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0 중국어학연수

중국어학연수4-3(타이안/지난)

코렐리 2010. 7. 19. 09:17

2010.6.26(토) 계속

 

다이미아오 후면으로 가면 화초정원이 예쁘게 조성되어 있다. 그 앞에서 셀카 한 컷. 이 사진 찍기 직전 매너없는 한 여인네가 사진 찍는지 뻔히 알면서도 그냥 내 앞을 지나가는 통에 주인공인 내가 가려 안보이니 다시 찍었다. 고약한...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나서 후문을 통해 나왔다. 오늘의 일정은 이것으로 끝을 냈고 지난에 내일의 일정을 두고 있으니, 이젠 기차를 타고 다시 지난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지난에 도착하면 숙소를 얻기 위한 전쟁에 다시 돌입해야 하니 이제 슬슬 심난해지기 시작했다.

 

후문으로 나가자 택시가 뜸했고 어쩌다 택시를 잡으면 기차역으로는 안간단다. 젠장, 배들이 불렀나... 작고 통통한 아줌마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어디 가실려고요?"

"기차역요."

일본말이지만 경차에서 내린 이 아줌마 '나라시'라도 뛸참인가...

"10위엔예요." 택시든 나라시든 다리도 아프고 피곤해 따지기 귀찮았던 나는 가자고 하고 차에 올라탔다. 차에 올라타면서 나는 놀라 자빠지는줄 알았다. 마티즈처럼 생긴 이차 꼴은 자동차인데 도데체 엔진에 힘아리가 하나도 없었다. 신호대기 후 다시 출발할 때는 틀틀거리며 불안한 가속을 하곤 했고 때로는 엔진이 꺼져 다시 시동을 걸곤 했다.

"이 차 왜 이렇게 힘이 없어요?"

"엔진이 오토바이 엔진이예요."

헐! 개조했나벼? 가끔 시동이 꺼질듯 말듯 힙없이 틀틀거리는 이 차의 속도는 물론 잼벵이다. 아줌마는 한국 드라마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다. 한국드라마와 탤런트 이름을 대가며 재미가 있다는 둥 어쩌고 하는데 나는 TV 보는걸 즐겨하지 않는데다 드라마 같은건 특히 안본다고 했더니 넌 으째 그 재밌는걸 안보냐 하는 눈치다.

 

기차역으로 들어가는데 어김없이 짐을 엑스레이 투시대를 통과해야 했다. 줄지어 기차표를 사는데 염치없는 한 아저씨가 새치기를 하려고 얼쩡댔다. 내가 선 줄 앞쪽에서 새치기를 시도했는데 이를 아는 매표소 직원은 이 아저씨를 상종도 안했다(좋아 좋아 매표원 화이팅!). 게다가 새치기를 당할뻔 했던 사람에게도 한소리 듣고 딱지를 먹자 바로 옆 다른줄 쪽으로 얼쩡거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줄을 서라 이 멍충아 극 빠르다... 내 보기엔 새치기를 시도해 설사 성공한다 하더라도 줄서서 기다리는 것보다 결코 빠를 것 같지는 않았다. 고 지롤을 해서 표를 얻으면 나같으면 스트레스에 지레 죽는다. 그 때까지 이 아저씨는 호시탐탐 새치기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내 차례가 왔다. 목적지인 지난으로 가는 가장 빠른 표를 달라고 했더니 "20"이라고 말했다.

"뭐라구요? 20시요? 더 빠른건 없어요?

기차가 매우 자주 있는걸로 알았던 나는 20위엔을 내란 소릴 20시에 출발하는 차라고 하는줄 알았다. 새치기를 시도하던 인간은 옆에서 답답했는지

"20위엔을 내라구!" 하며 소리를 꽥 질렀다. 살다 보니 이 아저씨야 말로 "듣보잡"이었다.

