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4(금)
명절을 제외하면 금년 들어 두 번째 연휴였다. 첫 번째 연휴동안 방바닥에 해골만 굴렸지만 두 번째 연휴에도 그런 숭한 짓은 차마 못하겠다는 생각에 해남 가는 고속버스표(21,300)를 편도로 예약했다. 전부터 해남 땅끝마을 어쩌고 저쩌고 보길도가 어쩌고 저쩌고 들어 보기만 많이 들어봤다. 나도 함 가보자. 훌쩍 해남으로 떠나는 김에 기냥 보길도까지 내달려 볼 참이었다. 08:45분차를 타기 위해 휴일마다 늘어지게 즐기던 늦잠을 포기하고 터미널로 갔다. 아침이라고 먹은건 사과 한 개와 선식. 항상 먹는 아침 메뉴다. 버스는 정시에 출발했다.
가다가 중간에 들른 정안 휴게소에서 뭔가 먹거리를 찾아봤지만 배가 고픔에도 불구하고 땡기는 음식도 없었고 정차시간도 그리 길지 않아 여유있게 주저앉아 먹을 처지도 못되었다.
고민끝에 줄 서서 집어 든 충무김밥. 3천원짜리였던가? 차라리 돈을 더 받든지... 석박지도 잘게 썰어 세 갠가 들었고 오징어 볶음은 난도질해 몇 개 달랑 들었다. 쫀쫀하게 아껴먹으니 밥과 반찬이 똑떨어진다. 이거 먹고 나니 다시 차떠날 시간이다. 이러니 맨날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 욕이 나오는게 아니겠나.
먹고 나니 버스 떠날 시간 다 됐다. 다시 길떠났다. 부실하게 먹은 것 위로라도 하는지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경치가 좋다.
도로변에 꽃도 만발하게 피었고, 정리된 농경지도 단정하다. 시골이 지저분하다는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 된 모양이다.
이게 보리밭인지 밀밭인지 몰라도 흔히 하는 구경은 아닌듯하다. 초여름이지만 벌판이 황금물결이다.
14:30 되어 해남 도착. 연이어 땅끝으로 가는 버스표(4,800)를 샀다.
터미널에서 그대로 버스를 탄지 얼마되지 않아 곧 출발했다. 터미널에서 두어 정거장 갔을까. 한 아저씨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이 뇌까지 술에 절었다. 그 때까지 정감 있던 기사양반의 까칠한 목소리가 이 아저씨를 향해 날아 꽂혔다.
"아저씨 어디 가세요?"
대답이 없던 이 아저씨는 자신 때문에 차가 출발을 못하는건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부답이다가 질문이 반복되자
"어디 가냐고? 아 그야 꼬부랑꼬부랑 가지." ---> 혀 꼬부라지는 소리라 목적지를 난 못들었지만 나머진 그런대로 간신히 알아 들을만은 했다. 기사 양반은 몇 번을 되묻더니
"거기 안가요. 얼른 내리세요."
이 아저씨 못들은 척 개긴다. 서울에서 그리 흔하지 않은 풍경에 새삼 재미가 있어 어찌 돌아가는지 함 지켜봤다. 기사 아저씨하고 동승한 그의 친한 아우뻘 되시는 양반하고 맨뒤에 탄 술취아저씨를 강제로 내리게 하려고 시도해 봤지만 개기미 정신이 투철한 이 아저씨 왜소한 몸집에도 끝까지 버텼다.
기사양반은 술취아저씨의 안전이 걱정되었던지 동승한 아우뻘 양반에게 당부하며 길을 떠났다.
"그 아저씨 가운데 못앉게 해라. 급브레이크 밟으면 내자리까지 미끄러지고 굴러 오시는 수가 있으니께."
버티던 술취아저씨는 간신히 설득당해 우측으로 한 자리 옮기는데 무력하고 게으른 모습이 나무늘보를 연상시킨다. 아래 사진은 까칠한듯 친절한 기사양반.
