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09 네팔

네팔 트래킹1(인천→카투만두→포카라)

코렐리 2009. 7. 21. 01:09

7월 3일(금)-4(토)

출발하기 전에는 좀 피곤함 없이 느긋한 상태였어야 하지 않나싶다. 이 번 여행 출발 직전 제주도까지 출장가서 3일간의 행사를 진행하고 서울로 돌아와 서둘러 짐을 다시 싸고 인천공항으로 가 밤 9시 25분 비행기를 타느라고 어지간히도 부산을 떨었다(인천으로 가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ㅋ 농담치곤 썰렁한가? 근데 농담 아님 ㅡ,.ㅡ;) 과거 제주도로 놀러 갔다가 장마비 때문에 무더기로 결항되고 몇 시간이나 지연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 경험이 있었던 나는 은근히 조바심이 있었다. 더군다나 지난번 겨울중동 여행에선 돌아오는 비행기를 놓쳤던 악몽의 기억이 있음에랴. 물론 기상대에서는 내가 돌아오는 날까지 비가 오는 일은 없을거라고 장담했지만 요즘 누가 기상대의 실없는 쉰소리를 믿겠는가 말이다. 어쨋든 내가 진행했던 행사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참여 구성원 모두가 만족했으니(착각인지도 모름) 그걸로 족했고 돌아오는 비행기는 제시간에 떠 준 덕에 공항이 멀지 않은 아버님 댁에 맡겨둔 짐을 다시 정리해 나올 시간은 충분했다. 이륙 두 시간을 정확히 남겨두고 공항에 도착했다. 지난 겨울 전세계적 불경기가 휩쓸어간 공항의 공항상태는 이제 풀렸는지 최성수기는 아직 아니지만 이젠 공항에 적지 않은 인파가 부산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티케팅을 하고 출국절차를 밟았다. 여권 기간이 만료되어 새로 발급받은 전자여권에 처음으로 스템프를 찍어보는 날이다. 카타르항공. 이번이 두 번째 이용이다. 바깥으로 항공기가 보인다. 오사카를 경유하여 승객을 더 태운 뒤 도하로 넘어간다. 이곳 인천에선 승객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좋아할 필요도 없다. 오사카 가면 와장창 탈텐데 뭐. 

 

첫 번째로 먹은 기내식. 카타르항공의 기내식이 그중에도 좀 먹을만하다. 불고기와 김치 그리고 기린맥주.

 

두 번째로 먹은 기내식. 그리고 또 기린맥주. 일본 맥주 중 내입엔 기린맥주가 가장 나은 것 같다. 내 옆자리엔 카타르항공 한국인 여승무원이 휴가를 마치고 임지(?)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던중 직장인이 2주 씩이나 연짱으로 휴가를 즐기러 떠난다고 하니 직장생활 멋지게 한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하며 직장 내에서 몸조심(?)하라는 조언을 잊지 않으니 웃음이 나왔다. 조식으로 한 끼 더 먹었지만 사진이 없다. 그게 사실 가장 맛있었는뎅. 어쨋든 이른 아침인 6시 조금 안된 시간에 도하에 도착했다.

 

도하 공항은 전에도 와 본 적이 있지만 어마어마한 공항규모는 항공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공항청사로 이동하는 지루한 소요시간에서 실감하게 된다.

 

반면 공항 청사는 공항규모에 비해 거의 코딱지 수준이다. 어쨋든 낮익은 곳이다. 지난 겨울 중동으로 놀러 갔다가 돌아오던 날 터키항공의 항공기를 놓치고 울며 겨자먹기로 새로 구입한 카타르항공의 항공권을 새로 구입해 경유했던 곳이다. 돈이 남아도는 나라라서 그런지 냉장고 안에 들어간 듯 추워 떨며 환승을 기다렸다. 배낭 안에서 방풍점퍼를 꺼내 입자니 귀찮고(사실 그거 꺼내자면 배낭을 홀까닥 뒤집어야 했다) 안입자니 얼겠고. 걍 떨면서 지둘렸다. 네시간 정도 기다린 후에 카투만두행 항공기로 갈아탔다.

