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7.16(토) 계속
사실 볼거리로는 야사카진자도 그리 크지 않은 신사이기에 오래 머물 곳도 아니었지만 이 곳에서 왁자하게 벌어진 축제분위기가 우리의 발길을 좀 더 오래 붙잡은 탓에 여기서 보낸 시간은 적지 않았다. 이 날의 계획상으로 보자면 일정들이 많이 지연된 상태였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빼먹을지를 결정해야 했다. 지온인은 이미 건너 뛰어 야사카진자로 왔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모신 사찰인 고다이지도 통과(이건 사실 침략자의 넋을 기리는 곳인만큼 안봐도 그만이다), 이 날은 니넨자카와 산넨자카를 경유해 기요미즈테라를 보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중요하게 생각되던 산지산겐도는 다음 날 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될까는 조금 의문이었다. 하긴 이때의 시간이 17:00경이었으니 왠만한 곳은 문을 닫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이 곳이 니넨자카의 초입이다. 전통 재래식 건물들이 즐비하다. 이 곳은 1층은 상점으로 2층은 주거지역으로 이용되는 상가다. 각종 기념품과 선물용 먹거리가 즐비하다. 사고싶은 물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척 가격들이 비싸다.
2004년 이 곳에 처음 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1층의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은 다음이었다. 그렇게 황량할 수가 없었다. 2층도 드문드문 몇 군데만 등이 불밝혀져 있을 뿐 우중충한 거리로 변해 있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19:00는 넘었을게다. 하지만 이 곳의 전통적인 분위기에 반해 한참을 머물다 간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 번엔 상점들이 문을 닫기 전에 왔으니 그 때와 비교하면 무척 밝은 분위기였고 그만큼 이 곳이 편안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한 가게의 전시물들. 임산부와 심신노약자는 이 곳의 가격표를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강심장인 내가 보고도 뒤로 자빠지는 줄 알았다. 여긴 걍 구경용 거리지 쇼핑용 거리가 아니란 얘기다.
바로 앞 계단까지가 니넨자카다. 이 곳 니넨자카(二年坂)와 곧 이어지는 거리인 산넨자카(三年坂)는 일본의 전통건물 보존지구로 선정되어 있을만큼 고풍스러운 향기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3년 고개 전설이 있듯이 이 니넨자카와 산넨자카 역시 이 고개에서 한 번 넘어지면 2년, 3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전설이 얽혀 있다고 한다.
386 세대(지금은 486세대가 되었지만)라면 기억하고 있을 TV 방송희극 고전유머극장에서도 3년고개를 다룬 적이 있다. 3년고개에서 넘어진 한 노인이 앞으로 3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스트레스에 몸져 누웠다가 아들의 이상한 계산으로 아홉 번 더 넘어지면 30년을 살 수 있다는 결론을 얻고 벌떡 일어나 9번을 더 데굴데굴 굴렀다가 결국은 골병으로 죽게 된다.
바로 이 니넨자카와 산넨자카도 이러한 전설이 얽혀 있는 재미있는 곳이다. 이런 얼토당토 않은 계산은 내가 참고한 여행 가이드의 썰렁한 재담에도 들어 있고 뜀도령도 몇 번 더 구르면 되지 뭐가 걱정이냐는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이것이 일반적인 반응인가 보다. 어쨌든 전설을 언급하자면 산넨자카(三年坂)에서 넘어지는 것이 니넨자카(二年坂)에서 넘어지는 것이 훨씬 운이 좋은 것만은 이상한 셈법이 아니리라 믿는다. - 이 것도 썰렁(이 글을 읽는 사람들 더위에서 좀 벗어나게 하려고... ㅡ,.ㅡ;)
이 고개를 걷는 사람들 중 조심스레 걷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안믿는다는 얘기겠지...?
니넨자카를 올라와 산넨자카로 통하는 길에 들어서서 만난 전통의상의 젊은이들. 더 가서 만난 너댓명의 사람들은 기모노를 입은 채 몰려 다니며 사진을 찍길래 유심히 봤더니 중국어를 무지하게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더라는... 안물어 봤으니 모르지 국적이야(아래 사람들 아님)
이 곳이 산넨자카 초입.
산넨자카의 고전적인 분위기에 맞물려 인력거꾼까지 호객하고 있으니 사진 찍기는 더욱 좋아졌다. "인력거 타세엠! 가자는곳 다 가고 안가자는 곳 안가욤!"
