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0 모로코

모로코 여행6(물레이 이드리스의 묘→볼루빌리스→메크네스→마라케쉬)

코렐리 2010. 2. 25. 17:56

2010.1.22(금)

아침에 일어나 샤워한 뒤 숙소를 나서면서 싸 놓은 짐을 맡기려고 리셉션으로 내려가 보았다. 전날 체크인을 도와주고 수건까지 내 준 여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관리 아저씨에게 배낭을 보관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리셉션에 두고 나가란다. 08:30쯤 배낭을 내려 놓고 그랑탁시 승차장으로 나갔다. 즐비한 그랑탁시 사이사이로 누벼 봤지만 먼저 찝쩍거리는 운전자가 하나도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먼저 찝쩍거려 줘야 협상에 유리하기 마련인데 왠지 나를 보는 눈들이 소 닭보듯 시큰둥하다. 이유가 뭐지? 아니 이런 생선에 관심없는 희한한 고양이들을 봤나. 어쨌든 승차장 한 가운데를 누빌 때 쯤 한 사람이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볼루빌리스와 물레이 이드리스 방문에 얼마인지를 되물어 보았다. 400디람을 부른다. 론니 책자에는 22킬로미터의 거리를 둔 이 두 유적지 방문에 35달러인가 얼마의 경비가 든다고 했다. 과거의 자료이니만큼 그보다는 더 비쌀 것으로 판단한 나는 나는 60달러에 이내에서 협상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거기에 비하며 400디람(30달러 정도)를 부르니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내가 잘 못 들었나 싶어

 

"400 디람이라고요?" 했더니 그는

"400 디람" 힘을 준 그의 대답으로 잘 못들은게 아님을 확인했다. 그가 처음 부른 값이 책에 나온 이야기와 배치된다. 

"200 디람이면 되겠구만." 하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이사람 디따 순진했다.

"볼루빌리스에서 얼만큼?"

"한 시간."

"물레이 이드리스는?"

"최소 30분."

여기 오기 전 자료를 보고 감으로 잡은 시간으로 주워 섬겼는데 잘 섬겼나보다. 그는 내가 알거 다 알고 나불대는 줄 알았던것같다.

""안돼. 250!" 했다. 눈치가 200 미만으로도 얼마든지 더 협상이 가능한 것 같았다. 내가 먼저 200 이야기를 꺼냈으니 그렇게 굳히기로 작심했다.

"내 친구가 며칠 전에 200에 다녀왔다던데?" 

"당신 친구가 어딨는데?" 혼자 있으면서 친구를 들먹이니 수상했나보다. 어딜 가나 한번만 만나도 친구인거지..

"내 친구? 샤프란볼루에서 만났는데 그녀는 자기 길로 갔지" 했다. 그는 안된다며 손사래쳤다.

"그래요? 그럼 다른 차를 타야겠네." 하며 지나치려고 했다. 사실 200 미만으로도 협상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으니 다른 차와의 협상에 있어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좋다. 200 디람!" 했다. 흐흐흐... 협상은 이렇게 200디람으로 마무리되었다.

가는 길에는 올리브 나무가 즐비한 아름다운 전원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저 것들이 올리브 나무지. 한국에선 저거 이름이 뭐요?"

나는 그 때까지 그것이 올리브 나무인지 몰랐다.

한국에서도 올리브라 불린다고 했더니 웃었다.

20킬로 미터 정도를 가서 먼저 도착한 곳이 물레이 이드리스의 묘였다.

차에서 내려 묘지 입구까지 가봤다. 입장이 허용되는 곳은 물리이 이드리스의 묘(Moulay Idriss) 입구인 바로 이 곳까지였다.

 

외부는 흰 페인트만 잔뜩 칠해 놓은 것이 특별할 것 없어보였다. 모로코의 전통장식이 훌륭한 곳이라고 하지만 안을 볼 수 없으니 확인할 길은 없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어 있다는 말은 보존가치가 뛰어난 인류의 문화유산인만큼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비무슬림은 출입을 금할려면 세계문화유산은 뭐하러 신청하고 뭐하러 이름을 올린건지 어이가 없다. 또 직업 가이드의 접근을 받았다. "어이, 친구! 저 위쪽으로 가면 내려다 볼 수 있는데 내가 안내할까?" 나는 거절한 뒤 속으로 '그러면 되겠군. 하며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고지대로 올라가 보았다.

 

마을은 흰 페인트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이따금 공을 들인 낙서(?)가 보이곤 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그들의 취향도 반영이 되어 있었다.

 

이 마을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모졸레 물레이 이드리스를 내려다 보았다.

 

  

지붕이 파랗다는 것은 이 곳에서 봐야만 확인이 되었다.

