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4 이란

좌충우돌 낭만의 이란 11(테헤란→인천)

코렐리 2014. 11. 5. 11:53

2014.9.13(토)

다음날 아침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골레스탄 궁전. 테헤란이 내가 방문한 도시 중 볼거리가 가장 없다지만 골레스탄 궁전은 이란 전체를 통틀어 가장 볼만한 곳 중 하나이니 시간이 부족해 보지 못하는 상황 만들지 않기 위해 이 곳부터 들르기로 했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조식비가 호텔비에 포함인 줄알았더니 별도라네 젠장. 그런 줄 알았으면 딴데가서 먹었지) 나서 지하철을 타고 판드자르 에 호닷드 역으로 다시 갔다.

 

이 곳은 입장료(150,000리얄) 외에도 내부 입장료(50,000리얄X6장)가 별도로 있어 표를 한꺼번에 다 구입하면 총 450,000리얄이 된다.

 

표를 사서 입장하면 얼핏 대학 본부 건물처럼 따분하게 생긴 건물이 나온다. 그 앞으로는 풀이 길게 놓여져 있어 역시 건물을 비춰보는 재미를 안겨준다. 가운데 분수가 툭툭 튀어나와 일부 방해되지만.

 

가서 보니 옥좌가 놓여진 주변은 온통 거울장식이다.

 

왼쪽.

 

말 그대로 옥으로 만들어진 옥좌다.

 

어지러운 거울 장식. 이란에는 모스크와 궁전에 거울장식이 무척 많다.

 

오른쪽.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둥 모양이 독특하다.

 

오른쪽으로 가면 왕족의 휴식처라도 되는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평상같은 것이 놓여져 있다.

 

바로 옆으로는 분수가 놓여져 있어 이들이 정원에 물을 사용하길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다시금 보여준다.

 

외벽은 타일로 복잡한 문양을 구성했다. 아래 사진은 유리로 장식된 화려한 홀들을 가진 구역이다. 왕을 알현하던 장소로 보이는데 그 화려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부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꿈도 꾸지 못한다.

 

궁전 역시 사각으로 건설되어 한쪽면에 화려하고 큰 방들이 길게 배치되어 있고 

 

이것들을 다 보고 나면 타일로 장식된 높다랗고 길다란 담벼락이 펼쳐져 있다. 자잭도 특수장비를 쓰지 않는 한 오르다 말고 미끄러져 떨어질 것 같다. 

 

거의 끝으로 가면 탑처럼 솟은 다층건물 두 채를 볼 수 있다.

 

올라가서 내려다 보면 궁전 내부든 바깥이든 기막힐 것 같은데 공개를 하지 않는다.

 

벽 끝에서 만난 냥이군. 주인도 없는 녀석인것 같은데 사람을 따른다. 다른 관광객들까지 따라와 내가 안은 이녀석을 내가 데려온 줄 아는지 귀엽다고 연신 날보고 칭찬이다. 나 얘 모르걸랑요.

 

벽 끝에서 다시 90도 각도를 꺾으면 방들이 연결된다. 비교적 소박하고 방이 상대적으로 작은걸 보면 왕족 거주구역이 아니라 대신들이 집무를 보던 곳을이 아닌가싶다.

 

이 방은 사진촬영 금지 표시가 없다. 이 방도 무척 화려하지만 아까 들렀던 왕족 거주구역과 사신들이 왕을 알현하던 방에 비하면 엄청 작고 소박한 곳이다. 

 

스테인드글라스와 샹들리에.

 

입구부터가 화려한 이 방도 들어가면.

 

화려한 거울장식이 방을 둘러쌌다.

 

왈실구역과 사신접견구역 사진이 없으니 비교적 소박한 공간인 이곳 사진을 보면 대충 짐작이 갈지 모르겠다.

 

샹들리에도 이정도면 아주 소박한 정도다.

 

화려하고 복잡한 거울장식.