아까 그 곳은 니넨자카이면서 이 곳은 왜 산넨자카인가 궁금했다. 일부러 구분을 두기 위해서? 고갯길 계단을 가만 보니 산넨자카가 더 길다. 그래서가 아닐까? 아님 말구.
좌우에는 고급 식당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과거에 왔던 기억이 새롭고 살짝 감개가 무량하다.
점심도 부실하게 먹은데다 벌써 18:00가 다 되었다. 기요미즈테라(청수사)는 18:00에 문닫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이미 문을 닫는 시간이었다. 혹시 축제기간이라 연장해주면 고맙고 아님 말지 하는 생각에 민생고부터 해결하고자 식당을 한군데 정해 놓고 들어가 봤다. 아래 사진 골목 막다르게 자리잡은 식당이다.
안내되어 자리잡은 곳은 주변의 재래식 가옥들이 내려다 보이는 창가여서 적이 마음에 흡족했다. 가자마자 무료로 내어 주는 차부터 한잔 마시며 한 컷.
기린맥주부터 한 병 주문했다.
한꺼번에 나오는 음식인 줄 알았지만 코스요리처럼 차례로 나오시 시작했다. 이게 전채요리인가보다. 보기에만 예쁘지 먹자면 참 간지럽다. 푸짐한걸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면 여기에 느끼는 감정은 누구라도 비스므리하지 않을까. 그래도 어쨌든 깔끔하고 맛은 좋다.
이건 요플레를 떠먹는 느낌이다. 아마도 우뭇가사리를 주재료로 젤리형태로 굳히면서 천연재료를 이용해 색과 향을 입힌듯하다.
사시미 몇 점과 함께 나온 것은 두부 같기는 한데 두부로 보기엔 쫄깃함이 있어 뭔지 모르겠지만 식감은 아주 좋다. 사시미에 함께 나온 천연 와사비는 향긋하고 달아 짜지 않은 간장과의 환상궁합이 회맛에 풍미를 더한다. 보는 것 만큼이나 맛도 깔끔하다.
밥에는 무엇을 뿌렸을까. 일본인들은 밥에 무언가 뿌리길 좋아하는 듯하다. 몇 년 전 기온 주변 상가의 곰베에라는 식당에서 라멘과 공기밥 세트를 주문했더니 밥에 말린 생선의 풍미가 느껴지는 조미료(?)를 뿌려서 주던데 이 것도 그와 비슷하다. 함께 나온 짱아찌 반찬이 하품 나오도록 적다. 반찬을 아껴가며 밥 1/3 이상 먹었을 때
사께구이가 나온다. ㅡ,.ㅡ; 좀 빨리 나오면 좋잖아. 어쨌든 이 것도 맛 좋고.
뒤이어 나온 두부 요리는 살짝 부친 두부 위에 달작지근한 소스를 뿌려 내왔다. 부들부들한 두부에 달작지근한 이 소스 궁합 정말 좋다. 우리는 두부전이나 매운 찌개에 텀벙텀벙 넣어 강한 맛을 내는데 이들의 요리는 강한 맛은 거의 없다. 화끈하고 다혈질인 우리의 민족성과 복종과 순응이 미덕인 이들의 민족성을 이 음식들이 대변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쓸데 없는 생각도...
뒤이어 따라 나온 미소시루. 국이나 찌개를 밥과 함께, 그것도 말거나 비벼 함께 먹는 우리와 달리 이들은 미소시루를 가장 나중에 먹는다. 이유는 미소시루가 비교적 맛이 강해(한국의 김치찌개나 매운탕에 비하면 순하기 짝이 없지만) 음식을 다 먹고 난 뒤에 먹는 경우가 많은데 초밥을 먹을 때 특히 그러하다. 이 것도 그래서 맨 나중에 밥 다먹어갈 때쯤 나온 모양이다. 그동안 본 미소시루 중 간이 가장 강하고 진한 맛이다. 일본의 된장은 맛이 밋밋하고 깊은 맛이 부족하다는 편견을 깨 준 국물.
