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0 중국어학연수

중국어학연수7(베이징)

코렐리 2010. 8. 12. 14:56

2010.7.1(목)

사진상의 시간은 오후 세시를 넘어가고 있지만 12시 넘어서까지 진행된 수업은 절대로 없으니 칠판위에 걸린 시계는 오뎅시계. 어쨌든 2교시 수업하기 전이었나보다. 항상 맨 뒤 정해진 자리에만 앉아 평소 말도 없고, 수업중 무언가 강사가 지적해 시키면 말소리는 기어들어가 30명을 수용한 작은 강의실 앞쪽에 앉은 나는 들리지 않을만큼 내성적인 여학생이 칠판에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엉? 이건 뭥미? 그렇게 소극적일 것 같은 여학생이 칠판에 적은 내용은 다음주 화욜 798지역을 함께 가자는 제안이었는데 수업 종료후 점심을 함께 먹고 개떼같이 몰려 가자는 내용이었다. 2교시 수업을 위해 들어온 회화강사 선생님(수업 첫 날 나의 두 번에 걸친 말실수로 기분 상하게 했던 그녀다 ㅡ,.ㅡ;)이 들어오자 함께 가자는 제안도 적극적으로 했고 강사선생님도 적극 동의했다. 이런 놀랄 노자가 있나. 수료하는 그 날까지 말 한마디 안할 줄 알았는뎅? 나는 지난 겨울 중국어학연수에 먼저 다녀온 후배로부터 798 지역은 반드시 다녀 오라는 충고를 받았다. 사실 이 지역은 내가 북경을 처음 방문했던 2005년에도 몰랐고 내가 가진 가이드 책자에도 나오지 않는 곳이었다. 798지역은 한 때 공장지대로 번성했다가 나중엔 많은 수의 공장이 문을 닫아 흉물스러운 거리로 변했지만 이후 예술가들에게 이 공간을 저렴하게 대여하는 획기적인 방안이 나옴에 따라  문화예술의 거리로 탈바꿈했다. 어쨌든 나도 798지역에 관한 내용은 까맣게 잊고 있다가 그제서야 중요한걸 잊을 뻔 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 이번엔 이 친구들과 개떼같이 한 번 가보자... 나중의 이야기지만 그녀의 제안은 당일이 되자 지독하게 더운 북경의 초여름날씨로 인해 무산되었고 차라리 잘되었다며 나는 혼자 자유롭게 혼자서 샅샅이 구경하고 나왔다. 

 

강사선생님은 숙제검사를 위해 수거했던 노트를 돌려주라며 한 학생을 지명했다. 지명받은 학생은 방학을 맞아 어학연수를 온 미국인 남학생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노트뭉치를 받아 든 이 남학생은 노트를 받아 들더니 얼굴에는 갑자기 당황기가 가득했다. 노트에 명기된 성명은 모두가 영문이 아닌 한자였고 모르는 한자가 한 개만 나와도 읽을 수가 없으니 난감대박이었다. 30명이 앉은 이 강의실에 어느 노트가 어느 놈껀지 알 턱이 없는 그는 노트 하나를 들고 "야~~~! 이거 누구꺼냐~~~?" 하며 강의실을 돌아다녔다. 그의 얼굴엔 민망한 미소가 가득했다. 사실 이름에 쓰이는 한자는 생활중국어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아 내게 주어져도 사전을 뒤지지 않는 한 그리 쉽지 않을 판이었다. 웃음을 참던 나는 카메라를 집어 그의 하는 양을 카메라에 담아 봤다. 사진 가운데 붉은 티셔츠를 입은 꺽다리 여학생은 카메라가 자신을 찍는줄 알았는지 아님 내 카메라에 찍히는게 싫었던건지 옆에 앉은 동양인 남학생과 수다를 떨다말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널 찍은건 아니지만 안됐다. 이미 얼굴이 찍혔으니... 지워달라고 하지 그랬어?" 그 좌측으로 카메라를 의식하는 여학생은 이 반에서 가장 예쁜 태국인 여학생.

