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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레코드페어에서 구입한 음반들

코렐리 2012. 6. 12. 17:03

악스-코리아에서 지난 6월 2~3일간 진행되었던 제 2회 서울 레코드 페어에서 그동안 벼르던 희귀 초반 몇 장 구입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다. 음악과 음반에 대해 이해도가 좀 있다고 깝죽대던 나도 관련 지식이 부족했던 탓에 이 음반들을 구입 후 뒷북 때리듯 다시 확인 하고서 초반인지 아닌지 확신을 못하고 하얗게 질리기도 하며 혼자 소동을 피우기도 여러 차례. 하지만 그러한 에피소드는 더 많은 관련 지식을 얻게 해 줄뿐 아니라 두고두고 이야기꺼리가 되기에 한편으론 추억이 되기도 함을 부정하지 않을란다.

 

첫 날 구입한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 동명 타이틀의  데뷔반. 이 음반은 함께 했던 동호회 동료들인 바람소리군과 블루노트군이 좋은 음반이 많다며 어느어느 부스에 가보라는 정보 제공에 힘입어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롤링 스톤스의 초기 음반들은 구하기 쉽지 않다. 그 중에서도 손아귀에 도대체 넣을 수 없는 물건이 아래의 음반이다. 런던 레이블은 그나마 구하기에 용이하지만 데카(Decca) 레이블은 정말 구하기 어렵다. 레미네이트(Laminated)된 재킷 전면만 봐도 거의 흥분지경이다. 깡패같이 생긴 멤버들이 날보고 '시키는대로 노래 열심히 하고, 입 다물라면 조용히 있을테니 데려가 달라'고 연신 추파를 보낸다. 짜식들.

 

뒷면은 영국 60년대 출반 음반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테두리 접이식 마무리를 볼 수 있다. 아쉽지만 뒷면에 약간의 낙서가 되어 있다. 믹 재거(Mick Jagger)나 키스 리차드(Keith Richard)가 한 낙서라면 백번 용서가 될 일이지만 그 놈들이 했을리는 절대 없는 낙서였다.

 

구입 당시에는 겉표지와 음반 표면을 확인하느라 자세히 보지 못한 이너 슬리브(inner sleeve). 집에 와서 다시 보니 그제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프레스라면 이렇게 생긴 이너 슬리브 쓰지 않는다.

 

반질까지 깨끗한 이 음반을 발견했을 때 흥분했던 나는 구입 당시 이걸 초반이라고 했던 판매자에게 물어 봤다.

"초반이라면 매트릭스 넘버(Matrix Number)가 1A/1A인가요?"

"2A/4A인데요."

"그럼 초반 아니지 않나요?"

"이보다 앞선 번호는 아직 실물로는 한 번도 못봤어요."

매트릭스 넘버 참 이상하게도 부여했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런가보다 하고 절대 살 수 없은 가격이라 생각하며 일단 샀다. 집에 와 자료를 확인해 보니 일단 퍼스트 프레싱(first pressing)은 아니었다. 퍼스트 프레싱은 내 짐작대로 XARL-6271-A1/A1이 맞았다. 그러나 이 정도의 반질에 실제로 매트릭스 넘버가 A1/A1이면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 형성되어 있어 있었다. 알고 보니 초반이라는 범주에 첫 스템퍼 외에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당시에 추가로 제작한 스템퍼가 낳은 음반들까지도 초반으로 보는 시각도 있어 여기에 포함된 개념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좋은 가격인 것만은 틀림없다.

 

다른 부스에서 다음날 구입한 이 음반이 오해로 인해 가장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Beatles의 Help 모노 앨범이다. 세월을 감안하면 재킷 상태가 놀라울 정도로 깨끗했다. 구입 당시 초반이라는 말에 매트릭스 넘버는 확인도 안했다. 코딱지도 코딱지 크기 나름이지만 아주아주 코딱지만한 글자를 보기 위해 돋보기를 꺼내 보자니 귀찮았다. 맞겠지 뭐.

 

 

재킷 뒷면.

 

이너 슬리브도 생겨먹은 것으로 보아 영국 초반이 틀림 없다는 판단이 섰다. 이런 이너슬리브는 영국 EMI그룹에서 19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중반까지 썼다.

 

비틀스의 모노 음반들은 매트릭스 넘버 코드를 XEX로 사용한다. 집에 와서 보니 매트릭스 넘버가 나의짐작과 달리 XEX 549-2/550-2로 표기되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짧은 지식으로는 퍼스트 프레싱이라면 매트릭스 끝번호가 side 1/side 2 모두 1로 표기되어 있어야 했다. 다시 자료를 뒤져 알아 보니 뭐가 어찌 된건지 몰라도 이게 초반이 맞는다는군. 비싼 값을 치르고 산 물건이니 만큼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 내릴 수 밖에.

