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0 중국어학연수

중국어학연수16-2(시안)

코렐리 2010. 11. 10. 15:54

6010.7.10(토)

마실 물과 약간의 간식거리를 구입한 대형마트로부터 종로우(鐘樓)까지는 그리 먼거리가 아니어서 금방 도착할 수 있었지만

 

사면팔방으로 뚫린 지하도 어디에 종로우 입구가 있는지 찾는데 약간 헤맸다. 다 좋은데 한바퀴 돌다 보면 나오겠지 하며 어느방향으로 돌까 하다가 결정한 뒤 거의 한바퀴를 돌고서야 입구를 찾아냈다. 반대편으로 돌면 좋았을 뻔했다. ㅡ,.ㅡ; 항상 이런대니깐...

 

종로우와 구로우(鼓樓) 통합표 40위엔. 학생할인 20위엔.

 

시안(西安) 구청(古城, 고성)의 종러우(钟楼, 종루)는 명(明) 나라 홍무(洪武) 17년인 1384년에 건립된 기단의 높이는 8m, 누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38m, 너비 35.3m의 목조 건물로 외부에서 바라보면 3층이다. 원래는 지금의 자리에서 훨씬 서쪽인 광지제에 있었으나 종소리가 시내 곳곳에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1582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하는데 예전에 시계의 역할을 하던곳에 우리 놈놈놈들이 발자국을 남기게 되었다.(뜀언)

 

 

종로우에서 남문을 향해 내려다 본 시안의 도심풍경.

 

자그마한 도시지만 베이징보다도 세련미가 있다. 도시는 정비되어 있고 거리는 깨끗했다.

 

이건 북문을 향해 찍은 사진인 것 같은데...

 

종로우에서 전통공연이 있다고 했지만 당장 그 공연을 시작한다면 모를까 시안 시내를 마저 둘러 보려면 15:00에 시작하는 공연 시간을 기다릴 시간은 없었다. 종로우에서 나와 구로우로 가는 길(14:30)은 중국의 전통적인 분위기와 현대적인 분위기가 혼재해 있다. 백화점이라고 뭔가 있긴 있지만 이 곳의 백화점의 디스플레이 수준은 대형마트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잠깐 들러본 뒤

 

구로우에 도착했다.(14:50)

 

북을 쳐서 시간을 알리던 구러우(鼓楼, 고루)는 높이가 33m, 너비 37m이며, 명(明) 나라 홍무(洪武) 13년인 1380년에 세워졌으며, 청(淸) 대 이후로 여러번의 수리를 거쳤고, 지금의 것은 지진으로 파괴된 것을 최근에 복원한 것이란다. (뜀언)

 

 

이 곳은 그냥 시장통 정도로 생각했다. 이 곳이 이슬람 거리의 시작이었다.

 

슬슬 거닐며 본 것들은 신장위구르의 사막지대대에서 나왔음직한 견과류와 말린 과일 같은 것들이 주로 눈에 띠었고 상인들 중 많은 이들이 머리에 회교도들이 쓰는 흰 모자를 쓰고 있었다. 무언가 정부나 협회 같은데서 발행해 준 것 같은 이상한 패들이 식당 입구에 걸려 있는 곳이 있어 잔뜩 호기심이 일었다. 이 곳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들어가서 보니 종업원들이 어린애들이었다. 아래 사진의 붉은색 셔츠를 입은 아이는 그래도 청소년으로 보이지만 이 곳에선 비교적 나이가 든 아이였다.

 

우리는 이 곳이 뭔가 인증을 여기저기서 받은 식당인 것 같은데 종업원들은 왜 하나같이 어린애들만 있는지 의아해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 수상한 집처럼 느껴진다. 조금 있으니 학교를 다닌다면(학교 갈 시간에 그러고 있는걸 보면 학생들은 아닌듯하고) 중학교 1학년이나 되어 보일 듯한 소년이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볶음밥과 오리고기 꼬치요리를 주문했다. 음료로 맥주를 주문하려고 물었다.

"요우메이요우 칭다오 피지우?" --- 칭다오 맥주 있어요?

"옌진 인지우!" --- 음주엄금입니다!

이 곳이 천정이 높아 소리가 계속 울려 안에서 그릇 부딫히는 소리, 밥먹는 소리, 밥먹으며 떠드는 소리, 종업원끼리 큰 소리로 의사교환을 하는 소리 등이 뒤섞여 소란스러웠다. 그가 한 말을 나는

"옌징 피지우!" --- 연경맥주는 있습니다! 라고 하는 것으로 잘 못 듣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럼 두 병 주시오"

"옌진 인지우!"

"아, 글쎄 그걸루 두 병 달래두?"

소년은 답답했던지 벽에 써 있는 글씨를 가리켰다.

아래의 사진 속에 붉은 글씨 표기가 바로 그 말이었다. "엄금음주" ㅡ,.ㅡ; 자칭 회교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떠드는 내가 회교도들이 술을 안마신다는 사실을 순간 잊고 말았다. 깨갱!

결국 음료로 주문한 것은 이름이 쑤안매이탕이라 불리는 매실음료를 주문했다. 달긴 왜 그리도 단지 싫증난다.

 

계속 돌아다니나 보면 중국문화와 회교문화의 묘한 융합이 재미있다.

