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10 중국어학연수

중국어학연수2(수평 테스트)

코렐리 2010. 7. 18. 14:11

2010.6.24(목)

전날 왕창 마셨으니 일어나기 싫은건 당연지사였지만 등급테스트를 빼먹으면 반을 잃은 미아 내지는 고문관이 될테니 그럴 수는 없었다. 간신히 7시에 일어나 강의동 3관에 가 내게 배정된 테스트 강의실을 확인해 보고 그리로 찾아갔다. 이미 각국에서 온 여러 학생들이 두 명의 중국어 강사로부터 구두테스트를 받고 있었다. 구두테스트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 차례가 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테스트를 마친 시간은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동료들의 테스트가 종료되는 시간까지 기다리느라 숙소에서 뒤비져 쉬었다. 테스트 결과에 따른 분반현황은 담날 아침 수업시작 전에 공고된단다. 다른 사람들은 12시가 다 되어서야 테스트를 마치고 돌아왔다. 12시가 되자 점심먹을 궁리부터 들기 시작했다. 나는 전날 저녁식사를 먹었던 "성도미식"으로 동료들을 데려가 쇠고기탕면을 선보였다. 모두가 반응이 좋다. 

 

류리창부터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나는 버스나 지하철로 가자고 했고, 택시 2대에 나누어 타고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결론은 택시였다. 식사가 끝나자 택시 두 대에 나눠 타며 류리창에서 모이기로 했다. 내 취향이 어쩌고 저쩌고 피력할 상황이 아니었다. 어쨋든 택시를 타고 달리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참 가다 류리창으로 가는중인지를 재확인지 혹시 몰라 다시 물었다.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혹시라도 커뮤니케이션에 문제라도 생길지 몰라 성조와 발음은 나름 정확하게 했지만 아무래도 좀 이상했다. 운전기사가 되물었다. "류리치아오로 가는거 아니었어요?" ㅡ,.ㅡ; 나는 현재의 위치를 알지도 못하면서 "이거 아무래도 엉뚱한 엉뚱한 방향인 것 같은데? 이거 맞는 방향이예요?" 기사는 "그래도 방향은 맞아요." 라고 대답했지만 아무래도 수상했다. 중국어를 못하고 어리버리하면 스리슬쩍 돌아서 더 많은 요금을 챙기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데... 한참만에 류리창에 도착했는데 62위엔이 나왔다. 어쩌나 보려고 100위엔짜리 지폐를 내주었다. 택시기사는 잔돈을 주물럭거리더니 50위엔을 내줬다. 미터기에 나온 액수보다 12위엔을 덜 받았지만 글도 지레 짐작에 아무래도 정상적으로 왔을 때 보다는 많은 액수였던 것 같아 앉은채로 기사를 쳐다 봤다. 슬며시 10위엔을 더 내놓는다. 나는 수고하셨다는 인사와 함께 내렸다. 먼저 도착했을 걸로 짐작했던 동료들이 안보였다. 그들은 오히려 우리보다 늦게 도착했다. 운전기사가 영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는지 헤매더란다. 그들은 41위엔을 지불했다고 하니 일단 바가지는 쓰지 않은 셈이다. ㅋㅋ

 

6년만에 다시 들른 류리창은 그 때 그대로의 모습에 조금도 변화가 없어 반갑기만 했다. 류리창은 중국 옛문화의 향기가 짙게 밴 곳으로 북경의 인사동같은 그런 곳이라 문화매니아들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들러보아야 할 곳이다. 우리는 슬슬 거리의 분위기를 즐기며 이따금 골동품 가게, 고미술품을 파는 갤러리 등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햇살은 강렬해서 노출된 피부는 뜨거운건지 따가운건지 분간도 안가고 더위는 장난이 아니었다.

 

류리창 거리를 반정도나 돌았을 때였나보다. 일행중 여자가 한 명 있었는데 궁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얼핏 들리는 말로는 "날도 더운데 이게 뭐야, 목숨 걸 일도 없는데 힘들어서 어디 다니겠냐구..." 맞장구 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시원학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좋겠는데..." ㅡ,.ㅡ; 나는 이 때부터 슬쩍 혼자 다니며 내 취향대로 즐길 궁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6년전에 왔을 때는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도착하자 곧 해가 졌었다. 지금은 오후 두시 정도에 도착했으니 그 때 대충했던 눈요기를 오늘 보충하는 셈이었다. 이 곳에서 보는 각종 골동품들과

 

우리에게도 정서적으로 익숙한 서화

 

그리고 섬세하게 또는 투박하게 만들어진 각종 공예품들이 보는 눈을 호강하게 한다.

