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출반된 음반들의 면면을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훑다 보면 무척 재미있는 점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온갖 잘못 표기된 정보들이 난무했었다. 외국에서는 잘못 표기되는 간행물이나 음반 등이 드물어 오히려 고가에 거래되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나라 음반들은 이러한 사례들이 너무나 많아 그다지 신기할 것도 없다. 내 나름의 시각으로 한 번 살펴보았다.
1. 무지의 소치
전혀 상반되는 내용이 동시에 표기되는 경우가 있다. 아래의 음반은 몰리나리-프라델리가 지휘하고 마리오 델 모나코가 카바라도시를, 레나타 테발디가 토스카를 열연해 녹음한 토스카 명반중의 명반이다. 이 음반은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 사이에 출반된 것으로 보인다. 두 장으로 구성된 전곡반인데 왼쪽에는 토스카 전곡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하일라이트(발췌)라고 표기되어 있다. 두 장인걸 보면 전곡반임에 틀림 없다. 커버 디자인 책임자가 "하일라이트"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던 건가? 대략 어이없음.
아래의 사진은 동 녹음의 영국 초반으로 전곡 박스반
아래의 사진은 야노스 슈타커가 연주하는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과 포레의 엘레지로 유니버샬 레코드사 1970년 제작반이다. 원반은 영국 컬럼비아사.
다 좋은데 뒷면 하단을 보면 지휘자 야노스 슈타커에 관한 소개가 나온다. 엉? 야노스 슈타커가 지휘자였어? 그럼 앞면에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표기된 발터 서스킨트는 누구여?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기만 해도 관현악곡이나 교향곡이 아니고 협주곡이라면 지휘자보다는 독주자를 소개하는 글이 먼저 올라오게 마련인데 제작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거지? 게다가 내용은 초등학생도 이정도는 아니다싶을 정도로 글에 핵심이 없어 횡설 수설까지 ㅡ,.ㅡ;
2. 현란한 한글 표기법
음악가 이름이나 악기이름 등에 대한 한국식 표기법이 언어간 발음 차이상 표기법의 한계로 조금씩 다를 수 있다. Beethoven의 경우 그 표기법이 오늘날에는 베토벤으로 통일되어 있지만 60년대에는 베-토벤, 베토-벤, 베에토벤, 베토오벤 베토벤 등 중구남방의 첨단이었다. 그 표기법들이 꼭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튀어도 너무 튀는 경우도 있다. 오이스트라흐와 클뤼탕스가 연주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불세출의 명반인 60년대초 영국 컬럼비아사의 이 음반을 오스카 레코드사에서 70년도 전후에 출반했다. '봐이올린'이 더 원음에 가까운 표기인가 어쩐가... 암튼 자주 쓰이는 표기법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티코 프랑코 코렐리가 노래한 나폴리민요집. 역시 오스카 레코드 70년 전후 출반(60년대 후반 추정).
그런데 뒷면에 표기된 한국식 발음이 국적불명이다. '후랭코 콜렐리'? 이거 미국식 발음으로 한다고 쳐도 용서가 안되는 희안한 표기법이다. 게다가 나폴리도 아니고 나포리란다. R발음과 L발음을 햇갈려한 듯.
재클린 뒤 프레와 다니엘 바렌보임 부부의 하이든과 보케리니의 첼로협주곡. 역시 70년 전후 오스카 레코드사가 저지른 만행이다. 같은 회사의 비슷한 실수를 한 것을 보면 동일 인물의 소행이 틀림 없다.
샹송 프랑소와가 연주한 쇼팽의 왈츠 전곡반. 60년대 후반경 도미도레코드의 만행을 후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싼손 후란소아... 어느나라 사람이지? 난 프랑스인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게벼?
이너 슬리브(inner sleeve)를 보면 더욱 재미가 있다. 라이센스 계약 체결도 없이 찍었으면서 예륜위 심의를 필하고 문공부(문화공보부) 등록을 마쳤단다. 끝내줘.
