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3.(금)
세 번째 날이다. 이 번에는 몇 년 전부터 이제껏 일본 판가게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값이 좋았던 진보초의 제브라와 그 주변의 판가게들을 가보기로 했다. 진보초의 판가게들은 몇 년 전 마사유키군이 자료를 들고 돌아다니며 나와 바람소리군을 데리고 다닌 터라 위치가 가물가물했다. 헤맬 시간을 고려해 일찍 나가 판가게 위치부터 미리 확인해 두기로했다. 진보초에 도착하자마자 아침 먹을 곳부터 물색해 봤다. 역시 일본에선 아침식사를 맛있게 할 수 있는 곳은 없다.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할 수 없이 또 들어 갔다.전형적인 일본인들의 아침식다. 고등어구이, 미소시루, 백김치를 흉내낸 배추절임과 감자푸딩. 걍 먹었다. 맛있었냐고 물어보면 패죽일겨.
위치부터 확인해 두었던 제브라. 골목 안쪽에 있어 약간 헤맸다. 혹시라도 문닫지 않았을까 걱정 은근 했다. 3년전 값싸고 질좋은 음반으로 감동을 주었던 곳이라.
시간 맞춰 10시에 가보니 이제서야 문을 열고 주인장이 바깥으로 물건들을 내놓으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집은 판만 파는게 아니고 네팔에서 가져온 장갑, 모자 등의 물건들도 판다. 3년전 방문했을 그 때도 그랬다. 주인장이 네팔을 무척 좋아하시는 모양. 나도 네팔 엄청 그리워 하고 있다. 퇴직 후 내 인생 말년은 네팔에서 펍을 여는 것을 꿈으로 가졌으니 주인장보다 더 좋아하면 더 좋아했지 덜 좋아하진 않을게다. 여서 주인장과 으런 얘기도 좀 나눠볼걸 그랬다. 열심히 영업준비 하시는 사장님.
재작년에 이 곳에 와서 값이 싸서 아주 좋았었다고 하자 주인장은 "아, 알고있다."고 말했지만 그 때 이 주인장은 없었고 젊은 처자만 있었다. 음반값이 많이 올라 놀랐다고 하자 음반이 도쿄에서도 많지 않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이 집의 음반 가격은 다른 곳보다 싼게 아니고 오히려 더 비싸진 느낌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비싸게 팔리지만 일본에선 눈 먼 값에 팔리는 음반도 눈에 띤다. 지네뜨 느뵈의 베토벤 협주곡.
케니 버렐 미국 UNITED ARTIST반.
프레디 허바드 일본반.
윤이상의 클라리넷 작품집. 이건 순전히 애국심에서 샀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윤이상의 곡들은 난해하기 짝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한 번 듣고 끝! 하지만 한국 음악가들의 기록이니만큼 우리가 소중하게 보존하지 않으면 누가 하리.
토니레코드. 문을 닫았나 했다.
제브라 사장님이 토니 가봤냐고 묻길래 문을 닫았더라고 했더니 문을 닫은게 아니라 이사했다고 알려줘 가봤다. 과연. 전에도 레퍼토리가 대단치는 않았었지만 들를만은 했었다. 이 곳에서 재즈 음반 한 장 샀다.
이 곳에서 구입한 케니 드류 일본반.
여긴 통과.
후지레코드 본점. 문열기전 위치 확인. 제브라와 토니레코드 들렀다 오니 이 곳도 이 땐 문 열었다. 들어가 보니 원래가 비싼 곳이었는데 이젠 레퍼토리에 대한 만족도도 낮아졌다. 어쨌든 넘 비싸다. 한 장도 안사고 나와보기도 오래간만이다.
후지레코드. 이 곳에서 한장 샀던가? 안샀던가?
레코드. 이 집은 3년전 왔을 때도 갖고싶은 음반 단 한 장도 못찾았던 집이었다. 문열기전 위치는 함 확인해 두었다. 후지레코드 뒷골목에 바로 있는 집이어서 들렀으면 이미 열었겠지만 안들렀다.
이 곳도 내 취향은 단 한 장도 없는 집. 이제 진보초에 있는 집은 가 볼 곳은 아는 한도 내에서 다 가봤다. 3년전에 왔을 때 들렀던 턴테이블은 문을 닫은건지 이사를 간건지 알고 있던 그 자리엔 다른 가게가 들어섰다. 한국계 일본인인 사장이 참으로 친절했던 집이고 여기저기 들러보라며 레코드 가게들 약도까지 그려줬던 사람이다.