우리 테이블 서빙을 맡아 주었던 여직원이다. 얼굴을 보면 고등학교를 갓졸업한 듯 어려 보이고, 입고 있던 기모노 역시 습관이 되지 않았는지 얻어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다. 음식을 내 놓으며 소매 아래로 드러나는 손목은 내 엄지손가락 두 개 합치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야리야리하고, 이 곳에 취업한 지 얼마되지 않았는지 초긴장 속에서도 미소를 내보이던 그녀는 쟁반에 음식을 담아 와 테이블에 내려 놓을 때마다 접시를 쥔 그녀의 손은 바들바들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싶을 정도로 떨렸다. 안쓰러워서 못 볼 만큼 음식을 하나하나 내려 놓는 동안 혹시 엎지르거나 떨어뜨리지 않을까 우리까지 조바심을 내야 했고, 그녀가 무사히 음식을 내려 놓고 방금 먹은 접시를 걷어 갈 때마다 안도의 한숨까지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나올 때 수고했다는 인사라도 해 줬어야 했는데 그 때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먹을 것 다 먹은 줄 알고 계산하러 나갔다. 혹시라도 바로 위에 있는 기요미즈테라의 문을 아직도 안닫았으면 함 들어가 보자며 약간은 서두른 감이 있다. 주인장으로 보이는 여사님의 계산이 끝난 뒤 잠깐 기다리라며 후식을 갖다 준다.
문가 대기석에 앉아 마신 차와 푸딩(?). 아마도 녹두 양갱이 아닐까 싶은 맛이다.
간판과 음식 사진들을 보고 들어갔던 집이지만 이 집 이름은 식사를 마치고서야 눈에 들어왔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음식만 눈에 들어오고 식당은 눈에 안들어 왔던 모양이다. 비교적 고급 음식점이라 만만치 않은 비용이 깨졌다. 4,935엔
기요미즈테라에 가봤다. 으따 젠장. 2004년때는 이미 태양이 바닥 아래로 내려 앉고 난 뒤에 왔었고 잠긴 출입구를 보고 왠지 나를 뱉어낸듯한 섭섭함을 느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 때보다는 이른 시간에 왔지만 이 번에도 따를 당한듯한 느낌이 왠지 모르게 드니 참 쓰잘데기 없는 감상이다. 몇 명의 양코 젊은이들이 입구에 앉아 있었다. 우리처럼 허탈한 상황인지 아님 볼거 다 보고 부리는 승자(?)의 여유인지 모르지만 낼 봐도 될텐데 후자였다면 질투난다는... ㅡ,.ㅡ; 그래도 우린 나은 편이었다. 그 비싼 일본의 택시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가 닫힌 문을 보고는 실망한채 다시 그 택시를 타고 나가는 외국인 처자도 있었다.
그러면 오늘의 일정은 여기서 마무리를 해야 했다. 이번에는 기온거리로 가보기로 했다. 니넨자카와 산넨자카의 느낌이 너무 좋아 이미 걸어왔던 길이었지만 어차피 기온으로 통하는 길이니 그리로 가기로 했다. 상가들이 모두 문을 닫고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한 이 거리가 바로 2004년에 홀로 와서 본 느낌이었다. 아니 그 때는 지금보다 더 늦은 시간이어서 가로등이 쓸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길을 걸으니 추억까지 되새기게 한다.
그 때 봤던 거대 항아리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지 상업지구로만 활용이 되는건지 7시가 갓넘은 이 시간에 가로등 외에는 거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낮에 걸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여서 이 역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쯤에서였는지 로밍이 되지 않아 임대해 온 폰이 보이지 않는다며 뜀도령이 급히 다녀오겠단다. 나는 이 곳이 너무 좋아 여기서 머물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다행이 뜀도령이 휴대폰을 들고 만면의 미소를 띠고 돌아왔다. 음식점일거라는 내 추측과 달리 기요미즈테라 입구에 놓고 왔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찾았으니 다행이고 뜀박질로 단련된 덕에 무척이나 빨리 돌아왔다.
이 곳을 지나 계속 가다 보면 민가 사이로 야사카탑(八坂塔)이 눈에 들어온다. 야사카 진자가 여기서 적지 않은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 서로 연관성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해진다. 유적지 안에 있는 다른 탑들과 달리 민가 틈바구니에 보이는 이 거대 탑은 간과하고 지나치기엔 왠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다. 2004년에도 어둠 속에 민가 사이로 드러난 이 탑에 매료된 기억이 있다.