3. 해적판
저작권이니 뭐니 하는 문제는 싹 무시하고 내가 걍 찍겠다는데 누가 시비여? 아래의 음반은 성음에서 정식으로 출반한 Rare Earth의 명반 Get Ready.
아래의 음반은 해적반으로 출반되었지만 라이센스처럼 판매되던 동명 타이틀의 음반. 그래도 다른 해적판들과 달리 PVC는 불순물을 제대로 여과한 상질의 재료를 사용했고 레코드사도 버젓이 차려서 영업했던 신라 레코드의 음반인데 표지는 어디에서 차용해 왔는지 모르겠다.
70년대 유신정권시절 마구잡이로 금지곡을 정하던 시절. 출반이 금지되자 지하에 숨어 몰래 찍어내던 해적판. 김추자의 신중현 작곡집 표지.
이음반 뒷면 어디를 봐도 레코드사 이름이나 레코드사 엠블럼이 없다. 그래도 해적판 업자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지 레코드사 이름은 안팔았다.
신라레코드사에서는 Curved Air나
Brain Ticket 같은 희귀 아트록 음반을 적잖이 출반해서 호응을 얻었지만 표지는 대부분 원작과 다르다. 어디서 얻어온 디자인인지는 몰라도 이들의 음반 재킷은 꽤 세련된 편이다.
역시 신라레코드에서 출반한 엘라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 두 거장의 세션앨범. 이건 재킷이 원반하고 동일하다. 음악 팬들은 이러한 음반들에 목말라하고 있었으니 해적판이라 하더라도 음악팬들로부터 환영을 받을 수밖에...
아래의 음반들은 불순물을 걸러내지도 않은 pvc로 지하에 숨어 제작한 소위 빽판이다. 당연히 오디오 바늘의 천적이었다. 턴테이블에 올려 놓고 플레이하면 이쁘게 표현하자면 비오는 소리, 좀 심하게 말하면 찌개끓는 소리를 낸다. 재킷은 1도 인쇄에 재질도 좋지 않아 조악하기 짝이 없다. 오늘날 남아있는 빽판들의 재킷은 30년밖에 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바스러지기 시작한다. 이 빽판들은 원반틀을 그대로 떠서 스템프를 제작해 음반을 마구 찍어냈다. 잡음을 낼망정 음 자체는 당연히 원반과 똑같다. 아래의 사진은 도노반의 명반 Slow Down World
불법으로 조악하게 만들어진 이러한 빽판들은 국내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발매되지 않은 아이템들을 얼굴없는 제작자들에 의해 척척 선보인데다 가격이 1/5 정도로 저렴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용되었다. 혹자는 계란부치는 듯한 잠음이 결점이긴 하지만 라이센스보다 음질도 좋고 금지곡으로 잘려나간 곡이 없어 좋다며 빽판만 모으던 사람들도 더러는 있었다. 난 아니었지만.
4. 재킷 왜곡
여러가지 금기사항으로 인해 재킷이 금지되어 대안으로 변형시키거나 왜곡시킨 경우를 말한다. 아래의 사진은 비틀스의 후기 명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의 재킷으로 80년대 후반 계몽사에서 찍은 라이센스. 이 음반의 재킷도 80년대 중반까지 금지되어 있었다. 말론 브란도, 알프레도 꼬르또, 밥 딜런, 아라비아의 로렌스, 무하마드 알리 등 각계각층 명사들의 사진들이 엉성하게 합성되어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내는 재킷이다. 당시 색깔론에 민감했던 전통정부의 등살로 이 재킷이 사용되지 못했던 이유는 마르크스의 얼굴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거 그냥 출반했다간 기냥 잡혀가던 시절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나온 대안이 바로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출반한 아래 음반의 재킷. 사진을 오려 확대하고 검정배경에 붙여서 다시 찍었던 것 같다. 60년대 영화 포스터모냥 해상도가 장난아니게 조악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아래쪽 북에 표기된 음반명이 확대로 인해 선명하지 않아서였는지 지우고 다시 표기했는데 Sgt(서전트)를 Sct 오기하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게다가 금지곡도 있어 한 곡 잘렸고.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이 희안한 음반은 70년대에 두 번이나 틀린줄도 모르고 찍었는데 외국의 비틀스 매니아들의 가장 중요한 표적 음반의 하나로 이베이에서는 한 때 40만원에 거래된 적도 있을 정도다. 이거 국위선양인가? 표기법은 그렇다 쳐도 나였다면 마르크스의 얼굴만 살짝 다른 인물이나 동물의 머리 등으로 오려 붙여서 해결했을 것 같은데 왜 더 힘들여서 더 조악하게 만들었을까. 이거 학교 다닐때 운좋게 구한 음반이다.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음반 중 하나다.