 

이 날 내 옆에 앉았던 학생은 인도네시아에서 온 친구인데 반에서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덩치는 가장 컸다. 이름은 진신라이(金來). 한국식 발음으로 하자면 김흠래다. 처음엔 말을 하지 않아 몰랐지만 국적은 한국으로 되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이 친구는 미국인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이 친구의 환경이 약간 부러웠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국에서 살았던 화교이고 본인도 한국에서 태어났다. 집에서는 한국어를 쓴다. 다니고 있는 학교는 미국학교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영어를 쓴다. 그에겐 한국어와 영어가 가장 몸에 배어 있는 언어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살아가는 만큼 인니어도 소통에는 거의 문제가 없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뿌리가 중국인 만큼 중국어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중국어도 별도로 공부하던 중 어머니의 권유로 방학을 빌어 어학연수를 왔다. 처음엔 시치미를 떼고 인니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중국인이라는 해서 그런줄만 알았다. 그가 시치미를 뗀 것은 중국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왔으니 한국어를 쓰지 않기 위해서였단다. 얘길 듣고 보니 기특한 녀석이지만 공부하기 싫어 몸을 뒤트는걸 보면 어린아이의 순진함이 묻어나 귀엽기도 하고 웃음도 나왔다. 어쨋든 흠래와 나는 이를 알게 될 때까지 중국어로만 이야기를 나누었고, 처음 한국 국적에 한국어가 몸에 밴 것을 안 날은 하루 종일 한국어로 대화했다. 하지만 기특한 그녀석의 의도대로 우리는 그 담날부터 다시 중국어로 돌아갔다. 이 날 저녁엔 경극을 보기로 작심했다. 수업이 끝나자 책과 사전을 숙소에 흘려 놓고 밖으로 나왔다. 점심식사는 어김없이 성도미식에서 했다. 메뉴를 좀 바꾸어 보았다. 이 번에 주문한 것은 촨웨이위가이판(川味魚盖飯: 쓰촨식생선덮밥). 어허... 이거 아주 맛있다. 다 좋은데 단맛만 조금 덜면 더욱 쩜쩜쩜인데...

 

여기서 칭다오 생맥주 한 잔 안할 수 없지. 맥주 건너 나와 마주 앉은 아저씨는 혼자 온 궁상끼리 합석한 생면부지의 식객.

 

밥을 먹고 곱창이 거만해진 나는 버스정류장으로 가 치엔먼(前文) 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비(1.5위엔: 단거리 1위엔, 장거리 1.5위엔이다. 참고로 지하철은 2위엔)는 2005년에 왔을 때와 요금이 같았다. 그동안 계획경제에 이끌려 온 중국의 특이한 경제체제는 아직까지 그 물가를 그대로 붙잡아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도록 힘썼던 모양이다. 택시를 타고 지나가기만 했던 치엔먼은 내 취향대로 버스를 타고 두 발로 그 앞에 가서야 제대로 다시 뜯어 볼 수있었다.

 

정양문이라고도 불리는 이 치엔먼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거만하게 자리를 버티고 있지만 그 아래 치엔먼난다지에(前文南大街)는 이 곳이 그곳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비되었지만 정비되기 전보다 더욱 고전적인 곳으로 탈바꿈했다.

 

어쭈구리.... 폼으로 설치했지만 그리운 고물냄새 나는 전차까지 왔다리 갔다리 하고... 주기는데...!

 

나는 2005년도 이 곳에서 경극을 보러 가기 전에 들러 먹었던 샤오롱바오(小龍包) 가게가 그리워 찾아 보았지만 피맛골 개발하듯 개발하면서 이주했는지 도대체 찾으 수가 없었다. 어쩜 내가 길을 잘 못찾아 그랬느지도 모른다. 어쨋든 뜯어 고친 이 곳의 분위기는 고전적이지만 돈냄새가 물씬 난다.

 

이 곳은 오리구이로 유명한 전취덕의 분점. 도대체 북경에만 전취덕이 몇 개인지... 그리운 맛이여... 혼자서는 못가니 뜀찬이가 올 때까지 지둘리는 수밖에...

 

오잉? 이건 또 뭥미? 조류전선? 나름 중심가에 럭셔리하게 차려 놓은 스포츠웨어 대리점에 진열된 옷과 모자 등에는 조류전선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레이블의 옷들이 보인다. 소매 마무리와 넥 마무리가 쭈글쭈글하다. 한국에는 없는 한국상표인가보다. 보면 볼수록 이건 뭥미?

조류전선... 무슨 뜻일까. 나름의 지레 짐작을 함 주워섬겨 보자.

1. 참새들이 조잘거리며 모여앉아 하릴없이 배설물 자유낙하 실험이나 하는 전깃줄?

2. 패싸움 하는 불량 참새들이 걸핏하면 조우해 싸움질을 벌이는 곳?

