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7.8(목)
시안에 도착해 졸린 눈 비비며 짐들고 기차를 나온 시간은 08시 35분이었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오는 비는 햇볕부터 쨍쨍할 줄 알았던 시안의 도심을 질척하게 적시고 있었다. 은근히 흩뿌리는 소리와 물가르며 차량 지나가는 소리 등이 더욱 혼잡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표를 사러, 기차를 타러, 버스나 택시를 타러, 마중나온 사람을 찾느라, 제한된 광장 안에 서로 대각선을 그려가며 저마다 걸리적거리는 짐을 지거나 끈 채 제 갈길을 간다. 우리도 사람과 수레, 짐들 그리고 행인들의 우산을 피해가며 교통편부터 찾았다. 가다 보니 인도의 툭툭처럼 생긴 탈것이 있다. 오토바이를 개조해 뒤쪽에 4인을 태울 공간을 만들어 놓고 지붕을 씌운 엉성한 탈것이었다. 우리가 가고자 해ㅆ던 호텔 이름을 대며 얼마인지를 물었다. 20위엔을 부른다. 헤매기 귀찮아서 물어본건데 아쭈 요것 봐라? 시안이 그렇게 크면 그돈 주겠지만 차라리 버스를 탄다. 버스와 기차 그리고 지하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교통수단이다. 걸을 수 있는 거리라면 당연히 걷고... 여행지라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유스 호스텔은 남문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밍더먼(明德門 또는 南門으로도 불림) 가는 버스부터 알아 보았다. 버스정류장에는 각 버스편만다 노선이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나마 딱 한 개의 노선이 남문으로 갔다. 우리는 그 버스를 탔다. 이 버스는 크지도 않은 시안 시내를 빙빙 돌도 또 돌았다. 이렇게 오래 걸릴리가 없다싶어 기사양반에게 물으니 이미 지나버렸단다. ㅡ,.ㅡ; 뭐야 이거. 기사양반의 친절한 안내대로 다른 버스로 갈아탔다.
수년전 먼저 이 곳에 들러 본 적이 있는 뜀도령이 가는 길을 기억해 주면 좋으련만 어디가 어딘지 전혀 짐작도 안간단다. 하지만 슈위엔 유스호스텔을 찾느라고 길바닥에 버린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주변 몇 사람에게 물어보니 비교적 어렵잖게 아래의 슈위엔 유스호스텔이 나와준다. 입구부터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겨 주시니 외국인들 감동할만하다.
내부도 마찬가지로 운치있게 꾸며 놓았다.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자기네 국기를 엉성하게 그려 다녀간 흔적을 남겼다.
이 집에 머물면 좋은 것 하나는 호스텔 지하에 있는 카페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쿠폰을 1박당 1개씩 준다. 거기에 커피 쿠폰도 한 장. 커피 쿠폰으로 맥주를 마셔도 상관없다. 도미토리 1인당 얼마였더라? 비싸진 않았는뎅?
체크인을 한 뒤 안으로 들어가면 이러한 공간이 나온다. 콘크리트 벽과 우중충한 벽새깔과 문짝 색깔은 걸어 놓은 새장, 가짜 버드나무 잎새, 홍등, 전통적인 모양새의 탁자와 의자들로 커버해 소박하고 정감가는 분위기로 일구어 놓았는데 그 센스가 놀라울 정도다.
우리는 안으로 더 들어가야 묵을 방이 있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이 곳에 머무는 것은 강추할만한 일이지만 경비를 절약한다고 지하에 있는 방에서는 머물지 말라는 유경험자의 글을 읽은 기억도 있다. 굳이 여행경비를 낭비하고 다닐 필요는 절대 없겠지만 우리야 월급쟁이들이니 그럴 필요까진 없지 않겠나. 우리는 2층으로 방을 배정받았다.
이 곳은 우리가 묵을 방 바로 아래층에 꾸며진 식당이다. 역시 세계 각국으로부터 몰려 온 여행자들이 남겨둔 흔적 일색이다. 한국의 여쟁자가 남겨 놓은 그림과 글도 보인다. 다 좋은데 우리 국기는 그리기가 넘 어려워. ㅡ,.ㅡ; 건감곤리는 제대로 그렸나? 그러고 보니 어려서 배운 국기기리기 가물거린다. ㅡ,.ㅡ; 이러면 안돼... 이 기회에 다시 공부를...
