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0 모로코

모로코 여행4(페스)

코렐리 2010. 2. 17. 17:34

2010.1.20(수)

Fes는 오래된 문명 도시중 하나이며, 인구 100만으로 모로코에서는 카사블랑카와 라바트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이기도 하다. 모로코 최초의 왕조를 세운 이드리스 2세가 789년 페스를 수도로 하였다. 외세의 침입과 왕조의 흥망이 거듭되는 격변 속에서도 정통문화를 고수해 온 고도이며, 지금까지도 모로코 지성의 산실로 꼽힌다. 페스 엘 발리(Fes el-Bali: 올드 페스)는 중세의 가장 큰 이슬람도시이기도 하였다. 구시가지인 메디나에는 지상 최대, 최고의 미로 있으며 이 메디나는 1981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 되었다고 한다.

 

전날 이동에 적잖이 피곤했던가보다. 아침 9시까지 이부자리를 뭉개고 개운해지자 아침거리를 해결할 겸 전화도 해볼 겸 돌아다녀 봤다. 시장부터 가 보았다. 아침부터 활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이 지역에선 흔하게 보게 되는 당나귀다. 어딜 가나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안쓰럽다. 이솝은 이 동물을 뺀질 첨단으로 묘사했다. 이유가 무었일까. 가끔씩 고집을 피우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괜한 고집이 아니라 혹사에 대한 절규에 가까운 최소한의 저항이 아닐까 싶다. 내가 본 당나귀들은 하나같이 작은 체구에 비해 가혹하다싶을 정도로 많은 짐을 등에 진채 헐떡이곤 했다. 요르단에서 본 경우는 더 심했다. 뚱뚱한 주인을 등에 태운 모습은 저걸 꼭 타야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작은 체구에 뚱뚱한 주인을 등에 태우고 급경사의 계단을 오르는데 힘에 부쳐 찔찔거리면 회초리를 맞았다. 전생이 있다면 얘들은 뭔 죄를 지었을까. 미안하다. 당나귀야, 나의 인간 친구들이 너를 넘 혹사시키고 뺀질첨단으로 몰아 부쳐서...

 

가게들이 아주 작고 아기자기한게 우리네 가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이 곳에서 바게뜨 한 개(1디람)를 사고 뭘 더살까 돌아 보았다.

 

탱탱한 토마토가 먹음직해 보였다. 1kg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 소박한 아침식사를 했다. 이 곳도 아침일찍 식사를 하기에 적당한 곳은 없었다.

 

10:00쯤 사무실에 전화를 해 업무를 잠깐 체크해 봤다. 숙소로 다시 돌아와 11:00에 자료를 대충 정리해 들고 11시 20분 쯤 숙소를 나섰다. 어차피 이 곳은 볼거리가 많아 이틀을 묵을 참이라 서두를 생각도 없었다.

 

유대인 거주지역을 찾다가 엉둥하게도 공동묘지에서 헤매다가

 

근처 오토바이에 짐칸을 달은 아저씨에게 물었다. 자기가 가니까 타란다. 10분정도 걸려 유태인 구역 입구에 내려 주었다. 나는 처음에 그가 가는 길에 태워다 준다는 얘긴줄 알았다. 설마 대중교통도 아닌 걸 태워주고 돈을 받으랴. 사실 그런 고마운 모로코인도 종종 만나보곤 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전날밤 호텔을 찾아 가느라고 버스에서 내려 걸었던 길 어느 지점에 서 약간 벗어난 지점에 내려 주었는데 내가 일부 내가 아는 길을 빙 돌아 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때서야 돈을 받으려고 나를 일부러 태운 것을 알았다(둔하긴). 15디람을 요구한다. 웃음이 나왔다. 큰 돈도 아니어서 그냥 주고 말았다. 아래 사진 붉은 헬멧을 쓰고 짐칸 달린 오토바이에 올라탄 이가 바로 그다. 살짝 기분 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 절약했고 헤매지 않았으니 그걸로 족하자.ㅡ,.ㅡ; 

 

이 곳에는 볼거리가 밀집되어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띠는 왕궁이다. 멀지감치서 후문(이 곳이 후문일거라는 것은 짐작이다)을 볼 수 있고 광장에도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이동식 난간으로 막았다.

 

이 곳을 사진 찍는데 뭐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뒤쪽으로 돌아 찍었을 때는(그 곳이 아마도 정문이었던듯하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찍으면 안된다고 난리를 치고 혹시 찍었는지 카메라 확인까지 했다. 왜 안되는겨?

