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0 모로코

모로코 여행5(페스→메크네스)

코렐리 2010. 2. 24. 18:37

2010.1.21(목)

 

전날 9시에 잠자리에 들고 일어난 시간은 아침 6시였다. 숙소 옥상에서 내려다 보니 오늘 들를 Batha 박물관이 내려다 보인다. 일찍 일어나기는 했지만 오늘 들러 볼 곳들은 9시는 되어야 문을 여는 관계로 시간이 남았다. TV를 켜 놓고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는 내용을 열심히 보며 전날 먹다 남은 바게뜨와 토마토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오늘은 남은 곳을 마저 둘러 보고 나서 마라케쉬로 떠나는 날이다. 짐을 미리 싸 두고 침구와 기타 이 곳에서 살용했던 물건들을 대충 정리했다. 배낭은 놓아둔 채 8시 30분에 숙소를 나섰다.

 

부 즐루드 공원(Jadens de Bou Jeloud)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쉽지 않았다. 현지인들은 시원찮은 내 불어 발음 때문인지 다들 고개를 가로 저었다. 불어가 아니면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다 가다 잘 꾸며진 큰 정원이 보이는데 철창으로 둘러쳐진 울타리는 하도 커서 입구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안에서 경비를 서는 사람에게 물어 봤지만 말이 통해야 말이지. 들어갈 수 있는냐고 바디 랭귀지로 물으니 손사래를 친다. 아직까지도 이 곳이 바로 그 부 즐루드 공원인지 아닌지 모른다.

 

젠장 그럼 본거야.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었다. 오다 가다 광장에 면해있는 성문(?)을 무심코 지나쳤었는데 엥? 성문이 아니고 대학 정문이었네? 함 들어가 보고 싶었다. 활짝 열려 있지 않은 정문의 분위기에 왠지 출입을 통제하는 것 같아 직원으로 보이는 이에게 물어 보았다. 안된단다. 이 곳 모로코는 왜 이렇게 안되는게 많아? 모스크에도 못들어가, 대학 캠퍼스에도 못들어가. 생각했던 것보다 폐쇄적인 곳이었다.

 

수업시간을 기다리는지 정문 앞 광장에서 삼삼오오생 모여 웅성거리는 모습에, 생각보다는 여학생과 남학생의 대화나 교류는 비교적 자유스러운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이 곳에서 멀지 않은 숙소를 들러 배낭을 매고 나와 현관과 방열쇄를 반납하기 위해 1층 주인집 거실에 가 사람을 부르니 한참만에 귀가 어두운 할머니가 나오셨다. 귀가 어두워 말을 잘 못들으시고 영어를 모르시니 인사해 봐야 들려도 뭐라고 하는지 모르실테지만 인사를 하고 열쇄를 드리고 나왔다. 부 즐루드 문을 지나 부 이나니아 메드라사(Medrassa Bou Inania)로 가보았다.

 

부 즐루드 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메디나의 골목 안에 있었다.

 

뭐라고 써있는건지 몰라도 그리 오래된 메드라사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었다. 서양인 부부 두 사람이 먼저 와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기다려 보았다. 

 

오래지 않아 문이 열렸다. 그런데 입장은 허용되지 않았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니 그동안 들러 본 메드라사와는 내부 구조가 달라 잔뜩 호기심이 일었는데 입장을 불허하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이 곳에서 아직도 신학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일까. 말이 통하는 놈이 있어야 물어보지. ㅡ,.ㅡ;

  

암튼 부 즈루드 메드라사 방문은 포기하고

  

바타(Batha)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이 곳이 입구다.

 

박물관에는 정원이 잘 꾸며져 있었다. 이제 막 문을 연지라 아주머니들은 청소를 하고 있었고 문도 전시실도 빗장을 이제서야 푸는 중이었다.

   

나는 빗장이 이미 풀려있는 건너편 전시동부터 가서 전시물들을 둘러 보았다.