 

단순한 아름다움이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이 방은 다녀본 중 가장 밝다. 난 이런 밝은 방이 좋다.

 

여기까지 오니 다리가 아파온다. 지하에 마련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이스크림과 콜라를 주문했다. 날이 더우니 음료수 생각도 간절하고 출출하니 아이스크림 생각도 간절하다. 콜라부터 껄떡껄떡 마시고 나서 아이스크림도 쪼잘거리며 한동안 뭉그러져봤다.

 

남은 구역을 돌아다니다 보니 얼라리요? 이 궁전에 대한 안내 브로슈어를 어디로 흘렸지? 생각해 보니 아까까지 카페에서 한참을 들여다 보고는 두고 나온 것 같다.

 

되돌아 갔다. 되돌다 만난 한 공과대학생 사자드(Sajjad)군. 한국에 무척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가족과 함께 이 곳에 나들이앴던 이 친구는 한동안 한국에 대하여 듣고자 했다. 그는 이후 내게 이메일을 보내 한국의 대학에 대하여 몇가지 묻곤 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에는 이란인들의 옛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어 일부나마 이들의 전통적인 모습을 들여다 볼 수있지만

 

왠지 좀 엉성하다.

 

이들이 사용하던 악기.

 

궁전에서 나오자 길게 조성된 공원에 많은 이들이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바자르 안으로 들어가 봤다. 이슬람 교도들의 안식일인 금요일이어서 횡뎅그렁하고 썰렁했던 바자르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거리를 다니자면 사람들 사이로 이리저리 지그재그로 다닐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어딜 가나 복잡하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바자르. 하루 차이인데 이렇게 다를수가 있나.

 

바자르 천장이 예술품에 다름아니다. 이 곳이 시장이라니.

 

시장 안 한켠에는 바자르가 있다. 바자르에는 옆이든 안이든 꼭 바자르가 낀다. 하루에 다섯번 예배를 드려야 하니 기도 시간이 되면 시장 상인들이나 과객들이나 기도 장소가 필요하긴 마찬가지니 사람이 많은 바자르에 모스크가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들 이슬람 교도들에게는 성전이 기도의 장소인 동시에 휴식의 공간이다. 길가다 피곤하면 가까운 모스크에서 자면 된다. 그게 왜그리 부러울까. 이 곳은 모스크 치고는 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모스크는 모스크이되 시장 안 통로이기도 하고 동시에 모스크이기도 한 곳이다. 이 곳에서 이듥과 섞여 낮잠 좀 즐겨보려 했지만 좀 안정된 느낌과 분위기가 드는 모스크가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이맘 호메이니 모스크. 이 곳은 테헤란에서 중요한 모스크 중 하나이니 반드시 들러볼 곳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곳은 이 날 이후에 들렀지만 후술할 일이고... 이 곳은 카자르 왕조 시대에 10,000 평방미터의 규모로 지어졌다. 담벼락 위는 발코니로 되어 있고 춡입문은 사각 틀에 뾰족한 아라베스크형 아치로 파여진 거대 출입구는 모스크 본관을 제외한 3면에 하나씩 설치되어 있고 가운데는 풀을 파서 물을 채웠다. 가운데에는 분수가 있고 화분을 둘러 놓았다. 그 곳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부녀의 모습이 아름답기 짝이없다. 그 옆에 신문 보는 아저씨만 없었으면 기막힌 그림이 나왔을텐데 아깝다.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섬세하고 화려하지만 절대 어지럽지 않고 우아한 실내가 압권이다. 이 곳에서 사진을 찍고싶어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더니 옆에 앉은 신사가 속삭였다. "사진 찍어도 괜찮아요. 사진을 찍어 나쁜 일에 악용하지 않는 한 금지되지는 않으니까 원하면 찍으세요."