방에 2층침대 4개가 있었다. 다들 나가고 30세 안팎의 동양인 여자 한 명이 2층의 자기 침대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양인 여자가 자기 침대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나중 알고 보니 모두 중국인 여행자들이었다. 도착 첫날은 호텔 안에서 루즈하게 뭉게는 것도 좋은 여행의 패턴이 되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여유를 부릴 만큼 많은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오전부터 호텔 찾느라 허비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보충하기 위해 짐만 대충 내려 놓고 시내 구경을 위해 각자 자그마한 가방을 새로 꾸려 10시쯤 나섰다. 아침밥도 못먹었으니 식사할 장소부터 찾았다. 항상 그렇듯이 사람이 붐비는 곳을 찾으면 음식이 맛있거나 저럼한 곳이다. 운이 좋으면 저렴하고 맛있는 집 되겠다. 그런데 지금 이시간에 사람 많은 집을 찾자면 밥시간이 어니어서 어정쩡한 시간 되겠다. 그나마 사람이 좀 있는 집으로 일단 들어가 앉았다. 서너명의 남자들이 우리 바로 옆테이블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자기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들린다. "한국인들이군."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안쓰고 시킨 음식은 매운 생선요리하고 쌀밥 되겠다. 민물생선에 시뻘건 고추 시퍼런 고추를 생선위에 도배했고 그 밑에 깔린 생선은 자작자작한 국물과 함께 끓느라고 부글거리며 푸짐한 살을 쉬지않고 건들거린다. 첫 맛 별로 안맵다. 먹으면 먹을수록 입안보다는 입술이 맵다 못해 쓰리다. 이 것 말고도 볶음 요리 하나 더 주문했다. 그게 뭐였더라? 고기 야채볶음이었나? 오징어 볶음이었나? 어쨌든 감동이 없어서 그리 기억에 남지는 않았지만 썰어 넣은 고추가 주재료를 압도했다. 도대체 주재료는 어디로 가고 그릇 안엔 고추만이 산더미였다. ㅡ,.ㅡ; 맥주 한 잔 안할 수 없지. 역시 낮술은 맛있어. ㅡ,.ㅡ; 이거 다 먹고 나온 시간은 12시. 시간 아낀다고 서둘러 나온게 이정도니 먹는데 너무 심하게 공을 들였나보다. 음식값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헤매느니 택시를 타기로 했다. 나오자마자 택시를 타고 간 곳은 흥경궁. 그때까지도 비는 쉬지 않고 흩뿌리고 있었다. 베이징에서 지독한 더위에 시달리던 나는 시안에선 얼마나 더울까 은근히 걱정허기도 했다. 그런 걱정을 잠재우기라도 하듯이 부슬부슬 오는 비는 대지의 열을 상당히 식혀놓고 있었다. 흥경궁 입구에 도착하니 한 노인이 무술을 연마하고 계신다. 왜 여기서 하시노? 과시욕의 표현이신가...?
안으로 들어 가는 인파는 비가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았다.
깨끗해 보이지 않지만 운치를 내는 거대... 뭐냐 이거 분수라고 생각했는데 분수 꼭지는 안보이고 돌 속에 가려진건가 아님 걍 이렇게 만들어 놓은 연못인가...?
비가 오는 와중에도 벤치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도 있다. 이 와중에도 나는 그 모습이 낭만적으로 보이기 보다는 저기 앉기 위해서 벤치에 물기를 닦자면 마른걸레 3개는 있어야 할텐데 그걸 준비했을리는 만무하고... 그래도 완전히 마르지 않아 둘 다 엉덩이가 젖거나 눅눅해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텐데 저리도 좋나...? 좋은 때다...
