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6.25(금)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아침을 먹은 뒤 강의동 3동으로 가 내게 배정된 반을 확인했다. A, B, C, D, E까지 다양했고 각각의 그레이드 안에도 다시 여러 등급으로 갈라져 있었다. A등급은 초급, B등급은 중급, C는 중고급, D는 고급, E등급은 이천명 되어 보이는 명단에 단 몇 명 뿐으로 최고급반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B26 등급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반을 찾아가기 전 해당 반의 교재부터 구입했다. 교재를 받아 강의실을 찾아 가 봤다. 차분히 앉아 교재를 보니 어이가 없었다. 교재 수준이 3년전 공부하던 수준이었다. 왜 이렇게 짜게 평가한거지? 나만 그런가? 나를 테스트했던 강사는 나를 테스트하면서 약간 놀라는 눈치였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나?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건 놀면서 해도 유분수지 하품이 나와서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강사가 첫 날 수업시작 전 안내했던 대로 반을 바꿔달라고 했다. 그녀는 나와 대화를 나누어 보더니 C17등급의 반을 추천했다. 교재를 바꾸는데 난 이미 수업을 듣느라 책 3권 중 1권에 낙서를 했다. 결국 일부 책은 반납이 불가능해 일부 추가로 돈을 내야 했다. 40위엔 기냥 날라갔다. 아까브라... 다시 찾아간 반은 처음 반편성 공고를 확인했던 강의동 3동 319호에 있었다. 예습과 복습 정도는 안해도 될 정도의 수준이면서 지나치게 쉽지도 않은지라 주저 앉기로 했다. 이 곳에선 책상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직접 듣고 직접 수다를 떨어 보는 것이 관건이었으니 예습과 복습에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수업은 각각 두 시간씩 두 개과목이 이루어졌다.
이 날은 독해 2시간과 회화 2시간이 있는 날이었다. 1 시간동안 다른 곳에서 수업 받고 반변경 신청과 교재 재수령을 한 뒤 반을 찾아가 보니 연세 드신 할아버지 선생님의 2시간짜리 독해 수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두 번째 수업은 회화였다. 껑정한 키에 깡마른 젊은 여선생님이 들어왔다. 수업이 시작되자 자기소개부터 한다고 어쩌고 하더니 2007년에 북경어언대학을 졸업하고 그 뒤 줄곳 이 곳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중국어 회화를 가르쳤단다. 거기까지 하더니 자신에 대해 궁금한거 있으면 물어보란다. 새로 부임한 중고등학교 교사들이나 교생들이 하는 이런 방식은 사실 나같으면 쪽팔려서 못하는 자기소개 방식인디... ㅡ,.ㅡ; 어쨌건 나는 궁금한게 없었고 다른 학생들은 예의상인지 진짜로 궁금해서인지 몰라도 신상에 대한 질문들이 몇 가지 나왔다. 그 중 하나
"선생님 몇 살이세요?"
태국 여학생이 물었다. 질문을 들은 여선생님이 되물었다. "몇 살 같아요?" 나는 그녀가 2007년에 졸업한 뒤로 뭐가 어쩌고 저쩌고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머릿속으로 계산해 봤다. '8살에 학교에 입학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대학을 졸업하면 스물 네살일거고(사실 이건 틀린 계산이다. 나를 기준으로 계산한건데 내가 1년 늦게 대학에 입학했던 고로 졸업도 늦어졌다는 사실을 순간 망각했다. 착오는 하나 더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주는 한국은 그해 생일이 지나지 않았다면 외국의 나이보다 2살 더 많게 말한다는 사실도 잊었다) 지금이 2010년도니까 졸업인 2007년도부터 3년이 되었고... 그러면 27살인거지'
"스물일곱이잖아요"
여선생은 좌절하는 표정이었다.
"이~~~잉! 왜 보는 사람들마다 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는거야... 난 아직 스물 다섯 밖에 안됐는데... 잉~~~!" ㅡ,.ㅡ;
사실 말을 하면서도 그순간 '앗 계산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나간 말은 주워 담기도 전에 그녀의 푸념부터 나왔다.
뒤늦게라도 해명하려 했는데 그녀 말에 의하면 이건 한 두 번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서 위로도 되지 못할 뿐더러 그녀의 계속되는 푸념에 말을 섞을 기회가 오지 않다가 화제는 금새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선생님, 남자친구 있으세요?"