 

전시물들은 대부분 그다지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도자기와 공예품들로 이 지역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유물들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다. 설명도 없고 영어 표기가 없는 것은 이 곳도 똑 같다.

 

어찌 보면 안오면 궁금할까봐 들른 셈이다.

 

이 곳을 나와 길거리에서 이 곳 전통 도넛(1디람)을 하나 사서 물고 다니며 버스 정류장으로 가봤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인지 초등학생들이 바글바글하다. 우리 어린 시절만 해도 교실이 모자라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두개 반이 하나의 교실을 쓰곤 했다. 10시 갖 넘은 시간인데 이 시간이 수업이 끝났을리는 없고 2부 수업 받으러 가는 아이들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 노는 것은 어딜 가나 다 똑같은가 보다. 약올리며 근처를 뱅뱅 돌아 도망 다니는 아이, 억하심정에 추격하는 아이, 여자 아이에게 찝쩍거리는 아이, 왕따시키는 아이들, 왕따 당하는 괴로운 표정의 아이, 논쟁을 벌이는 두 아이, 여학생에게 은근한 아이... 이 아이들만 봐도 모든 세상의 인간관계를 다 보는 것 같다. 이 곳에 왔을 때와는 역순으로 가기 위해 9번 버스(3.5디람)에 올라탔다. 11시가 되지 않은 시간에 세티엄(CTM)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 시각을 보니 이거야 참...18:00 차와 21:00 두 차례의 버스밖에 없다고 한다. 자그마치 7시간을 기다린다? 아마 성질 급한 나라면 지레 죽을 일이다. 로컬버스 터미널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몰라서 모른다고 하는건지 어쩐건지... 카사블랑카 모하메드 공항에 처음 도착해서 만났던 한국인 여목사님이 얘기해 준 온천장엘 가볼까도 생각해 봤다. 마침 그 곳을 가려면 여기서 출발하면 된다. 하지만 이 때는 땡기지도 않았다. 영화나 볼까? 극장을 찾을 정성이면 로컬버스 터미널을 찾아가겠다. 원. 그래, 로컬버스 터미널을 찾아 버스 시간표가 어찌되는지 알아볼까? 밑져야 본전이..... 그게 본전인가? 여러가지로 생각해 봤다. 말이 거의 통하지 않는 이 곳에서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 봐도 "로컬 버스"라는 말을 이해할지도 의문이고 그러기도 귀찮아졌다. 사실 여기서 메크네스까지는 한시간여만 가면 도착하는 가까운 도시였다. 좋다. 그랑탁시(Grand Taxi)를 타자. 그랑탁시는 합승 택시를 말하는데 합승택시 승강장을 찾아가는 것이 문제였다. 근처 카페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처자 혼자 커피를 마시는 모습 발견. 한국말로 "혹시 그랑탁시 승강장이 어딘지 아세요?" 했더니 영어로 "저 한국인 아닌데요" 했다. 쪽팔려..! 영어로 다시 물었다. 모른단다.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한 아저씨가 그랑탁시를 타려느냐고 묻고 나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메크네스로 간다고 했더니 자기가 그랑탁시 운전사라며 처음엔 250인가 300디람이라고 했었다. 합승을 원하나고 했더니 지금 가겠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정원이 차지 않아 합승을 해도 그 미만으로는 안된다고 했다. 무시했더니 170까지 내려갔다. 일단 차에 올라 탔는데 승객은 없었다. 다른 승객은 왜 없느냐니까 승강장에 대기중이란다. 가다 말고 기름을 넣어야 하니 돈을 미리 주면 안되겠느냔다. 의심스러웠지만 줬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90디람이면 될 것을 두 배 가까운 170디람이나 내고 탔다. 실갱이 하기도 싫었다. 모로코에서 당하는 두 번째 사기였다. 그래도 바가지 씌운게 미안했는지 뒷좌석엔 4명이 타서 불편했고 나만 앞좌석에 태웠다. 희한하게도 이 곳은 그랑탁시 정원이 운전자 포함 7명이어서 앞좌석에도 두 명이 탈 수 있도록 제도화 되어 있었다. 나만 편하게 가니 바가지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래의 흰 택시가 바로 그랑탁시다. 그랑탁시는 말 그대로 큰 택시인데 70년대 구제 모델의 벤츠다. 