노란 꽃이 뭔진 모르겠지만 가는 곳마다 심어져 있어 남쪽에 온 것이 실감나게 한다. 그다지 긴 시간도 어니었건만 가다 보니 재미있는 풍경은 쉬지 않고 나온다. 버스를 기다리던 한 할아버지가 쓰신 야구모자에는 "롱킥"이라고 쓰여져 있고, 농번기 모판을 잔뜩 실은 2톤 트럭을 운전하시는 30대의 여자분은 초보 운전인지 길을 가로막아 가며 유턴을 하시는데 가던 길을 멈추고 길이 뚫리길 기다리는 버스 때문인지 당황해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는 눈치였다. 친절한 기사 아저씨는 클락션 한 번 누르지 않고 차분히 기다리며 중얼거린다.
"저런 화물차를 으째 초보 아낙이 운전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일내면 으쩔려고 잉, 쯧쯔..."
40분인가 50분인가 가서야 드디어 도착한 땅끝마을(15:40). 나도 참 주책이지, 수년전 땅끝마을이 고즈넉하고 좋더란 말을 기억하곤 그걸 기대했으니 횟집과 모텔만 난무하는 이 곳 땅끝 마을 풍경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알려진지가 언젠데 지금까지 개발이 안됐으면 대한민국이 아니지. ㅡ,.ㅡ;
보길도에 뭐가 있는지 어디에 붙었는지부터 대충 훑어본 뒤 16:00 출발하는 도화도 산양항으로 가는 배편의 표를 샀다. 그 곳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보길대교를 건너면 바로 보길도다.
미관과는 상관없이 대충 만들어 놓은 매표소. 노화도 산양항으로 가는 표를 대충 샀다. 대충 5,700원
정박중인 두 척의 배 중 오른쪽의 배에 올라탔다.
어렸을 때 덕적도에 가면서 탔던 배와 마찬가지로 바닥에 둥굴며 갈 수 있도록 배려한 객실.
햇살이 따가운 시기였지만 차가운 남해의 바다 위를 훑으며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무척이나 쌀쌀하다. 나중엔 추워서 바람을 마주할 수 가 없을 지경이었다.
노화도에 다다랐다. 연휴라 그런지 이 배에는 차량들이 남긴 공간 없이 가득찼다.
배 뒷편에서 물보라를 보다 보면 부모님 손에 이끌려 해수욕장과 섬을 다니던 어린시절의 가족 여행이 떠올라 정겹기만 하다.
섬에 도착하면 간간이 택시가 올 뿐 버스같은건 거의없어 보였다.
빨리 길을 재촉해 봐야 섬 안이고 느려적거려도 섬 안이다. 그냥 쭐레쭐레 배낭맨체 걸어봤다. 가다가 택시 잡히면 타는게고 아님 어디까지 가게 되나 함 걸어가 보는거지. 주머니에 들어만 간다면 누가 보기 전에 얼른 집어 넣고 싶은 항아리들이 길거리에 방치되어 있다.
15분 정도 걷다가 만난 택시를 타고 건너는 보길대교.
보길도로 건너자마자 우회전하면 아래의 길이 나온다. 일출을 보기 위해 전망대로 가려다 그 근방에는 좋은 식당이 없다는 말에 생각을 고쳐먹고 저녁부터 먹기 위해 대교 남단으로 되돌아와 내렸다.
기사 아주머니가 추천해 준 횟집이다.
1인분을 끓이기 위해 멀쩡한 생선 한마리를 산채로 잡을 수는 없다며 난색을 표하던 주인 아주머니는 그새 막 들어온 두 명의 손님이 매운탕을 주문한 덕에 곁다리로 껴서 주문할 수 있었다. 남도의 반찬들은 깔끔하고 맛있기로 유명하다. 나물반찬도 좋지만 말린 갈치를 졸인 반찬도 환장 수준이다.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잎새주는 이 곳 지방의 지역소주인 모양이다.
고맙게도 내게 배당된 부위는 대가리였다. 매운탕은 역시 대가리라야 눈알과 내장 일부 등 먹을 것도 많고 육질도 최고다. 이렇게 나온 탕도 맛은 좋았지만 역시 음식은 최소 2~3인분 이상을 조리해야 제대로 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준다.
음식점 바로 앞을 지나가는 선박이 어촌에 왔음을 실감케 해준다.
밥을 먹고 난 나는 지도상의 볼거리가 서편보단 동편이 많이 몰렸다는 것을 확인하고 얼마나 걸으면 뭐가 나오나 암생각 없이 걸어 보기로 했다.
산과 갯벌이 동시에 펼쳐져 있는 곳인데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에 너무나도 좋은 길이다.