누군지 몰라도 여자목소리였고 여자다운 질문이었다.
"그건 비밀이라 말할 수 없어요." 하더니 "누구 한 번 알아 맞춰 보세요" 했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
내 입술이 생각을 배신하는 통에 나는 또 한번의 실수를 했다.
"보아하니 틀림없이 남자친구는 없겠군요."
순간 강의실은 와락 웃음바다가 되었고 여선생은 얼굴을 감싸쥐고 징징거리며 우는 시늉을 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캐나다 여학생은 웃음을 참으면서도 내 어깨를 탁 치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며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사실 그럴만도 한 것이 이 여선생님의 외모는 원하는 남자한테 그저 윙크 한 번만 하면 신수 훤한 훈남을 얻을 만큼 뛰어난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 눈의 안경이라고 내가 없을거라고 지레짐작 한 것은 외모 때문이 절대 아니고
'남자친구가 있으면 있다고 대답하지 비밀이라는 말과 알아맞춰 보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매너 드럽게 없는 나 자신을 본의 아니게 스스로 폭로한 이상 나는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나섰다. 해명이란 그러한 답변의 단서는 바로 여선생의 언중에 이미 나왔다는 논리였다.
아마도 내 해명이 설득력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을거라고 생각한다.--->착각인지도 모르지...
수업 첫날이어서 돌아가며 26명의 자기소개 시간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미국, 태국, 인도, 러시아, 캐나다, 프랑스, 한국 등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내 소개내용을 대충 이렇게 했다.
"모두들 안녕해? 이름은 머시기라고 하지. 한국에서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휴가를 얻어 공부하러 왔어. 중국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몇 년 전 놀러 오려고 반 년정도 공부한 뒤 베이징에 온 적이 있어. 목표는 길을 묻고 알아 들을 정도였지. 8일 동안 놀러 다니고 돌아오니 그새 중국어가 늘었지 뭐야. 게다가 우리 학교에 중국인 학생이 나날이 늘어 가는데다 우리 학교와 중국 대학들과의 교류가 갈수록 늘기에 이후 반드시 중국어가 필요할거라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공부했어. 만나서 반갑다. 끝."
수업 내용은 한국에서 듣던 수업과 진행방식이 거의 유사했다. 역시 현지 공부는 수업보다 수업 이후 현지 여건의 활용도가 성과 면에서 승패를 가르는 요인이라는 확신이 섰다.
어쨌든 수업이 끝나는 즉시 나는 숙소로 가 전날 미리 싸 두었던 배낭을 매고 성도미식으로 가 이 번엔 마파두부밥을 시켜 먹었다. 이건 좀 별로인걸. ㅡ,.ㅡ;
우다오커우(五道口)역으로 가 지하철을 타고 베이징 남역으로 갔다. 시즐먼 역에서 내려 환승하려다 수업 시간에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캐나다 여학생이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180cm인 나도 올려다 봐야 하는 큰 키에 나시 티를 입고 드러낸 팔과 똥싼 바지처럼 척 늘어진 트렁크 팬츠를 헐렁하게 걸친채 드러낸 다리는 지루하게 길고 홀쭉했다. 자신보다 더 무게가 나갈듯한 커다란 배낭을 매고 어딘가로 놀러 가기 위해 친구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지나가면서 눈이 마주치면 인사라도 하고 지나가려 했지만 기린처럼 목을 늘여뺀 그녀의 눈은 망루에 밝힌 서치라이트 모냥 자신의 시야에서 촛점 외에는 눈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시즐먼 역은 환승하러 가는 길이 길고도 지루했다. 내 생애 이렇게 길고 지루한 환승 코스는 처음 봤지만 시즐먼에서의 환승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한 꼭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처럼 되어 버렸다. 환승후 지하철에서 내려 도착한 베이징 남역은 대합실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컸으니 웬만한 도시의 국제공항 정도는 과감하게 따시기 갈기는 정도의 규모와 시설이었다. 중국은 요즘 공항과 기차역은 물론 지하철 역까지도 역사 안으로 들어가려면 엑스레이 투시기에 짐을 투과해야 했다. 티벳과 신장위구르지역의 분리독립 움직임과 그로 인한 불만세력의 테러를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여 곳을 들어올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금 기다렸다가 정해진 탑승구로 개찰하고 들어갔다.
