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8(수)
몬순기의 네팔에서는 땅이 낮동안에 빗물을 증발로 토스하면 새벽이 되어 하늘이 스파이크를 사정없이 때려댔다. 새벽이 되자 어김없이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나의 뇌를 지배하던 깊은 잠은 선잠으로 바뀌었다. 잠결에도 여기까지 와서 푼힐 오르기를 포기해야 하나 아님 이 곳 고레빠니를 떠나기전 아침에라도 들러볼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러던 차에 옆방에서 재남씨의 목소리가 얼기설기 지어진 게스트하우스의 엉성한 판자때기 벽을 타고 둔탁하게 울려왔다. "지금 새벽 4시인데 어떻게 할래요?" 나는 그제서야 어설프게 잠에서 깨어나 설익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조금 더 기다리다 비가 조금이나마 잦아들면 가기로 했다. 예정시간인 4시보다 늦은 5시경이 되자 빗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부시시 일어난 나는 말리다만 눅눅한 옷을 입고 그 위에 일회용 우의를 두른 뒤 스틱과 수통 그리고 카메라만을 챙겨 롯지를 나섰다. 롯지 바로 뒤편 길로 들어서니 푼힐로 이르는 길은 역시나 계단으로 계속 이어졌다. 머리에 장착하는 라이트를 구입해 가라는 충고를 무시하고 그냥 소형 플래시를 들고 오르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는 내 손이 두 개 밖에 없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두 손은 이미 양손에 하나씩 스틱을 쥐고 있었으니 플래시를 입에 물고 오를 수도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준비성 뛰어난 재남씨의 뒤를 바싹 따르는걸로 시계 제한문제를 해결했다.
한 시간 정도를 비맞아가며 오르다 보니 눈앞에 푼힐 전망대가 눈에 들어왔고 비는 이제 거의 그쳐가고 있었다. 아래의 사진은 푼힐 정상에 설치한 전망대.
비는 그쳤지만 구름은 잔뜩끼어 설산을 보여줄듯 말듯 보는이의 눈을 희롱했다.
완전한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많은 설산 피크가 눈에 들어와 구름 뒤로 숨었다가 얼굴 내밀기를 번갈아 가며 반복했다.
구름과 함께 보는 설산은 맑은 하늘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감동적일 것 같다.
가이드책자에는 네팔 트래킹을 즐기기에는 여름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이 좋다고 말한다. 아는 체 하기 좋아하는 트래킹 경험자들도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나는 그들에게 여름에 트래킹을 다녀 보았는지 함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들이 여름을 피하고자 하는 첫 째 이유 중 하나는 설산을 보기 위한 것이다. 여름에는 구름이 워낙 많이 끼기 때문에 설산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름에 계속 가려 있다가 가끔씩 얼굴을 드러내 신비감을 더하는 설산의 모습이 맑은 하늘에 늘상 볼 수 있는 설산보다는 훨씬 감동적일거라고 생각한다. 혼자서 지금 보고 있는 풍경에서 구름을 마음 속에서 지워보았다. 왠지 밋밋하다. 나는 그런 모습은 사진으로만 봐왔지만 지금 내가 보는 이경치만큼 아름답진 못했다.