 

이 곳이 유대인 공동묘지다.

  

지붕이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 비석을 크게 몇 개 세워 둔 묘가 몇 개 있었다. 이 지역에서 비중있는 인물의 묘였던가 보다.

 

결코 작지 않은 공간에 많은 묘가 들어서 있었다. 여기저기 오렌지 나무가 심어져 있고 열매는 주렁주렁 매달렸지만 누구 하나 따 가는 사람은 없었다. 하긴 이 안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묘지 안에는 유대인 박물관도 있었지만 문을 열지 않았다. 20디람이나 내고 여길 들어 왔을 때는 박물관도 염두에 둔건데 이게 뭐야? 걍 유태인 집단 묘지만 보고 끝이넹? ㅡ,.ㅡ;

 

이 곳을 나오면 작은 벼룩시장이 열려 있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도 없고 한국의 동묘나 풍물시장같은 재미는 없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소박한 생선튀김 집이 있어 자리를 잡고 앉아

  

라레꼬(콩스프)와 민나(생선튀김)를 주문했다 차도 한 잔 주는데 이건 서비스가 아니라 끼워 파느라고 선심쓰는 척 한 듯하다. 합 40 디람. 샐러드와 빵이 딸려 나온다. 맛은 감동할건 없고 그냥저냥 그렇다. 싼 집도 아니었다.

 

시나고그(Synagogue: 유태인의 교회당) 방향으로 가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섰지만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길을 가다 두 명의 유태인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가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한 사람은 이지역 유태인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조상때부터 외국물을 먹은 듯 얼굴이 달라보였지만 유태인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의 국적은 미국이었다. 골목에서 만난 이들 외에는 딱히 물어볼 사람도 없었지만 길을 물어보기 전에는 그다지 눈썰미 있게 그들을 본 것은 아니었다. 현지인 유태인이 "지금 그리로 가는 길이니 따라 오라"며 자신의 이름을 요셉이라고 소개했다. 왠지 수상해서 길만 대충 알려 달라고 했더니 "걱정말라. 나는 가이드가 아니고 이 사람은 내 친구다. 곧 시나고그로 갈거고 여기서 멀지 않으니 나를 따라 오면 된다"고 했다. 수상하나마 처음엔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같이 움직이다 보니, 이 두사람의 관계는 여행자와 가이드의 관계인 듯했다. 데리고 다니면서 하는 브리핑이 수상했다. "나는 그냥 내길을 가겠다."고 했더니 바로 요 앞이 시나고그라며 다왔다고 하니 속아 보기로 했다. 그가 했던 브리핑으로는 이 건물은 과거 유럽에서 넘어온 부유한 유태인들이 살았고

 

이 건물 역시 지금은 상당히 낡고 흉물스럽지만 한 때는 부유한 유태인들이 살았다고 한다.

 

집이 헐리고 폐허가 된 이 곳도 유태인이 살던 집이며 벽을 따라 길게 이어진 이 타일 문양은 전형적인 유태인 가정의 문양이라고 한다.

 

이 곳은 시장이 열렸던 곳이다.

 

골목에는 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영어가 통하는 사람이 드물어 구불구불한 골목 안 한가운데에 있는 시나고그를 찾기란 쉽지 않았을 듯 싶다. 게다가 나는 막상 찾아간 시나고그 입구는 여느 가정집 출입문과 다를바 없고 히브리어로 표기된 내용을 알 수도 없었다.

 

이 곳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나 혼자 왔었다면 문이 잠긴 모습을 보고 그냥 갔을 것이 뻔하다. 요셉이 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리고 한 아주머니가 요셉과 두 방문자를 맞았다. 

 

입장료 20디람을 내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이 곳 관리하는 아주머니는 요셉의 어머니란다. 아래의 사진은 유태교 경전인 토라. 잠겨 있던 벽장을 열어 보여 준 것이다.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들었지만 기억이 나질 않지만 소중히 보관해야 할 만큼 오래된 두루마리 경전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Fes 유태인 거주구역의 시나고그 내부. 사진 속의 인물은 요셉.

 

바닥에는 일부를 열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홀(hole)이 있었다. 결혼식이 이루어지기 전 신부는 이 아래에 내려가 랍비가 부어주는 물에 사진에서처럼 씻는 정화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아래로 내려가 손을 내미는 사람은 신부가 아닌 코렐리의 손이고 내 카메라를 쥐고 까칠한 손을 찍은 사람은 요셉.