당현종이 양귀비와 함께 살면서 집무를 보던 흥경궁(興慶宮) 유적을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라는데 원래의 흥경궁 크기에 비하면 반정도밖에 되지 않는단다. 현재 흥경궁으로 쓰던 건축물의 초석 일부만 남아 있는 가운데, 양귀비가 좋아했다는 모란 정원 침향정(沈香亭) 등 부분적으로 복원되어 있다고 하는데 뭐가뭔지 하나도 모르겠더만(뜀언)
이 곳이 현종과 그 형제들이 연회를 열곤 하던 화멍샹회의로우(花夢相輝樓)라는데 당현종 시대 그 옛날에도 건물 지을때 콘크리트 쓰고 애들이 오락을 즐겼는가? ㅡ,.ㅡ;
흥경궁은 중국의 3대 궁전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러면 뭘하냐. 그나마 남은 터에 조성된 공원을 보자면 영화의 무상함만 느껴진다. 5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공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흥경호
이 곳은 현종과 미스양(귀비)가 노닥거리던 천샹팅(沈香亭)이다. 둥근 누각이 인상적이다.
천샹팅에 부속된 건물들.
틀리지 않는다면 이 곳이 당현종이 정무를 보았던 친정우번로우(勤政務本樓)다.
우로부터 썰렁한 넘, 까칠한 넘, 괜찮은 넘. 뜀도령은 가끔 이걸 햇갈려 하는지 두번째와 세번째를 혼동한다.
이 곳에 누워 계시는 어르신은 다름 아닌 당대의 대시인 이백이라고 한다. 까칠한 인상에 인상은 잔뜩 찌푸리신건 날씨 때문인가 아님 까칠하셨던 성격을 반영했던 건가. 얼굴만 섬세하게 묘사하고 나머지를 곡선처리한 이 작품이 눈을 잡아 끌고 마음에 와 닿는다.
뭐하는덴지 모르겠다. 써있는 글시 좀 보고 싶은데 흐려서 알아볼 수가 있나. 하긴 본다고 죄 다 알아보는 것도 아님서...
이 곳을 나와 칭롱쓰(靑龍寺)로 가기 위해 공원 밖으로 나왔다. 지도상으로 보자면 그리 멀지도 않지만 교통편도 적지 않아 버스를 타기로 했다.
까칠한 뜀도령이 카메라를 들이대길래 한 취해본표정. 남들이 보면 까칠한 줄 알겠다. ㅡ,.ㅡ;
칭롱쓰 입구에서 내렸지만 걸어 들어 가는 거리는 그리 짧지 않았다. 나야 걸어다니는 걸 즐기는 편이니 상관없지만. 칭롱쓰 입구다.
청룡사는 대표적인 중국의 진언밀교 사찰로 처음에는 수대(582년)에 세워진 영감사라는 절이었는데 당대부터 청룡사(711년)로 불리우기 시작했단다. (당나라 말기 전란으로 소실된 것을 1973년에 탑의 토대와 전당이 발굴되었단다. 그 후 공해기념비, 혜과와 공해의 상이 안치된 혜과공해기념당을 세워 재건했다고 함) 관람을 할수록 일본 냄새가 확 밀려왔는데 1982년 중국 불교 협회와 일본의 진언종도가 공동으로 건립한 일본 진언종의 개조 공해기념비와 혜과 공해 기념당, 전시관, 정원 등이 있단다. 일본놈들은 종교적인것에도 세계 각곳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구만. 내가 가본 몇몇 나라에서 흔하게 볼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뜀언. 괄호 안은 코언)
아닌게 아니라 이 사찰은 일본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고증에 의거해 재건하려면 만만치는 않겠다.
하지만 내가 느끼건대 정원 자체는 일본식 정원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 오랜 옛날에는 일본식 정원이 이랬는지는 모를 일이지만도...
문제의 공해기념비
박물관 안에는 두루말이, 금강저, 대사상 등 각종 유물과
그림, 서책들이 전시외어 있다.
이 곳을 나오니 바로 옆에 칠롱쓰 비석이 또 있넹?
그래서 또 들어가 보았다. 별관인가 뭔가?
이 곳이야 말로 일본적 분위기가 가득하다.
촛불은 많은 종교에 의미를 주는 모양이다. 개신교와 가톨릭에서도, 불교사찰에서도, 힌두교 사당에서도 보인다. 그 이유는 빛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난 모르겠는데 뜀군의 말로 해과 공해의 사당이란다.
나무에 매달아 놓은 수많은 붉은 리본이 인상적이다.
내부에 안치된 ... 보살상인것 같은데...?
이 어른의 웃음은 푸짐하다 못해 복을 불러들이는듯한... 모르지만 느낌이 그렇다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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