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6(금)
아침이 되어 퇴실 준비를 마치고 아침식사부터 했다. 호텔에서 제공한 아침 식사는 북어국.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지만 참 맛나게도 끓였다. 아침 식사 후 둘러보는 호텔과 콘도 주변이 훌륭한 경치를 갖고 있어 여행에 굶주린 내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가동이 멈춰진 분수대에는 물이 흥건하게 고인채 엣지에서 찰랑거리고 그 너머로 수평선이 보인다.
조경이 기막히다.
얘들은 뭐여? 엉성하게 생긴 애들이 야하게 논다.
간밤에 묵었던 콘도.
아침 식사 후 체크아웃을 한 뒤 바닷가로 나왔다. 오전 10시에 단체 버스가 서울로 출발한다는 연락이 왔다. 주말인데 뭐하러 서울로 가냐. 느덜은 상행선 나는 하행선. 호텔 앞 바닷가 모래사장을 밟으며 밖으로 나갔다. 이 곳엔 양양 터미널로 가는 대중교통이 없단다. 차로 15분 걸린다고 했으니 까짓 걸어서 1시간여면 충분하지 않을까.
방향만 잡고 걷다 보니 이따금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이 없어 길가다 묻곤 했다. 완전 외진 시골길이다. 이거 걷기에 너무나 좋다. 일부러라도 걸을 길이다.
농토 사이로 다니는 기분도 정말 즐길만 하다.
저 멀리에 드디어 양양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솔비치 콘도에서 떠난 것은 9시 20분이었다.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하게 11시. 1시간 40분 소요되었다. 오다가 중간에 행인에게 물었다.
"어서 텀널까지 얼마나 걸려요?"
잠깐 생각한 그가 대답했다.
"20분 정도요."
그 뒤로 1시간은 넘게 걸었다."
이 아저씨 축지법을 쓰는 사람이 틀림없다.
11시에 도착해 울진행 버스표를 물어보니 마침 11시 5분에 버스가 있다며 표(18,000원)를 끊어 주었다. 11시 05분차였다. 화장실 어딨냐니까 화장실 갈 시간없다며 지금 당장 버스 타려면 직원이 안내해 주는 곳으로 따라 가란다. 터미널 밖으로 나간다. 따라 나갔다.
"어디로 가요?"
"이 버스는 텀널에 안들어 와요."
"왜요?"
"이거 사실은 불법이예요."
젠장 그래서 카드를 안받았군.
사실 봉화를 가려던 참인데 양양에서 직행버스가 없어 울진으로 우회하는 중이다. 이거 아니면 그마저도 없는 모양이다. ㅡ,.ㅡ; T자로에서 조금 기다리자 북쪽에서 내려와 서쪽으로 좌회전하는 버스 한대를 직원이 손 흔들어 잡았다. 아무생각 없이 지나려던 기사양반이 갑자기 버스를 세우려니 버스는 1차선에 있고 우리는 인도에 있어 어정쩡했다. 게다가 버스는 다리로 진입하기 직전이었다. 결국 1차선에 어줍잖게 서서 문을 연 버스를 타기 위해 나는 오가는 차를 피해 위험한 탑승을 했다.
"아니, 사람을 태울려면 진작 전화를 해야지 갑자기 태우고 지랄이야." ㅡ,.ㅡ;
나도 성질 더럽기는 주변에 유명하지만 내게 한 욕이 아니니 그냥 넘어간다. 이 것이 정식 정류코스가 아닌 탓에 서로 커뮤니 케이션이 있어야 상호 인지됨은 당연한 일이었고 미리 인지하고 있어야 이 애매한 곳에서 사람을 안전하게 태울 수 있었으니 말이다. 버스는 널럴했다. 어쨌든 울진으로 간다.
가다 중간에 두 부부와 남자 노인이 탔다. 시외 버스이니 경유지가 있었다. 이들은 바로 내 앞에 앉았다. 세 칸짜리 좌석의 시외 버스 창가에 앉은 노인이 내측에 부인을 두고 그 옆 창측에 앉은 노인과 대화를 시작했다. 목소리 큰 이 두 노인분은 쉬지 않고 떠드는데 그 목소리는 안하무인이었다. 울진 도착할 때까지 계속 떠들었지만 노인들인 만큼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세월의 가르침이 풍부한 어른들을 공경하고 배워야 함은 젊은이들이 이행해야 할 마땅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나지만 이들은 정말 주둥아리가 퉁퉁 부어 입이 열리지 않을 정도로 조패고 싶었다. 오죽하면 울진 도착해 노인들 내리고 나자 기사양반 한 마디 하신다.
"세상에 자기들만 사나. 처음 타서부터 잠시도 쉬지를 않고 목소리는 왜 그리도 큰지 지겨워 죽는줄 알았네."
도착 시간은 14:00.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니 관광지도가 거치대에 가진런히 꽂여 있었다. 하나 집어 들고 휴대폰을 한켠 돼지코에 꽂고 관광안내지도를 들여다 보며 어디부터 갈까 고민해 봤다. 그 때 한켠 분식집에서 두 남자 떠드는 소리가 휑한 터미널 천장에 공명하며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여긴 왜이리 시끄러운 인간들이 많은가 하며 소리 나는 쪽을 봤다. 아까 그 노친네들. ㅡ,.ㅡ; 오늘 왜이러냐. 완전 똥밟았다. 똥통에 빠지기 전에 밖으로 나와 버렸다.
