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9일(금)
일본으로의 여행을 떠나기 전날인 9일 아침, 나는 미리 싸둔 배낭을 둘러 매고 출근했다. 다음 날인 토요일 아침에 인천공항에서 나리타를 향해 08:20분에 떠나는 비행기를 타자면 여유있게 6시 30분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할테고 그러자면 5시에는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교통편이나 있는지 몰라 공항이 멀지 않은 아버님 댁에서 자고 좀 여유있게 갈 참이었다. 게다가 함께 갈 뜀도령이 상계동에서 공항으로 오자면 나보다 더 심하다. 뜀도령과 함께 아버님 댁에서 자고 아침에 같이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뜀도령이 일이 생겼다며 담날 직접 공항으로 오기로 했다. 떠날 짐을 챙긴채 출근한 복장은 직장인으로선 완죤 날라리 복장이었다. 어지간한 강심장인 나도 누군가 윗사람이 볼까 의식해 일찍 출근하고 사무실에 틀어 박혀 퇴근할 때까지 사무실에서만 일을 했다. 퇴근도 약간은 느즈막이 했다(못말려. 왜 사냐. ㅡ,.ㅡ;). 퇴근길에 광화문으로 나가보니 세종문화회관에서 야외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메인스트림을 좋아하는 나지만 퓨전으로 연주하는 재즈가 현장에서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계단에 앉아 한동안 그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몇 곡을 부분부분 연습하는데 섹스폰, 피아노, 더블베이스, 드럼의 4인조로 구성된 이들은 젊은 연주인들 치고는 실력들이 상당했다. 조금 지나니 가죽재킷에 머플러를 드리우고 매혹적인 실루엣을 드러내는 검은 팬츠와 하이힐을 신은 여성 보컬리스트가 올라와 그들과 합류했다. 매력적인 외모와 달리 그녀가 입을 벌리자 재즈에는 어울리지 않는 느끼한 목소리가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깨다시피 일어난 나는 여행전의 축복이란 착각을 고쳐먹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ㅡ,.ㅡ;
퇴근후 집으로 가서 옷갈아 입은 뒤 배낭을 매고 나와도 될 터였지만 아버지 댁에서 해야할 일이 있었다. 어머니가 일본 친구들을 위해 김치를 담궈 놓으셨고 여동생이 친구와 함께 짱아찌를 담아다 놓았다. 지난 주에는 내가 마트에서 김치통과 짱아찌통을 미리 사다 놓았으니 이 날 용기에 담고 포장한 뒤 트렁크에 담고 완충재를 넣어 정리해야 했다. 마사유끼와 마사요시에게 줄 김치를 4포기짜리 통에 담아 두 통을 만들고 좀 작은 밀폐통에 고추 짱아찌도 담아 2팩을 준비해 트렁크 가방에 담았다. 6캔 한팩 포장의 막걸리도 8개 샀지만 남은 공간에는 3팩이 채 들어가질 않았다. 일본에서 붐이 일고 있는 음식들로 일부러 채운 것이다.
2009. 10 10(토)
아버지 댁에서 아침일찍 나와 김포공항에서 6시쯤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철도에 탑승한지 얼마되지 않아 전화기가 울렸다. 뜀도령이 늦을 것 같다며 언제 도착예정이냐고 묻는다. 30분정도 걸릴거라고 했더니 그러면 지각 아니냐며 까칠하게 추궁했다. 아직 도착도 안한 주제에 앞으로 어떻게 될 줄 알고 뎅뎅거리느냐고 했더니 이미 약속한 장소인 공항 출국장 "L"코너에서 기다리는 중이란다. ㅡ,.ㅡ; 조금 늦게 도착할 것 같으니 노느니 이잡는다고 JAL 부스를 찾아보라고 했더니 G코너로 오라고 문자가 왔다. 약속시간 조금 늦게 G코너에 도착하니 고약한 뜀도령이 한쪽 구석에 앉아 내가 하는 양을 구경만 하다가 내가 못찾으니 그제서야 전화로 약을 올렸다. 언제 착해지려나... ㅡ,.ㅡ; 버튼을 누르면 착해지는 리모컨이라도 있음 좋겠다. 다른 곳은 대개 한산하건만 JAL 부스만이 약간 부산했다. 불경기지만 환율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오고감이 그렇고 거리상으로 가깝기에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여행을 즐기는 탓일게다. Ticketing을 완료하고 Star Line을 타고 정해진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항공기가 이미 대기중이었고 시간은 아직 남아 있었다. 뜀도령과 나는 사지도 않을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며 면세점을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죽였다. 빈자리 없이 좌석을 가득 채운 항공기는 인천땅을 이륙해 10시 20분경 나리타 공항에 내려앉아 승객들을 쏟아냈다. 오래간만에 하는 단거리 비행기 여행이었다.