이제 다음에 갈 곳은 항상 들렀던 신주쿠 일반관, 재즈관, 블루스/소울관, 클래식관이었지만 시간이 모자랐다. 이 날 저녁엔 마사유키군과의 저녁 약속이 있던 날. 시간은 남지만 어정쩡하다. 그래서 이 번엔 마사유키군과의 약속이 있는 다카다노바바점과 타임레코드를 들르기로 했다. 그런 뒤 마사유키군을 만나면 딱 맞을 줄 알았다. 어쨌든 진보초에서 다카다노바바로 가자면 숙소가 있는 역을 지나야 했다. 들러서 음반을 놓고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처음으로 발코니에 나가봤다. 발코니에서 내다보는 풍경만큼은 멋지다.
마침 구름이 낮고 짙게 떴다.
디스크유니온 다카다노바바점. 이 곳도 디스크 유니온 중 가장 가격과 레퍼토리가 아주 좋았던 곳이다. 지금은 그렇지만도 않다.
그래도 몇 장 집었다.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 재즈 음반은 비싸거나 레퍼토리가 별로다. 핑플 영국초반은 원래 구하려던 물건. 값이 만만친 않다. 닐 영 영국 반도.
핑플 영국초반.
폴 매카트니 일본반.
스팅 영국반. 사놓고 보니 이건 또 왜샀나 몰라.
밀바 이탈리아반
.
다카다노바바 빅박스 앞에서 마사유키군을 만나기로 했다. 이상하게 전화가 되지 않는다. 약속시간까지는 시간이 너무 남아 만일에 대비해 음반을 더 살 경우를 대비해 캐리어와 쿠션비닐(일명 뽁뽁이)를 살 곳을 물색해 봤다. 마침 빅박스 건너편 이마트 스타일의 쇼핑센터가 있어서 함 들어가 봤다. 한국보다는 캐리어 값이 비싼 편이다. 뽁뽁이는 못찾은건지 없는건지. 어쨌든 캐리어 살 곳은 확실히 물색해 둔 셈. 시간이 되어 약속 장소에 가니 마사유키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3년만에 보는 친구이니 반가울 수 밖에. 마사유키군은 여전했다. 몸관리 덕에 아직도 홀쭉한 몸 여전하다. 난 배나오고 있는데. ㅡ,.ㅡ;
마사유키군이 제안한 저녁식사 옵션은 세군데. 일본식 닭고기 찌개 2군데,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돈가스 전문점. 나는 닭고기 찌개를 선택했다. 마사유키군이 전화해 보더니 예약이 꽉찼고 대기 시간이 얼마 걸릴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다른 집도 전화해 보니 마찬가지. 돈가스 집으로 급선회. 덮어놓고 따라가다 보니 어느 역에서 내렸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골목 쪽으로 들어간다. 가다 보니 자그마한 사찰이 나온다. 인도에 가면 이러한 작은 사원은 엄청나게 많다.
이 집은 돈카츠 돈키라는 이름의 식당으로 마사유키군도 처음 가보는 집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약간 헤맸다. 드디어 도착한 돈가스집. 허걱 이게 모냥. Bar 안쪽으로 둔 조리공간이 이렇게 큰 식당은 처음 봤다. 철저하게 분업화 되어 있다. 조리의 전 과정이 다 보인다. 튀김옷을 입히는 사람, 입힌 튀김 옷에 무언가 막대 같은걸 찔러 넣고 기름에 넣는 사람, 세 개의 기름통에 들어간 돈가스를 잘 튀겨지도록 관리하고 잘 익은 것을 끄집어내 도마위에 올리는 사람, 도마위에 올려진 돈가스를 칼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내는 사람, 썰어낸 돈가스를 야채와 함께 세팅하는 사람. 이 모든 과정이 한 눈에 보이는데 이 들 모두가 연세 지긋한 노장들이다. 특히, 돈가스를 칼로 썰어내는 조리사는 80이 다 된 노장 중의 노장이다. 갓 나온 돈가스는 당연히 뜨겁다. 한 손으로 방금 나온 돈가스를 고정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 칼질을 한다. 뜨거움의 고통이 보는 사람에게 전해져 온다. 이따금 노장은 젖은 물수건으로 손을 식히곤 하며 다시 쉼없이 칼질을 한다. 서빙은 젊은 친구들이 한다. 수련생들인 모양. 2층에도 공간이 있지만 2층엔 테이블이 배열되어 있단다(안올라가봤음) 이 곳 1층에 대기줄이 긴 이유는 이 분위기를 만끽하기 위해서다.