  

메크네스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메크네스의 그랑탁시 승강장에는 12시도 되지 않아 도착했다.

 

론니의 지도상으로 보자면 여기서 메디나(구시가지)까지는 거리가 그리 가깝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그냥 걸어보기로 했다. 나침반으로 방향을 어림잡은 뒤 그리로 걷기 시작했다.

 

가다 보니 별 이상하게 생긴 건물도 나온다. 콘크리트로 돔을 엊었는데 돔 치고는 곡선이 조잡했다. 뭐하는델까 궁금했지만 굳이 쫓아가서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저멀리 메디나가 보인다.

 

길이 휘어져 있어 지름길로 간답시고 샛길로 빠져 보았다. 나처럼 잔꾸ㅐ 쓰는 사람들이 많은지 인도 좌측의 담벼락 일부가 허술하고 그리로 들어서니 사람이 다녀서 생긴 길 아닌 길이 나온다.

 

메디나에 도착해 가고자 했던 호텔 Maroc Hotel을 찾아 보았다.

 

지도는 대충 그려져 있었다. Dar Lakbira 근처인 것만은 틀림 없는데 찾을 수가 없다.

 

이 곳 메디나도 골목이 재미 있어 그냥 생각없이 다니다 보면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하지만 이 곳 골목은 무지하게 헷갈렸다. 세계 최대의 미로라는 Fes의 메디나보다 규모로 보자면 비교도 안돼게 작은 곳이지만 헷갈리기는 이 곳이 세계 최고였다. 이 골목에서 벗어나 보려고 무지하게 헤매 보았지만 걸핏하면 막다른 골목이고 걸핏하면 같은 자리로 되돌아왔다. 갑자기 이 곳 사람들이 귀신이나 유령들이 아닐까 의심마저 갔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두 학생에게 물었다. 그들이 안다며 따라 오란다. 나는 그럴필요 없고 길만 알려 달라고 했다. 그들은 괜찮다며 앞서 나갔다. 필요 없다고 해도 막무가네였다. 한 두 번 겪는 것도 아니어서 이젠 말리지도 않는다. 누가 찾아 달라고 했나? 난 이런게 제일 싫다. 호텔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호텔로 들어가려 하자 돈을 달란다. 나도 퉁명스러워졌다. "원치도 않는데 너희들이 여기까지 왔는데 무슨돈을 요구하느냐"고 말한 뒤 호텔로 들어가 버렸다.

 

메크네스는 10세기 베르베르족의 하나인 메크나시스들이 건설했다고 한다. 메크네스라는 이름은 그래서 얻었다고 한다. 1637년 물레이 이스마일(Moulay Ismail) 통치 시기에 수도가 되었다가 1728년 이래 페스와 마라케시로 수도가 이전되면서 쇠퇴하였단다. 오렌지와 올리브, 포도, 카펫과 모직물, 금속 공예품으로 유명하다. 이 곳에서 멀지 않은 물레이 이스마일의 묘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방값이 저렴했다. 90디람을 내고 체크인 했다. 물론 화장실과 욕실은 공용이다.

   

배가 고팠다. 바로 앞 작은 식당이 있어 가 보았다. 생선을 튀겨 파는 곳이었다.