아침식사로 제공된 스낵과 음료수로 받은 기린맥주.
입국심사에 잔소리가 많았다. "여행 목적이 뭐냐, 어디에 머물거냐, 머문다는 집 친구 이름이 뭐냐, 풀네임은 뭐냐, 어디에서 만났느냐...." 나는 마사요시의 풀네임이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갤차주랴고 되물었더니 그럴 필요까진 없단다. 6년전 비자를 받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비자 스티커 하나만 보고 뭐하나 물어보는 것 없이 입국허가 스템프를 찍어 주었다. 비자면제 협정이 이루어니고 나니 입국 심사가 조금 까다로와진 모양이다. 난 잔소리에 가까운 질문공세에 살짝 짜증이 났다. "폭탄테러 하러 왔고, 지하폭탄제조공장에서 머물 예정이며, 친구 이름은 빈 라덴인데, 풀네임은 오사마 빈 라덴이고, 알카에다 비밀결사대에서 만났다"고 대답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뜀도령도 적지 않은 질문을 받은 모양이었다.
짜증이라는 약간의 혈세를 물고 공항 밖으로 나오자 이들의 지하철 노선과 환승 방법에 대한 안내가 없는건지 못찾은건지 알 수가 없어 알아보기 쉽지 않은 노선도 앞에서 헤매다가 옆에서 자동발매기로부터 표를 사던 여인네에게 물었더니 다짜고짜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라고 한다. 그거 비싼데... 하던 나는 마사요시와 마사유끼와의 약속장소에 늦지 않으려면 특급열차를 타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케부쿠로역으로 가는 특급열차의 티켓을 끊었다.
자그마치 3,110엔. 눈물이 빠지려고 한다. 사실 빨라봐야 30분인데 다시 알아보기도 귀찮은데다가 약속시간에 늦고싶지 않았다. 전화로 마사요시에게 도착을 알린 뒤 열차에 올라탔다.
좌석이 정해져 있고 열차 안은 쾌적했다.
선입감과 달리 창밖으로 내다 보이는 도쿄의 교외지역에는 우리네와 다른 일본적인 분위기가 강한 마을과 집들이 즐비했다. 크레용 신짱이 당장이라도 흰둥이와 함께 튀어나와 나미리 선생님을 속썪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면 적절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다.
일본어를 잘하는 직장 동료에게 물어 알아낸 기본적인 인사와 마사요시의 부모님댁에서 활용할 말들을 열차 안에서 익혀보았다. 뜀도령이 옆에서 한글로 적어놓은 일본어를 보고 웃는다.
공항에서부터 특급열차 안에는 영어 못지않게 중국어와 한국어 안내가 많았다. 6년전 오사카 방문때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가끔 여기저기에 보이는 한국어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우리의 영어 표기도 그런 것들이 태반이지 않을까.
열차내 도착역 표시 모니터에 일본어와 영어, 한국어와 중국어 안내가 교대로 나온다. 11시 18분에 출발한 특급열차는 12시 48분에 이케부쿠로 역에 도착했다.
이케부쿠로역에서 내리자마자 몇번 출구로 나가야할지 몰라 마사요시에게 다시 전화해 봤다. 일본은 출구에 번호를 쓰지 않고 각각의 명칭을 달아놓고 있는모양이다. 마사요시가 일러준대로 매트로폴리탄 출구(개찰구 안에서 보면 매트로폴리탄 "출구"라고 써있고 개찰구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면서 보면 "입구"라고 쓰여 있다)를 통해 나왔다.
