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여행/클래식음악

벼르다 건진 음반 석 장

코렐리 2013. 2. 18. 17:51

화요일(2월 19일)의 귀국을 일정으로 두고 영국으로 출장갔던 리빙사 캡틴 블루노트군이 예정보다 일찍 귀국했는지 토요일(2월 16일) 전화가 왔다. 간 이유는 당연히 음반 구하러. 일찍 온 이유는 생각보다 일을 일찍 다 봐서. 눈알 빠지게 기다리던 나는 눈이 반쯤 튀어나와 있었다. 남의 출장에 설레발 치며 눈빠지게 기다린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롤링스톤스나 레드 제플린 아니면 핑크 플로이드 초반을 혹시 구해 올까 싶어서였다. 떠날 때 당부도 했고. 구했다면 물론 내가 가장 먼저 강탈해 오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영국 본토 갔다가 돌아온 블루노트군의 이야기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현지에서도 좋은 음반은 잘 나오지 않고 나오면 음반 값이 너무 올라 부르는 값이 황당하기 짝이 없더란다. 어쨌든 영국에서 돌아와 음반 몇 장 들고 왔으니 생각 있으면 구경 오라며 해 온 연락이었다. 당일엔 약속이 있어 그 다음날인 2월 17일 일요일에 바람소리군과 함께 바람같이 날아 리빙사로 갔다. 영국에서 건져온 음반이라며 몇 장 보여준다. 음 좋은 음반이군. 음 좋은 음반들이군... 하며 한 장 한 장 넘기다 눈이 뒤집히는 음반 한 장이 심장을 멎게 만들었다. 이게 뭐냐. 코코코코코..........코렐리! 우와 만쉐이 만쉐이! 심봤다이!

 

프랑코 코렐리의 열렬한 팬이며, 카페와 블로그에서도 닉네임을 따다 씀에도 불구하고 초반은 한 장도 손아귀에 쥐지 못한 모순덩어리의 나다. 이젠 어디 가서 코렐리란 이름 그나마 좀 떳떳하게 걸게 생겼다. 가장 갖고싶은 석 장 중 한 장인 오페라 아리아집이다. 으따 그눔 자식 잘생겼다. 나보다 잘생긴 놈은 죄 다 맞아야 하지만 코렐리 형님은 예외로 해 주드림다. 음하하 음하하 음하하... 아래 사진은 재킷 전면이다.

 

 

뒷면 사진이 찍어놓고 보니 좀 삐딱하다. 생각이 좀 있는 사람은 감안해 볼거라 생각한다. 아님 말구. 50-60년대 영국 초반들의 전형적인 말아 접는 식의 마무리가 흥분을 머금치 못하게 만든다. 일련번호 "ASD529" 표기 역시 가슴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레이블을 보자구. 축음기에 귀를 기울이며 귀를 쫑긋 거리는 귀여운 강아지 니퍼(Nipper)가 상단에 그려져 있고 밝은 아이보리 바탕에 금색 테두리. 일련번호 ASD 스테레오 시리즈의 초창기 초반이라는 얘기다. HMV(His Master's Voice)사의 일명 White-Gold 레이블반이다.  반질은 아주 훌륭하다. 어딘가에 긁히거나 찍힌 자국도 없다. 이너슬리브에 의한 스커프도 거의 없다. 55년이 넘은 음반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좋아좋아... 허걱! 근데 이게 모야? 나뽀쎌(Not For Sale)이라고라?

 

 

이게 먼소리냐? 출시 당시 판매용이 아닌 공장 테스트 샘플반이란 얘기다. 이건 또 먼 소리냐. 이게 바로 스템퍼가 제작 되자 가장 먼저 찍은 몇 장 중 한 장이란 얘기다. 이건 또 먼 의미냐.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초반 중에서도 음골이 가장 날카롭단 얘기다. 그럼 이건 또 무슨 싸운드냐. 같은 엄마 배(스템퍼)에서 나온 음반들 중에서도 특히 음이 짱짱하고 좋단 얘기다. 그러면 이건 또 무슨 말이냐. 프랑코 코렐리의 팬이라면 모두가 날 질투할거란 얘기다. 음무하하하핫!

어쨌든 나불거림을 중단하고 턴테이블에 얹어본 감상을 이야기 하자면... 

