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7.17(일) 계속
전날에 이어 이 날도 시간에 그리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니넨자카끝에 바로 붙어있는 고다이지(高台寺)는 생략하기로 했다. 고다이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그의 부인이었던 네네가 그 넋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절이라 한다. 열본 역사의 가장 추앙받는 인물이 도요토미지만 우리에게 있어서는 침략이 원흉이기도 한 그를 기리는 사찰 정도는 참배할 것도 아니니 건너 뛰어도 무방하지 않겠나. 아래 사진은 고다이지 입구
고다이지에서 킨카쿠지로 가기 위해 다시 대로로 나가던 중 만난 인력거. 경사진 곳은 거의 안다닐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니는군. 앞으로 끌고 가자면 힘에 부치는 관계로 손잡이를 엉덩이에 걸친채 뒤로 힘겹게 걸어 인력거를 끌고 올라간다. 삶의 치열함이 읽혀지는 모습이다.
때를 같이 해 이 길을 내려가는 인력거는 휘파람까지 불며 쉽게 달려가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전날 밤에 본 야사카 탑이 낮에 봤을때는 또 다른 분위기를 낸다.
이 곳에서 킨카쿠지(金閣寺)로 가자면 이 도시의 반바퀴를 반시계방향으로 돌아야 했다. 버스도 한 번에 가는 것은 없고 갈아타야 했다. 205번을 타고 겐군진자 앞에서 내려 갈아타기로 했다. 다른 곳에서 갈아타도 되지만 겐군진자 앞은 우리가 처음 교토에 도착해 숙소를 잡은 곳이라 익숙한 곳이기도 하다. 아래 사진은 뜀도령을 찍는 척 하고 그 뒤에 기모노를 입은 처자를 찍은 사진. 왜? 귀여워서. ㅋㅋ
갈아탄 버스는 기억나지 않는다. 59번이었던 것 같은데 가는 버스가 몇 편 있어서... 아님 말구. 아래 사진은 킨카쿠지 입구
입구 종각에서 종치기를 시도해 보는 관광객들. 청수사에서 돈내고 약수물 한 모금 뜨듯이 설마 이것도 돈내고 하는가?
긴카쿠지(銀閣寺)처럼 달필로 쓰인 입장권을 준다.
연못을 가운데 품은 정원과 그 연못 끝에 금칠을 한 건물이 나온다.
킨카쿠지는 3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층마다 건축양식을 달리한다.
1층 호스이인(法水院)은 헤이안 시대 신주쿠리라는 귀족들의 대표적인 주택양식으로 침전식 건축물이며,
2층 조온도(潮音洞)는 모모야마 시대에 발달한 쇼인즈쿠리라는 주택양식으로 무가식 전통 건축물이고,
3층 구쓰코초(究竟頂)는 중국의 선종 불당양식이며 그 위에는 황금봉황이 자리잡고 있다.
안내팸플릿에는 한글로도 병기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참조하면 2층과 3층은 옻칠을 한 뒤 그 위에 순금의 금박을 입혔고 지붕은 화백나무의 엷은 판을 몇 겹으로 겹쳐 만든 널조각을 이어 붙인 것이라 한다. 1987년 가을에는 옻칠을 다시하고 금박을 새로 입혔으며 2003년에는 지붕을 새로 얹었다고 하니 돈 엄청 깨졌겠다. 그래도 500엔이나 하는 입장료를 내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니 수입금액 대비 코딱지에 불과하지 않을까.
킨카쿠지(金閣寺)는 일본 남북조 시대를 통일함으로써 무로마치 시대를 연 3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산장으로 지은 건물을 기타야마텐(北山殿)이라 이름하였다. 요시미츠 사후 유언에 따라 선사가 되었고 그의 법명을 따라 로쿠온지(鹿苑寺)로 개명하게 된다. 기타야마 문화의 대표적 건물로 킨카쿠지라는 이름은 2층과 3층에 금박을 입힌 탓에 생긴 별칭이라 한다.
얼핏 보면 금칠을 한 탓에 상당히 화려하고 고급스러워 보이지만 가만 들여다 보면 일본 건축물들이 대개 그렇듯이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고 우아함과도 거리가 먼듯하다. 처마장식도 없고 벽과 벽을 가르는 나무도 마치 쫄대를 갖다 붙인 듯한 느낌이 든다. 그 가운데 느껴지는 단정함이 이 건물의 강점이 아닌가도 싶다. 정원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걷기에 좋다.
건설당시에는 이 킨카쿠지 외에도 많은 건물이 있었지만 '응인의 난' 때 킨카쿠지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으며, 방화로 1950년에 이마저 소실되었다가 1955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연못 한 가운데 떠있는 섬의 소나무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산책로를 따라 돌아가면 이 곳에도 동전들이 수북이 깔려있고 지나는 사람마다 동전을 던진다.
뜀도령과 나는 그러잖아도 자꾸 생겨 거추장스러운 1엔짜리 동전을 죄 끄집어내 던져봤다. 고양이 밥그릇처럼 생긴 놋그릇을 향해 던져봤지만 골인한 건 한 개도 없었다. 알미늄 동전이라 넘 가벼웠나, 공기의 저항을 많이 받고 던지는 힘이 잘 실리지 않는것 같다.