나가자마자 백화점 건물 후면 벽이 앞을 가로막고 그 벽 중앙에는 백화점 내부로 통하는 연결통로가 뚫려 있었다. 사방 어디에도 역사를 벗어나는 길이 보이질 않았다. 역사를 벗어나는 길은 백화점 건물 좌우 끝에 계단으로 나 있었지만 지하철 출구와 백화점 연결통로 사이에 서있었던 우리는 역사를 벗어날 출구도 안보이고 오가는 사람도 없어서 한동안 어디로 내려가야 할지 헤맸다. 우리는 백화점 양쪽 벽끝에서 사람들이 이따금 들고 나는 것을 보고 왼쪽으로 가봤다. 과연 계단이 있어 김치가 든 무거운 트렁크 백을 낑낑대며 들고 내려가 봤다. 한산하고 사람도 별로 없건만 마사요시와 마사유끼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반대편에도 내려가는 길이 있을 거라는 가정하에 반대편 내리막 계단 방향으로 가봤다. 그 곳은 백화점 전면으로 통하고 있어 엄청 혼잡했다. 마사유끼가 우리를 찾아냈다. 그는 나를 찾아내고는 반가우면서도 어이없어 했다. 어이가 없는 이유는 내가 항상 야구 모자를 쓰고 다니기에 모자쓴 사람만 찾았단다. 일본인들은 모자를 잘 쓰지 않아 모자쓴 사람만 찾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나도 이번엔 여행자 티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모자를 챙겨가긴 했지만 쓰지는 않고 있었다. 마사유끼가 나를 찾아 다니는 동안 마사요시는 원래 기다리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너무나도 반가웠던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인사를 나눴다. 그들은 뜀도령과도 금방 친해졌다. 마사유끼는 자신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며 지하철을 타자고 했다.
우리는 이케부쿠로 역에서 2개 정거장 떨어진 에코다 역에서 내렸다. 역시 일본의 대중교통비는 살인적이었다. 지하철 이용료가 170엔이었다. 역에서 내려 마사유끼는 출구도 없는 반대편 끝방향으로 우리를 데려 가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뒤돌아 나를 보며 내가 이 곳을 알고 있으니 잘 생각해 보라는 거였다. 나는 도쿄에 처음이고 그건 내가 말했으니 너도 알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래도 알고 있을거라며 한 건물을 가리키며 낯이 익지 않느냐고 또 물었다. 마사유끼가 이 곳에 주차를 해놓고 이케부쿠로 역에서 우릴 데려온 데는 유명한 라멘집이 있다는 사실 외에도 그만한 이유가 더 있었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마사유끼에게 나도 일본 영화를 좋아한다며 주워섬긴 영화들 중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모든 영화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든 만화영화들 외에도 우나기, 쉘 위 댄스 등을 재미있게 보았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그걸 기억하고 촬영지로 데려온 것이다. 수오 마사유끼 감독의 영화 '쉘 위 댄스'에서 주연배우 야쿠쇼 코지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마침 창밖을 내다보던 미모의 댄스강사를 발견하고 넋을 잃고 바라보던 바로 그 문제의 건물이 있는 곳이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촬영장소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바로 아래 사진의 건물이었다. 건물을 보니 댄스 여강사가 주인공에게 다가와 하던 일본식 발음 강한 대사가 생각난다. "샤리 딴쓰?(Shall we dance?)"
바로 이 자리는 야쇼쿠가 퇴근길에 연습을 하던 바로 그 자리란다. 나는 자리에 앉아 그 장면을 연출해 봤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아직도 기억하고 그걸 보여주는 마사유끼의 섬세함에 감탄했고 내게 베푼 세심함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 다시 볼 그 영화가 새로울 것 같다.
뜀도령은 그 영화를 안봤다며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우리를 웃겼다.
이 번엔 그 유명하다는 라멘집으로 가기로 했다. 나야 원래 라멘을 좋아하니 거절할 이유도 사양할 이유도 없었다. 골목길을 앞서가는 마사유끼(앞쪽)와 마사요시(뒤쪽)
가다 보니 깔끔하고 아담한 라멘집 앞에 줄을 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타이쇼우겐'이라는 집으로 라멘 매니아들 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때는 점심시간을 넘긴 오후 두시경. 아직도 늦은 시간까지 점심을 먹지 못한 사람들이 안에서 라멘을 먹고 있었고 비워질 자리를 꿰차보겠다고 열지어 선 사람들의 뒷꽁무니에 우리도 합류했다.