 

이 곳에서 몇 컷 찍었다. 이상하리만치 종교를 떠나 노인들이 기도하는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아름답게 보인다. 죽음이 멀지 않은 이들의 기도가 그만큼 신실하고 욕심을 비웠기 때문일까. 나도 이 곳에서 한동안 낮잠을 즐겼다. 마치 내고향 내집같다. 그들 틈에 끼어 누워도 누구하나 이상하게 보는 사람 없다. 나도 이란인 다 되어 가나 보다.

 

한시간여 휴식을 취한 뒤 나와 나는 또다시 아이스크림을 찾기 시작했다. 헐. 색깔부터 환상적인 이건 뭐냐. 생과일 주스로 만든 셔벗에 아이스크림을 넣었다. 멜롡으로 하나 사서 휘저어 먹어봤다. 들고 다니며 먹는 이맛 정말 환상적이다. 한국엔 이런게 왜 없지? 누군가 이거 하면 대박날 것 같다. 다 먹고 나니 그 곳으로 돌아가 하나 더 살까 고민 아닌 고민까지 했다.

 

현지인들로 바글대는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오면서 고민이 해결되었다. 마침 식사때였고 음식점을 찾던 중이었다.

 

이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헐. 저렇게 함부로 예뻐도 되나? 이층 한가운데 자리 잡고 앉아 식사하는 두 처자 중 한 처자는 쉬지 않고 훔쳐보게 만들만큼 미모가 뛰어났다. 실내를 찍는 시늉하며 찍어봤다. 옆자리 아저씨가 쳐다본다. 찡~!

 

내가 주문한 음식이다. 음식 만족도 대비 저렴하다. 강추하고 싶지만 식당이름 모름. 아랍어나 페르시아어 알면 윗사진 참고하셈.

 

밥먹고 나오니 바자르 바깥쪽 길에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적국인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가 보이니 뭔가 궁금했다. 재봉틀로 시커먼 애들 만들어 옷걸이에 걸어 늘어 놓는 모습이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있지도 않은 테러리스트들을 오바마가 마음대로 재단해 놓고 적국 운운한다는 비아냥인 것 같다. 여기엔 테러리스트 같은거 없다고 나도 확신한다. 이슬람교 과격분자도 이 곳에서 본 적없다. 이란은 전부터 내게는 호감의 나라다. 미국인들이 보면 내가 테러리스트 점조직의 일원으로 비칠까. 이란의 입장에서 보자면 경제 제재 등 미국의 시비가 억울하고 서운할만도 하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세파살라르 모스크와 메드라사. 이 곳으로 가기 위해 바하레스탄 역에서 내려 걸었다. 눈에 띠게 육중한 미나렛부터 눈에 들어온다. 미나렛부터가 가슴을 설레게 할정도로 무언가 이 모스크는 상당한 무게감이 있어 보이고 근엄해 보였다.

 

보통은 미나렛이 두개에서 그치는데 이 곳엔 여러개가 보인다. 길건너면 전체적인 윤곽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아 길 건편에서 사진을 찍었다. 오토바이 타고 지나가던 사람이 심하게 뭐라고 한다. 자신의 진로를 막지도 않은 위치인데 왜그러나 했다. 그 이유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 곳은 이란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슬람 건축물이며 규모 못지 않게 그 중요성도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한다. 길을 건너 안으로 들어가니 알미늄 박스 안에 근무하던 나이든 경비원이 나왔다.

티켓 부스도 없고 사람도 없는 것이 왠지 들어가지 못할 상황인 것 같아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지금 들어갈 수있나요?"

노인은 궁금하고 초조한 내 마음에는 아랑곳도 없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어디서 왔어요?, 직업이 무언가요. 나이는 얼마나 되었어요? 대학에서 전공은 무얼 했나요?...............요? 요? 요?