비틀스 매니아들이 이 음반에 환장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비틀스 음반이 회색 레이블에 검정색 문자와 그림 표기로 인쇄된 Parlophone사 음반은 이게 전세계에서도 유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래의 사진은 미국 RSO사에서 출반한 Blind Faith의 동명 타이틀 앨범. 초반은 원래 ATCO사에서 출반했다. 내 갠적으론 에릭 클랩튼 최고의 명반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놈의 음반재킷이 열라 야리꾸리하다. 가슴이 여물다 만 10대 소녀가 들고 있는 항공기처럼 생긴 물건도 야시꾸리한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소녀가 드러머 진저 베이커의 딸이라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진저 베이커하고 닮긴 마니 닮은 것 같다. 목숨이 혹시 두 개라면 모를까 이런거 한국에선 당연히 안된다.
미국에서는 한 때 재킷이 말썽을 일으켰었는지 멤버들의 사진으로 재킷 전면 디자인을 대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음에선 이렇게 해결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배경인거 같은데? 서울우유 광고인가? 대관령으로 의심되는 이 배경의 재킷 역시 전세계에서 유일하다. 역시 외국 매니아들의 표적인 음반 중 하나다. 오리지널보다 더 훌륭한 디자인이다.
Led Zeppelin의 명반 House of the Holy. 폴더 형태로 디자인된 환상적인 재킷.
아래의 사진은 폴더를 펼쳤을 때의 디자인. 여자아이를 번쩍 들어 어디엔가 바치려는 것일까. 조금은 섬찟하기도 하다. 이런거 당시로선 한국에선 안된다.
오아시스에서는 내부를 바깥으로 뒤집어 재킷을 만들되 섬찟한 장면은 음반명과 곡명으로 허옇게 덮어버렸다. 물론 싱글재킷이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음악팬들을 위해 이렇게 해서라도 이 음반을 국내에 공개해 보겠다는 오아시스사의 노력이 눈물겹고 가상하다. 그래도 그런대로 멋진 재킷이 탄생했다.
레드 제플린 최대의 명반 피지컬 그래피티 앨범. 이 재킷이야말로 레코드재킷 예술의 최고봉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이 음반은 발매 당시의 영국 초반이다. 건물의 창문은 모두 뚫려있다. 그 안에 보이는 사진과 그림들은 내지(inner sleeve)에 그려진 그림들이다. 재킷의 뚫린 구멍 사이로 내지의 그림이 보이는 형태다. 이 음반은 두 장짜리 음반으로 한 개의 재킷에 두 장의 내지를 끼워 넣는 형태인데 난 이제까지 이보다 더 멋진 레코드 재킷은 본 적이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정부의 규제를 받아 왜곡시켜 재킷을 제작하는 경우 외에도 제작비 절감을 위해 시키지도 않은 짓을하는 경우도 있다. 아래의 사진은 오아시스 레코드사가 80년대 중반에 발매한 동 앨범. 창문은 뚫린 형태가 아니고 앨범명의 알파벳 한 글자씩을 넣었다. 원반 내지에 도안된 문자를 이용했다. 게다가 싱글 재킷에 음반 두 장이 한꺼번에 들어가 있다. 그래도 음반 두 장 값 받을건 다 받았다. 그래도 난 이게 처음 나왔을 때 좋아라며 나오자마자 샀다.
