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1 스페인·포르투갈

하이 이베리아10-1(코르도바)

코렐리 2011. 4. 13. 14:43

2011.1.25(화)

부시시한 눈 비비고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는 중에 뒤통수에 노크 소리가 들려 왔다. 짐작되는 바가 있어 샤워꼭지를 잠그고 허리에 수건을 두른채 문을 열었다. 옷을 차려 입고 기타를 챙긴 마요가 특유의 조심스러운 몸가짐과 살짝 머뭇거리는 말투로 작별인사를 할 참이었다.

"나 지금 가야 돼."

마요를 처음 만났을 때나 헤어질 때나 나의 복장은 똑같은 타잔 복장이었다. 거 참 묘하지. 마요가 가진 짐은 어지간히도 단출했다. 그야 말로 기타 하나 동전 한 닙 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마도 입고 있는 빤쓰도 어제 입은 그 빤쓰일게 틀림 없었다(남의 사생활 넘 마니 들췄나?) 하긴 프랑스에서 2~30유로짜리 염가 항공편 타고 잠깐 와서 하루 자고 특강에 참가한 뒤 그 날로 떠나면 그만인데 짐싸고 호들갑 떨 필요도 없는 여정이 아니던가. 악수를 하고 절대로 다시 생길 수 없는 해후의 인연을 기약하는 인사를 나눈 뒤 마요가 문을 열고 나갔다. 샤워를 마치고 체크아웃을 한 뒤 카운터에 짐 맡기고 09:00 조금 넘어 숙소를 나섰다. 이 날 가장 먼저 가 볼 곳은 이 도시 최대의 볼거리인 메스키타였다. 걸어서 5분 거리다.

 

메스키타(Mezquita)는 에스파뇰로 모스크를 의미한다.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는 780년 아브드 알라흐만 1세가 서고트왕국의 교회가 있던 자리에 건설하였고 그 후 세 차례에 걸쳐 확장공사가 이루어져 현재의 규모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확장공사에 필요한 부지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관계로 마흐라브의 위치가 중앙이 아닌 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마흐라브(Mahrab)란 무슬림이 메카를 향해 기도할 때 예배자가 서야 할 메카의 방향을 알려주는 홈으로 건물 벽면의 중앙에 위치한다. 메스키타의 확장공사를 동쪽으로 하면서 서쪽으로는 확장하지 못한 관계로 마흐라브는 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북쪽으로 개방된 문을 통해 들어가자 아치부터 가장 먼저 눈에 띤다.

 

아라베스크 양식의 아치와 기둥은 끝없이 이어져 그 우아함과 아름다움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무언가 낭독하는 소리가 천장의 공명을 타고 우아하게 울려왔다. 처음엔 쿠란을 낭독하는 소린가 했다.

 

낭독하는 소리와 함께 아치와 기둥을 구경하고 있자면 넋이 다 빠질 정도로 황홀하다.  전에도 아름다운 모스크는 많이 봤지만 이렇게 우아한 아름다움을 가진 모스크는 정말 처음 봤고 도대체 어디부터 눈을 두어야 할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아래의 동영상은 들어가자마자 찍은 것으로 이 때 낭독했던 무언가가 흘러나오고 있어 신비감을 더한다.

 

알고 보니 이 낭독은 카톨릭 성직자와 교도들의 미사중에 낭독하는 그 무엇이었다. 알아듣지를 못하니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미사가 집전되는 동안 메스키타 안의 중앙에 위치한 카테드랄 안으로의 진입은 통제되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카테드랄 안에서 이루어지는 미사에는 꼭 한 번 만이라도 참례해 보고 싶었다. 나는 관리인에게 카톨릭 교도임을 밝히고 지금 들어갈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선뜻 붉은색 줄로 된 통제 라인을 열어 입장을 허가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르네상스 양식으로 장식된 천장에는 금 빛 장식이 눈을 압도했다. 제단에는 고위직 성직자(아마도)가 미사를 집전증이었고 좌우로 3명씩의 사제가 도열해 있었다. 제단의 좌우로 길게 설치된 위치 높은 좌석에는 지역 원로로 보이는 이들이 몇 명 앉아 있고 부제로 보이는 이가 구약이나 사도행전을 낭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용을 알 수 없으니 그냥 지레 짐작이다. 미사에 참례한 신도 수는 약 30명 정도. 주일미사가 아닌 평일 미사인 탓에 그 수가 많지 않았고 그 중 태반은 관광객인듯했다.