서울로 돌아가기 위한 밤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이 날 저녁 이 곳을 보지 못하면 영영 보지 못할 상황이다. 사람도 없고 매표소도 없으니 들어갈 수있는지 없는지 궁금해 쓰러질 상황인데 그는 실컷 질문을 퍼붓더니

"당신은 지식인이군요. 그럼 알아 듣겠군요. 이 곳은 개방된 곳이 아닙니다. 이 곳도 들어오시면 안되는 곳입니다."

아~ 젠장 안된다면 진작 얘기해서 사람 맘졸이게나 하지 말 일이지.

나는 들어가지 않는 대신 이 곳에서 안쪽을 살짝 들여다 보기만 해도 안되는지 물었다. 안된단다.

벽문양의 일부로 사각 구멍이 규칙적으로 으로 뚫린 틈으로라도 잠깐 보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안된단다.

그는 나를 밖으로 안내했다. 말이 안내지 내쫓는거지뭐. 나는 노인에게 인사한 뒤 밖으로 나와서 건물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니 그가 안된다고 고함쳤다.

그제서야 오토바이를 타고 가며 이 건물을 찍는 내게 잔소리한 이유를 알았다. 그래도 이미 찍었지롱. 

 

여러개 배열된 미나렛이 하도 아름다워 몇 컷 더 찍었다.

 

이 곳이 이란 여행에서 나의 마지막 방문이었다. 이 곳을 떠나 호텔로 다시 돌아가 짐을 챙겼다. 프론트 옆 한쪽에는 화장실 겸 샤워실이 있었다. 떠나기 전 샤워를 해도 될지 물으니 야박하게도 안된단다. 치사한 빤쓰 같으니. 화장실에서 얼굴과 팔만 대충 씻은 나는 짐을 챙겨 호텔을 나섰다. 좋은 식당 하나 호텔에서 추천 받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이 곳은 으째 그리도 식당 찾기가 어려운지. 결국 포기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저녁 늦은 시간엔 마땅히 갈 곳도, 할 것도 없어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일찍 갔다. 23:30발 비행기다. 일찍 도착한 나는 사무실 동료들에게 나눠줄 선물부터 골랐다. 뭐 살만한게 없던 차에 10달러짜리 누가 스타일의 과자를 10박스 사기로 했다. 사고 나니 당황스러워질 정도로 짐이 커졌다. 환승과 공항에서 집까지의 이동, 담날아침 삼실로 가져갈걸 생각하니 끔찍했다. 하마터면 이노므 선물 짐 때문에 크게 망연자실 할 뻔한걸 생각하면... 

 

인천에서 떠날 때는 북경에서 갈아탈 항공권도 같이 주었는데 이 번엔 우루무치로 가는 표만 준다. 다음 탑승할 항공권은 우루무치로 가서 받으란다. 내 알기로 우루무치는 실크로드의 시작점인걸로 아는데... 환승 시간이 많이 남으면 함 번 쯤 들러보고 싶은 곳이었다. 환승대기시간은 1시간 45분에 불과했다.

 

이란에 체류하는 10흘 이상의 기간동안 한 방울도 마시지 못했던 맥주가 나오니 반갑기 한량없었다. 식전 음료수 줄때 한 캔 받아 마시고 밥이 나오자 바로 한 캔 더 받아 마셨다. 알딸딸하다. 역시 중국의 기내식은 좀 구리다. 배고프니까 먹는다. 4시간여 비행 끝에 우루무치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아침 07:10.

 