15분 정도 기다린 것 같다. 가게가 깔끔하고 예쁘다고 했더니 마사유끼는 이런 분위기의 가게는 지천에 깔려 있다며 웃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두 가지의 라멘 4개를 주문해 놓고는 맘에 드는 것으로 골라 보란다. 하나는 국물을 부은 라멘이고 나머지 하나는 따로국밥처럼 나온 소바였다. 두 가지를 주문한 이유는 우리의 선택권을 넓히기 위한 배려였다. 둘 다 맛은 기가 막혔지만 국물 두 가지를 모두 맛 본 나는 국물 향이 좀 더 강한 소바를 선택했다. 뜀도령도 같은 선택이었다.
양도 대,중,소로 나뉘는데 중으로 시켰지만 양은 배가 무척 부를 정도로 많았다. 라멘을 먹어본 횟수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맛은 이제까지 먹어본 중 최고였다. 나오면서 외운 일본어를 써벅어봤다. "혼또니 오시시데스(정말 맛있군요)" 했더니 마사유끼와 마사요시는 웃고 서빙하다 말고 칭찬을 들은 처자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외국인이 하는 칭찬에 몸둘바를 몰라하며 기뻐했다. 그녀는 바깥에까지 나와 인사를 했다. 약간 흐믓!
식사가 끝나자 주차장으로 간 우리는 마사유끼의 차를 타고 이동을 시작했다. 다음 코스는 온천으로 유명한 이주 아타가와로 가서 온천욕을 한 뒤 마사요시의 부모님이 사시는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는 것이 이 날의 계획이었다. 마사유끼의 차는 스포츠카로 한국에는 소개되지 않은 일본 자동차 업체의 제품이었다.
회사명을 잊었지만 아주 멋진 차였다. 암튼 마쓰다나 미쓰비시같은 우리가 아는 회사는 아니었다. 뜀도령이 메모를 했거나 회사명 표기 문자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주말이라 길이 밀릴거라는 우려와 달리 고속도로는 거의 길이 밀리지 않았다.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서 일을 본 뒤 공짜로 제공되는 차 한잔을 마셨다. 뭘 사먹자니 점심으로 먹은 라멘도 아직 안꺼졌고 음료수를 마시자니 난 음료수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값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래서 휴게소 안에 손님들을 위해 더운물, 찬물, 녹차가 제공되는 곳에서 물과 녹차 한 잔씩만 먹고 나왔다. 공짜라 그런가 더 맛있다. 사실 세계 어딜 가나 식당같은 곳엘 가면 물을 공짜로 주는 법은 없다. 그런걸 보면 물인심은 한국과 더불어 일본이 최고가 이닐까 싶다. 휴게소 건물이 단순하면서도 특이한 형태로 지어졌다.
잠깐의 휴식을 취한 우리는 계속 길을 떠났다. 서쪽에서는 해가 뉘엿뉘엿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난 우리는 국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도쿄 시내는 서울과 너무나 닮아 서울에 일본인들을 풀어 놓으면 그게 바로 도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도쿄 시내가 우리 도시의 모습과 많이 닮은 것은 사실이지만 무언가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의 차이가 현저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상점들의 간판에서 오는 느낌도 크게 작용하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간판 규격과 위치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한국과 달리 개성넘치는 간판들이 하나의 작품으로 보일때가 많다. 그 이유는 우리와 달리 일본인들은 간판에 쓰여지는 문자를 규격화 정형화하지 않고 마치 회화를 그리듯이 글씨를 그려 그 자체로 장식화 한다는 점이 달랐다. 하나하나가 모두 기억에 희미하긴 하지만 건물에 달린 테라스나 난간 등 여러가지의 시설들이 약간씩은 다른 분위기를 띠고 있었던 것도 같다. 암튼 도쿄 시내를 벗어나기 전까지 서울과는 많이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쿄 근교로 나오자 일본의 재래식 집들이 즐비했다. 내가 보고자 하는 것들이 바로 이런 풍경들이었으니 가면서 내다보는 바로 이 풍경이 내내 나의 감흥을 자극했다.