앗! 이 것들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니... 기괴하고도 기발한 인형들이 하나도 빠짐 없이 그 때 그 벽에 그대로 걸려 있다. 한국에서였다면 이게 지금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해선 안되는 짓은 하지 않는 일본인들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어쨌든 이 거리의 이 기괴한 벽걸이 역시 무척이나 반갑지 않을 수 없었었다. 나름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어 파는지 모르겠지만 갤러리라고 해야 할지 아님 상점이라 해야 할지 모를 이 곳은 초저녁이지만 역시 문을 닫았다. 가게 안을 구경하면 더욱 재미가 있었을텐데... 어쨌든 이 기괴하고 쳐다보기 불안한 인형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도대체 이걸 만든 사람의 정서가 어떠한지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위협적이며 노골적이고
기괴하면서도 선정적이다.
경악스럽기도 하고
기발하기도 한 이 물건들은 남의 것이라 만져보진 않았지만 석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석고로 만든 것 치고는 늘어지는듯한 피부의 질감을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표현한 탓에 보다보면 불쾌한 살냄새가 진동한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들 외에 다른 작품들도 모두 봤으면 하는 것은 또 무슨 심리인지... ㅡ,.ㅡ;
바로 코앞에서 본 야사카탑은 매우 크고 높았다. 우리나라엔 석탑이 많이 남아있고 목탑은 내 알기론 거의 남아있지 않다.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어 기초공사에 쓰인 돌들만 남아 있는 황룡사 9층 목탑의 터에서는 왠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졌던 적이 있다. 남아있는 기록과 그 터를 보면 그 거대함이 일단 상상하는 자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당시의건축기술과 남아있는 많지 않은 자료를 토대로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이를 재현하는 내용의 다큐 프로그램을 보고 감명을 받은 적도 있다. 그 다큐를 다시 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무엇보다 고증에 따른 재건축 시도는 왜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목탑이 남아있다는 사실에도 이들에게 부러움이 느껴진다. 이보다 훨씬 아름다운 목탑이 나올 것만 같은데...
기온상가 거리는 이미 차량을 통제해 축제를 즐기려는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다른건 없고 이 날은 그저 전통의상을 입은 시민들이 몰려나와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차량이 통제된 거리 곳곳에는 전통공연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이 곳에도 사자춤이 공연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채로운 것은 사자춤을 추는 배우들이 모두 여성이었다는 점. 한국에도, 중국에도, 일본에도 사자춤이 있지만, 묘하게도 이 세 나라 모두는 사자가 없는 곳이니 이 역시 아이러니하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눈에 띠게 화려한 화장을 한 처자들이 눈에 많이 띤다. 스모키화장이 가장 대표적인 치장인데 큰 키에 호리호리한 한 처자가 스모키 화장에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있어 카메라에 담았지만 휴대전화를 하고 있던 그녀는 내가 셔터를 눌렀을 땐 이미 가게를 둘러보느라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얼굴까지 찍었으면 더욱 재미있었을텐데... 초상권 침해인가? 하긴 일반화장을 하거나 생얼이라면 알아보지도 못할 얼굴인데 뭐 가면 쓴거하구 뭐가 달라.
황금특수인 이 날에 사람들이 줄을 많이 늘어선 가게들이 많은데 특히 눈에 띠는 집이 있었다.
멕시코 음식인 뭐라든가 뭐 그런거런거하고 비스므리하게 생겻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밥먹은지 얼마되지 않은 시간이라 뭔가 뱃속에 구겨넣을 생각은 들지 않으니 신기한 가게를 들여다 보기만 할 뿐인데 주방은 훤히 들여다 보이고 조리하는 과정은 쇼처럼 공개한다. 그 앞에는 이쁘장한 마네킹 아줌마 하나 영업사원으로 세워 두었고
가게 문앞 손님 대기석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이쁘장한 기모노 아줌마는 실제 인물이 아닌 마네킹이다. 이 곳에 대기 손님들이 마네킹과 같이 앉아 순서를 기다린다.
가게 앞에는 개한테 바지를 벗기는 수모를 당하는 소년 인형도 눈에 띤다. 백진도개 같은데? 재미있는 가게를 주워섬겼을 뿐인데 마치 광고한 것 같군. ㅡ,.ㅡ; 파워블로거도 아니니 오해들 하지 마셈. ㅋㅋ
어딘가에서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 하고 싶어졌다. 개천에 모여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는 젊은이들로 가득한 이 곳은 널려진 쓰레기와 담배꽁초가 우리네하구 똑같다. 여기에서라도 맥주 한 캔 마셔보려 했더니만 가게방 하나 없다.