우루무치에 도착하자 역시 내 이름을 써서 들고있는 항공사 직원인지 공항 직원인지(항공사 직원인 것 같다) 모르겠지만 그가 기다렸다 내가 나오자 환승시간이 한 시간 밖에 없으니 서둘러야 한다며 앞장섰다. 우선 입국부터 해야 한단다. 무슨놈의 공항시스템이 이렇게 불편한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한국이나 그외 다른 국가들의 공항이라면 그냥 탑승구만 찾아가면 그만이다. 이 곳에선 무척 빠듯한 시간이었다. 시간이 될까 몰라. 외국인 입국심사 줄에 많은 사람들을 보고 내가 당황해 하자 직원은 외국인 입국심사 줄 맨 앞에 나를 세워 놓고 먼저 나가 기다렸다. 뒷사람들에게 미안하단 말이라도 하려 했지만 중앙아시아 출신으로 보이는 그들은 얼핏 보기에도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입국심사를 하는 돼지같이 생긴 공안여직원(진짜로 돼지같이 생겼음)은 중앙아시아 출신 노동자들로 보이는 입국자들을 개무시하며 수시로 소리를 질러댔다. 내 차례가 되어 여권을 내밀니 그 돼지가 소릴 질렀다.

"노우! 그룹! 그룹!"

그룹 입국심사중이니 중간에 끼지 말고 그룹 심사 후에 오란 소리였다. 항공사 직원도 안배를 해줄려면 좀 잘해 중 일이지 단체입국 줄에 세우냐. 돼지와 싸워 좋을 게 없을걸로 보였지만 나도 은근히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일부러 중국어를 못하는 척 한마디도 안했다. 영어가 시원찮은 돼지의 쥐롤에 힘을 보태주기 싫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영어가 시원찮은 불친절한 중국인한테는 영어로 다그치며 따지면 쩔쩔맨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그 돼지를 무시하는 한 방법이기도 했다. 나는 뻣뻣한 태도로 물러서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요. 환승해야 돼는데 지금 당장 입국해야 된다구요."

못알아 들을 줄 알았는지 중국어로 중얼거렸다.

"지 시간 없는게 나하구 무슨 상관이람..."

하마터면 "당신하구 상관이 왜 없어요?"라고 따질 뻔했다.

항공권 이티켓을 꺼내 들이밀기 위해 나는 가방을 뒤졌다. 돼지가 내게 다시 소릴 질렀다.

"헤이! 셴셩, 셴셩."

들은척도 안하고 가방속에서 이티켓을 꺼내고 있는 순간에도 돼지는 소릴 지르고 쥐롤 날리 부르스였다.

빳빳하게 보라고 말없이 디밀었다. 내용을 보더니 그제서 얼굴에 당황기가 역력했다.

"당신들 중국인들이 나한테 판매한 티켓이오."

"이거... 시간이 진짜로 엄넹..."

이란에서 온 항공기는 이제 막 도착했고 지가 생각해 봐도 입국심사와 환승 항공 티케팅, 그리고 출국심사 다시 하고 탑승구로 가자면 불가능해 보이는 시간이란 것은 삶은 돼지 머리도 그제서야 돌아가기 시작했는지 서둘러 스템프를 찍었다. 나 말고도 그렇게 갈아타는 사람들이 한 둘 더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내가 타기 전까진 항공편이 떠나기 쉽지 않은 상황이란 얘기지만 그래도 맘이 편할리야 없으니 서두를 수 밖에. 어쨌든 암퇘지의 스템퍼는 하나도 안고마웠다.

개념없는 돼지들땜에 나도 짜장면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 ㅡ,.ㅡ; 

