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6(수) 계속
다음으로 들른 곳은 바로 근처에 있는 산타 마리아 라 블랑카 교회(Sinagoga de Santa Maria la Blanca: 16:30)이었다.
무하데르 양식 건축물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건물은 당초 유대 교회로 지어졌으나 1492년 유대인 추방 후 그리스도교회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 때는 이 곳 톨레도에만 유대 교회가 10군데나 있었을 정도로 유대교가 번성했었다고 한다.
지금은 조금 전 들렀던 트란시토 시나고가를 포함해 달랑 두 개 남았다고 한다. 기둥머리는 솔방울 장식이고
말발굽 모양의 특이한 아치가 볼만하다.
안에는 유화 작품이 여러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아무런 설명이 달려 있지 않으니 궁금할 뿐이다. 성 마리아의 교회로 명명된 것과 그림에 여성이 주인공임을 감안할 때 그리고 작품 안에 이 성당의 내부 일부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밑그림만 그려진 작품도 보인다. 전반적으로 여성적인 표현이 더욱 그러한 지레짐작을 하게 만든다.
성당을 나온 시간은 17:00였다. 엘 그레코가 살았던 집과 그의 걸작인 '톨레도의 풍경과 지도'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마드리드로 돌아갈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산타 크루즈 미술관을 들러 보기로 했다.
아래의 사진은 산토 토메 성당의 종탑이엇던 것 같다.
생각없이 골목 골목을 다니다 보면 가이드 책자에는 나오지도 않는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톨레도에서는 골목을 돌아보는 재미만도 여간이 아니다.
미술관으로 가던 중에 만난 돈 키호테의 동상.
아래 사진의 건물이 산타 크루즈 미술관(Museo de Santa Cruz)이다.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이 건물은 원래 이사벨 여왕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세운 자선병원이었다.
이 곳에는 엘 그레코의 작품들이 있어 엘 그레코의 집을 들르지 못한 아쉬움을 나름 달래보았다.
다른 곳에서 이미 본 바 있는 그림들이 여기에도 걸려있는 것을 보면 그리고 사진 촬영이 가능한 것을 보면 모작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 같다. 이 곳에는 엘 그레코가 그린 성모승천의 제단화, 리베라의 나사렛의 성가족, 고야의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등 걸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엘 그레코의 작품들 몇 장 찍어 보았다.
박물관을 나오고 나니 마지막으로 들르고자 했던 타베라 병원도 이미 문을 닫았을 시간이었다. 나는 급기야 엘 그리코의 집이 정말로 문을 닫은 것인지 갑자기 의심까지 들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다른 입구가 있는데 못찾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이대로는 떠날 수 없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날도 이미 졌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아직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버스는 많이 남아 있는 시간이었다. 이 곳에서 엘 그레코의 집까지는 발빠른 내 걸음으로도 최소 20분 이상의 거리에 있었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그 외에는 출입문이 없다는 사실을 내 눈으로 다시 확인하기로 작심했다. 만일 다른 입구를 찾아내고 그 곳으로는 출입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미 문을 닫은 시각이어서 아무 소용이 없을테지만 정말로 다른 출입구가 없다면 어차피 볼 수 없는 것이니 맘편하게 포기하고 마드리드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등산복 점퍼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 쓴채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궁상스럽게 맞아 가며 다시 엘그레코의 집으로 갔다. 돌바닥으로 이루어진 길은 미끄럽기까지 했다. 경사진 골목을 몇 번이고 미끄러질뻔 하면서도 확인하겠다는 그 일념. 내가 생각해도 흠좀무다. 등산재킷 안은 멀쩡했지만 블랙진을 입은 장딴지와 무릎은 이미 젖고 있었다. 엘 그레코의집 입구에 다시 도착한 나는 이미 낮에 했던 짓을 다시 했다. 