상가 골목골목엔 이자카야식 선술집이 많아 어딘가 정말 맘에 드는 분위기가 나오면 한 잔 하자며 돌아다니다 보니 차량통제구간은 죄다 돌아다닌 것 같다. 이렇게 다닌 거리도 장난 아니게 장거릴쎄.
상가에는 다섯개짜리 등이 길게 상가를 장식하고 있는데 이 곳 상가의 무슨 상징을 담고 있는 듯한데 그게 뭔지는 나도 모르겠고...
시장통에 들어가 나도 함 입어 보려고 유타카 한 벌 샀다. 3,000엔으로 비교적 비싸지 않은 값인데다 집에서 혼자 쉴 때 그만일 것 같아 겸사겸사 하나 집어 봤다. 뜀도령이 사진 한 장 찍어 주더니 어울리지 않는 컨셉이라며 고개를 도리질한다. 상관없다. 여기선 함 입어 보는거고 집에가면 실용적으로 써먹을 물건잉께로. 이걸 입고 게다는 아직 구입하지 않아 하체는 사진에 안찍었지만 블랙진에 밝은 갈색 가죽신이니 일본인들이 봤을 땐 어이가 없었을게다.
맡겨 두었던 짐을 찾으러 다시 타니하우스에 가 봤다.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우리는 혹시라도 비는 방이 생기면 최우선적으로 확보해 주겠다던 타니하우스 주인 할머니의 대답이 "미안하우. 방이 없어."였는데, 만일 줘도 간밤에 잤던 그 도미토리라면 고개 절래절래로 생각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양해를 얻어 간단하게 씻은 뒤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길을 떠났다. 우선 길을 건넌 우리는 전날 갔던 오코노미야키점 '창남'에서 알려주었던 방향으로 가봤다. 적잖은 거리를 가 봤지만 게스트하우스 비스므리한 것도 안나왔다. 할 수 없이 정확한 위치를 알아보기 위해 다시 창남으로 가봤다. 가서 보니 종업원 두 명과 주인장이 있었는데 전날 우리에게 너스레를 떨던 그 귀여운 청년은 파트타임이거나 알바였는지 마침 없었다. 우리는 주인장에게 전 날 알려 주었던 그 호텔 이름을 다시 물었지만 알아듣질 못했다. 낯이 설은 젊은 직원들이 내 얘기를 들어 주었다. 앞 뒤 사정을 모르는 이 직원들은 우릴 보구 "야들이 왜 여기와서 난리여?" 했을지 모르지만 우린 씻고 쉴 곳을 찾아야 했으니 그런거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손짓발짓으로 오버하는 내 말을 간신히 알아들은 직원이 주인장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우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약도를 그려 주며 월광(月光)이라 이름을 써 주었다. 우리는 자리 잡고 다시 오겠다며 치하한 뒤 그 방향으로 가봤다. 이 곳에 오기 전 헤맬 때 주인장이 그려준 곳 그 직전까지만 가 봤지 더 가보질 않았으니 우리 자신에 어이가 없었다. 조금 더 갔으면 그들을 번거롭게는 안했을게다. 막상 찾아 가 보니 이 곳은 아주 웃기는 곳이었다. 그냥 평범한 가게방인줄 알았더니 간판에는 게스트하우스라 쓰여 있고 그 가게방 공간이 게스트하우스 프론트였다. 물건을 모두 치운 가게처럼 보이는 이 공간에 평상과 긴의자가 놓여있고 투숙객들이 사랑방처럼 모여 오밀조밀 이야기를 나누고들 있었다. 이 곳도 무척 덥지만 개의치 않는건지 갈데가 없어 그런건지 이 곳이 좋은 모양이었다. 방은 2층에 있는 모양인데 그 방이라는 것이 아주 웃긴다. 벽이고 지붕이고 그냥 양철 슬렛으로 대충 가림막이 되어 있는 공간이 단체로 기거하는 도미토리인 것 같고 빛이 새나오는 양철 슬렛 이음새 사이로 불빛이 새나왔다. 사람들이 모두(?) 내려와 있는 것만 봐도 그 곳이 얼마나 더운지 지레 짐작이 갔다. 물론 바깥에서만 본 인상이라 정확한건 아니다. 전 날 청년이 이야기해 준 바로는 이 곳이 방금 쫓겨난 타니하우스 보다 싸다는 것이 그런 나의 지레짐작을 뒷받침했을 뿐 확실치는 않다.