 

 

버스를 다시 타고 환승할 항공기로 이동하던 중 보이는 바깥 도시풍경은 모래먼지와 삭막해 보이는 색깔의 건물들만 철책 너머로 보였다. 사실 중간기착지 체류가 되면 트래킹을 포기하고 이 곳과 예멘 등을 돌아다녀 볼 생각도 없지 않았었는데(예멘도 많이 위험해졌더구만 ㅡ,.ㅡ;) 워낙 싼 항공권이라 그게 불가능했고 이 때는 이미 트래킹 경험자들의 권유에 귀가 얇아져 생각이 바뀐 상태이니 그다지 호기심도 들지 않았다.

 

기내 서비스 준비가 덜되었는지 버스 안에서 한동안 기다렸다.

 

갈아탔던 항공기다.

 

항속고도에 오르자 밥이 나왔다. 한국과 일본을 지날 때에는 한국스럽고 일본스럽던 기내식이 이젠 아랍스러워졌다. 향신료 냄새도 조금은 강하고... 

 

네시간 넘는 시간이 소요되어 현지시간 오후 다섯시 정도에 카투만두에 발을 내딛었다. 청명한 하늘을 덮고 산봉우리를 휘감은 새하얀 구름의 풍경이 마치 향연처럼 느껴져 도착부터 친근감 넘치는 곳이어서 인상이 좋다. 내가 어릴때만 해도 이런 새파란 하늘이 있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입국 비자부터 받았다. 체류기간 15일까지는 똑같이 25달러가 비자경비로 소요되고 16일부터는 더 많은 금액이 소요된다. 내 일정을 따져보니 정확하게 15일이다. 기분 좋은 출발이다. 듣던 것과 달리 비자 발급은 금새 이루어졌다. 공항에서 일단 100달러를 환전했다. 7,500 이 조금 넘는 네팔 루피화를 준다. 여기선 어차피 환전을 해야 택시를 타도 타고 버스를 타도 탈테니 환전을 안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걸 악용한건지 유독 공항에서만 프리미엄이라는 명목으로 적은 금액이지만 일부를 떼고 준다. 잔액이긴 하지만 어이가 없다. 나중에 도착한 찬바람과 뜀도령도 같은 일을 이야기하며 약간의 불만을 토로했다. 어쨋든 이런 사소한 일로 기분 상하고 싶지 않은 나는 모른척하고 청사를 나왔다.

 

소박한 국제선 공항 전경.

 

내일 포카라로 떠나기 위해 방문할 국내선이 바로 옆에 붙어있다.

 

공항에서는 많은 택시기사들이 이제 막 도착한 얼뜨기들을 상대로 비싼 택시비를 불렀다. 이런 장사 한 두번 해 본 게 아닌 나는 5분 정도를 걸어나와 넓다고는 할 수 없는 나름 대로변으로 나와 타멜거리로 가는 버스편부터 알아 보았다. 정류장에서 시민들에게 물어 버스는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여긴 장거리 버스가 아니고선 큰 버스가 거의 없다. 중형버스였는데 만원이다. 다른 때같으면 재밌어라며 탔을 테지만 트래킹 준비로 인해 평소보다 세 배는 비대해진 배낭을 맨체 이 버스를 주워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결국 택시를 잡아 200루피에 택시비 합의를 보고 올라탔다. 이 곳 네팔에선 택시비를 미리 협상하고 타야 하는데 세간다 책자에는 공항에서 타멜거리까지 200루피(3,400원) 정도라고 쓰여 있길래 150루피로 협상을 시도해 보았다. 어느 놈도 200 미만으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200에 합의 보고 택시에 올라탔다. 이 곳은 택시도 작아 한국의 마티즈와 고만고만한 차종이 택시의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운영비 때문인지 정부의 규제때문인지 중형택시나 대형 택시는 눈씻고 봐도 없다. 본 사람은 증거를 들고 연락 주셈. 술살텡께. 단, 버스도 아니면서 버스인척 생긴 희안한 택시도 있는데 이건 빼놓고 하는 말임. 택시타고 타멜 거리로 가면서 군인인줄 알고 찍었던 제복의 주인공은 경찰이더라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홀리랜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냈다. 여행자 숙소가 밀집된 이 곳에서 엉성한 지도를 보고 초행자가 특정 호텔을 찾기란 구우일모에 가깝지만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개구리 잡듯 쉽게 눈에 띠었다. 이 호텔은 세간다에 가장 싼 호텔로 나와 있어 선택한 것이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어쨋든 나는 100루피(1,700원)를 내고 4인 도미토리에 들어갔다. 룸메이트는 일본인이라고 하는데 배낭을 풀어놓고 이미 나간 뒤였다.