 

소가죽으로 만든 그림자 인형이 눈에 많이 띤다.

 

무엇보다 고전적인 거리의 분위기가 정겨운 곳이다.

 

사실 북경의 후통(골목)은 놓치지 말아야 할 필수 코스의 하나다. 여행만 가면 그나라의 서민이 사는 골목은 반드시 가보는 나에게 있어서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 골목에 관심을 갖는 동료는 아무도 없었다. 

 

한 서화점에서는 노인들이 모여 포크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이 서화점에 들어가 노인이 부르는 힘있고 세련된 포크 음악에 나 자신을 잠시 맡겨 보았다. 여기에는 나이든 외국인 남자도 한 명 끼어 있었다. 두 곡정도를 듣고 나자 그동안 많은 곡을 연주하고 노래했는지 기타를 내려놓고 노래하기를 멈췄다. 사실 노래를 더 부른다 하더라도 일행이 있고 그들은 여기에 더 머무를 처지도 아니었다.

 

류리창의 양쪽 끝까지 모두 들러 본 우리는 어렸을때 먹어본 아이스께끼 같은 빙과를 하나씩 물고 대로를 향해 걸었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탈것은 6년전엔 못보던 물건이었다. 형태는 좀 많이 다르지만 인도의 툭툭을 연상케 한다.

 

대로변의 찻집. 6년전엔 혼자 있어서 건너 뛰었던 집이다.

 

들러서 차 한 잔 마시고 가기로 했다.

  

일행의 일정을 주도하던 고참 선배가 차를 주문했다. 주인 아가씨(사실 종업원일 수도 있었지만 그녀가 가진 재량권과 왠지 모를 분위기상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는 200위엔의 차에는 4개의 잔이 딸려 나온다고 했다. 다시 말해 6명이 200위엔의 차 하나만 주문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200위엔의 차를 2개 주문할 것을 요구했다. 고참 선배는 의사소통이 시원치 않은지 내게 통역을 시켰다. 내용인 즉슨 " 우리는 학생들이고(이렇게 늙은 학생들이 어딨어? ㅋㅋ) 돈이 없어 주문은 1주전자만 할테니 잔은 6개를 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1주전자만 해도 6명이 충분히 즐길 정도는 되었다. 그녀는 웃으며 잔 두 개를 더 가져왔다. 사실 차 두 주전자를 주문하자면 400위엔이고 그러면 8만원이니 사실 좀 어이가 없기는 하다. 여기서 차를 마시며 잠시 쉰 뒤 왕푸징으로 가기로 했다. 나는 계속 더운 물을 부어 악착같이 마셨다.

 

이 번에도 두 대의 택시에 나누어 탔다. 사실 택시가 더 불편했다. 왕푸징 입구에서 만나네, 롯데백화점 앞에서 만나네 설왕설래하다가 결국 낙찰된 곳은 왕푸징 입구. 택시를 타고 막상 도착해 보니 먼저 출발한 일행이 안보였다. 뙤약볕 아래서 기다리기 쉽지 않건만 나머지 반쪽 일행은 나타날 줄을 몰랐다. 혹시나 롯데백화점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 그리로 가 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행의 반은 이미 롯데백화점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잘났네 못났네 떠들며 탓하기를 잠시 하고 나서 그 근처를 둘러본 뒤 후통을 들러 왕푸징 먹자골목으로 가잔다. 특이한 것은 롯데백화점 표기법이 대따 재밌다. 백화점은 중국어로 바이후오꽁쓰(百貨公私)라 부른다. 문제는 롯데를 어떻게 표기하느냐다. 중국어로 롯데를 발음을 억지로 시키면 할 수는 있다. 다만 거기에 적당한 표기법은 없다. 그저 비슷하게 갖다 주워 섬겨야 하는데 르어티엔(樂天)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한국식으로 발음하자면 "락천"이다. 조금도 안비슷하다. 의미로 보자면 "낙천적이다"가 아닌가. 코카콜라를 크어코우크얼러(可口可樂)라고 표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쨌든 백화점을 대충 둘러 보기로 한 일행은(나 이땅거 디따 싫어하는딩... ㅠㅠ) 지하로 내려갔다. 먹거리가 즐비한 우리네 백화점 지하와 달리 암것두 없어 다시 지상으로 올라간다고 올라간 사이 나는 약간 장황한 안내문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중국에 있는 동안 전자사전은 항상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길을 가다 익숙치 않거나 모르는 단어가 눈에 띠면 곧바로 뒤져보기 위함이었다. 중국어 공부하러 중국에 왔으면 한국에 없는 환경은 최대한 살리고 봐야했다. 안내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읽어보고 나서 익숙치 않은 단어를 뒤져 보았다. 게시판에서 모르는 내용이 일단 없다고 판단이 되자 일행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모야 이거...