 

이어서 고위성직자로 보이는 사제가 복음을 낭독했다. 내용은 모른다. 성가의 울림은 높은 천장의 공명으로 인해 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감동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파이프가 거대한 오르간의 연주는 성스러움 그 자체였다. 섬세하다 못해 어지러운 장식과 높디높은 천장, 그 아래 낭독자와 오르간 연주의 공명, 제단 뒤로 새겨진 성인과 천사가 내려다 보는 그 곳에 앉아 이 모든 것을 체험하는 순간 가슴이 벅차 오름이 느껴졌다. 주일이면 그저 미사에 한 번 참례하는 것이 고작이고 그나마 미사 중 머릿 속은 거의 내내 딴데 가 있는 사이비 신자인 내가 이 곳의 장엄하고 경건한 분위기의 체험은 실로 놀랍고도 당혹스러웠다.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 온다는 느낌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떨어진 것도 리스본에서의 파두 감상때와 같지만 느낌은 전혀 달랐다. 이런 것을 종교적 체험이라 하는건가 싶었다. 그동안 살아왔던 나의 삶이 머릿 속을 스치며 짧은 시간 동안에 파노라마처럼 휙 지나갔다. 타협을 모르고 이제까지 나의 고집과 자존심만을 관철하며 살아온 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 때만큼은 처절하게 느껴졌던듯 하다. 설득을 할 수는 있어도 절대 꺾을 수 없다고 자부해 온 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고 유치한 존재였는지도 느껴졌다.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작디작은 나를 다시금 들여다 보는 순간을 이 곳의 종교의식이 내게 제공했다. 오 헨리의 단편 '소피의 겨울' 마지막 부분에 소피가 교회에서 자신을 돌이켜 보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새로운 삶을 다짐했을 때가 이러한 느낌이었을까. 도대체 내일이면 다시 싸가지 없어질 나 자신을 뻔히 알고 있는데 이러는 내가 당혹스러웠던 것만은 확실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때 뿐이었다. 나중에 신앙심 깊으신 어머니에게 경험담을 이야기 하니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이셨다. 원래 그런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감동이 느껴지는 일은 종종 있을 수 있는 일이란다. 그럼 그렇지. 개과천선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란 말이지. ㅡ,.ㅡ;

 

어쨌든 이 곳에서 성찬의 전례에도 참여했고 미사가 종료된 후에는 생면부지의 신도들과 어지럽게 인사를 나누는 가운데 나도 먼저 다가오는 몇 몇 신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미사중에는 사실 미사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럴 수는 없고 미사 종료 직후 성직자들이 아진 제단에 남아 있을 때 모습을 사진에 담아볼까 싶어 제복 입은 관리인에게 물었다.

"지금 사진 찍어도 돼요?"

"물론 돼죠. 근데 이 분들 다 떠나시고 나면 그 때 찍으세요."

"... ㅡ,.ㅡ; ..."

처음엔 이 어마어마하고 우아한 메스키타의 중앙에만 카테드랄을 설치하고 그래도 나머진 훼손하지 않은 줄 알았다. 둘러보다 보니 이런....!

 

무엇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선홍색과 아이보리색으로 장식한 아치들과 그 아치들을 떠받치는 기둥의 배열이었다. 유럽 카톨릭 교도라면 절대 만들어 낼 수 없는 컨셉과 형태였다. 이 아치를 형성하는 석재는 하나의 돌을 깎아 만든 것이 아니고 적색 돌과 아이보리 색의 돌을 교대로 겹쳐 놓은 형태다. 물론 이를 고착시키고 고정하기 위한 별도의 접착 재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걍 포개 놓으면 저희들끼리 하중을 견제해 아래로는 쏟아지지 않도록 한 건축 방식이다. 다른 기독교 세계의 건물에 돔을 얹을 때도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스페인의 카테드랄에는 보통 4대의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한다. 4명이 서로 멀리 떨어져 연주하면 이빨도 하나 안맞아 그야말로 진상일텐데 왜 그랬을까. 폼인가?

