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4 이란

좌충우돌 낭만의 이란 4(쉬라즈)

코렐리 2014. 10. 2. 14:43

2014.9.6(토)

한 도시를 제대로 보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이 곳은 페르세폴리스를 포함해 2~3일은 봐야할 도시였다. 그러니 최소 하루는 더 머물 참이었지만 아침에 호텔을 나서면서 체크아웃을 한 이유는 호텔이 그닥 맘에 들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 곳이 괜찮은 호텔이었단 사실은 이 날 새벽 다른 곳을 돌아다녀 본 뒤였다. 어쨌든 각설하고... 호텔을 나선 나는 지도를 펼쳐들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성채 유적지 아르게 카림하니(Arg-E Karim Khani)부터 가봤다. 그동안 많이 봐오던 아랍의 성채와는 좀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어쨌든 네 개의 탑을 두고 이를 기준으로 담을 둘러친 비교적 단순한 건축양식을 기초로 했고 각각의 탑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 성채는 Zand 왕조시대에 세워진 성채로 카림 한이라는 이름의 성군이 그의 통치시절에 살았던 곳이라 한다. 이 곳에 이제 막 도착해 사진 찍기 좋은 위치를 잡은 뒤 성채를 카메라에 담으려는데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톤의 여자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할로..."

나의 뒤통수에 대고 궁금증을 본능적으로 유발하게 만든 이의 형상을 확인하기 위해 뇌가 시키는대로 뒤돌아 보니 그 주인공은 160 조금 넘어 보이는 키에 검은 히잡을 두른채 선글라스를 착용한 얼굴만 내밀어 부분적 형상만 확인 가능한 이란 현지인 처자였다. 화장이 짙은 다른 여인네들과 달리 소박한 매력이 있어 보이는 처자였다. 그녀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목적으로 이란에 왔는지, 이 곳에 오기 위하여 어떠한 정보를 접했는지를 관심있게 물었다.

"나는 전부터 같은 중동에 있지만 이란은 아랍문화와는 전혀 다른 페르시아 문화권이고, 거의 대부분 순니파 이슬람교가 국교인 나라들만 방문해 왔던지라 그들과 전혀 다른 시아파 이슬람 문화에 대하여 궁금했다. 특히 페르시아 건축은 아랍세계에 영향을 미칠만큼 발달해 있어 특히 모스크 건축문화를 직접 보고 싶었다."고 설명한 뒤

자료는 가지고 갔던 론니플래닛 중동편을 내밀어 이란편을 펴서 내보였다. 그녀는 자기 나라에 대해 서방세계의 대중매체가 여행자들에게 어떠한 정보를 제공하는지 무척 궁금했던지 한동은 책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사실 좀 의외였다. 이란에서는 남녀가 유별해서 말을 걸면 괜한 오해를 받지 않을까 생각해서 심지어 나이든 여자와의 접촉 조차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먼저 다가와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을 내비치니 놀라울 뿐이었다. 역시 선입감이란 것은 외진 곳에 갖다 버릴 악덕임이 분명했다.

 

그녀는 자신이 유치원 파트타임 교사이기 때문에 시간 조절이 얼마든지 가능해서 만일 내가 원한다면 머무는동안 쉬라즈 구석구석을 안내하고 싶다고 말해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지금은 놀랍지 않지만... 어쨌든 여행중에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처자의 이름은 나즈메. 즐거운 마음에 긍정적인 답변을 하자 은행에 잠깐 볼 일이 있어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 은행이 코 앞에 있었다. 나는  그녀가 가진 약간의 짐을 거들며 은행을 같이 방문했다. 잠깐의 은행일을 마친 후 바로 코 앞 건너편의 성채부터 들르기로 했다. 성채의 4개 탑 중 하나는 아래 사진에서와 같이 약간 기울었다. 지반 침하에 의한 피해인데 아직도 조금씩 침하되는 중이어서 앞으로 더 기울게 될 것 같단다. 나즈메의 설명.

 

자신의 표값은 스스로 내겠다는 나즈메군을 말리고 300,000리얄을 내밀었다. 매표소에는 입장료가 150,000리얄로 표기되어 있었다. 100,000리얄을 돌려준다. 아항. 내국인의 표값은 1/3이란 얘기. 매표소에 표기된 입장료는 외국인을 위한 것이고 내국인의 입장료는 표기를 하지 않은 탓에 내외국인의 입장료가 같은 줄 알고 있었다. 이런 쿨한 경우가 있나...? ---> 오해

나즈메군이 가이드 필요하냐고 물었다. 기왕에 현지에서 친구가 생겼으니(아무나 보고 친구라고 부르는 서양인들을 내가 닮아가기 시작한건가?) 릴렉스하게 구경하고 싶었다. 나즈메군이 아는 한도 내에서 가는 곳마다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는데 현지인 치고는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다(원래 자기 동네 역사에 대하여느 현지인이 더 모르는법) 

 

사진을 찍고 나니 수평도 잡히지 않은채 삐딱하다. 대낮엔 디카 모니터가 잘 안보인다는게 문제다.

