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3.23(수)
곧 있을 제주 출장과 보름간의 어학연수 등 장시간 떠나 있을 것을 감안해 6월 12일(토)부터 냉장고를 이미 비워 놓았다. 그 날부터 공항이 가까운 아버지 댁에서 출퇴근하며 얻어 먹고 빈대 껴 살았다. 출장 다녀온 뒤로 출발일 하루 전인 6월 22일이 성큼 다가왔건만 어쩌자고 꿈지럭거리다 출발당일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짐이 대충 꾸려졌다. 짐꾸리는데도 쓸데없는 고민만 많았다. 배낭여행이라면 짐을 최대한 작게 꾸리는 것이 나의 철칙이었지만, 이 번엔 배낭여행이 아닌 어학연수였다. 짐을 굳이 줄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트렁크에 짐을 꾸리면 연수 끝나고 난 뒤 뜀도령, 찬바람과 합류해 시안으로 떠나는 5일간의 여행 때가 문제였다. 고민끝에 25리터 배낭 하나를 가득 채우는 절충책으로 해결했다. 내의는 평소보다 조금 더 챙기고 갈아 입을 옷으로 등산복을 좀 더 챙겼다. 등산복은 안빨아도 그닥 표가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진 표는 23일 13:05 인천발 북경행 비행기. 평소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던 습관대로 11시까지만 도착하면 충분할걸로 생각했는다. 하루 전날 여행사에서 오전 10시까지 발권창구 L 코너에 집결하라는 내용의 문자가 날아왔다. 머 이래 일찌기 오라카노? 한 두명 지각 사태가 생길까 염려해 서둘러 모이게 한 것 같다. 하긴 나도 학생들 인솔할 때 종종 써먹는 방법이긴 하다. ㅡ,.ㅡ; 늘어지게 늦잠 자겠다던 꿈을 접고 아침 8시에 일어나 씼고 아침을 먹고 나니 아침 9시가 조금 넘었다.
10시 조금 넘어 집결 예정 장소에 도착해 보니 여행사에서 학생들의 항공권을 단체로 발권받기 위해 여권을 걷고 있었다. 이 번 어학연수에 함께 참가하는 4명의 직장 동료들은 이미 발권을 다 받아 놓고 늦게 온(?) 나를 나무랐다. 뭐 피해 준거 있었나? ㅡ,.ㅡ; 어쨌든 발권을 받아야 하니 해당 항공사 발권 부스에 가서 줄을 섰다. 내 차례가 가까와 오자 바로 앞 발권 수속중이던 한 중국인 남자가 날 보고 중국어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통역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그를 돕겠다고 발권창구 직원에게 함께 가 보았더니 이 사람은 발권을 받기 전에 출입국관리소부터 다녀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젠장. 중국어로 "출입국관리소"를 뭐라고 하는지 알 수가 있나. 그냥 우리가 쓰는 한자어를 중국어 발음 그대로 변환해서 말해줄까 아님 사전을 찾아볼까... 사전은 이미 배낭 속 깊은 곳에 있었다. 그러잖아도 발권창구 여직원이 곧 통역담당자가 올거라고 했다. 나는 앵무새모냥 그 중국인에게 "중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온다네요." 하고는 뒤로 빠졌다. ㅡ,.ㅡ;
출국 전부터 쪽팔렸다. 그러나 이따금의 쪽팔림이 보답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내 차례가 오자 발권창구의 여직원은 "중국어를 할 줄 아시니까 비상구 옆자리를 드릴까 하는데 어떠세요?" 이게 왠 떡이냐? 비상구 자리는 이코노미석에서는 대박에 속한다. 몰려 다니는 것보다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니 일단 동료들과 떨어져 좋고 발 앞이 넓고도 넓어 좋았다. 스타라인을 타고 자리를 옮겨 면세점을 둘러 보며 안동소주와 제주 백리향 초컬릿을 한박스 샀다. 해당 탑승구로 가 20여분 남겨두고 탑승했다.
제주도 가는 것보다 조금 더 걸리는 시간동안 가는데 뭔가 먹거리를 줄거라곤 생각 안했는데 오홋? 밥주넹? 근데 쇠고기 비빔밥 달랬더니 김치볶음밥 주넹? 하긴 2시간짜리 비행하는 주제에 주면 감사하게 받아 먹을 일이지 따질 게재가 아니지.