그 주변좌우전후로도 다른 건물들이 즐비해 이리저리 둘러 보았다. 둘러 보는데만도 15분은 족히 걸린 것 같았다. 남들이 보면 저 또라이는 비까지 맞아가며 뭘 그리 찾아 헤매는지 의아했을 정도로 주변을 전부 돌아 보았다. 다른 어디에도 엘 그레코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그 곳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나 또라이인 것 같다. 나는 산타마리아 교회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차양 아래 비를 피해 벤치에 앉아 버스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쉬었다. 비는 여전히 부슬거리며 흩뿌리는 가운데 주변에는 가로등이 켜졌지만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이따금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들만이 무심하게 지날 뿐이었다. 조금 지나 노인 한 분이 버스 정거장에 왔고 한 두 명의 처자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왔다. 20분정도 기다리자 비도 그치고 버스도 왔다. 텅텅 빈 버스에 올라타는 이 순간에는 얼토당토 않은 성취감이 있으니 이 또한 기분 묘하다. 그다지 한기는 느껴지지 않았고 젖은 장딴지와 무릎이 축축한 것만 빼면 해지고 골목 조명만 남은 고도의 분위기를 내다 보는 기분은 만점짜리였다. 이 때 시간이 19:20분 쯤이었던 것 같다. 버스 터미널에서 몇 시 차를 탔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숙소가 있는 Plaza de Espana 역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9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지 못했던지라 시장기가 느껴졌다. 이 날은 코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sado)를 꼭 먹어볼 참이었다. 이 것은 새끼돼지를 통째로 구운 요리인데 스페인 요리중 가장 맛있을거라는 기대가 있었고 이 날이 아니라면 내일 저녁에도 기회가 있지만 혹시 모르니 오늘 여유 있게 먹어볼 셈이었다. 아래의 식당이 그나마 주변에서는 가장 고급스러워 보여 문을 열고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앉자마자 메뉴판에 코치니요 아사도가 있는지부터 확인해 봤다. 맥주와 함께 주문했다. 맥주와 함께 절인 올리브와 방울양파 그리고 빵이 나왔다. 비는 톨레도를 떠나기 전 이미 그쳤고 젖었던 장딴지와 무릎이 약간 눅눅했지만 그래도 거의 말랐다. 기분은 최고였다.
이윽고 코치니요 아사도가 나왔다. 보기만 해도 식욕이 돌았다. 표피가 바작바작하게 익었고 고기 육수와 소스가 흥건했다.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 입에 넣는 순간 나는 놀라고 말았다. 표면 껍질은 바작바작한데 그 안의 고기는 한없이 촉촉하고 부드러워 씹는대로 이가 육질 사이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혀에는 육수와 달콤하지만 틉틉하지 않고 깔끔한 소스가 한데 뒤엉켜 혓바닥에 흥건하게 미각을 자극했다. 순간 동공이 확대되고 혀는 흥분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돼지고기가 있다니. 물론 새끼돼지 요리를 먹어 본 것은 이 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괜한 과장이 아니고 이제까지 먹어 본 고기 중 최고의 요리였다. 지금까지도 잊지 못할 맛이다. 아 그립다. 미치도록...
행복한 식사를 하던 중 식당의 분위기를 담기 위해 바로 옆 거울 속에 나를 넣고 함 찍어 봤다.
숙소로 돌아와 맡겨 두었던 짐을 찾으며 전에 썼던 방을 다시 달라고 하니 이미 내 자리엔 다른 사람이 예약을 했다면서 2층의 다른 방을 내주었다. 새로 간 방은 여자들만 바글바글했다. 아마조네스에 툭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잠깐 몰려 들어온 처자들은 안에서 저희들끼리 잠깐 수다를 떨더니 이내 놀러 나갔다. 이 때 시간이 11시 가까이 되었던듯 싶다. 이 호텔 값도 싸고 좋긴 한데 간밤에 자고 일어나니 팔뚝에 뭔가 벌레물린듯한 자국이 있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자국은 하루종일 가려웠다. 이 날 다시 자고 일어나니 이젠 얼굴에 뭔가 물었는지 오른쪽 뺨에 벌겋게 두 개의 봉우리가 솟았다. 역시 하루종일 가려웠다. 전 세계에서 별별 잡인들이 다 다녀갔을 호텔이니 무리도 아닐거라 생각해 봤지만 여행자들이 묵는 호텔은 여기 뿐이 아니건만 왜 여기서만 그런 겅험을 하게 되는건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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