였다. 말도 하도 빨라 알아 듣기도 쉽지 않았다. 오히려 닐이 말하는게 쉽게 들리더라니깐. 항민은 나보다 영어실력이 월등했지만 말이 없는 스타일이라 누가 말을 걸 때나 대답했고 먼저 해도 필요한 말 외에는 내내 조용했다. 닐도 무척 조용한 성격이었다. 둘은 시끄럽고 둘은 조용하고 나는 중간이었다. 재미있는 팀이었다. 

 

점심 메뉴로 치킨 타진을 골랐다. 라바트에서 먹었던 타진보다도 훨씬 맛이 좋았다. 닭고기와 야채가 누런 것은 고급 향신료인 샤프란을 썼기 때문이란다. 닭고기와 폭삭 익은 감자도 일품이지만 뜨끈뜨끈한 올리브는 처음 먹어 보지만 감동적이다. 맥주를 마시고 싶었지만 구할 수 가 없으니 코카콜라로 아쉬움을 달랬다. 식비로 71 디람이 들었다.비싼 편이지만 맜있다.

 

카스바와 메디나에 대하여 이야기 하자 파블린이 일반 성곽과 카스바의 차이점이 뭔지를 내게 물었다. 나는 그저 아는대로 주어 섬겼더니 물었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알어?"

"공부했지"

"언제?"

"여기 오기 전에"

"왜"

"알아야 재미가 있지."

"직업이냐?"

"아니다. 왜?"

"너 대단하다."

ㅡ,.ㅡ;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여행을 오면서 으쩜 그렇게 준비도 전혀 안해올까 의아했지만 파블린과 데미안은 내가 특이한 놈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니 서로가 서로를 보고 의아할 밖에...

 

카스바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현지인이 입구에 의자를 갖다 놓고 뒤로 자빠질 듯 산만하게 건드렁 거리며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돈을 걷고 있었다. 20디람이었던가? 40디람이었던가? 얼마였던가? 그래도 난 여기까지 왔으니 들어가 보려고 했다. 들어 가고자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썰렁해졌다. 순간 잠시 고민해 본 끝에 나도 일행과 함께 외곽으로 돌기로 했다. 아래 사진은 카스바 입구

 

 

외곽으로 돌기 시작하자 가이드가 따라 붙었다. 그의 셈법이 희한했다. 입만 나불거리면 되는데 두당 10디람을 내란다. 잠깐 5명 데리고 다니고 입만 나불거려 50디람이라? ㅡ,.ㅡ; 안하려고 했더니 다들 별 생각이 없이 그러자고 한다. 내가 이상한건가? 좋다 가보자.

 

가이드의 브리핑과 나름 그가 데리고 다닌 코스는 그런대로 흥미로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혼자만이라도 들어 볼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아이트 벤하두 보다 전체적인 모양새가 섬세했기 때문이었다.

 

카스바 내부를 둘러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곽 마을을 돌아보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성벽 보수에 필요한 벽돌이 한쪽에 쌓여 있다. 가이드는 이 흑벽돌이 2주동안 건조되어야 쓸 수 있다고 했다.

 

 

이 곳이 마을 공용상수도인듯.

 

향신료 가게도 들러보고... 사는 사람은 없었다.

 

이어서 들른 곳은 시나고그 

 

 

그런데 시나고그 내부 장식이 이상했다.

 

내부 장식이 유태교와는 전혀 상관도 없어 보이는 물건들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엔 생활 용품들이 대부분이라...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도 없었다. 심지어 시나고그가 유태인의 교회당인 것으로 알고 있던 것마저 잘못 아는 게 아닌가 의심까지 했다.

  

저 멀리에도 카스바가 보인다.

 

이 곳 시나고그를 안내하던 이에게 와르자자트에 도대체 몇 개의 카스바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의 말로는 1000개에 이른다고 했다. 도대체 와르자자트가 얼마나 크길래? 그 것들이 틈도 없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해도 엄청난 도시가 될텐데 주변엔 내가 있는 이 곳과 저 멀리 보이는 것 외에는 시야에 들어오는 카스바가 없었다. 모로코 전체를 통틀면 1000개가 될려나? 안될 것 같은데... 납득 안가는 이 소리는 도대체 뭔 소리냐고... ㅡ,.ㅡ;  

 

카스바 주변을 돌아 본 뒤 이브라힘과 차량이 우리를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 곳에는 영화 박물관이 있었지만 관심있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통과!

 

다시 길을 떠났다.

 

가다가 또 들른 휴게소 길건너에도 가지만 앙상한 나무와 흐르는 강물을 배경으로 둔 카스바가 눈에 들어 온다. 

 

 

이 곳에서 차 한 잔 마시며 잠시 여유를 즐겨 봤다.