표값이 비싼 이유를 이때서야 파악했다. 고속철이다. 하긴 어떤 기차는 11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니만 옛날 한국에서 운행되었던 느려터진 완행 비둘기호 같은건가 했다. 사실 워낙 먼거리였다.
서서 가기 싫어 차간 공간 바닥에 종이 한 장 깔고 주저 앉았다. 한 청년이 불쌍한 포즈로 쭈그려 앉길래 갖고 있던 지도를 내주며 "깔고 바닥에 앉지 그러냐"며 말을 걸어 수다가 시작되었다. 이름은 잊었지만 이 친구는 원래 지난에서 일하고 북경에는 일이 있어서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니 옆사람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아래의 사람이 가장 먼저 우리의 대화에 말을 섞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분명한건 그가 보통화가 아닌 방언을 썼기 때문이었는데 청년은 이 사람이 하는 말을 중간에서 통역했다. 사실 내가 중국어를 공부하는 최종목적은 통역이다. 여기서 무력감이 느껴졌다. 통역 대상이 누구이든 말만 하면 알아듣고 말해줘야 하는게 아닌가. 나는 방언에도 귀를 기울여 보기로 마음먹기 시작했다. 결코 쉽지는 않았다. 대화에는 바로 좌측에 고개를 숙이고 신문을 보던 이 사람과도 이어졌다. 아래 사진의 젊은이는 방언이 좀 심한 편이라 하는 이야기의 40%도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는 타이안(泰安)의 타이샨(泰山)과 콩미야오(공자사당: 孔廟)만 둘러볼 게 아니라 지난의 바오투추엔이나 다밍후(大明湖)도 꼭 들러 보길 권했다. 갖고 있던 가이드 책자를 뒤져 보았다. 오호라. 내가 간과했던 지난에도 볼거리가 적지 않았다. 타이안에서의 볼거리를 다 보고 나면 지난에도 눈을 돌려 보기로 했다. 내가 가장 가고싶어 하는 곳이 티벳과 신장위구르지역 실크로드라고 했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거기 뭐 볼게 있어서 간다는거요? 신장위구 실크로드에 가봐야 사막 말고 뭐가 있다고?"
나는
"중국인과 외국인은 서로 보는 관점이 다를 수있어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확신하건대 당신은 거기 갔다가 후회할게 틀림없어요."
"나는 종교문화에 관심이 많은데다 티벳의 불교문화는 심도깊은 정신세계가 있고 실크로드의 회교문화는 다른 곳의 회교문화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내겐 무척 관심이 많은 곳입니다."
그러자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후회는 내가 하는게 아니고 당신이 하는거지만 나라면 돈과 시간을 들여 거기까지 가는 당신을 말리고 싶구려."
"20개국을 다녔지만 나는 여행때마다 철저한 조사를했고 단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은 없어요."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고개는 끄덕거렸다.
수다를 떨다보니 맥주가 고파졌다. 마침 작은 수레를 끌고 지나가는 판매원에게 칭다오 맥주가 있는지를 물었다. 지금 가진건 없고 다음 순번 돌 때 갖다 주겠다며 몇 개나 주랴고 묻는다. 내가 당시 수다 떨던 대상 2명을 포함해 3개를 갖다 달랬더니 두사람 모두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두 사람 모두 대낮에는 술을 안마신단다. 순간 약간 뻘줌. 결국 한 개만 받아 마셨다. 여행만 가면 도지는 맥주병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 못지 않게 많이 마시는 맥주다. 칭다오는 나를 가장 좋아하는 맥주 중 하나다. 으헷!
바닥에 엉덩이를 뭉갠채 3시간이 지나자 지난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기 직전 나와 처음 대화를 시작했던 청년에게 바오투추엔이 어딘지를 물었다. 그는 자기가 그리로 간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나와 그 청년을 포함한 수다맨 4인은 나가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출구 방향으로 나갔다. 출구에는 이 곳이 종착역인 기차를 타고 한꺼번에 내린 엄청난 인파가 몰린데다 이 역을 지나는 다른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까지 섞여 역을 빠져 나오는데는 적다고만도 할 수 없는 시간이 걸렸다. 한국엔 없는 진풍경이다.