둘 다 아닌 것 같은데 한국인인 내가 모르면 도대체 뭥미? 이건 중국인들한테 물어봐야 하나? 물어보면 이상한 놈 취급할 것 같애... ㅡ,.ㅡ;

 

치엔먼다지에 보다도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바로 후통(골목길)이다.

 

이제까지 내가 다녀 본 나라들 중 골목을 다녀보지 않은 곳은 한 곳도 없다.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면 그들이 살아가는 가식없고 진솔한 모습이 곳곳에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활문화가 구석구석에 짙게 배 전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중국의 골목이야 말해 무엇하겠나.

 

이 곳은 살아가는 모습보다는 상업적인 분위기가 강하고 살짝 가려진 모습이긴 하지만 그래도 중국색이 만연하니 어찌 놓칠쏜가.

 

골목 치고는 번화한 곳이지만 어쨌든 명칭이 후통인 것만은 틀림없다. 골목골목이 재미있어 사진을 찍어댔다. 찍다 보면 골목을 주연으로 두고 싶어도 사람 많은 후통에서 골목 자체를 주연으로 사진을 찍기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

 

분위기도 우리와 많이 다르지만 가열후 대롱 끝에 유리를 매달아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어 크리스탈을 만들듯이 녹인 사탕을 대롱 끝에 매달아 입으로 공기를 불어넣어 만들어 파는 동물사탕은 사도 먹지 못할 것 같다.

 

관인쓰지에?(觀音寺街) 절이 있던 곳인가?

 

 

내가 처음 경극 공연을 보았던 극장이 리위엔쥐창(梨圓劇場)이었다. 치엔먼판디엔(前門飯店) 이라는 호텔 1층에 있는 극장으로 앞쪽 로열 박스에는 테이블에 차와 다과가 놓여져 있고 뒤쪽과 2층에는 극장식 좌석만 놓여져 있다. 나는 가장 비싼 자리는 아니었지만 두 번째로 비싼 자리에 앉아 인도인 부부, 스페인인 가족과 함께 같은 테이블에 앉아 경극을 감상했었다. 이 번에 가고자 했던 곳은 유명한 두 경극극장 중 나머지 하나로 후광회의관(湖廣會館)이란 극장이었다. 이 극장은 1807 청조때 지어진 극장으로 1912년 쑨원 박사가 이 곳에서 중국국민당을 창립한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고, 청조의 건축양식을 보기에도 매우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지도를 보고 만만한 거리로 보여 걸어서 가 보았다. 지도를 펴들고 가는 동안 일부러 이곳저곳 골목은 있는대로 누비고 다녔다. 걸어서 가는 시간은 내겐 적당한 시간으로 40분정도 소요된 것 같다.

 

극장 앞에 설치된 조형물은 경극배우들의 분장을 형상화했다.

 

출입구

 

아래 사진의 우측이 매표소다. 매표소 내부에는 각종 중국 전통차와 도기 등이 진열되어 팔리고 있었다.

 

표는 그장내 위치에 따라 180위엔, 280위엔, 380위엔으로 나뉘었다. 내가 가진 학생증의 위력도 여기에선 소용이 없었다. 학생할인이 없다니... 우리 나라에서도 중국에서도 젊은이들의 전퉁문화에 대한 무관심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이렇게 비싼 표값에 학생할인도 없다면 학생들의 입장은 아예 차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가장 비싼 표는 부담스럽기도 했거니와 이 번 한 번만 보고 말 것도 아니니 280위엔짜리로 구입했다. 이 때는 공연시간보다는 좀 이른 시간이라 식당을 찾아 식사하기 위해 나가 보았다. 

 

어쨌든 표를 구입한 뒤 극장 외부에 딸린 화장실을 들어가 보니 개방화장실이 또 보이넹? 여긴 약간 번화가에서 벗어난 곳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후미진 곳도 아닌데 이런 전통화장실이 남아 있으니 이 것도 재밌다. 만일 나도 급해진다면 별수 없을테지만 여기에서 바지 까고 앉아있다가 누군가 들어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역시 태연하게 일을 볼 수 있을까? 청소부 아줌마가 들어온다면...? ㅡ,.ㅡ;

 

시간은 남고 식사도 해야하지만 시간은 적잖이 남았고 주변엔 먹을만한 식당이 안보였다. 길가다 보이는 베이징덕(카오야) 굽는 가게가 보인다. 유리를 통해 투과되는 및보다는 반사되는 빛이 많아 사진에선 안이 잘 들여다 보이질 않지만 목전에서 굽는 카오야는 정말 맛있어 보였다. 이 집은 가게 안에 화덕과 약간의 운신공간만이 있는 테이크 아웃점이라 테이블도 없어 먹어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설사 테이블이 있어도 혼자 한마리를 어찌 먹을까. 그냥 어떻게 굽는지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극장 길건너에서 물을 한 병 사서 마시며 돌아다니는 골목은 그리 깨끗하진 않지만 서민들의 생활이 진하게 뭍어 있는 곳이라 정감이 간다.