정원 안쪽에 세워진 이 탑은 듣도보도 못한 희한한 모양새다. 육면 받침 위에 구형으로 깎고 그 위에 여러층의 지붕을 얹었다. 완전 싸카쓰 하는구만.
정원 산책 코스 끝까지 가면 출구 직전에 불당이 하나 나온다. 팸플릿 내용을 보면 이 불당은 후도도(不動堂)라 한다. 모셔진 본존은 고보(弘法)대사가 제작했다고 전해오는 석부동명왕(石不動明王)으로 영험을 가진 비불이라 한다.
킨카쿠지로부터 료안지까지는 걸어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함 걸어봤다. 남산 공원을 오르는 것 같은 분위기다.
료안지(龍安寺)의 입구. 입장료 500엔.
료안지(龍安寺) 입장권. 료안지의 모래정원을 엉성하게 그려 넣었다.
이 곳도 역시 연못 하나를 정원 안에 두고 있다.
길을 따라 가면 건물이 하나 나온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서화 등의 몇 가지 전시물이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마루 끝에 그 유명한 료안지의 정원이 나온다.
헤이안시대 말 후지와라 사네요시(藤原實能)가 이 곳에 산장을 만들고 사찰을 지어 도쿠다이지(德大寺)라 이름하였다. 이를 1450년 호소가와 가쓰모토(細川勝元)가 물려받아 묘신지(妙心寺)의 승려 기텐겐쇼(義天玄承)를 초빙해 건립한 것이 료안지의 시작이라고 한다. 1467년 '응인의 난'때에 소실되어 호소가와 가쓰모토의 저택 서원을 이축하여 본당을 만들었으나 1797년의 화재로 다시 소실되었다고한다. 현재의 본당은 1606년에 세워진 세이겐인(西源院) 건물을 다시 이축해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본당에 자리잡은 이 정원은 크고작은 바위 15개를 5,2,3,2,3으로 배치해 놓았고 이 것이 어미 호랑이가 새끼호랑이를 보호하며 강을 건너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한다.
물과 나무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설치해 놓은 돌과 모래만으로 산수를 표현한 것으로 가레산스이식 정원의 최고봉이라 한다. 작자 및 작품 연대는 미상.
여기서 한동안 다름 사람들과 섞여 휴식을 취하며 감상해 봤다. 역시 단순함과 단정함의 극치라 생각되는데 글쎄 조경 전문가들은 어떻게 볼지. 바위는 보는 각도와 사상, 신념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보인다고 하는데 수석 전문가들이 보면 이해가 빠를지도... 무식한 내가 보기엔 걍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돌들에 불과하다.
3D 기능을 이용해 찍은 전경.
본당의 내부는 다다미와 장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을 나와 버스를 타고 다시 닌나지(仁和寺)로 가봤다. 아침에 축제현장을 보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탓에 세 군데 밖에 둘러보지 못했지만 이미 16:00가 넘어가고 있었다.
닌나지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16:50으로 입장이 불가능했다. 가이드 책자에는 16:30까지가 관람 가능 시간이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시 겐군진자 마에로 갔다. 무언가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먹고 싶었는데 당장 생각난 것이 바로 기린맥주와 창남의 오코노미야키였고 그걸 먹기 위해서 일부러 간 것이다. 바의 안쪽으로 앉아 보긴 이 날이 처음이었는데 위쪽으로는 유명인들의 사인인지 수십개 되는 사람들의 흔적이 고이 모셔져 있었다.
우리가 주문한 오코노미야키가 철판위에서 서서히 익어가고 있다. 오코노미야키는 철판 위에서 약한 불에 아주 서서히 익히는 음식이었다.
TV에서는 우리가 오늘 낮에 보았던 축제 현장이 녹화방송으로 나오고 있었다.
드디어 나온 기린맥주와 오코노미야키다. 기린맥주 거품의 미세한 입자, 혀끝에 닿는 맛과 질감, 시원함과 부드러운 목넘김... 오코노미야키의 달작지근한 소스와 표면의 바작한 질감, 계란의 풍부함, 야채의 싱싱함, 그 속에서 질기지 않지만 풍부하게 씹히는 고기의 촉감, 눈으로 보는 색의 향연. 우왕~~~! 미치겠다. 내가 이걸 먹고 돌아왔단 말인가. 돌려다오, 돌려달란 말이다....(여기서 뜀도령 극찬이 어쩌고 또 한마디 하겠군. 쩝, 그래도 먹고싶어 미치겠다 2,547엔)
주인장은 숙소는 잘 구했는지 그 곳이 어디인지를 물었다. 장황한 설명은 해봐야 어차피 커뮤니케이션에 한계가 있어 접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첫날과 숙소 문제 때문에 들렀을 때, 바로 이 자리에 앉아있던 손님은 이 날 이 시간엔 보이지 않았다. 어지간히도 이 집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나도 가까운 곳에 살았다면 단골이 되었을 것 같다.