열차표를 회수하는 역무원은 승객이 원하면 굳이 열차표를 회수하지 않았다. 바로 뒤에서 어떤 사람이 내가 가진 고속철 티켓을 달라고 했다. 여행중에 사용한 차표, 물건 산 영수증, 각종 유적지 입장권 등은 기념으로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 돌아가는 내게 뜬금없이 열차표를 달라고 하니 이게 이 사람한테 왜 필요할까 의아했다. 담에 슬쩍 써먹으려고? 친구들한테 고속철을 탔노라고 사기섞인 자랑이나 하려고? 어쨌든 영문을 몰라 쳐다보는 나를 대신해 옆에 있던 일행(?)이 대신 둘러댔다. "이 사람 외국인이라서 당신이 하는 말은 못알아들어요." 나도 이걸 쓸데가 있어서 안되겠다는 구차한 소리보다 훨씬 나은 재치있는 말이었다. 그는 " 아 그렇군요. 난 같은 중국인인가 했네." 하며 내 손아귀의 하찮은(?) 물건에서 관심을 끊었다. 역 출구로 나와 나머지 두 사람과는 작별인사를 하고 바오투추엔으로 간다는 청년과 나만 남았다. 그는 어디론가 전화하더니 곧 여자친구가 나타나 반갑게 맞았다. 순간 나는 두 사람의 만남을 방해하는게 아닌가 싶어 슬쩍 작별인사를 하려 했더니 어차피 가는 길이니 데려다 주겠다며 굳이 함께 가자고 했다. 여자친구는 약간 마른 체격이지만 귀엽게 생겼다. 그들 둘은 앞장서 택시 승강장으로 갔고 나는 뒤를 따랐다.
"누구야?" 어눌한 중국어를 하는 낯선 남자에 대해 그녀가 잔뜩 호기심에 어린 질문을 하는 것이 들린다.
"기차 안에서 만났는데 바오투추엔에 간다고 해서 같이 가기로 했어"
"어디서 왔대?"
"한국..."
청년이 지쩍은지 말하다 말고 뒤돌아 보길래 미소로 화답했다.
두 사람을 뒤에 태우고 내가 앞에 탔다. 고속열차 안에선 직원들이 승객 전원에게 물을 한 병씩 준다. 이 물은 병 자체가 아주 예쁘고 중국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상품은 아니었다. 티벳에서 생산한 물이란 사실을 마실 땐 몰랐는데 병에 보니 그리 써있어 함 찍어봤다. 나는 이 곳 택시들을 보고 약간 놀랐다. 아래 물사진의 뒷배경 아크릴은 강도를 방지하기 위해 운전석을 둘러싼 보호막이었다. 이 아크릴 보호막이나 쇠철창을 설치했는데 모든 택시들이 다 그렇게 설치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운전기사 모호막이나 철창을 설치하지 않는 택시는 공안에 걸리면 벌금감이란다. 도대체 택시 강도가 얼마나 많길래 그럴까. 그런다고 기죽을 나도 아니지만... 바오투추엔에는 금방 도착했다. 굳이 택시비를 내겠다는 그에게 신세지는 것이 도리가 아니란 생각에 내가 먼저 냈다(11위엔).
바오투추엔 앞에서 내린 나는 그들과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청년은 자기가 가는 길이 호텔 밀집 지역을 지나니 함께 가잔다. 스스로 알아봐야 할걸 계속 안내해 주니 나야 좋지. 함께 갔다. 바오투추엔 바로 길건너편으로 들어서자 공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래 공원의 탑은 이 곳 지난시의 상징이라고 한다.
가다 보니 특이한 차림의 남자가 무언가 퍼포먼스를 하는지 지나가는 사람마다 포즈를 취해주며 사진 찍기를 허용(?)했다.
공원 한가운데 아래쪽에는 지하상가도 있었다.
공원 끝에 다다르자 분수대도 보이고 뙤약볕 아래에서도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호텔에 짐을 놓고 나오면 나도 함 나와볼까 싶었지만 바로 코앞에서 벌어질 황당 시추에이션을 미리 알았다면 그런 한가한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게 틀림없다.