칭다오 맥주가 없어서 대타로 받은 것은 옌징맥주. 꿩대신 닭이다. 하지만 이것도 감사할 일이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학생들은 북경어언대학에서 보내온 버스 2대에 나눠 타기 시작했다. 두 대가 바로 옆에 있지만 학생들도 동료들도 코앞에 있는 버스로 몰려 들었다. 나는 북적거리는 버스를 피해 바로 옆 다음 버스에 올라타 이 번에도 동료들과는 떨어져서 갔다. 공항으로부터 북경어언대학까지의 거리는 그리 가깝지도 않았고 교통은 적잖이 밀리는 편이었다.
대학에 도착하자 진입로에 무책임하게 주차된 한 차량 때문에 교내 진입에 애로사항이 좀 있었다. 도착하고도 방배정에 혼선이 있었다. 자세한 얘기를 하자면 내부 문제를 들먹이는 꼴이 되니 대충 넘어가기는 하지만 어쨌든 한시간 반 정도를 우왕좌왕해야만 했다.
나는 간신히 회의중심(컨퍼런스센터)의 8층 방에 배정받았다. 동료들은 나보다 먼저 도착에 우왕좌왕하는 일 없이 바로 이 곳에 배정을 받았다고 한다.
원래 배정하기로 되어 있던 외국인 기숙사 17동에는 이미 자리가 다 차서 더 이상 공간이 없었고, 이 곳 회의중심에 배정받은 공간은 무척이나 좁아 터졌다. 욕실과 책상, TV, 냉장고와 침대를 놓은 방에는 약간의 운신공간만 남겨 두었을 뿐이었다.
그나마 내가 배정받은 방에는 냉장고도 없었다. 천장 한쪽 구석에는 빗물로 얼룩진 자국이 있고 그 곳에는 칠이 벗겨져 흰 가루가 쉬지 않고 조미료처럼 솔솔 떨어져 책상 위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카운터로 내려가 방을 바꿔달라고 했다. 남은 방이 전혀 없단다. 혹시 17동에 공간이 있으면 달라고 했더니 그 곳 역시 방이 전혀 없단다. 그러면 냉장고라도 달라고 했더니 그러잖아도 지금 구매중이란다. 언제쯤 받을 수 있겠느냐 물어보니 구매하는데 1주일 걸린단다. 냉장고를 받은 날은 그로부터 열흘 뒤였고 냉장고를 받은지 3일만에 북경 어언대학에서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떠났고 그 때까니 나는 따끈한 물만 마실 수 밖에 없었다. 맥주를 넣어 놓고 이따금 꺼내 마시는 소박한 즐거움은 애초부터 박탈당했다. 뭐냐고 이거 ㅡ,.ㅡ; 직장 동료들과는 또 떨어졌다. 내가 도착해 방을 배정 받기 전에 동료들은 이미 방배정을 완료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간 모양이었다. 첫날은 함께 할려고 했는데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나도 민생고부터 해결해야 했다.
닐단 밖으로 나갔다. 무척 더운 날씨였다. 내가 북경에 있는 동안은 38~40도 사이였다. 한국 같으면 뉴스를 도배할 엄청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 곳 사람들은 일반적인 이 더위에 적응이 되어 있는지 일상 생활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나도 그날로 적응된걸 보면 적응력 하나는 뛰어난가 보다. 남문으로 나가다가 학교 중심에 세워진 공자상. 중국에서는 아직도 공자에 대한 경외심이 대단하다. 공자를 모신 사당도 많이 남아 있고 사당에서는 아직도 그를 숭배한다. 유교사상은 눈씻고 찾아봐도 남아있지 않은 이 곳에서 아직도 공자를 숭배하고 있으니 묘한 일이다. 유교사상이 사회 전반에 짙게 깔린 한국 사회에서는 공자 사당을 볼 수 없으니 이 역시 아이러니하다. 이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울학교 수학교육과 K교수님을 만났다. 공부를 좋아하시는 이 양반 안식년 기간동안 여기서 내내 중국어 공부를 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외국인 기숙사인 17동에 머무신다고...