 

신도들 앞에서 랍비가 경전을 읽는 곳이다.

 

시나고그 내부. 토라 보관 벽장이 열려 있고 그 안에 두루마리 토라가 보인다.

 

 

요셉은 내가 쓰고 있는 야구모자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모자 테두리를 뒷꼭지 벨트방식으로 조절하는 스타일, 자수로 뭐라고 잔뜩 쓰여져 있고 독수리까지 한 쪽에 그려져 있었다. 빈티지 스타일이라 여기저기 뜯어져 있는 스타일도 외국에선 보지 못했다. 이 모자를 내가 좋아하고 여행 때마다 쓰고 다니긴 했지만 요셉만큼은 아니어서 주겠다고 했다. 보통 기뻐하는게 아니었다. 내가 모자를 쓰는 날은 머리를 감지 않은 날이다. 이 날도 머리를 감지 않아 모자를 벗으면 산발이었다. 나는 "이 모자를 줄테니 네가 쓴 모자를 내 놔라" 했더니 자신의 모자를 벗어 머리를 내게 디밀었다. 피부병인지 부스럼인지 머리카락도 그리 많지 않고 피부는 결코 깔끔하지 않았다. 말로 하느니 자신의 모자를 내가 받아봐야 쓰지도 못할 것이라는 가장 확실한 웅변이었다. 이 곳엔 야구모자를 쓰는 현지인들은 거의 보지 못했는데 그가 모자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제까지 안내를 받은 미국인은 그에게 돈을 내고 자기 갈길을 가고자 했다. 요셉은 내게도 돈을 원했다. 나는 그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당신은 내게 당신 자신이 가이드가 아니라고 말했다. 같이 있던 이 사람은 당신의 친구고 가는길이니 알려 주겠다고 했다. 게다가 당신의 안내에 처음부터 참가한 것도 아니었으니 동일한 요금을 내게 요구하는 것도 무리다. 나는 단 하나밖에 없는 이 모자를 친구로서 선물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내게 돈을 요구하면 도리가 아니질 않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내 말을 수긍하며 모자에 감사를 표했다. 그래도 왠지 금전적인 보상이 심리적 압박감으로 남았는지 내게 물었다.

"이 모자 얼마야?"

"미화로 15달러 쯤 돼."

"유로화로는 얼만데?"

생각해 보니 이 곳에선 달러화보단 유로화가 일상적인 편이었다.

"계산해 봐"

"달러화를 유로화로? 모르겠는걸?" 

"암튼 좋은거야 그냥 써"

"그래? 고마워"

그는 이 모자가 내게서 받고싶은 만큼의 가격이 매겨져 있기를 바랬다.  ㅡ,.ㅡ;

 

이 곳을 나와 나의 도시내 방랑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 곳의 접시 문양은 화려하고 예쁘기는 하지만 도자기 자체는 두껍고 기술도 고급스럽지는 않았다. 

 

빙 돌아 여기가 뭔지도 모르고 화려한 곳이라 찍어봤다. 경비원이 찍지 말란다. 그래서 안찍었건만 카메라를 좀 확인해야겠단다. 보여줬다. 그랬더니 가도 좋단다. 여기가 도대체 뭐하는 곳이기에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하는지 물었다. 왕궁이란다. 왕궁 반대편에 보이는 성문만 찍어 보았다. 젠장.

 

이 곳이 숙소 근처에 잇는 부 즐루드 문이다. 성문이 무척 화려하고 아름답다. 호텔에서 잠시 쉰 뒤

 

이 번에는 메디나 골목을 바퀴벌레처럼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구시가지인만큼 전통적인 문화의 향기가 강했다.

 

모스크의 미나렛만도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지.

 

골목 안에 잇는 모스크의 바깥쪽 소돗가만 해도 이렇게 문양이 섬세하고 넋을 빼앗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망치를 두드려 만든 접시와 쟁반, 그리고 주전자도 눈길을 줄만하다.

 

이런 이상하리만치 금빛과 은빛만 화려한 의자를 만드는 공방들이 길에 이어져 있어 이게 무슨 용도인지 물었다. 짐작대로 결혼식에 쓰이는 물건들이란다.