또 한가지 이유는 비를 맞아가며 트래킹을 하자면 불편하다는 것이다. 내가 이 번 여름 네팔 안나푸르나 지역을 다녀본 느낌으로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공식이 반드시 적용되지 않을 때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새벽에는 비가 오고 아침부터는 서서히 빗물을 증발시켜 밤늦게까지 구름을 만든다. 이 구름이 밀도가 높아지는 밤과 새벽에는 다시 성난듯이 쏟아붓는다. 계속해서 이러한 사이클이 만들어져 피드백을 이룬다. 희안하게도 떠날 때가 되면 이미 비가 그쳤거나 잦아든 상태로 이 비를 맞으면서 떠나면 오히려 몸의 열을 식혀주는 효과가 있어 오히려 반갑다. 오전 7~8시부터 시작해 오후 2~3시정도에 그날의 일정을 마치는 일반적인 트래커들의 경우 그 시간에 비를 만나도 억수같은 비는 거의 없다. 그저 스쳐 지나가거나 흩뿌리는 정도다. 이따금은 그 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를 잡기 무섭게 억수같은 비를 쏟을 때가 되면 오히려 아무 생각없이 테이블에 앉아 쏟는 비와 먼산 구름을 보면서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릴렉스하고 레이지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내가 느끼는 것은 여름이야 말로 트래킹의 적기라고 주장하고 싶어진다. 내게 가을, 겨울 또는 봄에 트래킹을 다녀보고 하는 말이냐고 묻는다면 할말 없다. 어쨋든 내가 지금 이 여름에 이 곳에 푼힐 전망대에 와서 구름 사이로 살짝살짝 가려진 설산 피크를 보며 느끼는 신비감과 황홀경은 더 이상 극대화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젠장 이 대목에서 뒴도령 또 극찬이 어쩌고 딴지 걸겠군. 뜀! 미리 자진납세 한다 ㅠㅠ)
지금 여기에 파노라마처럼 올려 놓은 사진은 푼힐 전망대에서 전체를 다 담을 수 없는 주변 풍광을 나눠 찍어 올린 것이다. 한참 감상에 빠져 바라보고 있던 차에 재남씨는 갑자기 배탈이 심해져 당장 내려가야겠다면서 숙소를 바라고 먼저 하산했다. 나는 한기가 느껴져 내려가는 사람의 점퍼를 빼앗아 입고는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혹시 구름이 더 걷히면 좀 더 선명한 설산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혼자 사진찍고 두 악당(찬바람과 뜀도령)이 오면 단체 사진을 도움 없이 찍기 위해 집을 떠날 때 삼각대를 챙겨왔다. 그런데 재남씨와 동행이 되면서 삼각대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때 아쉽네 그래. 나는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 놓고 그 밑에 돌멩이를 게어 각도를 맞춰 사진을 함 찍어 볼려고 시도했다. 잘 안되었다. 다시 시도하다 보니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30대 후반 또는 40대 초반 정도의 서양인 부부가 올라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물어보니 뉴질랜드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남자는 훈남 스타일이고 여자는 푸짐한 아줌마였다. 나는 그냥 내려가기 섭섭해 셀카질 하려던 것을 멈추고 아줌마에게 부탁해 아래의 사진을 찍었다. 일회용 우의나 벗고 찍을걸... 이게 뭥미?
설산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그 때뿐이었다. 그 뒤로는 자욱한 구름에 가려 코앞의 산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구름으로 완전히 주변이 둘러싸인 뒤에야 내려왔는데 그 소요시간은 아주 잠깐이었다.
이 곳에는 이름 모를 풀꽃이 지천에 깔렸다.
내려 가다 보니 노새 한마리가 똥방뎅이를 무기로 내가 하산할 길을 막은채 풀을 뜯고 있었다. 까칠하게 소릴 질렀다. "임슼! 안비켜 이거?" 얘도 비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슬렁 어슬렁 앞서 가며 게으르게 풀을 뜯고 있었지만 비켜주기 위해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 그슼~~! 비킬래면 확실하게 뛰어 내리던가 속도내서 앞장이나 확실하게 서 임마!" 했더니
위족으로 공간이 보이자 그리로 올라가 부담스러운 존재는 쳐다볼 생각도 없고 길을 터줬으니 그저 방해하지 말고 없어져 주길 바라는지 마냥 풀만 뜯고 있었다.
숙소로 내려와 재남씨 방을 두드리고 열어보니 좀 쉬어야겠다고 간신히 대답을 하고는 곧 잠에 빠져 들었다. 트래킹을 함께 떠나면서 서로에게 구속 받지 않고 일정이나 루트 등은 각자 알아서 하자고 내가 이미 제안한 바 있다. 나는 아침 식사로 오믈렛, 옥수수빵, 밀크티 한잔으로(210루피였나??) 아침 식사를 마치고 먼저 타다빠니를 바라고 떠났다. 체크아웃하며 나는 주인에게 몸이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니 떠나기 전까지 좀 보살펴 달라고 재남씨를 부탁했다. 별로 친절하지도 않은 쥔넘이 대답은 굴둑같이 잘한다.
날은 엄청 화창하게 개어 있었다.