 

나는 이 호텔 직원인 산다에게 낼 당장 포카라로 떠나는 뱅기표를 사야 하는데 근처에 가까운 여행사가 있는지를 물었다. 항공료가 91달러인데 원하면 사다 주겠단다. 내가 알아본 것보다 싸다. 돈을 내주니 번개같이 다녀와 항공권을 내놓는다. 이 호텔의 산다라는 친구는 아주 친절했다. 그에게 1달러의 팁을 주고 짐을 대충 푼 뒤 바깥으로 나가봤다.

 

타멜촉(촉은 거리라는 뜻인데 인도에서도 같은 단어를 쓴다)은 좁은 골목에도 불구하고 택시와 오토바이 그리고 사람들로 붐볐다.

 

근처 거대 기념품가게가 있어 잠깐 둘러보았는데 청동이나 주석 인형 등은 생각보다 이들의 솜씨가 좋음을 짐작하게 했다. 하지만 나머진 별볼일 없음.

 

조금 다니다가 호텔에서 멀지 않은 식당을 찾아가 보았다. 바로 근처 한국인식당이 있었지만 나의 특성상 생까고 지나 현지인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라 해서 호기심에 들어가 본 곳은 타칼리 키친인지 따까리 키친인지 하는 식당이었다. 고산족의 하나인 타카리족이 운영하는 식당인 듯 하다. 하기는 달밧이 바로 타카리족의 대표음식이다.

 

나는 자칭 향신료 매니아다. 어느 나라의 어떤 향신료도 소화할 수 있다고 떠벌리는게 일생에 도움은 안되지만 쓸데없이 중요한 내 일 중 하나다. 사실 내가 이제 까지 다녀 본 나라들의 전통음식을 호기심 갖고 덤벼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던 적은 거의 없다. 한국인이 못먹는 음식일수록 그 호승심은 극에 달한다. 그런데 한가지 자신없는 것이 있다. 인도에서 징하도록 맛없다고 생각했던 탈리라는 음식이다. 쌀밥에 반찬 몇 가지가 나오는데 우리나라의 쌀밥정식 같은 것이라 비스므리하게 생겼으면서도 영 비호감이다. 향신료는 안들어 갔지만 하도 맛이 없어서 한 번 먹어보고 두 번 다시 안먹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후에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저녁도 못먹고 기차역으로 들어가 구내 식당에서 먹었던 것이 바로 그 그 왠수같은 탈리였다. 두 번 다시 안먹겠다던 탈리를 다시 먹은 이유는 메뉴가 그 것 하나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먹기 싫었지만 안먹으면 밤새 기차 안에서 배를 움켜잡고 후회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먹는게 나을뻔했다. 억지로 구겨 넣었더니 설사가 나더라는... 이동 내내 똥간만 다녔는데 인도 기차의 화장실은 들어가 본 사람만 안다. 어쨋든 음식에 관한 한 강적인 나도 인도의 탈리에 대하여는 기억이 아프다. 그런데 인도 문화가 가득한 이곳 네팔에서 가장 대표적인 음식의 하나가 바로 달밧이라는 음식인데 달은 국을 의미하고 밧은 밥을 의미한다. 국과 밥. 결국 백반을 말하는데 이게 바로 인도의 탈리와 같은 그것이었다. 이 곳 타카리 키친에서 일부러 시킨 음식이 바로 달밧이다. 이 곳 음식은 맨손으로 먹어야 제맛이라고 해서 일부러 그들처럼 손씻고 나서 손으로 먹었다. 맛이 없는건 여전하지만 그때 보단 그래도 먹을만 하다는 느낌이 든다. 맛있어 보입니까? ㅡ,.ㅡ; 어쨋든 250루피(4,250원) 지불했다.