"두 사람인데 방 있어요?"
"미안합니다만 방이 없습니다."
프론트에 모여 있던 투숙객들은 심심하던 차에 신참이 들어와 방이 있는지를 물으니 그들의 이목이 내 뒤통수로 쏠림이 느껴졌다. 방이 없다는 말에 여기 저기서 탄식이 나왔다.
"저걸 어째 방이 없다니..."
태반은 일본인들인 것 같고 그 중 다르게 생긴 외국인들도 종종 보였다.
"혹시 이 근처에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알려줄 수 있나요?"
"기다려 보세요."
직원은 인터넷을 뒤져 보고는
"미안합니다. 다른 곳도 방이 없다는군요."
나보다도 좌중이 제 일처럼 더 만감하게 반응했다.
"다른 데도 없어? 저런저런... 방을 구해야 할텐데..."
"그 외 근처에 다른덴 없져?" 내가 다시 물었다.
잠시 생각한 그가 뭔가 생각난다며 다시 인터넷을 검색했다. 역시 교토인들은 외지인들에게 친절했다.
"역시 없네요."
고맙다고 인사한 뒤 밖으로 나오는데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 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좀 더 다니면 구할 수 있어요."
"그럼요 틀림없이 구할 수 있다니까요."
마치 방을 구하기 절대 어려운 상황에서 그들이 나를 동정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종일 더위에 지친데다 간밤에 더위때문에 잠을 설친 탓에 빵빵 터지는 에어컨 공기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오지랖 넓은 이 사람들과 같이 묵으면 정말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역시 섭섭한 생각도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방을 구하지 못하고 노숙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암담한 기분까지 들기 시작했다. 이 때 시간이 11시 30분을 달리고 있었다. 가이드북을 보면 교토역 근처에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급 호텔들이 모여있어 일단 역전으로 가기로 했고, 그러자면 일단 버스편이 끊어지기 전에 앞 뒤 생각 없이 당장 버스부터 타야했다. 남창에 잠깐 들러 치하의 인사와 함께 여의치 않아 역전으로 간다 인사하고는 버스정류장으로 서둘러 갔다. 206번을 타고 다시 교토역 방향으로 가면서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게스트 하우스들 하나하나에 뜀도령의 로밍전화로 돌려보기 시작했다. 타니하우스를 제외한 가장 싼 곳부터 순차적으로 전화를 해봤다. 일곱 군데를 연속으로 돌려봤지만 답변은 모두 "아임 소리 투 세이 ..."였다. 아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코렐리 여행역사에 방이 없어 못들어 가는 초유의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중국에서 멋모르고 여권을 북경 숙소에 두고 사본 들고 지난까지 가서 알랑거리다 체크인이 안돼 직면했던 노숙위기 이후 최악의 위기였다. 버스 안에서 뜀도령과 나는 별 이야기를 다했다.
"일본엔 찜질방 같은게 없을까요?"
"여부셔, 그건 한국에만 있는 희한한 문화여."
"이거 방구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비싼 호텔가면 그래도 방이 없을까?"
"이집트의 연말연시에 유럽인들이 고급호텔부터 죄 다 장악하는거 못봤어? 여기도 그럴걸?"
"까짓거 여긴 범죄도 없는 곳이라 노숙인들하구 공원에 껴서 자도 문제 없을걸?"
나도 모르게 노숙 이야기까지 나왔는데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게 된 우리는 이 내용이 꽤 진지해졌다.
"잠자리 불편하고 씻지도 못하고 아침이면 완전 거지꼴일텐데 그 땐 또 어디서 씻고 담날 더위에 지칠 일정을 어떻게 소화하져?"
듣고 보니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면 세상에 해결 안돼는 문제가 뭐가 있을까. 이건 멀쩡한 집에 쳐들어 가서 민박쳐 달라고 조르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이었다. 일단 전화로 확인하는건 접고 역전에서 그냥 찾아 다니며 알아 보는것이 낫다는 판단이 섰다.
역전에서 내리자마자 대로변에 송본여관이라는 곳부터 눈에 띠었다.