 

안으로 들어갔다. 쉬라즈를 다스렸던 카림 한은 모든 일에 백성부터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성품으로 오늘날까지도 추앙을 받고 있다고 한다.

 

가운데 앉은 이가 카림 한이고 찾아온 사신을 접견하는 모습을 재현했다고 한다.

 

건물 부분부분을 차지하는 스테인드 글라스는 빛을 받아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안으로는 다양한 색이 반영된 빛이 들어온다. 밝은 분위기를 좋아하는 내 기준엔 채광량에 아쉬움은 좀 있다.

 

 

기념품 가게에는 섬세한 수공품이 많이 진열되어 있다.

 

성채에서 나오자 나즈메군은 자신의 표값을 대신 냈으니 갚겠다며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이곳 이란의 아이스크림은 무척 특이하다. 쌀은 아닌데 쌀과 비스므리하게 생기고 껄쭉한 무언가를 아이스크림과 섞어 내놓는다. 아이스크림에 이 요상한 이물질을 곁들여 먹으면 맛도 좋은데다 먹고나면 배가 든든했다. 근처 돌벤치에 걸터앉아 맛 본 이 아이스크림은 지금도 기억에 군침돌게 한다. 

 

다음으로 들른 곳이 바킬 바자르(Bazar-E Vakil)

 

일단 안으로 들어서면 높은 아치형 천장과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이 딱 벌어졌다. 

 

안에 들어가 천천히 구경하자면 다른 바자르 너댓개를 도는 정도는 족히 될 정도의 시간도 잡아먹을 정도다. 아래 사진의 장식은 페르시아 전통식당이나 카페에 많이 사용되는 장식물이라고 한다.

 

안에서 밖으로 한 컷.

 

구역별로 없는 품목이 없다.

 

아마도 이 곳에서 사지 못할 물건은 거의 없는듯하다.

 

마쑬레에서도 봤던 수공품 철제 항아리.

 

낙타의 뼈로 만든 보석함. 그림은 일일이 손으로 그린 예술작품들이다.

 

다음으로 들른 곳이 알리 에프네 함지(Ali Efne Hamzi). 이 곳은 이 곳 쉬라즈에 오면 반드시 들러보아야 할 이슬람 성지 중 하나이며 중요한 건축물 중 하나라고 한다. 나즈메군은 내가 가진 자료가 빈약하다며 어찌 이런 곳에 대하여 소개 한 줄이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가 본 뒤 나즈메군이 아니었으면 결코 볼 수 없었을 이 곳은 정말 아름답고 중요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책자를 가진 이들은 모두 다 이 곳을 빼먹었을테니 내겐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문제는 이 곳 촬영이 극히 제한되는 관계로 카메라 반입이 불가능하다. 이 곳은 돔형 지붕이 인상적이고 그 곡선이 유려하고 아름다워 한 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얹혀진 돔은 유럽에서 아랍의 돔을 보고 자기네 건축에 도입한 반원형 돔과 달리 떨어지는 물방울을 거꾸로 세워 놓은듯한 형태로 아름답기가 그 한 수 위일 뿐 아니라  당시에도 고급 기술을 가졌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휴대폰으로 찍은 알리 에프네 함지 건물의 외관과 정원

 

 

건물입구.

 

안으로 들어가 본 나는 놀라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흔히 아라베스크 양식으로 일컬어지는 실내 장식이 전부 거울로 되어 있어 황홀함의 극치를 빚어냈다.

 

이건 도대체 뭐냐. 사진을 꼭 찍고 싶었다.

 

실내에 관리인으로 보이는 이에게 물었다. 카메라는 밖에 두고 왔지만 휴대폰으로라도 이 아름다운 실내를 꼭 몇 컷 찍어 가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미소를 지으며 플래시만 사용하지 말고 단 몇 컷만 찍으라며 허용해 준 덕에 몇 장 가져 올 수있었다. 

 

안에서는 예배를 올리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거울 장식과 화려한 샹들리에를 보다보면 별천지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한동안 서둘러 열심히 뜯어 보다가 더 지체하기 미안한 생각이 들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나즈메 군 때문에 밖으로 나왔다. 나즈메군이 보이지 않았다. 엥? 여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이 따로 있어 그녀도 둘러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이란의 이슬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간과한다는 모스크. 나즈메군이 나를 그리로 안내했다.