 

지상으로 올라 밖으로 나와 봤다. 역시 없다. 한동안 기다렸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서 볼게 없으니 이탈대원 하나 분실한 줄도 모르고 후통으로 갔나보다 판단한 나는 후통으로 갔다. 후통 저멀리에도 이 사람들 비스므리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백화점으로 가봤다. 역시 없었다. 혼자 다니고 싶었던 소원이 이루어진걸까. 나는 그래도 나중에 들을 잔소리가 두려워 열심히 찾아 다녔지만 저마다 개성 강한 그들과 다시 합류하는 것 자체가 두려워 못찾았으면 좋겠다는 밉살맞은 생각이 나의 뇌리를 지배했었다. 게다가 일행 중 한 명이 자기 여동생이 우릴 저녁식사에 대접하겠다고 했단다. 나는 사양했지만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부담스럽게 생각해 이미 여러번 사양했지만 더 사양했다간 미안해 질 상황이었던가보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신세를 지는 것도 싫고 다시 볼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욱 내 생리상 용납이 안되는데다 빚진 것은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더 부담스럽고 싫었다. 여동생이 초대를 했다는 이 사람과 나는 근무하는 캠퍼스도 달라 이 번에 처음 반나는 사람이라 더욱 그랬다. 찾다 찾다 못찾으니 여기에서 조차 해방된 느낌이 들면서 찢어질듯 미소짓는 나의 입술 양 끝이 뒤통수에서 서로 만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내심 기뻤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나는 백화점 밖에서 그들을 찾아 다녔고, 백화점 안에서 나를 찾아 다닌 일행은 한국어 방송이 가능함을 알고 나를 찾는 한국어 방송을 두 번이나 했단다. "안내 방송입니다. 한국에서 오신 아무개씨! 한국에서 오신 아무개씨!  일행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 방송을 듣는 즉시 방송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아~~~ 쒸. ㅡ,.ㅡ;

 

어쨌든 백화점 앞에서 헤매며 셀카 한 컷. 헤매는 주제에 셀카질 하는 것도 본능인지 원. 해놓고 보니 뭔짓인지 몰라.

 

일행을찾아 헤매다 본 특이한 분수대. 전통차 판매점 바로 옆에 설치된 찻주전자 모양의 분수인데 주전자가 허공에 뜬 것 같아 유심히 보니 물 쏟아지는 곳에 쇠기둥이 박혀 있었다. 아이디어 완죤 굿이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2층 버스가 여기저기 운행되고 있었다. 한 번 타보고 싶었지만 그 이후로도 2층 버스를 탈 수 있는 노선은 한 번도 없었다. ㅡ,.ㅡ;

 

일행을 찾지 못한 나는 우헤헤.... 이히히... 가벼운 발걸음으로 왕푸징 먹자거리를 향해 혼자 촐싹거리며 걸어 갔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날 저녁에 갔던 식당은 엄청 비싼 고급식당이었고 저녁식사가 끝나자 발마사지까지 풀코스로 모시고 다녔고 나중엔 학교 숙소까제 모셔다 드리고 갔단다. 여기에서 빠진 것이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왕푸징 골목으로 들어서자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볼거리보다 사람이 더 많은 곳이 바로 이 왕푸징 먹자골목이다.

 

불가사리나 전갈 또는 해마 같은 엽기 먹거리는 여전히 잘 팔리고 있었다.

 

안으로 깊숙히 더 들어가 보았다.

 

어라? 여기서도 떡볶이를 파넹? 그런데 어찌된 떡복이에 파도 안보이고 오뎅쪼가리도 안보였다. 사실 맛은 대따 없어 보였다.

 

가지런히 모아 놓은 엽기꼬치

 

굼벵이 꼬치도 보인다. 나는 출출한 김에 양꼬치 두 개(개당 2위엔)를 사먹었다.

