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09 네팔

네팔여행5(촘롱→담푸스)

코렐리 2009. 7. 28. 17:02

2009. 7. 10(금)

아침잠을 맛있게 자고 있던 중 설산이 아름답다는 옆방 재남씨의 말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보았다. 구름에 살짝 가린 설산이 심장을 멎게 할 듯이 나의 눈을 통해 가슴을 자극했다. 게다가 실제 거리와 달리 아주 지근거리로 보였다. 물론 착시현상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전세계 몇 안되는 전문 등정가들이 죽을 똥을 싸며 오르겠나. 어쨋든 가까이서 보는 듯한 착각이 보는이로 하여금 더욱 신비감에 빠지게 한다. 

 

같은 곳의 사진을 여러번 찍은 이유는 구름의 변화가 쉬지 않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네팔의 대자연이 선심쓰고 잠깐 보여주는 이 쇼에 두 말 없이 보는게 상책이다.

 

 

 

 

 

 

 

 

 

 

동영상으로도 담아보았는데 젠장, 꼬졌다.

 

 밖에는 일단의 양코 단체트래커들이 우리가 묵는 롯지 앞을 지나갔다. 성수기에는 흔한 장면이었겠지만 이제까지 본 가장 큰 무리였다. 

 

이 때가 구름이 가장 많이 걷힌 순간이었다.

 

 

우리는 일부러 아침식사를 정원에 앉아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마차푸차르봉을 보며 했다. 신선 노름이라는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어제와 같이 구룽과 오믈렛, 그리고 밀크티로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식사 내내 신경쓰이게 만드는 놈이 하나 있었다. 식사를 하는 우리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빵부스러기 떨어지길 기다리는 이놈이 부담스러워 쫓아내기를 시도해 보았다. 어지간해서는 움찔도 하지 않는다. 주인 아줌마가 위협하며 쫓아내려 하자 으르렁거린다. 원 세상에 남의 집에서 이렇게 당당한(?) 아니 뻔뻔한 놈도 처음 봤다.

 

아침식사가 끝날 무렵 설산은 다시 안개 속에 숨어버렸다. 가다가 닭 두 놈이 하도 친한척 하길래 암수 한 쌍인 줄 알았더니 두놈 다 수놈이었다. 게이 닭이 아닐까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 왠지 그림이 좋아 보인다. 끌어당겨 찍었더니 선명칠 않다.

  

 

구름덮인 산을 배경으로 한 컷.

 

상처가 생기긴 했지만 자생하는 나팔꽃이 예뻐서 한 컷.

 

이 곳에는 이런 꽃이 지천에 깔렸다.

 

처마 밑에 매달아 둔 것이 벌통이다. 한국인들이 네팔의 석청을 쓸어가다시피 한다는데 이런걸 속아서 사가는건 아닌가 모르겠다.

 

 

찌는 더위와 갈증을 달래기 위해 콜라 한캔 마시고 다시 길을 떠났다.

 

 

 

경사지고 초식동물의 배설물이 가득한 트랙을 다니다가 이런 구름다리가 나오면 기분이 좋다. 자주 나오는 이런 다리는 잠시나마 떵을 피할 수도 있고 다리는 건너는 재미도 역시 쏠쏠하다.

 

이 곳에서 다시 쉬었다.

 

한켠에서는 할버니가 불에 그을린 염소고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이걸 말려 두었다가 요리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잊고 있던 환타. 여기서 새삼 맛에 들렸다.

 

가다 폭우에 쓸려 길이 묻혀버렸다. 없어진 길위로 가려니 이 것도 만만치 않다. 미끄러지면 거의 낭떠러지에 가까운 급경사라 다치기 십상이다. 건너편에서 오던 트래커는 수풀을 헤쳐가며 길을 돌고 있었다. 다행이도 그 무너진 더미 위로 몇 개의 발자국이 있어 누군가 건너는데 성공했다는 확신이 섰고 시도를 했고 성공했다.

 

 

 

안나푸르나 코스에는 이런 평이한 길이 거의 없다. 거의가 급경사의 돌계단이다. 이런 길이 나오자 거의 감격할 지경이었지만 이러한 길도 잠시뿐이었다.

 

멱감는 아이들의 천진함이 가던 길을 멈추고 바라보며 미소짓게 만든다. 물 건너편엔 이들을 카메라에 담고 확인해 보는 김재남씨의 모습.