 

이란의 모든 모스크들이 그렇듯이 장식을 보면 무척 화려하고 섬세하지만 다른 모스크들에 비하면 규모와 중정 그리고 그 안에 자리잡은 정원 등에서 모든 것들이 소박하고 아담하다.

 

나즈메군이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지만 기억에 남는게 없으니 이 어찌된 일이냐.

 

모스크 이름이 마드라세 한이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중동지역에서 불리는 마드라사 또는 마드라세란 과거 성직자를 양성하던 일종의 신학대학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우리는 이 곳을 둘러본 뒤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뭔지 모를 카리스마를 내뿜는 관리인이 우리를 배웅해 주고 난 뒤 문을 닫았다. 우리는 감사의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떴다.

 

나즈메군이 기도시간이 되었으니 5분만 기다려 달라며 모스크에 들어 갔다. 나도 따라 들어가 남성구역에 앉았다. 지나가던 남자들이 자그마한 모스크에 들어가 함께 기도를 올린다. 이슬람은 내가 믿는 카톨릭교 보다도 더 개방적인 사람들이어서 이교도의 방문이나 카메라 셔터에 불편함이나 불만은 내비치지 않는다. 물론 모로코 같은 예외는 있지만서두...

 

이 곳을 나오자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오후 두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나즈메군이 사 준 아이스크림이 간식으로는 무척 굵직했기 때문에 그 때까지 식사를 건너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바킬 바자르에서 보아 두었던 레스토랑으로 돌아가는 길로 들었다. 이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란의 전통 사탕이다. 우리 어렸을 때 흔히 얼음사탕이라고 불렀던 그런 사탕의 모양새와 맛을 가졌다. 이마도 사탕이라는 간식거리를 처음으로 만들어 먹었던 사람들이 중동인들이었던 만큼 이 것이 사탕의 원형이 아닐까 지레짐작해 본다.

 

우리는 바킬바자르를 돌아다니다 발견한 카페를 봐두었다. 잠깐 커피를 마시며 쉬려 했던 곳인데 음식 냄새가 좋아 다시 찾은 곳이다. 2층으로 올라가 식당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아 봤다. 내가 자기네를 은근슬쩍 찍으려 한 것으로 생각했는지 자기네를 찍고 싶으면 가까이 와서 찍으란다.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벽화에 그려진 타일은 페르시아의 역사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두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항아리에 고기와 콩 그리고 토마토 등 갖은 야채를 담아 푹 삶은 것으로 국물을 따라내고 건더기는 짓이겨 전병에 싸서 먹는다. 국물은 전병을 뜯어 국물에 흥건하게 적셔 먹는다.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행촉이 약해졌나보다. ㅡ,.ㅡ; 나머지 하나는 쌀밥을 얹은 케밥. 케밥은 꼬챙이에 꿰어 화덕에 구운 것이고그 위에 버터로 볶은 밥을 엊고 여기에 누런 샤프란 향료를 가미한 뒤 구운 토마토를 얹어 내놓았다. 음식이 아주 좋다. 나즈메군도 음식의 질이 상급이라며 만족해했다. 

 

나올때 계산하면서 깜짝 놀랐다. 음식의 질에 비해 무척 저렴한 계산서에 나즈메군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나즈메군과 식사하며 한 컷.

 

다음으로 들른 곳은 하맘. 중동지방을 여행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하맘은 공중목욕탕을 말한다. 오래된 하맘 건물 안에 마네킹을 두어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했다.

 

 

나즈메군의 말에 의하면 왼쪽에 흰 옷을 입은 아저씨는 때밀이 겸 맛사지맨이란다. 한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때밀이"라 불렸다고 했더니 단어가 무척 재미있다며 웃었다.

 

하맘 한켠에는 결혼식에서의 신부방 풍경을 묘사해 놓은 방이 있다. 시집을 가고싶은 마음인건지 나즈메군은 이 방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즈메군의 설명에 따르면 하맘에는 이발사는 물론 치과의사도 있어 남자들의 종합 휴식처였던 모양이다.

 

미로와도 같은 바킬바자르를 나온 우리는 바로 옆 바킬 모스크(Vakil Mosque)를 찾았다.

 

바킬 모스크의 입구

 

벽돌에 칠을 하지 않아 자연스런 느낌을 주는 자연색색이 편안함을 덤으로 준다.

 

이란의 사원은 건물 전체를 타일로 덮고 있는데 그 안에는 각종 문양과 문자 그리고 꽃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동서양의 접점인 터키, 아랍세계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 모로코, 두바이, 카타르 등의 모스크들과는 건축양식과 장식면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양식이 독특함으로 말하자면 거의 터키의 모스크 양식만큼이나 독특하다.

 

바킬 모스크는 이 곳 쉬라즈에서 가장 중요한 모스크라고 한다.