 

밥먹고 나서 가게방 들러 구입한 물과 맥주. 생수는 20루피, 맥주는 170루피(2,890원)인가 주었던 것 같다. 숙박비는 조낸 싸면서도 엥겔계수는 우라지게 높다. 이거 모순이야... 누구 말마따나 옳지 않아....

 

숙소로 돌아오니 그제서야 처음으로 얼굴을 대면한 룸메이트가 들어와 있었다. 통성명을 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흔해빠진 나까무라나 고바야시가 아니었던 것만은 틀림없는데 생각이 날동말동 궁금해 미치겠다. 누가 말해주면 무릎을 칠 것 같이 전혀 생소한 이름도 아니었다. 전형적인 일본인의 인상을 가진 그는 방학중이라 6주간의 여행을 다니는데 중국과 티벳으로부터 넘어왔고 네팔 일정을 마치면 인도로 넘어갈 참이란다.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티벳은 가이드를 대동한 단체관광객에 한해 가능하고 게다가 일정도 신고가 되어야 가능한 것으로 아는데 도대체 어떻게 혼자 티벳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했는지를 물었다. 의외로 규제가 허술해서 걍 중국인인척 하고 똑같이 기차표를 사서 칭짱철도를 탔단다. 이런 젠장. 난 왜 이렇게 순진한거지? 그게 안되는줄 알고 티벳을 포기했는데 허무하잖아 이거! 후에 만난 다른 사람도 똑같은 경험담을 털어 놓았다. 젠장곱배기. 좋다. 내년 여름엔 짤없이 티벳이다. 이 친구는 티벳불교의 승려복을 입고 있었으며 밥그릇처럼 생겨 나무막대를 돌려가며 비비면 소리를 내는 불구도 하나 구입해서는 내게 보여 주었다. 제주도에서의 일정 종료와 동시에 장시간의 비행을 했던 나는 일찌감치 잠부터 잤다.

 

2009. 7. 5(일)

아침 9시에 포카라로 떠나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기 위해 8시까지는 국내선 공항에 도착해야 하고 7시 30분에는 택시를 타고 이 곳 타멜촉을 떠나야 하니 식사시간과 짐을 마저 꾸릴 시간 등을 고려해 06:00로 알람시간을 맞춰 두었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짐싸고 나니 적지 않은 시간이 남아 주변의 아침 풍경을 구경하고 싶어졌다. 타멜촉의 골목골목은 힌두교도들의 아침의식으로 시작되는 모습이 도처에서 목격된다. 집앞에 이마에 티카로 찍는 염료를 바닥에 뿌리거나 등잔을 들고 나와 무언가 간단한 의식을 한다. 

 

이 신전은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골목 초입에 있는데 시바신의 신전인 것 같다. 이런 정도의 작은 사원은 시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의 옥상 식당으로 올라와 보니 손님은 고사하고 쥔장도 안보인다. 주인이 과객을 꼬셔 식당으로 델꼬 들어오는게 아니고 과객이 쥔장을 찾아 다니니 이 아니 골때리는 상황인가. 확실히 비수기는 비수기인지 게스트하우스 내에도 나와 룸메이트를 빼면 투숙객도 없는것 같았다. 아쨋든 이만저만해서 직원을 찾아냈고 느려터진 서비스를 받느라고 적잖은 시간을 기다렸다. 식비 대충기억에 200루피정도였던 것 같다. 