 

이 곳에서 잠깐 쉬고

 

계속 길을 재촉했다. 이 곳은 물이 맑지를 않고 흑탕이다.

 

처음으로 본 바나나꽃. 신기하다.

 

가던 길에 만난 시원한 폭포.  

 

 이 곳은 계단식 논이 줄줄이 아래로 물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잠깐 앉아 쉬다 보니 다리에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걷어 보았더니 괴씸한 거머리 한마리가 흡혈중이었다. 맛이 좋기로는 요리사들 사이에도  유명한 한국의 천일염을 대접했더니 그제서 떨어져 나간다. 떨어져 나간 흡혈귀를 아예 소금으로 덮어 무덤을 만들어버렸다. 트래킹 도중 세 번이나 거머리에 흡혈을 당했다.

 

거머리를 퇴치하자마자 뭔가 주저앉아 쉬던 바위 위로 굴러 떨어졌다. 벌건 대낮에 길에서 벌이는 놀래기들의 정사씬을 코앞에서 목도했으니 얘들도 민망하지 않았을까. 

 

지금 막 떠난 촘롱과 간드롱으로 가는 이정표는 있는데 내가 가고자 하는 담푸스 방향은 표시가 되어 있질 않았다. 길이 세갈래다. 그렇다면 아무 표시도 없는 길이 담푸스 방향인거지 뭐. 이상하게도 통밥은 항상 제대로 맞는다. 가다 물어봐서 아니라면 되돌면 되지 뭐가 걱정이랴.

 

배가 고파졌다. 롯지에 들러 음식을 먹고 가기로 했다.

 

 

미지근한 콜라하구 오믈렛 그리고 삶은 감자를 주문했다. 위대한 나지만 게다가 무진장 배고픈 나지만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아는 사람들은 아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나의 먹성은 나와 처음으로 같이 식사하는 사람들을 놀래키곤 한다. 결론: 남김없이 다먹었음. 역시 난 위대해. ㅡ,.ㅡ;

 

길가다 만난 고산족 행인

 

팔자 좋은 염소

 

가는 곳마다 민가가 있으면 어김없이 함께 있는 계단식 논과 밭.

 

 

담푸스로 가던 도중 두 명의 한국인 트래커들을 만났다. 외국에서 한국인 만나도 시큰둥한 내가 여기선 적잖이 반갑니다. 같은 트래커들을 만나기도 어려운데 한국인 트래커들을 만났으니 더 반갑다. 두 사람은 친구간이고 회사 휴가를 내고 왔단다.

 

 

이 마을 끝자락을 벗어나던 길에 왠 개 한마리가 우리를 졸졸 따라 오더니 이제는 앞장서서 간다. 나는 가던 길이 같은 줄 알았다. 그런데 먼저 멀찍이 가서 우리가 오는지 안오는지 돌아보는 것이었다. 웃기는 놈이었다. "야, 나 너 키워줄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으니 네 집으로 돌아가는게 어때?" 이 놈은 들은척도 안했다. 가다가 우리가 오는지 확인하고 가다가 뒤돌아 확인하기를 반복했다. 어쩌나 보려고  앉아서 쉬어 봤다. 이놈 보게? 거기서 서성거리며 이따금 우리를 쳐다볼 뿐 그자리를 떠날 생각을 안했다. 개가 우리를 더나는건 나한테서 잔소리를 한참동안이나 듣고 나서였다. 지나고 나니 내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놈이었다.

 

가다 보니 트래커들의 천적 거머리가 풀 한포기 맨 윗잎에 한마리 보여 카메라를 들이대 찍어 보려 했더니 그 잎 이면에 있던 놈도 피냄새를 맡고 몸을 늘려 나의 피냄새가 나는 쪽으로 몸을 늘이고 있었다. 징한 눔덜이라고 생각하며 그 자리를 일어서려는 순간 나는 놀라 자빠지는줄 알았다. 바로 그 풀한포기에서 피냄새를 맡고 나를 향해 몸을 늘이는 거머리는 자그마치 7마리나 되었다. ㅡ,.ㅡ; 

 

갑자기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다. 우리가 가던 외진 길 바로 위쪽에 롯지가 하나 있음을 확인하고 서둘러 그리로 올라갔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이 외진 이 산중에 이 롯지 하나 달랑 있었는데 이거 혹시 밤이면 여우로 변해서 칼갈아 투숙객을을.... 내가 넘 전설의 고향을 마니 봤나벼... ㅡ,.ㅡ; 여기서 음료수 한 병씩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그쳤다. 길을 또 떠났다.