 

    

 

 불어는 모르지만 비무슬림은 들어갈 수 없다는 까칠한 문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 더 있어봐야 별볼일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냥 와서 껍데기 일부만 봤다는데 의의를 둘 수 밖에 없었다.

 

약속대로 30분 내에 나를 기다리는 그랑탁시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아쭈그리? 시동이 안걸리넹? 운전기사는 전혀 당황해 하지 않았다. 늘상 있는 일인가 보다. 아무리 벤츠라지만 불완전 연소의 증거인 검은 매연을 내뱉는 70년대 구제 벤츠의 힘겨운 "겔겔" 소리는 한참만에야 "부다다당" 하는 생기(?)의 소리로 바뀌었다.

 

털털거리는 벤츠를 끌고 더 먼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먼 곳부터 가자는 말은 이 아저씨가 못알아 들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10킬로미터 정도를 더 가니 로마 유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폐허가 된 로마유적인 볼루빌리스(Volubilis)의 일부가 눈에 들어왔다. 이 곳은 아프리카 최대의 로마유적지이며, BC 3세기부터 250년간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 볼루빌리스의 건축물은 메크네스에 도시가 건설될 때 자재로 쓰이기 위해 마구 파손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전 기둥, 바실리카, 바닥 모자이크, 개선문 등이 대표적인 유적이라고 한다.

 

역사적 의의와 볼거리에 비해 저렴한 입장료 10디람을 내고 들어가 보았다. 가다 눈에 띤 곤충잡이 식물이 풀숲에 숨어 있어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이 곳의 기둥들은 대부분 코린트식인데 그동안 봐 온 다른 곳의 코린트식 기둥들 보다는 규모도 작고 문양은 덜 섬세했다.

 

  

    

 

  

  

 

이 곳이 개선문인가보다. 개선문은 217년에 지어졌으며 카라칼라 황제(Caracala, 188~217)를 기리기 위해 축조되었다고 한다.

 

   

3세기에 로마군이 후퇴하면서 이 곳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788년 물레이 이드리스 1세 집권 이후 이슬람 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 곳은 제대로 보자면 자료 하나하나를 들춰가며 대조하면서 보는 것이 좋을 곳이다.

 

 

 

이따금 가이드를 대동한 단체 여행 관광객들이 보인다.

 

이 때 나는 하나하나 유심히 보기는 했지만 대조할 자료는 갖고 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이드를 대동하고 조금 더 천천히 볼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다 둘러 보았다고 생각한 내가 가장 주요한 유적 중 하나인 바닥 모자이크를 놓치고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난뒤에는 더욱 그러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기에 내 눈에 띠지 않은건지 지금 생각해 봐도 답답한 실수였다. 어딜 가서 무엇을 보든 학구적인 접근을 하는 뜀도령이 함께 있었다면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ㅡ,.ㅡ;

 

 

 

  

 

 

이 곳을 휘익 둘러보는 것은 1시간이면 적당하다. 만일 자료를 갖고 대조해가며 천천히 둘러볼 요량이면 2시간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만일 누군가 이 곳을 둘러본다면 그렇게 권하고 싶다.

  

이 곳을 1시간만에 나와 메크네스의 숙소 근처로 돌아온 것은 11시 45분경(40분 소요)이었다. 덕분에 썪었으나마 벤츠를 전세내 돌아다녀 봤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생선 튀김 집에 다시 들러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메디나로 다시 들어가 봤다.

 

이제까지 본 메디나의 낭만적이 대문 중에도 특히나 낭만적인 것도 눈에 띠고 이 곳이 정겹기만 하다.

 

 

마을 외곽에 있는 공원도 들러 보았다.

 

정원이 볼만하게 꾸며져 있고

 

공작새와 독수리를 비롯한 각종 동물들도 있는 곳이었다. 어느 책자에도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그냥 잠깐 들러볼 만은 하다.

 

 

이 곳의 메디나는 다녀도 다녀도 미로다. 다른 곳은 다니다 보면 어느 정도는 감이라도 잡히게 마련인데 이 곳은 감잡기도 쉽지 않다.

 

거리 이름도 간간이 새겨져 있지만 그걸론 역시 감잡기 쉽지 않다.

 

메디나를 헤매며 돌아다닌 이유는 케르미스의 문을 찾기 위함이었다. 대충 감으로 다니다 찾아낸 문이 바로 아래의 문이다. 문양은 이 곳에서 본 다른 문들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다. 열심히 돌아다닌 또 하나의 이유는 모슬렘 물레이 이드리스를 보기 위해서였다. 오전에 한 번 열고 나면 12:00에 닫고 15:30에 다시 열기 때문에 다시 여는 시간까지 시간을 때워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시간을 때우는데도 한계가 있어 한 시간 일찍 가 보았다.