 

시장통을 들여다 보며 기우거리던 우리는 기념품을 살까 아기 옷을 살까.... 누군가 집사람 선물로 준다고 전통의상인 치파오도 샀는데 누구였더라?

 

예전에 중국에 왔을 때 못해본 짓 해보고자 나도 전통의상 하나 물색하고 다녀봤다. 맘에 드는 물건이 나왔다. 물어봤다. 150위엔이란다. 중국인들은 물건을 팔 때 상대방이 물건값을 깎을 것을 감안해 가격을 올려서 부른다. 가격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줄 아는 사람이 돈버는 법이다. 외국인에게 부르는 값은 더욱 높다. 50위엔이면 사고 안주면 걍 간다고 해봤다. 주인장 아가씨는 말같잖다는 듯 위아래로 훑어보며 150위엔 짜릴 어떻게 50위엔에 주느냐며 어이없어했다. 120위엔이면 많이 깎아주는 거라며 사길 권했다. 구경시켜줘서 고맙다며 내려 놓고 나가려니까. 100위엔으로 떨어진다. 진짜로 가려니까 그녀의 입에서 약간은 다급한 듯 내뱉었다. 오케이! 50위엔! 진작 그럴 일이지. 입고 폼 한 번 잡아 봤다. 이러고 다니니까 내가 중국인인줄 아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이젠 볼거 다봤다.(17:00) 마트에 들러 저녁때 마실 맥주와 과일을 샀다. 촌스러운 한복을 입은 중국인 처자와 총각이 열심히 신라면 판촉 활동을 한다. 맛보라며 준 신라면 맛이 약간 중국스럽다.

 

 

에어컨이 가동되는 숙소에 먹거리를 내려 놓고 나니 낮동안 흘린 땀이 끈적했다. 샤워를 하고 잠시 쉰 뒤 전통공연을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극장 가까운 곳에 오징어 꼬치구이를 파는 곳이 있었다.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줄서서 사간다. 우리도 호기심에 함 먹어보기로 했다. 사람이 많길래 특별히 맛있는줄 알았다. 맛이야 걍 오징어 맛이지 뭐. ㅡ,.ㅡ; 

 

드디어 찾아간 극장. 길가다 청년 한 사람을 붙잡고 물었는데 자기가 그 곳에서 일한다며 가던 길을 되돌아 안내해 주고 갔다.

 

표값이 장난 아니다. 200위엔 ㅡ,.ㅡ; 그래도 전통문화에 관심 있는 나로선 좀 비싸긴 해도 아깝단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물론 들어갈 때까지는 그랬단 얘기다. 막이 올랐다.

 

 

창극 형태로 이루어지는 이 공연은 중국의 영화로운 시대를 그 주제로 하여 진시황의 중국통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눈에 보이는 무대는 화려하다.

 

그런데 이거 창법이 뮤지컬 창법인지 전통 창법인지...

 

완전 퓨전 냄새가 강하다.

 

이런거 볼려고 온거 아닌데...

 

다행인건 그나마 공연이 일찍 끝났다는 점과 표값이 200위엔 선에서 더 올라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돈 아깝고 시간 아깝다는 생각은 지금도 들지만

 

지금 와서 사진으로 다시 보면 그래도 화려했던 무대가 그나마 볼거리였던듯하다. 하지만 담엔 공짜로 보여줘도 안갈거야. ㅡ,.ㅡ;

 

배가 고팠다. 아마 9시 넘어 극장을 나온듯 하다. 이 날이 시안에서, 아니 중국에서 마지막 저녁이었다. 마지막 식사는 좀 럭셔리하게 먹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가던 중 한 호텔 내 식당을 찾았다. 티엔샹그어 라던가. 

 

몇가지 음식과 맥주를 주문했다. 아무리 봐도 가격이 잘 못 표기된 것 같았다. 호텔 식당 음식값이 이렇게 쌀 턱이 없는딩? 가격이 제대로 표기된건지 다시 물어 볼 정도였다. 손님은 우리 외엔 거의 없고 그나마 먹고 있던 손님이 마지막 손님이었던 모양이다. 거의 파장분위기인 셈이었다. 외국인이 중국어로 이 것 저것 물어가며 음식을 주문하니 신기했던지 주문하던 테이블에는 너댓명의 종업원이 몰려와 우리 하는양을 지켜봤다. 중국어 하는 외국인이 그렇게 신기할까...

 

어찌어찌 시켜서 먹어 본 요리 중 하나. 이거 디게 맛있다.

 

이 것도 디게 맛있다. 우와~~~!

 

이건 NG다. 고기 위에 옷을 입혀 튀긴 것으로 보이는데 표면이 소금으로 뒤덮였고 짜서 하도 짜서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물론 밥과 함께 먹었지만 밥반찬으로도 무척 손색이 많을 정도로 짰다. 이거 요리 실수였는지 아님 원래 그런 요리인지 불가사의다. ㅡ,.ㅡ; 역시 우리를 기쁘게 해준건 맥주였다. 그래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우리는 맥주와 과일로 간단히 파티를 한 뒤 시안과 중국을 떠날 내일을 위해 미리 짐을 싸두었다. 아침에 늦어 허겁지겁 짐챙기다 흘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