교외의 거리에도 쓰레기 한조각 보이지 않았다.
가다가 나온 해안 도로를 따라 달리는 감흥도 무척이나 좋았다. 이런 해안도로로 가는 시간은 행복하게도 장시간이었다.
어둠이 깔렸을 무렵
온천지역에 도착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집으로 갔다.
들어가자마자 마사유끼가 1인당 1600엔이나 되는 네 사람의 온천 입욕료를 덜컥 내버렸다. 우리를 위해 안내하는 그가 고마워서라도 우리가 내야 할 판에 그가 내니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에게 돈을 주었더니 한사코 안받는다.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특산품 코너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니 천진 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웃는다.
맛보라고 내놓은 것들이 가짓수가 많아 마사유끼는 여기서 식사하고 가자며 농담을 해 웃을 거리를 제공했다. 시식중인 뜀도령
나도 시식. 일본의 모든 음식들이 그러하듯이 달고 짭짤하고 맛깔스럽다.
남탕과 여탕의 표시가 갈아끼울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 있다. 이유인 즉슨 남탕과 여탕의 위치를 매일 맞바꾸기 한다고 한다. 음양의 조화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마사유끼의 설명.
목욕탕에서 카메라를 들이댔다간 몰매맞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어글리 코리안 소리는 듣게 되지 않을까. 우리와 다른 온천 시설과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지만 그건 위험한 짓이다. 그래서 눈치껏 깔끔한 내부의 일부만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다 좋은데 옷을 벗고 수건을 하나 들고 욕탕으로 들어가려다가 누군가와 마주친 나는 내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푸짐한 몸매와 서글서글한 인상의 종업원 아줌마가 아무렇지도 않은듯 걸레자루를 들고 태연하게 지나갔다. 다행히 수건을 쌓아놓은 받침대 뒤에서 였기에 그나마 당황함은 덜했고 서둘러 수건을 허리에 둘렀지만 이 상황에서 당황해 하는 사람은 뜀도령과 나뿐이었다. 뜀도령은 마침 작은 수건을 갖고 있다가 얼른 앞을 가린 모양이었다. 작은 수건으로 앞을 가려봐야 똥꼬는 못가리는 관계로 아줌마가 지나가는 대로 똥꼬를 감추려는 뜀도령의 모습도 얼핏 보였다. 문화의 차이였다. 누군가 일본에서 경험했던 대중 목욕탕에 대하여 이야기 했던 적이 있다. 남탕과 여탕 탈의실을 칸막이 하나로 가리되 몸만 안보이고 왔다갔다하는 이성의 머리가 건너다 보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칸막이 한쪽 끝 바로 위에 작은 의자가 하나 고정식으로 놓여 있고 이 곳에 도난과 안전사고 감시자가 올라가 앉는데 감시자는 여자가 될 수 도 있고 남자가 될 수도 있었다고 한다. 감시자가 내려다 보아도 일본인들에게는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도 했다. 마사요시도 마사유끼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알몸으로 털레털레 욕장으로 들어갔다. ㅡ,.ㅡ; 하기는 우리나라의 화장실에 들어가는 외국인들이 청소하러 들어온 아줌마들을 보고 오줌줄기가 멈춰지더라든거 어쩧다든가 하는...
내부에는 소나무로 만들어진 사각 냉탕, 둥근 1인용 도자기탕, 1인용 둥근 나무탕은 사무라이 영화에서 봤을법 하고 노천탕에서는 탁트인 바다와 시내가 내려다 보였다. 맘만 먹으면 건너편 호텔에서 훔쳐보면 일부 보일 것 같았다. 이러한 것들을 카메라에 담지 못함이 아쉽다. 안내 책자에 소개된 사진으로 아쉽움을 달래봤다. 아래 사진 왼쪽과 오른쪽에서 보듯 노천 욕장에서 바다가 내려다 모이는 것은 합성사진이 아니라 실제 사진이다.
온천을 즐긴 뒤 우유를 한 잔 마신 우리는
마사유끼의 차를 타고 계속 이동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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