오코노미야키 한 개와 맥주 1잔씩을 하고나니 배가 푸짐하게 불러와 간만에 만족스럽게 먹었다. 이게 저녁식사인 셈이다. 일단 샤워를 하고 잠시 쉬기 위해 숙소로 돌아왔다. 주인장은 골목길에 면한 3층의 방을 내주었다. 이부자리 두 개에 작은 탁자와 TV 한 대 놓여져 있고 그 외 운신 공간은 거의 없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고 아주 작은 욕실 겸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얼마였더라...? 7,000엔이었던가... 주인장은 우리가 이 곳으로 오기 전 어디에서 묵었는지 물었지만 송본여관이 일본어로 어떻게 발음되는지 알지 못하는데다, 그 때는 갑자기 한국식 이름도 생각나지 않아 어느 곳인지 말을 해주지 못했다. 12,600엔에 묵었다는 소릴 듣고는 비슷한 수준의 게스트하우스일거라 생각했는지 어쩐지 공간 크기가 어떤지를 물었다. 자기가 제공하는 방의 가격이 다른곳과 비교해 어떠한 지를 알고싶어 하는 것 같았다. 시설이 비교도 안되게 좋았지만 가격 대비로는 이 곳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저녁 8시 정도가 다 되어 간단하게 반바지로 갈아 입었지만 자그마한 에어컨은 도대체 방을 식혀주질 못했다. 물은 탱크에 받아 두었던 물이 한낮의 열기에 데워졌는지 따뜻하다. 씻고 나서 가볍게 입으니 그나마 냉기가 짬깐 느껴졌을 뿐이었다. 밖으로 나가며 주인장에게 지금 나가도 저녁 축제행렬을 볼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너무 늦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도 방안에 쳐박혀 있느니 어차피 버스 1일 무제한권이 있으니 나가서 구경거리 없더라도 축제의 잔재라도 보겠다고 나갔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낮에 갔던 그 곳에 다시 가 보니 정말로 잔재밖에 안남았다. 수레에 둘러쳐져 있던 천과 장식은 홀라당 벗겨간 통에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어 이젠 아무것도 안남았다는 생각과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래도 뭔가 길거리 공연이라도 있으면 보자는 생각에 주구장창 대로를 걸오 본 이유는 이 때까지도 차량이 통제되고 있었고 숙소 주인장의 말로는 밤 9시까지는 축제가 계속 될거라는 지레짐작성 발언에 약간의 기대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이 것도 아니라면 좁아터진 방에 시커먼 남자들끼리 멀뚱하게 앉아 있으면 뭘하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길가다 보니 축제를 의미하는 "제"자가 쓰여져 있고 일본풍 문양이 그려진 부채를 행인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보기엔 예쁘지만 뒷면엔 아무것도 없고 광고와 약도가 그려져 있다. 공짜니까 걍 받아 잘 쓰고 다녔다.
한참을 걷다 보니 역시 헛걸음질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를 가득 메웠고 차도에는 허연 축제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기온의 거리를 가득메웠다. 저 멀리에 요란하게 치장한 가마를 운반하며 요란하게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뭐라고 누군가 마이크에 대고 소리 치면 행열에 뒤따르던 사람들은 복창을 했다. 뭐라고 하나 가만 들어보니 우리와는 발음에 차이가 있겠지만 "열도, 열도" 하는 것 같았다. 호주(AUSTRALIA)를 DOWM UNDER라고 스스로 부르듯이 일본인들도 스스로를 지칭할 때 열도라 부르는 모양이다.
낮에 보았던 축제행렬처럼 이 행렬도 아주 천천히 이동했다. 이걸 보고 돌아가면서 나는 냉면 생각이 갑자기 간절해졌다. 배고프진 않았지만 날도 덥고 목도 타고... 을밀대, 을지면옥, 필동면옥, 평양면옥... 등 그동안 즐겨하던 냉면집 이름들이 마구 뇌리를 스쳐간다. 뜀도령과 나는 냉면 대신 모리소바를 찾기로 했다. 모리소바 전문점을 찾기 위해 샅샅이 다녔지만 소바전문점에도 바깥에 걸어 놓은 사진메뉴에는 모리소바가 없었다. 찾다 찾다 결국은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모리소바를 먹지 못한 아쉬움은 포기로 접어두고 나라(奈良)로 이어지는 다음날의 일정을 감안해 일찍 자기로 했다. 시원치가 않아 일부러 켜두고 나갔던 에어컨디션은 꺼져 있었다. 이미 체크인을 한 방에 주인장이 함부로 들어와서 껐을리는 없고. 뭔 감지장치가 있는건지 어쩐건지.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방이 더웠던 이유는 골목 안에서도 햇볕이 가장 먼저 닿고 하루 종일 덥혀지는 방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처음엔 좀 짜증스러웠지만 자다 보니 그런대로 시원해진다. 그럼 됐지 뭐. 아래 사진은 숙소로 돌아가며 마지막으로 쓰는 이 날의 무제한 버스 1일권을 마지막으로 써먹으며 버스 안에서 내다 보며 찍은 사진. 버스카드 덕분에 돈 엄청 벌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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