 

비틀스 음반 중 가장 손아귀에 넣기 어려운 Yellow Submarine 영국 초반이다. 이 음반은 모노가 아닌 스테레오반이다. 세월을 감안할 때 재킷 모서리의 각의 살아 있어 받아 들기에 무척이나 감격스럽다.

 

재킷 뒷면.

 

이너 슬리브는 속비닐을 덫대지 않은 검정색 종이였다.

 

반질은 상기 두 음반만큼 양호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스크래치로 인한 잡음이 없다는 사실로 만족한다. 매트릭스 넘버는 YEX 715-1/716-1로 전형적인 비틀스 스테레오 초반 스템퍼의 매트릭스 번호다.

 

양일간의 음반사냥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보물로 아래 음반은 롤링스톤스 데뷔반과 같은 부스에서 구입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음반들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메들(Meddle) 앨범이다. 재킷 상태는 매우 좋다. 재킷 전면.

 

재킷 후면. 양면 모두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

 

Gatefold 형태로 출반된 이 음반을 펼쳤을때의 사진. 흑백 사진이 무척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너 슬리브 역시 오리지널 그대로. 터진 곳 하나 없이 보존상태 뛰어나다.

 

박스 안에 든 EMI 로고(boxed EMI logo)가 없는 것이 초반인 줄로 알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건 Atom Heart Mother 앨범까지가 그렇고 메들 부터는 아니라넹. 매트릭스 넘버를 보니 영국 초반 맞넹(SHVL 795A-1U/795B-1U) NM(Near Mint)급 이상의 반질을 원했지만 그건 욕심이었나보다. 그래도 스크래치로 인한 잡음은 없다. 비교적 양호한 상태다.

 

이 번 구입 음반 중 고가의 음반은 아니지만 이 음반 역시 전부터 혈안이 되어 찾던 음반이니 소개한다. 역시 Pink floyd의 Relics 앨범 영국 초반이다. Led Zeppelin, Rolling Stones, Beatles, Pink Floyd는 내가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정규 음반은 거의 전부 구입했지만 좋은 가격에 음반이 나오면 버전을 달리하는 경우 중복된 음반도 여러장 산다. 아래 릴릭스 앨범은 기존 영국 재반, 계몽사 라이선스, 오아시스 라이선스와 이 번 구입분을 포함해 4장째다. 미국반이나 일본반 아님 독일반이 비싸지 않은 가격에 나오면 또 살게 뻔한 나다.  

 

뒷면. 이 앨범은 초기 베스트 모음집이지만 미공개 음원을 한 곡 담고 있다. 핑크 플로이드의 경우 정규반 못지 않게 베스트 음반도 각광받는 이유다.

 

이너 슬리브도 오리지널로 온전하게 잘 보존되었고 반질도 최고다. 좌측 일련번호와 MADE IN ENGLAND 인쇄가 찍혀 있다.

 

매트릭스 넘버 확인 완료.

 

이 번에 구입한 고가 음반 중 유일하게 클래식이다. 비버(H.I.F Biber)의 로사리오 소나타(Rosenkraz-Sonata) 에두아르드 멜쿠스(Eduard Melkus) 연주의 아르히프(Archiv) 독일 초반.

 

재킷 뒷면

 

게이트폴드 형태의 재킷을 펼지면 일본어 OBI와 부클릿(booklet) 그리고 엽서까지 들어있다. 무슨 조화냐. 독일에서 초반을 찍으면서 동시에 일부를 일본으로 수출한 경우다. 60년대 초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국제적으로 대접 받던 위상을 말해준다. 에이 씨. 질투. 

 

오리지널 이너 슬리브.

 

반질은 완벽 그 자체다. 영국에도 민트급 음반은 아주 드물고 미국에는 절대 없다. 하지만 일본에는 많다. 문화수준의 차이라 생각된다. 이 역시 일본에서 나온 음반이기에 민트급이라 생각하면 욕하는 사람들이 나올까? 사실은 사실인데... 락 음반과 달리 클래식 음반은 초반, 재반 삼판의 구분이 단순하고 극명하다. 락이나 일반 팝음악과 달리 클래식 음반은 재발매 주기가 평균 10년 안팎이다. 판매실적이 신통치 않으면 재반을 안찍는 경우도 많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듯이 레코드의 중앙 레이블 디자인도 바뀐다. 하지만 락이나 팝은 재발매 주기가 짧아 레이블 디자인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고 매트릭스 번호 체계를 알아야 한다. 락음반 초반 구분이 어려운 이유다.  