20위엔을 내고 표를 받아 돌아서면서 나는 이 아저씨에게 한심하다는 듯이 손가락질을 한 뒤 밖으로 나와 화장실부터 갔다. 개념 없는 이 아저씨 그 손가락질에는 산경도 안썼을게 틀림없었다. 화장실에서 돈받넹?(0.5 위엔) 물(2위엔)을 한 병 산 뒤 개찰구로 갔다.

플랫포옴으로 가 바닥에 지도를 깔고 앉아 조금 기다리다 보니 금방 기차가 왔다.(18:28)

 

타고 보니 2층 기차였다. 전에도 네덜란드에서 공항으로부터 시내로 가는 2층 열차를 타 본적은 있지만 우리에게 없는지라 신기하다. 좌석이 없길래 서서 가야 하는 줄 알았더니 자리는 남아돌고 아무데나 그냥 털썩 앉으면 그만이었다.

 

지난으로 돌아온 뒤 어디에서 식사를 할까 고민하다가 역에서 멀지 않은 식당가에서 그 중 사람이 가장 많은 곳으로 들어가 보았다.

 

뭘 시킬까 고민하던 중 매운 생선요리인 말라위(麻辣魚)와 밥을 시켰다. 손에 붙은 밥풀까지 입으로 떼어 먹어가며 찬밥을 대충 퍼서 성의 없이 내주는건 이 집도 마찬가지였다. 왜 이러냐 이동넨... ㅡ,.ㅡ; 게다가 밥을 먹는동안 주인집 아이 둘이 들어왔다. 작은 아이는 스포츠형 머리에 약간 우악하게 생겨 남자아이 같이 생겼지만 원피스를 두른 것으로 보아 계집아이가 틀림 없었다. 예는 엄마한테 뭔가를 호소할 때마다 하이톤의 목소리를 신경질적으로 고래고래 질러댔고 심술은 보통을 넘었다. 타이르거나 야단치기는 커녕 그럴 기색도 없었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애새끼 교육시키는 꼬라지 허구는... 쩝." 밥먹기가 싫어지고 그럴 일도 없겠지만 다시 오기는 더욱 싫어졌다.

 

식사를 한 뒤 택시를 타고(11위엔) 다시 어제 그 파출소로 갔다. 다른 곳으로 안가고 굳이 그리로 간 이유는 여러가지였다.

첫째,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장황한 설명 안해도 되고,

둘째,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거절의 말을 들은 뒤 통사정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지 않아도 되고,

세째, 장시간에 걸친 나의 입국조회를 어제 이미 한 차례 했으니 절차가 간편할거라는 계산도 있었고,

네째, 이 파출소에서 수배해 준 그 호텔이 마음에 들어서이기도 했다. 

 

당당한 척 하고 씩씩하게 들어간 나는 가장 먼저 나와 눈이 마주친 공안 직원에게 문의하는 나의 목소리는 약간 기어들어갔다.

"어제 날 도와준 공안 여직원이 있는데 그 사람을 지금 만나게 해 주시겠습니까."

"무슨 일로 도움을 받았죠?"

어제 있었던 대충의 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자 도와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이름은 모르겠는데요."

"그럼 어떻게 만날려고 그래요?"

나는 파출소로 들어오면서 입구에 걸린 파출소 전체 직원 사진과 성명이 걸려있는 액자를 본 기억이 있어 잠깐 나오라 했다.

뒤따라 나온 그에게 그녀의 사진을 찾아 손끝으로 가리켜 대답했다. 어제 야근을 했으니 당연히 오늘은 비번일 터였지만 그 생각은 이제서야 들었다. 그래도 어쩌랴 그나마 부탁하기 만만한 사람이 그녀 뿐인데.

그는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더니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어제 여권 없는 한국인 한명이 숙소를 얻도록 도와줬대문서? 오늘 또왔는데 이거 워치게 해야뎌?" 그는 별로 방언을 쓰지 않았다.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숨죽이고 유심히 살폈다.

"잉? 그런겨? 알겄슈."

전화를 끊더니 그가 내게 말했다.