대학 남문을 공항으로 부터 버스를 타고 올 때 봐 두었던 식당을 찾아 걸었다. 도보 10분정도의 거리였다. 가고자 했던 식당은 중식당이 아닌 일식당이었다. 중국까지 와서 일식 먹으랴? 나는 그 아래층의 "성도미식"이라는 중식당으로 정했다. 그 근방 식당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으로 붐비는 집이었다.
나는 야외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알아보지도 못할 메뉴판을 들여다 봤다. 주재료는 제목만 봐도 대개는 알 수 있지만 어떻게 요리한건지 알수가 있나. 더위에 지쳐 식욕도 별로 없으니 우선 간단하게 먹을 요량으로 홍샤오뉘우로우미엔을 주문했다. 홍샤오는 불을 붙여 급속히 볶았다는 뜻이고 뉘우로우는 쇠고기를 의미한다. 우리말로 대충 주워 섬기자면 쇠고기탕면쯤이라 해두면 될까 모르겠다. 불질로 고추기름에 쇠고기를 볶은 뒤 청경채와 함께 국수에 말아 내놓았다. 약간의 향신료가 가미되었고 국물은 짭짤했지만 맛은 그야말로 끝내주는 정도였다. 가격도 10위엔으로 무척 저렴하다. 다시 보니 먹고잡다.
바로 옆에는 큰 수퍼마켓이 하나 있었다. 들어가 봤다.
끌고 다닐 수 있도록 손잡이와 바퀴를 달아 놓은 장바구니가 인상적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칭다오 맥주 가격부터 봤다. 4.3위엔. 음. 아직도 중국물가는 감동적인 편이다. 냉장고가 없으니 맥주는 사봐야 소용도 없고
5리터짜리 물 한통과 담날 아침 먹을 아침거리로 빵과 여기에 곁들여 먹을 떠먹는 젤리를 몇 개 샀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니 동료들이 로비 앞에 모여 있었다. 어디 가서 칭다오 맥주나 실컷 먹자고 제안했더니 분위기는 노래방으로 쏠렸다. 한국에도 지천에 깔린 노래방은 여기까지 와서 뭐하러 가냐? ㅡ,.ㅡ; 나는 일언지하에 빠지겠다고 했다. 그러잖아도 술이라도 한 잔 하기로 하고 헤어진 K교수님을 찾아갔다. 수면 안대를 목에 걸고 계신걸 보니 초저녁 잠을 즐기고 나서 밤에 공부하려던 참이셨던가 보다. 공부면 공부, 술이면 술 어느 것 하나 즐기지 않은 것이 없는 K교수님은 맥주 한잔 얘기에 솔깃하셨는지 즉각 옷을 입으셨다(불량 친구를 만나 타락하기 시작하는 범생 같은... ㅡ,.ㅡ;) 지하철 우다오커우(五道口)역 근방에 야시장이 열리니 그리로 가잔다. 야시장? 어~~~! 그거 완죤 굿이다. 가서 보니 사각으로 조성된 광장을 두고 그 테두리에서는 여기 저기 굽고 볶고 난리가 났다. 사각 광장에 몰아 넣은 테이블 여기저기서 먹고 마시고 흥청망청 난리다. 우리는 칭다오 생맥주에 양꼬치부터 주문해 앉았다.
왠지 김이 약간 빠진듯한 칭다오 생맥주(4위엔)는 기대보다는 덜 감동적이었지만 그런대로 시원한 맛에 즐길만했다. 양꼬치(10개 10위엔)도 한국에서 매양 먹던 연길식보다는 이 곳 북경식이 훨씬 맛이 좋다. 어허 조낸 행복한지고.
tv에서 본 적 있는매운 가재볶음(10마리 20위엔)도 주문해 봤다. 맵고 짭짤하고 쫄깃한게 그만이다. 속살은 양념이 살짝 덜 뱄지만 껍질을 벗기다 보면 그 와중에 껍질에 뭍은 양념이 손가락을 통해 속살에 뭍어난다. 맛? 쥑이지...! 이 곳에서 도대체 생맥주를 몇 잔을 마신건지... 마니도 마셨다. 귀엽게 볶아진 가재.
자리를 파하며 K교수님과 기념으로 셀카 한컷.
북경어언대학 북문과 연결된 시지아오(西郊)호텔을 통해 각자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몇시였는지도 가물가물. 그래도 내일은 분반을 위한 등급테스트가 있는 날이니 일찍 일어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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