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8(토)
저녁 8시 20분발 비행을 앞둔 네팔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이 날도 역시 아침부터 서둘렀다. 오늘은 불교사원인 스와얌부나트, 국립박물관 그리고 파슈파티나트 사원을 들를 참이라 그리 썩 여유있는 일정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스와얌부나트로 도보이동을 시작했다. 이 날도 아침식사는 크레이지버거에서 했다. 식사가 끝날무렵 카페테리아 직원에게 스와얌부나트 가는 길을 물었다. 도보 30분이란다. 타멜촉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40분정도 소요되는 거리였던 것같다.
골목길을 이리꼬불 저리꼬불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가던 중 특이한 아저씨를 만났다. 골목길 저쪽에서부터 작은 보폭에 약간 껑정거리며 엉성하게 걷는 이가 마주 걸어오는 이 사람한테 한 번 찝적, 저 사람한테 한 번 찝쩍거리며 즐거워했다. 만면에 미소를 하나 가득 머금고 마냥 행복해하는걸 보니 살짝 맛이 간 아저씨가 틀림없었다. 사진을 찍으니 마주 지나치며 좋아라 내게 뭐라고 하는데 알아 들을 수가 없다. 같은 네팔인들이면 대충 지껄이는 듯한 그의 말을 알아들었을까. 이제까지 길에서 만난 맛이 간 사람치고 불행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이 아저씨처럼 말이다. 나름 귀엽다.
여기가 입구라며 이리로 들어가면 계단이 시작된다는 뜀도령의 잘못된 정보로 들어가 본 사원. 내 보기에 이건 불교사원이 아니고 힌두교 사원인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걍 힌두교 사원이었다. 그래도 들어간 김에 한 번 둘러보고 나왔다.
사원을 나와 계속 스와얌부나트 사원을 향해 가던 중 또 다른 힌두사원이 나온다. 시바신과 빠르바티 여신, 그리고 하위의 신들, 그 아래에는인간들을 돋을 새김으로 형상화해 놓고 볼만하게 채색을 했다.
가던 중에 들른 또 하나의 사원. 이름은 모르겠다.
드디어 도착한 스와얌부나트의 입구.
입구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3개의 부처상.
가까이서 보니 콘크리트로 만들고 채색을 했다. 거칠고 섬세한 맛이 없지만 자비로운 표정의 표현이 훌륭하고 황금색의 피부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여기서부터 올라가면 꼭데기가 바로 사원이다.
가루다와 함께한 찬바람. 네팔여행을 통틀어 가루다를 가장 많이 본 것 같다.
스와얌부나트는 워낙에 원숭이가 많아 원숭이 사원으로도 불리운다고 한다.
스투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새끼의 털을 골라주며 이를 잡아먹는 원숭이 모자(?) 모녀(?) 품안에는 젖먹이 새끼를 안고 있다.
꼭데기에는 보우다나트에서 본 것과 비슷한 형태의 스투파가 있고 주변에는 곰파와 몇 몇의 사원이 함께 세워져 있었다.
스와얌부나트와 관련된 전설은 히말라야에 있던 호수에 핀 연꽃 위로 어느 날 대일여래 大日如來 Vairocana가 나타났다는데서 시작된다.
이 무렵 인도에서 수행을 마치고 티벳으로 돌아오던 문수보살 文殊菩薩 Manjushri이 스와얌부나트를 들른다.
당시 호수에는 악한 뱀이살고 있었는데 문수보살이 신성한 검으로 주변 산을 잘라내는 바람에 호수와 뱀이 없어졌다는것.
그 후 카트만두 분지가 비옥해져서 사람들이 살기 좋아졌다는 전설 속의 이야기가 있다
기록에 의하면 리차비 Licchavi 왕조 때부터 스와얌부나트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나, 실질적으로 스와얌부나트에 사원이 건설된 것은
435년의 만데바 왕 Mandeva 때의 일이다. 그 후 인도 승려 산티까라 Shantikara와 암슈바르만 왕 King Amshuvarman이 사원을 증축했다.