 

길 주변이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황량해지기 시작하면서 기기묘묘한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익살스러운 이브라힘의 모습. 디진시까에서 내게 장난을 걸길래 장난스레 해 본 태권도 발차기 시범(군대에서 밖에 안해봤음 ㅡ,.ㅡ;)에 자신의 코끝까지 올라 오는 나의 발에 무척 놀란 눈치다. 그 뒤로 그는 차에서 내려 쉴 때마다 장난을 걸어왔다.

 

오후 세시가 넘어 네시에 가까와지자 이후 부터는 황량한 사막만이 눈에 들어왔다. 17:05분경에는 다데스 협곡(VALLEY DADES)에 도착했다. 해도 지지 않았건만 싸가지없는 달은 중천에 걸려 반쪽을 드러냈다.

  

협곡 한가운데 낭만적인 분위기의 호텔이 있었다. 오늘 이 곳에서 하루 묵고 간다.

 

뭐라고 읽지? 르 비에 샤또라고 읽으면 되나?

 

어쨋든 2인 1조로 방을 쓰게 되어 있었다. 당연히 데미안과 파블린은 같은 방을 썼고, 항민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연히 방을 같이 쓸 걸로 알았다. 남은 방 하나는 닐이 혼자서 썼다. 닐 혼자 수지맞았넹. 

  

방 안에서 내다 보면 창밖에 소란스레 흐르는 물이 듣기에도 차갑고 신선하다.

 

방은 3성급은 되어 보인다. 아주 형편없는 호텔로 갈 줄 알고 있던 나는 방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항민은 "이렇게 해주고도 남는게 있나?" 하며 만족해 했다. 샤워를 한 뒤 식사를 하기 위해 내려가 보았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준비한 식사도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식당 자체도 분위기가 훌륭했다. 스프 맛이 기가 막히다. 함께 나온 빵과 스프의 맛이 거의 환상이다. 입가에 부드러운 느낌으로 와 닿는 나무스푼이 그 맛을 더해 준 것 같다. 음식이나 술에 쓰는 그릇이나 취식도구, 술잔 등은 고유의 용도에 맞춰 만들어진 탓에 아무렇게나 마시거나 취식하면 제 맛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고 보면 나무스푼이 제공하는 감촉과 느낌이 맛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믿는다.

 

이브라힘은 여행팀과는 절대 식사를 함께 하지 않았다. 함께 하자는 우리의 권유도 사양하며 자신은 이따가 따로 먹겠다고 한다. 아줌마는 이 호텔의 종업원인지 빼치카에 불을 피워 주었다. 서늘하던 식당 실내에 점차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다. 오늘 저녁 메뉴는 꾸스꾸스였다. 라바트에서 먹어보고 두 번째인데 이렇게 맛있는 음식인줄은 미처 몰랐다. 야채와 치킨 두 가지가 나왔다. 남김없이 다 먹어 치웠고 배가 터질 지경이었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파블린이 웨이터에게 후식으로 차가 나오는지를 물었다. 차는 주문해야 한다는 대답이 나오자 그냥 주면 안되겠느냐는 넉살 좋은 주문이 들어갔고 못들은척 하고 그릇을 치우고 나갔던 그의 손엔 찻주전자가 들려 다시 돌아왔다. 파블린이 못먹는 감 한 번 찔러본 것이 보답으로 돌아왔다. 곧이어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인지 아님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인지 유창한 영어에 발음이 조금 알아듣기 어려운 베르베르인이 들어와 우리와 놀아 주었다. 아래의 사진은 이게 바로 베르베르식 차따르기라며 시범을 보여준다. 유리잔을 모아 놓고 하나씩 따르는데 따를 때마다 주전자를 높이 들어 올렸다. 반씩만 채우고는 한 번 씩 더 따라 채웠다. 방법이 조금 과장되어 보이긴 해도 동양에서 차따르는 방법하고 달라 보이지도 않는데 파블린과 데미안은 새롭게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이상하게 아랍지역만 오면 시샤 생각이 나곤 했다. 시샤가 없는지 물었다. 50디람이라고 한다. 비싼 편이다. 어쨌든 시샤 하나 갖고 돌려가며 즐겼다.

 

여러 사람이 하나의 시샤를 즐기기 위해 사용하는 ADAPTER를 찾았더니 없단다. 파블린이 어뎁터 없이 사용하는 법을 알려줬다. 엄지와 검지로 시샤 끝을 말아쥔 뒤 그 위를 입술로 밀폐시켜 빠는 방법이었다. 한참 즐기다 보니 오래간만에 즐기는 사과향 시샤에 나중엔 속이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이브라힘도 시샤를 즐기며 즐거워했다. 시샤 하느라고 즐긴 돈을 모아 내기도 귀찮고 차도 거저 얻어 먹었으니 시샤 값은 내가 냈다. 허, 반응은 무척이나 고마워하는 분위기넹. 작은돈에 이정도면 괜찮은 생색을 낸 셈이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