 

아침 먹고 택시(200루피)타고 공항으로 갔다. 국내선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오른쪽에 자그마한 은행 창구가 있고 그 곳에서 공항이용료(175루피) 딱지를 팔고 있었다. 딱지를 사서 해당 항공사인 아그니항공 창구로 갔다. 탑승권을 걍 양식지에 손으로 써준다. 플라이트 넘버가 403으로 써있는 것 같지만 이게 409란다. 데스티네이션(목적지)에 개발로 써넣은 내용이 뭔가 했다. PKR 라고 써 놓은건데 포카라의 약자다. 써 놓은 내용을 알고 있으니 망정이지 무슨 재주로 알아먹겠나.  좌석번호가 없길래 어떻게 된거냐니까 맘에 드는 자리로 골라서 앉으란다. 여기 혹시 지하철 역을 잘못 찾아왔나? 카투만두엔 지하철 없다고 그랬는데? 그럼 국내선 맞는거야? ㅡ,.ㅡ;

 

일단 짐을 부치고 안으로 들어가니 게이트 찾을 필요도 없다. 게이트는 단 하나뿐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디지털 표시로 출발현황을 게시해 줄 줄 알았다. 한 켠에 컴퓨터 모니터 하나 매달아 놓았고 거기겐 그 날 항공계획이 이미 지나간 항공편까지 친절하게(?) 표시가 되어 있었다. status 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다. 갔는지, 탑승을 시작하는지, 라스트 콜을 하는지 모니터를 보고는 알 수가 없었다. 오직 편명과 행선지를 공항직원이 입으로 떠들면 알아서 나가는 식이다. 이거 버스 터미널인가? 게다가 9시 비행기인데 정시가 다되도록 내가 탈 비행기에 대해서는 도대체 말이 없다. 조바심이 생겨 직원에게 물어보니 아직 기다리란다. 주변에 내표와 같은 표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지 둘러 보려던 중 한 얼칙이 인상의 젊은이가 내게 다가와 어디로 가냔다. 얼칙이 인상이지만 교육은 받았는지 쓸만한 영어실력으로 대화를 걸어왔다. 포카라로 간다고 했더니 자기도 포카라로 간단다. 나하고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잖아도 다른 행선지 항공편은 마구 마구 게이트로 들어가는데 정시가 지나도록 내가 탈 비행기 승객 입장하란 소리가 없어 이미 지나간게 아닌가 부쩍 의심이 일던 차였는데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정시보다 45분이 지난 시점에서야 게이트로 입장하란다. 버스로 이동한 단거리에 내가 탈 아그니항공 경비행기가 대기중이었다. 누군가 히말라야 설산을 보려면 오른쪽 창가에 앉으라고 했다. 오른쪽 창가에 앉는다고 앉은 자리 옆은 창이 아닌 기둥으로 막혀있고 창은 내 앞쪽과 뒤쪽으로 나있어 바깥을 내다볼 수 없는 대따 후진 자리였다. 잽싸게 일어나 남은 자리를 보니 입구 정면에 좋은 자리가 있었다. 그리로 가 앉고 보니 자리가 밖을 내다 보기에 그만이었다. 게다가 그 옆자리는 아무도 앉지 않았고 곧 알게된 사실은 그 자리가 스튜어디스의 자리라는 점이다. 므흣!

 

얼레리요? 서빙하는 스튜어디스 보통 예쁜게 아닐쎄? 또 한번 므ㅡ흣!