Bar 한 줄 외에는 테이블도 없다. 뒤에 앉은 사람들은 대기자들. 이들은 오래 기다린 사람들이다. 여기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온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다. Bar 안에서 줄관리를 하며 주문을 미리미리 받아낸다. 이 분도 70이 다 됐건만 주문접수와 내보내는 음식이 실수도 없이 정확하다. 계산까지 그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을 보는 것 자체가 감동적이다. 기다리는 동안 바로 옆 대기줄에 앉은 외국인 가족은 미국에서 왔단다. 일본을 오랫동안 일 때문에 다닌 일본통으로 그는 이 번엔 가족까지 이끌고 왔다고 한다. 캐리어 우먼인 부인과 대학에 다니는 큰아들과 이 번에 대학시험을 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작은 아들은 이 돈가스점의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왔다. 역시 마사유키군의 오지랍은 대단하다. 나는 여행을 가거나 어디선가 여행객을 만나면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 한 내가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마사유키는 항상 먼저 다가간다. 마사유키가 말을 걸자 이들은 현지인과 대화를 하는것이 너무 즐거워 4인가족과 마사유키의 대화로 확장되었고 결국 나까지 대화에 들어갔다. 이들과 같은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기다린지 1시간 만이다. 이들 가족과 같은 자리에 배정받았다. 먹고 이들과 대화를 나누느라 음식 사진도 잊어먹고 못찍었다. 이들의 젓가락질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수준급이었다. 적잖이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인 것 같다. 음식을 먹고 2차를 가기 위해 이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가장이 급히 뛰어따라나와 날 불렀다. 아 젠장. 안경을 흘리고 갈 뻔했다. 고맙다고 인사한 뒤 다시 한 번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마사유키가 핀잔한다.
"너 지난번엔 카메라도 흘렸었잖아. 이번엔 안경이냐. 왜 가는 곳마다 흘리고 다니냥."
"간만에 만나 잔소리냥. ㅡ,.ㅡ;"
마사유키군이 다시 데리고 간 곳은 그리 멀진 않은 곳이었지만 그동안 가보지 못한 특이한 곳이었다. 10명이나 간신히 앉을 수 있는 작은 바(BAR)만 즐비한 골목이었다. 이거봐라? 잼있는데?
10명도 채 앉을 수 없는 작은 바(BAR)만 즐비한 골목이었다. 이거봐라? 잼있는데?
마음에 드는 분위기의 집을 골라 보란다.
한동안 다니다 눈에 띠는 집이 있었다. 분위기가 다른 집보다 유난히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열어놓은 문에는 핑크 플로이드의 Atom Heart Mother 앨범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개눈엔 똥만 보인다. 나는 그리로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안쪽에 남은 자리로 들어가 앉으니 8명 자리가 꽉 찼다. 핑크 플로이드의 젓소 포스터 사진은 바 안에도 걸려 있었다. 나는 맥주를 주문했고 마사유키군이 주문한 것은 잭콕.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대화가 트였다. 내게 뭐라고 말을 하는데 알아 들을수가 있나. 마사유키가 중간에 통역했다. 막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이 사람은 마사유키와 내가 영어로 대화하는 것 자체를 놀라워했다. ㅡ,.ㅡ; 그게 대단해 보이다니. 어쨌든 그는 어떻게 외국인과 친구가 될 수 있었는지 꽤나 관심을 갖고 여러가질 물어봤다. 여행을 다닌다는 것에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워 하고 부러워 했다.
이 작은 공간은 담배연기로 뿌예졌다. 한국 같으면 큰일 날 일이다. 담배연기가 자욱하다. 마사유키와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이런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주인은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다. 나는 이 집에 들어오게 된 이유를 그녀에게 설명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락그룹 중 하나인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포스터가 밖에 걸려 있었고 안에 들어오니 액자까지 걸려 있어 반가웠다."
당신도 핑크 플로이드를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런거냐."
마사유키가 옆에서 통역했다.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근데 왜 문에 포스터 붙이고 사진까지 걸어놨나?"
"그냥 있으니까 붙였지 나하곤 상관 없어요."
그녀의 대답이 헐~ 솔직해도 너무 심하게 솔직한거 아냐? 살짝 실망했지만 그러한 쿨함이 오히려 나쁘지 않다.
마사유키는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다며 다른 집으로 옮기잔다. 나올때 마사유키가 계산하는 걸 보고 놀랐다. 한 잔씩 마셨을 뿐인데 4천엔 가까이 계산했다. 알고 보니 이 곳의 박들은 입장료 명목으로 1인당 1천엔씩 추가로 받는다. 하긴 그 좁은 공간에서 손님도 많이 받지 못하는데 술만 팔아서는 비싼 도쿄 땅에서 장사해 먹기 쉽지 않겠다. 외국인들도 이 곳에서 적잖이 얼쩡거린다. 마사유키군이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함서 돈을 더 쓸 태세다. 나는 이 날 피곤한데다 입장료가 너무 비싸 한 잔씩만 더 마셔도 4천엔이 또 날아갈텐데... 피곤하다고 하고 숙소로 가 쉬고 싶다고 하니 마사유키군도 더는 권하지 않았다. 마사유키가 서울로 다시 놀러 오고 싶다고 했다. 그 때를 바라고 작별 인사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오니 잠도 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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