 

오후 4시 가까이 되어 도착한 포타나. 나는 굳이 오늘 중에 담푸스까지 가야 했다. 담푸스에서 트래킹 코스가 끝나는 카레까지는 1시간 거리였다. 카레에서 버스를 타면 1시간이면 포카라에 도착할 수 있고 오전 10시 정도에 국내선 항공편으로 도착하는 찬바람과 뜀도령을 공항으로 마중나가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먼길 왔는데 마중 나온 사람이 있어야 기분이라도 좋을게 아닌가. 사실 내가 그들을 눈빠지게 기다린다는 말이 더 솔직한 표현인 것 같다.

 

여기서 음료수 도 한 병 마시고 담푸스를 향해 떠 떠났다. 4시가 넘도록 걷기를 계속해 본 적도 사실 없고 담푸스에 도착하면 최소 5시다. 오늘은 좀 무리를 하는 편이군. 

 

 

가면서 수시로 모습을 바꿔가며 보여주는 이 곳의 산들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구름과 그에 따라 변하는 분위기뿐 아니라 가면서 수시로 새로운 식물을 보여주는 재미도 여간이 아니었다. 아래 사진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이끼다.

 

산은 완전히 구름 속에 갇혔다. 어려서 보던 영화에서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메르세데스의 아들과 결투하는 안타까운 장면 배경이 연상되는 바로 그런 분위기의 그런 곳이었다. 분위기가 아주 묘하다. 바닥은 트래커들과 고산족들의 발걸음으로 다져져 맦느한 표면을 빗물이 표면을 코팅해 고가의 등산화와 스틱으로 무장을 하고도 미끄러워 몇 번을 넘어질 뻔했고 두 번이나 넘어졌다.

 

구름에 갇힌 담푸스에 드디어 도착했다.

 

숙박비가 뻔한 몇 개 되지 않는 롯지 중 그나마 마음에 차는 곳을 골라

 

 

방을 얻어 짐을 풀었다. 이 집에 잘못 들어왔다는 것은 방이 후졌다는 점 외에도(사실 고산지대 롯지 해봐야 시설은 거기서 거기다)

 

핫 샤워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태양열로 물을 데우는데 이 날은 비가 온데다 이미 구름속에 마을이 갇혔으니 물이 데워질 리 없었다. 내가 조금만 관찰력이 있었어도 간판에 쓰여 있는 Solar Hot Shower 라는 짧은 문구를 봤을테고 그랬다면 이 곳으로 숙박할 생각은 접었을게 틀림없었다. 이미 방에 짐도 풀었고 샤워를 하기 위해 타잔이 되어 버린 이 시점에선 그냥 찬물 틀어놓고 샤워를 하는 수밖에. 그런데 찬물로 샤워를 하자면 물이라도 시원스럽게 나와줘서 샤워하는 동안 으샤샤 와샤샤 하는 경악의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물도 쫄쫄거리며 나왔다. 땀이 식고 약간 서늘해지기 시작하는 이마당에 쫄쫄이 샤워기에서 촐랑거리며 하는 장시간(?)의 샤워는 하는 거의 물고문 수준이었다.

 

한기가 느껴져 방풍점퍼를 입고 뽀송뽀송해진 나자신을 만끽하며 저녁식사를 했다. 체크인과 동시에 식사 주문을 넣은 관계로 그리 오래지 않아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감자스프(80~90 루피정도?)와 계란볶음밥(160~70루피정도?)을 시켜서 먹었다. 형편없는 고산지대 롯지의 음식치고는 맛도 양호한 편이다. 감자 스프가 맛이 아주 좋은 편이었다. 맛을 보니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개눈엔 똥만 보인다고 홀아비 생활 오래 하다 보니 맛있는 음식을 보면 이거 어떻게 만들까 짐작해 보는 몹쓸 병이 도진다. 

 

이 날 저녁에도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이젠 잠결에 폭우소리를 들으며 자는 것도 낭만처럼 느껴졌다. 신기한 것은 엉성한 롯지에서 잠을 자면서도 폭우에 비 한방 새는 걸 본 적이 없는게 신기하더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