 

이 문을 통과해 바로 보이는 곳이

 

바로 이 곳 모슬렘 물레이 이드리스(Mausolee Mulay Idriss)다. 문은 아직 굳게 닫혀 있었다.

 

론니 책자를 다시 펼쳐 보았다. 금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 날이 금요일이었다. 갑자기 허탈해졌다. 이게 뭐야... 밖에서 본 대문만 보고도 황홀한데 안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일까. 오늘 저녁에는 마라케쉬로 떠나야 하는데 아무래도 미련이 남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근처를 돌아보고 한시간 후에 다시 와 보기로 했다.

  

주변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조금 올라가면 게이트가 하나 보이고 성벽이 끝없이 펼쳐졌다. 저 끝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길을 따라 가면 뭐가 있을까 궁금했다.

  

무작정 걸어 보았다.

 

이 담벼락을 넘어가면 뭐가 있을까도 역시 궁금했다.

 

담벼락이 높고

 

성벽 끝에서 오른 쪽으로 돌고 나자 광장이 나왔고

 

국왕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왕궁이 아닌가도 싶었다. 왕궁은 주요 도시에 하나씩 있었던 것 같다.

 

15:15 경에 다시 모졸레 물레이 이드리스로 돌아와 보았다. 기대를 하지 않고 혹시나 해서 가 본 것이었는데 열려있는 문을 보고 나는 너무 좋아서 잠시 흥분했다. 못 볼 줄 알았던 내부를 볼 수 있다는 뜻하지 않은 행복때문이었다.

    

아라베스크풍으로 뚫린 문들을 지나

 

자그마한 분수가 놓인 조그만 광장(?)이 나왔다.

   

입장료도 징수하지 않는 이 곳의 촘촘한 문양이 눈을 희롱했다.

 

 

 

아래의 사진은 가장 전형적인 문의 문양인 것 같다.

   

이 곳은 대채로운 채색 때문에 보는 눈이 더욱 즐거웠던 곳이다.

 

  

   

  

  

  

 

보는 즐거움이 많은 이 곳의 규모에 비해 적지 않은 시간을 이 곳에서 보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 곳들 보고 갔지만 동양인은 내가 유일했다. 유럽이 가까운 탓인지 유럽인들은 많지만 그 외의 먼 이 곳으로 찾아 오는 관광객은 없었던 모양이다.

   

이 곳은 내 사견으론 볼루빌리스를 제외하면 이 곳이 가장 훌륭한 볼거리인듯하다.

 

이 곳을 나와 19:00에 출발하는 마라케쉬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을 때워야 했다. 메디나 내에 안가본 골목은 없는지 더 다녀 봤다. 아래의 사진은 그 때 본 한 집인데 유대인의 집인지 대문에는 별이 그려져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찾은 뒤 전날 체크인을 해주었던 여직원과 인사를 나누고자 했었다.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친절했던데다 이 곳에 오기 전 샤프샤오엥의 호텔에 흘리고 온 수건 때문에 샤워를 하거나 머리를 감는데 꼭 필요한 수건을 거저 내주었기 때문이었다. 줄만한 선물도 없어 혹시 고마운 사람을 만나면 주려고 볼 펜 한 팩과 휴대용 티슈를 주려고 했다. 몇 팀의 손님들이 들어와 체크인을 하느라고 바빴다. 주려고 꺼낸 물건이 왠지 부끄러워졌다. 이집트에서라면 굉장한 물건이 되었겠지만 이 곳은 그래도 생활수준이 좀 있는 곳이라 너무 하찮읋 것 같았다. 그녀가 한가해지길 기다리다 변변한 인사도 없이 그냥 나온 것 이 조금 걸린다.(16:30)

 

전 날 이 곳에 왔던 길을 되짚어 세티엄 터미널로 30분정도 걸어서 갔다. 17:00경 표를 구입(150 디람)하고 나서 남는 시간동안 민트티를 즐기기 위해 찻집을 찾아 다녔다. 아직도 떠나려면 두 시간이 남았다. 주유소 건물에 딸려있는 찻집 옥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깔끔한 복장의 노인이 와서 주문을 받았다. 민트티(10디람)를 주문했다. 노인은 나와 대화를 하고 싶었는지 불어로 뭔가를 자꾸 물었지만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도 영어를 알지 못했다. 조금 후 토요타 자동차를 끌고 차를 마시러 온 사람이 이 노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노인은 곧 내게 "이 사람 영어를 아주 잘한다"며 친구를 통해 이것 저것 물어보곤 했다. 그는 고등학교 교사였다. 내게 물어 온 것은 어디에서 왔는지, 이 곳 모로코에는 왜 왔는지, 다음엔 어디로 갈 것인지, 직업은 무엇인지 등을 관심있게 물었다. 노인이 교사를 통해 했던 이야기는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 기억 나지 않고 "당신 정도 학력에 그 정도 영어실력이라면 이 곳 모로코에서도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ㅡ,.ㅡ; 나는 내 조국을 사랑하기에 아직은 떠날 생각이 없고 내 일과 직장을 사랑하기에 모로코에서 일 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노인과 교사는 왠만하면 이 곳에서 사는 것도 좋을텐데 하는 말을 했다. 이들은 한국이 지지리 못사는 나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ㅠ ㅠ

