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9.3(수)
페르시아의 문명과 시아파의 이슬람 문화에 대하여 오랫동안 호기심을 갖고있었지만, 뱅기표를 미리 사두려 하면 미국과의 긴장관계가 심화되어 가기를 미룬 것이 두 번이었다. 이번엔 반드시 떠나리 다짐하던 나는 황금연휴를 활용하기로 작심했다. 아니면 방법도 없다. 추석연휴 3일에 5일의 휴가를 덫붙여 두 번의 주말을 포함하니 12일의 일정이 가능했다. 항공권은 미리 구입할수록 싸다. 6월 중순경 인터넷을 뒤져봤다. 중국 남방항공의 항공권을 구입했다. TAX 포함 1,299,000원. 일찍 샀지만 그다지 싸지는 않다. 9월 3일 08:30 인천을 출발해 북경을 거쳐 테헤란으로 들어간다. 9월 3일 22:00에 테헤란이맘 호메이니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13일밤 23:23에 다시 이맘 호메이니 공항을 떠나니 현지에서 열흘의 시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회항은 우루무치를 거쳐 다음날인 14일 14:00에 인천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떠나기 하루전인 9월 2일 짐을 싸들고 출근해 남은 업무를 야근으로 정리하고 공항이 가까운 아버지댁으로 갔다. 외국의 형네집으로 출타중인 노인네들이 안계시니 집안은 텅텅 비었다. 새벽이 되자 비가 세차게 왔다. 잠결에도 걱정이 되었다. 이 정도 비면 신발은 다 젖을테고 비행기에 올라탈때까지 젖은 신발 신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가져갈까말까 고민끝에 짐을 줄이기 위해 집에 두고 온 샌들이 나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부친의 집을 나서던 새벽 5시까지도 비는 기세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비오는 날의 쪼리가 위험하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신발 젖는것이 두려워 신장에서 쪼리를 하나 꺼내 신고 운동화는 비닐봉지에 넣어 들었다. 15분 거리의 지하철 역으로 가는 것까진 좋았는데 거의 역에 다 도착해 결국 보기좋게 비끄러졌다. 발가락이 아스팔트에 마찰하면서 발톱이 일부 부러지고 그 밑에 살점이 일부 떨어져 나가는 중상(?)을 입고 나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역시 가져올까말까 고민하던 마데카솔 원액이 역시 나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형이 보내온 마데카솔 원액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는 놀라울 정도의 효과가 있고 실제 시판되는 연고에는 이 원액이 아주 미미한 양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상처용 연고를 사 바르고 반창고를 둘렀다. 가지가지 후회막심이었으니 시작부터 좌충우돌인 셈이다.
양말을 신고 운동화를 뽀송뽀송하게 신은 댓가 치곤 컸다. 하지만 걸을만은 했다. 이게 빨리 낫지 않으면 주구장창 걸어야 하는 배낭여행의 대장정이 걱정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티케팅을 하며 좀 편하게 쉬고 싶었다.
발권 담당자가 통로와 창가 옵션을 물었다.
"영어하구 중국어 합니다. 가능하다면 비상구로 주세요."
발도 불편하고 워낙 장거리라 편히 쉬고 싶어 밑져야 본전이니 널찍한 비상구 자리로 한 번 요구해 봤다. 비상구 좌석은 익히 알다시피 비상사태때 문을 열고 구조작업에 협조해야 하는 좌석인만큼 아무에게나 내주지는 않는 자리다. 염치 좋게 달라고 했더니 기냥 내준다. 덕분에 편히 가게 생겼다.
열차를 타고 정해진 탑승구로 찾아갔다.
기내식이 먹을만하다. 옌징 맥주도 나오고...
북경에 도착하자 참으로 묘한 공항관리 시스템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일단 비행기에서 내리자 한 직원이 내 이름을 A4용지에 써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환승할 곳이 50번 탑승구란다. 겨우 그 얘기 해주려고 날 기다리나 의아했다. 인천에서 내 준 테헤란행 항공권에 트랜짓 탑승구 표시가 없었지만 여기저기 달린 모니터를 보면 될텐데 뭐하러 나와 사람 기다렸다 얘기해주나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항공기 환승에는 출입국절차 없이 게이트만 찾아가 갈아타는게 보통이다. 환승 안내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니 입국심사대에 서게 된다. 이건 뭐임? 이상해서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물어보니 일단 입국 심사 후 다시 출국심사를 받아야 50번 탑승구로 갈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랬군. 이해가 가지 않는 불편한 시스템이다. 그 덕에 50번 게이트에 도착할 때까지 짐검사 여러번 더 받았다. ㅡ,.ㅡ; 어쨌든 안내데스크 앞에서 아무 준비나 자료도 없이 무작정 6개월간의 배낭여행길에 오른 한 대학생이 내게 중국 입국절차를 물어왔다. 가이드북의 노예가 되지 않고 무작정 아메바처럼 다니는 것도 훌륭한 여행법이 될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편 부럽기도 한량 없었다. 나도 해보고 싶은 스타이릐 여행이다.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물어보라고 하니 언어에 문제가 많아 묻기를 망설이는 친구였다. 중국에서의 환승대기시간이 길어 북경시내 구경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안내데스크의 직원에게 물어 24시간 이내에는 비자가 필요없음을 확인해 주었다. 그는 곧 일행이 생겨 북경 시내를 함께 다녀오기로 했다는 걸 보니 부침성이 있거나 생존력이 강한 친구였다. 입국 후 다시 출국절차를 거친 나는 50번 승강장이 아직 열리지 않았음을 확인한 뒤 커피숍에서 남은 시간을 죽치기로 했다. 환승대기시간이 5시간이 넘었지만 북경은 이미 두 번이나 다녀왔고 한 번 길이 밀리면 대책도 없었다. 게다가 발도 시원찮으니 입국해서 싸돌아다니기 보다는 쉬는게 최선이었다.