  

결국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못해 치엔먼으로 버스를 타고(1위엔) 다시 돌아와 후통 내 먹자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치엔먼에서 후광쥐창으로 가는 버스는 5,48,57,715 등 많은 교통편이 있었다.

 

결정방법은 역시 내부에 사람이 많은 곳. 그래서 고른 이 곳인데

 

맛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값이 싸서 사람이 많은 집임을 가격표 보고 알았다. 단단미엔(擔擔面)을 주문래 보았다. 매운 국물에 철경채를 얹고땅 콩과 고명을 얹었다. 작은 그릇에 흥건하게 담아내니 깔끔해 보이지도 않는다. 지독하게 맵지만 맛은 감동할 정도는 아니었다.

 

식사후 다시 버스를 타고 극장으로 돌아갔다. 극장 내부다.

 

이 곳에도 식당이 있는데 비싸보인다. 식사를 했으니 일단 괸심 밖이긴 했지만. 

 

안에 들어가니 여러명의 안내원이 보인다.

 

극장에 들어가면 좌석번호가 있어 대기중이던 안내원들이 이를 찾아주는 것이 아니고 얼마짜리 표인지를 확인하고 이에 합당한 자리를 찾아 주는 식이었다. 저희들끼리 하는 말이

"얼마짜리 푠데?"

"280위엔짜린데..."

"그럼 저쪽에 앉으면 되겠네."

왠지 돈 낸만큼만 대우해 주겠다는 의도로 들려 약간 묘한 기분이 든다. 내게 하는 서비스는 중간 대우인게로군. ㅡ,.ㅡ;

 

공연시작 30분 전에 들어 가니 일단의 관광객 몇 명이 있을 뿐 한산했다.

 

안내를 받아 앉은 자리는 그래도 280위엔 짜리 중 가장 좋은 자리인지 중앙의 약간 우측에 위치했다. 자리에는 정린 과일과 옷을 입혀 튀긴 땅콩, 수박, 과자 등이 놓여 있었다. 

 

실내는 홍색과 청색으로 화려하게 채색되고 여기에 극중 등장인물을 형상화한 가면과 중국식 샹들리에로 장식되어 있고 무대는 황금색 바탕에 용이 수놓여진 화려한 천으로 꾸며졌다.

 

 

직원 하나가 안시켜도 될 차 메뉴판을 들고와 주문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테이블에 차가 있는데 차를 주문할 이유가 있는지를 반문했더니 좋은 차를 원하면 한 잔쯤 주문하지 그러느냐며 은근히 꼬셨다. 아닌게 아니라 차가 맛이 없어 보였다. 40위엔짜리 보이차를 주문하니 큰 유리잔에 시커멓게 우려진 보이차를 들고 왔다. 전엔 모르던 보이차의 맛을 여기에서 들려버린 이후 나는 지금도 줄곧 보이차를 찾게 되었다.

 

공연시간이 가까와지자 다이 든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공연 시작시간이 임박하자 빈 테이블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내 보기에 중국인은 관광가이드와 외국인에게 경극을 소개하려는 일부 사람들이 전부인 것 같다.

 

이윽고 무대에 궁녀 차림의 여인니 나와 경극의 유래와 오늘공연될 경극의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이어서 배우들이 황금천으로 치장된 무대 뒤에서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경극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경극에 얽힌 고사나 역사를 이해햐ㅐ야만 한다. 어느날 어느 공연을 할 지 모르니 미리 공부해 간다는 것도 웬만한 정성과 노력으로 될 일은아니고... 핑계좋다. 그러고도 자칭 문화매니아냐?