 

그녀는 사탕과 솜을 쟁반에 담아 승객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사탕은 안먹으니 안집었고 뭔지도 모르고 솜을 집어들며 수작을 걸기 위해 물었더니 엔진소리가 시끄럽거든 귀를 틀어 막으란다. ㅡ,.ㅡ; 옆자리에 앉는 그녀를 보고 예쁘길래 이미 한 장 찍었는데 불쾌하면 지우겠다고 했더니 웃으며 지우지 말란다. 그래서 한 장 더 찍었다. 그녀는 가네쉬(시바신의 아들로 코끼리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하고 있는데 배는 불룩 나오고 춤추기를 좋아하는 신인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쥐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집자주 띵!)를 믿는 힌두교도였다. 이름이 리타(Rita)라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녀가 입고 있는 유니폼은 다름아닌 티벳 전통의상이었다. 아리안족이지만 그녀에게 무척 잘어울리는 옷이었다. 이메일 주소를 받는데까진 성공했는데 그노무 수첩을 나중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ㅠㅠ

 

리타와 노닥거리다 보니 어느새 포카라에 착륙하고 있었다. 젠장 좀 더가서 내려줄 일이지... 구름 사이로 산과 강이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는 그래도 좀 보았지만 구름이 많아 히말라야 설산은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리타와 작별인사를 한 뒤 공항에 내려 청사 밖으로 나가니 몇 몇 택시기사가 수작을 걸어왔다. 나는 일단 공항 밖으로 나왔다. 사실 오늘 허가를 받아 당장 트래킹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때 시간은 11시가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트래킹 허가만 받고 쉬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선회했다. 나는 지도를 보고 ACAP(트래킹허가 사무소)를 지도상에서 보고 기껏 해야 한시간 안팎이면 될 것 같아 배낭을 짊어진채 지도를 보며 걷기 시작했다. 걷는 것과 구경을 좋아하는 나로선 어차피 오늘 트래킹을 접을라면 천천히 구경이나 하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찾아가는데 시간도 많이 걸렸고 배낭도 무거웠다. 트래킹 준비때문에 베낭이 13킬로그램으로 불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 근처가 틀림없는데 도대체 찾을 수가 없었다. 주민들에게 물어봐도 모른다. 이거 뭐야 이거. 나는 점심시간도 되었고 커다란 봇짐때문에 지치기도 해서 식사할 곳이 있는지 둘러 보았다. 바로 근처 독일빵집이라는 제과점이 눈에 띠었다. 갑자기 빵이 땡겼다. 진열대에 놓여진 빵은 아주 맛이 좋아 보였다.

 

홍차와 함께 빵을 먹으며 지친 몸을 쉬었다. 빵 맛이 좋았다. 지금까지 강행군이었다. 3일간의 제주출장이 끝나자마자 그날로 장시간 비행을 했고 담날인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무리도 아니다. 뜀도령에게 전화하기 위해 한 여행사에 들어갔다. 국제전화와 인터넷 서비스를 겸하는 곳이었다. 나는 뜀도령에게 전화해 카투만두에서 포카라로 오는 코스를 일러 주고 나서 가게에서 안내중인 소녀에게 ACAP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모른단다. 사장은 어디엔가 가고 없는것 같았다.

 

물어물어 찾아 가는데 자꾸 택시기사가 끼어들어 먼거리니까 자기가 안내하겠다며 귀찮게 했다. 젠장 이근처인거 뻔히 아는데 무슨수작인가 했다. 그런데 지도에 나와 있는 ACAP로부터 계속 벗어나고 있는 나자신을 발견하고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도 가는 길이니 태워 주겠단다. 어찌나 고맙던지... 그 곳에서도 적잖은 거리를 더 벗어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간다 지도에 나와있는 ACAP 사무소는 이미 이전해서 관광청 바로 앞으로 이전한 탓에 난 이미 포카라의 반바퀴를 걸어서 돌은 셈이었다. 아~~~! 열받아. 혹시 ACAP를 찾으실 일이 있으시거든 참고하셈. 택시비는 공항에서 200루피면 뒤집어 쓴다는 점도...