터미널에서 북쪽 끝 죽변항부터 가보기로 했다. 버스는 자주 있었다.
관광지도 들여다 보고 대충의 계획을 세우고 버스편을 알아보느라 약간의 시간을 길바닥에 버린 내가 죽변항에 도착한 시간은 14:40. 애걔걔 모이래 초라하냐. 입구부터가 촌스러움의 극치다.
들어오는 고깃배가 없어서인지 배만 잔뜩 정박되어 있고 무척이나 한산하고 사람도 없다.
가게방에 들어가 맥주부터 한 캔 샀다. 촌으로 갈수록 맥스가 없다. 여기도 마찬가지. 대용으로 카스 한캔 물고 슬슬 돌아다녀 봤다.
수산물시장이라? 들어가 봐야지?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둘러보는 재미는 결코 작지 않다. 살아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우럭, 광어, 줄돔, 쥐치, 방어, 해삼, 굴, 멍게, 각종 조개가 살아 숨쉰다.
손님의 주문에 따라 바구니에 담긴 싱싱한 활어들은 생명력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격렬하게 팔딱거린다.
표면만 봐도 탐스러운 조개가 간간히 호흡하느라 뿌리는 물이 미세한 파동을 일으킨다.
줄돔만 넣은 어항은 마치 관광용 수족관 만큼이나 스펙터클하다.
이건 못보던 게딱지다. 수입산인가 토종인가 모르겠다. 어쨌든 서울 시장에선 못보던 애들이다.
어시장의 인부들은 배를 기다리며 간식과 함께 휴식을 취한다.
출항 대기중인 오징어잡이 배. 함 따라 나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오징어를 널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부두 전체를 걸어 보았다.
휴일이어서인지 냉동창고의 시설은 가동을 멈춰 조용하다.
행인보다도 많은 횟집들. 개점 휴업상태
건물로 올라가 보았다.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제법 쓸만하다.
왠지 이 날은 이 곳이 마지막인 것 같아 여유를 부려 보기로 했다.
그래서 들른 커피숍.
횟집만 즐비한 건물 최상층에 이런 커피 전문점이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후면으로 자리를 잡아봤다. 지친 다리도 쉴 겸 전날 잊고 충전하지 않은 휴대폰도 충전할 겸 여기서 머문 시간 적지 않았다.
아메리카노 한 잔 주문했을 뿐인데 요구르트 아이스크림도 준다. 허, 이거 감동일쎄.
주니 먹는다. 맛 좋다. 아메리카노도 그럭저럭 먹을만 하다.
나가면서 불영사로 가는 교통편을 물어 보니 직원이 직접 지도를 펼쳐보고 여기저기 전화까지 해 가며 정보를 수집해 준다. 근처에서 17:05에 불영사로 가는 버스가 있단다. 이 방향은 외진 곳이어서 버스편이 드문걸로 아는데 그렇다면 무조건 타고 볼 일이다. 친절에 대하여 치하한 뒤 밖으로 나왔다.
해가 서편에서 뉘엿거리기 시작하고 출항하는 어선이 어둠이 스미기 시작하는 부두를 달린다.
농협마트 건너편에서 기다리니 곧 버스가 왔다. 불영사까지는 1,500원. 시내를 벗어나 불영계곡 초입으로 접어드니 목가적인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버스에서 방금 내린 여학생이 멘 새빨간 가방이 단연 눈에 띤다.
한동안을 신나게 달리자
기막힌 경치가 쉬지 않고 펼쳐진다. 벌어진 입은 쉬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와~ 와~! 장가계만 와와관광이냐 여기도 그 못지 않다.
불영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달이 떴다.(18:00)
이곳을 나서 아래쪽 동네로 슬슬 가봤다. 버스 기사양반이 일러준 대로 마을에서 민박을 할 참이었다.
어둠이 깔린 자그마한 계곡 마을의 풍경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커메라에 담기가 쉽지 않음이 아쉽다.
농촌 마을이라 대부분 일찌감치 불이 꺼져 있다.
그 중 불켜진 민박집 한 곳을 골랐다. 보아하니 이 마을 오늘의 숙박객은 나 하나인 것 같다.
여름엔 방이 없어 난리라는데 어쩌면 이 좋은 단풍 계절에 찾아오는 사람이 이리도 드물다니 참으로 희한하다. 한편으론 남들과 공유하지 않아도 되는 이 대자연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인다. 이런 곳에서는 맛있는 음식에 술한잔이 그립다. 하지만 성수기가 아닌 이 계곡마을은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 집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라면 뿐이었다. 이 좋은 곳에 와서 라면이 왠말이냐. ㅜㅠ. 우짜다 보니 주전부리로 점심식사를 건너뛴 터라 막상 나온 불어터진 라면도 그런대로 맛이 있더라는. 계곡의 늦가을은 워낙 공기가 찬 탓에 추위를 타지 않는 나도 마루에 걸터앉아 즐기리란 생각도 포기하고 방안에 들어앉아 맥 주 3 병 마시고 잔 게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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