 

18:30정도 되어 이 곳을 떠나 세티엄 터미널로 갔다. 메크네스에서 마라케쉬로 가 사막투어에 참가하는 것 보단 메크네스에서 남부로 곧바로 내려가 그 곳에서 사막투어에 참가한 뒤 바로 마라케쉬로 넘어 가는 것이 낫다는 충고는 오늘에야 확인했다. 메크네스를 떠난 뒤 마라케쉬로 바로 가는 줄 알았더니 카사블랑카를 거쳐 마라케쉬로 가는 우회 코스를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21:50엔가 어느 도시의 세티엄 터미널에서 내릴 사람 내리고 탈 사람 탄 뒤 21:50에 다시 길을 떠났다.  나는 차 안에서 정신없이 잤다. 조금 뒤 두 남녀의 다투는 소리가 뒤쪽에서 들려 왔다. 나는 얕은 잠결에도 어느 부부가 싸움을 하나보다 했다. 곧 끝날 줄 알았던 싸움은 멈출줄 몰랐다. 졸린 눈을 하고도 뭔가 궁금해 뒤쪽을 돌아다 보았다. 그 들은 부부가 아니라 30대 남자와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남자는 자신의 좌석 등받이를 있는대로 뒤로 제꼈고 여자는 '당신의 의자 등받이 때문에 노트북을 사용할 수 없으니 등받이를 세워달라'는 내용이었다.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남자는 징징징 여자는 쟁쟁쟁 쉬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집요했고 주변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가 흠좀무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남자 승객이 여대생러 자기 자리와 바꾸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면서 중재에 성공했다. 까칠한 여자가 내 옆자리로 왔다. 왠지 조금 긴장이 됐다. 약간의 냄새를 풍기는 발에 신발벗고 있는 내게 시비를 걸지 않을까 약간 두려워졌지만 그녀는 별 상관 없이 노트북을 펼쳐놓고 뭔가에 몰두했다. 11:28에 카사블랑카에 도착했고

 

마라케쉬의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 30분이었다. 출발 전부터 지도를 봐두었지만 터미널로부터 내가 가고자 했던 자마 알 프나 광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였다. 가깝다 하더라도 빨리 호텔을 찾아 쉬고싶은 생각 뿐이라 나가자 마자 삼삼오오 모여 있던 쁘띠탁시 기사들에게 누가 자마 알 프나 광장에 갈건지를 물었다. 한 기사가 50 디람을 달라고 했다. 나는원하는만큼 줄테니 대신 내가 가고자 하는 CTM호텔을 찾아 달라고 했다. 한 명이 흔쾌히 자기차로 가서 시동을 걸었다. 그는 비싼 택시비를 받은 만큼 차에서 내려 친절하게 호텔을 찾아 주고 갔다. 호텔 문은 이미 잠겨 있었다. 호텔 문을 두드려 봤다. 누군가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있다가 꼼지락 거리더니 다시 잠을 잔다. 다시 두드리니 방이 없다며 손사래 친다. 그럴리가 있나. 주인이 아닌 종업원인 모양이다. 피곤해서 다른 호텔을 찾아 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호텔을 찾아 나섰다. 일단 아무데서나 자고 다음날 다른 호텔을 찾아 볼 참이었다.  

 

두 세 군데를 더 찾다가 한 호텔에 방이 있다는 말에 생각도 않고 들어갔다. 사각으로 지어진 호텔 건물 가운데 홀은 위로는 지붕이 없어 비가 오면 방에서 나오자 마자 비를 맞도록 되어 있었다. 물론 새벽이었지만 나 외에는 투숙객도 없는 것 같았다. 샤워꼭지에서도 나오는 물은 쫄쫄거렸다. 겨우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하려 했지만 콘센트도 없었다. 할 수 없이 호텔 프론트로 갖고 나와 충전을 부탁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어지간히도 피곤했던지 나도 이내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