 

생선과 콩스프를 주문했다. 빵은 당연히 딸려 나왔다. 튀긴 생선은 생긴대로 맛을 냈다. 이게 콩스프인지 다른 스프인지 모르겠다. 무언가 갈아서 끓인 것인데 아랍식 스프가 모두 그렇듯이 올리브유를 흥건하게 뿌리고 향신료도 푸짐하게 뿌렸다. 맛은 그런대로 괜찮다. 식비를 낼 때는 저렴해서(15디람) 놀랐다. 

 

식사를 마치고 밥 엘 만수르(Bab el-Mansour: 엘 만수르의 문)로 걸어서 갔다. 가까운 거리여서 10여분이면 도착한다. 이제까지 모로코에서 본 성문 중 가장 문양이 화려하고 섬세했다.

 

아라베스크식 출입문 아치도 섬세한 문양으로 각인했다.

  

밥 엘 만수르는 광장이 면해있고 광장에는 카페와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했다.

 

근처에는 수크도 있는데 대부분 식료품을 팔았다.

 

견과류를 이용해 만든 과자, 생선, 닭, 올리브와 각종 향시뇨들이었다.

 

무엇보다 절인 올리브열매의 젓시가 인상적이었다. 놀라운 것은 올리브 열매를 그릇에 담아 어떻게 쌓길래 이리도 가지런하고 단정한가 했다.

 

마침 그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속까지 올리브로 찬 것이 아니라 틀 위에 한 겹을 정성스럽게 쌓는 것이었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작업하고 나면 이걸 아까워서 어찌 파나. 하지만 나같으면 안사고 싶을 것 같다. 쪼물딱 쪼물딱 만진 물건을 어떻게 먹냐. ㅡ,.ㅡ;

  

광장에는 자마이 박물관이 면해 있었다. 돈이 덜어져가는 상황이어서 바로 옆 환전상에서 돈부터 바꿨다. 환율에 약간의변동이 있었다. 200달러를 환전해 1565디람을 받았다.

 

 

이 곳도 역시 전시물은 그다지 매력이 없었다. 불어로만 표기되어 있고 발굴지, 크기, 명칭만 표기되어 있었다. 여러 박물관을 다녔지만 그물건이 그물건이었다. 하지만 가는 박물관마다 건물의 문양이 아름다워 거기에만 넋을 놓다 오기 일쑤였고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카메라로 전시물을 찍지 말라고 하지만 건물 찍는 것은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하긴 감시인도 거의 없으니 맘만 먹으면 찍기는 하지만 관심이 없다. 물론 볼건 다 복 나왔지만 말이다.

 

 

이 곳은 마치 왕이 첩들을 거느리며 춤이나 구경하던 곳 같은 분위기다.

  

이젠 모로코 문양의 스타일도 대충은 파악이 된 것 같다. 그래도 싫증은 안난다. 지금 다시 사진으로 보아도 무척 아름답다.

 

 

 

박물관을 나와 메디나 골목들을 돌아 다녔다. 이 곳의 골목들은 붉은 색과 황색계열의 따스한 느낌이 전반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골목을 누비다가 발견한 부 이나니아 메드라사(Medrassa Bou Inania)를 발견했다. 페스에서 들어가보지 못했던 메드라사와 같은 이름이었다. 바깥에서만 보아도 그동안 봐오던 메드라사와는 구조가 달라 보였다.

 

무개 홀 한가운데 작은 분수와 유개홀을 가진 구조가 같고 문양은 역시 섬세했다.

 

 

 

그런데 이 곳은 기숙학교였는지 무개홍 좌우 회랑에 여러개의 작은 방들이 놓여 있었다. 학생들이 여시거 기숙했던 모양이다. 섬세하고 아름답긴 하지만 시설은 불편해 보인다.

 

 

이 곳을 나와 골목으로 다시 나왔다. 목이 타 물도 한 개 샀다. 가게 아주머니가 젊젆게 생긴 인상과 달리 1디람을 띵겨 드셔서 4디람.

 

아름다운 한 가정집의 문.

 

베다인문을 찾기 위해 지도를 보고 대충 돌아다녀 보았다.