일부러는 아니었지만 턴테이블에 먼저 얹은 면은 1면이 아닌 2면이었다. 아마도 Not For Sale 스티커가 붙은 면이 당연히 1면일거라고 무의식중에 받아들인 모양이다. 돌아가는 음반에 바늘을 얹자 증폭되는 푸근한 바늘긁힘 소리가 편안하다. 먼지에 의한 잡음도 그다지 없었다. 이너 슬리브 사진은 오리지널의 것이 아니라서 생략!

 

 

첫 곡은 푸치니 투란도트(Turandot) 중 네순 도르마(Nessun Dorma: 공주는 잠 못 이루고)

그 유명한 전주곡이 나오고 코렐리가 입을 연다. Nessun Dorma Nessun Dorma... 그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돌고 닭살이 돋는 느낌이 엄습한다(과장 아님). 약간은 낮은 톤, 약간 섞인 비음, 특유의 섬세한 비브라토, 넘치는 카리스마. 세기의 드라마티코라 할 만하다. 오늘날엔 도대체 왜 이런 가수가 없는지 아쉽기만 하다. 마지막에 길게 뽑는 하이C는 전율의 절정에 이르게 한다.

 

역시 푸치니의 토스카 중 E Lucevan le Stelle(별은 빛나건만).

성량이 큰만큼 전반적으로 목소리가 우렁차다. 나는 성악가들의 비브라토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다. 비브라토를 적게 쓸수록 그 가수를 좋아하는 경향도 있다. 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렐리의 비브라토에서는 엄청난 카리스마와 매력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카바라돗시(프랑코 코렐리 분)의 처절한 절규. 주세페 디 스테파노도,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이 노래를 무척 잘 부르고 또 아름답게 부른다. 하지만 그들의 절규는 코렐리만큼 처절하지는 않았다. 

 

이 음반에는 푸치니의 곡 외에도 마이어베어, 도니체티 등 이탈리아 오페라 거장들의 아리아들을 담고 있는데 버릴 곡도, 버릴 녹음도 없다. 다만 그의 최고 장기 중 하나인 레온까발로의 팔리아치와 벨리니의 노르마에 삽입된 아리아가 하나도 없는게 좀 아쉽지만 이건 내 욕심에 불과하겠지.

 

 

이 번에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앙드레 클뤼탕스가 프랑스국립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한 불세출의 명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이 곡은 원래 모노 초반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번에 눈에 들어 온 스테레오 초반. 허걱! 이거 혹시 2000년대 재발매반 아냐? 흠집 없는 완벽한 보존상태에 놀라 설마 하고 눈을 씻으며 봤지만 1959년 초반이 틀림 없었다. 사실 이 음반은 리빙사 캡틴인 블루노트군이 누군가 한꺼번에 처분한다는 연락을 받고, 그 음반을 구입하러 간다길레 호기심에 따라 갔다가 그 때 보긴 했다. 내가 가져 가겠다고 그때 이미 점찍어 놓았던 음반이다.

 

 

일련번호 SAX 2315 표기가 굵고 선명하다. 1959년에서 60년 사이에 출반되며 부여된 일련번호다. 세월에 따른 일부 변색을 제외하면 거의 신품수준이다. 역시 50-60년대 영국식 말아 접기식 재킷 마무리다. 미국의 음반사들은 앞장과 뒷장을 사각으로 따로 만들어 덧댄 뒤 그 위에 인쇄된 종이를 덮어 드레싱 했다. 그 결과 오늘날 50-60년대에 출반된 음반 재킷들은 드레싱한 바로 그 앞뒷장의 접합부에서 찢어지기 시작해 재킷이 점점 크게 입을 벌리는 중이다. 어쨌든 영국반은 재킷, 이너슬리브, 사용된 바이닐(Vinyl), 음질 모두에 앞선다. 오죽하면 미국의 녹음도 오리지널반보다 영국 라이센스의 값이 더 나갈까. ㅡ,.ㅡ;

 

 

레코드를 보호하는 이너 슬리브(inner sleeve)다. 이렇게 생긴 이너 슬리브는 모노 음반에 사용된걸로 아는데 이거 어떻게 된거지? 바뀌었나? 아님 스테레오 초창기까지 이걸로 같이 썼나? 나도 몰라. 좀 더 아라바야겠구만. 어쨌든 약간의 변색만 제외하면 이 역시 신품수준이다.