"우리도 못도와 준당께, 하루 이상 처리해 주면 우리도 난처해불지."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지 방법이라도 가르쳐 주셔야죠."

"다른 지방으로 가 보드라고 잉."

나는 지방이란 말에 순간 당황했다. 한국에선 지방이라고 하면 보통은 먼 단위를 이야기하는데 중국에선 다르다는 사실을 순간 잊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에선 곳, 부분을 "지방"으로 표현한다. "어디가 아프신데요?"라는 질문의 "어디"나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세요."라는 말 속의 "점"에도 지방(地方)이라는 표현을 쓰기 때문에 무척 광범위하게 쓰인다.

"꺼~~~이! 그럼 어디로 어떻게 가요?"

그는 뭐라고 뭐라고 했지만 이 곳 지리도 모르는데 지역명을 이야기하면 내가 어찌 아나?

써달라고 수첩을 꺼냈다. 그가 써 준 곳은 동팡다샤(東方大厦). 즉 빌딩이름이었다. 그제서야 "지방"이란 말을 내가 순간착각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 곳을 떠나며 그곳 파출소에 나에 관한 기록을 좀 인계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그 곳에서 알아서 할거라고 했다. 오로지 귀찮아서 다른 곳으로 슬쩍 나를 떠넘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씨~~!

 

버스를 타고 동팡다샤 앞에서 내리자 파출소부터 눈에 들어왔다.

파출소로 들어간 나는 어제 했던 모노드라마를 공안들 앞에서 또했다. ㅡ,.ㅡ;

젊은 공안 직원이 나를 데리고 한창이던 보수공사가 저녁이라 어수선하게 방치되어 있는 2층의 한 사무실로 나를 데리고 가 컴퓨터 앞에 앉더니 검색을 시작했다. 이들은 그래도 전에 가봤던 파출소 직원들보다는 대따 친절했다. 그 역시도 나의 입국사실을 조회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하던 중 아래층에서 나에 관한 기록을 가져왔다. 전 파출소에서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나에 관한 기록을 보내온 모양이다. 기록을 보고 나서 그가 내게 물었다.

"아무 호텔이나 괜찮져?"

"이이구 구럼여. 당근이져. 지붕만 있으면 돼여."

이렇게 해서 오늘도 노숙은 간신히 면했다.

젊은 공안 직원은 순찰을 나가면서 나를 태우고 어딘가를 잠깐 들러 일을 본 뒤 한 호텔로 데려다 줬다. 이렇게 고마울데가 있나. 나는 고맙단 소릴 몇 번이고 했다. 아래의 호텔인데 시설 깨끗하고 묵기에도 좋았다.(189위엔) 아래의 사진은 아침에 찍은 호텔 사진. 

 

독방이 없어 얻은 더블룸 객실과 욕실은 깨끗하고 쾌적했지만 욕실은 훔쳐보기 아주 좋게 대따 야리꾸리했다.

 

지난의 볼거리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 외에도, 사실은 이 날은 북경으로 돌아갈 수 없는 주애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월드컵 경기가 한창인 이시기에 아르헨티나와 한국이 맞짱뜨는 날이었다. 어제도 공안에게 하루 더 묵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선 한국축구때문에라도 이 날을 더더욱 갈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자국은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에 열광하는 중국인들을 볼 때 공안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순간 생각했다. 하지만 공감표를 얻기 보다는 괴씸죄에 걸릴 공산이 높다는 생각에 접었다. 어쨌든 결전의 시간이 오기 전에  

 

샤워를 한 뒤 칭다오 맥주부터 두 병 사다 놓고 기분 좋게 천천히 마시며 경시시적시간만 기다렸다. 하루종일 더위와 등산에 지쳐 있다가 노숙을 간신히 면해 홀가분한 기분으로 샤워를 마친 뒤 타잔 복장으로 침대 위에 앉아 TV를 보는 것만도 기분 좋은데 오늘은 행복지수 상승호재인 맥주와 축구가 더 있었다. 한국 축구팀이 개작살 나기 전까지는 말도 할 수 없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