밀도 높은 구름이 비를 마구 뿌리고 나니 새파란 하늘에 옅은 구름만이 조각조각 떠다녔다. 하늘을 바라보는 느낌이 더 없이 청명하다.
이거 뭐라고 부르더라... 파리지옥이라는 이름으로 본 기억이 있는 식물이다. 내 보기에 신기한 이 괴물같은 식물은 이 곳에서도 희귀한지 여기서 딱 한번 봤다. 밑둥만 남은 이 나무에 기생하고 있어 더욱 괴팍하게 보인다.
이건 개미 잡아먹는 놈인 것 같은데 아님 말고...
트래커들을 위한 근처 휴식공간은 이미 잡초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굼하여 자연친화적 변신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거 뭥미?
티벳불교도들의 신앙적 의미가 깃든 이 설치물은 나중에 뜀도령한테서 들은 바가 있는데 격안남. 어이! 이글 읽고 있으면 꼬릿글 좀 남가 주게.
가다가 한 마을에서 잠시 쉬었다. 화단에 심어진 민트를 몇 잎 따 입에 넣고 씹으니 느낌이 아주 좋다.
잠깐 쉬고 가는 길에 나온 폭포. 한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이 강의 이름이 사랑가 강이라는 팻말이 있어 알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산스크리트어에는 SARANG이라는 어원이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이 곳 사랑가 강이 그렇고, 힌두교도들이 애용하는 "사랑"이라는 악기가 그렇고, 나중에 가게 될 포카라 북부 "사랑콧"이라는 이름의 전망대가 그렇다. 한국에서 가진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오버랩되어서인지 무척 어감이 좋게 느껴진다.
11시가 조금 넘어 롯지가 하나 나왔다. 나는 여기서 쉬었다 가기로 작심했다.
커플을 여기서 또 만났다. 홍차를 시켜놓고 앉아 여유를 즐겨 봤다. 아래 사진에 찍힌 사람은 커플이 고용한 포터. 그는 영어도 곧 잘 했고 유머 감각도 있는 친구였다. 그는 이 집 밥이 다른 집보다 맛있다며 이 곳에서 식사하기를 원했다고한다. 나도 차를 마신 후 덩달아 여기서 식사를 했다.
이 곳 안나푸르나 지역을 다니다 보면 재미있는 현상 하나가 눈에 띤다. 가는 곳마다 눈에 띠는 같은 이름의 롯지들이 그것이다. 가장 자주 본 것들은 FISH TAIL, HUNGRY EYE 등인데 아래의 사진에 나온 롯지가 자주 보았던 HUNGRY EYE 다. 이거 번역하면 뭐라고 해냐 하나? 배고픈 눈? 굶주린 눈? 어쨋든 절대 세련된 이름은 아니다. 반면 FISH TAIL은 나름 의미가 있는 이름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14좌 중 하나가 마차푸차르인데 이 것은 물고기 꼬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실제 마차푸차르봉은 물고기 꼬리를 거꾸로 박은듯한 낭만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 곳에서 야채볶음밥을 시켜 놓고 덜마른 빨래도 잠시 널고 물가로 가서 발을 담가봤다.
물은 엄청 깨끗하고 차가와 발을 담그고 1분 버티기 쉽지가 않다.
기다리던 끝에 나온 볶음밥. 색깔이 누런게 먹음직해 보인다. 산나물 외에 뭘 섞어 볶았길래 누럴까.
음식을 내놓고 쉬시는 쥔아줌마. 고산족이지만 보아하니 아리안계다. 여기까지 들어오게 된 데는 조상의 사연이 있겠지 하며 무심코 바라보다 보니 파란 수건에 노란 티셔츠 그리고 붉은 조끼가 카메라를 즐겁게 해줄 것 같아 함 찍어 보았다. 역시 재미있는 사진이 나와 준다.
식사를 한 뒤 다시 길을 떠났다. 산은 계속해서 지루하지 않게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데
수시로 끼어드는 낮은 구름으로 인해 하루에도 천의 얼굴을 가진 이 곳 자연을 만끽하게 된다.