여관이 보이자마자 반가운 생각이 들어 길을 건너기 위해 지하도로 가 보니 이미 셔터가 내려져 있어 그를 통한 길은 없었다. 건널목을 찾았다. 지하도가 잘 발달되어 있는 곳이라 그런지 근처엔 건널목이 보이질 않았다. 늦은 시간이라 차는 뜸하고 6차선 대로를 현지인들도 슈퍼맨처럼 날아 무단횡단을 했다. 무단횡단으로 길을 건너는 뜀도령을 뒤통수에 대고 나무랐지만 이후 차선이 복잡하게 얽힌 곳인데다 차도와 차도 사이로 툭 떨어져 있는 이 곳에서 한참을 찾아 헤매지 않는 한 무단횡단은 불가피했다. 찾아 보면 있겠지 없긴 왜 없겠어. 호텔도 빨리 알아봐야 하고 길 건너에 흉칙한 인간이 기다리고는 있고... 에라 모르겠다. 차도 없고 현지인들도 막건너는데 나도 함... 현장을 까칠한 뜀도령이 기록으로 남겼다. 보나마나 제 블로그에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겠군. 미리 자진납세 한다. 나 위선자다 왜, 어쩔래?
일단 들어가 빈방이 있는지부터 물었다. 반갑게도 방이 있단다.
"트윈룸 얼마예요?"
"6천엔요." 난 첨엔 왜 이렇게 싼가 귀를 의심했다.
"방값이예요. 아님 1인당 요금예요?"
"1인당요."
이 분은 몇 개 남지 않은 방의 리스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한가지 아셔야 할 것은 12시가 넘으면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때는 11시 50분을 넘기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숙박료도 살짝 망설여지는데 출입 통제라? 한잔 해야 돼는데 곱게 잠만 자라? 우리는 한 군데 찾아내자 마자 방이 있음에 슬몃 안도감이 들어 다른 곳도 함 보자고 했다. 바로 옆 다른 여관에 물어보니 방이 없었다. 머릿속에 단세포로 뇌를 둔 나는 금새 다시 초조해져 다시 송본여관으로 되돌아갔다. 되돌아가자 남은 방을 공실처리하려다 되돌아온 우리를 본 주인장(인지 지배인인지 모르겠지만)은 반가운 기색이었다.
"지금 체크인 하고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좀 사와야 하는데 혹시 기다려 줄 수 있어요?"
"아, 그럼요 기다려 드리죠."
결국 체크인을 했다. 생각보다 비싼 방인데다 한 잔 걸치러 나가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노숙을 피한 것 만도 어디냐 싶었다.
길 건너편에 편의점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체크인을 마치자마자 그 곳부터 갔다. 저녁은 먹었지만 늦은 시간이라 적잖이 출출해졌고 알콜 결핍증도 해소해야 했고... 일본에선 편의점만 이용해도 만만치 않은 돈이 깨진다.
좁긴 하지만 썰렁한 에어컨과 쾌적한 방분위기에 감격의 도가니에 한동안 빠졌다. 뜀도령과 나는 역시 돈 쓴 보람이 있다며 만족해 했다. 침대 위에는 유타카도 한 벌씩 놓여져 있었다.
아래 사진은 뜀도령이 기록한 내용이다. 우리의 체크인을 도와주었던 양반이 한국 드라마 팬이었다. 여러 드라마를 섭렵한 그가 TV에서 나를 보았단다. 드라마 '동이'에서 장상궁의 오빠가 나와 닮았단다. 나는 TV를 즐겨하지 않아 아직도 그가 누군지 모른다. 장상궁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의 오라비를 내가 어떻게 알어? 뜀도령은 박장대소하며 난리가 났다. 뭐야 도대체? 뜀도령은 이산의 정조를 닮았다나? 그래, 드라마 이산은 봤다. 두 사람이 까칠해 보인다는 공통점은 있는 것 같은데 뜀도령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 잘나서 좋겠다. ㅡ,.ㅡ;
편의점에서 사 온 기린맥주와 초밥 도시락. 생긴게 후지다 못해 꼬질꼬질해 보이지만 배고파서 그런지 몰라도 맛은 그만이다. 기린 맥주의 맛이야 최고지.
기분좋게 샤워한 뒤 막걸리를 즐기는 뜀군. 그래 그렇게 인상쓰니 정조다 정조. 내가 무슨 노론벽파 머시기라도 돼냐?
나처럼 착한 인상을 쓰고 살아야지. 이 날 이시간은 노숙위협으로부터 해방되었고, 더위로부터 해방되었고, 끈적함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지친 몸이 휴식을 얻으니 이 이상 행복할 순 없었다. 게다가 맥주까지... 이 날은 정말 쾌적하게 잤고 담날 아침은 가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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