 

 

가운데가 뾰죽한 아치와

 

비스듬한 주름 문양의 기둥들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기둥과 아치들이 모여 연출하는 연속된 배열이 건축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을 극대화 한다.

 

이 아름다운 모스크의 모습을 유지하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장인들의 노력이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장식 하나하나를 들여다 보면 이 건축물을 세우기 위해 들인 공이 감동적일 정도다.

 

모스크는 사각으로 지어지고 입구와 반대편 홀 위를 각기 두개의 탑을 올려 안정감이 느껴진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나시르 올몰크 모스크(Nasir-Ol-Molk Mosque)

 

사각건물 위에 물방울 모양의 거대 돔이 올라 앉아 곡선의 유려함을 한껏 뽐내고 있어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그리 크지 않은 이 모스크 역시 실내를 유리로 장식했다. 이 곳 역시 무척 아름답지만 오전에 들렀던 알리 에프네 함지에는 필적할 바는 아닌듯하다.

 

기독교로 따지면 주일학교쯤 되나보다. 이들은 교사를 중심으로 코란을 공부하고 있었다. 어린 친구들이지만 사뭇 진지한 모습이 경건하다.

 

코란을 읽는 신도의 모습.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는 강한 에너지가 나온다고 한다. 정신적으로는 가장 고양된 순간이기도 하고. 그 에너지가 보는 이로 하여금 경건함을 느끼게 하는 모양이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하페즈의 모슬렘(Mauslem of Hafez). 즉 하페즈의 묘지이다.

 

하페즈는 이란인들로부터 추앙받는 시인이었다고 한다. 정자처럼 만들어진 이 곳에

 

대리석으로 된 하페즈의 관이 놓여져 있다. 그가 이 곳에 잠들어 있다고 한다. 늦은 시간임에도 많은 이들이 찾아와 참배를 하고 정원을 즐기니 하페즈는 영원한 잠에 들고도 곤히 쉴틈은 없겠다.

 

기도시간에 이르자 사제를 중심으로 기도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가만있을 내가 아니지. 일단 카메라에 담고 볼 일이다.

 

기도시간이 지나가자 마자 또 한 남자가 다가와 자기 딸이 나와 사진을 찍고싶어한다며 함께 포즈를 취해 주길 부탁했다. 귀여운 소녀와 함께 한 컷. 기도를 마치고 마침 돌아온 나즈메 군이 자기가 없으니 내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빠져 주랴고 물으며 웃었다.

 

어둠이 깔린 하페즈의 모슬렘 정원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곳을 둘러본 우리는 입구 근처의 야외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황금빛의 투명액에 짙은 황금색의 앙금이 가라앉은 이 음료가 나의 호기심을 잔뜩 자극했다. 음료의 이름은 시심브리움 이리오(Sisymbrium Irio)라 한다. 화려한 생김새와 달리 맛은 그다지 강렬하지 않고 은은한 향을 가진 특이한 음료였다. 이후에도 가는 곳마다 이 음료가 눈에 띠는 것을 보면 이란에서는 무척 대중적인 음료인 모양이다.

 

카페는 이국전통의 흥취가 듬뿍 깔려 있어 이 곳에 몸을 담고 주변을 둘러보는 기쁨은 최고라 할만했다.

 

저녁 아홉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나즈메군의 집은 이 곳에서 한시간 반가량 소요되는 고셍 있다고 한다. 느은 시간에 나를 위해 종일 배려해 준 그녀를 그냥 보낼 순 없었다. 싫다는 그녀를 굳이 택시를 잡아 태우고 함께 나즈메 군의 집앞에 내려준 뒤 호텔로 돌아온 시간은 적잖이 늦은 시간이었다. 나즈메군은 페르세폴리스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고 아침 식사는 물론 점심까지 자신이 준비할테니 아무것도 사지말란다. 나야 현지인 친구가 함께해 주는데다 가정식까지 맛 볼 기회가 생겼으니 행복할 따름이다. 호텔에 맡긴 짐을 다시 찾은 뒤 새 호텔 찾기도 귀찮아 방이 있느냐고 물으니 이미 다 차고 없단다. ㅡ,.ㅡ; 더 나은 호텔을 찾아 나섰다.

 

괜찮은 호텔들은 이미 다 찼고 방이 남아있는 곳들은 에어컨 가동때문에 시끄럽거나 우중충한 곳이라 마음에 차지 않았다. 간밤에 묵었던 호텔이 좋았는데 그때는 몰랐다. 간신히 방이 있다는 호텔을 찾았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호텔이었다. 방이 남았단다. 숙박비는 같은 30토만이었고 전에 묵었던 호텔보다 나은 것이 전혀 없었다.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그 난리를 치게 될줄은 꿈에도 모른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