 

진작 그렇게 할걸. 대충 보고 대충 다니니 대충 뭔가가 나오긴 한다.

 

밥 엘 만수르보다는 덜 화려하지만 분양을 보고 이 곳이 베다인 문(Bab Bedain)임을 직감했다. 문양 없는 성문들도 많은데 이게 볼거리로 가이드에 소개되지 않으면 뭐가 소개되겠나 생각이 들었다.

 

성문 밖으로 나와 도로가에 잠시 쉬면서 근처에 앉아 쉬는 사람에게 물었다. 내 짐작이 맞았다. 이 곳이 베다인의 문이었다.

 

이 번엔 엘케이의 문을 찾아 보았다. 대충 찾아 대충 나온 이 문이 엘케이문인지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더 찾아 가기도 귀찮고 그냥 내 마음 속으로 "이게 엘케이 문이다. 설사 아니라 해도 내가 엘케이라면 엘케이인거다." 생각했다. 사실 다리도 아파왔고 몸이 녹초가 되어 오늘은 이만 쉬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내일 일정도 있고 하니...

 

다음날 물레이드리스의 묘와 로마 유적인 볼루빌리스로 가자면 그랑탁시를 타야했다. 그랑탁시 승강장도 밥 엘만수르에 면한 광장 바로 옆에 아주 널찍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다 말고 엘 만수르 문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볼수록 멋스럽다.

 

이 곳에도 극장이 하나 있었다. 외관이 무척 낡았고 외벽에 붙은 프로는 아주 오래된 영화였다. 여기서 현지인들과 섞여 영화를 하나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는 것이 폐쇄된 것 같았다. 재미있다. 어렸을 때 학교 근처 동시상영하던 극장 하나가 잇었다. 출입문도 검츤 커튼으로 되어 있고 영화를 다 보면 쥐도 다닌다고 했다. 그 극장 이름이 아폴로극장이었는데 이 곳의 낡은 극장 이름이 똑같다. ㅎㅎ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카페에는 남자들이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차를 마시며 한 쪽을 집중하고 있었다. 나도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보았다. 모두들 축구경기를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프리카컵 축구대회였다. 이 날 경기는 카메룬과 튀니지가 적수로 맞붙은 날이었다. 자국 경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축구 관전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오후 6시가 넘었는데도 이상하게 식욕이 없었다. 나는 이 곳에서 민트티(5디람)를 주문했다.

 

차를 마시며 여행일기를 정리하는데 옆자리에 앉은 노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일본인이냐고 묻는다.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대뜸 한국은 왜 둘로 갈라져 싸우느냐고 묻는다. 강대국이 개입한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둘로 갈라지게 만들었고 그게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고 했더니 부끄러운 질문을 했다. "이데올로기가 민족보다 더 중요한가?" ㅡ,.ㅡ; 더 할말도 없었다. 그는 또 자신의 모국인 모로코와 이집트, 튀니지 등은 진정한 아랍국이 아니라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미국과 수교를 했으니 어찌 진정한 아랍국이라고 하겠어?" 나는 아랍국들 대부분이 시샤를 즐기는데 이 곳 모로코는 왜 시샤를 보기가 어려운지를 물었다. "시샤? 그거 뉴타운 가면 볼수 있지. 뉴타운은 사탄의 도시야. 그 타락한 물건은 그런 곳에나 있어." 노인은 알콜도 사탄이라고 했다. 할아버지 맥주가 얼마나 맛있는데 사탄에 갖다 대세요... ㅡ,.ㅡ; 노인은 7시경에 카페를 나갔다. 나도 좀 더 앉아 있다가 8시가 다 되어 자리를 떴다. 이 시간이 되도록 밥생각도 나지 않으니 이상하다. 가게 가서 빵과 오렌지를 좀 사다 먹고 식사로 간주했다. 빵도 맛있지만 오렌지는 엄청 달아 맛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