5. 금지곡 삭제
70년대 유신정권시절과 80년대 전통정권 시절에는 금지곡으로 넘쳐나 음반 출반은 물론 방송도 금지된 곡이 수를 헤아리기 힘들었다. 오죽하면 금지곡이 잘려 나간 음반이 몇 장이었는지를 찾느니보다 금지곡 없이 온전하게 출반된 음반이 무엇인지 찾는게 빠르겠다. 아래의 사진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비지스의 두 장 짜리 베스트 음반. 비지스가 창법을 바꾸기 전 발표된 명곡들은 거의 모두 수록된 음반이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70년대 중후반에 성음에서 찍은 이 음반은 두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폴더를 펼치면 수록곡이 나오는데
금지곡으로 잘려나간 곡이 기록된 부분은 지워져 있어 허전하다.
비틀스의 Abbey Road 앨범은 절묘하게도
B면 끝곡인 "Her Majesty"가 잘려 나가 표가 나지 않는 특이한 케이스다. 곡목 지운자리의 벽돌사진을 절묘하게 처리해서 거의 표가 나지 않는다. 오아시스 레코드사의 노력에 박수를... 짝짝짝!
빽판을 찍을때는 그래도 양심상 복제 대상이 수입반이었다. 양심 없는 경우는 라이센스를 복제하여 빽판을 만들었다. 바로 오아시스사의 라이센스 음반을 복제한 해적판이 아래의 사진. 빽판중에서도 가장 후지다고 평가받는 54 레이블의 빽판. 빽판 주제에 회사로고까지 ㅡ,.ㅡ;
에머슨 레이크 and 파머의 Love Beach
역시 금지곡 삭제
호세 펠리치아노의 For My Love...
금지곡부분을 시커멓게 칠해 얼핏 보면 배경으로 깔아 놓은 여인얼굴의 콧구멍으로 보인다. 여기 나열된 금지곡 포함 앨범들은 물론 빙산의 일각으로 사례 제시에 불과하다.
6. 오직 한국에만 있다.
한국에서만 찍은 관계로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음반들이 있다. 물론 저작권 무시다. 60년대말 이화여대 강당에서 있었던 클리프 리차드의 내한공연. 무대 위로 여대생이 벗어던진 빤쓰가 날라다녔다는 둥 당시 퇴폐풍조의 전형으로 싸잡혔던 공연을 두 장의 음반으로 담아냈다. 음질 역시 기술 미달로 조악하다. 클리프 리차드의 음반들은 초반의 경우 고가에 거래되는데 비틀스 매니아들처럼 클리프 리처드의 음반이란 음반은 죄다 수집하는 매니아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들이 보면 역시 환장한다는 것이 바로 이 앨범. 상태만 께끗하면 한 때 60만원에도 거래 되었었다는 전설도 있다. 황학동 발품팔기 시작한지 5년만에 간신히 구했다.
80년대 후반 저작권을 무시한 음반 중 하나로 음질도 후지고 대충 만든 재킷도 조낸 인상적이다. 세계 최초로 제작된 레드제플린의 히트곡 모음집.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글자만 달랑 넣어 디자인(?)했는데 하늘과 글자를 분간하지 못하는 이 센스는 위대하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할말이 없다. 오 예!
불세출의 트리오 크림의 베스트 앨범인 락센세이션. 이 것은 국내 독자 편집앨범이지만 그래도 이건 성음에서 합법적으로 출반한 앨범이다. 이 음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반 중 하나다.
7. 표기법 무시
어법상 또는 철자상의 오기도 많이 눈에 띤다.