 

 

영국 컬럼비아사의 스테레오 초창기 레이블. 소위 Blue-Silver 레이블반이다. 클래식 레코드 매니아들이 보면 거의 쓰러진다. 이 때의 초반이면 아무리 상태가 좋아도 무지개빛은 거의 남지 않는다. 허. 이 물건은 그 무지개빛이 아직도 남았다. 틀어봤다. 아니 이게 뭐야? 웬 잡음이 일케 많어 이거? 뺀질뺀질한 반질과 달리 배경 잡음이 거의 찌개 끓는 수준이었다. 도대체 먼지가 얼마나 끼었길래... 얼마전에 구해 둔 엘피 클리너를 이용해 열심히 닦은 뒤 다시 얹어봤다. 잡음이 상당히 많이 없어졌다. 역시 절품되기 전에 엘피 클리너를 사두길 잘했다. 이 녹음은 전부터 오랫동안 들어왔다. 새삼 거론할 이유도 없는 연주요 음질이지만 역시 거장들의 불꽃 튀는 열연은 흥분되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눈을 감고 집중하기에 손색이 없다. 거장 오이스트라흐라는 이름만으로도, 녹음이 귀한 클뤼탕스의 반주라는 이유만으로도 행복한 음반이다. 1악장 마지막 약 3분여의 배경잡음이 해결되지 않음이 좀 섭섭하긴 하지만 그 이상 바라기도 어려운 물건이다.

 

 

 

이름 하나에도 자다말고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나의 아줌마 요한나 마르치.

그녀의 쿠다르셰 미공개 10인치 방송녹음반(2LPs)이다. 이걸 손아귀에 쥐고 심장마비 직전까지 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마르치의 쿠다르셰 초반 7장 중 유일하게 구하지 못한 음반이 바로 이 음반인데 이 날에야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 마을 잔치를 열기라도 할까부다. 이 음반은 블루노트군한테서 반 강제로 빼앗아 오다시피 했다. 그도 마르치의 쿠다르셰를 시리즈로 모으던 중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 마지막 남은 한 장이라는 말에 흔쾌히 양보해 주니 고맙게 집어올 수 밖에. 10여년 전 처음 이 음반을 출시하던 당시 시리즈 중 가장 먼저 소진된 바 있다. LP 음반은 바늘을 이용해 정보를 읽어들이는 특성상 회전중인 음반의 중앙 레이블 쪽으로 바늘이 가까이 들어갈수록 원음 재생이 불리해진다. 단위 시간당(회전당) 읽어들이는 정보의 양도 그만큼 적어지지만, 암의 각도도 바늘이 외곽 쪽을 읽을 때에 비해 정보읽기에 좋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기가 별로 없는 것이 10인치반인데도 이상하게 마르치의 쿠다르셰 시리즈 중 유일한 10인치반인 이 음반이 가장 먼저 소진되었다. 국내에 쿠다르셰의 다른 시리즈에 비해 적게 국내에 들어온 이유다. 아래 사진은 음반 두장을 넣기 위해 제작된 게이트폴드 형태의 재킷 전면.

 

 

이 면은 뒷면이다. 작은 음반을 넣기 위해 만든 작은 재킷이 앙증맞다.

 

 

이너 슬리브(inner sleeve) 이거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음반이 간신히 들어가는 빠듯한 크기에 속에는 비닐을 덫대지도 않았다. 문제는 이 이너슬리브에 음반이 몇 번 들락날락 하다 보면 종이에 스치면서 음반에 스커프가 생기기 때문이다. 전에도 이 음반을 구할 기회를 접한 적이 있었다. 전술한 문제점으로 인해 걱정하던 바가 고스란히 음반 표면에 남아 있어 무척 싼 값으로 제시되었었지만 도대체 손이 가질 않아 생각을 접은 것이 오늘에 보람으로 수확되었다. 이 이너 슬리브는 보관해 두고 비닐 슬리브를 사용할 참이다.

 

 

반질은 아주 좋다. 음질도 비교적 만족스럽고 연주도 무척 좋다. 드보르자크의 둠키트리오와 베토벤의 트리오가 각각 한장씩 담겨 있다. 베토벤의 피아노 트리오라면 거의 대부분이 7번 대공(Archduke)다. 하지만 여기엔 1번이 담겨져 있다. 오호라. 이거 아주 희귀곡이라 더욱 반갑다.

 

 

이 음반을 입양한 이 날 익일 출근 걱정도 잊은 채 죄 다 듣고 새벽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자다 말고 몇 번을 미친듯이 웃었을지도 모른다. 왜? 미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