그동안 가져간 가이드북 이란편을 꼼꼼히 봐두었다. 사실 그동안 바빠 제대로 계획도 못세웠다. 당시의 계획은 쉬라즈(Shiraz)-->페르세폴리스(Persepolis)-->야즈드(Yazd)-->이스파한(Esfahan)-->테헤란(Tehran) 정도였다. 워낙 땅덩어리가 커서 이동시간도 최소 4시간에서 8시간 또는 그 이상이 소요되는통에 이 정도가 목표였다. 하지만 현지에 막상 도착해 보니 도시들이 그다지 크지 않아 카샨(Kashan)을 추가로 계획에 넣었고 가이드북에서는 북쪽 산간마을인 마쑬레(Masuleh)를 절대 강추하고 있었다. 남는 시간 덕에 계획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발가락이 빨리 나아야 돌아다니는데 정말 걱정이었다.
시간이 되어 문제의 50번 탑승구로 갔다. 발은 약간 절뚝거릴 수밖에 없었지만 아닌척 하느라 나도 애를 많이 썼다. 발까지 저는 주제에 무슨 여행인가 측은하게 쳐다볼 시선들이 두려웠다.
시간이 되어 버스를 타고
항공기에 올라탔다.
인천에서 발권담당자가 준 비상구 좌석은 이곳에서도 유효했다.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나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기내식이 질보다 양으로 승부한다는 느낌이 든다.
도착하고 보니 테헤란이 아니고 우루무치란다. 나는 순간 항공기를 잘못 탔나 덜컥 의심이 들었다.
아~ 젠장 우루무치에서 '내릴 사람 내리시고 탈사람 더타셈'의 시스템이었다.
우루무치에서 내려 잠시 대기 후 짐검사 후 또 다시 탑승한다. 이상하게 생긴 티켓을 새로 내준다. 참 공항시스템 .... 거시기하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때 환승시에는 이놈의 시스템때문에 하마터면 갈아탈 항공기를 놓칠뻔 한데다 입국심사자는 극도로 불친절했다. 지독하게 못생겼으면 마음이라도 이뻐야지 ㅡ,.ㅡ;
승객을 뱉어냈다가 다시 삼키기위해 대기중인 중국남방항공의 항공기. 이 곳 환승대기시간에 한 노인이 말을 걸어와 심심찮게 대기시간을 보냈다. 그는 LA에 거주하는 이란계 미국인 바흐만씨였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건축사업을 하던 그는 어머니 방문차 이란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기내식이 갈수록 양으로 승부한다. 질에는 관심도 없나보다.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정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출발 이틀전 테헤란에 시설좋고 친절하기로 유명한 Firouzeh 호텔에 접속해 예약을 했다. 밤늦은 시간에 도착하는 관계로 픽업서비스까지 신청했다. 너무 늦게 연락을 했을까. 출발전까지 회신이 없어 예약여부에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바흐만씨는 내 예약이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호텔 구하기에 용이하지 않으면 자신의 어머니 집으로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고마운 제안이지만 난 신용을 지켜야 할 입장이었다. 바흐만씨는 짐을 찾기 위해 비자를 받으러 가는 내게 예약이 되었든 안되었든 비자를 얻은 뒤 밖에서 보자며 나와 다른 길로 나갔다. 간혹 비자가 거부된 한국인이 있다는 얘길 들은적이 있었다. 조금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비자가 거부되면 그야말로 나까무라 신세다. 여권을 내보이고 증지를 구입하려니 보험부터 들란다. 여행자 보험인가? 보험을 드는 곳이 어딨나... 카운터에 보험이 어쩌고 표시된 곳에 직원이 있을걸로 생각하고 그런 곳을 찾았다. 입국심사대 말고는 안보이는뎅? 지척을 두고 한참을 뱅뱅 돌고나니 경비아저씨 한 명 정도나 근무할법한 조그만 알미늄 부스에 직원이 있었다. 콧구멍만한 카운터는 높게 설치된데다 두명이나 되는 직원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다. 아, 젠장. 숨바꼭질 하냐? 친절하다 못해 외국인하고 놀아주기까지 하냐.
어쨌든 무사히 비자를 받아 밖으로 나왔다. 그 곳에 바흐만씨는 없었다.
나는 피루제 호텔 홈페이지에서 사전에 출력한 자료를 꺼내 전화번호를 확인한 뒤 통화를 시도했다. 페르시아어로 안내가 나왔다. 아 젠장. 나 페르시아어 모른다고...! 좀있으니 영어가 나온다. "이 번호는... 수 없습니다." 아~ 젠장. 여러번 시도해 봤지만 허사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번호는 맞는데 로밍서비스에서 무슨 에러라도 난건지 알수가 없었다. 택시를 타고 그 호텔로 가볼까 생각하다가 바흐만씨가 혹시 다른 출구에서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아픈 발을 절뚝거리며 출구가 더 있나 찾아 보니 바흐만씨는 그때까지 나를 다른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의 호텔예약이 실패했음을 알고 자기 어머니댁에 같이 가자고 했다. 막막한 가운데 친구가 생기니 마음이 편안했다. 바흐만씨의 어머니의 집은 테헤란에서 가까운 카라즈(Karaj)란 곳이었다. 도착한 시간은 새벽이었다. 그의 어머니와 형님은 오랜만에 온 바흐만씨를 기다렸고 손님으로 불쑥 방문한 나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잠자기전 식사도 잊지 않고 준비해 주신 덕에 나도 끼어 먹었다.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드니 편안하기 짝이 없었다. 이란에서의 첫 밤이 그렇게 편안하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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