이 음반 역시 해적판이다. Creato라고 표기된 마크는 Electra사의 엠블럼을 흉내까지 냈다. 마스터 테이프를 받아서 만든 음반이 아닌만큼 음질도 조악하고 재킷도 대충 만들었다. 남의 성까지 갈아치우면 본인이 화내지 않을까? Eric Clapton이 아니고 Crapton이란다. 80년대 후반에 출반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락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음반 중 하나인 사랑과 평화의 음반. 음반명 띠어쓰기가 안맞는다.
신중현의 80년대 음반 중 하나
역시 띠어쓰기가 안맞는 제목이 많다. 어떤건 띠어쓰기를 하고 어떤건 안하고...
60년대 후반에 출반되었던 음반을 2000년대 중반에 재발매한 이정화의 음반. 당시의 재킷을 그대로 재현했다. 사이키델릭이라는 한 개의 단어를 둘로 쪼개 두개 단어로 만들었다. 아무리 사이키델릭이라는 음악적 장르가 당시로선 생소했다 하지만 영문으로는 제대로 잘 표기하구선 한국식 표기법엔 왜 이렇게 해 놓았을까. 압권!
70년대 초반경에 출반된 국창 임방울님이 부른 춘향가 중 쑥대머리와 삼국지 중 군사설움. "설움"을 "서름"으로 표기했다. 1930년대 축음기판을 복각했으니 말이 시대를 타고 변화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당시의 표기법을 존중했다는 측면에서 이해가 가기도 한다. 당시의 표기법을 그대로 옮기는 센스는 필요한 것 같다고 나름 선심써 본다.
대학가로부터 시작된 젊은이들의 음악적 욕구가 가요제 열풍으로 이어지던 당시 항공대의 밴드 "활주로"의 데뷔앨범. 초반의 영문표기는 Run Away로 표기되었었다고 한다. 사진의 재킷은 오기를 정정한답시고 Run Way 로 정정 표기한 재반. 하지만 Runway가 맞는 표기 아닌가?
8. 마구잡이 편집
재킷은 그대로 쓰되 금지곡이 많아 음반 출반이 불가능한 둘 또는 그 이상의 몇 개 음반을 합쳐 새로운 음반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말한다. 아래의 음반 재킷은 킹 크림슨의 Cirkus 앨범. 내용은 1집과 Lizard 앨범을 합쳐 역시나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음반을 창조해냈다. 이지만 이건 해적판이 아닌 오아시스 레코드사의 엄연한 라이센스반이다. 70년대 후반 또는 80년대 초 출반한 것으로 보임.
역시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발매한 AC/DC의 For Those about to Rock 앨범인데 금지곡이 많은 이 앨범과 Back in Black 엘범을 합쳐 역시 새로운 앨범을 만들어냈다. 80년대 초반 출반.
뒷면의 수록곡이
오리지널의 뒷면과 많이 다르다.
9. 금지앨범
핑크 플로이드의 "Wall" 앨범. 반사회적인 내용과 틀에 박힌 교육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내용이 이 앨범의 전곡이 금지곡으로 또, 금지앨범으로 낙인찍혀버리게 만든 앨범. 80년대 후반 해금되면서 지구레코드에서 출반했다.
이 앨범 외에도 스콜피온스의 4집인 버진 킬러는 어린 소녀의 나체사진 재킷으로 디자인 되어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독일과 일본에서만 이 나체 재킷을 이용해 음반을 출반했고 우리 나라에선 역시 금지앨범이며 전곡 금지곡이었었다. 이 앨범은 결국 한국에선 출반되지 않았다. 사진의 음반은 일본에서 1980년에 출반된 Second Press다. 스콜피온스의 1,2,3집을 듣고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그들의 사운드에 맛이 간 애호가들이 이 앨범 재킷 때문에 더욱 갖고싶어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단 한 번 듣고 나면 비싸게 거래되는 이 음반의 값이 순전히 재킷값이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역시... ㅡ,.ㅡ;
10. 특이한 오류
젊은 날의 앳된 미소년 에릭 클랩튼이 참여한 야드버즈의 명반 "Five Live Yardbirds" 분명 A면을 틀었는데 B면의 곡이 나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B면을 틀었더니 A면의 곡이 나오더라는... 그래서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반 중 하나가 되었다.