이란 공항에서 구입한 선물 보따리는 두고두고 속을 썪였는데 이 때 큰 짐으로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어쨌든 환승대기시간이 중국 공항의 후진적인 시스템 때문인지 항공기 출발시간은 지연되었다. 갈아타니 여전히 중국스러운 기내식이지만 맛은 좀 나아졌다. 김치도 나오고. 4시간여의 비행 끝에 휴식을 취하기도 좋은 14:10 정도에 인천에 도착했다. 입국심사 후 공항철도를 타고 반쯤 달렸을 때였나보다. 카메라가 없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서둘러 짐을 챙겨 열차에서 나와 가방을 뒤져봤다. 속이 새카맣게 타고 입안이 바싹 바싹 말랐다. 그깟 카메라 다시 사면 된다지만 그 안에 든 칩이 문제였다. 어렵게 시간을 냈고 적지 않은 돈도 들였는데 이제 내가 갖는 여행의 의미는 홀라당 날아갈 판이었다. 순간 엄청난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다시 공항방향으로 갈아타기 위해 대기하는 동안 겪은 망연자실함과 초조함은 말로 표현이 불가능했다. 곰곰히 생각해 봤다. 여행때마다 가장 먼저 챙기고 확인한 물건이 여권과 카메라였다. 나머진 어떻게든 수습이 되지만 이 두가지는 수습이 안되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다 골아프기까지 한 탓이었다. 생각해 보니 항공기 안에서 기내식 사진을 찍은 기억이 있지만 그걸 들고 내리며 거추장스러워 했던 기억이 없다. 그놈의 거창한 선물짐에 신경쓰고 껄떡거리다 보니 잊은 모양이었다. 그러면 항공사로 전화부터 해 볼 일이었다. 이 때에서야 깨달았다. 스마트폰 필요없다고 멍청이폰 쓰는 나로선 중국남방항공의 한국지사 전화번호부터 확인해야 하는데 그게 당장 불가능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뜀도령이었고 그에게라면 실례가 안될 것 같아 그에게 전화했다. 과연 그는 같이 걱정해 줬다. 여행에 미치기로는 나 못지 않은 인간이니 공감 백배였던 모양. 곧이어 전화번호가 뜀도령으로부터 문자로 날아왔다. 일요일이었지만 다행이 아직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출국절차를 밟아야 하니 안으로 직원이 들어갈 수 없고, 연락해서 확인해 본 뒤 전화를 주겠단다. 공항을 향해 되될아 가면서도 직원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지 엄청 긴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직원으로 부터 막상 전화가 다시 걸려왔을때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ㅡ,.ㅡ; 부정적인 답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찾았습니다" 소리부터 해줘도 좋을것 같은데 차근차근 경위설명부터 하며 사람 속을 있는대로 졸여 빠작빠작 타는 냄새를 코로 맡고서야 "다행이 말씀하신 카메라가 그 좌석에 있더라"고 했다. 겉으론 예, 예 하면서도 속으로는 '결론부터 말 안해 이 웬수야?' 하며 속을 끓였던게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부터 나온다. 카메라를 돌려 받자 한없이 그 직원이 고마웠다. 사양하는 직원 앞에 선물 하나를 내려놓고 나오며 들여다 보는 카메라가 그렇게도 귀해 보일수가 있을까. 이란에서 만난 사람들, 이란에서 본 모든 것을을 기억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암담한 현실로부터 탈출한 덕에 이 일기장에 낙서를 할 수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일이다.

 

출근 하루 전날이다. 일찌감치 돌아와 충분히 취했을수도 있었을 휴식 시간이 많이 날아갔지만 이 좌충우돌 역시 추억의 한 페이지에 당당히 자리 잡을 것 같다. 부족한 알콜기도 달랠 겸 사진을 되찾은 걸 축하할겸 마사히 여행을 마친것을 자축도 할 겸 나는 냉장고에서 올리브 안주와 맥주부터 한 병 꺼냈다. 나 없는동안 냉장고에서 최상의 온도가 되어 준 맥주군에게 감사하면서 좌충우돌 여행의 마침을 자축해 마지 않았다.

 

오랫동안 벼르기만 했던 이란 여행을 마치고 나니 내겐 특별한 경험과 추억을 얻은 셈이었다.