요금대비 시설이 가장 좋은 호텔이라며 나를 데리고 간 호텔이 바로 핑팡원화주티지우디엔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런 고급 호텔은 안가도 되는데... 하며 따라 들어가 보았다. 260위엔(5만원정도)으로 생각보다 값이 저렴했다. 도미토리에서 다른 여행자들과의 만남을 좋아하는 나지만 이러면 생각은 좀 달라진다. 체크인을 하겠다고 하니 여권 제시를 요구했다. 나는 갖고 있던 사본을 내밀었더니 원본을 달란다. 원본은 베이징위엔다쉬에(북경어언대학) 숙소에 두고 왔다고 했더니 원본이 없으면 안된단다. 사실 원본을 두고 온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대외협력팀의 후배는 여권을 분실하면 골아파지니 원본은 숙소에 두고 사본을 갖고 다니길 권했다. 시내에서도 공안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면 이 사본만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나의 사무실 후배 하나는 북경에서 여권을 잃어버리고 다시 발급받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 경비, 발급에 걸리는 시간 때문에 비행기도 연기해야 하고 제 때 출근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강박관념때문에 겪었던 끔찍한 악몽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는걸 듣고 약간의 충격을 먹은 터였다. 나는 속으로 여기 아니면 묵을데가 없을까 싶어 호텔을 나왔다. 이 청년은 나에 대하여 무슨 의무감이라도 가졌는지 대로변이 아닌 이면도로 쪽으로 나가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며 사양하는 나를 데리고 다른 호텔로 데려갔다. 두 곳을 더 거쳤지만 모두 거절이었다.
이 두 사람은 어떻게든 나를 어느 호텔엔가 체크인을 시키려고 했지만 쉽지 않자 난감해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나는 그들에게 연인의 주말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며 내 스스로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뭔가 책임의식을 느끼며 굳이 더 알아봐 주겠다는 그들이 고마웠다. 그래도 내국인이 말해주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과 헤어지며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귀엽다. 잘어울린다.
몇 군데서 퇴짜를 맞은 나는 뒷골목 아주아주 후미진 곳에 있는, 정상적인 여행자라면 절대로 가지 않을 것 같은 싸구려 여인숙으로 가보았다. 원본이 없으면 안받아 주기는 이 곳도 마찬가지였다. 헐! 손님이 숙박부를 직접 기록하고 신분증 확인도 대충하는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었다. 이정도의 싸구려 여인숙 조차도 안받아 주는 것을 보면 아마도 여권 원본 없이 숙박을 시켰다가 공안에 걸리면 그 타격이 보통 심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여인숙 주인에게 슬쩍 방법이 있는지 몰어 보았지만 공안 파출소에 가 도움을 청해보라는 말만 했다. 그들이 어디까지 도와줄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방법이 없으니 가장 가까운 공안파출소로 찾아가 보았다. 다짜고짜 사무실로 들어가
"실례합니다. 저는 외국인인데 어려운 일을 겪고 있으니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하고 말을 꺼내봤다.
"무슨 일인데요?"
"저는 한국인입니다. 가는 곳마다 여권 사본으로는 호텔에 체크인을 할 수 없다고 해서 도음을 청하려고 왔습니다."
"여권이 어디에 있는데요?"
"북경어언대학 기숙사요."
"여긴 왜왔어요?"
"주말이라 놀러 왔죠."
"그럼 여권을 왜 거기다 두고 다녀요?"
나는 여권을 두고 사본만 달랑 들고 오게 된 구차한 사연을 설명했다.
"그럼 그걸 날보고 어쩌란겁니까?"
짐작했던 반문이었다.
나는 그들의 의무를 상기시켜 보았다.
"외국인인 내가 공안에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어디 가서 도음을 청하겠나. 방법이 없어서 찾아왔으니 방법을 찾아봐 줘야 하지 않겠나?"
"방법이 있어냐 도와줄게 아니오?"
"검색해 보면 내 입국기록과 내가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거 어려운데..."
나는 마지막으로 약간의 협박 섞인 모드로 나가 보았다. 그래도 안도와주면 밤새도록 이 사람들 괴롭힐 작정이었다.
"내가 노상에서 자다가 강도라도 만나면 당신들 책임이 되지 않겠습니까."
공안 직원은 "여기서 잠깐 기다리라"며 사무실을 나갔다.
그제서야 둘러본 사무실은 저마다 하나씩 놓여진 책상에 칸막이가 둘러쳐져 있고 직원의 사진과 성명 직책 등이 표기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그 중 빈 자리의 의자를 끄집어내 앉아 조치를 기다렸다.