 

이 음반이야 말로 나의 감정을 극도로 들었다 놓았다 했던 괘씸한 음반이다. 캐논볼 애덜리 퀸텟(Cannonball Adderley Quintet)의 재즈 라이브 음반이다.

 

이 음반은 70년대 초기나 60년대 후반 출반된 음반으로 보인다. 어차피 일본반이니 고가반은 아니다. 미국반으로 사자면 재즈 음반은 고가인 반면에 일본 라이선스 재즈 음반은 저렴하기 때문에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요즘 하드밥(hard bop)재즈 음반 수집에 열을 올리는 나로선 이런 음반이 그나마 갈증을 풀어 준다.  

 

음반을 턴테이블에 얹으려고 올렸다가 문득 이너슬리브에 뭔가 낙서가 되어 있는걸 보고 숨이 갑자기 턱 막혔다. 보아 하니 서명인 것 같은데 뭐라고 써 있나 보자...

허걱! 허거걱! 큇텟 멤버 다섯명의 이름이었다. 그럼 이게 5인의 사인반? 이거 미친거 아냐? 심봤다! 심봤다! 완전 심! 심! 심봤다!!!!!

두 사람한테 사진을 찍어 문자를 보냈다. 바람소리군한테서 회신이 왔다.

"탐나는 음반이군요."

"음하하!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가시는 모양이군."

한참 뒤

"설마... 사인반?"

"눈치가 없구려. 헐헐헐 음하하"

나는 너무 너무 좋아서 거의 쓰러질 지경까지 기분이 UP되었다. 심장이 뛸 공간으로 나의 흉곽이 너무 작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나 할까. 나의 심장이 가슴 밖으로 나올 지경이다. 질투심에 눈이 먼 바람소리군한테서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거 진짜예요?"

"몰라 이게 진짜가 아니더라도 영원히 착각하며 행복하게 살거야. 진실에 너무 집착해서 날 깨우칠 생각 말어. 으하하 으하하 음무핫핫핫!"

"근데 어떻게 한 명도 아니고 다섯명씩이나 한꺼번에 사인을 받을 수가 있을까? 이건 열혈팬이라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좋아 미친다는거지. 이건 아마도 일본의 공연기획사에서 초청 책임자가 그들을 불러모아 식사 또는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작심하고 사인 받았거나 하면 가능하지 않겠어? 으하하 으하하 으하하!"

사실 이게 그들의 사인반이라면 이건 도저히 값을 매길 수 없는 귀물인 셈이다. 한 사람의 사인도 받기 어려운데 5명 전원의 사인을 받은 음반이 전 세계에 몇 장이나 있을까. 나는 이 날 하도 기분이 좋아 담날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을 들으며 맥주 3병이나 마시고 미친듯이 웃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쉽지 않게 일어난 다음날 출근하며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뭔가 이상한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첫째, 나라면 재킷에 사인을 받았을텐데 왜 하필 찢어 없어져도 크게 억울할 일 없는 이너 슬리브에 사인을 받았을까.

둘째, 미국인들의 손끝이 섬세하지 못해 생긴 것이 바로 타이프라이터(타자기)라는 물건이다. 왠만한 사람들은 손 끝 감각이 무뎌 많은 글자를 해독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필이다. 하물며 자신의 휘갈겨 쓴 서명임에랴. 그런데 여기에 쓰여진 글자들은 서체가 각기 다르긴 해도 알아볼 수 없는 서명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석연치 않았다. 다섯명 모두 달필만 모였다? 인간의 도움 없이 강아지 혼자 달나라 다녀올 확률보다 발생 가능성이 낮은 일이다.

세째,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캐논볼 애덜리와 넷 애덜리(Cannonball Adderley and Nat Adderley)의 d,r,y자가 너무나 많이 닮았다.

네째, 역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무리 일자무식이라 해도 자기 이름 스펠링을 틀리는 멍청이가 세상에 어딨겠나. 루이스 헤이즈는 자신의 사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스펠링을 마구 바꿔 먹었다.

출근하자 마자 인터넷 켜고 만사 제낀채 이 것보터 뒤졌다. 케논볼 애덜리의 사인반 사진을 두 장 찾아냈다.

"이런 젠장나발 씨앙시옷"

애덜리의 사인은 나의 짐작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악필이었다. 물론 내 이너 슬리브에 쓰여진 것은 어떤 주길롬이 다음 주인을 곯려먹기 위해 한 짓인 모양이다. 이 낙서를 해서 나의 기분을 극도로 UP시켰다 DOWN시킨 분이시여. 죽을때까지 먹은 것도 없이 설사만 하소서 --- 아무리 열받아도 이런 욕은 하면 안돼겠지? 그래 이해심 많은 내가 잊고 제정신으로 돌아오마.

그래도 그칠줄 모르는 음악사랑 때문에 살맛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