이란과 우리는 현재 단교상태다. 이란은 우리에게 많은 호감을 갖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한국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공산품을 수입하는 나라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 조치에 우리가 동참할 경우 우리가 입어야 할 피해는 상당한 탓에 한국정부는 오바마를 엄청 설득해 댔다. 결국 금융제재에는 합류하고 수출은 계속 할 수 있었지만 이란이 우리에게 갖는 섭섭함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인 모양이다. 그들은 한국문화에도 상당한 호기심과 호감을 갖고 있었다. 한국인을 반가와 하는 정도는 터키에서 경험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정부는 내가 이란에 체류하는 동안 해당 지역을 벗어나도록 강력 권고하는 내용의 무나를 보냈다(물론 자동빵으로 보낸 문자였을테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의심스럽다. 많은 이들이 이란은 위험한 국가로 알고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향후 이슬람 과격단체 점조직이 유입될 가능성도 물론 배제할 순 없겠지만, 내가 머문 동안 이란에 만일 테러리스트가 있었다면 성질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내가 테러리스트였을게다. 이곳을 여행하는 유럽인들도 이란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오해가 이상한 믿음이 사람들에게 심어졌을까. 서방세계의 언론이 그들에게 있어 아웃사이더인 중동에 카메라를 들이댈 때는 안좋은 일이 있을 때 가 거의 대부분이다. 많은 외국인들이 북한과 대치중인 한국은 엄청 위험한 나라로 오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란인들은 외국인들에게 무척 친절하고 진정성 있게 대한다. 만난 사람들 하나하나의 잔상이 그들을 더욱 그립게 만든다.

처음으로 만난 이란계 미국인 바흐만씨. 그는 처음 만난 나를 자산의 어머니 집에 초대해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고 국내선 항공권을 쉽게 예약하도록 도와 주었다. 그 덕에 여행사를 찾아해멜 시간은 물론 육로로 이동했다면 엄청나게 잡아먹었을 금쪽같은 시간을 절약해 주었다.

쉬라즈에서 만난 나즈메군은 내게 다시 없을 친절을 베풀었다. 이틀간의 동행은 물론이고 밤잠을 설쳐가면서까지 도시락을 준비해 온 그 정성에는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파한의 로컬식당에서 만난 파타메군 역시 오후시간 내내 함께해 주며 추억을 선물로 줬다.

이스파한의 이슬람 사원에서 만난 사제와의 대화, 갖구운 빵을 내게 내밀며 호의 를 보인 빵집 주인, 테헤란 피루제 호텔의 친절한 주인 모사비씨 외에도 만난 사람들 모두가 인상적이었다.

 

여행중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에 많은 의미를 두는 나로선 이 번 여행은 무척 특별하다. 마쑬레에서 만난 남아공의 에디군과 윌리엄군, 이스파한에서 만난 일본의 아추코군과 테츠오군, 카샨에서 만난 홍콩의 에디트군, 비앙카군, 팬시군, 핑키군, 중국의 팽후군, 프랑스의 브앙슈군 등 모두가 나의 추억에 깊은 발자국을 찍어 놓았다. 그들 중 몇 몇은 이메일을 주고 받고있다. 감사할 일이다.

 

이 번 여행에는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출발전 샌들과 마데카솔 원액을 망설이다 준비하지 않은 일로 발가락을 다쳐 걷는데 애를 먹었던 일로부터 시작해 호텔예약이 꼬여 도착 첫날 고생한 일, 시간 여유 부리다가 국내선 항공기를 놓칠 뻔한 일, 전자모기향을 필요없을 것 같아 안챙겼다가 밤새 모기한테 뜯겼던 일, 화폐단위가 너무 큰데다 이상한 셈법을 쓰는 이란인들에 적응하느라 애먹은 일, 카메라를 흘리고 여행의 추억을 몽땅 말아먹을뻔한 일 등 헤매기도 많이 헤맸다. 하지만 다른 중동국가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스크 건축의 섬세한 문양과 물방울 모양의 돔,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세스의 역사가 얽힌 페르시아 유적 페르세폴리스, 깊은 산중에 그들만의 문화를 간직해 온 마을 마쑬레의 온기... 이런 것들을 본 것은 행운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그저 스치기만 했을 망정 그 안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도 내겐 소중하다. 미국의 눈치를 안보고 이란과 정치 경제적으로 교분을 나눌 그 날이 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그 때가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