오토바이 운전자는 나를 태우고 가면서 사진이 몇 장이나 있는지를 물었다. 1장 있다고 했더니 4장이나 필요하다며 근처 사진관에 내려주었다. 1장이면 되는걸로 아는데? 이친구 내게 친절을 베푼 것 이 그럼... 나는 의심이 들어 일단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그가 소개한 사진관을 뒤로하고 ACAP사무실로 가봤다. 엥? 진짜로 4장이 있어야 한다넹? 할수 없이 근처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래의 사진이 바로 그렇게도 찾아헤매던 ACAP 사무소다.

 

사진관이라는데가 아주 웃긴다. 기념품가게 한켠에 콧구멍만한 방을 하나 마련해 놓고 여기서 똑딱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프린터로 뽑아주는 거였다. 조명도 없고 머리가 산발이든 고개가 삐따닥하든 사진관 주인은 개의치 않고 이놈이 이놈이라는 증거물만 뽑아주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래 놓고도 4장 뽑아 주는데 300루피(5,100원)나 받는다. 울나라보다는 그래도 싸군. 현상수배범이 들어간 증명사진을 들고 다시 찾아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트래킹허가업무는 토요일을 제외하곤 정상업무를 하고 있어 일요일인 오늘도 발급이 가능했다. 신청 후 잠깐 기다려 받은 허가증. 신청경비는 2,000루피(34,000원).

 

이제는 호텔을 찾아 짐을 부려 놓고 내일 시작될 트래킹에 관한 준비를 쉬엄쉬엄 하는 일만 남았다. 세간다에 나와있느 자료로는 카르키 게스트하우스가 가장 싼 것 같아 걸어서 찾아가 보았다.

 

지도상으론 레이크사이드 시바신전이 있는 곳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있었다.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래 사진은 시바신전

 

골목으로 접어들어 조금 들어가니

 

카르키 게스트하우스가 보였다.

 

 

도미토리를 달라고 했더니 손님도 없고 하니 그냥 욕실이 딸리지 않은 2인실을 깎아줄테니 혼자 쓰란다. 150루피에 하루밤을 쓰기로 했다. 나는 짐을 내려 놓고 샤워를 하자마자 리셉션으로 가봤다. 대전에 살고 있다는 여학생 한 명을 만났다. 벌써 여러 친구들이 생겼는지 흑인 남자와 백인 남자 각 1명씩과 함께 놀러 나가던 중이었다. 흑, 황, 백이 친구가 되어 놀러 나가는 모습이 이채롭게 보였다. 리셉션에서 호텔 사장에게 포터를 고용하고싶은데 소개해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여행사를 통해 포터를 수배했다는 트래킹 경험자는 1일 포터 고용비를 13달러를 썼다고 했다. 물론 소개비 포함이다. 호텔 사장이 말하는 값은 1일 800루피(10달러 조금 넘는 정도)로 그보다는 저렴했다. 6일 트래킹을 예정하고 있으니 4800 루피다. 예약금 2400 루피를 주고 나머지는 돌아와서 주면 된단다. 여행사나 호텔 등을 통해 포터를 고용하면 신분이 확실하니 수수료를 물더라도 그게 낫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직접 포터를 고용하면 1일 400루피 정도면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포터를 소개해 주고 조뼁이 치는 포터에겐 반 또는 그 이하를 주고 나머진 여행사가 수수료로 챙긴다는 얘기다. 듣기로는 트래킹허가사무소(ACAP) 앞에는 포터 지원자들이 모여 있다고 했지만 내가 갔던 이 때는 워낙에 비수기였기에 그랬는지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없었다. 내 생각엔 신분 확실한 사람을 직접 수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직접 고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호텔 투숙객인 김재남씨도 내일부터 트래킹을 시작할 참이었다. 어쨋든 포터를 고용하려던 내 생각은 호텔 사장과 김재남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한국에서 내게 조언해준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 쓸데 없는 이야기임이 판명이 나면서 고쳐먹었다. 여름 트래킹이니 간편하게 준비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내게 조언자들은 '트래킹을 하다 보면 현지가 아무리 여름이라 하더라도 밤에는 극도로 춥기 때문에 침낭이 필요하다는둥 오리텅 파커를 가져 가야 한다'는 둥 준비를 철저히 해갈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여기서 알고 보니 내가 다닐 코스는 파커나 침낭 따위는 절대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쓸데없는 짐들을 이 호텔에 맡기고 필요한 것만 최소화해서 다시 싸면 된다는 결론을 얻었고 포터는 아예 쓰지 않기로 작심했다. 호텔 사장은 돈을 밝히는 사람이었다. 4,800루피가 그냥 날아가게 되자 '포터를 고용하지 않으면 다니기에 힘들거라는둥 가이드는 필요하지 않느냐'는둥 날아간 새를 어떻게든 다시 잡으려는 모습이 조금 밉살맞다. 대신 호텔에서 트래킹 시작점인 나야풀(Nayapul)로 데려다 주는 서비스를 쓰기로 했다. 머리수에 상관없이 1600루피란다. 첨엔 적정가를 알아보기 위해 안쓰겠다고 일단 거절하고 나니 1500루피로 깎아주겠단다. 김재남씨와 나는 트래커 두 명을 더 구해 1인 375루피씩으로 나눠내기로 했다. 하지만 담날아침까지 합류할 트래커는 찾지 못했다. 1인 750루피(12,750원)씩 내기로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냥 택시를 잡으면 1,000 루피면 충분하다고 한다.