10분정도 기다리니 씩씩하게 생긴 공안 여직원이 들어와 다시 물었다. 무언가 조치를 취해줄 사람인 것 같아 이사람을 죽을때까지 붙들고 늘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시죠?"
나는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얘기 듣기를 마친 그녀는 턱으로 바깥을 가리키며 따라오란 시늉을 한 뒤 앞장섰다.
그녀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2층의 어느 우중충한 사무실이었다.
그녀는 나의 여권 사본을 보더니 곧 컴퓨터를 켜고 검색을 시작했다. 그녀는 시원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결혼은 했음직한 나이에 예쁜 구석은 없지만 이목구비는 시원스럽고 약간은 덩치가 있지만 흉하지 않은 몸매였다. 성질은 괜스리 건드렸다간 남편도 방법이 없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생각보다 검색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 30분이나 지났을까. 그녀가 전화기를 집어들고 어디엔가 전화를 했다.
"외국인 입국기록을 조회중인데 간신히 찾아낸 여권에는 지금 갖고 있는 사본과 사진이 다르고 유효기간도 다르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는 2004년에도 온 적이 있고 그 때 여권인 모양이라고 했다.
그녀는 다시 검색을 하더니 드디어 내 여권과 입국기록을 찾아냈다. 그녀는 검색된 내 자료를 출력해 놓고는 특별히 원하는 호텔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두 번째 들렀던 호텔이 가격 대비 시설로 보아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이름을 기억할 수 가 없었다.
모르겠다고 했더니 내게 원하는 가격대를 물어보고 호텔을 하나 골라 전화를 했다.
"지금 외국인 하나를 그 호텔에 투숙시켜야겠는데 여권 원본이 없어 시원 조회를 했다. 더는 재우지 말고 하루만 재워야 한다. 이 곳에 데리고 있으니 와서 데려가라"는 내용의 전화를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다시 수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 더 묵게 해줄 수 없나요?"
"대낮 같았으면 어림도 없어요. 여권 원본이 있는 북경으로 돌아가세요."
"여기 오느라고 기차비도 비쌌고 하루만 있다 갈 것 같았으면 뭐하러 왔겠어요. 온 김에 이 도시에 더 머물고 싶으니 하루 더 연장해 주세요."
"글쎄 짤없어요."
나는 돌아가는 기차표를 꺼내 그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넬모레(일요일) 표인데 입석표도 북경에서 일주일 전인데도 간신히 구했어요. 내일 돌아가는 기차표를 못구하면 그땐 어떡해요?"
"따라 오셈."
그녀는 나를 바로 고 근처 여행사로 데려갔다. 하필 바로 고 근처에 여행사를 차려 업업하고 자빠졌냐. 그리고 그 웬수같은 아가씨 지금이 몇 시인데 그 때까지 퇴근도 안하고 영업을 하고 있는지 웬수가 따로 없었다.
"내일 북경 몇시차로 갈거예요?" 공안직원이 내게 물었다.
"구경이라도 그나마 하고 가야 하니 20시 전후가 좋겠네요."
공안직원이 내 대답을 듣고는
"내일 20시경 기차표 있어요?"
여직원이 검색을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웬수같은 기차표가 나오면 안되는데...'
모니터를 들여다 본 공안 여직원이 내게 말했다.
"봐요, 좌석까지 나오는걸? 지금 사두지 그래요?" --->망했다 젠장.
나는 알았다고 한 뒤 내가 알아서 사든지 하겠다고 둘러대고 표는 사지 않은 채로 다시 파출소 안으로 들어왔다.
못먹는 감 다시 한 번 찔러봤다.
"정말로 더는 안되는거져?"
"안된다고 내가 그랬져?"
"ㅡ,.ㅡ; 네~~~!"
더는 졸라봐야 소용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일 이 시간쯤 당신은 웬수같은 나의 얼굴을 다시 봐야 할걸?"
어쨌든 그건 내일 생각하기로 했다.
곧이어 땀을 뻘뻘 흘리며 호텔 직원이 나를 데리러 왔다. 그가 공안 여직원에게 그 외국인이 어딨냐고 물었다. 그녀가 나를 그에게 소개했다. 나는 눈인사를 했다.
"이사람 중국어 할 줄 알아요?"
"말은 잘하는데 잘 못알아 들어요."