 

 

다리도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먹자골목을 나와 지친 다리도 쉴 겸 파라솔이 있는 대로 매점에서 물 하나를 사려고 했더니 500밀리 한 병에 뭐? 3위엔? 이런 젠장 2리터 짜리가 3위엔인데 이건 또 무슨 웬수같은 소리? 디르브서 안마신다 생각한 나는 날도 저물어 가기 시작하는 관계로 지하철로 향했다. 그러잖아도 이 번 주말에 태안으로 놀러갈 작심을 하고 있던 차에 기차표는 아직 구입하지 못했고 교내에 옇생사가 있다는데 어딨는지 아직 찾아내진 못했고 다니면서도 여행사가 없는지 유시히 봤지만 개똥도 쓰려면 없는지 어딜가나 흔해 터진 여행사가 안보였다. 생각난 김에 그냥 기차역으로 가봤다. 베이징역은 여기서도 지하철로 잠깐이었다.

 

베이징 역으로 가보니 태안으로 가는 기차는 베이징 남역에서 출발한단다. 베이징에는 모두 몇 개의 역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베이징역, 베이징남역, 북역, 서역, 동역이 있었다. 이 곳에서 기차표를 파는지 알아볼까 하다가 몇 개 역만 더 가면 되니 다시 지하철을 타고 그냥 남역으로 가보기로 했다. 매표소에 가니 줄을 길게 늘어섰다. 학교로 돌아가 여행사를 찾자면 낼 당장 떠날텐데 문은 이미 닫았을테고... 30분을 기다려 내 차례가 오자 이 번 주말(6월 25일~6월27일) 지난(齊南) 왕복표와 담주말(7월3일~7월 5일) 청더(承德) 왕복표를 달라고 했다. 지난은 좌석이 없고 청더는 올 때만 좌석이 있단다. 일주일도 더 남은 날의 티켓에 자리가 없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구입하기로 맘먹고 얼마인지를 물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428위엔이요" 끼야아~~~! 8만원이 넘는다. 그래도 어쩌랴 놀러 가려면 표를 구입해야지... 지갑을 뒤져보니 이게 뭐야? 당시 지갑속에 담아 나온 돈은 415위엔이었다. ㅡ,.ㅡ; 30분씩이나 줄서고 이게 모냐고? 결국 쪽팔렸지만 지난 왕복표만 구입했다. 오잉? 근데 이게 모야? 입석푠데 왕복 304위엔(6만원)? 이런 젠장. 도대체 이게 모야? 알고 보니 고속철이었다. 고속철을 입석으로 사니 얼마나 억울하냐? ㅜㅠ 그래ㅗ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청더에 가는 표는 당시에 사지 못한 것이 다행이었다. 여행사가 어딘지는 지난에 다녀와서야 가봤지만 청더 왕복표에는 좌석표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교를 구해 들고 의기양양하게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지하철 티켓 발매기가 작동을 하지 않았다. 출입구가 4면에 있어 3면을 가 봤지만 모두 이 모양이었다. 판매 창구에는 직원도 없었다. 들어가는 사람들은 많지만 저마다 교통카드를 이용하는지라 표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단다. 한참을 헤매다 밖으로 나가봤다. 외진 곳이었다. 일반 노선 버스도 안보이고 택시를 타자면 거리가 엄청난지라 택시를 탈 생각도 없었다. 고민 끝에 다시 지하로 내려가 안 가봤던 마지막 한 출입구로 가보니 거기선 발매기가 작동했다. 한 곳으로만 개찰을 하느라고 나머지 기계를 꺼 둔 것이었다. 이런 젠장. 여기서 헤매느라 허비한 시간이 얼마냐고 ㅠㅠ

 

그래도 집으로, 아니 숙소로 돌아가는 기쁨이 있었다. 기차표 사기를 미루고 뭉기적거리면서도 이러다 주말에 북경에서 노는거 아닌가 은근히 걱정도 되었는데 어찌되었든 표를 구했으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성도미식(城都美食)으로 다시 가서 이 번엔 고기덮밥으로 주문해 봤다. 이것도 맛있군.

 

전날 사다 놓은 5리터짜리 물은 이미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난 참 대단한 물귀신이다.

 

에어컨이 없는줄 알고 있었던 나는 벽에 붙박이로 설치된 에에컨을 그제서야 알아보고 작동을 시켰다. 샤워 후 에어컨 바람이 무엇보다 더위에 지친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내방 저 건너편에는 백인 여자애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저렇게 틀어박혀 공부하면 자국에서 공부하는 것과는 도대체 뭐가 다른거지? ㅡ,.ㅡ; 문제는 커튼을 닫거나 보명을 꺼버리지 않는 한 서로 마주보이는 터라 내가 좋아하는 타잔놀이를 못한다는게 심각한 문제였다. 암튼 공부 열심히 하니 보기는 좋다고 중얼거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낼은 수업 끝나면 기냥 북경을 뜬다. 우핫!