 

규칙과 반복 그리고 변화에 대칭과 통일을 주고 한치의 오차가 없는 이러한 문양들은 이들이 진작부터 수학적 감각과 지식이 뛰어났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의 하나다. 하기는 수학이 발달했던 아랍세계에서 보자면 신학만이 유일한 학문이었던 중세의 유럽은 이들에게 있어 야만인에 다름 아니었질 않은가.

 

아메바처럼 메디나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다 발견한 Nejarine 박물관(14:30). 이 박물관 입구에서 나는 그 섬세함에 감탄했다.

 

건물 안에 들어가서 다시 한 번 놀랐다. 이 곳의 전시물은 촬영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건물 사진은 상관업었다. 사실 찍어도 모를만큼 관리인도 많지 않았지만 이 곳 박물관은 고도 Fes의 박물관이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너무 많았다. 1층엔 농기구등이 대부분이고 2층에는 생활 공예품, 3층에는 악기와 무기가 전시되어 있는데 전시물들은 그리 오래된 물건도 아닌 듯했다.  

 

전시물에 대한 설명도 전무했다. 그저 이것이 무엇인지 그 이름만 달랑 써 놓았는데 그나마 영어는 없고 불어로만 표기가 되어 있었다.

 

재보다는 잿밥이라고 전시물을 모두 보고 나왔지만 나의 관심사는 이 박물관 건물 자체였지 전시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방문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게다가 이 근처에는 볼거리들이 밀집되어 있다.

 

전시물들은 이렇지만

 

건물의 섬세한 문양을 보고 넋을 잃지 않는다면 장님이 아닐까.

 

 

그지같은 론니의 지도를 펴보니 지도상으로라면 텐너리스는 바로 옆에 있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으려 하는데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 잇었다. "텐너리스(Tenneries) 가시려고 그러죠?" 삐끼같이 보였다. "가이드 필요없는데요." 했더니 자신은 가이드가 아니고 이 곳 텐너리스에서 일하는 직원이라고 했다. 그를 따라가 보았다. 가죽제품 상점이었다. 그 곳에 기다리고 있던 직원이 건물 꼭데기층으로 올라가라며 민트 한줄기를 내주었다. 꼭데기층에서 텐너리스를 내려다 보자면 냄새고 고약하니 이걸 코에 대고 있으라나.

 

올라가 보니 역시 냄새가 보통 고약한 것이 아니었다. 이 곳 텐너리스는 중세의 이슬람 방식 그대로를 고집하는 1000년된 가죽 염색공장이다. Fes의 가장 큰 볼거리이기도 하다.

 

화학약품을 사용해 염색하는 오늘날의 일반적 방식과 달리 여기에 사용되는 염색 재료는 천연 재료로 상상을 초원한다. 비둘기의 배설물과 짐승의 오줌 등이 배합된다고 한다. 바로 냄새의 범인이다. 고약한 정도는 재래식 화장실의 곰삭은 냄새보다도 훨씬 더 지독하다.

 

벌집 모양으로 조성된 염색공장에는 통마다 무두질한 가죽들을 염료와 함께 담아 염색중이었다. 모양새가 염색 재료들만큼이나 지저분하다. 하지만 친환경적이며 인체에 해가 적고 색상 또한 뛰어나 이 곳의 가죽은 아직도 인정을 받는다고 한다. 황색을 내는데는 샤프란볼루가 사용되고 녹색을 내는대는 뭐였더라... 민트였던가... 듣기만해도 기분 좋은 식물들의 이름이 대부분이었다.

 

벽면 여기저기에는 가죽들이 건조되고 있었다.

 

사진에서 보는 볼거리가 전부이고 냄새도 고약했지만 나는 이 곳에서 한동안 머물면서 작업하는 사람들과 그 주변을 유심히 들여다 봤다.

 

 

이 곳 옥상에서 내려와 진열된 가죽코트와 재킷, 가방 신발들을 둘러보았다. 가죽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손색없는 물건들이었지만 가격은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입혀 놓은 색깔도 곱고 바느질도 견고하고 디자인도  좋아 보였다.

 

바로 근처에 Attarine 메드라사가 있어 찾아가 보았다. 

 

전에 들러 본 메드라사와 구조는 거의 비슷했다. 문양이 여백없이 촘촘하고 섬세한 것도 같았다. 이 곳에 대한 미사여구는 생략한다. 이미 전술한 다른 메드라사와 비슷하니 다시 주워 섬기면 잔소리다. 하지만 이 곳에서 한참을 머물며 눈을 호강시킨 것은 확실하다.