내 실력이 시원찮은건 사실이지만 그녀는 방언을 썼다. 은근히 긁힌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 아줌마야, 나도 방언은 안배웠어. 보통어를 썼어봐라."
직원을 따라가 보니 내가 묵었으면 하던 바로 그 호텔이었다.
요금은 독실 159위엔이었고 더블룸은 더 비싸 185위엔이었다. 마침 독실은 다 나갔단다. 나는 더블침대에서 굴러다니기로 작심하고 2인실에서 묵었다.(185위엔) 프론트의 여직원이 300위엔을 내란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나를 보고 '나머지는 보증금이고 담날 아침 퇴실 때 나머지 금액을 돌려준다고 했다.
어쨌든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간신히 일이 해결되자 늦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근처를 돌아다니며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 보았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많아야 고만고만했다. 그나마 치판바(7饭吧:7가지 음식의 식당)라는 식당이 사람이 좀 낳아 보였다. 아마도 비슷한 발음으로 츨판바(吃饭吧: 식사하세요)라는 뜻의 문장에 행운의 숫자 7을 갖다 섞은 것 같다. 보조 설명으로는 칭다오식 갈비백반이라는 문구가 병기된 간판을 보고 함 들어가 보았다.
엥? 이게 모야? 주메뉴로 갈비라고 사기친 것은 갈비가 아니고 한국에선 감자탕 재료로 쓰는 돼지 척추로 만든 엉성한 고기요리였고 뜬금없이 삶은 달걀을 벗겨 성의없이 던져 넣었다. 멀겅한 국물에 샹차이 몇 조각 달랑 띠운게 국이고 간장에 담가둔 무조각을 채썰어 반찬이라고 내놓았다. 대충 퍼서 파편까지 옆에 흘려가며 내놓은 쌀밥은 더욱 가관이었다. 15위엔. 값이 싸서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군. 맛??? 묻지마셈. 칭다오 맥주가 있느냐니까 있단다. 한 병 달라고 했더니 칭다오도 아닌 이상한 맥주를 따려고 했다. 칭다오 아니면 안먹겠다고 극구 제지했다. 아무거나 막따면 되겠냐말이지...
이건 식사가 아니고 문자 그대로 곱창 채우기였다. 부실한 식사를 한 뒤 공원으로 나가봤다. 날은 징그럽단 소리가 절로 날정도로 덥고 습했지만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슬슬 공원을 돌아다녀 보았다. 어떤 사람은 서명예술이라는 기치하에 글자 하나 설계해 주는데 1위엔이라는 작은 입간판을 놓고 쪼그려 앉은 사람도 눈에 띤다. 이런 장사도 다 있다니...
조명을 받은 탑은 낮에 본 것과는 분위기가 달라보였다.
여기서는 테니스도 아닌 것이 배드민턴도 아닌 것이 쿵푸를 응용한듯한 새로운 공과 채를 이용한 신종 스포츠가 유행이었다. 채는 배드민턴 채나 테니스채와 달리 망의 형태가 아니라 밀폐되어 오목하게 파인 형태였다. 공을 쳐서 그 반동으로 넘기는 것이 아니라 날아오는 공을 스무스하게 받아 그대로 곡선을 그리며 넘기는데 거의 예술수준이었다. 여기 저기서 이 게임에 대한 강습이 한창이었다.
어디서는 아줌마와 아저씨들의 무도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거 중국판 샤리딴쓰(Shall We Dance?) 아이가? 아내나 남편 몰래 춤추면 바람나던데...? 왠지 왁잦껄한 공원 분위기기가 심상치 않아 주변 사람들에게 오늘 무슨 축제일인지 물었다. 이 공원은 늘상 이렇단다.
공원을 한바퀴 돌며 구경한 뒤 칭다오 맥주를 사서 돌아와 에어콘 바람쐬며 TV켜고 타잔 복장으로 맥주를 들이키니 세상 이보다 행복한 순간은 없었다. 내일 묵을 곳을 찾기 위해 뜀도령에게 상황을 문자로 설명해 한인민박이 있는지 인터넷 검색을 부탁했다. 뜀도령은 이 상황이 흐믓한지 헤헤거리며 새벽에 회신을 보내왔다. 세시간 걸려 한 군데 간신히 찾았는데 지금도 할지 어쩔지는 모른다고 했다. 내일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한 나는 천천히 맥주를 즐긴 뒤 편안하게 푹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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