동쪽으로 길게 돌출부로 삐져나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통리해수욕장. 솔밭 바깥쪽으로는 백사장 위로 해조류 찌꺼기가 푸르딩딩한 색을 깔고 있었다.
근처에는 예쁘게 지어진 집도 많다.
동쪽으로 길게 난 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우암 송시열의 글쓰인 바위가 나온다. 5킬로미터 정도면 해지기 전에 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김양식장에는 부표들과 작업용 배들이 떠있다. 양식장이지만 청정해역의 물인만큼 깨끗하다.
뚫린 길을 계속 가다 보면 중리해수욕장도 나오고
더 가면 가두리양식장과 작업용 보트들이 널린 외진 곳으로 연결된다. 저멀리 해가 지기 시작한다.
맥주를 한 캔 사서 빨아 가며 가두리양식장 마을 어귀를 지나며 한 컷.
가두리양식장의 가지런한 배열이 단정해 보인다.
이 곳이 섬 돌출부 거의 끝마을인 모양이다. 해는 거의 떨어졌고 이제는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글쓰인 바위가 이 마을로부터 1.8킬로미터 거리에 있단다.
마을에는 자그마한 항구가 있어 양식 작업용 배들이 정박되어 있었다. 이 곳을 지나 송시열의 글쓰인 바위까지 무조건 가보려 했다. 마을 아주머니가 하시는 말씀.
"지금 가면 귀신 만날텐데..."
하며 마주쳐 지나가는 나를 혀까지 차며 돌아 보았다.
'귀신?'
귀신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지만 뭔가 뼈가 있는 말인듯했다. 사실 이 곳에 도착했을 당시 나는 다리도 아프고 더위에 살짝 지쳐 있었다. 그래도 간다며 호기롭게 걷던 나는 아무래도 아주머니의 말이 신경이 쓰였다. 마을을 벗어날 때 그 마을의 끝에 혼자 앉아 쉬시던 영감님께 여쭸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여행중에 글쓰인 바위 좀 보려고 왔다가 날이 저물었어요. 여기서 1.8킬로미터 쯤 되는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곳에 민박집이 있나요?"
"거긴 암것두 없어. 과부 혼자 사는 집만 세 집 달랑 있으니 뭐가 더 있겠어? 거 가봐야 재워 줄 턱도 없어."
이 대목에서 고민이 되었다. 잘 곳도 없는데 왕복 3.2킬로미터를 미친척하고 갔다 온다? 만다?
"혹시 그 곳에 가면 글쓰인 바위를 해 진 뒤에도 볼 수 있는 가로등 같은 거라도 있어요?"
노인은 내 얼굴을 빤히 보며 말씀하셨다.
"아, 글쎄 암것두 읎다니깐. 마을을 벗어나면 산 속으로 뚫린 길 말고는 암것두 읎어요."
일단은 이 곳에서 멈추고 볼 일이었다. 이 곳에서 자고 아침에 가 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 그럼 이 마을에 민박집은 있나요?"
"읎지. 마을에 볼거리 암것두 읎는데 누가 여기까지 와서 민박을 한다구 그런게 있겠어?"
다시 걸어 나갈 생각을 하니 한심했다. 게다가 글쓰인 바위로부터 멀어질수록 가겠다는 의욕은 더욱 사라질 터였다.
"하나두요?"
"그려."
"어디로 가야돼요?"
"중리까진 나가야돼."
어휴...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려, 가봐."
하루 종일 단 몇 편의 버스밖에 없는 곳이라 남은 버스편도 당근 없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길을 털레털레 걸어 중리까지 갔다.
중리에서도 민박집을 찾아 돌아다녀 봤다. 물이 안나와서 못재워 준다는둥. 성수기에만 민박을 받는다는둥... 돌아다니다 보니 구멍가게에 쓰여진 수퍼마켓 표기가 인상적이어서 한 컷 찍어봤다. 몇 집 거쳐 대로변 민박집 간신히 하나 구했다. 별채를 원했지반 거긴 이미 손님들이 들어찼고 안채 한 쪽의 방을 내주었다. 그냥 가버릴까 하다가 3만원이라니깐 그냥 잔다. 샤워한 뒤 책 좀 보다 잤다. 안채에 있는 방이라 문을 닫고 창만 열고 잤지만 무척이나 시원하고 쾌적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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