이 곳에는 특히나 고사리가 많다. 나중에 가 본 한국식당에서 내놓는 고사리무침은 확실히 맛이 달랐다. 말렸다가 다시 물에 불린게 아니라서 그랬을까? 좌우당간 이 곳에서 고사리가 빠지면 풍경의 재미가 반감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 나무는 지나가는 행인을 위협하는 귀신의 형상처럼 보여 찍어 보았다. 지나가며 귀신나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떠났다. 어비~~~!
오르막길에 마을이 하나 나오는데 담벼락을 쌓는 작업 현장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돌담 쌓기를 눈으로 직접 볼 수있었다. 이들에게 물어보니 이 곳이 나의 목적지 타다빠니였다.
그저 롯지만 몇 가구 있는 코딱지만한 마을이어서 눈으로 대충 둘러보고 히말라야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했다. 나와 코스가 같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커플은 나와 코스를 달리하여 이 곳을 지나 간드롱 방향으로 떠났다. 나는 이 곳에 방을 얻어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개운하게 옷을 갈아 입었다.
초등학생인 이집의 아들 카메라만 들이대면 윈스턴 처칠을 존경하는지 하나같이 손가락으로 V 를 해보이는 똑같은 폼이다. 다른게 있다면 V를 만든 손이 지금은 등을 보이고 있다는 점 뿐이다.
2층에 얻은 내방
건너편 롯지에는 물자를 실어나르던 노새행렬이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트랙 위에 널린 지겨운 똥의 주인공들이다.
식당도 아담한게 편안한 느낌이다.
이들이 하는 놀이를 지켜 보았다. 내가 어려서 놀던 뱀주사위 놀이다. 신기했다. 여기서도 똑같은 놀이를 하다니. 나는 여기에 껴서 이들과 함께 게임을 해봤다. 오른쪽 두 아이는 이 집 주인장의 아들과 딸들이고 왼쪽은 이들의 이모인데 스물다섯이라던가 했던 것 같다. 가운데 앉은 소년은 아무리 어린애라지만 조금 개념이 없는 애였다. 주사위 말판에 말 옮기기를 도맡아 하는데 한 방향으로만 보내야 하는 말을 어떤 때는 좌로 보내고 어떤 때는 우로 보내서 수시로 게임을 망쳐놓고 있었다. 한동안은 잘못을 내가 교정해 주곤 했는데 나중엔 나까지 헷갈려 얘하고 게임을 하니 도대체 재미가 나질 않았다. 너하구 안놀아 이 코딱지야.
방으로 가서 쉬다 보니 그새 김재남씨가 도착했다. 몸이 좋지 않아 하루 더 쉬고 오려했다가 쥔넘이 맘에 안들어 그냥 떠나 왔는데 오자마자 내가 널어 놓은 빨래를 보고 내가 여기 있는줄 알고 들어 왔단다.
식당으로 가서 카메라에 담긴 영상들을 정리하고 있자니 이집 아이들이 보여달란다. 사진을 보여주다 보니 이제 막 들어와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친 세 명의 양코 언니들이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와 앉았다. 내가 이집 애들과 하던 일에 계속 집중하다 보니 이들과의 인사가 늦어졌다.
셋이 들어왔는데 아무도 아는척을 안해줘서 뻘줌했던 그들은 말을 걸어주니 반가와 하는 눈치였다. 셋 다 나름 미모도 갖췄다.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생물학, 음악학 글구 또하나가 뭐였더라... 건축학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님 말구.
나도 음식을 주문했다. 구룽빵 두개와 버섯스프.
버섯 스프는 물론이고 기름에 튀긴 구룽빵 맛은 환상적이었다. 버섯은 이 근방에서 채취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이 버섯을 어찌나 아끼던지 주문이 들어오면 그 때마다 고미다락에 비밀스럽게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한 만큼만 꺼내고 누가 볼새라 다시 닫았다. 이 때 먹었던 맛을 사진으로 다시 보니 새삼 그립다.
'배낭여행 > 09 네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팔여행5(촘롱→담푸스) (0) | 2009.07.28 |
---|---|
네팔여행4(타다빠니→촘롱) (0) | 2009.07.28 |
네팔여행2(포카라→나야풀→울레리→고레빠니) (0) | 2009.07.23 |
네팔 트래킹1(인천→카투만두→포카라) (0) | 2009.07.21 |
네팔여행준비 (0) | 2009.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