11. 오해를 살만한 표기법
1972년에 출반된 장현/더 맨(The Men) 의 앨범. 음반 재킷에 표기된 내용으로 봐서는 장현이 The Men이라는 락그룹을 이끄는 것으로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더 맨은 신중현이 이끄는 그룹이었으니
뒷면을 봐야만 오해가 풀린다. 앞면은 장현이 부른 곡들이고 뒷면은 더 맨이 연주하고 부른 노래들이다. 모두 신중현 작곡의 곡들이다.
오아시스에서 출반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으로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불세출의 명연들이다. 그런데 어딜 봐도 베토벤 교향곡이란 말은 눈씻고 봐도 없다.
옆면을 보면 푸르트뱅클러.교향곡 전집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표기대로 해석하자면 푸르트벵글러가 작곡한 교향곡의 전곡집인 셈이다. 물론 푸르트벵글러도 교향곡을 작곡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녹음은 도이치 그라모폰사에 남아 있고 영국 HMV사가 원반인 이 녹음반 박스 안에는 베토벤 교향곡 1번부터 9번까지 들어 있고 그 외엔 없으니 그게 아닌 것만은 틀림 없다. 난 중고로 개봉된 것을 구입했으니 그렇다 치지만 이걸 처음 미개봉 상태로 산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샀을까. 쩜쩜쩜...dot dot dot...
12. 축소 발매
두 장 이상으로 구성된 라이브 앨범을 한 장으로 축소발매한 경우도 있다. 장기간에 걸친 라이브투어 중 좋은 녹음을 골라 앨범을 만든 경우라면 곡이 시작할 때 작은 소리로부터 점차 키우고 끝날 때 점점 소리를 작게 줄이는 방식으로 음반을 제작하니 금지곡이 있을 경우 삭제도 가능하다. 하지만 단 1회의 공연을 음반으로 옮겼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곡과 곡사이 간격이 육성과 함성 등으로 계속 연결되니 한 면에 첫 곡이나 마지막곡이 아닌 중간 곡을 잘라내면 바로 표가 난다. 이런 경우 한 장으로 일부만 출반하곤 했다.
Thin Lizzy의 두 번째 라이브앨범 Live life 앨범과
에머슨 레이크 and 파머의 두 번째 라이브 앨범도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2000년대 들어서도 음반계의 실수는 종종 나오지만 극히 드물다. 안동림의 "이 한장의 명반" 시리즈 중 아타울포 아르헨타가 지휘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철자법이 잘못 표기되어 "이 한장의 빽판"이라는 네티즌의 많은 비난이 있었던 적이 있다.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나는 기념으로 하나 확보하려고 헐레벌떡 음반매장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음반사에서 허겁지겁 문제의 음반을 회수해 간 뒤였다.
어쨋든 자의적 타의적 조작 또는 실수의 산물인 이러한 음반들은 경제논리에 의해 숨가쁘게 뒤돌아 볼 틈도 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우리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재미가 있다. 기술적으로나 인프라 측면에서나 모든 것이 열악했던 그 가운데서도 무언가 해내려고 했고 실제로 단시간 내에 거대한 경제발전을 일구어내면서 음반 산업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60년대부터 LP음반을 생산했던 그 시작으로부터 불과 몇 년 사이에 급격한 음질의 개선이 이루어졌고 70년대 말에는 미국 음반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정도까지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엔 80년대 초에는 넘어야 할 산은 당시로선 영국음반과 프랑스음반 뿐이었던 것 같다. 물론 80년대 후반 라이센스를 가장한 해적판들의 열악한 음질이 이 그 이미지를 상쇄해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지금 한국의 음반 기술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재킷 디자인까지 놓고 말한다면 세계 최고라 하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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