 

이러한 아치와 기둥 그리고 이슬람적 문양과 장식으로만 채워졌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 곳에는 카톨릭과 이슬람의 양식이 공존한다. 과연 조화로운가. 조화롭긴 완전 개뿔. 내 보기엔 부자연의 첨단이다. 레콘키스타(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 반도로부터 대대적으로 몰아내던 기독교도들의 국토 회복운동)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뒤 이미 세워진 모스크였다면 이 아름다운 모스크를 그대로 보존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16세기 당시의 고위 성직자들이 카를로스 5세를 설득하여 중앙에 카테드랄을 지었다. 고위성직자들의 권력이 왕을 능가하던 당시의 상황으로 비추어 보자면 말이 설득이지 거의 협박에 가까웠을 것 같다. 아님 말구(이 말 남발하는걸 보니 나도 여의도로 진출해야 되는거 아닌지... ㅡ,.ㅡ;) 카를로스 5세는 시대를 앞서간 열린 시각의 왕이었던가 보다. 이 곳을 보고 그는 성직자들을 향해 "당신들은 어디에도 없는 것을 부수고 어디에나 있는 것을 지었다"며 한탄했다고 한다. 이야~~~~! 졸라 멋져. 같은 남자지만 졸라 섹시한 발언이다.

 

온갖 곡선과 기하학적인 독특한 아름다움. 그 곡선의 중첩은 힘이 넘치고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 안에 새겨진 섬세하고 지극히 아름다운 문양

 

세상 어디에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단 말인가.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메트 자미도, 다마스쿠스의 우마야드 모스크도, 카사블랑카의 핫산2세 모스크도, 카이로의 리파이 사원도, 뉴델리의 자미 마스지도도 이만큼 중후함, 기하학적 아름다움, 섬세하고 우아한 문양, 그 안에 느껴지는 강렬한 힘과 에너지를 가진 이 모스크를 능가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이걸 보고 있자면 감동의 도가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가운데 세워진 카테드랄과 4개 벽면을 둘러싼 소규모 채플(예배실)은 이질적인 양식을 가미함으로써 부조화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탄할 일인가. 물론 카톨릭 교도인 내가 카테드랄을 지은 것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절대 없다. 다른 곳에 건설하면 되었을 카테드랄을 하필 이런 위대한 건축물을 이모양으로 만들면서까지 해야 했는지 당시의 고위성직자들에 대한 납득이 가지 않을 뿐이다. 저마다 최고의 형이상학적인 가치이며 육체가 아닌 영혼이 걸린 문제여서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목숨까지도 초개같이 버리게 하는 것이 바로 종교다. 성지탈환이라는 미명하에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물론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지만) 이슬람 세계에 대해 침략과 무차별적 학살을 자행했던 십자군 원정의 추악함은 과거만의 문제는 아니다. 남의 종교를 이단시하며 강요까지 하는 추한 짓은 오늘날까지도 자행되고 있으니 십자군 원정은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그들이 과연 사랑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묻고싶다. 누군가 나보구 그러겠군.

"사탄아 물러가라!"

그럼 대답해야지

"아, 예~~에!"

 

카톨릭이 이제까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은 이슬람 세계에 대한 십자군원정의 만행을 사과한 일이다. 하지만 이 것도 진작에 이루어졌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흥분했군. 각설하고, 그래도 왔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히 뒤져 뜯어보기는 했다.

 

그래도 완전히 헐어내지 않고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보존이 되도록 허용한 역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둘러 보았다. 이후의 사진들은 대부분 소규모 채플들을 담은 것들이다.

 

 

 

 

 

 

 

이슬람인들에 의해 이 정원이 보존되었다면 이 곳은 정원이 아니라 회랑과 대리석 바닥으로 이루어져 있었어야 한다. 지금은 스페인정원으로 가꾸어져 있다. 스페인의 정원은 자연스러움과 인공미를 적게 가미한다는 의미에서 한국식 정원과 많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전술한 부분들 때문에 일부 불만이 있지만 편안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