 

 

 

 

 

 

 

 

 

역시 바로 근처에 있는 카라윈 모스크로 발길을 옮겼다. 서기 859년에 세워졌으니 회교라는 신흥 종교가 탄생한지 300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의 모스크인만큼 비교적 초창기의 유서깊은 사원이었다. 사원 규모는 2만명이 수용 가능하니 카사블랑카에 있는 핫산 모스크가 세워지기 전에는 북아프리카 최대의 회교사원이기도 했다. 물론 비무슬림은 입장을 불허하는 곳이었다. 

 

안을 들여다 보니 내가 일단 들어가면 너무 좋아 환장할 건축물이었다. 나는 머리에 회교도들이 쓰고 다니는 두건을 머리에 쓰고 있었고 미친척하고 무슬림인척 해보기로 했다.

 

이 사원의 사제로 보이는 이가 입구에 앉아 있었다. 미친척하고 그냥 들어가리 위해 신발을 벗었다. 그가 제지했다. 역시 대충 넘어가지 않고 무슬림임을 증명해야 했다. 기도서를 갖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물론 그는 아라빅으로 말했고 좀 전부터 가이드를 해보려고 나를 따라 다니던 이가 잇어 중간에 영어로 통역했다. 그런게 있을 리가 있나. 직업 가이드가 나한테서 뭔가 챙기려는지 사제로 보이는 이와 계속 나를 두고 뭔가 이야기를 했다. 만일 그가 성공하면 가이드로 고용하려고 생각하고 관심 없는척 안을 향해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했지만사제는 완강했다.

  

결국 들어가 보는 것은 포기하고 바깥에서안 쪽으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더욱 아쉬웠던 것은 이 사원은 메디나의 골목 안에 있어 밖에서도 전체적인 모습을 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점이었.

 

근처에 공방이 있어 잠깐 구경하고

 

안달루스 모스크로 가보았다. 물론 들어 가 볼 기대는 안했다. 골목에 둘러싸여 있어 이 사원 역시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여기서 또 사설 가이드가 따라 붙었다. 나는 그를 외면하고 골목 벽을 다라 돌아 보았다. 가이드가 따라 다니며 자기를 따라 오면 높은 곳에서 사원을 내려다 볼 수 있다고 했다.

 

역시 그를 외면하면서도 그러면 되겠군 하는 생각이 들어 5층 아파트 건물로 올라갔다. 그 곳에서 찍은 사진이 바로 아래의 사진이다. 겨우 지붕만 보인다.

 

많은 곳을 돌아 다녔다. 즐겁고 신기한 구경거리가 많았지만 다리는 무척 혹사를 당했다.

 

 

돌아가서 쉬기위해 숙소로 향하다 말고 찻집ㅇ 들러 민트티를 한 잔 주문하고 앉았다. 이 곳에서 한시간 동안 앉아 차를 즐기는 동안 TV에서는 한국드라마 식객이 방영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드라마 아니 TV를 잘 모지 않는 내가 여기까지 와서 한국드라마를 보니 재미있는 현상이었다.

 

다시 길을 떴을 때는 이미 메디나의 골목에 어둠이 내려앉은 뒤였다.

 

배가 고팠다. 이게 뭔가도 싶고 먹어보고도 싶었다. 이게 이름이 뭔지 주인에게 물어 보았다.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내이름은 YOON이고  당신은 모하메드나 핫산즘 되겠지? 그럼 이건 뭐요?" 하며 다시 물어 보았다. 역시 눈썰미 없는 주인 아저씨 내가 궁금한게 뭔지 몰랐다. 어쨌든 이 것은 다진 고기를 야채와 혼합해 숙성시킨 것 같았다.

 

이걸 속으로 넣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파는 곳으로 가봤다. 한 개 10디람이었다. 이걸 먹으니 배가 터질 지경이다. 콜라도 한개 사서 시장통을 돌아다니며 발걸음은 계속 숙소를 향해 옮겼다. 가다 어떤 가게 상인이 날보고 그 샌드위치 어디서 샀냔다. 조 아래 가게에서 샀다고 했더니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그 곳에서 사먹으면 배탈이 날 수도 있으니 그 곳에서는 사먹지 않는 것이 좋다나. 맛있게 먹고 있는데 그런소릴... ㅡ,.ㅡ; 숙소로 돌아와(09:00) 샤워를 마친 뒤 tV를 봤다.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면서 할 일이라곤 그 것 말곤 없었다. 그러곤 일찍 잤다. 담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