 

트래킹 허가증도 받았겠다, 포터도 필요없어졌고 차량까지 수배가 되었으니 밥먹고 나서 스틱만 한세트 대여해 오면 끝이다. 일단 밥먹으러 가기로 했다. 김재남씨가 싸고 맛있는 티벳식당을 알고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간판도 없는 약간 허름한 집이다. 레이크사이드에서 숙박중인 카르키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는 골목 초입부에 있었다. 뗀뚝(수제비)이나 뚝바(국수), 모모(만두)같은 티벳음식은 인도에서도 먹어본 적이 있어 익히 알고 있었다.

 

야채 뗀뚝(40루피: 680원))과 산 미구엘 캔맥주(90루피: 1,530원))를 시켰다. 이 곳 네팔에는 엄청 저렴한 숙박비에 비하자면 음식과 맥주값이 상당히 비쌌지만 이 집은 무척 저렴한데다 맛도 기가 막혔다. 사실 맥주는 한국과 비교해도 비싼 편이지만 이 집이 수퍼마켓보다도 맥주값이 싸다. 어쨋든 이집 절대강추.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나와 김재남씨는 레이크 사이드를 거닐며 트래킹 상점을 돌아다니며 가격을 알아보았다. 스틱한 세트에 1,200 루피정도(20,400원)였다.  나는 대여가 가능한지 물었다. 약간 낡은 물건을 내주며 1일 60루피(1,020원)이란다. 한국과 비교해도 결코 비싸진 않다. 6일이니 360루피다. 내경우 어차피 스틱을 다시 쓸 일도 없으니 빌리는게 경제적이었다. 보증금은 1,000루피(거의 새것 값이넹. 니거 들고 날라버리는 경우가 많은가?)이고 차액은 돌아오면 준단다. 한세트 빌렸다.

 

 

섬에 세워진 바라히 사원으로 들어가는 나루터에도 잠깐 들러 보았다. 섬에는 나중 찬바람과 뜀도령이 합류하면 그 때 들어가 보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좀 피곤하기도 하고 담날 시작될 트래킹을 위해 일찍 잤다. 한 9시쯤부터 늘어지게 잔것 같다. 근데 잠자리가 좀 고약하다. 자면서 느낀 것은 뭔가 계속 물어(모기는 절대 아님) 계속 긁으면서 잤다. 트래킹 다녀오면 이 집으로 다시 오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