 

무대 위쪽으로는 자막이 나온다. 중국어와 영문 자막이 동시에 나오는데 내게 있어 아직은 중국어보다는 영어 자막이 편하다. 음악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중국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 이 경극에서 나오는 악기 소리와 노래에 귀를 열심히 귀울이는 편이다. 물론 연극적 재미와 중간중간에 나오는 기예같은 무술씬은 보는 눈이 즐겁다. 이 걸 보랴 무대 위쪽에 있는 자막을 보랴... 이거 쉽지 않다. 둘 중 하나만 볼 수밖에 없어 자막을 보다 보면 연극적 재미를 놓치고 연극적 재미와 무술씬을 보자면 무슨 소린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이 문제는 5년전 다른 극장에 서 보았을 때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 이 날 상연된 공연은 모두 네 편이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경극을 제대로 보자면 장시간에 걸친 한 편의 극만을 보는 것이 정통이지만 지금은 그런 요구가 거의 사라져 짧게 일부씩만 여러편을 상연하니 내용을 사전에 알기 전에는 알 수가 없어 찢어진 신문 읽기에 다름아니다. 아래 동영상에서는 리량(李良)이란 사나이가 "적이 모려 오니 이를 어찌할꼬. 숨는 방법외에 다른 부슨 방법이 있겠는가.... 대충 본 내용은 그렇다. 

 

두 번째 극. 홍색 옷을 입고 나온 매력적인 이 배우의 극중 이름은 홍시엔(紅線)

혼자 나와 대사를 읊조린다.

"하늘로부터 풀려나 갈 곳은 인간세계로다. 구름을 타고 세상을 내려다 보니 적진의 불빛이 보인다. 나 홍시엔이 간다..." 이런 대사만 갖고 뭐가 뭔지 어찌 아나? 인간으 아닌 것 같고 옥황상제의 딸인지... 손오공의 딸인지...

 

30분의 공연 후 10분가느이 휴식이 주어졌다. 30분 후의 휴식이라... 보통은 반 이상 끝났을 때 주어지는 것이 휴게시간 아니던가? 하긴 처음 경극을 봤을 때도 1시간 공연이었다. 곧 다시 공연이 시작되었다. 물론 전에 했던 두 편과는 또 다른 내용이다.

 

후낭자의 이야기다. 그녀의 노래가 나온다.

"깃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북소리는 어인 일인가? 왕잉은 날개가 부러졌으니이 상황은 이겨낼 수 없을터인데... 나는 영웅인 그를 산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말테야...."

뭘하는 여잔지 모르겠지만 남정네와 무기들고 대판 싸운다.

관객은 대부분 서양인들이고 그 틈에 내가 끼어 있었다. 공연 중간에 주변을 둘러 보니 내 주변엔 고등학생들이 즐비했다. 수학여행을 온건지 단체로 와있는데 그들이 공연을 관람하는 매너는 학교에서 배운 정석이었다. 내 옆에 있던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인사를 먼저 했다. 이 고교생들은 어디에서 배웠는지 하오하오!(好好!)를 연발하며 공연자들에 대한 최대의 찬사를 보냈다. 다음 번 이 극장에 다시 와서 다른 공연을 보았을때 만난 남유럽(아마도)의 개매너를 가진 시끼들과는 구별되는 매너였다. 

 

7시 30분에 시작한 공연은 8시 26분에 종료가 되었고 10분 휴식시간을 제외하면 46분을 공연한 셈이다. 젠장. 디게디게 비싸군. ㅡ,.ㅡ; 하지만 공연은 재미가 있었고 나홀로 다시 오리라 기약하면 자리를 나왔다.

 

치엔먼으로 다시 나와 조명이 밝혀진 치엔먼을 지나 690번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니 10시 30분이 넘었다. 벼르던 경극을 봤으니 이 날은 행복했고 공연내용이 공연내용도 흡족했으니 만족도는 더욱 높다. 

 

돌아가던 길에 세미 녀석을 만났다. 함께 한 친구들이라며 소개한 필리핀 국적인지 태국국적인지 하는 스마트한 인상의 테리(Terry)란 친구와 취위에량이라는 친구와 함께 야시장을 찾았다. 중국인을 친구를 제외하곤 모두 베이정어언대학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었다. 양꼬치와 과일 그리고 칭다오 생맥주. 여기에 무엇이 더 필요하랴. 여기서 먹는데 쓴 돈도 68위엔에 불과하니 더욱 만족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경극을 보고 온 이야기를 하니 관심들을 갖는다. 내일 또 가서 볼 참이니 다음날 볼 생각이 있는 사람은 5시까지 남문으로 나오라고 한 뒤 자리를 파하고 돌아왔다. 샤워후 개운한데다 에어컨도 시원하니 잠은 참 잘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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