스와얌나트는 티벳으로 불교를 전파한 인도 승려 파드마삼바바 Padmasambhava가 이곳을 방문했으며,
13세기경에는 티벳 불교에 있어 중요한 사원으로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왔다.
스와얌부나트는 1349년 이슬람을 신봉하는 무굴 제국에 약탈당했다. 스투파에 금은 보석을 숨겼을 거라 생각한 무굴 제국은 침략자들은
탑을 해체해버렸을 정도. 하지만 머지 않아 스투파는 복원되었으며 1614년 말라 왕조의 프라탑 말라 왕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되었다.
(뜀도령이 조사한 자료에서 퍼옴)
도르제 앞에서 한컷. 도르제는 예불을 드릴 때 인간의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금강저’라고 한다.
도르제는 티벳 불교에서 쓰는 용어이며 산스크리스트어로는 바즈라 vajra라고 불린다. (자료를 뒤져 공부 열심히 한 뜀도령의 설명)
스투파 바로 옆에 위치한 곰파.
곰파 안에 모셔진 것은 보살상인 것 같은데 불교신자가 아니니 거기까진 잘 모르겠고.
곰파의 계단은 올라갈 수 있지만 옥상으로 통하는 문이 잠겨 있었다. 그래도 창을 통해 스투파를 같은 높이에서 볼 기회가 제공이 되었다.
스투파 바로 옆 하리티 사원 앞에서 한 컷.
마니차를 돌리는 아저씨.
잘 차려입고 안에서 기도를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뭐하는 아저씨들인지 모르겠다.
시주를 하기 위해 열을 늘어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신도들.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인가 보다.
이 안에는 승려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 남자(옷차림으로 보아...)가 안에 들어가 사람들을 축복하고는 그들에게서 무언가 받는다.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알 수가 있나.
이 곳에서는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찬바람이 어디갔나. 한참을 찾다 말고 뜀도령과 한컷.
그리 넓지 않은 이곳에도 탈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걸려있는 하나하나의 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간신히 찾아낸 찬바람과 함께 스투파를 배경으로 한 컷. 그 좁은데서 도대체 어디 숨을데가 있었던지 찾기 쉽지 않았다. 웬수.
내려가던 길에 본 젖먹이 원숭이. 젖꼭지를 물고 딴데를 쳐다 보느라고 길게 늘어진 어미 가슴을 보니 심란하다. 이놈아 엄마 젖꼭지 아프겠다. 살살 좀 물어라.
입구로 다시 내려와 국립박물관 가는 길을 젊은 스님에게 물었다. 그는 방향을 일러주고는 가깝다며 걸어가길 권했다. 스님은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 주고 나서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더니 자신도 2년동안인가 한국 사찰에 머무른 적이 있다고 한다. 젊은 스님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박물관으로 방향을 잡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스와얌부나트 하단 테두리에도 부처상과 채색된 탑이 세워져 있어 가는 길을 지루하지 않게 볼거리를 만들어 준다.
이 곳이 국립박물관이다. 이 곳은 국립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볼 게 없고 전시내용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동물박제, 세계 각국의 인형들, 여러 부족의 생활상을 만들어 놓은 조잡한 디오라마, 오래되었다고 보기도 어려운 화폐들... 이런 것들이 주류다.
그나마 볼만했던 전시물 사진을 뜀도령의 사진에서 몇 개 골라 올려 본다.
건물 세 개의 박물관 중 두 개를 보고 나머지 하나 남은 건물로 이동하던 중 한 컷. 이 안에서 얼마나 심심했으면 어른들이 이런 짓까지 했을까. ㅡ,.ㅡ;
힌두교의 몇 몇 형상들은 넘 야하다. 아줌니허구 아찌 짐 머하능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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